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 경험기, 프리뷰, 리뷰, 기록 분석, 패치 노트 등을 올리실 수 있습니다.
Date 2005/01/23 14:06:45
Name 세이시로
Subject 후기 - "황제는 죽지 않는다, 다만 사라질 뿐이다"
많은 임요환 선수의 팬들이 그렇겠지만 필자 역시 임요환 선수의 오랜 광팬 중 한명으로서 영광의 순간에는 희열과 기쁨을, 좌절의 순간에는 비통함과 아쉬움을 느껴왔고, 한숨과 탄식을 지르면서 지켜본 지난 금요일의 경기는 SlayerS_'BoxeR'라는 이 남자에게 또 한번 큰 애증을 갖게 된 손에 꼽을 만한 날이었다.


황제와 함께한 좌절과 애증의 역사

전성기의 임요환 선수가 처음으로 결승에서 패했던 SKY2001배. 비록 인큐버스 맵사건을 비롯해 여러 아쉬운 일이 많았지만 무적의 선수가 한번쯤 질 수도 있다는 생각에 김동수라는 프로토스의 거목이 찬사를 받는 것에 같이 박수를 보내줬었다. 그 뒤 NATE배 때 임요환 선수가 16강 3패로 마감하긴 했지만 변길섭, 이재훈, 나경보라는 뜰수있는 선수들에게 나름대로 분전을 펼친 뒤에 패한 것이라 아직은 재충전을 위한 때라고 여겼다.

2002SKY배. 드디어 황제가 잠시 움츠리던 날개를 펼치는 듯 했다. 초유의 전승 결승 진출. 홍진호를 상대로 최고의 경기를 보여준 박정석이 상대라도 이제 그 누구도 황제를 막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결과는 달랐다. 3:1의 압도적인 패배. 리치의 무당스톰에 전율을 느끼면서도 황제의 '바카닉'이란 고집에 안타까워했고, 나 자신과도 같았던 그의 패배에 좌절감을 쓰라리게 맛봐야 했다.

올림푸스배가 시작되었다. 황제는 자신만만했고, 실제로 그것을 보여줬다. 죽음의 조에서 극적인 탈출, 극강저그들을 잡으며 4강진출. 결승 경우의 수를 이리저리 생각하긴 했지만 이제 남은 것은 황제의 우승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무척이나 기대를 하며 4강전을 보기 위해 앉았다. ...한시간 반 동안 멍해질수밖에 없었다. 결승 패배에서도 느끼지 못했던 충격이 뒤통수를 때리며 눈에 들어온 것은 그의 지친 듯한 표정. 처음으로 스타를 본 후 알코올을 들이킨 날이었다.

마이큐브와 한게임배가 별 소득 없이 지나고 다시 찾아온 작년 4월 1일의 듀얼. 상대는 전상욱 선수였다. 한게임배 16강에서 탈락했기 때문에 실로 오랫만에 모습을 보인 황제는 물량전으로 여유있게 전상욱 선수를 압도했다. 안도했다. 다음 경기의 상대가 박정석 선수고, 맵이 기요틴이었지만 그래도 뭔가 믿음이 있었다. 초반에 마린 벌처로 찔렀으나 막힌 뒤에는 전형적인 '지는 수순'이었다. ...약간씩 생기던 불안감은 기요틴 박성준:전상욱을 보면서 커져갔다. "다음 상대로는 전상욱이 좋아."라는 떨리는 중얼거림에도 불구하고 마침내 시작된 남자이야기-하필이면 한게임 재경기 때의-에서의 경기. 치열한 컨트롤 싸움이 계속됐지만 이상하게 저글링에 마린메딕을 자꾸 잃는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곤 갑자기 러커에 전멸한 병력. 물밀듯이 앞마당으로 난입하는 저글링-러커. 본진 배럭 옆에까지 버로우 하는 러커. 계속 쏟아져들어오는 박성준 선수의 병력과 꼐속 죽어가는 임요환 선수의 부대들...GG. 머릿속이 새하얘지고 다리가 풀렸다. 문득 정신을 차리고 따라간 주차장에서 그 남자는 말을 잇지 못했다. 눈시울이 뜨거워지며 뭔가 외치고 싶은 것이 목구멍까지 차올랐다.
"황제는 살아있다!"


IOPS 스타리그 16강 B조 6경기 신정민(Z3):임요환(T7)

시작은 좋았다. 입구를 막고 시작한 임요환 선수에 비해 9드론으로 출발한 신정민 선수. 먼길을 돌아오는 저글링 6기를 보면서 그 쪽 입구에 건설중인 팩토리가 과연 막히는 걸까 하는 두려움이 계속 있었지만 다행히도 팩토리는 입구를 안전하게 막았다. 이후 나오는 벌처와 레이스로 저그를 흔들때 환호성을 질렀지만 한편에서는 이게 지금 피해를 주고 있는건가 하는 의문도 있었다.

저그는 뮤탈 이후 뒷마당에 두번째 확장. 테란은 레이스-발키리를 양산하며 뒷마당 커맨드. 하지만 발키리를 빨리 확인한 저그는 히드라로 체제를 바꾸며, 늦은 감이 있었지만 테란도 멀티 활성화 이후 배럭을 4~5개로 늘리며 힘싸움 준비를 시작했다. 비록 뮤탈이 레이스-발키리에 많은 피해를 입었지만 저그의 확장과 테크가 높은 수준이라고 느낀 순간, 임요환 선수는 지금껏 모은 병력을 드랍쉽 6기에 태워 공중군과 함께 저그의 진지로 출동했고 그것은 비등비등해 보이던 양상을 단번에 끝낼 것으로 보였다.

허나 그것이 이 경기의 결정적인 패착이 될 줄 누가 알았으랴. 공중군을 앞세우긴 했으나 내리는 것을 몇번 어물쩡하게 주춤하던 드랍쉽 6기 중 무려 3기에 히드라에 터져버리고 말았고 당혹감이 밀려왔다. 어느덧 본진에 총집결한 저그의 무시무시한 물량의 군대에 비해 무려 드랍쉽 3대 분량이 공중에서 폭발해버린 테란의 병력은 많지가 않았다. 결정적인 쌈싸먹기. 저그가 압승을 거두는 것은 당연했다.

여기에서 추가되던 드랍쉽 2대가 또다시 격추됨으로서 경기의 명운은 기울고 말았다. 테란의 커맨드센터가 늘어갔으나 계속되는 러커 견제, 본진 드랍, 멀티 드랍에 황제는 흔들리고 있었다. 10시 쪽에서 울트라 러커 부대를 기적적으로 막아내고, 5시의 다리에서 메딕 바리케이트로 울트라를 막는 끈질김은 보여줬으나 디파일러까지 충전해 쇄도해오는 저그의 물량을 막지 못한 임요환 선수는 본진까지 밀리며 gg를 치고 말았다.


황제는 죽지 않는다, 다만 사라질 뿐이다

비단 필자 뿐만이 아니라 다수의 임팬들이 할말을 잃었을 것이다. 저번 시즌 화려한 부활 끝에 준우승이라는 아쉬운 마침표를 찍었지만 이번 리그는 확실히 잘할수 있다는 믿음, 상대는 탈락이 확정된 상태, 신규맵, 온게임넷 대저그 성적 34승 12패. 왜, 왜, 왜 진 거냐고. 힘들어하는 그에게 차마 소리 높이지는 못하고.

필자는 갑자기 그때가 떠올랐다. 파나소닉배 16강, 임요환과 이운재가 2승1패를 한 상황, 탈락한 장진남 선수를 상대로 유일한 프로토스 8강 진출의 희망과 가림토의 영광을 되살려 보려 했던 김동수 선수의 아방가르드2에서의 경기. 많은 사람들이 가림토를 응원했고 김동수 선수가 유리했던 상황도 있었지만 결국 장진남 선수의 울트라에 가림토는 패배하고 은퇴를 선언하고 말았었다.

황제는 아직 끝이 아닐 거라고 믿는다. 죽지도 않았고, 사라질 때도 멀 거라고 확신한다. 하지만 그 어느 때와도 달리, 이런 아프고도 미묘한 애증을 불러일으키는 패배를 맛본 우리들 황제의 지지자들은 점차 희미해져가는 황제를 보며 씁쓸한 느낌을 거둘 수가 없는 것이다.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정정정
05/01/23 14:30
수정 아이콘
확실히 임요환한테는 메카닉에 문제가 있는듯해보임 쭉가다가 전부 시즈 땅 박아버리니.........OTL
여름하늘_
05/01/23 14:33
수정 아이콘
네, 황제는 아직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T_T
꽤나 오랜만에 엠겜 메이저에도 진출했고.. 그리고 다음 OSL시즌에선 더 잘할 수 있으리라 믿어야죠..!
다른사람들이 이제 그는 아니다, 끝났다라면서 은퇴와 차기황제를 논했을 때에도
그는 계속해서 뭔가를 보여주려 노력했고 힘든 길이긴 했지만 지금 이시점까지 왔어요.
더 희미해지지도 사라지지도 않을겁니다! 박서 화이팅!
05/01/23 14:39
수정 아이콘
박서의 한 경기 한 경기가 언제나 이렇게 회자되는 것을 보고 있으면 아직 박서는 건재하구나..라고 느낄뿐입니다. ^^
아직..박서가 우리에게 기쁨을 선사해 줄 시간은 남았다구요..이기든, 지든 말입니다. 물론 이기면 더할 나위없는 기쁨이지만, 그냥..박서의 경기를 볼 수 있다는 것에 만족하고..감사할 뿐이죠. ^^
박서 화이팅입니다. 지대로 충전하시고..차기 듀얼에서 뵙겠습니다. (앗..엠겜은 아직 남았군요....^^)
뉴[SuhmT]
05/01/23 14:57
수정 아이콘
잘할겁니다. 박서 파이팅!
료코/Ryoko
05/01/23 15:48
수정 아이콘
저도 박서의팬이지만.. 박서의 경기를 보고있으면
갸우뚱~? 할때가 어려번이지만
저는 그의 스타일을 믿거든요 !
잭윤빠~
05/01/23 17:08
수정 아이콘
오랜 스타의 팬으로써.. 스타리그와 함께 울고웃었던 시간들이 많군요..
항상 그 중심의 선수들중엔.. 박서도 있었습니다..^^
진남선수도보고싶고.. 기욤선수도 보고싶고....
떠나버린 모든 선수들이 보고 싶지만.. 아직은 남아있는
올드게이머들을 응원해 보렵니다..^^
올드게이머들~ 항상 건승하시길..^^


그렇다고 신예라 불리는 게이머들을 싫어하는건 아닙니다~^^;;;;
한종훈
05/01/23 18:02
수정 아이콘
엠겜에서도 빨리 탈락하면 정말 끝입니다.
황진규
05/01/23 18:22
수정 아이콘
드랍쉽 공중산화 아쉬울뿐입니다...
05/01/23 20:12
수정 아이콘
정말 아쉽습니다.... 임요환은 정말 무언가 매번 볼때마다 답답한 무언가가 있습니다. 진짜 임요환선수 팬으로써 매번 마음고생하기 싫은데 제발좀 분발하셨으면 좋겠네요
05/01/23 21:19
수정 아이콘
정말 멋진 글입니다...

애정이 담겨있는..
05/01/24 13:01
수정 아이콘
예전에 임요환선수에게, 그런 얘기를 했었습니다.

"꼭, 우승하세요!"

지금은, 그런 말을 한 것을 많이 후회합니다.

팬으로서 나름대로 응원한답시고 하는 말 한마디 한마디가
임요환선수에게 오히려 부담을 주는 것은 아니었을까....

지금은 그에게 말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면,
이제는 다른 이야기를 해주고 싶네요.

"이기든 지든 상관없습니다. 우리는 당신의 팬이니까요.
당신이 원하는 게임, 당신이 즐거워하는 게임을 하세요."

그래서인지, 요즘에는 그의 게임을 보면서,
승부결과보다는 저 게임에서 얼마나 그가 즐거워하고 있나를 생각하게됩니다.

이번 신정민선수와의 일전은, 충분히 즐거워하면서 했을것 같아요.
물론, 한순간의 치명적인 실수를 많이 후회하며 안타까워 했겠지만...
"지고 나서 후회하지 말자"라는 그의 좌우명처럼,
오늘도 그 경기를 돌이켜 후회하기 보다는 다른 경기에 대한 준비와 전략을 짜면서 즐거워하고 있을 임요환선수의 모습을 생각하면,
마음이 푸근해지네요.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10548 [후기] 특명 최연성을 이겨라~! [51] Eva0106741 05/01/23 6741 0
10546 후기 - "황제는 죽지 않는다, 다만 사라질 뿐이다" [11] 세이시로5963 05/01/23 5963 0
10545 음악저작권법 정말 문제가 없단말인가? [51] 지나가다말다3727 05/01/23 3727 0
10541 별들의 전쟁 episode 0. ☆Ⅰ부 9장. [2] Milky_way[K]3473 05/01/23 3473 0
10540 마우스세팅 시간을 주최측에서 설정하고 규제하자. [60] Lenaparkzzang4913 05/01/23 4913 0
10539 가끔은 그때가 그립습니다. [13] 세상에서젤중3610 05/01/23 3610 0
10538 후..앞으로 스타리그오프닝 보는게 좀 슬플꺼 같네요.^^ [14] 김호철5906 05/01/23 5906 0
10537 " 저기요.. APM 별거 아녜요 ㅠㅠ 쫄지마요 좀!! " [25] 뉴[SuhmT]4851 05/01/23 4851 0
10535 iops스타리그 벌써 기록 하나 세웠네요. [20] 임정현5795 05/01/23 5795 0
10534 말에 대한 저의 짧은 생각^^ [6] 히또끼리3672 05/01/23 3672 0
10532 스타를 지운다는게 이렇게 쉬운 일이군요 [18] ChocolateCake3115 05/01/22 3115 0
10531 스타 1.12패치가 나온다네요;; [15] 김두한3494 05/01/22 3494 0
10530 [와우자드펌] WOW새로운 인터뷰!! 갈수록... [25] OASIS4062 05/01/22 4062 0
10529 결국...이별... [11] 헤르젠3401 05/01/22 3401 0
10528 오늘 팀리그 최연성선수 역올킬 [44] 정재완6161 05/01/22 6161 0
10527 '챔피언쉽 매니저'라는 게임을 아십니까 ? [35] 아트오브니자3837 05/01/22 3837 0
10526 [Daydreamer의 자유단상] #1. 창업과 수성 - 강민과 박용욱 [6] Daydreamer3886 05/01/22 3886 0
10523 드디어 하늘대전의 서막이 열리다.(3라운드 플레이오프 후기);; [21] ggum3373057 05/01/22 3057 0
10522 프로리그. 새로운 징크스의 탄생인가!! [8] 바카스3466 05/01/22 3466 0
10521 드디어 KOR이.ㅜ.ㅜ [14] 라임O렌G3116 05/01/22 3116 0
10520 주간 PGR 리뷰 - 2005/01/15 ~ 2005/01/21 [7] 아케미4206 05/01/22 4206 0
10519 오랜만에 감동의 눈시울을 안겨준 골리앗 [17] Ace of Base3610 05/01/22 3610 0
10518 알케미스트...머큐리의 재탕이 될것인가? [35] 애송이4608 05/01/22 4608 0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6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1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