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다시봐도 좋은 양질의 글들을 모아놓는 게시판입니다.
Date 2018/09/26 05:58:34
Name 류지나
Subject 청산리 전역 이야기
왠만큼 국사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우리나라가 일제강점기를 거쳤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고, 일제에 맞서 항일 투쟁운동을 가열차게 벌였다는 사실은 한번쯤은 들으셨을 겁니다. 그 항일 투쟁운동 가운데서 가장 유명한 인물을 뽑자면 역시 김좌진 장군이며, 김좌진 장군을 유명하게 만든 독립군의 대표전투가 바로 [청산리 대첩]이지요.

3PfGVoL.jpg

[봉오동 전투와 청산리 전투 전역 지도]

그리고 사실 이 전투는 굉장히 뜨거운 논쟁거리가 되기도 했습니다. 청산리 전역에서 거둔 독립군의 성과가 과연 어느 정도인지 객관적인 검증이 부족하였지만 교과에서는 청산리 대첩을 강조하였습니다. (요즘은 대첩이라는 말은 안쓰고 애둘러 표현합니다.) 이 논쟁에서 가장 유명했던 사례는 바로 (지금은 없어진) 네이버 인조이재팬에서 벌어진 양 국가간의 역사 논쟁이었는데, 한국측의 완전한 참패로 끝났습니다.

그에 관해서는 조금 더 뒤에서 다루기로 하고 우선 청산리 전투라는 것의 실체부터 조금씩 더듬어보도록 하겠습니다.

1) 박창욱 교수는 [봉오동 전투와 청산리 전투]에서 지적하기를 "청산리 전투의 용어가 혼재하고 있음" 다라고 하였고 군사학적 견지에서 봤을 때 청산리 전투는 청산리 근처에서 벌어진 여러 전투의 종합이기 때문에 [청산리 전역]이라는 표현을 쓰자고 주창하였고, 저도 이를 인용하여 앞으로는 청산리 전역으로 통일하도록 하겠습니다.



[1] 청산리 전투는 어떻게 진행되었나.

핵심 타임라인만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1) 백운평 전투
(2) 천수동 습격, 완류구 전투
(3) 갑산촌 전투
(4) 어랑촌 전투
(5) 고동하 전투
(6) 기타 자잘한 10여 차례의 전투들

이 모든 전투들을 묶어서 청산리 전역이라고 부르는 전장이 되었던 것이죠.



[2] 한국측의 주장은 어떠한가?

먼저 청산리 전역에 대한 위키 백과의 서술은 이러합니다. (https://ko.wikipedia.org/wiki/청산리_전투)

(1) 백운평 전투 : 적 200여명 사상
(2) 완류구 전투 : 적 400여명 사상
(2-1) 천수동 습격 : 적 120여명 사상
(3) 갑산촌 전투 : 적 1200~1300여명 사상
(4) 어랑촌 전투 : 적 연대장 포함 300여명 사상
(5) 만록구 전투 : 적 수백여명 사살
(6) 고동하 전투 및 기타 : 어쨌든 이김

종합하자면 전사자 1200명, 부상자 3300명으로 추산하고 있군요. 사실 이 기록은 대부분 박은식이 쓴 "한국독립운동지혈사"에 나왔던 주장에 불과합니다. 당연하지만 박은식의 당시 사정을 봤을 때 상세한 사료의 교차 검증은 불가능했고 어디까지나 "~~했더라"는 소문에 가까웠습니다. 내지는 이범석 장군이나 전투 참여자의 회고나 쪽지등의 종합이었지요.

2) 이범석 장군은 해방 이후의 회고록에서 청산리 전투에서 일본군의 사망자를 3천명까지 부풀립니다.


좀 더 공신력 있는 매체들은 어떨까요?

WBHkWdN.png

7차교육과정 중등 3학년 사회 역사(2)에 실린 부분을 인용하자면 (http://contents.history.go.kr/front/ta/view.do?levelId=ta_m71_0100_0030_0010_0020) 위와 같습니다. 연대장을 포함한 1200여명 전사. 대체로 비슷하죠?
이것은 당시 청산리 전투에 대한 독립신문의 보고서를 그대로 인용한 것입니다.

독립신문에 실린 대한군정서의 전투 보고서 (http://contents.history.go.kr/front/hm/view.do?treeId=010701&tabId=01&levelId=hm_126_0010)

즉 한국 정부의 '공식적인 답변'으로는 청산리 전역은 일본군 1200여 명을 사살한 빛나는 승리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3] 일본측의 주장은 어떠한가?

일단 일본측이 그린 그림부터 봅시다.
1920년 현재, 일본은 러시아의 적백 내전에 개입하였고 시베리아로 최대 5개 사단, 72000여 명을 파병한 상태였습니다.
사실 1920년대의 일본은 1차 세계대전 종전 직후의 대호황을 맞이한 상태였고, 이를 바탕으로 최초로 군부에 대한 문민통제가 가능해진 상태였습니다. (시베리아 파견군은 1922년 정부가 파병 예산안을 거부하여 되돌아오게 됩니다)

3) 우리야 1919년 3.1 운동을 통해서 민족의 목소리를 외치자 일제가 찔끔해서 문화 통치를 했다는 걸로 우리 좋은대로 해석을 합니다만...

만주와 연해주 지역에서 난립하는 한국 독립군의 활동은 일본군에게도 골치였습니다. 그리하여 일본군은 대규모 전력투사를 시행하게 되죠.
현 편제인 일본 21개 사단 가운데서 일본이 아니라 조선에서 증설중이던 19사단과 20사단이 거리와 여건상 적절하여 이 2개 사단이 낙점됩니다. (1920년대 일본의 편제상 1개 사단은 대략 8천 ~ 1만여명 정도) [신효승, 청산리 전역시 일본군의 군사체계와 독립군의 대응]

이 두개 사단은 서부전선/동부전선으로 나뉘어서 독립군 및 그 지역에 살던 한인들을 '토벌'하고자 하였습니다. 동부전선은 훈춘과 왕청을 포위하는 포위망으로 구성하는 대략 1만명 가량의 침략군이었습니다. [박창욱, 봉오동 전투와 청산리 전투 연구]

YFu3rWr.jpg

[대략적으로 붉은원 안이 동부전선, 녹색원 안이 서부전선으로 보시면 됩니다]

동부전선은 독립군의 주요 보급기지였고 따라서 일본군이 심혈을 기울인 공격을 막기보다는 일단 기지를 비워두고 피하는 식으로 피해를 최소화하였기에 딱히 역사적으로 남은 전투는 없습니다. 따라서 독립군의 주력이 모여 있었고, 이 주력이 모여있는 서부전선으로 들어오는 일본군과의 맞대결이 바로 청산리 전역의 시작이었습니다.

청산리 전역 하면 보통 독립군이 지형을 이용해서 일본군을 끌어들인 후 매복, 포위하여 섬멸하는 이미지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실상은 당시 임정의 국무총리인 이동휘의 지시는 "반일역량을 보존하였다가 일본군이 물러나면 역량을 회복하여 반일투쟁을 견지" 하라는 지시였다고 합니다. 이에 따라 독립군들은 되도록이면 일본군을 피하고, 어쩔 수 없을 때만 지형을 활용한 역습 후 퇴각을 통해 최대한 전투력 보존을 목표로 하였던 것이죠.

따라서 청산리 전역의 전투는 매복과 기습의 전투가 아니라, 추격과 도주 과정에서 산발적으로 만나는 조우전 형태가 되었습니다.


독립군이 맞서야 하는 일본군의 규모는 어느 정도였을까요? 박창욱 교수는 동 논문에서 대략적으로 5천여명의 규모로 추산합니다. 그러나 이 병력이 전체가 전투 병력은 아니었고, 한덩어리도 아니었기 때문에 기타 병과나 비군인을 제외하고 본다면

1개 대대
13개 중대
6개 기관총 소대
기타 여단 사령부 외 병력

(모두 합쳐서 아즈마 지대라고 칭하였음)

등을 추산하면 아즈마 지대의 순수 전투병력은 3천여명 가량으로 짐작됩니다.

특기해야 할 것은 여기에 일본군은 산포대와 저격포라고 하는 화포를 배치함으로서, 인력의 부족함을 화력으로 메꾸고자 하였습니다. 앞서 언급했던 바, 일본은 현재 러시아에 많은 병력을 빼내어 병력이 부족한 상태였기 때문이죠.

자, 일본군의 상황과 규모도 알아봤으니 이제 일본이 스스로 평가하는 청산리 전투의 상황을 알아봅시다.
일본군은 청산리 전투가 끝난 뒤, 전투에 대한 평가로 [간도출병사]라고 하는 보고서를 만들었습니다. 이하 언급할 내용들은 대체로 이 간도 출병사를 인용한 논문에서 발췌한 내용입니다.


(1) 백운평 전투 :
야스가와 소좌 소속 일본군 200여 명이 선진 정찰대를 편성. 4시간여의 수색 끝에 북로군정서 군과 조우, 30여분의 짧은 전투 후 북로군정서 군은 퇴각. 야마다 지대는 퇴각하는 북로군정서 군을 추적하였으나 추적하는데 실패.
(북로 군정서 군은 250여명, 일본군은 선견대 90명의 조우전이라는 설도 있음)

(2) 천수평 습격 : 일본군 27 기병연대 20여명을 새벽에 기습함

(3) 완루구 전투 : 퇴각하는 홍범도 부대를 포착한 아즈마 지대가 공격했으나 홍범도 부대는 감쪽같이 사라짐.
청산리 전투에서 일본군이 서로 총을 쐈다는 이야기가 퍼졌는데, 가능성이 있다면 바로 이 시점. 홍범도 부대를 포위하려던 일본군끼리 서로 오인 사격했을 가능성 있음. 그러나 독립군이 홍보하는 것처럼 서로 전멸할 정도로 싸웠다거나 하지는 않았을 것으로 추정.

(4) 어랑촌 전투 : 청산리 전역에서 가장 치열했던 전투.

계곡과 산봉우리를 끼고 방어진지를 편성한 독립군과 이를 뚫으려는 일본군의 대결. 지형이 많이 험난하여 전력 투사가 어려웠기에 일본군은 주로 포병 전력을 통한 공격 및 우회로를 찾아 기동하려는 시도를 함. 독립군은 우월한 지형을 끼고 비록 포병은 없어도 잘 버팀. 몇 차례의 일본군의 우회 기동 시도를 성공적으로 저지했으며 사라졌던 홍범도 부대가 이 때 불쑥 등장함. 일본군은 홍범도 부대에 의해 포병 부대가 공격받을 것을 우려하여 공세를 포기. 야간이 되자 어둠을 틈탄 독립군 부대가 성공리에 철수함.

한국측은 여기서 카노 연대장이 전사했다고 했으나, 실제로 이후 기록에 동일인물이 멀쩡하게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잘못된 보고인 듯.

(5) 고동하 전투 :
야스카와 소좌가 이끄는 중대가 후퇴하던 독립군의 야영지를 발견, 추적했으나 약 30여분간의 교전 끝에 다시 독립군은 퇴각. 일본군은 추격했으나 숲에다 불을 지르는 등 독립군의 기만 작전에 의해 소득을 거두지 못하고 귀환. 일본군 사망자 4명.

(6) 이하 기타 자잘한 전투가 있지만 특기할 만한 건 없음.

이후 일본 사학자의 연구에 따르자면 청산리 전역에서 전사한 일본군은 11명, 부상자는 24명으로 평가한다고 합니다.



[5] 어느 쪽이 모순이 적은가?

일단은 우리 측의 평가인 1200명 사살, 3000여명 부상을 입혔다는 주장은 아무래도 받아들이기 힘들죠. 전체 병력이 5천명인데 4200명을 사상시켰다는 건, 여단 병력의 괴멸을 의미합니다. 현대전에서는 엄격히 말해서 사상자가 전체의 30%만 발생해도 전멸했다고 평가하는데, 5천명 중에 4200명 사상은... 즉, 일단 한국측 보고는 모순점이 너무나 많다는걸 깔고 갑니다.

여기에 또한 전과 비교는 보통 피해를 입은 쪽의 기록을 신뢰한다는 원칙에 따르자면 이 또한 우리에게 불리합니다. 실제로 영국 방공전이나 태평양 전쟁에서의 무수한 전투에서 많은 군인들이 (국적을 가리지 않고) 터무니없는 과장 전과를 자랑했으나 전쟁이 끝난 후 엄격하게 교차 검증해보면 대체로 피해자의 전투 기록이 옳았습니다.

혹자는 이렇게 얘기합니다. 일본군은 정보 은폐 및 허위 과장 보고의 달인이니까, 청산리 전투 기록도 충분히 허위 또는 누락 기록이 있을 수 있다고. 일견 그럴듯 합니다. 그러나 위의 내용들이 담긴 일본측 보고서는 언급했듯이 [간도출병사]라는 책인데, 이 책은 공개적으로 선전하는 책이 아니라 일본군 내부에서 전투를 자체 평가하고 미비한 점을 보완하는 비밀 자체평가서라는 점입니다. 그리고 일본군은 이러한 보고서마저 허위로 쓰는 멍청이들은 아니었습니다.

예를 들어, 미드웨이 해전에서 참패한 일본은 그야말로 허위와 왜곡의 날조 뉴스로 국민들을 기만했지만, 내부에서는 '나구모 보고서'라는 것을 만들어 미드웨이 해전의 패전 원인을 철저하게 분석합니다. 즉 적어도 외부로 새어나가지 않는 자체 평가서의 신뢰도는 굉장히 높다고 평가할 수 있겠습니다.


가장 아픈 점은, 우리의 주장이 [일본군은 왜곡 조작이 많았으니까 이것도 왜곡이 있었을거야][니들이 이겼으면 왜 간도 토벌을 그렇게 참혹하게 했니?] 수준의 간접적 주장 말고는 우리의 전과를 객관적으로 평가한 자료가 없다는 겁니다. 그치만 위에서 쭉 나열한 대로, 전과를 교차 검증할 수 없으면 피해국의 자료를 신뢰하는게 원칙이고, 오히려 우리의 전과 기록이 터무니없이 과장되어있는 장면들이 군데군데 드러나 있어 일본측의 많은 공격을 받았습니다.


돌이켜보면, 우리보다 훨씬 강력하고 화력도 증강되었으며 전차 중대도 보유했던 미군이 과달카날에서 이치기 지대를 맞서 싸워서 900여명의 일본군을 괴멸시키고 약 800명을 전사시켰지만 끝내 일본군 전멸은 시키지 못했는데, 20년 후의 미군도 해내기 어려웠던 이러한 전과를 여러가지 악조건에 맞닥드렸던 독립군이 해냈을거라고 상상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한때 (또는 지금도) 퍼져있던 '청산리 대첩'에 대한 환상은, 인조이재팬에서 역사 배틀을 벌였다가 한국쪽이 완패함으로서 참혹한 결말을 맞았습니다. 한국은 교수까지 출동했으나 패퇴함으로서 지켜보던 네티즌들이 소위 말하는 '국뽕'에서 벗어나 대한민국 역사교육에 대한 회의감 그 자체를 느끼게 되었고 그 중 상당수는 우경화하여 변질되어버리는 등 한국 인터넷에 끼친 악영향도 상당했지요.

오늘날 우리쪽 사학자들은 대체로 일본군 사상자를 400~450여 명으로 추정하던데 사실 이 정도만 해도 굉장한 전과이니만큼 객관적 증거로 밝혀진다면 청산리 전역을 대승이라고 평가해도 문제는 없을거 같긴 합니다.


청산리 전역의 의의는 무엇인가. 박창욱 교수는 이렇게 주장합니다.

"청산리 전역에서의 전투는 빛나는 승리라 할 만하다. 그러나 이것을 일본군의 '경신년 대토벌'이라는 큰 그림에서 미루어 볼때, 국지적인 승리에 불과하며 이 지역에서 벌어진 전투에서 독립군과 민중이 큰 피해를 받았다."


청산리 전역에서 독립군들은 기민한 움직임으로 어느 정도 전과를 올림과 동시에 일본군의 추격을 좌절시켰습니다. 그러나 본질적으로 일본군 전체를 물리칠만한 역량을 가지고 있지 못한 독립군에게 이 정도의 승리는 대세에 큰 영향을 주지 못했고, 전력을 보강한 일본군의 학살 작전에 휘말려 많은 피해를 입고 말았습니다. 따라서 저는 전술적 승리, 전략적 패배라고 평하고 싶습니다.

청산리 전역에 대해 여러분은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참고 문헌

[장세윤, 만주지역 독립운동 연구의 회고와 전망]
[박창욱, 봉오동 전투와 청산리 전투 연구]
[조동결, 만주에서 전개된 한국독립운동의 역사적 의의]
[신효승, 청산리 전역시 일본군의 군사체계와 독립군의 대응]
[박창욱, 동북 지역 한민족독립운동사 관련 사료 정황]
[박창욱, 김좌진 장군의 신화를 깬다]
[기타 위키피디아, 나무위키, 우리역사넷 등 홈페이지]


* 노틸러스님에 의해서 자유 게시판으로부터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19-02-17 15:24)
* 관리사유 :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18/09/26 06:11
수정 아이콘
사실 잘 모르는 주제라서 뭐라 첨언할 수는 없는데, 그래도 정성 가득한 고퀄 글은 언제든 추천.
오'쇼바
18/09/26 07:43
수정 아이콘
국뽕도 좋지만 어느정도 개연성은 있어야죠
내일은
18/09/26 07:46
수정 아이콘
게릴라는 지지 않으면 이긴 거라서... 압도적인 적의 본격적인 토벌전에서 주력을 온존하며 가끔 반격까지 한거면 전투에서 승리라고 할만합니다. 다만 국지적인 승리인 것도 맞아서 결국 일본의 궁극적인 목표었던 간도 전체에서 독립군의 조직과 역량 자체 소멸을 허용했다는 점에서 전략적인 패배도 맞고요.
18/09/26 07:53
수정 아이콘
교과서에서 배운 역사에 맞는 부분이 있기나 한가요 ㅜㅜ
카와이
18/09/26 08:08
수정 아이콘
국뽕에서 벗어나 최소한 사실은 제대로 전하는 교육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청산리 전역은 국뽕을 걷어내고 봐도 훌륭한 승리입니다. 국가 정치체계가 붕괴 한 뒤에도 일본에 저항하는 한인들이 상당수 존재했고 성과도 있었다는 거니까요.
18/09/26 09:40
수정 아이콘
이건 전과로 국뽕 삼을게 아니죠. 그 어려운 상황에서도 독립을 포기하지 않고 투쟁한 독립군 자체가 국뽕입니다.
어렸을때야 이야 청산리 대첩. 일본군 전멸시켰지. 하고 넘어가지만 조금만 머리 커져도 일단 관심 자체가 없고 관심을 가지면 너무 뻥이 심하다 느껴집니다.
그래서 과연 김한민 감독이 감독한다는 봉오동 전투 영화는 어쩔지.안봐도 명량 재탕일듯.
18/09/26 10:13
수정 아이콘
그래도 명량은 그런 불리한 조건.. 말도 안되는 전투에서의 승리가 사실이라 감동이긴 했습니다. 처절한 해전도 좋았고요. 몇몇 어거지 감동씬들 빼면 전 명량 좋네요
쟤이뻐쟤이뻐
18/09/26 09:53
수정 아이콘
과도한 국뽕, 과도한 민족 강조는 역사를 병들게 합니다.
metaljet
18/09/26 09:57
수정 아이콘
단지 국뽕 차원이 아니라 무장항일투쟁의 전과는 그 계보를 잇는 남북 정치세력의 정통성 싸움과도 직결된 문제입니다. 인정하기 쉽지 않아요.
18/09/26 10:38
수정 아이콘
오늘도 TMI가 되긴 위한 귀한 지식을 얻어갑니다.. 크크
Liberalist
18/09/26 10:42
수정 아이콘
청산리 전투는 확실히 전투에서는 이겼으되 전략에서는 패배했다는 표현이 들어맞는 전형적인 사례 가운데 하나 아닌가 싶습니다.
wish buRn
18/09/26 10:53
수정 아이콘
독립군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의문가졌는데,
요즘 중동을 보면 큰 의미가 있었구나 싶습니다.
18/09/26 13:32
수정 아이콘
상식적으로 당시 독립군의 수나 무장의 상태가 ...기관총 부대를 동원하는 일본 정규군 상대로 수천명을 사살하는 그런 전과는 .....
껀후이
18/09/26 13:46
수정 아이콘
헉 오늘 오전에 얼떨결에 청산리전투 구글에 검색해보다 알게된 사실인데 피지알에 올라와있더니......이런 우연이 후덜덜 오전에 먹은 충격 또 받네요 허허..
그래도 정보가 충분치 않던 그 시절 민초들에게는 마음 속에 하나의 사이다였겠지요...? 참 생각하면 할수록 암울한 시대였습니다ㅠㅠ
제 추측입니다만, 오늘아침 네이버 첫꼭지에 이런 제목의 뉴스가 뜨더군요
"文 "북일 정상화" 강조…화해치유재단 해산 의사 전달"
화해치유재단이 뭔지 모르는 사람이 보면 문대통령이 약속 어기고 위안부 문제에 일본 손을 들어준 것 같은 제목입니다...실상은 박근혜 정부 때 10억엔 받고 설립한 재단이고 위안부 피해자들이 반대하니 해산하겠다는 것입니다...제 추측이 과한 것인지 모르나 아직도 이렇게 국론분열을 유도하는 세력이 있다는 것이 개탄스럽습니다 제1야당은 대놓고 아베총리와 자민당의 선전을 기원하지를 않나...어서빨리 역사가 바로 서고 기생충 같은 무리들이 뿌리 뽑히기를 바랍니다
랑랑이
18/09/26 23:58
수정 아이콘
(수정됨) 저게 무슨 국론분열입니까? 북한은 일본한테 감정이 극히 안좋으니 그것 역시 정상화시키기 위해 박근혜가 만든 어처구니 없는 재단 해산하겠다는건데.. 보자마자 뭔소린지 바로 알겟던데요. 님이 화해치유재단이 뭔지 몰라서 잠시 흠칫하신거 같은데 알만한 사람은 다 알죠. 상식적으로 저 제목으로 일본편 들었나보다 생각하는사람이 있을거라고 생각하시는지? 이걸 가지고 이또한 기레기의 제목뽑아 대통령까려는 음모 이런식으로 몰아가는건 좀 과몰입 같아보입니다.
18/09/26 13:48
수정 아이콘
국뽕에서 벗어나 있는 사실을 그대로 전해야죠. 자국의 역사도 국뽕을 첨가하는데, 주변국이 역사 왜곡한다고 비난할 수는 없는 노릇이죠.
청산리 전투는 사실만 그대로 전해도 될 정도로 충분한 성과인데요.
Lord Be Goja
18/09/26 15:31
수정 아이콘
이길수있는 전쟁을 한게 아니라 누군가는 해야 하는 전쟁을 했던분들이죠.
도연초
18/09/26 16:22
수정 아이콘
(수정됨) 제가 일년쯤 전에 시간도 좀 있고, 일본 혐한들의 생각을 알고싶은 마음에, 니코니코의 혐한방송 방에 한동안 드나든 적이 있습니다.
딱히 일본인인척 하지는 않았고요, 첨부터 한국인이라고 밝히고, 당신들 생각에 동의하기는 어렵지만, 그냥 당신들 얘기를 좀 들어보고 싶다... 라고요.

방장은 인조이재팬 시절부터의 유서깊은(...) 혐한이고, 그 외 자위대 출신의 고정 멤버가 두 명, 이렇게 세 명이 스카이프로 통화하면서 하는 방송인데,
의외로 욕설을 하거나 크게 배척하는 분위기는 없고, 친절히(?) 여러가지를 알려주더군요.

청산리 전투가 사실은 일본의 승리였다? 라는 얘기도 거기서 처음 들었습니다.
저도 그저 "김좌진 장군의 청산리 대첩" 정도로만 알고있었기에 처음엔 이게 무슨 헛소리인가 했지만,
이것저것 검색해 보니 본문과 유사한 내용의 글들이 눈에 띄어서 당혹스럽더군요.

본문에도 언급되어있는, 인조이재팬에서 키배로 한국 교수를 털었다는 내용도 자랑스럽게 얘기하던데,
이것도 헛소리가 아니라, 그쪽 바닥에서는 제법 유명한 얘기더군요. 지금도 "인조이재팬 서울대 교수" 로 검색하면 이것저것 나옵니다.

이 사람들은 그저 날조된 페이크뉴스에 현혹된 사람들일 것이라는 예상과는 달리, 상당한 논리와 지식으로 무장하고 있었습니다.
예컨대, 일본의 조선침략의 시발점이 된 운요호 사건에 관해서, 하루에 두세 시간씩 일주일 정도에 걸쳐서 다루는데, 1차사료 강독을 하더라구요.
함장의 일지, 함대 사령부에의 보고서, 외교전문 등등... 솔직히 많이 놀랐습니다.

요즘은 발길을 끊어서 잊고있었는데 이 글을 보고 문득 생각이 났습니다.
류지나
18/09/26 16:28
수정 아이콘
이미 근대국가로서의 틀을 갖추고 여러가지 보고 체계나 사료 저장을 한 일본과 나라 전체를 송두리째 뺏긴 한국을 수평 비교하면 당연히 털릴 수 밖에 없을 거 같습니다.

아무래도 독립군에 대한 지나친 신성화가 이어졌던 것이 일본의 사료 기반 반박에 허무하게 무너져버린 것이죠.
홈런볼
18/09/27 01:50
수정 아이콘
일본의 근대화에 대해선 지금 봐도 깜짝깜짝 놀라곤 합니다. 그에 반해 조선은 사실 그당시 형편 없던게 사실이죠.
이런저런 역사적 사실을 알고 나니 무조건 일본을 까고보는(최근에는 미스터션샤인, 한국 혐일 분위기에 올라타 아주 감정적으로 일본을 깠죠.) 정서에는 오히려 반감마저 듭니다.
이런 상황까지 오니 어찌보면 종군위안부의 문제에 대해서도 일본측의 주장을 들어보고 싶기도 할 정도입니다.
우리나라는 직접 경험하신 분들의 증언에 의지하는 부분이 많은데 일본은 혹시 계약서나 관련기록들이 많이 남아 있을 것 같아서요.
파고들면 들수록 혼란스런 역사들이 너무 많네요. 그리고 쓸데없이 미화되고 찬양되는 역사가 많은 것도 속상하고요.
kicaesar
18/09/26 16:25
수정 아이콘
역사는 시간이 흐르면서 변하는군요.
제가 역사를 배울때는 "대첩"이 당연시되었었는데.....

그런면에서 연구가 진행되어도 대체 전공이 깎일 기세가 없는 충무공은 대체.......
18/09/26 16:51
수정 아이콘
자랑스러운 마음은 변함이 없지만, 조금 더 제대로 알고 싶은 마음은 더 듭니다!
La La Land
18/09/26 17:06
수정 아이콘
와 국사,근현대사.... 헛배웠다....

여태까지 교과서에서 배운대로 일본군 대군이 의기양양하게 만주, 연해주 토벌하러 들어오고

지형지물을 활용한 완벽한 전술로...마치 언덕 입구에서 마린메딕파이어벳 부대가 저글링 어택땅 오는거 녹이듯이

싸먹으면서 대승한 전투인줄만 알았는데.....거의 날조 수준이었네요 ㅡㅡ 3천명은 개뿔....
18/09/26 17:42
수정 아이콘
항일독립전선을 이상한 곳에서 부각시키고 부풀리려는게 진짜 교육의 문제죠. 그런 잘못된 교육은 오히려 역효과를 만듭니다.
18/09/26 19:19
수정 아이콘
교과서에서 본거마냥 절벽위에서 기관총이랑 폭탄으로 밑의 일본군 살육하는 그림만 상상됐던지라 충격이네요. 애초에 추격하는 부대가 매복공격당해서 손해가 생기는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면 전술적승리도 솔직히 정신승리아닌가요?
서린언니
18/09/26 20:52
수정 아이콘
(수정됨) 나라잃은 상태라 지원도 거의 없을테고, 무장한 독립세력을 만들기가 쉬운게 아니죠. 그렇게나마 세력을 유지해서 저항을 했다는거에 의의를 두어야겠지요.
https://youtu.be/Mtn3AydOpEI (45분쯤에 청산리 전투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토크멘터리 전쟁사 독립전쟁 한국 특별편
류지나
18/09/27 03:01
수정 아이콘
지금 다 봤는데 좀... 많이 편향적인 방송이네요.
bemanner
18/09/26 21:16
수정 아이콘
전술적 승리/전략적 패배라기에는 애초 목표였던 '항일역량을 보존한채로 후퇴'하는데는 성공했으니 전략적 목표를 달성하긴 했다고 봐야하지 않나요?
민간인 보호에 실패한 거야 분명하지만 이거는 정규군이 대놓고 민간인 살육을 목표로 움직이는데 그걸 못막는 게 전략적 패배라고 하면 좀 안맞는 거 같고요.

소소한 전술적 성과와 막대한 민간인 희생을 통해 전략 목표를 달성하는데 성공했지만 그 비싼 대가를 치르고 보존한 전력이 채 1년을 못 갔다(자유시 참변)- 정도로 생각합니다.
18/09/26 22:19
수정 아이콘
최근에 독립운동사 전공하시는 분들 가운데 몇몇 분들께서 지나가는 말로 청산리 전역 문제를 꽤 언급하시기는 하더라구요.
저는 경제사 쪽이라 논쟁에 깊게 발 담글 여력이 없어서 보고 듣고 배우는 입장이라서 그렇군요.. 하고 넘어가긴 했는데,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여유되면 참고문헌에 있는 글들 좀 읽어봐야겠네요. 감사합니다.
9년째도피중
18/09/26 23:13
수정 아이콘
팩트에 맞지않는 역사는 그 의도가 어떻게 되든 최종적으로는 모순에 빠질 수 밖에 없습니다. 그 모순때문에 어릴적 애국심에 불타던 역덕들이 후에 소위 흑화되는 모습을 본게 한 두번이 아닙니다.;;
이제 비로소 그 모순을 수용하고 역사를 그대로 수용할 수 있는 단계가 오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전부터 들은 바는 많았으나 딱 정리된 글을 찾지 못했는데 오늘 좋은 글을 읽어 기쁩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동시에 1차대전기 러시아와 일본의 전쟁, 러시아의 적백내전 에 대해 너무 안알려져있는 것 같습니다. 이 전쟁들에 대한 이해가 배경이 되어야 봉오동 전투부터 자유시 참변까지 이어지는 독립전쟁사가 이해될텐데 말이죠. 이 부분에 대한 전반적 지식이 부족합니다만 제가 알기로는 일본의 간도 독립군 토벌작전은 일본의 연해주 공략과 깊은 관련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말이죠.
홈런볼
18/09/27 01:41
수정 아이콘
동감합니다. 이 글을 보고 나무위키지만 청산리전투와 자유시참변이랑 김좌진에 대한 부분을 다 읽어봤네요. 참담합니다.
학창시절 청산리대첩이라 배우며 자랑스러워 했던 역사가 한순간에 뒤바뀌니 혼란스럽습니다.
일본이 진짜 나쁘기만 했나 하는 생각마저 들고요.
그저 국뽕에 취해 자위하며 일본놈들은 그저 죽일 놈 까대기만 했던 슬픈 역사는 아니었나 매우 자괴감 드네요.
인정할건 인정하고 더 분발해야 발전이 있을텐데 이런식으로 자위하며 국뽕에 취해있다면 영원히 일본을 넘기 어려울거라 봅니다.
류지나
18/09/27 01:52
수정 아이콘
여담인데, 조사하면서 한국 위키피디아 청산리 전투를 봤더니 출처 근거라는게 고작 만화로 그린 만화 역사책이랑 이덕일의 주장이라서 한숨밖에 안 나오더군요. 나무위키보다 더 신뢰성이 부족한게 한국 위키피디아 수준인...
18/09/28 23:58
수정 아이콘
작성자님 혹시 다른 사이트로 퍼가도 될까요? 출처는 꼭 남기겠습니다.
류지나
18/09/29 00:01
수정 아이콘
네. 퍼가셔도 됩니다.
18/09/29 00:04
수정 아이콘
감사합니다.
아웅이
19/02/18 17:55
수정 아이콘
김 좌-진 장군의 아들, 김두한이다! 부터 생각나네요
아웅이
19/02/18 18:03
수정 아이콘
정보 감사합니다
독립투사분들 정말 고생 많으셨고 감사하지만, 과대포장할 필요는 없겠죠.
주여름
19/05/04 22:42
수정 아이콘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3422 상나라의 인신공양을 알아봅시다 [44] 식별2302 22/01/16 2302
3421 실천해보니 좋았던 직장내 소소한 습관들 [42] visco2550 22/01/16 2550
3420 [성경이야기]야곱의 거짓말 [21] BK_Zju5386 20/12/10 5386
3419 난 뭘 벌어먹고 살 것인가 [77] 깃털달린뱀4973 22/01/15 4973
3418 [기타] 나는 어떻게 무공을 만들었는가 (1) - 디아블로2 레저렉션 [54] 험블1954 22/01/13 1954
3417 내가 겪었던 좋은 사람들 [25] 착한아이1965 22/01/13 1965
3416 연대는 사라지고 억울함만 남았다. 우리에게 무엇이 남을까? [185] 노익장2329 22/01/12 2329
3415 2021 플래너 모아보기 [26] 메모네이드1642 22/01/12 1642
3414 [NBA] 클레이 탐슨의 가슴엔 '불꽃'이 있다 [19] 라울리스타2250 22/01/10 2250
3413 [팝송] 제가 생각하는 2021 최고의 앨범 Best 15 [16] 김치찌개1951 22/01/09 1951
3412 코로나 때문에 집에서 홈술 해먹는것도 나름 재밌네요.jpg [25] insane1869 22/01/08 1869
3411 우량주식 장투가 말도 안 되게 어려운 이유 (사실상 거의 불가능한 이유) [84] 사업드래군2580 22/01/04 2580
3410 결혼 10년차를 앞두고 써보는 소소한 결혼 팁들 [62] Hammuzzi6945 22/01/02 6945
3409 대한민국 방산 무기 수출 현황 [48] 가라한6285 22/01/02 6285
3408 나도 신년 분위기 좀 느끼고싶다아아아! [10] 깃털달린뱀2890 22/01/02 2890
3407 중년 아저씨의 베이킹 도전기 (2021년 결산) (스압주의) [34] 쉬군6657 21/12/31 6657
3406 게임 좋아하는 아이와 공부 (feat 자랑글) [35] 담담3871 21/12/30 3871
3405 허수는 존재하는가? [91] cheme5756 21/12/27 5756
3404 고양이 자랑글 (사진 대용량) [31] 건방진고양이2676 21/12/30 2676
3403 마법소녀물의 역사 (1) 70년대의 마법소녀 [8] 라쇼3253 21/12/26 3253
3402 경제복잡도지수, 그리고 국가경쟁력 [27] cheme4332 21/12/21 4332
3401 등산 그리고 일출 이야기(사진 많음 주의) [36] yeomyung1389 21/12/21 1389
3400 [역사] 삼성 반도체는 오락실이 있어 가능했다?! / 오락실의 역사 [13] Fig.13065 21/12/21 3065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6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1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