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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06/07/05 20:27:34
Name 폭렬저그
Subject [기타] 아시아 최초의 유럽무대 진출 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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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루이프(Johan Cruyff), 네스켄스(Johan Neeskens), 마라도나(Diego Maradona), 리네커(Gary Lineker), 피구, 호나우두, 호마리우, 호나우딩요.....이 선수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물론 이들 모두 한 시대를 풍미한 또는 현재 진행형의 위대한 축구 선수들이다. 이들은 축구 선수로서 106년의 역사를 가진 20세기의 위대한 클럽 FC 바로셀로나에서 선수 생활을 한 적이 있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세계 최대의 멤버쉽을 가지고 있는 클럽, 민주적 운영 절차로 유명한 클럽, 빅리그 클럽들 중 유럽 3대 타이틀이 생긴 이후 한번도 빠지지 않고 참여한 유일한 클럽, 한번도 하부 리그로 강등된 적이 없는 이 부자 클럽의 역사를 만들어 왔다. 하지만, 그 역사 속에 찬연히 빛나는 한 아시아인의 모습은 세월이 흐르기도 했지만 큰 조명을 받지 못했다. 차범근과 박지성, 오쿠데라와 나카타 등 한일 중심으로 유럽 진출 선수들을 보도한 언론의 탓이기도 하지만 우리가 밟지 못했던 그 이전 세계에 대한 무관심 때문이기도 하다.

알칸타라(Paulino Alcantara), 그는 세계 축구계에 명함도 제대로 내밀지 못하고 있는 필리핀의 위대한 축구 선수다. 1910년 14살의 나이로 바로셀로나에 입단한 그는 아직도 깨지지 않고 있는 두 가지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그 하나는 최연소 출장 기록이요, 또 하나는 개인 최다 골 기록이다. 그는 바로셀로나에서 12년간 선수 생활을 하면서 357 경기에서 356 골을 기록하여 클럽 역사상 최다골 기록을 가지고 있으며, 아르헨티나의 신성 메시(Lionel Messi)가 2003년에 16세 4개월 23일의 나이로 바르셀로나와 포르투의 경기에서 데뷔했지만 그는 바르셀로나 역사상 세번째 최연소 선수였을 뿐이다.
그의 앞에 이미 알칸타라가 있었다. 알칸타라는 15세 4개월 18일의 나이로 카탈라(Catala)와의 경기에 출장하여 첫 세 골을 터뜨리는 해트트릭을 기록했다. 바르셀로나의 9대 0 승리. 리그 경기 첫 출장은 1912년 8월 14일의 사바델(Sabadell)과의 경기였는데 이 경기에서도 해트트릭을 기록했다. 바르셀로나가 8-2로 이긴 그 경기에서 바르셀로나 회장은 저 빼빼마른 선수가 도대체 누구냐며 감탄을 금치 못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필리핀 대표팀





















필리핀의 축구 기반은 극히 취약하다. 피파에 가맹한 205국 중 랭킹이 187위(2005년 8월 현재)라는 사실이 이를 대변해 준다. 2002년 12월 11월 이후 필리핀의 A 매치 성적은 8전 8패. 타이거컵에서 인도네시아에게 0대 13으로 패하는 수모를 당하기도 했다. 이 나라는 17세기 이래 스페인과 미국 식민지였고 1942년 이후 일본의 점령하에 있다가 1946년에 독립했지만 미국의 영향으로 농구가 최대 인기 스포츠다. 한국의 신동파가 아시아 최고의 슈터로 명성을 날리던 시절, 필리핀 국민들은 대통령 이름은 몰라도 신동파는 안다고 할 정도로 농구가 최고였다. 이 나라 축구의 현실은 몇년 전 한 선수가 베트남 리그에 진출한 것을 두고 축구 발전에 있어 큰 의미가 있다고 평가할 정도다. 하지만 20세기 초반 알칸타라는 그런 의미를 무색하게 할 정도로 세계 최고 수준의 선수였다.

알칸타라를 논외로 하더라도, 필리핀은 20세기 초반 아시아의 축구 강국이었다. 그 시절의 필리핀은 아시아 최초로 축구 국가 대항전을 가졌던 나라로 역사 기록에 남아 있는데, 그 경기가 바로 1913년 2월 1일에 열린 중국과의 경기였다. 우리가 경술국치와 3.1 운동의 과정을 거치면서, 일제 식민지의 질곡에서 신음했던 시절, 필리핀은 현재 남아 있는 역사 기록대로라면 일본, 중국과 함께 아시아 축구를 대표하던 세력이었다.

알칸타라는 1896년 10월 7일 필리핀의 일로일로(Iloilo)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그 지역에 주둔했던 스페인 군인이었으며, 어마니는 필리핀인이었다. 1910년에 그가 바로셀로나로 간 것은 학업을 위해서였다. 바르셀로나 유소년 클럽에 들어가 스페인에서의 축구 경력을 시작한 그는 1912년 8월 14일 바르셀로나의 성인팀에 데뷔하게 된다. 왜 그랬는지는 잘 알 수 없지만 알칸타라는 1916년부터 1918년까지는 필리핀에서 선수 생활을 했다. 보헤미안(Bohemian) 팀에서 뛰면서 필리핀 국가 대표로도 발탁된다.

스페인에게 돌아온 그에게 영국 출신 감독 그린웰(Jack Greenwell)은 수비수의 보직을 주었으나 바르셀로나 클럽 멤버들의 요구로 다시 공격수로 복귀하였다. 1920년에는 스페인 올림픽 대표로 선발되었으나, 그에게는 학업이 우선이었기 때문에 팀에의 합류를 거부한다. 필리핀과 스페인의 이중 국적을 가졌던 그에게 있어 축구는 부차적이었고, 축구보다 더 우선시된 것은 학업이었다. 그 때문에 그의 선수 생활 중 스페인 대표로 뛴 것은 여섯 경기에 불과했으며, 그 경기에서 그는 다섯 골을 기록했다. 스페인 대표 데뷔전이었던 벨기에와의 경기에서 팀이 기록한 두 골 모두를 기록하여 스페인의 2대 0 승리의 수훈갑이 되었다. 그의 나이 25살 때였다. 그는 비유럽 태생으로 스페인 국가 대표가 된 최초의 선수이기도 하다.

알칸타라는 그의 기념비적인 두 사건으로 인해 잊혀 질 수 없는 선수가 되었다. 하나는 1922년 4월 30일 프랑스와의 경기에서 35 야드 거리에서 골을 넣었는데, 네트가 찢어진 것이다. 나는 이 이야기를 믿을 수 없다. 어떻게 공이 네트를 찢을 수 있다는 말인가? 하지만, 이런 의심은 알량한 상식 차원의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필자의 한계일 것이다. 그는 그 경기 후 romperedes(net breaker; 네트 파괴자)라는 애칭을 얻었기 때문이다. 두번째는 같은 해 5월 20일 Les Corts stadium에서 또 네트를 찢었다는 것인데, 이쯤되면, 필자로서는 상식을 포기할 수 밖에 없다.

그는 누구보다도 킬러 본능이 뛰어났던 선수였다고 한다. 어떻게 하면 골이 되는지에 대해 동물적 감각을 지니고 있었다고 전해진다.

알칸타라는 1927년 7월 5일 은퇴했다. 스페인 국가 대표팀과 바르셀로나는 그를 위해 은퇴 기념 경기를 마련하여 위대한 선수의 은퇴를 아쉬워 하였다. 그가 바로셀로나에서 남긴 기록은 앞서 말한 대로 357 경기에서 356골, 다섯 번의 스페인컵 우승과 10번의 카탈루니아 리그 챔피언이었다. 그는 전공을 살려 의사가 되려 했지만, 스페인 축구계는 그를 놓아 주지 않았다. 1931년부터 3년간 클럽 이사로서 활동했고, 1951년에는 국가 대표팀의 코칭 스태프가 된다. 그가 있는 동안 스페인 국가 대표팀은 스위스, 벨기에, 스웨덴과의 3경기 에서 1승 2무를 기록했다.

알칸타라는 1964년 2월 13일 바르셀로나에서 세상을 떠났다. 그는 대부분의 축구 선수 경력을 스페인에서 이룩했지만, 필리핀에서 태어난, 필리핀의 국가 대표를 지낸 아시아 최초의 유럽 정복자였다. 아시아 최초의 유럽 진출 선수, 킬러 본능이 누구보다도 뛰어났던 선수, 알칸타라. 그에 대한 글을 쓰다 보니 킬러 본능을 강조했던 히딩크와, 알칸타라의 뒤를 이어 유럽에서 성공 신화를 쓴 차범근, 새로운 별이 되려 하는 박지성이 오버랩된다. 이 저녁, 어수선한 한국 국가 대표팀의 현실을 보며, 쓴 소주 한 잔을 마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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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column.eflamma.com/column/column/read.asp?columnist=&SEQ=131&page=&block=

출처 플라마 닷컴~

98년에 말레이시아 친구한테 첨듣고 헛소리하지 말라구 했는데 나중에 찾아보니 이런사람이 있더군요

지금까지 말레이시아라고 알고있었네요 필리핀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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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잡이발도제
06/07/05 21:07
수정 아이콘
우와;; 경기당 0.99골...
아우구스투스
06/07/05 21:29
수정 아이콘
오호... 몰랐던 사실... 이분도 차붐과 함께 아시아의 전설이시네요.
날라보아요
06/07/05 21:42
수정 아이콘
월드컵이 탄생하기도 이전에 선수네요.
축구의 전술은 물론이고, 기본적인 개념이 잡히기 전인 시절이라 기록만큼의 엄청난 실력의 소유자라는 느낌은 안들지만, 필리핀출신으로 저정도까지 했다는건 확실하게 눈의 띄는 선수였을 가능성이 높다고 봅니다.
자료가 있다면 보고싶은데 없겠지요? ^^
아우구스투스
06/07/05 21:55
수정 아이콘
이 좋은 글. 다른 곳으로 퍼가겠습니다.
ILoveH?;;;
06/07/05 22:21
수정 아이콘
차붐보다 대단하게 느껴지는..;; 차붐의 플레이를 직접 본적이 없는 것도 이유지만, 아시아 선수라는 편견을 속에 바르샤에서 저정도라는건.. 우와..;;
로망,,
06/07/05 22:34
수정 아이콘
그런데 저 때 당시 축구는 지금보다 축구에 대한 기술들이 많이 떨어졌었기에 일반적으로 전원공격 전원수비형축구(일명 동네축구라고 하죠.)였었고 또 현대축구처럼 수비들이 조직적으로 수비하는 형태도 아니어서 상대편 진영으로 한번 우루루공격갔다가 골 한번 뺏기면 공이 자기 진영 쪽으로 그대로 오기 때문에 공격수와 골피커의 1:1 상황이 많이 나왔습니다. 그래서 한경기당 평균 3~4골 이상이 나오는 것이 다반사였지요.
"사각지대는 그 어떤 골키퍼도 막을 수 없다. 그러나 난 막을 수 있다." 라는 유명한 말을 남긴 구소련 전설의 골키퍼인 야신이 대단한 이유는 축구의 전술이나 기본적인 개념이 조금씩 잡혀가던 당시 시대 상황에서(몰론 알칸타라가 활약한 시기보다 30~40년 후의 사람이지만) 한 경기당 3~4골씩 나오는 데도 불구하고 공격수와의 1:1 상황이 156번이 있엇는데 그 중 142번을 방어해냈고 20년동안 A매치/국가대표전 통산 270경기를 뛰면서 150회 이상의 패널티 킥을 막아냈으며 국가대표로 뛰었던 78경기에서 단 70골만 허용하는(경기당 0.90대) 실점률을 기록했기에 최고의 골피커에게 수여하는 상 이름이 야신상인 것입니다.
몰론 알칸타라 선수도 아시아 최초의 유럽무대에서 활약한 선수이고 당시 상황을 고려해 봐도 경기당 0.99골을 기록한 당시 최고의 선수였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전 개인적으로 공격수의 알칸타라 선수와 골키퍼의 야신 선수의 1:1을 붙여보고 싶은 마음이 드는군요. 아마 축구사 100년의 역사상 최고의 골잡이와 최고의 골키퍼의 대결이 될 수 있을 텐데요.
농심저글링
06/07/05 22:54
수정 아이콘
네트를 찢을정도의 슛이면 골키퍼가 피할듯보이네요..수비수의 블로킹조차 무마시킬듯-_-
06/07/05 23:19
수정 아이콘
총알 슛인가요;;
조콜의 독수리슛도 굉장이 멌있었는데
이젠 도깨비슛만 나오면돼네용;;
이디어트
06/07/06 03:30
수정 아이콘
도깨비는 슛할때 축구화가 같이 날아가면..음..-_-a
그리고 키퍼가 막은건 축구화 정도;;
D.TASADAR
06/07/06 08:57
수정 아이콘
아시아 모 사이트에서 저 선수가 아시아 레전드 1위더군요. 2위는 당연히 차범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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