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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5/15 22:58
드라마에 관한 의견이라면..(정말 드라마부분만..)
이정도의 규모와 스케일로 드라마가 나올줄이야..상상도 못했습니다.. 거의 영화 수준이더군요.. 특히 오늘..전화통화내용은 압권!!이였습니다.. (탱크 포신이 힘없이 출렁거려서 조금 아쉽긴했지만요..^^)
05/05/15 22:59
5공 홈피 게시판 보니까 장태완이란 사람은 후에 전두환 밑에 똘마니
가 되버렸더군요;;;그게 좀 맘에 안드는점...쩝. 암튼 윤리적인 관점이나 다른 피해인들에 대해 생각안하고 그냥 바라보았을때 제5공화국 재밌군요.^^ 본능에 충실하게 살아가는겁니다~!식욕 성욕 파괴욕구 등등.... 이성과 본성의 적절한 조화라......
05/05/15 23:13
현재 유일하게 보고 있는 드라마입니다.. 너무 재미있게 보고 있습죠..
그런데 현역 군인들에게는 이 드라마 시청을 절대금지 시켜야할듯 싶군요.. -_-;;
05/05/15 23:14
묵은장맛이 일품이라는 말처럼
각 배역을 맡은분들의 연기력은 진짜 내공이 장난이 아니네요. 역시 드라마는 이런맛이 있어야 보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05/05/15 23:21
진짜 재밌게 보고 있습니다 -_-b
아버지가 김오랑 소령의 죽음으로 인한 충격 때문에 부인이 실명하셨다고 말씀하시더군요. 그나저나, 장태완 장군 역을 맡으신 배우를 평소에도 워낙 좋아하는지라 보면서 웃음이 계속 나오네요. ^^;;;
05/05/15 23:21
얼어붙은 아들의 시신을 입김으로 혓바닥으로 녹이려 했던 장태완 전 소장
장태완 전 수도경비사령관이 전두환의 쿠테타세력을 진압하는데 실패한뒤 서울대 자연대 수석까지 한 아들이 어느날 갑자기 행방불명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아들은 한겨울 한강변에서 얼어붙은채 발견이 되었고 그 소식을 들은 장태완 전 소장은 그곳으로 달려가 아들의 시신을 부여잡고 입김으로 혓바닥으로 침으로 아들의 시신을 녹이려고 했다고 하더군요. 전두환의 쿠테타가 거의 성공할때쯤 다른 장성들이 모두 전두환의 쿠테타세력의 눈밖에 날까봐 몸을 웅크리고 있을때 자신의 휘하에 있던 백명의 부하를 이끌고 마지막 진압작전에 나섰던 유일한 장군이 장태완 소장이였습니다. 대한민국과 정의를 지키기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한 진정한 군인의 불우했던 과거사가 새삼 가슴을 아프게 하네요. ------------------------------------------------------------- 수도경비사령관 장태완 육군소장 [장태완씨] "선후배가 이렇게 만나다니…" 위로의 말 ### 부친사망-아들자살 대목선 울먹이기도 ###. [장태완전 수경사령관은 4일 열린 12.12와 5.18사건 19차 공판에 증인으로 출석, 특유의 탁음 섞인 목소리로 바로 뒤 피고인석에 앉은 당 시 신군부 인사들을 공격했다. 장씨는 특히 쿠데타의 와중에서 반대편에 선 군인으로서의 「고뇌」 를 털어놓기도 했고, 진압에 실패한 뒤 부친이 사망하고 아들이 자살했다 는 대목에서는 울먹이기도 했다. 장씨는 이날 공판에서 경복궁에 포격명령을 내렸으나 포병단장이 거부했느냐는 김상희 부장검사의 신문에 크고 빠른 목소리로 『육군 지휘 체계에서 상관명령에 어떻게 버르장머리 없이 거부합니까, 말도 안되는 소리죠』라고 대답, 조용하던 방청석을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장씨는 육본측과 신군부측 누가 반란군이라고 생각하느냐는 신문에 신군부가 반란군이라는 주장의 근거를 댔다. 장씨는 『사전에 모의를해 서 대통령의 재가 없이 참모총장을 연행했고, 지휘관들이 비상발령이 내 려진 상황에서 위수지역을 이탈했으며, 대통령을 강제 연금했으니 이게 반란이 아니고 뭡니까』라고 목소리를 높이다 재판장으로부터 주의를 받기 도 했다. 이어 김 검사가 『미친 사람처럼 날뛰며 병력을 지휘하는 바람에 대 통령이 2명 탄생했다는 말이 있는데, 맨정신으로 지휘했습니까』고 짖궂게 묻자 장씨는 갑자기 목소리를 낮췄다. 『5.16을 영관때 맞아 양쪽의 영욕이 갈라지는 것을 지켜봤는데 전 들 죽음이 두렵지 않겠습니까. 당시 저는 수경사령관의 책임이 목숨보 다 무거웠습니다. 생명을 걸고 책임을 수행하는데 미치지 않고서는 전 쟁을 하지 못합니다. 반란군이 볼 때 너무하니까 미쳤다고 한 것이지 저 는 냉철했습니다.』. 방청석도 미칠 수밖에 없었다는 말에 약간의 웃음소리가 새나왔을 뿐 조용해졌다. 장씨는 신문 말미에 김 검사가 『80년 2월 석방된 뒤 울분의 세월을 보내다가 부친이 사망하고 아들이 자살하는 등 불행한 일을 당했죠』라고 묻자 고개를 숙이고 울먹이는 듯한 작은 목소리로 『그런 일이 있었죠』라 고 대답했다. 마지막으로 김 검사는 「12.12사건에 대한 평가」를 주문 했다. 장씨는 고개를 숙이고 한참이나 말을 잊지 않았다. 어깨가 들썩 였다. 잠시 후 그는 가느다란 목소리로 『제가 신장이 안좋습니다. 미안 합니다』라는 말로 답변을 대신했다. 그리고 나서 그는 바로 뒤 피고인석에 앉아있는 전두환 노태우 씨등 에게 16년만에 처음으로 위로의 말을 건넸다. 『함께 30년간 군복을 입고 생활한 선후배 사이인데 이렇게 법정에 피고인과 증인으로 서게 돼 안타깝습니다. 그동안 위로의 말 한마디하 지 못해 죄송합니다.』 장씨의 증언이계속되는 동안 법대 위쪽만 응시하던 전씨와 노씨 등 피고인들도 이 대목에서 잠시 고개를 숙였다.] 장태완 장군! 그는 12.12 군사반란 당시 진압군측의 대표적인 지휘관이었다. 그러기에 12.12 군사반란자들의 산물이었던 5.6共시절은 그에게는 암흑기와도 같은 시절이었음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오직 그날의 일들을 역사앞에 증언하기 위하여 사내대장부로서 참아 죽지 못하고 살아왔던 것이니 그 누가 그의 고통을 알겠는가? 더욱이 그는 12.12 로 말미암아 자신의 평생과업이던 군복을 불명예스럽게 벗어야 했고 더 큰 시련을 당시 서울대를 다니고 있던 자신의 아들이 역적의 자식으로 낙인 찍히는 고통끝에 자살하고 부친은 장장군의 반란군에 의한 체포소식에 화병으로 숨을 거두었는 일이다. 이런 개인적인 아픔이 있기에 위의 한 신문 기사처럼 한때 군을 호령하던 2성장군도 눈시울을 붉힐 수 밖에 없었으리라 그는 12.12 당시 가장 소신을 가지고 진압작전에 임하였던 인물이었고 남들은 다 양측의 추이를 보아 가면서 자신의 몸을 보존하는 데에 급급하였지만 투철한 군인정신과 사명감으로 끝까지 자신이 맡은 임무에 충실하였고 그러려고 노력하였다. 반란이 성공이 거의 확실시 되자 모두들 자신의 안위만 보존하면 된다는 식의 체념을 했지만 마지막 남은 자신의 지휘하 수도경비사령부 병력100여명을 이끌고 목숨을 건 최후 진압작전을 감행하려 했던 그의 모습은 분명 자신의 안위보다는 국가의 헌정을 지키려는 참군인의 본연의 모습이었던 것이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았던 지난 15년이 넘는 세월동안 직업,가족,명예도 모두 잃어버린 역적의 인물로서 낙인찍혔던 그에게 오늘날의 12.12군사반란의 역사적 심판은 과연 조금이라도 위안이 될까? 개인적으로 깊이 머리 숙여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감사와 위로할 따름이다. 출처/이행호의 12.12군사반란
05/05/15 23:33
음;; 장태환;; 잘음 모르지만 멋진 분 같군요 ^^
오늘 쓰리스타 장군이랑 전두환장군이랑 모여서 짠다는 작전이 적에게 화의 하는 척하면서 친다는 부분에 좀 어이 없어서 피식했습니다. (그래도 쓰리스타인 분과 투스타 분들인데 그럴듯한 멋진 작전으로 이길줄 알았다는;;;)
05/05/15 23:47
흠..5공..요즘보면서 느끼는거지만..
스타들이 너무많이 나와요 -_-;;(조금 이질감도 느껴지더군요.) 대령급은 거의 쳐주지도 않으니...
05/05/16 00:03
keldorn// 그러게요..군생활하면서 스타라곤 몇번못봤는데..
중령이상 보기 힘들었는데요..ㅋ 중령(대대장)도 어쩌다 보는거말고는 5공화국보면 중령급은.. 명함내놓기도 힘들군요..
05/05/16 00:04
장태완 장군이 12.12 사태뒤 사석에서 이렇게 울분을 터트렸다고 합니다.
"나는 전두환 편보다는배신자들을 더 증오한다. 초저녁에는 장장군 파이팅! 이라면서 응원하던 장성들이 자정 무렵에는 몽땅 태도를 바꾸었다. 정병주, 김진기 이외에는 전부 배신했다. 부하들에게는 입버릇처럼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치라고 하던 친구들이 정작 위기가 오니 제 목숨 아까운 줄만 알더라"
05/05/16 00:05
네이버에서 퍼온 12.12 사태후 전두환 반대편에 섰던 장군들의 이후입니다.
12.12군사투데타 당시 정승화 총장 라인 사람들은 모두 잡혀가서 보안사령부의 서빙고 분실(지금은 없어짐)에서 조사를 받았는데 그중 정승화 총장은 인터뷰에서 고문을 당했다는 주장을 했습니다만은 당시 수사책임자였던 이학봉씨(당시 보안사 수사국장/계급은 중령)는 그런일은 절대 없었다고 강변하고 있지요ㅠㅠ 그리고 이들 대부분은 보안사 서빙고 분실에서 40여일 동안을 조사받고 풀려납니다. 물론 강제전역이 뒤따랐구요. 그중에서 정승화 총장만 재판을 받고 징역 7년을 최종 선고받아 복역을 했으며 2년지나 형집행 정지로 석방이 됩니다. 그리고 계급은 보충역 이등병으로 강등당하구요. 이때에 계급장이 강제로 떼인 사람들은 모두들 1987년 민주화 바람을 타고 복권됩니다. 그리고 당시 주역이자 피해자그룹이었던 사람들의 경우 특전사령관 정병주 장군은 1987년 12.12군사쿠데타의 진실을 밝히고자 노력했으나 훗날 노태우 정부의 미움을 사 결국 1989년 자살로 위장한 타살을 당하게 됩니다. 정승화 총장의 경우 2002년 지병으로 사망합니다. 장태완 수경사령관은 재향군인회장을 역임하시고, 16대 국회의원을 끝으로 정치계를 떠났구요 나머지 분들도 지금 대부분이 생존해계시나 일부만 제외하고는 힘든 삶을 유지하고 있지요ㅠㅠ 결국은 패장은 말이없다 인가요?ㅠㅠ ------------------------------------------------------------------------------------------
05/05/16 00:05
오늘 5공을 보다가 너무 답답하더군요.
어느 한 순간만 변했어도 이런 역사를 가지지않았을거라고 생각되기에.. 5공은 너무 답답하고 불멸의 이순신은 전쟁에서 이기니깐 좋고. 전 결국 보다가 KBS로 채널을 돌려버렸죠. 최세창이 사령관체포명령을 내릴때, 참 흥분했었다는..다 알고 있었는데도 말이죠.
05/05/16 00:08
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php?bknu=97098380&query=%C0%E5%C5%C2%BF%CF&cpname=booktopia&menu=sview&encrt=5Oj9Wa9QA1MTGEDZMCZwZ3NpemU9#middle_tab
장태완장군은 12.12이후로 아버지가 화병으로 죽고 아들은 물에 띄어들어 자살하지요. 자신이 믿는 정의를 지키려고 한 대가치고는 참 참혹하네요
05/05/16 00:24
1사단출신으로 전두환이 1사단장을 했었다는게 창피하네요.ㅋ
그리고 우리 1공수여단에 구부장님..ㅋ 심각한장면인데 신입사원때문인가요..그분보면 웃음이나더군요..
05/05/16 00:29
[한겨레21 2003-12-11 13:48:04]
하소곤(76) 전 육본작전참모부장은 지난 12월5일 기자와의 전화 통화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는 수경사령관실에서 장 사령관과 함께 반란군 진압대책을 논의하던 중 반란군의 발포로 왼쪽 폐를 관통당하는 중상을 입었다. 하씨는 그때의 상처로 지금도 가슴에 압박을 느끼는 등 후유증에 시달린다. .” 그는 12·12 이후 처참한 심정으로 세월을 보내다 은행협회 감사와 교통안전진흥공단 이사장을 지내는 등 잠시 공직 생활을 하기도 했다. 하씨에게 총을 쏜 한아무개 대위는 그 뒤 경찰 요직을 거치는 등 승승장구했다. 하씨는 12·12 쿠데타 가담자를 지금도 용서할 수 없다고 한다. “그들이 사법처리를 받긴 했지만, 아직 진정으로 반성하진 않았어요. 그런 사람들을 어떻게 용서할 수 있나.” 반란군의 표적이 됐던 정승화 당시 육군참모총장은 지난해 6월 노환으로 한 많은 인생을 마감했다. 정씨는 신군부 세력에 의해 내란기도 방조 혐의로 체포돼 이등병으로 강등된 뒤 징역형을 받는 등 하극상의 고초를 겪었다. 정씨는 12·12 재판 때 법정에서 “당시 군 후배들에게 겪은 고초는 내 일생 최대의 치욕이었다”며 분노를 감추지 않았다. . 정 사령관과 함께 반란군에 저항했던 김오랑 특전사령관 비서실장은 당시 총격을 받고 사망했다. 김 소령의 부인 백영옥씨는 6공화국 말기에 남편의 명예회복을 위해 소송을 준비하다 남편과 사별한 지 12년 뒤인 1991년 6월 스스로 목숨을 끊어 주위를 안타깝게 했다.
05/05/16 00:44
전두환의 1공수-1사단 라인을 만들고 노태우는 9공수-9사단라인을 만들었단 말이있죠.. 당시 9사단 참모장이 구x회 대령인가요? 그덕택인지 나중에 대장까지 진급하게 되죠.... 12.12에 가담한 사람치고 장군 안달고 나간 사람 없으며, 나가서는 국회의원이나 안기부 간부...군에 남으면 왠만해서 군단장에 대장까지는 지내보고 전역하게 됩니다. 끌끌..
05/05/16 00:59
안타까운건 지금도 그 역도들은 승승장구 하고 있죠...
장세동이 국회의원 출마해서 유세하는 거 보면 가관입니다. 과거의 안정된 삶을 다시 만들겠다나?? 다음에 펼쳐질 5.18 사건을 보면..또 피가 끓을 듯 한데~~
05/05/16 08:22
박희도, 최세창도 전부 육참총장 역임 후 육군대장으로 전역합니다.
그런데 장태완 장군이 82년엔가 한국증권전산 사장으로 임명되어 89년엔 회장이 된다는 건 사실인가요? (설령 그렇다하더라도 이걸 가지고는 당연히 뭐라고 하면 안되겠지만.. 백이숙제처럼 살 수야 없잖습니까) 1212.. 어제도 수경사 전차부대가 김진영의 설득에 차를 돌리고 정병주 장군께서 최세창을 보낼 때(여기서 나가면 적이라고 말하는데도.. 사태파악을 전혀 못하셨는 듯-_-;;) 최후의 병력인 9공수마저도 나중엔 사령관 지시도 없이 독자 협상하다 기습당할지도 모르겠는데.. 저러니.. -_-; 그저 장렬히 전사한 김오랑 소령만 불쌍할 뿐입니다. ㅠ_ㅠ
05/05/16 16:04
제 5공화국 보면볼수록 우리나라가 저렇게 소홀한 국가였나하는 생각이
들면서 시내에서 총소리가 나도 아무도 몰랐다는게 허무할 따름입니다
06/04/24 15:54
장태완 옹은 12.12의 전말을 후일에 밝히기 위해서 그 어떤 수모도 감수하면서 살아남았다는군요. 한국증권전산 사장자리 맡은게 바로 그걸 얘기하는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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