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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2004/01/24 00:17:51 |
Name |
판 |
Subject |
나를 잊지 말아요 |
Forget-me-not.
그래, 너는 참 꽃을 좋아했더랬다. 어쩌면
항상 곁에 있던 나보다도 . 더.
친구들의 탄생화를, 그 앙증맞은 꽃말들을 얘기해 주던
네 미소들의 환한 꽃다발 틈새에서
나는 안개꽃을 닮은 산옥잠화마냥 조용한 기억쯤은 되었던 것일까.
너는 긴 여름이 시작되는 무렵에 태어난 것을 좋아했더랬다.
모두와 함께 떠난 바다에서조차 나는 자신이 없었고
네 탄생은, 네 꽃말처럼, 내겐 과분한 축복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사랑의 인연. 네 인동덩굴은 지금쯤 어떤 나무에 그 수줍은 손길을 얹었는지.
그래도 너는 어쩌면.
이제서라도 내 꽃말을 한번쯤은 찾아보지 않았을까.
사랑의 망각. 그토록 쓰린 이름의 이별이나마 변변히 하지 못한 내게 어울리는 건
결국 그런 이름이었는지, 너는 잠깐 생각해 보고 웃어보일까.
그해 여름,
그 쓰린 계절의 끝자락에서도
여전히 애닯은 꽃대궁들은 바람에 가슴을 갖다대며 흔들려댔고
빈 꽃잎 한 장마다 조심스레 꽃말을 이야기하던 네 모습들이 겹쳐
나를 안에서부터 온통 흔들어버리곤 했다. 그래,
너와의 기억들은 곧 꺼질 듯 가난하지만
네가 건드려주던 그 자그만 꽃잎들 틈바구니에서
나는 그래도 살며시 고개드는 추억일 수는 있을까.
너의 마지막 말을 듣기 위해 마주한 그날,
나는 네게 물망초를 안겨 주기 위해 몇 시간을 뛰어다녀야 했다.
바쁘게 스쳐지난 연인들만큼이나 눈부시던 그날의 꽃집들은
어째서 얇게 흔들리는 물망초 몇 송이조차 가지고 있지 않았을까, 아니
가지고 있을 필요가 없었던 것일까.
애써 다듬고 손질해 다져놓은 내 무표정이
그날 대학로의 끝에서 끝에 다다를 즈음에는
왜 그토록 소금기 짙은 물빛으로 바래어져 버렸던 것일까.
그날, 그날, 짧고 단단한 기억들이 온통 내 가슴을 관통해 버리던,
그리고 흩날리던 내 잘디잔 사랑을 밟고 네가 걸어가 버리던 그날,
나는 비어있던 손 대신 그 꽃말이라도 온몸으로 소리쳐야 했던 것일까.
나를 잊지 말아요.
...
Forget-me-n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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