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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07/01/13 23:12:01
Name sylent
Subject [sylent의 B급칼럼] 강민, 빌어먹을.
[sylent의 B급칼럼]은 월드컵보다 스타리그를 좋아하며, 지루하기 짝이 없는 물량전 보다는 깜짝 아이디어가 녹아있는 ‘올인’ 전략에 환호하는 sylent(박종화)와 그에 못지않게 스타리그를 사랑하지만, 안정적인 그리고 정석적인 플레이 스타일이 정착되는 그날을 꿈꾸며 맵과 종족의 밸런스에 대한 엄격한 기준을 강조하는 왕일(김현준)이 나눈 스타리그에 대한 솔직담백한 대화를 가공해 포장한 B급 담론이다.


[sylent의 B급칼럼] 강민, 빌어먹을.

2007년 1월 11일, 지난 목요일, 오후 6시. 안산에서 모든 교육 과정을 마친 나는, 차를 모는 사장님을 재촉하기 시작했다. 선릉에 도착하자 7시 즈음, 식사와 간단한 회의를 마친 후 빠른 발걸음으로 선릉역을 향했다. 이번 ‘성전’ 만큼은 이 두 눈으로 똑똑히 봐주리라. 코엑스를 헤집고 [MBC게임 히어로 센터]에 도착 했을 때, 서지훈의 레이스가 원종서의 배틀크루저 편대에 녹아내리고 있었고, [MBC게임 히어로 센터] 입구에서는 이재호와 (마재윤을 닮은) 소녀 팬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었다. 이재호의 팬들은 “이재호 잘생겼다!”를 연이어 외쳤고, 이재호는 팬들의 환호에 특유의 멋쩍음으로 답했다. 그리고 ‘성전’은 시작되었다.


광렐루야!

[MBC게임 히어로 센터]는 이미 만원이었다. 하지만 이대로 물러날 수는 없었다. 나는 경기가 아닌 ‘성전’의 역사를 체험하기 위해 왔기 때문이다. 사람과 사람, 남자와 여자 사이를 비집고 몸을 밀어 넣었다. [MBC게임 히어로 센터]의 수많은 팬들이 뿜어내는 열기 덕분에 이마에 맺힌 땀방울을 훔쳐야했다. 정상적인 위치에서는 선수의 얼굴과 화면을 모두 볼 수 없을 것 같아, 뒤쪽 벽에 비치되어있던 사다리 위로 올라섰다. 언제 넘어질지 모른다는 긴장감과 구부정한 자세는 나를 '근육 경련'으로 몰고 갔지만, 기꺼이 참았다. ‘성전’이기에.

강민 팬클럽의 일원으로 보이는 남자 팬이 관중들의 응원 방향을 조정했다. “여러분! 강민, 하나, 둘, 셋! 하면 ‘광렐루야!’하고 외쳐주세요~”. 관중들이 미덥지 않았는지, 그 남자 팬은 여러 차례에 걸쳐 자세한 설명을 외쳤다. 그리고 나를 포함한 관중들은 그 남자 팬의 예령에 이어 힘차게 외쳤다. “광렐루야!”


강민, 빌어먹을.

강민의 두 번째 게이트웨이 건설을 확인한 후, 나는 ‘2게이트 질럿 푸시로 타격을 주지 못해도 상관없다. 안전하게 앞마당을 확보하고, 생산해 둔 질럿으로 저그의 세 번째 자원을 친다. 만약 실패하더라도 최소한의 커세어로 뮤탈리스크 견제를 막아내고, 병력 충원하면서 멀티 수를 맞춰주면 충분히 할 만 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강민의 플레이 역시 물 흐르듯 그렇게 흘렀다. 단 한순간, 커세어가 강민의 본진을 비우기 전까지는.

지난 2006년 11월 5일, [SKY 프로리그 2006 후기리그]에서 마재윤은 박정석을 ‘같은 방법’으로 잡아냈다. 강민은, 팀동료 박정석이 당했던 것과 ‘같은 방법’으로 본진을 포기해야했다. 어이없는 실수였다. 커세어를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이 뮤탈리스크의 공습으로부터의 자유를 보장해주지 않는다는 것을 잠시 잊었을까? 마재윤은 경기를 길게 끌지 않았다. 경기가 끝난 뒤, 강민은 모니터를 바라보며 얇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내 인내심은 여기까지였다.

‘강민, 빌어먹을! 내가 너를 응원하기 위해 대전에서 왔단 말이다. 오늘을 ’축제‘라고 생각했단 말이다. 너를 프로토스의 ’희망가‘라고, 너야말로 프로토스의 ’혼‘이라고 떠들었단 말이야. 이런 내게 고작 이런 경기밖에 보여줄 수 없다는 말이냐!’ 나는 약 1초가량, 강민에게 실망했다.


강민에게 기대하는 이유

나는 특정 선수의 팬이 아니다. 나는 언제나 동시대를 지배하는 절대강자를 좋아한다. 그리고 그들이 굳힌 체제를 전복시키는 혁명가들을 함께 좋아한다. 그래서 임요환과 이윤열, 최연성을 좋아했고 요즘의 마재윤에게 푸~욱 빠져있다. 나는 적어도 이번 ‘성전’ 만큼은 강민만을 응원했다. 나는 마재윤을 꺾는 프로토스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싶었고, 마재윤을 꺾을 수 있는 프로토스는 강민 밖에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엄청난 생산력을 뽐내는 프로토스 플레이어는 적지 않다. 하지만 내가 강민에게 기대를 거는 이유는, 프로토스가 저그와 ‘힘’으로 맞서서 이길 확률이 작기 때문이다. 특정 타이밍 이후부터, 프로토스의 병력은 산술급수적으로 충원되는데 비해, 저그의 병력은 기하급수적으로 쏟아져 내린다. 조용호, 박성준, 박태민, 마재윤에게 얼마나 많은 프로토스 플레이어들이 눈물을 흘렸는지, 우리는 기억하고 있다. 프로토스의 지상 병력이 아무리 많아도 성큰 콜로니에 대한 부담은 줄어들지 않는다. 프로토스가 맵의 중앙을 놓고 벌인 대규모 전투에서 저그에게 패한다는 것은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면) 경기를 포기한다는 것과 다름 아니다.

저그를 상대하는 프로토스는 전략과 전술의 변주를 통해 정상적인 경기 흐름을 뒤틀어야 한다. 저그의 빌드는 꼬이고, 프로토스의 테크트리는 쉴 틈 없어야 한다. 그래서 프로토스는 ‘머리’를 써야한다. 그리고 내가 아는 모든 프로토스 플레이어 중 가장 ‘머리’를 잘 쓰는 선수가 바로 강민이다.

그래서, 마재윤에게는 미안하지만, 네 번째 ‘성전’이 성사된다면, 나는 다시 한 번 강민을 응원해 볼 셈이다. 이번 경기에서 잃은 것들을 어떻게 끌고 가 조화시킬지 지켜볼 셈이다. 강민이 프로토스 속으로 한 발 더 들어갈 수 있는지에 대한 가능성을 타진해 볼 셈이다. 선수는 말이 아니라 경기로 말해야 하는 사람이니까, 이번 경기에서 아쉬웠던 점들을 다음 경기에서 답변할 수 있는지 두고 볼 셈이다.

강민, 빌어먹을! 그러니까 다음에는 꼭 이겨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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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5/02 2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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