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Date 2002/03/26 14:31:20
Name 서인
Subject [습작] 질럿 마르시안(1)
“ 질럿 제1전사단 소속 마르시안 소환 완료, 아이우를 위해 ”

막 도착해서 보고도 마쳤지만 여전히 어지럽다 . .
새로운 행성으로 소환될 때마다 늘 오는 가벼운 멀미.
아마 익숙치 않은 낯선 파장 탓이리라. 낯익은 동료라도 있으면 나으련만 . .
아, 옥타리스다.
" 옥타리스, 자네도 왔군. "

" 세르무스가 혼자 버티고 있다. 넥서스로, 어서! "

알 수 없는 어지러움은 한순간에 사라져버리고 양팔의 사이언검이 시리도록 푸른 빛을 발하기 시작한다. 이젠 사이언의 흐름에 몸을 맡길 시간이다.

미숙하고 성급한 오버마인드로군. 고작 여덟의 저글링으로 감히 투게이트에서 질럿 전사단의 소환이 진행되고 있는 프로토스의 본진을 강습하다니.
하지만 이 정도의 공격에도 하나의 행성을 송두리채 잃어버린 경우는 많다.
먼저 도착한 세르무스는 이미 부상을 입은 것 같다.

" 세르무스 뒤로! "

동료의 다급한 외침 속에서도 난 희미한 미소를 짓는다. 격전의 와중에 간발의 차로 먼저 도착한 옥타리스는 그 때문에 오히려 침착함이 흐트러진 모양이다. 세르무스 또한 역전의 용사, 등 뒤로 다가서는 우리 발소리만으로도 자신이 할 일을 정확하게 알 수 있는 베테랑 전사인 걸.

" ! "
놀라운 일이다.
세르무스가 뒤로 빠졌다가 오른쪽으로 돌아가는 동안 프로브는 일제히 움직여 나와 옥타리스를 엄호한다. 차분한 지휘. 프로브를 능숙하게 직접 다루는 사령관을 본 것이 얼마만인지. 프로브에 직접 사이오닉 링크를 거는 것은 품위 없는 일이라는 어설픈 선입견으로 얼마나 많은 행성에서 교두보를 잃고 철수해야만 했던가. 이번은 유연한 정신을 가진 사령관이어서 다행이다. 셋이 하나씩, 전사 둘에 프로브 하나가 보태진 일격에 저글링이 하나씩 피울음 속에 사라져간다.

. . .

기지 입구에 소환되고 있는 파일런을 보호하라는 명령이 내려왔다.
피빛으로 흥건한 넥서스 주위를 벗어나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이제 막 젊은 전사들도 둘 소환되었군. 그래, 다섯이면 훌륭한 전력이다.

엇, 벌써 저그의 제 2 진이 공격을 들어오는.. 아니, 정찰 다녀온 프로브인가?

“ 피비빗- 윙- ”

쉴드는 가득차 있지만 절반의 체력이 닳아있다. 성큰의 일격이라도 받은 걸까.
저그의 상황이 궁금해서 사이오닉 링크를 걸어본다. 어디..
뭐? 어느새 히드라리스크덴? 레어 업그레이드 중이라고?
그렇다면 좀전의 저글링은 단지 지연 작전이고 러커를 주력으로 삼을 생각이었던가.
본진에는 아직 게이트웨이 밖에 없는데 사령관은 어떻게 대처할 생각일까.

귀환하던 프로브가 어시밀레이터를 소환한다.
옵저버를 불러올 생각인가? 과연 시간에 맞출 수 있을까. 차라리 캐넌으로 최전방 방어선을 구축하는 편이 나을지도.. 역시 사이버네틱코어를 함께 부르는군. 이렇게 되면 캐넌 방어선 구축은 불가능해진다. 곤란하다.. 저그가 이미 업그레이드를 시작했다면 시간상으로 옵저버를 불러오기 전에..

“ 마르시안, 왜 그러나? ”

갑자기 찾아든 현기증에 잠시 비틀거렸나보다. 옥타리스가 날 부축하고 있다.
괜찮아, 난 괜찮다구. 보이지 않는 적에 쫓겨 또다시 후퇴하고 싶지는 않아. 그저 그뿐이야.

“ 저것 보라구!! ”

지금 막 완성된 코어 옆에 프로브가 새로운 건물을 소환하는 것이 보인다. 뭐가 그리 대단한 일인가. 지금 로보틱스 퍼실러티를 만들어봤자 이미 늦었는데.. 응? 저건..

“ 사령관 진짜 마음에 드는데. 템플러 소환해서 러커를 상대하려나봐 ”

옥타리스는 싱글거리기 시작했다. 역시 웃음이 많은 친구다. 질럿답지 않게. 하긴 나도 마찬가지인가? 전투 전후에 이런저런 생각으로 현기증을 일으키는 질럿이 있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차라리 옥타리스의 잦은 미소가 웃음이 낫다. 불필요한 어둠을 불러오지는 않으니까. 하지만..

아니야, 옥타리스. 시간이 없어. 지금 아둔의 성지를 불러봤자 이어서 템플러 아카이브를 불러오는 동안 넥서스는 초토화될 거라구.. 자네는 타르타니스를 다시 만날 거라는 기쁨에 즐겁기만 하겠지만 타르타니스가 미처 소환되기도 전에 우린 사라질 거야. 보라구. 벌써 히드라리스크들이 등장했잖아. 이제 업그레이드가 끝나는 즉시 저들은 변태를 하고 우리가 볼 수 없는 땅 속으로 숨어버릴 거라구. 가장 먼저 템플러아카이브를 공격하겠지. 그리고 우리는 절망적인 몸짓으로 하나씩 소멸되어 갈거야..

“ 위잉- 질럿 제1전사대에게 지침을 내린다. 히드라의 교란 작전이 예상되니 침착하게 대응하라. 분노의 불길을 잡지 못해 하나씩 달려나가는 일이 없도록. 아이우를 위해 ”

달려나가지 말라니, 그럼 모두 러커로 변태하길 기다려주란 말인가.
지금이라도 달려나가서 저들을 잡지 않으면 어디에 희망이 있단 말인가.
분통이 터지는 일이지만 아무도 움직이지 않는다.
아둔의 후예들은 어떤 상황에서도 사령관의 지시를 따르니까.

히드라들은 번갈아가며 치고 빠지면서 전사단을 하나씩 유인해보려 하지만 우리는 풋내기가 아니다. 쉴드가 소모되면 후방으로 빠지고 가장 푸른 전사가 전진해서 견제를 한다. 그다지 빠르지 않은 히드라로서도 섣불리 가까이 접근하지는 못한다. 좁은 계곡에서는 서로가 조심스러울 수 밖에 없는 법이다. 지루한 대치가 계속된다. 템플러는 언제 도착하는 것일까..

" ! ! "
" 마르시안 ! "
" 세르무스, 옥타리스, 자네들은 왼쪽으로! "

옥타리스도 동시에 느꼈나보다.
그래, 당연하지.  아이우의 아들치고 누가 이 강렬한 전율을 놓칠 수 있겠는가?
드디어, 소환되어 있던 아둔의 성지에서 이 행성의 대지를 관통하는 사이언 에너지의 파장을 찾아내었다. 지평선 너머까지 일렁이는 사이언에너지의 파동은 지금껏 위태하게 한걸음씩 내딛던 내 다리에 놀라운 리듬을 부여한다. 언제나 머리끝까지 내 온 세포를 깨우는 이 상쾌한 느낌은 매번, 아이우의 사이언 폭풍에 처음 몸을 맡겼을 때의 짜릿함을 되살려 준다.

짧은 눈맞춤과 함께 전사단은 절벽 양쪽 아래로 갈라져 바람처럼 내달으며 한순간에 히드라를 둘러싸고는 무심히 사이언검을 휘두른다. 아직 미숙한 전사들이 자연스레 우리 뒤를 열지어 따라온 덕에 포위망은 오히려 더 완벽하다.

이 오버마인드는 아직 어린 개체가 틀림없다.
뒤늦게 상황을 이해했는지 서툴게 히드라에게 후퇴,공격,후퇴의 명령을 내리지만 이미 대지의 리듬을 탄 우리의 사이언검을 벗어나지는 못한다. 저마다 빈틈을 찾아 우왕좌왕하던 히드라들은 질럿 전사단에 단 하나의 희생자도 만들지 못하고 전멸했다.


" 위잉- 질럿 제1전사단 보고하라 "

" 시야 안의 모든 히드라는 대지로 돌려보냈다. 소멸된 전사는 없다. 추격도중 4파일런반경만큼 전진했으며 현재 시야 안에는 오버마인드의 다른 자식은 보이지 않는다. 전투 끝무렵에 오버로드 하나가 남동쪽 언덕 위로 사라졌다. "

" 위잉- 질럿 제2전사단의 소환이 거의 끝났다. 후속 전사단의 소환을 결정하기 전에 적에게 얼마나 타격을 줄 수 있는지 빠른 확인을 원한다. 이미 성큰 2기가 확인되었기에 프로브는 접근시킬 수 없다. 서쪽으로 2파일런반경만큼 후진한 뒤 북쪽으로 올라가서 전진한다. 교신자가 선두에 선다. 아이우를 위해 "

" 아이우를 위해! "

깔끔한 작전이다. 오버로드가 언덕 위에서 우리의 움직임을 주시하고 있을 테니 일단 본부 쪽으로 후퇴하는 것으로 보인 후에 기습적인 탐색전을 펴라는 뜻이리라.

이번 사령관은 역시 훌륭한 전술가이지만 아직 지휘 경험은 많지 않은 모양이다.

쉴드의 플라즈마 에너지가 풍부한 전사일수록 안정된 사이오닉 링크를 맺을 수 있다는 것을 모를리 없을 테니 교신자가 선두에 서라는 것은 쉴드가 가장 튼튼한 전사가 최전방에서 미지의 위험을 파악해보라는 뜻이다.
똑똑한 생각이지만 우리에겐 불필요한 지시이다.
별도의 방침이 있지 않는 한 정찰대의 대열은 늘 쉴드를 기준으로 구성되기 마련이다.
가장 눈부신 전사가 가장 선두에!  야전의 제 1 원칙이다.

다시 생각은 멈춘다. 명령은 떨어졌고 지금 당장 내가 할 일은 달리는 것 뿐이다.

maybe to be continue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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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atheia
02/03/26 14:34
수정 아이콘
멋지십니다. ㅠㅠ
02/03/26 14:42
수정 아이콘
기대 기대 ^^
SadtearS
재밌어요~
기대가 됩니다. 깔끔한 글이네요.
02/03/26 16:00
수정 아이콘
새로운 작가 출연 ^^;;
김명훈
정말 글 재밌게 쓰시네요..^^후속편 기대하겠습니다.
02/03/26 17:49
수정 아이콘
오래간만에 보는 장편이네요. (왠지 장편같죠?)
이 글이 아주 자앙~편 이 됐으면 좋겠네요. 헤헤.
02/03/26 17:51
수정 아이콘
그러고 보니 저는 아직 진지한님의 '환상의 테란'을 마지막편 한편밖에 못봤네요.
가끔 보고싶어서 찾아봤는데. 못찾겠더라구요 ㅇ_ㅇa
장희웅
와우.. 정원가에 앉아있던 유령.. 이란 글을 읽고서 전 서인님이 남다른 글재주가 있음을 진즉 부터 알았습니다. 다음편 빨리 올려주세요.. ^^
InfoCore™
환상의 테란은 게임큐 까페에 있습니다
멋지네요! ^^
짧았지만 다음편을 기대하겠습니다.
와우...제대로된 판타지 소설을 읽는듯한 착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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