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다시봐도 좋은 양질의 글들을 모아놓는 게시판입니다.
Date 2002/03/09 13:21:18
Name 항즐이
Subject 프로라는 이름을 위하여. 3. 승부와 윤리
프로라는 이름을 위하여.

3. 승부의 윤리

사실은 더 많은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좋은 이야기, 웃을 수 있는 이야기, 그리고 모두들 그저 긍정만을 할 수 있는 이야기들을 많이 하고 싶었다. 그리고, 그런 이야기들이 나에겐 꽤 있다.

하지만 우리는 너무나 많이 상처받아왔다. 누군가를 바라보는 눈과, 그 눈이 내가 사랑하는 누군가에게 꽂혀지는 순간으로부터.

이제는 나라는 사람이라도 거칠게나마 운을 떼고, 한번쯤은 돌을 맞아 봄 직도 한 일이다.

불쑥. 임요환이라는 이야기를 꺼내는 것이 이 화두에 가장 적합한 접근이다. 몇몇 게이머들 마저도 그의 플레이를 "기상천외한 기습"의 수준이라고 평가 했었다. 그리고 그 평가에 뒤이은 표현들은 "운, 그리고 기분상함"이었다.
그리고 초창기의 많은 팬들은 그의 플레이에 열광했다. "새로움, 그리고 창조적임"이라는 이름으로 말이다.

그는 황제가 되었고, 결코 배넷에서 이루어지는 주류의 전략을 통해 권좌에 오르지 않았다. 그의 칼은 검이라기 보다 예리한 도였고, 검법 역시 변초가 난무한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 무림은 그를 천하제일검으로 인정했고, 천하 백성들 역시 그의 권위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그는 정당한 권력을 가진 것일까?

그는 SCV댄스를 보여준 선수이다. 그리고 GG를 받아내기 직전, 드랍쉽을 움직일 줄 아는, SCV러쉬를 보여줄 줄 아는, 또한 뉴클리어를 공식전에서 사용하고자 하는 선수이다. 승리를 즐기려는 콜로세움의 투사처럼 오만할지도 모른다.

실수로 개발한 EMP를 저그의 유닛 앞에 쏘아볼 생각을 하는 선수, 프로토스를 상대로 공식전에서 숨겨 배럭을 하고, 저그에게 3배럭 날리기 러쉬를 할 수 있는 선수라는 점에서 우리는 그를 색다른 눈으로 바라본다.

하지만 "다르다"는 것과 "그르다"는 것은 어디까지 접근할수 있을까.

우리는 그가 "다르다"는 것에 이의를 제기할순 없다. 그는 분명 "다른"유저 이다. 그리고 그것이 그의 뒤에 수많은 백성이 따르게 한 원인이기도 하다. 그에 이어 많은 다른 게이머들 역시 "보여주어야 한다"는 명제에 참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있기까지 하다. 어찌되었든, 그는 다르다.

하지만 그는 옳은가? 혹은 그른가?

물론 그럴수는 없지만, 잘라 말하고 싶다. 왜 그의 플레이가 옳고 그름의 근거가 되어야 하는지. 우리는 우리가 즐기고 있는, 그들이 싸우고 있는 곳의 룰이 이미 정해져 있음을 인정하지 못하는 것만 같다.

우리가 즐기고 있는 것은 "서로를 쓰러뜨리기 위한 비정함을 필요로하는" 경기이다. 우리는 귀여운 병아리 두 마리를 레이스에 참가시켜 둔 동네 사람들이 아니다. 아직 비틀거리며 서 있는 선수에게 엄지를 땅으로 찍어내리며 열광하는 충혈된 눈들일지 모른다.

그들은 승리를 원한다. 그가 검을 쓰건, 도를 쓰건, 혹은 암술을 쓰건 승리와 패배의 이름이 과정을 통해 바뀌어지는 것은 아니다.

물론 그는 친한 선수와의 경기에서 필요 이상의 퍼포먼스를 취하다 상대에게 모욕을 안겨 주었을 수도 있다. 그리고 그것이 현실에서의 그의 삶을 옭아 맬 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의 입장에서 그것은 "오만한 승리자" 이상의 표현으로 나타날수는 없다.

그렇다면, 그를 싫어할수 있는가? 물론이다. 그를 싫어할 수 있다. 적어도 자신의 우상을 쓰러뜨리고 그 쓰러진 앞에서 춤을 춘 상대에게 분노를 삭이고 웃어줄 필요는 없는 것이므로. 하지만 그가 부당하다고, 혹은 승부는 그런 것이 아니라고 할 수는 없을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분노를, 혹은 세상의 윤리로 부터 가져온 생각에 의한 어색함을, 비난과 정당하지 못함으로 돌리려는 것은 아니었을까. 우리 당당히 분노하자. 충분히 그럴 수 있다. 조용히 나무 뒤에 나의 우상이 쓰러진 것을 바라볼 필요가 있을까. 당당히 소리치자. "너는 이겼으되. 나는 분노한다"고.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긴 이가 가지는 정당한 권리가 사라지지는 않는다는 것이고. 쓰러진 자 역시 새로운 길을 걸어 그 자리로 돌아올 것이라는 것이다. 우리가 바라는 것은. 분명, 승리다.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초보유저
위에 김동수 선수의 그 말, 저도 기억하는데 혹시나 해서 다시 봤는데요, "김동수 선수가 참내요"가 아니라 "김동수 선수가 잡네요!" 이 말이네요 ^^ 평소 엄재경 님이 잘 쓰시는 "이 선수가 이 겜을 잡는다"라는 표현인 것 같은데요.. ^^;;;
임요환의 앞마당 멀티 지역을 화면에 비추어 줄때 김동수선수 드라곤이 커맨드센터만을 공격하는 장면을 표현한걸로 아는데요.^^
아메바
다시 들어보세요. "잡네요"라고 했습니다...
나는날고싶다
02/03/11 16:27
수정 아이콘
- -; 거의 끝난 상황이라서 잡네요라고 했던 걸로 기억드는 되여..-.-;
'참내요'?? 뭘 참는단 말인지요? 무슨 뜻으로 하시는 말씀인지 도무지 납득이 안가는데요....-_-;; 저도 '잡네요'라고 알아 들었습니다만..
나기사 카오루
항즐이님...
제생각엔 아직은 아닌것 같은데여.^^
검은 바람
당연하다. 요환이 승부에 집착함은 모두가 본받을 점이다...
우주플토
흠...변칙이든 아니든 ..결국 이긴자가 이기는것....변칙의 기준도 모호한것이고..옛날엔 변칙이라 불리던것도 이젠 누구나 사용하고....역사는 승자의 역사??? 헛소리해서 지송/..
우주플토
근데 백성은 다소(^^;)어감이 따지는거 아니에요 오해마세요^^;
목마른땅
02/03/09 23:49
수정 아이콘
'오만한 승리자란 말'이 굉장한 의미를 함축하고 있는 듯...
지난 스카이배 결승 5차전 임요환선수의gg를 받아내기 직전, 엄재경님의 말씀이 떠오르네요." 야 ~김동수선수가 참내요"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3395 가볍게 쓰려다가 살짝 길어진 MCU 타임라인 풀어쓰기 [44] 은하관제4399 21/12/07 4399
3394 고인물들이 봉인구를 해제하면 무슨일이 벌어지는가? [66] 캬라10286 21/12/06 10286
3393 [역사] 북촌한옥마을은 100년도 안되었다?! / 한옥의 역사 [9] Fig.14285 21/12/06 4285
3392 굳건함. [9] 가브라멜렉3587 21/12/02 3587
3391 로마군의 아프가니스탄: 게르마니아 원정 [57] Farce4399 21/12/01 4399
3390 올해 국립공원 스탬프 마무리 [20] 영혼의공원4071 21/11/29 4071
3389 꽤 행복한 일요일 오후였다. [15] Red Key3797 21/11/23 3797
3388 [도시이야기] 경기도 수원시 - (3) [12] 라울리스타3310 21/11/16 3310
3387 신파영화로 보는 기성세대의 '한'과 젊은세대의 '자괴감' [23] 알콜프리4992 21/11/15 4992
3386 <1984 최동원> 감상 후기 [23] 일신5265 21/11/14 5265
3385 김밥 먹고 싶다는데 고구마 사온 남편 [69] 담담11322 21/11/11 11322
3384 [스포] "남부군" (1990), 당황스럽고 처절한 영화 [55] Farce4097 21/11/10 4097
3383 나의 면심(麵心) - 막국수 이야기 [24] singularian3356 21/11/05 3356
3382 신해철, '해'에게서 '소년'에게 (1) [26] 글곰3979 21/11/03 3979
3381 일본 중의원 선거에 관련된 몇 가지 이야기들 [78] 이그나티우스6785 21/11/03 6785
3380 [NBA] 영광의 시대는? 난 지금입니다 [28] 라울리스타6561 21/10/22 6561
3379 [도로 여행기] 대한민국에서 가장 높이 올라가는 도로, 만항재와 두문동재 [19] giants4766 21/10/30 4766
3378 [역사] 이게 티셔츠의 역사야? 속옷의 역사야? / 티셔츠의 역사 [15] Fig.13761 21/10/27 3761
3377 우리가 이곳에 있는 이유는 우리가 이곳에 있는 이유는 우리가 [12] Farce3575 21/10/24 3575
3376 누리호 1차 발사에서 확인 된 기술적 성취 [29] 가라한7490 21/10/21 7490
3375 [도시이야기] 인천광역시 서구 [41] 라울리스타5899 21/10/19 5899
3374 [ADEX 기념] 혁신적인 변화의 시기를 맞고 있는 헬리콥터 이야기 [22] 가라한5536 21/10/18 5536
3373 [역사]청바지가 500년이나 됐다구?! [15] Fig.16292 21/10/18 6292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6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1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