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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봐도 좋은 양질의 글들을 모아놓는 게시판입니다.
Date 2015/12/08 01:26:18
Name Love&Hate
Subject 이스라엘의 마지막 왕국. 하스모니안 왕조.
아시다피시 유태인은 '디아스포라'라고 해서 본국 없이 세계 각지에 흩어져 살았고, 그러던 중 2차 세계대전 이후로 팔레스타인에서 독립국을 세웠고, 그로 인해 분쟁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면 나라 없이 떠돌기 전에 존재했던 유태인의 나라, 고대 이스라엘왕국의 마지막은 언제였을까요? 그 이야기를 한번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아~ 그리고 저는 무교입니다. 감안해서 읽어주세요.







1. 고대 이스라엘 왕국의 성립과 분열
모세의 후임인 에브라임지파의 여호수아(조슈아)가 팔레스타인 정복전쟁을 치뤄 12지파에게 팔레스타인 땅을 나눠준 뒤로 이스라엘은 12지파의 연합체 성격을 띄고 있었습니다. 그중 에브라임지파가 그중에서는 힘꽤나 쓰던 입장이었고요. 그 연합체의 수장은 사사(판관)이라 불리던 제정일치의 지도자였고요. 고대 국가가 발전하면서 제정일치사회는 왕(혹은 그에 준하는 직책)이 나타나. 제정분리가 일어나게 됩니다. 이스라엘도 마찬가지였죠. 고대 이스라엘에서도 사울이라는 초대왕이 마지막 사사 사무엘에 의해 임명됩니다. 판관시대가 종식되고 왕국시대가 열린 시발점이죠. 이때부터 이스라엘 왕국이 시작됩니다. 초대왕은 사울이었지만, 존재감은 거의 없고요. 유명한건 그 다음 왕들입니다. 바로 다윗(다비드, David) 과 솔로몬입니다. 여튼 왕은 정치의 우두머리가 되고 대제사장은 종교의 우두머리가 되는 제정분리국가가 성립됩니다.




{사울과 다윗시대의 고대 이스라엘 왕국}




{다윗 가계도. 보라색이 와이프고 그 아래가 자식들입니다. 열심히 낳으셨네요..}


다윗은 골리앗이라는 거인을 투석으로 쓰러트린 소년의 일화로도 유명한 인물입니다. 다윗은 초대왕 사울이 전쟁중에 죽자 자기가 속했던 유다지파를 규합해서 스스로 주변의 추대로 유다지파에서 왕위에 올라, 이스라엘의 왕위를 차지해버립니다. 다윗이 왕이되고, 현명한 군주였던 다윗은 나라를 번영시켰습니다. 다만 다윗이 좀 오래살긴 살았는데, 재위에 왕이 오래있으면, 후계자 싸움이나 후계자의 반란이 일어나는 일이 잦습니다. 다윗 역시 그랬고요. 첫째아들은 셋째아들에게 죽고, 둘째는 요절, 셋째아들 압살롬은 다윗에게 정면으로 반란을 일으키고는 실패하고 죽습니다. 넷째아들 아도니야는 이제 본인이 가장 제일 왕위계승권자라는 생각에 다윗이 병석에 드러눕자 멋대로 대관식을 해버립니다. 그런 상황에서 다윗은 총애하던 밧세바의 요청으로 밧세바의 아들 솔로몬에게 왕위를 이양하기로 결정합니다.




{모세의 형인 대제사장 아론의 가계도. 사독과 아비아달을 확인해봅시다}


솔로몬은 신속하게 왕권을 확보하고 반대파를 처리합니다. 반대파중에는 대제사장 아비아달도 있었는데, 그를 추방하고, 자신의 왕권이양을 지지했었던 제사장 사독을 대제사장으로 임명하고, 이후로 대제사장 지위를 사독가문에게 세습시킵니다. 지혜의 왕이었던 솔로몬도 적당히 살다갑니다. 중요한 업적은 예루살렘에 성전을 세운것이 되겠네요. 그리고 솔로몬이 죽고, 그의 아들 르호보암이 왕위에 올랐을 때에 고대 이스라엘 왕국은 12개의 지파중 강력했던 두개의 지파, 다윗왕가가 속했던 유다지파와 여호수아 이래로 힘좀쓰던 에브라임지파, 두지파 각각을 중심으로 둘로 쪼개 나눠집니다. 유다지파쪽을 남왕국 유다라 부르고, 에브라임지파쪽을 북왕국 이스라엘이라고 부릅니다. 다윗왕가의 세습의 입장에서 보면 유다쪽이 적통이긴 한데, 에브라임지파쪽이 12중 10개지파가 속해있어서 다수 지파의 지지를 받았죠.




{분열기의 이스라엘 왕국. 파란색이 북이스라엘, 노란색이 남유다}



이게 기원전 1000년경에 벌어진 일들입니다. 갈길이 먼데 너무 먼 이야기부터 시작해버린 느낌이네요. 별로 중요한 내용은 아닙니다. 사람이름은 다 잊어버리셔도 됩니다. 사독은 나중에 또 나올겁니다.






2. 북이스라엘과 남유다의 멸망.

이렇게 자기들끼리 쪼개져서 서로 치고 박기도 하고 주변과 싸우기도 하며 대충 살다가 주변에 강대국이 생겨나게 되자, 망하게 됩니다. 먼저 망한것은 북이스라엘이죠. 당시 중동지역에서 새로운 패권을 차지하게 된것은 아시리아(앗수르) 였습니다. 수도는 니네베(니느웨). 요나가 가기 싫어서 도망가다가 고래안에서 숙식을 제공받았던 바로 그 도시입니다. 여튼 아시리아는 중동의 패자가 되었고 북왕국 이스라엘은 아시리아에게 멸망합니다. (BC.722) 아시리아는 정복지를 황폐화시키던 제국이라 북이스라엘의 수도 사마리아는 초토화됩니다. 그리고 사마리아는 이민족들과 혈통과 문화가 뒤섞이게 되어, 사마리아인들이 유태인들에게 멸시당하게 되는 원인이 됩니다. 아시리아는 북이스라엘 정복에 그치지 않고 멀리 이집트 까지 침공해서 일시적으로 병합합니다. 당연히 그 사이에 있는 유다도 침공했었는데요. 예언자 이사야가 활동하던 뭔가 암울하고 세기 종말적인 분위기의 시기가 바로 이 시기입니다. 여튼 남왕국도 멸망까지는 면했지만, 남왕국 역시 아시리아에게 충분히 두드려 맞습니다.



{아시리아 제국의 영토}


당시 중동의 흐름은 매우 다이나믹합니다. 왕조의 흥망성쇠가 고대치고는 꽤나 빠르죠. 아시리아도 영원한 강자일수는 없었죠. 아시리아는 특히 피정복민에 대한 가혹한 처사로 유명했는데, 정복된 도시의 주민들은 죽이거나 포로로 모조리 끌고가고 그 땅은 다른 인종으로 채웠습니다. 북왕국 이스라엘도 똑같이 당했습니다. 그러한 처사들이 피정복민들에게 당연히 불만으로 남아있었지요. 후계자내란이 일어나자, 아시리아의 피지배민족들이 들고 일어나 아시리아가 멸망합니다. 그뒤 4개의 왕국으로 쪼개집니다. 리디아, 메디아(메대), 신바빌로니아, 이집트로 다시 갈라지죠.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패자였던 신바빌로니아의 네부카드네자르 2세(느부갓네살)는 남왕국 유다를 쳐서 멸망시키고 솔로몬이 지었던 성전을 파괴하고 포로를 싹 잡아갑니다. (바빌론 유수, BC. 587) 신바빌로니아 역시 피정복민에 대한 처사는 아시리아와 비슷했습니다. 이제 고대이스라엘 왕국들은 둘다 망해버린겁니다.




{아시리아의 멸망 후. 노란색이 리디아. 연두색이 메디아. 붉은색이 신바빌로니아. 보라색이 이집트}



3. 관대했던 정복자들.



{아케메네스조 페르시아. BC 549 건국}



신 바빌로니아 역시 당시 중동의 다이나믹한 역사의 흐름을 이기지 못합니다. 메디아의 속국이던 페르시아(바사)의 키루스 2세(고레스)는 메디아를 점령하고 바빌로니아를 멸망시킵니다. 그게 아케메네스 왕조입니다. 아케메네스왕조의 키루스는 온화한 정복자였습니다. 유태인들의 종교와 삶을 인정해주던 지도자였습니다. 바빌로니아의 포로였던 유태인들을 모두 해방시켜서 팔레스타인에 돌아가게 만들고, 성전 재건축도 허락합니다. 왕을 세워 독립시켜주진 않았지만, 종교지도자인 대제사장을 중심으로 어느 정도의 자치권도 허락합니다. 이 당시 성전을 재건하며 활동하던 유태인 지도자들이 에즈라, 느헤미아 같은 사람들입니다.



{유태인들에게 메시아로 추종받기까지 했던 키루스 2세}



아케메네스 왕조는 키루스2세 이후로 다리우스 1세, 나는 관대하다 크세르크세스 1세(아하수에로)등이 이어가며 나는 관대하다 등등으로 대 제국으로 발전합니다. 그 사이에 그리스랑 페르시아 전쟁도 하고요. 그리고 페르시아 역시 멸망하죠. 바로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드로스 3세(알렉산더 BC 356~323)에 의해서입니다.




{알렉산더의 헬레니즘제국 }


알렉산더는 시리아 이집트에 이어 페르시아까지 병합했고, 인도까지 진출했습니다. 알렉산더는 팔레스타인의 신정정치를 용납해주었습니다. 다만 그는 , 젊은 나이에 사망합니다. 그리고 알렉산더의 헬레니즘 제국은 사후 몇몇 과정을 거쳐서 3개의 왕국으로 분열됩니다. 마케도니아의 안티코노스, 중동의 셀레우코스, 이집트의 프롤레마이오스 셋으로 분열되죠. 이 후계자 전쟁을 디아도코이라고 합니다. 알렉산더 제국이 분열된 뒤 팔레스타인은 일단 이집트의 프롤레마이오스의 영향력 아래에 속해있었습니다. 프롤레마이오스 왕조도 돈만 낸다면 유태인들에게 신정정치의 자치권을 인정해주겠노라 하며 그들의 삶을 인정해줬습니다. 팔레스타인 지역은 키루스 2세에 의해 고향에 돌아온 이후로 관대한 지도자들에 의해 신정정치를 인정받고 자기들끼리 나름 평온한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이 평온함의 시발점이었던 키루스 2세는 당시 이방인이지만 메시야로 추종되기도 했다고 합니다.




{알렉산더 사후. 디어도코이. 3왕국으로 정립된건 대략 BC 275경}





4. 마카비전쟁.

시간이 흐르면서 이집트의 비호아래 행복했던 유태인들의 평화도 깨지게 되었습니다. 디아도코이로 생긴 나라의 하나인 셀레우코스 왕국이 이집트를 공격해 팔레스타인을 차지했기 때문이죠. 알렉산더의 헬레니즘제국의 후예이던 셀레우코스 왕국의 안티오쿠스 4세는 이제까지의 지도자들과 달랐습니다. 강력한 그리스화로 팔레스타인을 통치하기로 마음먹었죠. (안티오쿠스란 이름은 셀레우코스 왕가의 이름이며, 알렉산더가 알렉산드리아를 만들듯 셀레우코스 왕조에서는 안티오키아 혹은 안디옥이라 불리는 도시들을 만들었습니다.) 팔레스타인에 그리스의 문화를 강제주입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자신을 제우스의 현신으로 공포하며, 예루살렘성전에 제우스의 신상을 세우고 그리고 할례를 금지하며 각종 율법을 금지했습니다. 팔레스타인을 유태인의 자치지역이 아닌 그리스의 문화영역권으로 만들고 싶었던겁니다.



{아니 지금도 이러고 계신 하시딤들을 뭘로보고?}


유태인들은 두파로 갈라졌습니다. 친헬레니즘파와 반헬레니즘파. 안티오쿠스의 그러한 정책을 받아들이려는 사람들과 저항하는 사람들로 갈라졌죠. 율법아래에서 엄격한 삶을 살고자하는 하시딤들도 당연히 반대파였습니다. 안티오쿠스의 사자가 성전에 와서 그리스식 제사를 지내라고 강요하고 성전을 제우스에게 봉헌해버리자, 친헬레니즘적 유태인들이 제사를 그리스식으로 지내려 준비했고, 제사장 맛다디아는 크게 반발했고, 그자리에서 그 유태인을 쳐죽였습니다. 안티오쿠스는 팔레스타인에 군대를 보냈고, 안식일을 기점으로 공격하기 시작했습니다. 수많은 하시딤이 안식일이기에 그냥 앉은 자리에서 죽음을 맞았지만, 맛다디아는 안식일이라고 가만히 죽음을 맞기보다는 저항을 결심하고, 아들들과 광야로 나가서 반란군을 조직했습니다. (BC.167) 그들은 모든 친헬레니즘 세력을 팔레스타인에서 몰아내는 것이 목표였죠. 친 헬레니즘 유태인역시 마찬가지 숙청대상이었습니다.




{하스모니안 왕조 가계도}


맛다디아에게는 아들이 다섯있었는데 셋째아들의 이름이 유다 마카비였습니다. 마카비는 별명으로서 망치라는 뜻이었죠. 군사적 재능이 뛰어났다고 합니다. 맛다디아가 전사한 이후로도 마카비에게 계승되어 반란군의 불은 꺼지지 않았으며, 마치 예전 사사 기드온처럼 게릴라전으로 큰 전과를 이루었다고 합니다. 마침내 마카비는 예루살렘의 성전을 재탈환 하였고, 성전의 제우스상을 파괴했으며, 이방인들에게 유린당한 성전을 정화했습니다. 그리고 유태인의 제의를 위해 촛대에 불을 켜려고 했는데, 성유가 1일치 밖에 남아있지 않았습니다. 성전의 불은 꺼지게 하면 안되는데 성유를 만드는데는 8일정도 걸리는데 지금 키면 7일간 꺼질수 밖에 없었던 것이지요. 그때 기적이 일어나서 1일치 성유로도 8일동안 꺼지지 않았다고 합니다. (BC 164) 이것을 기념한 것이 유태인들이 지키는 가장 큰 절기중 하나인 빛의 절기 하누카의 유래입니다.



{빛의 절기 하누카}



그러던 중 안티오쿠스 4세가 사망했습니다. 셀레우코스 왕국은 긴 후계다툼이 시작 됐습니다.셀레우코스 왕국은 내전에 휩싸였고, 마카비측은 계속 저항했습니다. 유다 마카비는 전사했으나, 그들의 저항의 불길은 끌수 없었습니다. 마카비의 동생인 다섯째 요나단이 뒤를 이어 저항은 계속되었습니다. 요나단은 적절한 외교전으로 내전에 휩싸인 셀레우코스왕국으로부터 팔레스타인의 대제사장으로 임명받지만, 셀레우코스 왕국의 반란군이었던 디오도토스 트리폰에게 유인당해 죽습니다. 요나단의 뒤는 형이었던 둘째 시몬이 잇게 됩니다. 트리폰은 셀레우코스왕국의 왕위에 오르고, 그에 대항하기 위해 도주했던 이전 왕 데메트리오스2세와 시몬은 손잡습니다. 이때 세금면제와 자치권과 사실상의 왕위를 약속받습니다. 결국 트리폰 세력을 셀레우코스 에서 몰아내고 나서 시몬이 팔레스타인의 왕위에 오르는데 이 왕조가 이스라엘의 마지막 왕조였던 하스모니안 왕조입니다. 하스모니안의 이름의 유래는 마카비의 선조의 이름에서 유래햇습니다.






5. 에세네파, 바리사이파와 사두카이파

시몬의 아들인 요한 힐카누스에게 이 왕위는 세습됩니다. 독립은 독립이지만 셀레우코스 왕국의 영향력에서 벗어난것은 아닙니다. 그래도 유태인의 세습왕이 생긴것은 나름 의미가 있는 일입니다. 남왕국 유다의 마지막왕 치드키야(시드기야) 이후로 처음 유태인의 왕이 생긴 것이었죠.  의미가 있던 만큼 생각지 못한 문제가 생기기도 합니다. 어떤 문제가 생겼을까요.



일단 시몬의 동생인 요나단의 시대로 가보겠습니다. 요나단은 셀레우코스왕국과의 협상으로 대제사장에 오릅니다. 근데 앞서 1번에서 얘기했듯 대제사장 자리는 사독가문에 세습되었습니다. 사독가문이 아닌 요나단이 대제사장에 오르는 것을 인정할수 없었던 하시딤들은 대제사장 자리를 찬탈당했다 여겼고, 더럽혀진 성전에서 예배를 드릴수 없다고 생각하고 광야나 동굴로 숨었습니다. 거기서 정치와 세속적인것과 자신들을 분리하고, 엄격한 종교적인 삶을 살고자 했습니다. 그들이 바로 에세네파입니다. 이후로도 권력투쟁에서 축출 숙청당한 바리사이파들이 에세네파에 합류합니다. 에세네파에서 가장 유명한 인물은 세례요한입니다. 물론 예수도 큰 영향을 받은것으로 보입니다.



{살로메로 인해 예술쪽으로 유명한 세례요한}



다시 힐카누스 1세의 시대로 오겠습니다. 남아 있던 하시딤들은 함께 싸워 자치권을 얻은것 까진 좋았지만, 사독가문이 아닌 마카비가문이 대제사장이 된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그것을 용납하고나니 그런 마카비 가문이 대제사장이면서 유태인의 왕이 되는 것까지도 지켜보아야 했습니다. 대제사장이 왕을 겸임하겠다니요. 있을수 없습니다. 강렬히 저항합니다. 특히 시몬의 아들인 요한 힐카누스때에 요한 힐카누스에게 대제사장직분을 내려놓고 율법에 맞는 대제사장을 선출하라고 압박을 넣습니다. 이유는 요한 힐카누스의 어머니가 이방인의 군대에 끌려가서 부정한 자라고 얘기했죠. 한마디로 '너의 어머니가 더럽혀졌으니 넌 대제사장이 될수 없다'는 말이었습니다. 요한 힐카누스는 당연히 화가나서 하시딤들을 내칩니다. 그리고 불러들인것은 사두카이파입니다. 사두카이파들은 모세5경만을 인정하고 과도한 해석이나, 경전에 없는 관례나 관습등을 율법화 시키는것에 부정적이었습니다. 사두카이파들은 모세5경에 없는 부활도 믿지 않고 내세도 믿지 않았습니다. 천사와 악마도 없지요. 사독계열에 대한 이야기는 모세5경에 없으니, 사두카이파들은 당연히 요한 힐카누스가 대제사장을 겸임해도 괜찮았습니다. 그러니깐 꼭 사독계열만 대제사장이 될 이유는 없었죠. 사실 그랬기 때문에 사두카이파들은 특별히 헬레니즘에 반대할 명분이 없었습니다. 친 헬레니즘 파였던거죠. 독립하기 위해 반헬레니즘파와 생사를 함께했던 하스모니안 왕조는 친헬레니즘파와 손을 잡습니다. 원래 인생사가 그렇죠. 사두카이파가 친권력적이란 이야기를 들었던건 이런 이유에서 입니다.



{영화속의 사두카이. 삐까뻔쩍한것이 뭔가 세속과 연관이 되어 보인다. 지금이라면 오히려 실용적인 사두카이가 환영받을지도}


그때 권력의 중심부에서 멀어져간 하시딤들은 바리사이파가 됩니다. 꼭 성경에 나오는 것 뿐만 아니라 관례나 관습을 새로 만들어서 엄격히 지키려고 하게 되죠. 그들은 부활도 믿었고 내세도 믿었으며, 천사와 악마도 믿었습니다. 이들은 권력에서는 멀어졌어도, 평신도들(당연히 남아있던 유태인들이 그런 부류였으니)사이에 영향력은 대단했습니다. 그래서 바리사이파들은 성경에 보면 매번 타인에게 엄격한 종교윤리를 요구하고 간섭하는 듯한 사람들로 나오게 됩니다. (그리고 이후에 다시 권력에서도 치고 올라옵니다.) 사두카이파와 사이가 좋지도 않았을 뿐더러 부활에 대한 의견이 달라, 신약성경에서 부활에 대한 담론에서 예수가 사두카이파에게 면박을 주니 바리사이파가 좋아라한게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영화속의 바리사이. 위 사두카이파와 비교해보면 외형에서 차이가 난다}


6. 요한 힐카누스 1세와 그 이후

요한 힐카누스 1세는 앞서 말햇듯 시몬의 아들인데 야심이 컸습니다. 마치 알렉산더처럼 주변을 정복하고 개종시키려 했죠. 당시 유태인의 시선으로 보자면 이방인은 상종못할 사람이었지만, 힐카누스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그들을 정복해서 그들에게 할례를 주고 개종을 시키려했죠. 사해 북서부와 이두매(에돔) 지역을 정복하고 그 지역 사람들을 개종시킵니다. 이게 나름 중요한 사건입니다.



{이두매의 위치}


요한 힐카누스 1세의 사후에 하스모니안 왕조에도 내전이 일어납니다. 먼저 요한 힐카누스1세의 뒤를 이은 아리스토불로스의 죽음으로 인해 살로메 알렉산드리아라는 여성이 왕권을 잡았고 여성이므로 대제사장을 역임할수 없었기에 쿨하게 장남 힐카누스 2세에게 대제사장을 줘버리고 바리사이파를 중용하기 시작합니다. 그녀의 치세는 나름 훌륭했으나, 노쇠하게 되자 차남 아리스토불로스 2세가 사두카이파를 규합해서 본인이 왕이되려고 하고요. 장남과 바리사이파 대 차남과 사두카이파의 내전이 시작된거죠. 장남과 차남의 싸움 끝에 장남이 대제사장 차남이 왕으로 합의를 봅니다.



{하스모니안 왕조 가계도. 다시 봅시다.}


여기서 한 이두매인이 등장합니다. 앞서말했듯 할례를 하고 개종했던 이두매인이었던 안티파트로스였습니다. 안티파트로스는 아리스토불로스 2세와는 사이가 좋지 않았고, 그가 왕이 되어버려서 몹시 곤란해진 상태였습니다. 그래서 안티파트로스는 힐카누스2세를 충동질해서 아리스토불로스 2세를 제거하려 했습니다.  힐카누스 2세와 아리스토불로스 2세 두 형제는 한 이두매인때문에 다시 싸우게 됐죠. 모두 외세를 이용해서 상대를 제거하려듭니다. 특히 아리스토불로스 2세는 로마의 폼페이우스를 끌어들이는데, 폼페이우스는 이게 왠 떡이냐며 예루살렘을 함락시켜 버리죠. 사실상 유태인들이 로마의 속주민이 되는 순간입니다. 다만 여기서 폼페이우스는 아리스토불로스2세를 끌고가고 힐카누스 2세는 대제사장으로 남겨놓고 갑니다. 안티파트로스 역시 잽싸게 폼페이우스에게 붙습니다. 폼페이우스의 결정은 바리사이파가 사두카이파에게 사실상 승리하게 해줬습니다.


{늙어보여도 카이사르와 자웅을 겨루던 그 폼페이우스 맞다.}


안티파트로스와 힐카누스 2세는 이후 폼페이우스를 버리고 잽싸게 카이사르로 옮겨타서 로마의 유력자에게 안정적으로 줄을 댔고, 로마는 힐카누스 2세에게는 대제사장직으로 안티파트로스에게는 로마시민권과 유대의 행정장관직으로 보답했습니다. 카이사르가 죽자 또 안토니우스에게 줄을 댔고요. 그러던 와중에 이방인이었던 안티파트로스는 열성적인 유대인에게 암살을 당했고, 그틈을 타서 아리스토불로스 2세의 아들 안티고노스가 동방의 제국 파르티아의 병력을 등에 업고 팔레스타인을 침공했습니다. 하스모니안 왕가의 계승자로서 하스모니안 왕가복원을 노린 것이죠. 그 침공 결과, 대제사장 요한 힐카누스2세의 귀를 자르고 안티파트로스의 장남 파사엘을 사로잡습니다. 안티파트로스의 차남만이 무사히 로마로 도망갔고, 동생이 무사하다는 소식을 듣자 파사엘은 자결합니다. 안티파트로스의 차남은 안토니우스에게 얘기해 팔레스타인의 파르티아 병력을 몰아내줄것을 간언했고, 로마의 병사와 안토니우스, 그리고 안티파트로스의 차남은 팔레스타인과 예루살렘을 수복하고 안티고노스를 처형합니다.



{클레오 파트라와 썸씽이 있었던 바로 그 안토니우스}



그리고 안토니우스가 이 안티파트로스의 차남을 유대의 왕으로 삼아주는데 그가 바로 헤롯입니다. 헤롯은 자신의 정통성을 보완하기 위해 하스모니안 왕가의 여자 미리암네와 결혼하고요. 이 뒤로는 신약의 이야기가 펼쳐질겁니다.



{다시보는 하스모니안 왕조와 헤롯의 가계도}


* 라벤더님에 의해서 자유 게시판으로부터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16-03-24 12:37)
* 관리사유 : 좋은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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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풍허세
15/12/08 01:32
수정 아이콘
일단 추천 머겅
수면왕 김수면
15/12/08 03:22
수정 아이콘
두 번 머겅
홍승식
15/12/08 14:23
수정 아이콘
세 번 머겅.
이스라엘의 고대 역사를 한눈에 보게 되니 정말 재밌네요.
미남주인
15/12/09 01:35
수정 아이콘
추천수 44는 불길한 숫자입니다.

사오번 머겅.
달과별
15/12/08 01:40
수정 아이콘
유대교가 국교였던 우크라이나의 하자르 왕국(650–1048)을 예상하고 클릭했는데 이스라엘 내에서의 마지막 왕조 이야기였군요. 좋은 내용 감사합니다.
15/12/08 01:48
수정 아이콘
이런건 닥추죠. 에세네파가 뭔지 모르게 간지 폭풍이었는데 그 시작은 저런 사연이 있었군요!
폭풍허세
15/12/08 02:13
수정 아이콘
이 뒷 이야기는 없나요? 궁금해요
홍승식
15/12/08 14:27
수정 아이콘
뒷 이야기야 로마의 속주로 살다가 로마에게 반란을 일으키고 예루살렘이 파괴된 후에 디아스포라로 이어지겠죠.
탱크로리
15/12/08 02:17
수정 아이콘
오 그래서 헤롯이 정통성이 없었던 거군요. 감사합니다.
15/12/08 02:33
수정 아이콘
근데 종교를 빼고 영웅담으로만 보면 헤롯도 나름 멋진 인생인데요? 이 양반은 나중에 어떻게 되었는지 궁금하네요
Love&Hate
15/12/08 14:28
수정 아이콘
맨아래 가계도 보시면 나오지만 유태인에게는 헤롯대왕입니다.
크리스찬들에게는 영아살해자고요..
예수의 탄생에 모세설화를 차용했는데 그것으로 인한 피해자죠.
다만 정통성이 없는 왕들의 특징인 잔인함을 가졌던 것은 맞습니다. 친족들을 많이 죽였죠.
옥타비아누스가 헤롯의 자식이 되느니 헤롯의 돼지가 되는게 낫다고 했다죠.
15/12/08 15:09
수정 아이콘
영아 살해는.... 없었던 일로 알고있는데, 뭐 그 영역은 종교가 다루는 부분이니까 넘어가는 걸로.... 아래 다른 분들 댓글을 종합해보면 좋은 사람이라고 보기는 조금 힘들긴 하네요.
15/12/08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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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아 살해가 없어도 잔인한 사람이긴 했습니다 하하하. 특히 자신의 왕권에 해를 가할 사람이라고 판단되면 애든 어른이든 다 죽이고, 죽기 바로 직전까지 아들의 처형 명령을 내렸던 보기 드문 인물이죠. 하하; 아마 그래서 더 영아살해의 이야기가 잘 먹혀들지 않았을까 해석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렇게 잔인한 사람이니 가능했을 것이라 사람들이 받아들인 거죠.

본인의 행정적, 외교적, 예술적 능력이 매우 탁월한 싸이코패스라고 보통 보던 것 같습니다. 환경적으로 잔인해졌을 가능성도 있지만, 아들들도 보면 성격이 유순하고 관대한 사람이 적었다고 하니.. 그냥 집안 내력 같기도 하구요. (...)
소독용 에탄올
15/12/08 0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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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양반이 했다는 것처럼 신규계승자의 경우 여유있게 몇대 해먹으면서 정통성을 '만드는'일이 필요하지요.
성공하면 정통성도 얻는것이고, 실패하면 다음 신규계승자가 재시도를...
15/12/08 0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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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우 이른바 신구약 중간사를 이렇게 자세하게 풀어내다니 재미있네여 흐흐 저도 어설프지만 몇가지를 같이 풀어볼게요
안티오코스 4세가 첨부터 팔레스타인지역을 강제 헬라화 시키려했던 것은 아닙니다. 그의 할아버지 안티오코스 3세는 처음에는 관용정책을 펼쳤지요. 근데 그가 프톨레마이우스 왕조와 팔레스타인 지역의 패권을 두고 싸웠던 시리아 전쟁에서 이길 무렵 지중해에서도 중요한 전쟁이 있었습니다. 그 유명한 포에니 전쟁이죠. 지중해의 결과는 중동까지 영향을 끼치기에 안티오코스 3세는 로마와 카르타고 사이에서 한나라를 선택하여 지지하게 됩니다. 근데 그 나라는 바로 카르타고 흑흑.

포에니 전쟁의 승패는 다들 아시다시피 로마의 승리로 돌아가고 로마는 셀레우코스 왕조에게 무려 만달란트라는 전쟁 배상금을 지불하라고 합니다. 실상 이돈은 갚을 수 없는 돈으로 셀레우코스 왕조를 전쟁 배상금을 이유로 좌지우지하려는 속셈이였던 거죠. 이 전쟁으로 위에나오는 안티오코스4세는 로마의 볼모로 잡혀가기도 합니다. 어쨋든 이러한 상황에서 안티오코스 4세는 왕이 되는데요, 위에서 말씀하신데로 당시 유대의 제사장 그룹은 사독가문이 잡고 있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성전중심의 공동체를 이루기 때문에 제사장은 아주 중요한 자리였죠. 근데 그 당시 레위 자손중 야손이라는 자가 안티오코스 4세를 찾아가 더 많은 돈을 제안하며 제사장직을 돈으로 사게 됩니다(!) 야손이라는 자는 우리나라로 치면 개화파에 속하는 사람으로서 헬라문화를 유대안에서 적극적으로 받아드리려고 합니다. 그래서 예루살렘 안에 체육관도 짓고 올림픽 처럼 체육대회도 하죠. 여기서 재밌는게 하나 있는데 그 당시 헬라인들은 나체로 체육대회를 했거든요, 그래서 유대 안에 체육대회도 그 방식대로 나체로 하게 되는데 유대인들의 특징인 할례한 모습이 그대로 드러나니깐 그것을 창피하게 여겼던 몇몇 유대인들은 할례를 복구하는 수술도 했다고 하네요 크크 오늘날로 보면 포경을 다시 푸는... 아무튼 이 야손이라는 자는 꽤 유능한 사람이였습니다. 뭐랄까요 그 당시 유대인들의 야훼를 유대인들의 신이 아닌 세계적인 신으로 바꾸려고 노력한 사람이라고 할까요? 하지만 보수적인 유대인들이 보기엔 이러한 시도는 아주 불경한 태도였던 것죠. 이 야손이라는 자 밑에는 메랄라우스라는 자가 있었는데 이 메랄라우스라는 자도 야손과 똑같은 짓을 합니다. 즉 안티오코스4세에게 더 큰 돈을 약속하여 제사장직을 차지합니다. 근데 요놈은 야손이라는 자와 달리 야심만 있지 능력은 안따라와서 돈을 계속 바쳐야 하는데 잘 진행이 되지 않았습니다. 당시 안티오코스4세는 계속해서 이집트와 싸우면서 이집트를 거의 점령하게 되는데 로마가 전쟁배상금을 빌미로 그것을 못하게 막습니다.

빡친 안티오코스 4세는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한가지 소식을 듣습니다. 바로 유대인들이 자신이 세운 무능력한 메랄라우스는 쫓아냈다는 소식인거죠. 빡친 안티오코스 4세는 그대로 예루살렘으로 진격, 성전을 약탈해버립니다. 열받는 거 반, 아마 전쟁배상금을 메꾸기 위한 것 반 이었을 것입니다. 그 이후 이루어진 예루살렘 강제 헬라화는 유대 백성들에게는 너무나 끔찍한 일이였습니다. 후에 신약 시대에 바울이 유대관습을 철폐하려는 것 때문에 엄청난 비판을 받았던 것을 보면 아마 이 사건이 민족적 트라우마로 남았을 것입니다. 암튼 강제 헬라화는 이 이후에 유대 곳곳에서 일어나는데 북부의 작은 도시에서 어떤 제사장이 헬라화를 강제화하는 관리를 빡쳐서 죽여버리는 사건이 일어납니다. 이 제사장이 바로 위에서 말한 맛다디아 인거죠 흐흐
15/12/08 0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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폰으로 적었더니 오타랑 띄어쓰기가 엉망이네요. 넓은 아량으로 용납드려요. 흐흐
15/12/08 0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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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통성을 얻기 위해 유대인과 결혼했지만, 헤롯은 결국 다수의 유대인들에게 왕가의 정통성을 회복하진 못했던 걸로 추정됩니다. 위에도 나왔는데 다윗의 혈통을 잇지 못했기 때문이죠. 적어도 유대인의 피가 조금이나마 섞였으면 모르겠는데, 유대인들 눈엔 그냥 이방인일 뿐이라서, 결혼한다고 국적을 바꿀 수 있는 것도 잘 허용되지 않은 것 같습니다.
구약에 보면, 아마도 하스모니안 왕조 즈음에 편집되었다고 여겨지는 에스라에서 결혼해서 이미 애도 낳고 같이 살고 있던 이방인들을 그냥 추방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편집 당시의 시대상을 반영한다고 봤을 때, 헤롯 역시도 결혼은 했더라도 부모가 이방인이기 때문에, 결국 니가 뭔짓을 해도 이방인이라는 공식이 성립되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반면에 마리암네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 아리스토불루스와 알렉산더는 하프 유대인이었기 때문에 유대인들의 지지를 받았다고 합니다. 이름부터가 헤롯의 이두매식 이름이 아니라 유대 하스모니안 왕가의 이름이라고 하네요.

그 이후의 이야기를 더 쓰실지 몰라서 여기 나온 이야기에 조금만 덧붙이자면 정통성을 얻기 위해 마리암네랑 결혼을 하는데, 마리암네는 헤롯의 두 번째 부인이었습니다. 헤롯은 유대인들에게 정통성을 얻기 위해 원래 자신의 처인 도리스를 버렸습니다 (...)

그리고 헤롯의 삶은...... 선조 저리 가라하는 질투심의 막장 오브 막장 (.......)
15/12/08 0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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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굉장히 드라마틱하게 왕위에 오른 헤롯에게 신약시대로 넘어가기 직전에 엄청난 시련이 다가오는데... 안토니우스가 별거 아니라고 생각했던 꼬마에게........

안토니우스와 친구였던 헤롯을 그 꼬마가 소환 (...) 정말 열심히, 그저 살기 위해서, 아부와 아첨을 엄청 했다 합니다.
15/12/08 0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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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이 안와서 헤롯대왕 이야기도 쫌 쓰자면 오늘 나온 헤롯은 헤롯대왕으로서 성경에서는 유아살인으로 유명한 왕이죠. 성경에는 여러명의 헤롯왕이라는 동명이인이 많이 나오는데 모두 이양반의 후손입니다. 헤롯은 정통성이 없는 수준이 아니라 유대민족에게는 원수나 다름없었는데 아까 하스몬 왕조의 후계싸움에서 밀려난 아리스토블루스 2세는 아라비아로 도망가 아라비아 사람들과 함께 로마와 싸우며 유대의 독립을 이루어 내려고 합니다. 그런데 그것을 끝까지 막아낸 가문이 바로 안티파트로스와 그의 후손들인거죠. 그 안티파트로스의 후손인 헤롯은 유대민족에겐 국가의 독립을 막은 철천지 원수나 다른 없었습니다. 게다가 유대민족의 왕이 이방인이라니!! 말도 안되는 거였죠. 어쨋든 이 헤롯은 처세술이 무척 뛰어난 것으로 보입니다. 위에도 보이지만 줄을 막 왔다갔다 잘 서자나요? 이게 보통 쉬운일이 아니죠. 그렇게 생존하며 유대지역에서 일어나는 모든 독립운동을 다 막아내며 로마의 정권이 안정되도록 돕습니다. 그 댓가로 왕이 되구요. 이렇게 왕이 된 헤롯이 백성들에게 인기가 있을리가 있겠습니까? 그래서 그가 백성들에게 인기를 얻기 위해 두가지를 하는데요, 첫번째로 위에서 말한것처럼 하스몬 왕조의 딸과 결혼하는 것였습니다. 근데 이 사람이 알고 보면 보통 싸이코가 아니였습니다. 본인은 아마 유대혼혈이라는 자신의 피에 대한 심각한 콜플렉스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유대 백성들은 자신의 독립을 막은 이방인 왕 헤롯을 좋아하기보단 그의 아내인 미리암네를 훨씬 좋아했어요. 헤롯은 그것에 대해 무척 불안해 했죠. 시기심이 강한 헤롯은 결국 공주와 낳은 자식들을 다 죽이고 아내와 장모 까지도 죽입니다. 잔인한 사람이죠. 나중에 자기가 죽을 때도 자신을 위해 아무도 안울어줄까봐 곳곳에 귀족들을 죽이라고 명령합니다. 완전 사이코죠.

그가 인기를 끌기위해 또 했던 한가지는 바로 이스라엘 포로기 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귀환해 지었던 볼품없는 제 2성전 대신 새로운 성전을 지어주는 것이였습니다. 헤롯은 괴팍하고 싸이코에다 잔인한 사람이였지만 예술가로서, 특히 건축가로서 뛰어난 능력을 가진 사람이였습니다. 그가 거의 60년을 걸려 만든 헤롯성전은 고대근동에서 아름답기로 유명한 성전이였습니다. 솔로몬 성전보다 더 컷다고 하네요. 뿐만 아니라 근동 근처에 아름답고 유명한 건축물들은 거의 헤롯이 만들었다고 합니다. 메시아가 오시면 다시 성전이 세워질거라고 믿었던 유대인들 입장에서 피로 가득한 이방인 폭력가가 만든 아름다운 성전은 참 아이러니한 느낌 아니였을까요?

아무튼 헤롯 참 신기한 사람입니다.
표절작곡가
15/12/08 05:24
수정 아이콘
그렇게 세워진 성전이 완공되고 얼마 안 돼 폭삭 무너지죠~
로마의 공격에 의해서....
솔로11년차
15/12/08 0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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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의 핵심에서 벗어납니다만 조금 추가하자면,

사사시대의 사사는 제정일치의 군주와는 좀 다릅니다. 모세 이후 '제사장'은 존재했으니까요. 사사는 행정적인 지도자이고, 열두지파가 각자 살다가(요즘으로 말하자면 지방자치라고 해야겠죠?) 외부의 공격이 있을 때 일시적으로 열두지파가 힘을 합치는데, 이 때의 구심점이 사사입니다. 물론 우리가 생각하는 행정적인 지도자보다는 종교적인 색체를 띕니다만, 이스라엘은 왕들도 종교적인 색체를 갖기에 별 차이가 없죠. 그래서 이스라엘에서 왕이 탄생한건 제정분리의 의미보다, 임시적으로 두던 12지파 연합체의 지도자를 상시적으로 두는 의미라 봐야합니다. 그리고 사무엘은 제사장이자 사사인 사람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어마어마한 사람이에요. 하지만 사무엘을 기준으로 제정일치에서 제정분리로 변했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사무엘이 제사장이자 사사여서 그런 거지, 그 전의 사사들은 종교지도자하고는 좀 거리가 있었어요.

어차피 유대인들은 유다지파가 아닌 왕조를 인정하기 어려워서... 헤롯왕이야 말 할 것도 없지만, 하스모니안 왕조도 정통으로 인정할 수가 없습니다. 북이스라엘 왕조도 인정이 안되는데요. 우리로 치면 남한의 입장에서 볼 때 북한의 김씨왕조같은 거죠.
Love&Hate
15/12/08 14:19
수정 아이콘
사무엘이 어마어마한 사람이어서 사사면서 제사장이었다기 보다는
엘리(사무엘의 스승)-사무엘-요엘&아비야(사무엘의 아들들)로 이어지는 사사 라인이 모두 그랬다고 봐야죠.
사사를 제정일치, 왕정을 제정분리로 보는 것은 뭐 그런 시각입니다.
사무엘의 아들들이 사사를 세습했음에도 왕정이 도입된거니깐요.
솔로11년차
15/12/08 14:29
수정 아이콘
호칭에 따르면 그럴 수 있긴하겠네요. 신학적으로는 그들 중 사무엘만 사사로 인정받기 때문에 잠시 착각했습니다.
하지만 엘리와 사무엘, 사무엘의 아들들의 시기는 몇십년 밖에 안되고, 사시시대는 사무엘의 시기를 제외해도 300년입니다. 말씀하신대로라면 300년동안 제정분리사회였다가 몇십년정도 제정일치가 된 후에 다시 왕이 나와서 제정분리가 된 걸로 표현한건데, 이 걸로는 왕이 제정분리를 상징한다고 하기 어렵죠. 사무엘이 제정일치를 상징할 수는 있어도요. 본문은 왕정의 시장을 제정분리의 시작으로 보시기에 그건 아니라고 말씀드린겁니다.
물론 사사가 어느정도 종교적인 색채가 있습니다만, 말씀드렸듯이 그건 왕도 갖고 있습니다. 신학적으로는 왕이 사사보다 종교적인 색채가 더 강해요.
Love&Hate
15/12/08 14:46
수정 아이콘
뭐 마찬가지입니다.
엘리-사무엘-사무엘의 아들들로 이어진 상시적,그리고 세습적인 사사라인과 왕정의 차이를
단지 일시적인 지도자와 상시적인 지도자의 차이로 보기도 어렵습니다.
왕정전환을 상시적 지도자로 보는 시각과 제정분리 지도자로 보는 두가지 시각 모두 있더군요.
뭐 그정도로만 말씀 드리고 싶네요.
15/12/08 1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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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신학 학파에 따라 다르겠지만, 구약의 "왕"과 포로기 이후의 "왕"의 의미가 변했다고 보는 것이 좀 더 무난할 거 같습니다.
신학적으로 왕이 사사보다 종교적 색체를 강하게 가지게 된 것은 포로기 이후에 메시아에 대한 소망이 다윗의 혈통과 연결되면서 라고 해석을 하는 편이구요. 당시 사울의 등장이나 다윗 이후의 왕들은 다소 전형적인 제정분리의 시작 정도로 해석하는 분들이 많더라구요.

당시 사사와 왕의 가장 큰 차이점은, 신과 직접적으로 소통 및 관계를 하는가, 대변자가 필요한가의 여부였습니다. 사무엘의 시대 전까지만 해도 제사장이 아니라고 해도 신이 지도자와 대화 또는 힘의 부여 등의 일이 일어나는 반면에, 사울 이후 왕들은 제사장이나 선지자가 보다 전면에 등장해서 왕과 신 사이를 중재하기 시작합니다.

물론 성경 전체로 보면 왕의 위치가 신의 대리자로서의 역할을 담당하는 것은 맞지만, 구약의 사사와 왕국 시대를 살펴본다면 제정분리의 시기로 보는 시각이 좀 더 우세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표절작곡가
15/12/08 05:58
수정 아이콘
신약시대에서 여러종파가 등장하게 되는 계기인 하스몬 왕가 이야기로군요...

사두개인은 위에서 언급했듯이 사독의 후손들이라고 자처하는 제사장 무리들입니다.
성전 중심으로 생활을 했구요. 모든 제사를 관장하기도 하고 어느 정도 사법권도 있었기 때문에
기득권 오브 기득권이었죠...
보수 성향이 강하다고 볼 수 있는데, 자기들 기득권 지키는 일이라면 그리스든 로마든 오케이입니다.
로마가 예루살렘을 함락시키고 성전을 돌 위에 돌 하나도 남지 않도록 파괴해버리자
이들도 자연히 사라졌습니다.
놀던 멍석이 없어졌으니 별 다른 도리가....

바리새인은 당시 회당 중심으로 율법을 가르치면서 사는 무리들이었습니다.
주로 회당장 혹은 서기관 등등으로 율법에 빠삭한 사람들이었죠.
이들은 사두개인과 달리 서민들과 함께 호흡하면서 살았기 때문에 그들의 지지를 많이 받았죠.
예수가 와서 이들을 실날하게 깝니다.
겉과 속이 다르거든요...
십일조를 철저하게 지킨다면서 밀알을 일일이 세서 십일조 낸다고 생쇼는 하는데,
자기들 부모는 공양하기 싫다면서 부모님의 생활비로 드릴 돈을 고르반이라고
즉 하나님께 바치는 돈이라고 선언해버리는게 일상이었죠.
그러면 하나님께는 바쳤냐?? 또 그건 아니라는게.....
그냥 고르반이라고 선언해놓고 자기가 까먹어도 당시에 전혀 문제가 안됐던게 큽니다.
이 외에도 또 많죠...

열심당은 바리새인과 비슷한 부류의 경건주의자 그룹입니다.
이들은 외세의 압제를 벗어나기 위해선 실질적으로 행동을 보여야한다는 입장이었습니다.
그래서 요인 암살등 테러를 위주로 활동했죠.
로마의 예루살렘 함락전 때 마지막까지 싸운 무리들입죠.
영어로는 Zealot입니다..
네 하드코어 질럿 러시에 그 질럿 맞습니다.

에세네파도 경건주의자 그룹입니다.
이들은 경건 오브 경건을 지키기위해 세속과 떨어진 광야로 들어갑니다.
거기서 모여서 경전을 연구하는 일 등을 했죠..
가끔 갑툭튀해서 백성들이나 위정자들을 꾸짖는 건 덤.
(모두까기는 기본 스킬..)
세례요한이 에세네파라는 설이 있기는 한데
성경에는 콕 찝어서 그렇다라고 나오진 않고(에세네라는 말 자체가 성경에 안나옴.)
세례요한의 생활 양식을 볼 때 에세네파가 아닌가하고 강하게 추정할 뿐입니다.

유대인의 대다수가 헤롯을 반대했다고 해도 헤롯 편이 아예 없었던건 아니었죠.
헤롯당도 몇몇 있었습니다. 이들은 기회주의자 그룹이라 누구에게도 지지는 못 받았죠.
헤롯은 좋아했으려나??

종파는 아닌데 생계형 매국은 그 시대에도 존재했죠.
바로 세리라는 무리들이죠...
백성들에게 세금을 걷는 무리들인데
로마에게 바칠 세금만 걷어서 송금하면 미션 클리어입니다.
그렇지만 월급은 로마에서 안줍니다....
그래서 세금 + 알파를 걷어서 그 알파를 자기가 챙기죠.
그 알파가 엄청 커서 문제지.....
그렇다고 세리한테 개기면 로마 군대가 출동하기 때문에
일반 백성들은 울며 겨자먹기로 얘네들 횡포에 놀아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상당한 부자들인데 백성들한테는 손가락질 받는 포지션입죠.
무무무무무무
15/12/08 07:32
수정 아이콘
당연히 연애글일 줄 알았는데....
jjohny=쿠마
15/12/08 07:58
수정 아이콘
하스모니안 왕조라든지 마카비전쟁에 대해서는 성경의 제2경전에 나오는데, 제2경전은 개신교 성경에는 포함되어 있지 않아서 (가톨릭, 정교회, 동방정교회 쪽 성경에 포함), 특히 개신교인들은 (예수님 오시기 직전의 유대민족 역사이긴 하지만) 아무리 성경을 달달 외워도 잘 모르는 부분이죠. 추천 눌렀습니다~
구라리오
15/12/08 07:59
수정 아이콘
재....재미나잖아?!
15/12/08 08:30
수정 아이콘
재밌네요! 글감사합니다.
15/12/08 08:34
수정 아이콘
나는 왜 여기서 덴마를 느끼고 가는가?
야 셀
15/12/08 08:50
수정 아이콘
재밌게는 읽었지만 뭐가 뭔지는 모르겠다.크끄크
Deadpool
15/12/08 09:04
수정 아이콘
하나님이 침묵하셨던 시기는 잘 몰랐는데
여러모로 잘 배우고 갑니다. 헤헿
몽키.D.루피
15/12/08 09:53
수정 아이콘
출근길 순삭이네요. 감사합니다 흐흐
마스터충달
15/12/08 10:43
수정 아이콘
이 지역은 어느시대를 가져와도 꿀잼인듯 크크
SuiteMan
15/12/08 12:22
수정 아이콘
[다시 힐카누스의 시대로 오겠습니다. 남아 있던 하시딤들은 마카비 가문이 유태인의 왕이 되는것을 지켜보아야 했습니다. 일단 사독가문이 대제사장이 된것도 마음에 들지 않는데, 왕이 대제사장을 겸임하겠다니요.] 이 부문 문맥 상 틀린것 같은데..맞나요? 역사 잘모릅니다.
Love&Hate
15/12/08 14:20
수정 아이콘
틀린것은 없는거 같은데 이해가 잘안되는 부분이 있는거 같아 좀 매끄럽게 고쳐보겠습니다.
발대지마
15/12/08 18:39
수정 아이콘
좋은 글 정말 잘 읽었습니다. 기독교 역사 관련된 얘기는 늘 흥미진진하네요.일전에 교파 관련된 얘기도 재미나게 해주시고..감사합니다.
관련된 부분에 지식이 많으신것 같은데
혹시라도 시간 되시고 여유 되시고 정말 할게 없어 심심해서 죽을것 같을때
쿰란동굴에 사해문서 관련된 글도 올려주시면 안될까요?
찾아봐도 어디까지 밝혀진 사실인지가 가늠도 잘 안되고 대부분 저작자 입장에서 쓴것 같아 치우친것 같은 느낌이 많이 들어서요..
16/03/30 09:11
수정 아이콘
교회를 오래다니고 구약신약은 좀 읽었다면 읽었는데 이렇게 정리하니까 머리속이 더 명쾌해진 기분이네요.
원더보이
16/03/30 15:35
수정 아이콘
감격입니다. ㅜㅜ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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