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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06/05/29 01:30:20
Name 진리탐구자
Subject ‘말을 잘 안 듣는 아이’를 위하여-박노자(한겨레 펌)
혹시나 박노자 교수를 모르는 분이 계실지도 몰라서 간단히 프로필을 쓰겠습니다.
박노자 교수는 러시아 태생으로 한국으로 귀화하셨습니다. 현재는 노르웨이 오슬로 국립대학의 교수로 있습니다. 귀화 한국인임에도 불구하고 누구보다도 한국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사람입니다. (가끔 난 도대체 뭐하면서 살아온 것인가  싶을 정도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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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필자에게는 한 가지 헷갈리는 일이 있었다.

늘 선생님들은 부모 말을 잘 듣는 아이가 착한 아이라고 말했지만, 또 한편으로는 당시 "사회주의 국가"의 청소년이 존경해야 할 사람인 칼 마르크스의 평전을 읽었을 때 그의 삶은 "착한 아이"의 모습과 대조적이었기 때문이다.

아들도 "잘 나가는" 법률가가 되기를 기대했던 아버지의 바램을 저버린 채 젊은 날을 "쓸 모 없는" 철학 공부로 보냈다가 빚더미에 앉은 망명객이 돼버린 아들을 보고 모친이 "자본론을 쓰고도 자신의 자본은 못만들었다"고 한탄하지 않았던가?

마르크스의 그러한 "탕아 행각"도 만만치 않았지만 부모의 허락도 없이 급진파 유대인과 약혼함으로써 집안에 "불명예"를 안겨준 그 부인 예니의 행동 또한 불효막심이 아니었던가?

예니의 이복형이 독일의 내무부 장관이 되었어도 예니는 망명지 런던에서 아이가 태어나도 요람을 살 돈이 없었고 아이가 일찍 죽어도 관을 살 돈이 없었다.

그럼에도 "탕아"들끼리 평생 그렇게도 행복했다는 것이었다.




부모의 말을 듣지 않고 자기 길로 가는 것이 150년전의 유럽 유산층에서 쉽지 않았지만 오늘날의 한국에서 아직은 혁명을 일으키는 일처럼 어려운지도 모른다.

옛날 사람들은 월인천강(月印千江), 하나의 달 그림자가 천 개의 강에 비추어진다고 하지 않았던가?

마찬가지로 이 사회의 이데올로기인 경쟁주의·출세주의는 부모의 마음에 내면화되어 가정마다 "학업 장려"와 같은 미명하에 자행되는 폭력의 원동력이 된다.

아이에게는 자신 스스로의 꿈을 꾸어볼 여유도 없이 부모의 꿈은 곧 아이의 꿈이 되고 만다.

입시 전쟁에서 패배하면 가정에서는 "불쌍한 무능아" 아니면 "부모의 은혜에 보답 못하는 배신자"가 되는 줄 알고 몸과 마음을 망가뜨리는 "전쟁 준비"에 몇 년을 허비하는 것은 기본이다.

꼭 그걸로 끝나지도 않는다.

서양 음악을 아이에게 시켜야 상류층이 된다는 "통념"을 익힌 부모들이 "신분 상승을 도모하라"는 사회의 절대 명령대로 음악과 별 인연도 없는 자녀에게 악기 공부를 무리하게 시키는가 하면, "조기 유학을 안보내면 안된다"는 새로운 "상식"대로 부모 곁을 떠날 마음도 없는 불안한 아이들을 억지로 이역으로 떼어 보낸다.



사회가 강권하는 이와 같은 폭력의 결과는 무엇일까?

부모에 대한 평생의 원망의 씨앗이 될 수도 있고 아이의 심신을 파괴시킬 수도 있으며 또 나 자신의 욕망을 스스로 찾아내 사고하거나 표현할 줄 모르고 남을 따르기만 하는 세대를 만들 수도 있다.

그런데 부모가 시키는 대로 살고 싶지 않는 아이가 작은 개발 독재와 같은 가국(家國)에서 반란을 일으켜 자신의 인격 지키고 싶다면 과연 어디부터 어디까지 가능하겠는가?

뜻이 굳건한 사람에게 불가능은 없겠지만 그에게는, "효도"를 아직도 "엄숙한" 최고 덕목으로 주입시키는 사회에서 150년전에 칼과 예니가 겪은 고뇌보다 한층 더 심각한 고통이 따를 것이다.

역설이지만 마르크스주의자임을 내세우는 부모라 해도 자신의 자녀가 마르크스처럼 행동할 경우 마르크스의 아버지보다 더 강경하게 대응할 수도 있을 것이다.


죄송한 이야기지만 수능날에 시험장에서 벽이나 문에 기대에 열심히 기도하는 어머니들의 모습을 볼 때에 필자는 감동되기는커녕 답답해서 울고 싶은 심정이 된다.

"내 아이가 암기 경쟁에서 남을 잘 눌러 올라서서 승리하기를" 예수님이나 부처님에게 기도하기보다 오히려 예수님이나 부처님이 하셨듯이 (부모의 의도가 아닌) 자신이 선택한 길을 갈 수 있는 용기를 지니도록 기도하는 것이 진정 종교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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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자녀들에게 "착한 녀석", "말 잘 듣네"라고 칭찬하는 친척들이나 지인들을 보면 '폭력에 대해서 반항할 줄 모르는 등sin을 만들겠구나'하고 생각할 때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 글을 보니 약간 흥분되네요. '효'라는 사회 유지를 위한 수단으로 인해 사회의 모순에 대한 저항 정신이 약화되는 것을 날카롭게 잘 지적하고 있는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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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레스
06/05/29 02:28
수정 아이콘
새벽에 좋은 글 보고 갑니다.
마지막 말이 정말 가슴에 와 닿네요..
양념반후라이
06/05/29 06:32
수정 아이콘
박노자교수님은 "너무 맞는말만 해서" 오히려 딱해보일 정도더군요.
그분의 책을 몇권 읽어봤는데 읽는 내내 "글쎄.. 그렇게만 되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그게 될까 ?" 이런 생각만 했었죠. 보기 드문 이상주의자죠
엘케인
06/05/29 08:47
수정 아이콘
글 참 잘쓰네.. // 너무 이상적일지라도, 노력은 해봐야겠지요..
06/05/29 08:48
수정 아이콘
입시제도에서 파생되는 특별입학 비리, 금품수수 , 촌지, 과도한 입시경쟁, 전인교육의 부재, 등등으로..
어른들의 이기심과 삐뚤어진 관심에 피해를 입는 건 우리 아이들인데..
박노자 교수의 글 잘 읽고 갑니다.
사실, 우리 나라 지식인 중에 박노자 만큼이나 좌파적 견해를 대중적으로 쉽게 풀어내는 사람은 몇 없는 것 같네요.
06/05/29 08:55
수정 아이콘
박노자 선생님의 책은 전부다 읽어 봤는데요 정말 한국에 대한 이해가 깊으신 분이고 옳은 말만 하시는 분이시죠

하지만 너무 이상주의자라는 것이.... 가끔은 제게 물음표를 던지곤 하더군요 정말로 다방면에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계시지만..... 차라리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대안을 제시했다면 더 좋았겠다라는 생각이 듭니다
06/05/29 09:24
수정 아이콘
현실적인 대안까지 제시할 수 있다면 박노자씨는 학자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구세주겠죠.ㅡㅡ)a 이런 글을 쓴다는 것 자체로도 우리에게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yellinoe
06/05/29 09:46
수정 아이콘
한겨레에 작년 후반 말미나 올해 극초반에 실렸던 내용이네요... 물론 자신의 책에도 똑같은 내용을 기고했다면 모르겠지만... 출처를 이런것도 써줘야 할듯 해서요,, 엄연히 칼럼인데..
진리탐구자
06/05/29 09:49
수정 아이콘
yellinoe님//앗, 그런가요. 그냥 지인의 홈페이지에서 있길래 퍼왔습니다. 수정하겠습니다.
Sports_Mania
06/05/29 10:32
수정 아이콘
' 하얀 가면의 제국 ' 몇번 읽고 나서 어제부터 ' 당신들의 대한민국 ' 읽고 있는데, 역시나 추천할 분이죠~
음악세계
06/05/29 12:45
수정 아이콘
좋은 글 감사합니다. 전 이상을 중시해서 그런지 박노자 교수 좋아합니다. 현실에만 안도하는 삶은 발전이 없어 보여서요. 물론 어려운 길이지만 가능성이 없어보이지만, 이상적인 목표가 있어야만 조금씩이라도 현실의 변화는 찾아온다고 생각합니다. 급진적이 아니라 조금씩 변하는 현실도 이상이 있기에 변하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Peppermint
06/05/29 15:33
수정 아이콘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게레로
06/05/29 20:55
수정 아이콘
저도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푸른바람부는
06/05/29 21:44
수정 아이콘
좋은말만 하시는것이 아니라 당연한말인데 우리가 잊고 있었거나 무시해왔던 말을 콕콕 찝어서 말씀하시는 분이죠.
이분이 하는 말들은 이상주의자가 뜬구름 잡듯이 하는 말이 아니라 우리가 조금만 생각을 바꾸면 세상이 달라질수 있다는 주장입니다.
하지만 그 조그마한 생각의 전환을 하기에는 우리의 현실이 너무 완고해서
우리가 박노자교수의 말들을 현실과 거리가 먼 이상으로 느끼는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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