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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08/06/02 21:35:22
Name kikira
Subject [소설] 2회 :『녀소 는리달 을간시』- 외눈박이와 두눈박이













※ 이 소설은 픽션입니다. 따라서 순환론과 관련된 인명, 서적, 논문, 학파 등에 관련된
    모든 내용은 허구이며, 혹 그 관련이 의심된다면 그것은 순전한 우연임을 알려드립니다.










두 번째 이야기 - 외눈박이와 두눈박이







   가츠코월드의 진정한 특징을 깨달고 나서야 난 그 세계를 명확히 묘사해 낼 자신이 생겼다. 왜냐하면 ‘가츠코’에 관련된 차이를 제외하고 나면 가츠코월드와 우리 세계는 점 위치만 다른 쌍둥이와 다름없었기 때문이었다. 가츠코월드에서도 우리 세계와 같이 해가 떴으며, 꽃이 피었고, 비도 내렸으며, 때에 맞춰 태풍이 왔고, 아기들은 태어나자마자 울어댔으며, 어른들은 차를 운전하며 레스토랑에 갔고, 연인들끼린 입을 맞췄다. 또한 그 연인들을 때때로 싸우고 헤어졌으며, 정치꾼들은 여전히 거짓말을 하고, 자본은 증식했으며, 지구는 계속 병들어 갔고, 또 어김없이 해는 졌다. 내가 가츠코월드에서 지낼 때 모든 것은 어색함이 없었다.(기록이 이를 증명한다) 다만 이 하나만 제외하곤 말이다.

  이 사실을  맨 처음 발견한 것은 내가 가츠코 월드로 간지 보름이 된 날, 케이블 방송의 철 지난 드라마를 보면서였다. 그렇고 그런 멜로물이었는데 역시 서로 사랑하는 사람들이 무언가를 이유로 그 사랑을 이루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이유가 조금 이상했다. 나는 이해되지 않는 줄거리였지만, 딱히 채널을 돌리지 못하고 멍하니 TV에 시선을 고정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드라마는 계속 내 머릿속을 비켜갔다. 장면이 바뀌고, 드라마 속 여자 주인공이 룸메이트에게 자신의 연애고민을 상담하면서 이렇게 말을 했다. “그 사람이 순환론자만 아니었으면 좋았었을 텐데.” 그리고 곧 화면 오른쪽 상단에 드라마 제목이 떴다.「순환론자는 하루에 두 번 키스를 한다」.



  난 결국 자리에서 일어나 내 방으로 들어갔다.



   *   *   *   *   *  



  난 습관처럼 인터넷 창을 열었고, 검색창에 그 문제의 단어를 써넣었다. 그리고 쏟아들어져 오는 엄청난 양의 정보들. 그러나 그 정보들은 모두 하나의 방향을 가지고 있었다. 인터넷 검색사 자격증을 준비하다 포기한 나지만 그러한 화살들이 가리키는 곳을 찾아내는 건 별로 어렵지 않았다. 이어지는 경쾌한 마우스의 울림.  

  내 얕은 지식으로 알고 있는 순환론이란 - 循, 그 날것으로서의 의미를 제외하면 - 논리학에서 말하는 오류 중 하나인 ‘순환 논리’를 가리키는 것이었다. 그러나 가츠코월드 내에서 말하는 ‘순환론’이란 단어는 확실히 무언가 다른 것을 뜻하고 있었다.

  난 순환론에 관한 사이트 하나를 들어갔다. 분명히 한국어였지만 난 도저히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사이트는 포기하고 난 웹문서를 위주로 검색했다. 그 내용은 알 수 없었지만, 어느 것이 좀 더 친절하게 설명이 돼 있는지 분별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고 결국 쓸 만한 파일을 하나 찾았다. 웹문서치고는 상당히 용량이 큰 파일이었지만, 다운로드는 클릭과 동시에 이루어졌다. 다시 한 번 들리는 마우스의 울림.
  그리고 그 날 난, 해가 지고 다시 해가 뜰 때까지 방을 떠나지 못했다.



   *   *   *   *   *



  순환론의 존재를 처음 접한 날, 이상하게도 난 내가 다른 세계에 있다는 사실을 결코 깨닫지 못했다. 어느 날 갑자기 내가 다른 세계로 이동했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보단, 내가 왜 아직까지 이것을 모르고 살았는지 고민하는 것이 더 가까웠고 고민은 거기서 더 나아가지 못했다.

  어쨌든 그 날 난, 큰 충격을 받았다. 그러나 다음 날이 되자 난 그 사실을 인정했고 그 다음 날이 되자 그것을 인정했다는 사실을 망각했으며 그 다음 날엔 이 모든 것을 잊어버린 채 또 하루를 살았다. 이를 두고 무엇이라 불러야 할까. 기록에 의하면 가츠코월드에서 나는「순환론사」라는 과목이 고등학교 필수 과목에서 선택 과목으로 바뀌었다는 인터넷 기사와 그 밑, 댓글을 가지고 싸우는 수많은 사람들을 본 적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나는 내가 학교에서 그것을 배우지 못했음을 깨달지 못했을까. 왜 이 세계가 조금 이상하다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했을까. 지금 와서 다시 생각해보니 난 외눈박이 세상에 떨어진 두눈박이와 같았다. 내 한쪽 눈은 나도 모르는 사이에 떨어졌고 나 쉽사리 외눈박이가 되었다. 하지만 그 ‘쉽사리’라는 말의 무책임함이 날 찜찜하게 했다.



   *   *   *   *   *



  가츠코 월드의 순환론은 간단히 설명하긴 쉽지 않고 짧게 묘사하긴 불가능한 실로 엄청난 전 세계적 논의이다. 이는 본래 학문적 논의에서 출발했으나 거기에서 멈추지 않고 가츠코월드의 세계관을 뒤흔들어 놓는데 까지 이르렀다. 70년대 이후 모든 역사는 이 순환론을 제외하곤 말할 수 없고 2008년에 이르면 웬만한 오지가 아니고서야 지구 어디에서든 순환론자들을 만날 수 있었다. 내 학교 동창들 중에서도 몇몇이 순환론과 관련된 공부를 하고 있었으며 대부분의 대학교에서 순환론에 관한 교양 강의는 필수 과목으로 되어 있었다.

 위의 현상들은 수십 년 동안 순환론과 관련된 논의에 전 세계의 수많은 천재, 범재, 둔재들이 달려들어 서로 논쟁함으로써 가능했다. 수많은 학자들이 편을 나눠 자신들의 주장을 다듬고 정리했으며, 그 진영들은 다시 재편하길 게을리 하지 않았다. 그렇게 2008년이 되자 순환론과 관련된 논의는 선대의 광대한 연구들 탓에 외려 정체돼 버렸다. 우리 시대의 학자들은 너무 방대해진 논의를 손쉽게 정리하지 못했고 선대 석학들과 사조들의 업적을 계승하고 기록하는데 벅차했다. 더이상 새로운 주장은 나오지 못했고 또한 과거 열띤 논쟁들은 사라지고 있었으나 그런 만큼 순환론은 우리 시대의 공기와도 같이 항상 그 자리에 있었다. 그리고 가츠코 월드에 간지 한 달여가 지나자 나 또한 다른 사람들처럼 순환론을 입에 올리기 시작했다. 가츠코 월드는 순환론을 빼놓고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었다.

  계속 말하지만 순환론은 가츠코월드의 가장 큰 특이점이다. 난 가츠코월드의 묘사라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내 짧은 머리로나마 이해한 순환론에 관련된 논의들을 간단하게나마 노트에 적기 시작했다. 노트는 3권이 더 늘어났다.

  ‘간단히’라는 말과 노트 3권간의 괴리는 결코 겸손 탓이 아니다. 어쨌든 난 2008년에 살고 있었고 지금도 순환론은 여전히 왕성했으나 내 또래 젊은이들의 순환론 이해는 그리 깊지 않았다. 우리 세계의『자본론』과 그에 관련된 논의가 아직도 융성하나 많은 사람들은 그 왜곡된 풍문만을 들으며 이해하고 있는 것처럼 내게 순환론의 날 것은 쉽게 잡히지 않았다.

  그 날 새벽 난 순환론을 좀 더 알아보기 위해 즐겨 찾던 인터넷 서점에 접속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순환론 개론』과 같은 대학 강의를 위한 교재들이었다. 그 수많은 개론서들을 보며, 난 이 개론서들의 본체가 되는 책들을 찾아야겠다고 생각했다.『순환론 선집』(1973~2006)과 같은 고명한 순환론 문집은 각각의 연도별로 20권 이상씩 나와있어 그 총 권수는 나를 머리 아프게 했다. 내가 어설프게나마 내 3권짜리 노트를 완성시킬 수 있었던 것은 작가가 기억나지 않는『순환론 입문』을 비롯한 몇 권의 친절한 책들 덕분이었다. 그 날 새벽 내가 내 방 책장속에 꽂혀있는 이 책들을 발견치 못했다면, 난 인터넷의 어설픈 지식 사이를 계속 헤매고 있었을 것이다.                  












                                                                                                                                                                3회에서 계속










* 박진호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8-06-14 0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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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스타일
08/06/14 10:42
수정 아이콘
헉 6월 2일에 미리 써두셨던건가요?!!!
재밌게 읽고있어요^^
08/06/14 11:06
수정 아이콘
재미있어요. 다음 회도 기대됩니다.^^
08/06/14 19:09
수정 아이콘
잘 읽고 갑니다.
08/06/14 19:20
수정 아이콘
미리 작성된 것을 시간에 맞추어 운영자님께서 옮겨주시는 거랍니다.

읽어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Helsinki
08/06/16 20:06
수정 아이콘
정말로 재미있게 읽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소설을 쓰고 계신 kikira 뿐만 아니라 unipolar님도 그렇고 그외 다른 사이트들에 훌륭한 연재를 하시는 분들 다 포함해서,
왜 이런 대단한 필력을 가진 분들은 도대체 왜 이런곳에 쓰시는거죠?(pgr폄하하는게 아닙니다..;;)
그러니까, 공모전같은데 보내면 대박치면 등단도 할수있을테고
뭐 작가쪽에 뜻이 없으시더라도 푸짐한 상금이 기다리고 있지 않나요?
상금이 푸짐하지 않더라도... 뭐 어쨋든 돈버는거니 좋을것 같은데요..

제가 너무 철없는 생각을 하는건가요..??
08/08/17 11:00
수정 아이콘
Helsinki님//
1. 훌륭한 글을 쓸 수 있는 사람은 생각보다 매우 많습니다.
2. 따라서 수상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3. 설령 수상을 해도 상금이 그리 푸짐하지도 않습니다. 가끔 푸짐한 공모전이 있지만, 그만큼 경쟁률이 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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