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끝났습니다.'
"하나, 둘, 셋 xxx 화이팅"
(환호)
이렇게 환호가 있다면
반대편에는 침묵이 있다.
"..........."
"아..허탈하네, 오늘도 지냐."
"휴.. 왜 거기서 케리어를 가냐.
지상병력으로 밀어야지"
"닥쳐 입스타자식아. 아휴.."
"밖이 복잡해지기전에 얼른 나가자."
"그려, 가서 한 잔하고 들어가자.
나 두번 다시 오프 안온다.
올때마다 이게 뭐꼬. 기분만 똥되고 "
"얌마 그래도 하나 더 남았잖아."
"몰라 임마, 두 번 다시 안가."
-10년전.
째깍,째깍 ''아홉시'
(휴대폰에서 울리는 알람)
'퇴근.'
"저 먼저 퇴근합니다."
"이봐, 이대리 회식 안가?"
이대리는 뒤에서 들리는 말들을 무시하고 칼같이 회사를 빠져 나오고 집으로 향해 달렸다.
'딩동'
"누구세.."
"나야. 빨리 문열어."
-철컥
"끝났어?. 올라갔어?"
"졌어. 아휴 요즘 중고등학생들은 공부들 안해?
그런 얘기들에게 매일 지냐."
"........."
"아나 진짜.. 오랜만에 올라갔더니 또 탈락이냐.
그럼 그렇지.. (실망)
지연이는?"
"글쎄.. 티비보느라 신경 못썼네. 잠들었나?."
하여튼 오랜만에 방송에 올라와서 잔뜩 기대하게 해놓고는..
나 티비보느라 밥안했으니까 당신이 알아서 해먹어.
그렇게 응원하던 녀석이 지는 날이면
와이프와 나는 저녁내내 신경이 날카로워져 있습니다.
"아..진짜~. 두 번 다시 응원 안해."
남들과 똑같은 저녁시간, 소란 스러운 한 가정. 그 속에는
게임경기 보느라 아기와 남편의 밥 반찬도 신경 안쓰는 빵점짜리 아내와
퇴근하고 갓 태어난 아기보다 게임 경기의 결과를 먼저 묻는 빵점자리 남편이 살고 있습니다.
그때마다 그를 처음 알게된 그 해 여름이 생각나네요.
-20년전.
2004년의 여름.
"끝났다. 가자."
"좀 기다려봐."
"아 뭐야 나 수빈이 만나러 가야돼."
"이 경기만 보고 가자."
"누구랑 하는데?"
"강민. 이병민"
"강민하고 누구?"
"이병민."
"몰라, 암튼 나 수빈이 문자오면 그냥 갈래"
"자식이 여친때문에 의리없긴.
나도 오늘 밤새서 생리학 리포트 내야돼."
나름 의대생인 친구가 바쁜 일상속에도 뭐가 그리 좋았는지
나를 집에서 끄집어내고 이곳으로 자주 데려오곤 합니다.
그리고 나도 어느새 이런 일들이 낯설지가 않아지고 있었죠.
그리고-
"우와~"
장내가 갑자기 환호성으로 들썩였다.
"어!!"
"이야. 뭐야 저거.. 헐루시네이션이네."
모니터를 주시하던 화면속에서 GG라는 문자가 나타나자
좁디 좁은 공개홀은 떠나갈듯한 환호성으로 메아리 쳤다.
환호성, 전율.
그 환호성은 참으로 오랫동안 공개홀을 메아리 쳤고
그 메아리는 그의 뇌리에 오래도록 기억에 남게된다.
경기가 끝나고 그의 손에서 드디어 긴장이 풀리기 시작했다.
흥건한 땀줄기가 손바닥을 적시는것을 느낄 수 있었고
경기에 몰입하느라 울리는줄 몰랐던 휴대폰.
주머니속에 휴대폰을 부비적거리듯이 꺼내며 수북히 쌓인 메시지를 확인해보았다
'아차..수빈..'
-또 게임 구경갔지? 빨리 안오면 나 가버린다
-그깟 오락이 나보다 더 중요해?"
-두 번 다시 연락하지마. 너랑 끝이야.
"어이구. 마음대로해라. 쳇.. 뭐 어찌됐건
으하하하~광민 화이팅~"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버렸습니다.
나는 그 뒤로 누가 가자고 하지 않아도 먼저 이곳을 찾게되고
10년 뒤 두 번 다시 연락하지 말라던 그녀와 함께
가정을 이루고 행복한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20년뒤.
'경기 끝났습니다.'
"하나, 둘, 셋 xxx 화이팅"
(환호)
이렇게 환호가 있다면
반대편에는 침묵이 있다.
"..........."
"아..허탈하네, 오늘도 지냐."
"휴.. 왜 거기서 케리어를 가냐.
지상병력으로 밀어야지"
"닥쳐 입스타자식아. 아휴.."
"밖이 복잡해지기전에 얼른 나가자."
"그려, 가서 한 잔하고 들어가자.
나 두번 다시 오프 안온다.
올때마다 이게 뭐꼬. 기분만 다운되고 "
"얌마 그래도 하나 더 남았잖아."
"몰라 임마, 두 번 다시 안가.
나이 먹고 얘기들 사이에 껴서 뭐하는 짓이냐."
며칠뒤.
-여보 오늘 저녁에 얘들 데리고 민이 경기 보러가요.
-지연이는?
-학원마치고 바로 온데요.
"뭐하는거야. 이과장,,근무시간에 문자질이나 하고.. 결산 자료 멀었어?"
"아 예 잠시만 기다리십쇼. 지금 정리해서 갑니다."
왠지 모르게 기분이 좋은지 우렁찬 목소리가
적막한 오후의 회사를 동요시킨다.
'휘리릭.~'
"어!"
(많은 A4 용지들 사이에서 나풀나풀 거리며 사진 한장이 바닥으로 떨어진다.)
그는 허리를 굽히고 바닥에 떨어진 사진을 집으며
잠시 생각에 빠진다.
-물끄러미.
미소-.
'두 시간 남았나..'
"이과장, 다 안됐냐고~~~~~~~~~~~"
"아 예 지금 갑니다."
부장의 호통에 꿈에서 깬 듯 사진을 털고
서랍안에 고스란히 되돌려 놓는다.
"부장님, 제 서류 퍼펙트하지 않습니까?"
"이놈이 오늘따라 미쳤나. 쯧~ "
나의 서랍안에는 나의 젊은 시절을 함께해온 꿈 같은 친구가 담겨져 있습니다.
각박하면서도 누구나 자신의 삶을 영위하듯이 평범하게 지내온 지난 날.
내가 가진 평범함 속에 삶을 살아가면서도
조금은 덜 평범하고 조금은 더 즐겁게 지낼 수 있었던 것은 20여년전 여름 어느 젊은 날에
친구따라 찾아갔던 좁은 방송국안에서 파란 반팔 티에 뿔테 안경을 쓴
이 사진속의 주인공을 알면서부터였죠.
때로는 보는 이들을 좌절시키고 기대감이라는 희망속에 또 좌절시키며
'두번 다시 이곳을 찾지 않겠노라는 다짐을 해온 시간이 20년.'
지금의 내 와이프에게 '나 술 안마셨어' '그래 우리 헤어져' 와 함께
그리고 '두 번 다시 응원 안가'.
내 인생의 3대 거짓말이 되버렸습니다.
서랍속의 주인공.
오늘도 여전히 저를 설례게합니다.
"민아~~~~~두 시간 뒤에 보자꾸나.!!!!!!! 내가 간다. 으하하."
오늘도 당신때문에 기분좋은 하루,
"어떻습니까?"
(조용한 어느 방 안쪽으로 두 남자가 의자에 앉는다)
"오랜만에 방송 경기를 준비 하면서 긴장까지 겹쳤는지 상태가 더 좋지 않습니다."
"그런가요?"
(절망보다는 쓰디쓴 웃음)
"저도 참 오랜만이라서 꼭 이기고 싶거든요.
그래서 연습을 과하게하다보니 무리 좀 했나봐요.
솔직히 이기는 것은 자신 없었는데 뭔가라도 보여주고 싶어요."
"20년이 넘게 키보드를 두드리고 의자에 앉아서 몰입한다는것은
사람에게는 치명적인 지병이 생기는것을 막을 수는 없습니다.
감각도 많이 무뎌지고 특히나 이제는 손목보다는 어깨쪽이 더 안좋습니다."
고요함.
적막함.
그리고 예상하면서도 꺼내지 말았으면 하는 한마디-
"이제........ 그만 해야하는건가요?"
정곡,
또는 의사라는 직업인으로써 가장 고통스러운 심리적 상태.
침묵.
고민.
결단.
답변.
"저도 20년넘게 팬을 해오면서..
팬으로써 인간적인 이기심을 부려본다면 '괜찮습니다'라고 말하고 싶고,
의사라는 직업인으로써 환자에게 말을 한다면
'이제 그만 쉬세요'라고 말할 것입니다."
"그렇군요. 저도 오랫동안 생각해왔는데..
그럼 어쩌면 오늘 저녁 경기가 내 마지막 경기가 될지도 모르겠군요."
그가 웃는다-
하지만 마주보는 이는 슬프다.
그리고 아프다.
",,,,,,,,,,,,,,,"
"저도 슬픕니다.그리고 ,
20년 넘게 매일 같이 응원해온 제 친구가 참으로 슬퍼할겁니다.
오늘도 와이프랑 얘들 데리고 응원 간다고 하던데."
찡하다.
그 말을 듣고 20여년간 못살게 굴었던 자신의 손을 오늘따라 원망스러운듯 쳐다본다.
그리고 그 굴곡이 깊은 손등에 뿔테 안경 사이로 물방울 하나가 내려 앉는다.
또 한번의 침묵.
울음을 참듯 콧바람을 들어마시며 가방안에서 주섬주섬 뭔가를 꺼낸다.
"이거요. 선생님."
20여년 함께 해온 키보드-
"그리고 이건 친구분께 드리세요."
역시나 20여년을 함께 해온 마우스-
"오늘은 평생 잊지 못할 날이 될것 같네요."
-End.
이 글과 바람이 땅속에 묻고 훗날모두가 꺼내서 다시 볼 수 있는
타임머신의 글이 되기를 바라며.
그리고 이루어지기를 바라며.
강민.
그리고 모든 올드 선수들 파이팅.
-
"아, 왜 이제야 와.~ 자리 없겠다."
"그냥 오기 그래서 오랜만에 치어풀 좀 만들고 왔어"
"뭐 정말? 뭐라고 썼는데.."
"좀 부끄러운데 ..나이먹고 괜찮을까?"
"뭐 어때 좋은데. 빨리 들어가자."
참고로
저의 성은 이씨.
픽션에 등장하는 수빈이란 분은..
저의 소망. ^-^~
* 메딕아빠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8-03-02 16: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