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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05/01/20 13:34:19
Name edelweis_s
Subject Protoss : 영원한 투쟁 03
Protoss : 영원한 투쟁


1. Aldaris





  가슴 속에 뜨거운 숯 돌이 굴러다니는 것처럼 마음은 혼란한데, 메마른 겨울바람은 내 모습을 조롱하기라도 하듯 무심하게 몰아쳤다. 덜컹덜컹-. 바람은 창문뿐만이 아니라 내 마음도 흔들고 있었다. 교복도 벗지 않고 책상 위에 멍하니 앉아 있는데 뒤에서 발소리가 들려왔다.

  “야, 강민. 너 거기서 제사지내냐? 뭐해?”

  “아. 그냥….”

  형이었다. 이름은 강찬. 형도 나처럼 외자 이름을 쓴다. 조심스럽게 내게 다가오는 형의 얼굴은 걱정이 한껏 묻어나오고 있었다. 평소엔 형제가 맞나 싶을 정도로 무심하게 굴더니만……. 그래도 그런 형의 모습이 나는 더 좋았다. 어떤 과자의 CF 문구처럼, ‘말하지 않아도 아는’ 진정한 형제의 모습이 느껴진다고 해야 할까. 언제나 내게 고민이 생겼을 땐 먼저 다가와서 내 말을 들어주곤 했다. 부모님과 따로 사는 나에게, 형은 보통의 그 것보다 더 큰 의미인 것이다.

  “뭐 안 좋은 일이라도 있었던 거야?”

  “아. 그냥 악몽을 꿨다라고… 해야 하나.”

  “얼, 악몽. 너 그런 거에 민감한 애였냐?”

  형은 입가에 웃음을 띠고 내 침대에 풀썩 엉덩이를 깔았다. ‘누구나 악몽엔 신경 쓰이는 거 아닌가?’ 하고 난 반박했다. 어느새 세차게 불던 바람이 멈춰있었다.

  “흐음. 나한테 말해봐라. 내가 해몽 좀 하는데, 어때? 복채는 만원만 내라.”

  “이 인간이…….”

  “으하하 농담이야, 농담. 특별 서비스로 공짜로 해주마.”

  난 눈을 가늘게 뜨고 의심의 눈초리를 형에게 내쏘았다.

  “형이 그런 거에 관심 있는 사람이었나?”

  “취미지, 취미. 하지만 용하다는 점쟁이보다 더 정확하다고.”

  형과 나는 잠시 동안 그런 쪽의 화제로 이야기를 나눴다. 알고 보니 형은 점에 대해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형은 나의 손금도 봐주었다. 중지까지 뻗는 손금이 없으니 대통령의 꿈은 접으라거나, 엄지손가락 쪽 손금이 아래로 휘었으니 문과 체질이라는 둥, 손에 잔주름이 많으니 잡생각을 버려야 공부를 잘할 수 있다는 둥……. ‘돈은 얼마나 벌겠어?’ 라고 내가 물어보니까, 형은 ‘흐음, 그건 비밀.’이라고 말하며 웃음을 터뜨렸다. 형의 웃는 얼굴을 보고 나도 그만 피식 웃어버리고 말았다.

  하지만- 형과 즐거이 이야기를 하는 중에도, 내가 본 그 광경-형에게는 악몽이라고 말해 두었지만-은 여전히 내 기억 깊숙한 곳에 달라붙어 쉽사리 떨쳐 내지지 않았다. 허공에 분수처럼 흩뿌려지는 붉은 피. 잘린 목이 더러운 길바닥을 데굴데굴 구르고…. 그리고 피를 그대로 뒤집어쓰며 건조한 미소를 떠올리던 그 남자. 내 머릿속에 낮의 일이 떠올랐다.

                                         ********************

  - 날 기억하나? 오랜만이군, 테사다.

  공포와 전율은 나의 온몸을 잠식 해 들어갔고, 그 상황에서 무슨 소리를 듣는다는 것이 오히려 이상할 지경이었다. 게다가 남자가 서 있는 곳은 창문을 넘어, 교문을 넘어, 찻길을 넘어 있는 큰 아파트 단지의 입구.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디에선가 들려오는, 들릴리 없는 그의 목소리. 그 소리는 내 귀를 진동시킨 것이 아니었다. ‘마음’에서 온몸으로 울려 퍼지는 소리. 그 것도 어디엔가 아주 ‘익숙한’ 목소리였다.

  날, 알고 있다……? 마음속에서 의혹으로 똘똘 뭉쳐져 만들어진 언어는 결국 목구멍에서 무언가에 턱 막혀 소리가 되지 못했다. 하지만 난 끊임없이 물었다. 그에게, 혹은 나에게. 어떻게 날 알고 있지? 하지만 누구도 내게 대답 해주지는 않았고, 남자는 나를 노려보는 것처럼 응시했다. 그의 날카로운 시선이 피부를 뚫고 온몸의 신경을 자극했다. 나도 방금 파란색 잠바처럼 목이 잘리는 것이 아닐까……? 갖가지 공포들이 내 머리를 뒤흔들었다.

  - 아직, 완전히 ‘각성’하지 못한 건가. 재미없군.

  그는 또다시 알 수 없는 소리를 내뱉고는 등을 돌렸다. 목이 잘려버린 시체를 뒤로 하고 성큼성큼 걸음을 옮기는 그의 모습은 너무나도 자연스러웠다. 너무나도 거침없는 남자의 모습은 방금 한 사람을 죽인 것은 아무 일도 아니라는 것처럼 느껴졌다. 나는 그를 불러 멈춰 세우려고 했다. 하지만 목소리는 여전히 나오지 않았다. 남자는 이내 자취를 감춰 버렸고, 남은 것은 시체와 그가 남긴 강렬한 인상뿐이었다. 뭐든지 빨아들여 버릴 듯한 깊은 푸른색 눈동자. 그저 색이 파란 보통의 눈동자일 뿐이었지만, 더할나위 없는 강한 분위기를 풍기며 내 머릿속에 달라붙어 있었다. 그리고 잔뜩 말라붙은 목소리.

  오랜만이야, 테사다.

  나를 ‘테사다’라고 불렀을 뿐, 아무것도 담겨 있지 않은 평범한 문장이었다. 하지만 난 분명히 남자의 목소리를 알고 있었고 ‘테사다’라는 이름도 알고 있었다. 내가 알지 못하는 기억 깊숙한 곳에서 작은 파문이 일어 몇 개의 파편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테사다’……. 그렇지만 익숙하다는 그 느낌뿐이었다. 그 남자에 대한 기억은 어디에서도 찾기 힘들었다. 길에서 한번 스쳐 지나갔을 뿐이라도 잊혀질 타입의 남자가 절대 아니다. 어디선가 만났다면 절대 잊을 리가 없었다.

  완벽하게 내 머리에 떠오른 생각은 ‘위험신호’였다. 그 남자는 위험하다. 그 남자에 대해 알아차리면 죽는다. 이런 갖은 공포들만이 나의 본능을 자극해 경보를 울리고 있었다. 그 경보는 방금 벌어졌던 일과 더불어, 나의 마음을 무겁게 짓눌렀다.

                                            ********************

  강찬은 번화가에 위치한 작은 바에서 일하고 있었다. 아직 해가 완전히 저물지 않은 시각, 여느 술집이 그렇듯 으슥한 밤이 아닌 이상 손님이 많이 찾아들지는 않는다. 강찬이 일하고 있는 바도 예외는 아니었다. 가게는 휑하니 비어있었고, 오직 어떤 청년이 한자리를 차지하고 엉엉 울고 있었다. 아무래도 실연을 당한 모양이었다. 청년의 입에서 여자의 것으로 추정되는 이름이 쉴새없이 흘러나왔다. 강찬은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술잔을 닦고 있었다.

  그 때- 가게의 문이 열리며 작은 종소리가 강찬의 귀를 간지럽혔다. 강찬은 본능적으로 고개를 수그리며 들어온 손님에게 인사를 건넸다.

  “어서 오십시오.”

  이윽고 고개를 든 강찬은 흠칫하며 눈을 부릅떴다. 들어온 남자는 양복을 입고 있었다. 양복은 짙은 검정색이었지만, 무언가에 젖어 얼룩이 잔뜩 져 있었다. 그 얼룩의 정체는 남자가 걸친 하얀 와이셔츠에 확연하게 드러나 있었다. 물감처럼 붉게 와이셔츠를 적신 그 액체는 피였다. 확실했다. 보통의 색료라면 이렇게 불쾌한 느낌과 냄새를 풍길 리가 없었다.

  “아주 독한 술…… 한잔 주겠나?”

  하지만 피에 젖은 양복을 입은 그 남자는 이상할 정도로 태연한 모습이었다. 강찬은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잔에 술을 따라 남자에게 내밀었다. 강찬이 긴장하고 있는 이유는 비단 그 핏자국 때문만은 아니었다. 남자의 푸른색 눈동자. 어떤 것도 담겨져 있지 않은 그 단색의 눈동자는 누구에게라도 공포심을 주기에 충분했다. 남자는 단번에 잔을 비웠다.

  “한잔 더…….”

  “저…… 손님.”

  강찬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강찬의 얼굴은 애써 웃음을 띠고 있었지만 억지로 만들어진 그 미소의 끝을 흉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강찬이 느끼는 불길한 느낌. 이 느김은 인간에게서 나올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마치 강찬과 동족인, 그렇지 않으면-

  “실례지만…….”

  “큭. 큭큭큭.”

  실연당한 청년의 울음소리만이 울려 퍼졌던 바에, 남자의 음산한 웃음소리가 무겁게 뒤덮였다. 강찬의 말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흘러나온 웃음이었다. 아무런 감정이 들어가 있지 않던 남자의 눈엔 어느새 정확히 알아 볼 수 없을 정도의 여러 상념들이 깃들여져 있었다.

  “보아하니, 넌 각성에 성공한 모양이구나, 제라툴.”

  강찬의 얼굴이 무섭게 굳어졌다. 남자의 웃음소리를 정면에서 받아내고 있는 강찬의 몸에서 푸른색 기운이 일렁이며 뻗쳐 나왔다. 어느새 강찬의 이마에 황금빛으로 빛나는 인장(印章)이 모습을 드러냈고, 손에는 눈부시게 빛나고 있는 검이 들려져 있었다.

  “감히 어둠의 지배자인 나 제라툴을 비웃는 자는 누구인가?”

  손님을 대하는 그 것이 아닌, 적을 위협하는 중압감이 내포된 말투였다. 갑자기 변모한 강찬의 모습은 심상치 않은 중압감을 풍기고 있었지만 남자는 여전히 웃음을 멈추지 않았다.

  “글쎄, 날 잊어먹다니 이거 섭섭한데, 제라툴?”

  “……! 케리건의 개냐, 아니면-!”

  사실 강찬, 아니 제라툴Zeratul의 마음속에 전부터 걸리는 것이 있었다. 남자가 들어올 때부터, 느껴지던 그 익숙한 분위기. 끝을 알 수 없는 푸른색 눈동자. 그 것은 분명히 프로토스의 영웅만이 내뿜을 수 있는 기운이었다. 그렇지만 이마에 새겨진 인장은 없었다. 그렇다면-

  “제라툴. 아이어를 등진 배신자 라스자갈의 더러운 수하여. 난 위대한 프로토스의 대의원 집정관(Judicator), 알다리스다. 아이어를 등진 그대, 무거운 중죄를 면치 못할 것이다.”













** 스토리가 슬슬 본궤도에 오르기 시작했군요. 제라툴의 등장, 그리고 양복 남자의 정체는 알다리스인 것으로 판명 났습니다.

님들.... 다음편을 기대해주실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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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ll Nino
05/01/20 15:45
수정 아이콘
예 기대하고 있습니다. 언능 다음꺼 올려주세요~~~
슬픈비
05/01/20 15:48
수정 아이콘
아... 기대 많이 하고있습니다..ㅠ_ㅠ 이 글 보고 댓글달려고 오랫만에 로긴도 했다구요-.ㅜ 빨리빨리 다음편~~
키쿄우™
05/01/20 17:42
수정 아이콘
글쓰는게 힘들다는거는 잘알지만 ㅠ_ㅠ 빨리올려주세요 다음편~
아케미
05/01/20 18:11
수정 아이콘
정말 무지무지 기대 많이 하고 있습니다!! 얼른 써주세요^^; (강민이 각성하는 모습은 상상만 해도…)
검정색
05/01/20 19:36
수정 아이콘
호.. 대단합니다.
양정민
05/01/21 11:59
수정 아이콘
와 정말 재밌네요.^^
3편이 왜이렇게 안올라오나...했는데 2페이지로 넘어가있었군요-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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