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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9/07/09 10:15:28
Name 서양겨자
Subject 감수성과 통찰
모든 예술에는 감수성과 상상력이 필요합니다. 관점에 따라서는 체험과 지식 그리고 견문 따위를 중요 요소로 칠 수도 있을 겁니다. 그러나 저는 저 두 가지를 가장 중요한 요소로 생각합니다. 감수성은 통찰을 포함하고, 상상력은 합리성과 관련하며, 그 외에도 타고난 성정과 고유의 철학이 필요하겠지요.

감수성이라는 말의 사전적 해석은 '외계의 자극으로부터 받은 강한 인상에 의하여 행동이 좌우되기 쉬운 경향'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매우 불충분한 이 사전적 해석에는 약간의 부정적인 뉘앙스도 깃들어 있습니다. 감수성이 감정과 혼동되기 쉬운 느낌을 주며, 감수성이 예민한 상태가 감정에 쉽게 흔들리는 것과 연관되는 듯한 느낌을 주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엄밀히 말해서 감수성이란 감정과 상당히 다른 것이지요. 물론 상관이 전혀 없지는 않지만, 본질적인 개념부터 감수성은 감정과는 차원이 다르다고 볼 수 있습니다.

감수성은 일단 외계에 대한 느낌이며, 느낌의 포착입니다. 감수성이 예민하다는 것은 외부 세계에 대한 느낌이 세밀하다는 것이고, 외부로부터 오는 갖가지 느낌들에 대한 포착 능력이 우수하다는 얘기입니다. 또한 감수성이 예민하다는 것은 느끼고 생각하는 것이 많다는 얘기이기도 합니다.

감수성이 예민한 사람들이 감정의 기복을 많이 겪게 되고, 희노애락에 대한 감정의 굴곡이 뚜렷한 사람들이 감수성이 좀 더 예민한 모습을 보이기도 하는 것은 경험칙상 사실입니다. 감수성은 매우 발전적이고 진취적인 속성을 지닌 정서입니다. 감수성이 감정과 쉽게 결합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냥 감정 상태로 머물게 되면 그 감수성은 대단히 무의미하고 무가치한 정서가 되고 맙니다. 감수성이 지극히 개인적인 차원에 머물면서 감정과 쉽게, 지나치게 결합해 버리면 대단히 왜곡된 부정적인 상태를 보이기도 하지만, 감수성이 발전적이고 진취적인 모습을 지니게 되면 그것은 창조적인 행위로 이어질 겁니다.

감수성의 초보적이고 일반적인 상태도 사실은 우리 모두에게 매우 귀중한 정서입니다. 남들이 느끼지 못하고 생각하지 않는 것들을 느끼고 생각한다는 것은 일단 두 가지 모순되기 쉬운 삶의 질감을 그에게 안겨 줍니다. 남들이 느끼고 생각하지 못하는 것들을 느끼고 생각한다는 것은 우선 그 사람이 천부적인 특성이나 품성을 지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의 그런 특성이나 품성은 창조적인 재능과 쉽게 연결될 수 있습니다. 그런 관점으로 보면 그는 일단 복받은 사람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대개의 경우 특이한 감수성은 그의 고뇌로 작용합니다. 남들이 느끼고 생각하지 못하는 것들을 홀로 느끼고 생각해야 한다는 것은 엄청난 고독감과 고뇌를 수반하는 것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것은 삶의 멍에가 되기도 하지요. 

인간만의 고유 정서인 동정심 한 가지 만을 예로 들어봅시다. 남의 불행한 일이나 비극적인 현상 앞에서 가슴 아파하게 하고 함께 눈물을 흘리게도 하는 이 동정심은 일단 감수성이라는 단계를 거칩니다. 그러니 감수성이 약하고 감정이 무딘 사람에게서는 동정심을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동정심이 없는 사람들은 일단 감수성이 약하고 무딘 사람으로 볼 수 있습니다. 동정심 뿐만 아니라 분노와 열정 따위도 실은 감수성의 관문을 배제하고서는 성립할 수 없지요. 이처럼 감수성은 모든 정서의 기초이고 참으로 중요한 토대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감수성이 감정과만 결합하고 감정 상태로만 머문다면 그것은 무의미하기 짝이 없는 것이 되고 맙니다. 더 나아가 자칫하면 파괴적인 속성까지 지닐 수가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 감수성이 이지의 세계로 나아간다면 그것은 발전적이고 진취적인 속성을 지니면서 마침내는 더 높은 단계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의 감수성에는 반드시 이지라는 것이 수반하거나 뒤따라야 합니다. 감수성이 감정과 잘 결합하여 좋은 쪽으로 감정 상태를 더욱 풍성하게 할 뿐만 아니라 이지의 세계와도 조우하고 결합한다면, 그런 상황의 감수성은 여러 가지 좋은 이름으로도 불리워질 수 있습니다.

인식 능력, 문제 의식, 비판 의식 등이 감수성이라는 명사를 대신할 수 있는 언어들입니다. 그러므로 감수성이 예민하다는 것은 수신 기능이 양호한 높은 안테나를 지녔다는 것이고, 어떤 사물이나 사안의 속성과 이면에 대한 투시력이 날카롭다는 얘기이고, 현실에 대한 인식이 명확하다는 것이고, 그리하여 어떤 사물이나 현상 속에 담겨 있는 문제를 정확히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그 모든 것을 다른 말로,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어떤 말이 적합할까요?

그것은 바로 통찰이라는 단어입니다. 통찰이라는 말의 사전적 해석은 '온통 밝혀서 살피는 능력', '전체를 환하게 내다보는 힘'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통찰이라는 말은 사물에 대한 인식 능력의 광범위하고 총체적인 표현입니다. 창조적인 업무에 뜻이 있다면, 감수성은 무엇보다도 중요한 사항입니다. 또한 통찰력이 감수성 못지않게 중요한 능력이자 덕목입니다. 그런데 얼핏 생각하면 감수성과 통찰은 별개의 것인 듯 싶지만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감수성과 통찰은 불가분의 것으로서 마치 쌍둥이 와도 같은 것입니다. 감수성은 통찰력이 밑받침 됨으로써 가치를 발휘할 수 있습니다. 또한 통찰은 감수성이 전제 되어야만 온전할 수 있고 진가를 나타낼 수 있습니다. 이렇게 감수성과 통찰은 통일적이며 늘 같이 가야만 하는 것입니다.

감수성과 통찰의 서로 조금 다른 성격을 말하자면, 감수성은 좀 더 선천성에 가깝고 통찰은 좀더 후천성에 가깝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감수성은 아무래도 선천적으로 타고 나는 것인 것 같고, 또 선천적인 쪽이 좀 더 예민하고 세밀한 것 같습니다. 감수성은 영감을 낳는 것이기도 하니까 그 영감 능력을 결부시키면 더욱 그렇게 생각됩니다. 그에 비해 통찰은 후천성이 강한 것 같습니다. 후천적인 노력으로도 사물에 대한 통찰 능력을 얼마든지 키울 수 있다고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이지를 키워주는 공부를 통해서 통찰은 얼마든지 신장될 수 것이 아니겠습니까. 

감수성과 통찰은 감성과 이성의 한 모습입니다. 그러므로 감수성과 통찰이 함께 한다는 것은 감성과 이성의 조화로운 결합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감성으로 이성의 문을 더욱 활짝 열 수 있고, 이성으로 감성의 세계를 더욱 풍성하게 만들고 가꿀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우리는 감수성으로 통찰을 더욱 확장할 수 있고, 통찰로 감수성을 더욱 예리하게 가다듬을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예민한 감수성에 의해서 접수되고 포착된 그 모든 감각과 인식들은 통찰이 밑받침 되어야만 현실 인식이 되고, 문제 의식이 되고, 비판정신이 될 수 있습니다.

남들이 느끼고 생각하지 못하는 것들을 느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남들이 느끼고 생각하지 못하는 것들을 느끼고 생각한다는 사실에서 자부심을 가져야 합니다. 예리한 감수성을 사랑해야 합니다. 때로는 그것이 우리에게 말할 수 없는 고뇌와 고독감을 안겨주고 크나큰 짐으로 작용한다더라도 우리는 감수성의 문을 닫고 살아서는 안되고 또 그럴 수도 없습니다.

우리가 우리의 감수성을 사랑하고 더욱 키우고 가치롭게 할 수 있는 길은 사물에 대한 통찰을 키우는 일입니다. 그리고 통찰을 키울 수 있는 방법은 부단한 독서와 사고입니다. 사고하는 버릇, 사고하는 생활. 이것이야말로 사람들이 끊임없이 추구해야 할 최대의 가치 덕목입니다. 또 그것을 위해서도 예술은 필요한 것입니다. 우리의 감수성과 통찰은, 그리고 통찰을 기르기 위한 노력은 우리 모두의 인생관과 세계관에도 큰 영향을 미치고 큰 기틀이 되어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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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7/09 10:45
수정 아이콘
맞는 이야이긴 한데, 뭔가 알맹이 없는 자기계발식 결론 같네요. ‘발전적, 진취적’
서양겨자
19/07/09 10:51
수정 아이콘
나혜석 같은 사람들이 있죠. 우리 주변엔.
aurelius
19/07/09 12:05
수정 아이콘
훌륭한 에세이 잘 보았습니다. 많은 부분 공감합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감수성과 통찰은 불가분의 관계에 있습니다. 이를 위해 정말 많이 보고, 경험하고, 또 읽어야 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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