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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9/19 18:40
유비 생전에는 별다른 기록이 안나오긴 합니다만, 유비 사후 북벌에 종군하며 장수로서의 면모를 잘 보여주기도 합니다.
덧붙여서 그의 종군 기록을 보면 공손찬 수하로 유비하에서 기병대 지휘, 계양 공략, 익주에서 유비를 구원하러 가는데 일군을 이끌고 곳곳을 평정했다는 기록도 있구요, 1차 북벌에서의 활약은 굉장했습니다.
12/09/19 18:43
관우 장비에는 못미치지만 충분히 에이스급 장수로 나옵니다. 호위무장이야기는 조운의 별호가 '호위(虎威)장군', 즉 호랑이같은 위세를 지닌 무장이라는 이야기가 와전된 것이고요. 관-장 시절에는 주로 별동대를 이끌면서 백업을 잘했고(황충이 한중정벌에 나갔을때 포위당했다가 그걸 구해준게 조운입니다), 북벌 초기에는 제갈량 다음가는 위치에서 위연과 함께 사령관으로의 역할도 일정 부분 수행했습니다.
12/09/19 18:47
연의에서 과장해서 그렇지, 연의에서 나오는 업적이 실제 정사에서도 나오더군요.
적병을 뚫고 유선을 구출한 것도 사실이고.. 한중에서 맹활약했던 것도 사실이구요. A급 무사로 보기엔 충분합니다.
12/09/19 19:07
유비가 눈을 감은 직후라면 탁고대신 이엄일 수도... 이릉전투 이후 제갈량 죽음까지 활약으로는 아마도 위연일 듯 하구요. 다만 조운 노년에 감히 누가 조운 앞에서 위세를 드러낼 수 있었을까 생각해보면 넘버1 장수였다 해도 무리는 없을 듯 합니다. 무려 선주와 한 침상을 쓰던 심복이자, 마지막 남은 오호장에, 현 황제를 단기필마로 구해온 역전의 무장인데요.
12/09/19 19:09
촉에서 장군 서열을 따지면, 관우>장비>>황충>조운>>마초 정도 된다고 봐요.
마초는 실제 공이 있다기 보다 군벌이라서 잘처준거고, 촉에 와서 한거라건 한중 쟁탈전에서 장비와 함께 조홍에게 깨진거 밖에 없거든요. 황충이 입촉/한중쟁탈전등에서 벌인 활약이 참 무시무시했죠. 사실 당시 순간포스만 보면 관우/장비와 동급으로 보일지경... 결정적으로 관우/장비/황충/마초가 정동/정서/정남/정북 장군을 했는데, 조운은 잡호장군이었습니다. 물론 잡호장군을 어느 위치에 두느냐는 논쟁의 여지가 있지만(가령 제갈량은 유비 있을 지경 계속 군사, 이기만 했으니까요), 관우장비황충의 아래인건 맞아요. 그렇더라도 위연보다 아래라던가 그런건 아닌게, 뭐라해도 관장마황조, 거든요. 정사 삼국지에서 묶일때.
12/09/19 19:12
위연은 오히려 제갈량 북벌을 포장하는 과정에서 같이 포장된게 큰다고 보며,
조운을 논하기 이전에 장합과 두번 싸워 두번 모두 이긴 왕평보다도 아래라고 봅니다. 1차 북벌만 해도, 조운은 독립군을 맡았고 그 목적이 '주공이 이쪽이다'라고 유인하는 의도였다는 점에서 그 위상을 알 수 있죠.
12/09/19 19:39
가장 평가 절하된 만능형 장수라고 생각하는데
가장 재미있게 논의된 https://pgr21.com/zboard4/zboard.php?id=humor&page=1&sn1=&divpage=19&sn=off&ss=on&sc=on&keyword=%EC%A1%B0%EC%9A%B4&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115729 를 참조해보세요
12/09/19 20:01
그냥 추측하기에 별동대를 주로이끈 전력으로보아. 대규모부대보다는 소규모부대를 탁월하게 운용했다고 봅니다.
뭐랄까 피마새의 헨로중대같은 느낌? [m]
12/09/19 20:01
조운이 삼국지에서 너무 말도 안되는 활약을 보여서 필요이상으로 평가절하된 경항이 있죠
실제로도 조운은 무예뿐만 아니라 만능형 장수였습니다. 진짜 멀티 플레이어였죠 . 연의처럼 완전 괴물같은 그런 무예는 아니었지만 통솔 무력 지력 뭐하나 딸릴것 없는 장수였습니다. 제갈량이 가장 신뢰하는 장수였기도 하구요.
12/09/19 20:24
군공으로는 관장 다음급, 군부내 비중 역시도 유비 사후 제갈량에 이은 NO.2였습니다.
무예가 뛰어났다는 기록도 남아 있고(한중전 황충 부대를 찾기 위해 정찰부대를 이끌고 가다가 조조군을 만나자 격파했다는 기록 및 정사에서 유이하게 공성계를 성공시킨 인물) 무엇보다 조운의 커리어 시작이 공손찬군의 기병대장입니다. 북방 이민족을 제압하며 성장한 공손찬군의 기병대장이라는 직위는 허투루 볼 것이 아니죠. 정치적 감각도 뛰어났고(입촉 직후 유비에게 한 진언, 1차 북벌 이후 상을 내리려는 제갈량에게 모아두었다가 군사 물자로 쓰라고 진언, 이릉전 때 대국적 관점에서 유비를 말림) 충의, 무예 역시 뛰어났습니다. 1차 북벌 때 제갈량이 본군을 이끌고 기산으로 진출하면서 위군의 군세를 분산시키기 위한 독립 군대를 이끌었던 것이 조운이고 1차 북벌 실패를 책임지고 강등 당한건 제갈량과 조운 단 둘뿐이죠. 조조가 주민 다 쓸어가서 전략적 중요도가 떨어져 있었던 한중 태수에 파격적으로 임명된 위연이랑 비교될 레벨이 아닙니다. 한중전 직후 유비군의 대위 핵심 방어선은 장비가 지키고 있던 파서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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