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 경험기, 프리뷰, 리뷰, 기록 분석, 패치 노트 등을 올리실 수 있습니다.
Date 2006/03/29 22:28:49
Name 시퐁
Subject 차재욱의 한방, 그리고 후회없는 끈기.
가끔 생각합니다. 스물 여덟, 아직 서른이 남았으니 초조해야 할 필요 없다. 내가 걸어온 길을 믿자, 처음의 다짐을 잊지 말자.

이런 모든 것들을 낭만이라 치부한다면, 혹은 꿈이라 치부한다면 제 인생의 전부가 부정되는 것이기에 어떤 순간, 그 어느 순간도 무너지지 않기 위해 주먹을 쥐고 주변에서 밀려오는 무언의 강요를 무시하였습니다. 하지만 저도 인간인지라-그것은 홀로 살지 않는 다는 것을 뜻하기에-주변과의 관계를 생각치 않을 수 없고 시선을 생각치 않을 수 없고 나를 바라보는 사람들을 충족시켜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저는 섬에서 살거나 혹은 산에서 도를 닦지 않을테니까요.(그런 소문이 돌기는 합니다, 스님이 되었다는 소문에 깜짝 놀라기도 했죠)

하지만 그의 한방, 차재욱의 한방. 러쉬거리가 멀지 않은 지상맵에서 노배럭 더블 컴을 가져가면서도, 심소명 선수가 그것을 파악하고 소수 저글링으로 견제하며 공식과도 같은 대처법으로 자신의 승부를 유리하게 이끌어갈때도 그는 결코 다른 타이밍을 생각하지 않았으며 다른 운영을 선보이지 않았습니다. 드랍쉽을 생각하지도 않았고 급격한 고테크 플레이도 생각치 않았으며 다섯시를 견제하지도 않았습니다. 오로지 한결같은 마음으로 마린을 모았고 탱크를 모았으며 진출하고 상대의 병력을 격파해 승리를 거머쥐었습니다. 평범한 진출이라고 평할수도 있고 평범한 승리라고 이야기할수도 있으나 저는 그 진출과 그 승리가 가져다 주는 감동을 결코 잊지 못하게 되리라 생각합니다.

테란과 저그는 운영, 프로토스는 전투력. 제가 플레이어를 마음에 들어하는 가장 우선순위는 이것입니다. 그러기에 서지훈 선수를 좋아하고, 마재윤 선수를 좋아하며 송병구 선수를 좋아합니다. 최연성 선수의 괴물같은 파괴력에 사람들이 놀라나 저는 그러한 힘을 이끌어내는데 빛난 최연성 선수의 운영을 더욱 높게 칩니다. 차재욱 선수도 그런 의미에서 좋아합니다. 전투해야 할 때를 알고 물러설 때를 알며 견제할 때를 알고 참을 때를 아는 그의 플레이는 피망배 이윤열 선수와의 경기때부터 주목해왔었고 언젠가 빛을 발하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습니다. 그것은 비록 아직까지는 모자라지만 결코 포기하지 않았던 제 인생의 방식에 투영시킬수도 있었고 오늘의 경기에서 확신을 얻었습니다. 이것을 이야기함이 전혀 부끄럽지 않게 되었습니다.

차재욱 선수는 자신이 전투할 타이밍을 자신이 설정했습니다. 심소명 선수는 그에 맞춰 경기를 했었기에 이미 주도권은 차재욱 선수가 쥐고 있었으리라 생각합니다. 루나의 넓은 전장이 전투시 저그에게 유리한 요소가 분명 있었기에 불리하지 않았다고 심소명 선수는 생각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차재욱 선수는 자신이 믿어 의심치 않았던 타이밍이었고 참아왔던 모든 전투력을 폭발시켰습니다. 그리고 강렬한 승리를 거머쥐게 됩니다.

저는 그의 한방을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살아온 삶이 짧긴 하나 스물 여덟이라는 나이가 현실을 도외시할 정도의 나이는 아닙니다. 어쨌든 주위의 반대를 무릅쓰고 집까지 나와가며 하고 싶은 공부를 한다는 것은 사치일수도 있습니다. 나름대로 취업 제의도 많이 받았고 안정된 하루를 보낼 수도 있었습니다. 그 모든 제의와 주변의 반대를 무시했지만 내심 '내 길이 옳은 길일까'라는 의구심은 항상 있었습니다. 하지만 프로게이머들의 경기를 보면서 그 의구심을 조금씩 덜어내곤 하는 것이 서지훈이 승리할 때 보여준 그 한방, 최연성이 승리할 때 보여준 그 한방, 송병구의 승리에 보여준 한방, 차재욱이 승리할 때 보여준 그 한방. 그런 한번의 굉장한 공격들이었습니다. 그 공격 자체가 주는 퍼포먼스에는 그들이 그러한 병력을 갖추고 그러한 전투력을 갖추기까지 이끌어왔던 운영에 대한 믿음, 더러는 포기하지 않는 마음이 모조리 축약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에겐 수많은 경기중 하나에 불과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 경기를 이끌어내기 위해 수없이 같은 패턴을 연습했을 것이며 같은 타이밍을 놓치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보는 제게는 하나의 '임팩트가 강한' 승부입니다. 그 승부에서도 저는 포기하지 않는 마음을 배웠고 후회하지 않는 끈기를 배웠습니다. 머릿속으로만 알고 있던 수많은 인생의 지침들을 몸에 직접 적용하는데 그들의 플레이가 한 부분을 차지했음을 저는 결코 잊지 않을 것입니다. 더불어 감사합니다. 제 하루에 이런 멋진 경기를 더해 주었음을. 그리고 믿습니다. 선수들의 후회없는 순간으로 인해 더욱 멋진 하루를 희망할 수도 있음을.



ps.01 몇달만에 키보드를 두들기는지 모릅니다. 그 동안 공부를 했고 책을 읽으며 뒹굴거리기도 했습니다. 글쓰기가 어렵네요. 부족한 글이 되지 않기 위해 노력하려고 합니다.

02 영화 '애수'를 다시 보았습니다. 올해들어 두번째 봅니다. 잊혀지지 않네요. 워털루 다리와 자동차 헤드라이트, 비비안 리의 푸른 눈빛.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06/03/29 23:19
수정 아이콘
졸전이든 뭐든 재밌는경기봐서 참 행복하네요..
현금이 왕이다
06/03/30 01:17
수정 아이콘
드디어 시즌이 시작됐군요...

애수 저도 좋아하는 영화 중 하나입니다. 고전 영화들 특유의 맛이 있죠. 카사블랑카, 애수, 마담X...
06/03/30 10:47
수정 아이콘
2경기, 그러니까 차재욱 대 심소명 루나에서의 경기는 차재욱 선수의 뚝심을 제대로 볼 수 있는 경기여서 좋았습니다. 간혹 중요한 순간에 멈칫거리는 모습을 보여주는 ㅊ ㅏ선수였는데, 어제는 결단력 있게 한방에 딱 밀고 나가더군요. 마린의 위치도 좋았고...^^
하지만 마지막 러시아워에서의 경기는 좀 불만이 많았습니다. 제가 아무리 우리 ㅊ ㅏ선수를 예뻐라~ 해도 말이죠.ㅜ.ㅜ 그래도 다시 스타리거 되었으니 그걸로도 좋습니다. 인터뷰 보니 여자를 울리지 않는 게 인생 목표라고 하면서 그 눈물에 보답하겠다 라고 하던데... 그 마음 스타리그에서 꼭 보여주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T1팬_이상윤
06/03/30 14:58
수정 아이콘
꾹참고 모은 유닛으로 한방에 몰아쳐서 GG받아내기. 어느종족으로 하던간에 이거보다 더 시원한 방법이 더 있으련지......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22191 이런 신인이 등장한다면? [38] AstralPlace6084 06/04/02 6084 0
22190 도전하세요. [7] 메타루3706 06/04/02 3706 0
22189 Thank you Reggie..수고하셨어요 정말. [7] 루크레티아4258 06/04/02 4258 0
22188 지금 아프리카 jo피디방송에 김택용,박지호,박성준 선수 오셧네요(방송종료&전적정리) [54] 쉐보6210 06/04/02 6210 0
22187 앗힝~ 내일 군대갑니다! [16] 마동왕3872 06/04/02 3872 0
22186 간옹의 삼국지 [10] D.TASADAR4696 06/04/02 4696 0
22185 스타리그 주간 MVP (2006년 4월 첫째주) [56] 일택3998 06/04/01 3998 0
22183 e스포츠 관련 직업은 언제쯤 늘어날까요... [22] EzMura5329 06/04/01 5329 0
22182 '임요환,최연성' vs '마재윤,장육' [16] 제이파파6797 06/04/01 6797 0
22181 헐.... 저 로또 1등되었어요.... [24] 못된놈5998 06/04/01 5998 0
22180 [잡담]리플 100개는 간단히 넘기는 방법. [17] 무한초보3853 06/04/01 3853 0
22178 우리나라 국민이 침략을 좋아하는 민족이었다면... [64] 신소망5106 06/04/01 5106 0
22177 미국의 자존심 GM의 파산 [33] 한인6770 06/04/01 6770 0
22176 세번의 놀라움 [25] 어...4643 06/04/01 4643 0
22173 배구보셨습니까... [71] 정재완5360 06/04/01 5360 0
22171 패닉 콘서트를 다녀왔습니다. [7] 둥이4084 06/04/01 4084 0
22170 진주눈물을 흘리는 남자 [7] 청동까마귀4561 06/04/01 4561 0
22169 [알림] 만우절 이벤트를 종료 합니다. [14] homy4831 06/04/01 4831 0
22167 오늘의 경기 결과를 보고 느낄수 있었던 (느껴야만 하는?) 3가지 [46] KirA5453 06/04/01 5453 0
22163 만우절 이벤트!! 대박이군요.^^ [81] Solo_me7008 06/04/01 7008 0
22162 오늘 경기가 '더' 재미있었던 이유는 [25] 낭만토스5598 06/04/01 5598 0
22159 와 진짜 너무 좋아요. 요환선수 19번째 스타리거 축하합니다. [53] 세렌6415 06/03/31 6415 0
22158 그의 드랍쉽은, 그를 스타리그로 보냈습니다. [14] 가루비4546 06/03/31 4546 0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6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1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