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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9/05/03 12:50:41
Name 뒹구르르
Subject 고양이를 죽였습니다
나는 어제 고양이를 죽였습니다.

이렇게 익명의 글이라도 쓰며 자기 합리화를 하면 조금은 죄책감이 덜어질까하여 씁니다.

어제 22시경 도로를 건너던 길고양이를 차로 치었습니다. 얼핏 보기에 그리 크지 않았던지라 한 살 정도가 아니었을까 합니다.
신호를 대기하던 내내 맞은 편 자동차가 상향등을 켜고 있어 앞이 잘 보이지 않았습니다.
좌회전으로 그 차가 떠난 후에도 망막엔 계속 흔적이 맺혀있어, 차선도 구분이 어려울 정도였습니다.
한사발 욕을 하고 직진으로 차를 몰고 나간 조금 후에, 반대 차선에 있던 차 바닥에서 검은 덩어리가 튀어나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왕복 2차선이라 오른쪽으로 갈 곳도 없었고, 반대 차선에는 차가 있었습니다. 뒷차가 막 가속하던 시점이라 급브레이크를 밟을 수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 순간 삶은 계란을 밟은 듯한 느낌이 발에 허벅지에 엉덩이에 느껴졌습니다. 등골이 오싹하며 눈물이 날 것 같은 기분이었습니다.
딱히 실패도 좌절도 없는 인생이라 이렇게 더럽고, 절망적인 느낌은 정말 처음 겪어 보는 경험이었습니다.

무면허로 바이크를 타던 중학생 시절에도, 고3 이후 십수년 간 차를 운전하면서도 완전 무사고 운전자였습니다.
티맵 점수도 늘 백점이고, 국내 뿐 아니라 일본, 호주, 태국, 미국 등 좌우 핸들을 가리지 않고 세계 어디에서도 흔한 기스 한 번 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나는 어제 고양이를 죽였습니다.
앞이 잘 보이지 않았고, 피할 도리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어쩔 수 없었습니다.
이 말이 내게 위로가 되길 바라지만, 이미 그른 것 같습니다.
밤새 잠을 설쳤고, 지금까지도 그 소름끼치는 감각이 척수와 뇌에 남아 있는 것 같습니다.
며칠이 지나면 까맣게 잊고 또 아무렇지도 않게 살아가겠지만, 길고양이를 볼 때만이라도 떠올리며 평생을 괴로워하겠습니다.
사후세계도 윤회도 어떤 것도 믿지 않는 사람이라, 제발 그 작은 아이가 최대한 덜 고통스럽게 갔기만을 바랍니다.
정말 미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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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카이
19/05/03 12:52
수정 아이콘
길냥이들 평균 수명이 2년이라고 하더군요...
어쩔 수 없는 일이고 피할 수 없었다면 그 또한 양쪽에게 운명이었을 터
너무 심히 자책하지 않으시길
홍승식
19/05/03 12:52
수정 아이콘
로드킬은 동물들이야 생명을 잃으니 당연히 피해자지만 운전자의 트라우마도 크다고 하더라구요.
욕보셨습니다. 토닥토닥
19/05/03 12:55
수정 아이콘
주어진 상황을 고려할 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던 것 같습니다. 본인이 통제할 수 없는 일에 대해서 도덕적인 죄책감을 가질 필요는 없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지게 되는 게 또 사람 마음이지요. 너무 오래는 괴로워하지 마시길 빕니다.
19/05/03 12:55
수정 아이콘
일부로 죽인것도 아닌데요 뭘..
修人事待天命
19/05/03 12:59
수정 아이콘
처음 로드킬 했을때는 저도 모르게 성호를 긋게 되던데 이게 열번을 넘어가다보니까 이제는 걍 입에서 '아이 XX' 이라는 욕부터 나오더군요. 사람이 이런일에도 익숙해지는구나 싶었습니다. 운전하는 사람은 대부분 경험하는 일이니까 너무 마음쓰지 마세요. 여태 경험 안해보신게 천운입니다.
눈물고기
19/05/03 12:59
수정 아이콘
힘내세요....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잖아요..
너무 자책하지 마세요.
위대한캣츠비
19/05/03 13:00
수정 아이콘
어쩔수 없는 일이었고 서로가 원치 않는 사고 였으니까요.
죄책감 더시고, 앞으로 마주치는 길냥이들에게 따뜻한 시선 한 번 더 주시면 될것 같아요.
사악군
19/05/03 13:00
수정 아이콘
너무 오래 힘들어하지 마시길..
Conan O'Brien
19/05/03 13:01
수정 아이콘
그래도 더 큰 사고가 나지 않도록 잘 대처하신 것 같습니다. 잘못하면 인명 사고까지 날 수도 있었던 상황이네요.
꽃이나까잡숴
19/05/03 13:01
수정 아이콘
ㅠㅠㅠ
그거 생각나네요. 모닝와이드였나? 아침 방송에서 블랙박스로 본 세상인지 뭔지 하는 프로였는데,

어떤 사람이 새로뽑은 차를 몰고 길을 가는데 갑자기 백구 한마리가 길로 나와요. 운전자는 급하게 방향을 틀어서
가드레일을 박고 차가 크게 파손됐지만 개는 무사했어요.
개의 주인분은 운전자에게 사과하고 수리비 전액(350만원)을 보상해 줍니다.
운전자 인터뷰 영상에서 "새로산 차가 사고차량이 됐는데 마음이 많으 아프시겠다" 라고 하니까
운전자 분이 이렇게 말합니다.
"괜찮습니다. 수리비는 주인분이 보상을 해주셨으니 됐고, 그 개를 치어 죽이기라도 했으면
엄청난 죄책감에 시달렸을건데 개가 무사하니 다행입니다."

그만큼 로드킬은 정말 운전자에게 힘든 부분이죠......
마음 잘 추스리시길 ㅠㅠ
本田 仁美
19/05/03 13:02
수정 아이콘
안타까운 사고일 뿐입니다. 너무 힘들어하지 마세요.
바카스
19/05/03 13:02
수정 아이콘
와 티맵이 100점도 나오는군요..
돈퍼니
19/05/03 13:12
수정 아이콘
저도 약 두달전 로드킬할뻔했죠 조수석있던 친구가 멈춰!!하자마자 고양이 두마리가 후다닥~ 뭐 어떻게 반응할 정도가 아니더라구요
필연적으로 있을수밖에없다 생각하시고 보내시길..
19/05/03 13:18
수정 아이콘
고라니 피하다가 차가 전복되는 바람에 고라니는 죽고 저도 죽다 살아 난적이 한번...개를 살짝 친적이 있는데 다리를 다치고 죽진 않았던 적이 한번 있어요
우습게도 죽은 고라니에게는 어떤 감정도 안 생기더군요. 내가 죽다 살아난것에 대한 감사한 마음만 있죠
반면에 다친 개는 영 마음이 불편했어요. 아마도 나는 안전하고 개만 다쳐서 그랬는지 모르겠어요
사람 마음이란게 참 그래요...
Faker Senpai
19/05/03 13:24
수정 아이콘
어쩔수 없죠. 자연환경이 더 발달된 나라에서 사셨으면 훨씬더 자주겪으셨을거에요. 마음이 여리신분 같은데 고양이는 좋은데 갔을테니 마음 잘 추수리시길 바랍니다.
저는 호주사는데 울어머니는 캥거루를 죽이셨었죠. 애네가 근시라 차가 가까이오면 그때서야 피하려고 되려 차로 달려들어서 사고가 많이 나거든요. 사고나고 찜찜해서 무척 괴로워하셨던게 20년이 지났는데도 기억나는군요.
전직백수
19/05/03 13:35
수정 아이콘
토닥토닥...
그리스인 조르바
19/05/03 13:35
수정 아이콘
군대에서 야간에 차를보면 오히려 달려드는 고라니들 때문에 고생하다보니 로드킬에 무감각해지더군요
마스터카드
19/05/03 13:38
수정 아이콘
티맵 백점이면 정말 안전운전하시는거 같은데..
너무 자책하지 마세요
19/05/03 13:38
수정 아이콘
3주 정도 호주를 여행하면서 온갖 유명한 동물들을 다 보았습니다. 쥐, 토끼, 까마귀에 태즈메니안데블, 캥거루 심지어 웜뱃까지..

자동차 도로 옆에 피떡이 되어 있는 채로요. 100마리는 본 것 같네요 젠장.. ㅠ
류지나
19/05/03 14:02
수정 아이콘
다른 동물은 몰라도 거기는 토끼는 일부러 치어 죽인다던데.......
19/05/03 14:13
수정 아이콘
워낙 도로 연장이 길다 보니 수시 수거도 안하는 모양이데요. 갖 치어 피떡된 것부터 까맣게 쥐포된 것까지 온갖 종류의 사체가..
집으로돌아가야해
19/05/03 23:54
수정 아이콘
그 분야의 갑은 스컹크라고 합니다. 한번 로드킬 당하면 그 자동차와 사고 지역에 향기가...
19/05/04 16:12
수정 아이콘
스컹크도 안됐고 운전자도 안됐고 주민들도 안됐고 심지어 렌트카 회사 직원도 안된 참사겠군요 ㅠ
리나시타
19/05/03 14:06
수정 아이콘
저는 제주도에서 차 타고 가는데 갑자기 길 가에서 가던 고양이가 제 차로 뛰어들어서 한번 밟고 넘어간적이 있습니다
제가 밟은거도 아니고 차로 밟은건데도 밟고 넘어가는 그 느낌이 온몸에 다 전해지는게 소름돋더라구요
아유아유
19/05/03 14:09
수정 아이콘
사고입니다..
사람이 다치는것보단 낫죠...ㅠ
사랑둥이
19/05/03 14:22
수정 아이콘
개는 갓길에서 차가 오면 피하던데

고양이는 갑자기 차로 뛰어오더군요

진짜 아찔했던 기억이 나네요
쭌쭌아빠
19/05/03 14:56
수정 아이콘
심심한 위로 드립니다. 어서 잊으시길 기원합니다. 더불어 냥이도 좋은 곳으로 갔기를...
델타 페라이트
19/05/03 15:44
수정 아이콘
제 얘기로 위로가 될지는 모르겠는데..
저는 길냥이가 아니라 제 친구가 키우는 냥이를 밟아 죽인적이 있습니다..
너무 힘들었습니다..ㅠㅠ
카페알파
19/05/03 15:45
수정 아이콘
그냥 어쩔 수 없는 사고였다고 생각하세요. 특히 동물들은 차가 와도 피해야 된다는 감각이 없기 때문에 사고 상황에서 사고 안 내기가 진짜 힘듭니다.

저도 운전하다보니 이런저런 로드킬을 좀 했습니다. 토끼도 있었고, 참새도 치어 봤네요(참새는 3번 정도). 그러고 보니 흔히 로드킬 사고가 나는 고양이나 개, 고라니와는 사고가 나지 않았네요.(좀 특이하긴 하네요.) 개나 고양이보다는 사람과 덜 친한 동물이라 그런지, 심리적인 부담은 덜 했습니다만, 기분이 좋지는 않았었습니다.

글쓴분도 그냥 운명이었거니 하고 편하게 마음 먹으세요. 아무리 조심을 해도 어쩌면 로드킬은 운전자의 숙명인지도 모릅니다.
캐모마일
19/05/03 16:11
수정 아이콘
힘든 마음 충분히 이해합니다. 한동안은 어쩔 수 없이 괴로움에 시달려야 하겠죠.
시간이 약입니다
19/05/03 16:39
수정 아이콘
어쩔수 없는 일입니다. 생명을 존중하는 글쓴이의 마음이 느껴 저도 참 안타깝네요. 힘내십시오.
치토스
19/05/03 18:07
수정 아이콘
이런 양심있는 분이 사고 내신 거라면 하늘에 있는 고양이도 원망하진 않을겁니다. 고생하셨어요.
최씨아저씨
19/05/03 21:35
수정 아이콘
일단 위로드립니다. 사고난 고양이 처리는 어찌하셨는지 궁금하네요.
검정머리외국인
19/05/03 21:57
수정 아이콘
어떻게 위로를 해드려야 할지 모르겠으나 이미 일어난 일이니깐 최대한 신경쓰지 마세요. 고양이라서 다행이지 인명피해가 났으면 정말 큰일 날 뻔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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