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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05/03/18 01:04:28
Name Timeless
Subject [소설]본격 로맨스 '미 소 천 사' #8
제 8 화


“퇴근합시다.”


과장님의 한 마디로 우리 부서는 그렇게 하루 일과가 끝난다.

시간은 저녁 6시 30분. 서두르지 않으면 임소희씨와의 7시 약속에 늦을 것 같았다.

그래도 먼저 나가는 것은 아무래도 눈치가 보여서 과장님이 나가신 후 조용히 뒤따라 나와 뛰기 시작했다.

시간이란 녀석은 바쁠 때 항상 그렇다. 아무리 열심히 뛰어도 눈 앞에서 지하철을 놓친다거나, 지하철이 다음 지하철과의 간격 조정으로 멈추어있다던가. 마음은 벌써 약속 장소에 가있는데 몸은 아직도 여기에 있으니 답답하다.

헐레벌떡 영등포 역 개찰구를 막 통과하는데 저만치서 손을 흔드는 그녀가 보였다. 얼마나 기다린 것일까.. 시계를 보니 7시가 조금 넘어있었다. 두 번째 만남인데 지각을 하다니.. 미안함에 나도 모르게 약간 움츠려 걸어갔다.

그런 나를 본 그녀가 손목 시계를 만지작 거리는 모습이 보였다.  

그녀 앞에 선 나는 먼저 사과를 했다.


미안해요. 일이 조금 늦어져서..


“뭐가 미안해요? 내 시계는 아직 7시 전이에요.”


아.. 뻔히 시계를 돌린 것을 아는데.. 그런 그녀가 고맙고도 너무 예쁘다.


“사실 지난 번 가방 잃어버린 것은 정후씨에게 잘 된 일인지도 몰라요. 봐요. 그 덕분에 나랑 이렇게 데이트하게 됐잖아요. 좋죠?”


데이트라.. 그녀는 나를 들뜨게 만든다. 하하 웃으면서 그녀를 바라보았다.


“아~ 내 시계는 아직 7시 전이지만 백화점 시계는 그렇지가 않아요. 빨리 가요 우리~”


그녀는 나를 이끌고 그녀가 근무하는 로또 백화점으로 갔다. 그녀는 이 가방, 저 가방 나에게 권하면서 어때요? 어때요? 를 연발했다. 사실 가방이 나에게 있어 그다지 특별한 소품은 아니기에 나는 그냥 아무 가방이면 됐다. 하지만 그녀의 성의도 있고 해서 유심히 가방들을 살펴보았다. 그러다가 마음에 드는 가방 하나를 발견하고 집었다.


그녀는 그 큰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바라보았다. 내가 무엇인가 잘 못한 것일까?


“정후씨.. 의외로 센스 있네요~ 가방 예쁘다~”


내가 계산하는 동안 그녀가 가방을 만지작거린다. 점원이


“저희 가방은 품질 좋습니다 손님. 그렇게 열심히 안보셔도 되요”


하고 말해도 그녀는 생긋 웃어보이며 가방을 열었다 닫았다 한다.


가방을 사고 백화점을 나오면서 그녀는 오늘 있었던 이야기를 해준다.

특별할 것 없는 일상적인 이야기였지만 그녀의 입에서 나오자 왠지 특별하게 들린다.

점심으로 무엇을 먹을까 했는데, 근처 횟집 옆 간판이 ‘무역 회사’라서 회를 먹었다고 한다. 무슨 말일까 곰곰이 생각해보았더니 결국 '회''사'가 포인트였다. 어이 없었지만 한 편으로 너무 귀여웠다. 그녀가 나보다 어리지도 않은데도 너무나 귀엽게 느껴졌다.


“아~ 누구 가방 사는 것 도와주느라 돌아다녔더니 배가 고프다아~”


내가 웃으면서 무엇이 먹고 싶냐고 물었다. 그녀는 열심히 고민하는 척을 하다가 돈까스를 외쳤다. 이미 배고프다고 얘기 하기 전부터 우리 앞의 돈까스 레스토랑 간판을 유심히 들여다 보고 있던 그녀였다.


분위기가 괜찮은 집이었다. 주문을 하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했다.


“그러니까.. 정후씨는 몇 살이에요?”


그러고 보니 우리는 서로에 대해 이름 외에는 별로 아는 것이 없었다. 지하철에서 우연히 몇 번 보고, 따로 만난 것은 두 번째. 사실 아직 어색해야 할 사이인데 전혀 그렇지 않아서 내가 그녀에 대해 많이 알고 있는 것 같이 느껴졌었나 보다.


올해 27살이요. 78년 말띠에요.


“우와~ 나랑 나이는 같은데 말하는 것은 아저씨 같네요. 78년 말띠라니~ 아저씨 같은 말투! 요즘은 그냥 78년생이에요. 라고 말하면 되요.”


아저씨라..

보통은 이런 말 들으면 당신도 만만치 않아요 하고 되받아 쳐야 하지만 그녀를 보고 그럴 수는 없었다.

어려 보이는 것은 아니지만 아무리 봐도 나이 든 사람에게서 느껴지는 그런 세속의 떼라든가 그런 것은 조금도 느낄수가 않았다.

물론 우리가 나이가 아주 많다는 것은 아니지만 내 주위 사람들은 이미 어느 정도는 세상에 찌들어 있다고 할까..

하지만 그녀는 달랐다.


“부모님이랑 같이 살아요?”


아니요. 어렸을 때 돌아가셨어요. 두분 다 사고로.


이 이야기를 말해주면 그녀가 당황할 것 같았지만 나는 그저 사실을 말하는 것이라 어쩔 수가 없다. 뭐 자주 있는 일이라 나는 이 이야기를 하는 것이 괜찮았지만 당황해 할 그녀 얼굴을 보기가 조금 미안했다..

하지만 그녀는 달랐다.


“우와~ 천국에 계신 부모님이 좋아하시겠어요. 많이 못 돌봐주셨는데 아드님이 이렇게 잘 자랐으니까요.”


제가 잘 큰 것 같아요?


“왜요? 정후씨 봤을 때 뉘 집 자식인지 모르지만 참 잘 생겼다고 생각했는데 그럼 그것이 나만의 착각인가요?”


‘착각이에요’ 라고 말하기에는 내 자신한테 미안해서 말하지는 못하고, 그냥 웃어넘기려 그녀에게도 말해주었다.


소희씨도 참 예뻐요.


하필 그 때 내 뒤에 종업원이 음식을 가지고 와 있었다. 그리고 그 종업원은 웃으면서,


“돈까스는 예쁘신 분 것이죠?”


하고 나를 확인 사살했다. 아아.. 꼭 타이밍이 이렇다. 나는 나름대로의 재치로 얼버무려보았다.


히레까스는 여기 잘 큰 저에게 주세요


분위기가 일순 숙연해진다.

분명히 그녀가 나에게 말해준 '잘 컸다는 말'은 종업원은 못들었을텐데.. 내가 왜 그랬을까. 종업원은 과연 내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어색한 표정으로 내 쪽에 히레까스를 가져다 주고는 촘촘히 테이블을 떠났다.


벙진 표정의 나를 두고 그녀는 자지러졌다. 그녀를 바라보기 민망해서 괜히 시선을 돌려보았다.

주위를 둘러보니 왠지 옆 테이블에 눈길이 갔다. 두 남녀가 식사를 하고 있었다. 음.. 어디서 많이 본 듯한 두 사람인데.. 어디서 봤더라..


“그년 이제 감방 갔으니까 마음이 조금 놓인다. 그렇게 독한 것은 처음이야. 걔 만날 때는 나도 나름대로 진심이었다고. 자기도 알잖아. 나 진지할 땐 진지한거”


“응. 우리 자기야가 나 만나서 나한테 반한 것은 당연한 거였어. 그런 거머리같이 착 달라붙는 애는 내가 남자라도 절대 싫겠다. 걔 때문에 많이 피곤했지?”


“나를 위해서는 죽을 수도 있데나? 나참.. 질려서.. 남녀간에 사랑하다 헤어질 수도 있는 것 아니야. 뭐 장래를 약속했어도 결혼 한 것도 아니고 헤어지는 거야 흔히 있는 일인데 말이지. 뭐~ 돈 줄이 끊긴 것은 조금 아쉽다. 계속 걔한테 돈 받아서 우리 자기랑 신나게 놀았어야 하는데. 하하”


나는 속이 부글 부글 끓는 것을 느꼈다. 분명히.. 분명히.. 그 때 백화점에서 나뒹굴었던 그 남녀다. 이야기를 듣자니 가슴이 답답하고 열이 나는 것 같았다.


“정후씨~ 이정후씨~ 여보세요~”


앞을 바라보자 그녀가 나를 연신 손짓하며 부르고 있었다. 약간은 멋쩍은 표정을 짓는 나한테 그녀가 조용히 속삭였다.


“정후씨 아는 사림들이에요? 이야기 듣자니 별로 안 좋은 사람들 같은데”


나는 고개를 절래 절래 흔들었다. 괜히 그녀와의 즐거운 기분을 완전히 망치긴 싫었기 때문이다. 내가 음식을 먹자 그녀도 따라 먹었다. 그런데 먹으면서도 그녀가 자꾸 내 눈치를 봤다.


왜 그래요?


“정후씨 무서워요. 나한테 그런 표정 짓는 것 아니죠?”


아.. 내 표정이 그랬나.. 그녀에게 미안했다. 그녀의 안절부절 하는 모습에 미안하기도 했지만 측은하기도 하고, 평소 당찬 모습과는 달리 쩔쩔매는 것이 조금은 재미도 있어서 미소가 지어졌다.


“아~ 이제야 웃네요~ 무서워서 죽을 뻔 했어요.”


미안해요. 우리 다시 맛있게 먹어요.


그렇게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며 먹고 있는데 또 다시 옆 테이블의 이야기가 내 귀를 파고 들었다.


“근데 걔도 참 또라이 같아. 한 여름에 왠 흰 코트? 정신 나간 얘 아니야? 자기는 왜 그런 얘랑 사귀었어?”


“그러게 말이야. 그것 말고도 걔 정신 나간 짓은 수도 없었어. 내가 이제 헤어지자고 하고 안 만나주니까 회사도 떼려 치고 우리 집 앞에서 3일간 움직이지도 않더라. 동네 주민 들한테 얼마나 창피했는지..”


“걔가 감방에서 나와서 또 보복하면 어떻게 하지?”


“괜찮아. 그럼 또 집어 넣어버리지. 정신 나간 것이 우리 진술에 아무 토도 안 달잖아. 다음에 또 그러면 이번엔 엄청 오래 살아야 될 거야. 천소영이. 성도 천 씨겠다 한 천 년 살아버려라.”


‘퍽!’


백화점에서의 그녀가 들려주었던 소리와 같은 소리가 났다. 맞는 사람이 같아서 같은 소리가 나는 것일까. 그가 내 앞에 나뒹굴었다. 나는 쓰러진 그를 향해 달려들어서 마구 쳤다.


‘퍽, 퍽, 퍽’


주위의 소리는 하나도 들리지 않았다. 얼마나 쳤을까 누군가 뒤에서 나를 와락 껴안았다. 내가 떨쳐 내려고 몸부림을 치자 그 사람은 튕겨져나가 쓰러졌다. 뒤 돌아 보니 그녀였다.

아..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지..


평온했던 레스토랑에는 한 남자가 정신을 잃고 쓰러져 있고,

또다른 남자가 멍하니 주저 않은 채 저만치 쓰러져있는 여자를 바라 보고 있었다.


- 제 8 화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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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3/18 01:12
수정 아이콘
소희 양은 제가 좋아하는 스타일이로군요^^;; 글 재밌게 잘 보고 있습니다~
아케미
05/03/18 07:44
수정 아이콘
이거 어떻게 된 겁니까T_T 다음 편 얼른 올려주세요. 주인공도 끌려갈까 두렵네요;;
jjangbono
05/03/18 21:14
수정 아이콘
아 점점 재밌어지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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