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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2009/03/29 13:13:21 |
Name |
becker |
Subject |
(09)입스타하기 미안해질때 |
허세
근거없는 자기자랑으로 시작할까 합니다. 해설자들이나 관계자들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경기들을 오래봐온 경험등을 유추해봤을때 스타를 볼때의 분석이나 입스타등은 왠만한 사람보다 잘한다고 스스로 세뇌시켜왔습니다. 어떻게 했기에 이기고, 어떻게 했기에 졌고, 이선수는 어떠한 스타일기에 무섭고, 저 선수는 이런 스타일때문에 나중에 발목을 잡힐것이고 등등을 논하면서 말이죠. 2008년 말쯤 다시 제가 스타리그를 보기 시작했을때, 제가 이 판에 대한 흥미를 잃지 않는 법은 야구나 축구처럼 단순히 경기관전을 즐기는것이 아니였습니다. 제 예상과 경기중의 판단력을 시험해보며, 거기에 다른 결과를 비교해보기 시작했습니다. 예상은 대부분까지는 아니더라도 납득할만할 정도로 맞았고, 경기중의 분석 또한 그닥 나쁘지 않았기 때문에 스스로 자뻑하며 저는 반년째 대부분의 스타경기를 챙겨보아왔습니다.
이제동
어떠한 상황이 벌어졌을때 저의 반응은 대중적인 사람들과 보수적인 사람들의 중간단계, 즉 반 보수주의쯤에 위치해있는것 같습니다. 예를들어, 저는 본좌론에 대해 사람들이 심도깊은 논쟁을 하는것이 의미없다고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진짜 누군가가 임이최마의 대보를 있는 새로운 괴물이 하나 나왔으면 싶어했습니다. "본좌론은 어떻게 해야 성립되는가?" 많은 팬들로 인해 수많은 정의와 그에따른 반론이 있겠지만, 적어도 제가 생각한 저 질문에 대한 답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맵밸런스, 무대, 그리고 상대에 따른 분석이나 입스타가 모두 무안하게끔 절정의 경기력을 펼치는 선수"
우리는 장진남에게 앞마당을 들리고도 그의 근성과 컨트롤로 인해 상대를 링에서 끌여 내린 임요환을 기억합니다. 내로라하는 선수들이 몰린 프리미어리그에서 전승가도를 달리며 절대강자를 외치던 이윤열을 경외했습니다. 최연성의 무서움은 지금까지도 회자되고, 마재윤이 신한은행결승에서 이윤열을 꺾었을때, 그 많던 마재윤의 안티들은 분했지만 아무말도 할수가 없었습니다.
"사람의 플레이가 아닙니다, 이제동."
이제동이 신추풍령에서 변형태의 혼이담긴 뮤짤방어를 비웃기라도 하듯이 뚫어냈을때, 저저전에서 심리전으로 높은 승수를 챙겨온 마재윤을 심리전에서 이겼을때, 그전까지만해도 "이 선수가 어쩌고저쩌고해서 어쩌고저쩌고 이겼네" 라고 복기하던 저의 모습은 전혀 찾아볼수가 없었습니다. 입을 쩍벌리고 상황을 멍하니 바라보던 저는, 그까짓 입스타는 이제동의 예술적인 플레이앞에서 버릴수밖에 없었죠.
제가 이제 이제동의 5대본좌론이 수면위로 떠오를것이라고 확신하던 그 순간에, '추격자' 조병세가 있었습니다.
조병세
'이제동이 어설픈 올인을 하면 안됐다. 운영형 5드론은 토스한테나 통할지 모르겠으나 테란한테는 허점이 보이기 마련이다.'
'조병세의 대담성이 빛난 한판이였다. 긴박한상황에서 벙커에 목숨을 걸수도 있었는데 벌쳐를 기다린 플레이는 압권이였다.'
'임원기가 긴장할것을 알기라도 한듯, 조병세는 난전을 유도했고 이는 기가막히게 떨어졌다. 조병세의 수비력은 전성기때의 최연성을 보는것만 같았다.'
'7경기는 멘탈의 싸움이였다. 단판에 끝이나는 외줄타기 승부였기때문에 7차전이라는 생각보다는 체력이 다떨어진 2차연장전정도의 느낌이 났다. 조병세가 잘 추스리고 이겼다.'
저러한 생각들을 가지고, 화려한 미사어구나 그럴듯한 비유를 통해 또 다른 글을 마치 가래떡 뽑듯 뽑을수도 있었을것 입니다. 극도로 불리한 상황에서도 당황하지 않았던 조병세를 칭찬하며 그의 미래가 기대된다는 말로 간단하게 마무리를 할수도 있겠죠.
만약 무대가 결승전이 아니였다면, 역올킬이 아니였다면 말입니다.
입스타하기 미안해질때
스스로에게 다시 묻습니다. 나는 왜 입스타를 즐기는가? 왜 축구를 볼때는 베컴의 크로스 각도라던가 위치라던가를 분석하지 않고, 박지성의 주 활동량은 우측코너 지름 30m반경이라고 떠벌이지 않는데, 야구를 볼때 손민한의 시속이 얼마고, 종속이 어느정도이고, 언더핸드투수에 대처하는 이대호의 타격 메카니즘을 고민하지 않는데 말입니다. 단순히 그쪽에 대한 전문지식이 없어서만은 아닐텐데요?
스스로에게 대답합니다. 야구에는 홈런이 있고 2사만루를 극복한 후의 투수의 표효가 있고, 축구는 골이 터질때의 그 폭발감과 환희가 담긴 선수들의 세레모니가 저를 사로잡습니다. 스타를 볼때는 저를 중독하게끔 만드는 그 짜릿함이 상대적으로 부족해보입니다. 허영무의 템플러가 상대의 공격을 맞으면서, 고통섞인 표정과 깨지는 갑옷을 뒤로하고 스톰을 쓰는것도 아니고, 이영호의 마린이 마지막 남은 저그의 병력을 잡고 메딕과 감격의 포옹을 하지도 않고, 이제동의 뮤탈리스크가 상대방 미네랄필드에 땀을 뻘뻘흘리면서 혼을 싣는 뮤짤을 보여주는것도 아닌것처럼, 게임안에서의 전사들은 노력과 근성, 그리고 감정을 표출하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입스타'라는, 혹은 '포장'이라는 감질맛나는 조미료를 이 판에 섞습니다. 해설자들이 소리를 높여 "일꾼 쉬어주는거나 타이밍으로 봤을때 이건 올인이에요!" 라던가, "이렇게만 싸워줘도 회전력으로 이 선수가 이길수 있어요!" 라던가를 지적해주는 이유는, 지금 보고있는, 혹은 다가올 플레이에 대한 긴장감을 더해주는 역할을 하기때문입니다.
어제의 이제동을 보며 할말을 잃고 경기분석을 할수없게 만들었다면, 조병세는 결승전 이라는 무대에서 믿기힘든 대역전을 보여주었습니다. 사람들은 그의 벌쳐가 어떻고, 마린이 어떻고를 토론하지 않습니다. 눈앞에 펼쳐지고 있는 사건을 받아들이기에도 벅찬데 말이죠. 두 에이스들의 플레이를 기계적으로만 분석하기엔, 어쩌고저쩌고 언급하기에는 그들이 써낸 드라마가 너무 장대하고 감동적이기에, 어제의 경기를 보며 저는 색다른 감동과 짜릿함을 정말 오랜만에 느낀것 같아서 참 행복했습니다.
어제의 경기를 기억하면 저는 침튀기며 흥분된 곡조로 말할것입니다. 역사를 보았노라고. 입스타하기 미안해질때, 제 마음속에서 스타리그의 입지는 더욱 굳어버렸습니다.
우승을 차지한 CJ팀, 축하합니다.
* OrBef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11-09-19 0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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