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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05/02/21 19:20:46
Name 베르커드
Subject 필름은 디지털의 유년기인가?

불과 3-4년 전만 해도 TV에서 필름 광고를 쉽사리 볼 수 있었습니다. '소중한 순간에 코닥이 함께합니다' '자동 카메라엔 오토오토' '인물사진엔 코니카' 등등의 문구가 떠오르네요.

사람들은 필름이란 매체를 발견하고, 이로 사진과 영화라는 두개의 예술을 만들어냈습니다. 당초에 사진은 화가들의 그림을 돕기위한 도구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어느샌가 '현실의 기록'으로서 그림을 초월하는 공신력과 영향력을 가지게 되어 이 자리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디지털이 태어났습니다. 현상, 인화가 필요없이 찍은 자리에서 보고, 지울 수 있는 '돈이 들지 않는 무한한' 사진기가 나오자 '찍어서 현상을 맡기고, 인화를 하는과정에서 돈이 계속 들어가는' 필름은 점차 쇠퇴합니다.

그래도 고집스런 사람들은 '디지털은 필름을 이길 수 없다' 고 주장했습니다. 그 이유를 '색감, 질감, 화질' 등으로 꼽았습니다. 저 명제는 4년전까진 맞았습니다.
하지만 현재 디지털 카메라의 화질은 일반 35mm카메라의 그것을 충분히 능가하며, 결혼식에서나 볼 만한 중형카메라의 화질을 이미 넘어서기 시작했습니다. 색감이나 질감 따위는 포토샵을 통해 얼마든지 수정할 수 있습니다.그리고 필름의 사양길에 결정적으로 기여를 한 것은 언론이었습니다.
이라크의 전쟁상황을 필름으로 찍어서, 인화해서, 택배로 부쳐서 그걸 받아 인화하고 보도하면 너무 늦습니다.
인터넷만 있으면 찍어서 연결해서 바로 메일로 부치면 끝. '신속정확'이 생명인 보도사진에 이보다 더 좋은 매체는 없는거죠. 언론사들은 필름 카메라와 암실을 없애고, 디지털 카메라와 메모리카드, 노트북을 기자에게 지급합니다. 그렇게 D-SLR이 모든 카메라의 정점에 서게 되었고, 필름SLR은 거의 명맥이 끊어졌습니다.

니콘이 그동안 8년의 '약속'을 가지고 고집스럽게 만들어왔던 F시리즈, 작년 10월 22일에 그 최신 모델인 F6가 발매되었습니다. F6의 개발때문에 니콘이라는 회사가 기울뻔했다니, 어지간한 고집이 아니면 못만들 모델이었지요. 안타깝게도 F6를 마지막으로 Film의 F이기도 한 F시리즈는 마지막이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합니다.

저는 디지털이 필름을 잠식하는 걸 원하지 않는 사람들 중의 하나입니다.
사진이 그림과 함께 살아왔던 것처럼, 비디오나 TV가 영화와 필름과 동시에 살아왔던 것처럼, 필름과 디지털도 그렇게 되길 원했습니다. 하지만 세상은 저같이 고집스러운 사람을 두고 가네요.
물론 여기에 올렸던 사진들도 결국은 필름을 디지털 데이터로 변환한 것입니다. 요새 카메라들을 보면 제 사진의 화질따윈 눈에 들어오지도 않을겁니다.
그래도 전 아직 필름이 좋습니다.

결국 자기만족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저는 사진을 찍고, 필름을 넘기는 순간의 기다림과 기대심이 좋습니다. 이 사진이 나왔을 때, 과연 어떤 모습일까? 하는 기대감, 그리고 자신의 손으로 비추어 낸(寫) 하나의 진실(眞). 어쩌면 이러한 감정 자체가 디지털에 길들여져 버린 감성이 자아내는 향수일지도 모릅니다만.

현대과학이 발전한 이후, 사람들은 스스로의 삶을 더 편하게 하기 위해 노력에 노력을 경주했습니다. 하지만 빠르게 많은 일을 처리할 수 있게 되었는데, 사람은 전혀 여유로와지지 않았습니다. 이전에 처리해왔던 일보다 훨씬 더 무겁고 많은 일들을 떠맡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사람들은 '기다림의 미학'을 잃어버렸습니다.

필름과 디지털에도 같은 이야기를 할 수 있지 않을까요? 확실히 디지털은 사진을 쉽게 해줬습니다. 하지만 쉽게 해준 탓에, 사람들은 결과물을 기다리는 여유와, 결과물에 쏟는 정성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래서 결국 사진의 가치는 떨어지기 시작하고, 이미지의 범람이 시작됩니다.

이것이 사진의 발전인가하고 생각하면 전 의문을 품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사진을 찍는 사람에게 요구되는 가장 최소한의 노력마저도 디지털이 빼앗아가버린 것이 아닐까 하고 아쉽습니다.

그래서 전 더더욱 필름을 사랑합니다. 셔터를 누르는 순간의 기대감을 충실히 느끼기 위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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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연
05/02/21 19:29
수정 아이콘
디카가 대세가 되고 있는 요즘, 오히려 아마츄어 애호가들 사이에서는 거꾸로 필카 애호가가 늘고 있더라구요. 제가 활동하는 모 디카 브랜드 동호회의 자유게시판 글중 상당수가 필카에 대한 이야기이고, 디카로 시작해 거꾸로 디카를 팔고 필카로 넘어가는 분들 보면 필름의 느낌이라는 매력이 대단한거 같습니다.
05/02/21 19:45
수정 아이콘
lp에서 cd로 넘어갈때도 cd는 음이 기계적이고 너무 차갑다는 말을 많이 들었죠.
결국 lp는 대세를 이기지 못하고 없어졌습니다.
이제는 그 cd도 mp3에 길을 내줄 날이 머지 않았죠. 이미 내주었나요?

필름도 아쉽지만 같은 길을 걷지 않을까 싶습니다..
한번 찍으면 절대 돌이킬수 없기에 김치 치즈를 죽어라고 외치며
잘 웃어지지도 않는 얼굴로 매번 같은 표정을 지었던 예전 일들 생각하면
오히려 그리워 지기까지 합니다.
이미 추억이 된거라고 말하기엔 저도 아쉬움이 많이 남네요 ^^;
아케미
05/02/21 20:48
수정 아이콘
그래도 아직 아날로그는 살아 있으니까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로미..
05/02/21 21:26
수정 아이콘
현재 니콘F3hp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수많은 디카를 사용했었지만..모두 情이 안붙더군요..
편리함과 함께 수많은 장점이 있긴하지만..
8년간 사용하고 있는..F3hp(+필름)에서 느끼는 '무언가'가 없더군요..

대세가 디카라는것은 이젠 당연하게 느끼지고 있어서..아쉽기도 하지만..^^어쩔수 없겠죠..
다만..F7..F8..계속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ps->이번에 포트라160vc를 5롤 구해서 지금 무척이나 기분이 좋습니
다..^^
유신영
05/02/21 21:54
수정 아이콘
메이저는 모르지만 매니아는 다릅니다.

천만원 단위 넘어간다면 대부분 LP나 LP 플레이어..

CD나 MP3는 정말.. 돈 없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죠..

시간이 지나면 아마.. 필름이 그 위치에 있지 않을까요..

많은 사람들과 함께 있지는 않겠지만..
안전제일
05/02/21 22:04
수정 아이콘
요새는 사진자체를 많이 찍지 않지만.(그저 가난이 죄죠..--;;)
한컷을 담기 위해 무언가 고민해야 하는 필름카메라에 대한 애정이 사그라들지는 않더군요.
디카는 편하지만..글쎄요..한컷에 대한 애정..피사체를 담을때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하나..를 고민하는 순간을 즐기는것도 무시할수 없는 큰 메리트예요.
늘 마음만 있어서, 먼지만 쌓여가고 있는 제 EOS가 불쌍하네요..으하하하-
베르커드
05/02/21 22:22
수정 아이콘
안전제일님//
2년을 묻어놓고 살던 제 야시카 FX-7을 어느날 밤에 꺼낸 순간, 눈물이 주루륵 흐르더군요. 꺼내보세요! 좋을 겁니다...
05/02/21 22:57
수정 아이콘
하지만 쉽사리 기억하고 싶은 추억을 빨리 담아 둘 수 있다는 점에서는 때론 유용한 듯도 싶네요.
잘 찍은 건 아니지만, 어느 순간 지금의 내 추억을 담아 두고자 할 때는 쉽게 되기도 하잖아요.^^

하지만 빠르게 일을 처리할 수 있는 세상이 왔음에도 전혀 사람들은 여유로워지지 않았다는 말에는 동감합니다.
그만큼 처리해야 할 일이 많아지고, 그 다음 단계인 것으로 넘어가야 하니까요.
그럴 때는 참 아쉽더군요.

가끔 모든 거 훌훌 던지고 노트 하나 펜 하나만을 들고 인터넷도 안 되고 텔레비전도 안 나오는 곳으로 여행을 가고 싶단 생각을 합니다.
눈으로 보고 손으로 기억하고, 그렇게 내 인생을 편안하게 느끼고 싶다고나 할까요?^^
edelweis_s
05/02/21 23:12
수정 아이콘
전문적으로 사진 쪽으로 일하시는 분들은 디카보다 필름카메라 많이 쓴다고 그러던데... 저희 친척 누나가 사진과(?) 나왔거든요. 지금도 관련직종에 계시구요.
차이코프스키
05/02/22 02:38
수정 아이콘
디지털시대에 아직 턴테이블로 음악을 감상하는 사람 여기에 있습니다.ㅠ.ㅠ
05/02/22 03:03
수정 아이콘
좋은 화제가 올라온 것 같네요. 디지털카메라와 필름 카메라는 공존할수있다고 봅니다. 디카와 필카의 차이는 LP와 CD와는 완연히 다른 것이기 때문이기도 하죠. 일단 똑딱이카메라라고 불리는 완전자동필름카메라는 이미 몇몇 럭셔리 똑딱이(TC1/GR1V/T3/Minilux등)를 제외하고는 컴펙트 디카에 완전히 밀려서 전멸하다시피 했지만, 그 컴펙트 디카도 이제는 폰카에 밀리는 추세죠. 휴대성/즉시성에서 이미 필카는 그 의미를 잃었다고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하지만, 필름이 없어지지는 않을겁니다. 왜냐면 사진은 '기록'의 의미만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표현'의 의미도 가지기 때문이죠.
인간은 기본적으로 친 아날로그적 감성을 가진다고 하는데, 실제로도 디카의 쨍하고 약간 물빠진듯한 색감과 지나치게 강조된 샤프니스, 단조로운 그라데이션의 사진과 필름의 풍부하고 부드러운 사진을 비교해놓고 볼시에는 필름사진이 좋다고 느끼는 분이 대부분일겁니다.
아마도 '작품사진'등에서는 필름이 우선할 것이며, 기록사진과 상업적인 용도(웨딩/프레스/패션/다큐)에서는 디카가 우선될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컬러 TV가 나온뒤에 흑백TV는 전멸했지만, 컬러 필름이 나온뒤 흑백필름은 남아있습니다. 다게레오 타이프가 처음 발명됐을때 드가는 '이제 회화는 죽었다' 라고 말했지만 회화도 여전히 남아있지요.
사진이 파인아트에 편입된 현재로서 필름사진의 매력은 디카로 사진을 찍는 분들에게도 영향을 줘서 디카로 시작한뒤 필카를 잡는 분들도 많아지고있습니다. 다만... 요즘은 후지가 필름값을 올려서 화나네요-.-;;;
난워크하는데-_
05/02/22 09:39
수정 아이콘
음.. 오히려 사진 매니아분들은 디카를 필카로가는 입문단계 정도로 여기고 있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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