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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9/02/11 01:27:45
Name 신불해
Subject 잘 싸우고도 외교적 헛짓으로 성과를 날려먹은 청나라




신장 위구르 자치구 지역은 현재 전중국의 6분의 1에 해당하는 광대한 영역으로, 지하 자원도 아주 많은 자원의 보고로 알려졌습니다. 여기에 다른 중국 지역에 비해 이색적인 튀르크 족, 이슬람 교도들이 모여 있어 색도 뚜렷하게 다르고, 분리독립에 관한 목소리도 많아 분쟁도 많은 지역으로 사람들에게 유명합니다.





그런데 여러모로 유명한 분쟁 지역이 신강이지만, 막강 신강의 역사 등에 관련된 부분에서는 그다지 크게 조명이 되거나 대중에게 알려져 있거나 한 편은 아닙니다. 비스무리한 티베트는 '중세에 토번이 위세를 떨쳤다.' 라는 정도라도 알려져 있는데... 신강에 대해서는 "그러니까 위구르 족 많이 살고....이슬람 교도들 있고.. 뭐 그런..." 대충 이런 이미지 입니다. 




그도 그럴만한게 워낙에 많은 국가와 여러 계통의 종족이 지나갔고, 이런 여러 세력의 뿌리가 어딘지 대충 설명하는것만으로도 말이 엄청 길어지고, 수많은 세력들이 겹쳐질만한 곳이라 서로 얽힌 이야기만 풀어도 한참 길고... 




떄문에 잘 알려지지 않는 이야기이긴 한데, 근현대 시절의 중국-그러니까 청나라가 "그냥 꽁으로 신강 지역을 놔버릴 수도 있었다." - "그런데 예상 이상의 성과로 신강을 지키게 되었다." "그런데 외교 역사에 남을 황당한 사례로 또 그냥 이걸 놔줄뻔 했다." 라는 나름 극적인(?) 이야깃거리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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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쿱 백





대략 시기는 그 유명한 태평천국 운동이 실패로 끝나갈 무렵, 지금의 신장 위구르 자치구 지역에 야쿱 백(Yaqub Bek)이라는 이방인이 등장하면서 시작됩니다. 그는 코칸드 한국 출신의 이슬람 교도 였습니다.



무려 2,000만 명의 사망자가 나왔다고 알려진 대사건인 태평천국 운동의 난 진압에 청나라의 시선이 쏠려 있는 동안, 제국의 가장 먼 서북 변방에서는 온갖 무슬림 봉기군과 지역 유지들, 각지에서 힘 좀 쓴다는 군사세력의 난립으로 대혼란의 상황에 놓여져 있었습니다. 




이 이슬람 봉기와 분쟁에 관련된 이야기만 해도 상당한 분량의 이야기가 될만한데, 일단 넘어가고 요지는 이런 위구르의 혼란과 청나라의 개입이 어려운 틈을 타, 이웃인 코칸드 한국에서 분쟁에 개입하여 이득을 보려는 뜻을 보였다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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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 우즈베키스탄 동부 지역 부근에 존재하던 코칸드 한국





지금의 우즈베키스탄 지역 부근은, 당시에는 코칸드, 히바, 부하라 라는 3개의 한국(Khanate)이 있었습니다. 모두 이슬람교를 신봉하는 나라들이었습니다. 문제는 당시에 러시아가 중앙 아시아 지역에 강한 영향력을 발휘하던 때라, 거대제국 러시아의 압력에 3개의 나라 모두 크게 시달렸다는 겁니다.



사마르칸트를 중심으로 하는 부하라 한국은 1868년 러시아에 합병되었고, 1873년에는 히바 한국도 제정 러시아의 보호국이 되었습니다. 보호국은 단순히 허울좋은 제국주의의 명분이고, 실제적으로는 러시아의 영토가 된 것이나 다름 없었습니다. 동부에 위치한 코칸드 한국도 순서만 마지막일 뿐이지 곧 러시아의 압력에 짓눌릴 건 자명한 이치였습니다.



그런데 이때 신강에서 키르기즈인들에게 반기를 들었던 카쉬가르의 무슬림 집단이 있었습니다. 키르기즈 인들은 코칸드 한국에 이들을 물리쳐 달라고 지원을 요청했습니다. 북쪽과 서쪽에서 러시아의 압력에 눌리던 코칸드 한국은 이를 기회 삼아 동쪽으로 진출해 활로를 마련해보려고 했고, 이에 따라 파견된 인물이 바로 야쿱 벡이었습니다.




그래서 야쿱 벡이 군사를 이끌고 와보니, 상황은 묘하게 되었습니다. 일단, 야쿱 벡의 원정이 무슨 성과를 내기도 전인 1876년, 본국인 코칸드 한국은 파도처럼 몰려오는 러시아의 압력에 굴복해 아예 나라가 망해버렸던 겁니다. 돌아가자니 돌아갈 나라는 없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두번째로 야쿱 백이 진압하기로 했던 카쉬가르의 무슬림 집단은 정작 야쿱 벡이 도착하기도 전에 키르기즈인들에게 항복해버렸습니다. 나라도 망했고, 나라가 망하기 전에 받았던 임무도 뭘 해보기도 전에 끝나있던 상황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덩그러니 군사만 끌고 온 야쿱 백은, 그러자 흡사 삼국지에서 무장들이 거병하듯 아예 이 지역에 세력을 일으켰습니다. 여러 군사적 집단이 충돌하고 있긴 했지만 야쿱 백이 끌고온 유목민 군단의 상대는 아니었고, 곧 야쿱 벡은 성공적으로 자리를 잡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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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쿱 백이 위구르 지역에 할거한 계기는 그렇게 되었고, 그럼 당시 청나라의 사정은 어찌했느냐 하면 굉장히 좋지 못했습니다.



야쿱 벡이 위구르에 들어오기 10년 전쯤인 1864년, 청나라는 러시아와 타르바가타이 조약(Treaty of Tarbagata)이라는 조약을 맺었습니다. 이 새로운 국경 책정 조약에 따라 청나라는 기존에 판도에 넣었던 영토에서 현재 카자흐스탄 동부 지역인 자이산 이서 지역으로 44평방 킬로미터에 이르는 영역을 빼앗긴 상태였습니다. 만약 이 조약이 아니었으면 현 카자흐스탄 동부 지역까지 중국 땅이었을 겁니다.




원래 국가 감정을 건드리는 가장 큰 문제가 바로 영토 할양 입니다. 까짓거 상황에 따라 상대에게 배상금이건 뭐건 돈도 주고, 소위 시다바리 노릇도 좀 해줄 수는 있지만, 땅떼기는 한 뼘도 내주지 않겠다는 게 대체적인 국민 심리이니 말입니다. 하지만 당시 청나라는 별 수 없이 여기저기 땅떼기를 조금씩 여러 국가들에게 떼어줘야 했던 상황이었습니다. 




그렇지만 변경, 그것도 머나먼 서북 변방 지역은 그래도 베이징의 조정에서 보기에 '그나마' 좀 떼어줘도 무방하다 싶은 곳이었기에 이런저런 조약에서도 아쉬운데로 양보하며 땅을 내줬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야쿱 벡이 등장한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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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종당




이 무렵 섬서, 감숙, 그리고 신강에 이르는 지역을 포괄하는 섬감(陜甘) 총독 직을 맡고 있던 사람은 바로 좌종당(左宗棠)이라는 인물입니다.




그럼 이 좌종당은 어떤 사람인고 하니, 중국 근현대사에 친숙하지 못한 분들이라고 해도 증국번(曾國藩)이라는 인물은 한 번쯤 들어보셨을 겁니다. 청나라군이 무력화 된 시점에서 태평천국 운동이 일어나자, 사병 집단을 따로 조직해 이를 진압한 인물로, 바로 이렇게 증국번이 만든 사병 집단의 후예가 중국 근현대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존재인 '군벌' 로 이어지게 된 계기를 마련한, '군벌의 아버지' 같은 사람 입니다. 좌종당은 바로 그런 증국번의 제자, 후배에 해당하는 인물이었습니다. (정작 괄괄한 좌종당이 책상물림 성격인 증국번과 자주 마찰을 빚어 두 사람은 말년에 사이가 아주 나빠집니다.)




여하간에 섬감 총독인 좌종당은 군사를 이끌고 야쿱 벡의 세력을 막기 위해 출동하려 했습니다. 서북 변방의 전투라고 해도, 이 머나먼 지역에 군사도, 군량도 많이 배치되어 있진 않았을테니 강남 지역에서 원조를 받아 전쟁을 치뤄야 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원래대로라면 오기로 했던 지원병이 오지 않았던 겁니다. 바로 이홍장 때문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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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못 들어본 분들이 없을거라고 생각되는 이홍장





이홍장은 좌종당처럼 역시 증국번의 막료 출신이었던 사람으로, 약간 엇나간 제자 느낌인 좌종당에 비해 훨씬 직접적인 후계자라고 할 수 있는 인물입니다. 증국번은 자신이 조직했던 강력한 사병집단인 상군(湘軍)을 생전에 해체 했지만, 그 집단의 주요 인적 자원은 이홍장이 고스란히 계승했습니다. 그는 이를 바탕으로 자신의 사병 집단인 회군(淮軍)을 만들었고, 이 회군이 바로 이홍장이 가진 힘의 원천이었습니다.




그런 회군의 수장 이홍장은 좌종당에게 군사를 빌려주기를 거부했습니다. 본질적으로 보면 두 사람이 똑같이 증국번의 정신적 후계자인 양무파라고 해도 다소 계통이 다르기도 하지만, 외교 문제에 있어 두 사람의 견해차도 원인이었습니다. 



이 당시 양무파는 두가지 계통으로 나뉘었는데, 하나는 '진정한 적은 바다에서 온다' 고 믿은 해방파(海防派) 입니다. 해방파는 "중국의 진정한 적은 바다 너머에서 오는 구미 열강" 으로 믿고, 이를 막기 위해 함대에 엄청난 투자를 해서 (비록 청일전쟁 무렵에는 끊어진 투자로 완전히 노후화 되어버렸지만) 당시 기준에서 동양 최강 함대로 불린 북양함대(北洋艦隊)를 조직 하는데 심열을 기울였습니다. 그리고 이런 해방파의 수장이 다름 아닌 이홍장이었습니다.



이에 반해 "구미 열강은 어디까지나 그저 경제적인 이득을 탐낼뿐, 영토를 뺏을 야욕까지는 없다. 그러나 러시아는 다르다. 중국을 위협할 진정한 적은 바로 육지에서 오는 러시아다." 라고 믿은 것이 해방파에 맞서는 새방파(塞防派) 였습니다. 이런 새방파의 가장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좌종당이었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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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 무렵, 류쿠의 주민 몇명이 대만으로 표류해왔다가 대만인들에게 살해 당하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이에 일본은 수천명의 병사를 대만에 출병시켰는데, 실제로는 아직까지는 독립적이던 류쿠를 일본에 최종 합병하기 전, 중국이 어느정도나 류쿠 문제에 반응할지 떠보는 목적도 있었습니다. 이후에 청나라가 류쿠 문제에 끼어들 생각이 없어 보이자 일본은 곧 확실하게 류쿠를 자기 땅으로 병합 합니다.



어찌 되었건 대만 부근에서 이런 문제가 생겨, 자신이 늘 상상하던 '바다로부터의 압력' 이 현실화 되자 이홍장은 이 문제에 전력으로 매달렸습니다. 그에게 있어 저 멀리 떨어진 신강 부근의 군사적 분쟁은 대수롭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이홍장은 '심장부 보호론' 을 꺼내들었습니다.



"신강은 중국의 말단이므로, 좀 떨어져 나가도 목숨에 별다른 지장은 없다. 그에 비하면 동남의 연안 지방은 중국의 심장부에 가까우므로, 중점을 두어야 한다."



이런 해방파의 입장에서는 중요한건 어디까지나 '메인이벤트' 에 가까운 중국 동남부 해안, 그리고 그런 해안에서 운하를 타고 바로 들어올 수 있는 베이징에 관련된 문제였습니다. 심지어 해방파 중에서는 '신강을 완전히 포기하자. 계속 가지고 있어봐야 골치만 아픈 변경일뿐이다.' 라는 말을 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까짓거 차라리 러시아에 줘버리고, 이를 통해 러시아와 친해진 다음 영국을 견제하자는 겁니다. 만약 당시에 해방파가 득세했다면, 위구르 지역은 지금 중국 땅으로 남지 못했을 겁니다. 독립 정권이 되던지 러시아 땅이 되던지 간에...




그러자 '진짜 문제는 서북방' 이라고 생각하는 새방파, 그리고 새방파의 거두인 좌종당은 당연히 팔짝 뛰었습니다. 자신들의 존재 자체를 완전히 부정하는 시각이나 다를 바 없으니 말입니다. 좌종당은 이런 이유를 내세웠습니다.



"신강이 중요한 이유는 몽골을 유지하기 위함이고, 몽골을 유지하는것은 수도를 유지하는 위함이다."



서북 포기는 단순히 변경 문제가 아니라 그때문에 바로 베이징이 위협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는 '신강 역시 중국의 말단이 아닌, 포기하면 목숨에 지장을 줄 수 있는 심장부' 라는 논지를 내세워 마침내 정예군단을 이끌고 출격하는데 성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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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좌종당의 출병을 주의깊게 살펴 보고 있던 두 나라가 바로 영국과 러시아였습니다. 두 나라 모두 "야쿱 벡 정권이 남아 있는 게, 우리에게 유리한 완충 지대가 생기는 셈이니 유리하다." 면서 은근히 야쿱 벡 정권을 응원하던 상황이었습니다. 영국은 외교적인 부분에서 야쿱 벡 정권에게 도움을 주려는 행동을 자주했고, 러시아의 경우는 아예 직접적인 지원을 해주기도 했습니다.



어쨌거나 두 나라 모두, 당시 청나라의 역량에 대해서는 아예 바닥으로 보고 있었기 때문에 이런 변경지대에서 청군이 승리하리라는 생각은 거의 안하고 있던 상황입니다. 그런데 뜻밖의 사태가 발생했습니다. 의외로 좌종당이 이끄는 청나라군이 승승장구를 거듭한 겁니다.




러시아와 영국, 그 외에 '청이 성과를 거두는 걸 달가워하지 않는' 다른 여러 국가들이 야쿱 벡 정권을 돕고 있기도 하고, 청나라는 아편전쟁과 태평천국의 난을 겪으며 큰 곤경에 처해있었고, 여기에 중심지에서 어마어마하게 떨어진 지역이라 물량 보급도 어려운 상황이라 여러모로 안 좋은 여견이었지만, 이 좌종당이라는 인물이 생각보다 걸출한 인물이었습니다. 좌종당은 둔전을 실시하면서 현지에서 보급 없이 싸울 힘을 기르고 철저하게 훈련하여 전투에 나섰습니다.




여기에 더해 야쿱 벡의 문제도 있었습니다. 야쿱 벡은 열강의 지원을 받아 최신식 총기로 무장하는등 무기의 수준은 결코 나쁘지 않았지만, 야쿱 벡이 이슬람 근본주의자라서 엄격한 이슬람식 통치를 강요하는 바람에 현지 민심은 완전히 파탄 났습니다. 위구르 인들에게 근본주의적 생활을 강요했고, 심지어 같은 이슬람교도라고 해도 교파가 다르면 '지하드' 를 걸어 학살하는 등 완전히 난장판 그 자체였습니다.



어쩄든 잠시라도 야쿱 벡이 독립적인 정권으로 있었고, 청이 그걸 제압했기 때문에 지나고 야쿱 벡이 '위구르 자립을 꿈꾼 민족 영웅' 같은 식으로 포장되는 경우도 있지만 여기까지 보신 분들이라면 알 수 있듯이 야쿱 벡도 멀리서 군사 이끌고 와서 점령한 타지 출신 침략군이건 똑같았기 때문에... 민심을 얻을 이유가 없었습니다.




이런 이유로 좌종당군은 모두의 예상을 깨고 변경에서 승승장구를 거듭했습니다. 처음에 승패를 알기 어려운 시점에는 야쿱 벡과 청나라 쪽이 적당히 협상 테이블을 마련해서 이야기를 나눴는데, 상황이 안좋다보자 야쿱 벡은 "싸움으론 안되겠다. 어떻게든 외교로 해결해야겠다." 고 생각하여 협상에 더 매달리며 전투에 소극적으로 나섰고, 굳이 유리한 상황에서 협상을 할 이유가 없는 청나라는 더 적극적으로 나오면서 형세는 계속 불리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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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스 웨이드





그러자 이번에는 영국이 나섰습니다. 주청 영국 대사인 토마스 웨이드는 "어떻게든 야쿱 벡이 패망하는걸 막아라." 라는 본국의 지시를 받고 베이징에서 외교적인 술책을 끊임없이 펼쳐, 결국 청나라 조정 측에서 "일단 기다려봐라." 라는 지시를 좌종당에게 내리게 하는데 성공합니다. 이렇게 현지에서 싸움이 어떻게 되건간에 조정의 의지로 이게 다 수포로 돌아갈 위기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앞서 말했지만 이 좌종당이라는 사람이 보통 사람이 아니었는데, 좌종당은 "영국인들이 그렇게 완충 지대가 필요하다고 노래를 부르는데, 정 그러면 인도 땅이 엄청나게 크니까 인도 땅을 떼서 새로 나라 하나 만들어라. 왜 여기서 난리냐" 조정에서 무슨 지시가 내려오건 철저하게 무시하고 전투를 지속했습니다. 결국 야쿱 벡 정권은 완전히 패망했고, 영국은 할것 없이 손가락만 빨아야 했습니다.




이제 다음 문제는 러시아였습니다. 야쿱 벡이 신강에 들어올 무렵, 러시아는 신강 서북부의 이리(伊犁) 지역으로 슬그머니 군사를 파견했었습니다. 무슨 명분이고 뭐고 그런건 전혀 없는 파견이었는데, 러시아 입장에서는 청나라가 야쿱 벡 정권을 못 이기고 손을 떼면 어차피 신경을 쓰지 못할테니 적당히 실효지배 하다가 자기들 땅으로 공고하게 하려는 목적이었던 겁니다.



좌종당이 승승장구 할 무렵 러시아는 "우리는 일단 혼란을 가라앉히고 이 지역을 안정시키기 위해 군사를 파견한 것이다. 청나라가 모든 문제를 해결하면 반환하겠다." 라는 입장을 보였습니다. 그리고 설마라고 생각했지만, 청나라가 이겨버렸습니다.



이에 청나라는 당연하게도 이리 지역의 반환을 요구했습니다. 러시아가 미리 한 언질도 있으니, 러시아 입장에서는 별로 비빌 언덕도 없어서 순순히 땅을 내놓아야만 했던 상황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어처구니없는 발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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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후





청나라는 러시아와 영토 반환에 관한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숭후(崇厚)라는 인물을 보냈는데, 이 인물이 엄청난 사고를 치고 만 겁니다.



대체 러시아가 무슨 술수를 부렸는지는 몰라도, 숭후는 이 협상에서 이리 이서와 이남의 드넒은 영토를 모조리 러시아에게 할양하고, 러시아군의 이리 주둔 비용 500만 루블을 지불하겠다는 약속을 했습니다. 애초에 청나라가 러시아에 파병을 요청한 적이 없기에, 주둔 비용을 주둔건 말이 안되는 이야기였습니다.



이렇게 말하면 다소 체감이 안될 수 있기 때문에 좀 더 와닿게 표현하면, 이 조약으로 무려 신강의 70% 가량은 러시아 영토가 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리바디아(Livadia) 조약 입니다. 영토 반환 받을려고 사람을 보냈더니, 땅을 돌려 받기는 커녕 오히려 신강 거의 전체를 내주고 심지어 돈까지 내주게 되었던 겁니다.



너무 말도 안되는 일이라 괴소문이 나돌았는데, 숭후가 교섭을 위해 러시아로 가기 전에 점쟁이를 찾자 몇 월 며칠까지 귀국하지 않으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는 점괘가 나와서 그렇게 협상을 서둘렀다는 카더라가 돌 정도였습니다.




이 협상에 전중국이 들끓었고, 평소에는 이런저런 이유로 서로 치열하게 트집잡고 싸우던 청나라 조정에서도 이 문제에 대해서는 어떤 반대 의견도 없이 조약 비준은 정부 차원에서 거절, 숭후에겐 사형 선고를 내렸습니다. 그리고 숭후 대신 증국번의 아들인 증기택(曾紀澤)을 재빨리 파견하여 바로 재협상을 했습니다.




물론 러시아는 이미 협상은 했다, 이제와서 바꿀 이유가 없다는 입장이었습니다. 청나라는 영국과 프랑스 두 나라에 조정을 의뢰했고, 러시아가 아무런 힘도 들이지 않고 신강 거의 전 지역을 꿀꺽하는 꼴을 배아파서 가만히 볼 수 없던 영국과 프랑스가 적극적으로 나서자 러시아도 부담을 느끼게 됩니다. 



여기에 러시아는 당시 프랑스와 손을 잡으려 했기에, "어차피 이런 말도 안되는 조약을 전부 챙기는건 무리다. 적당히 프랑스의 체면도 세워주자." 는 이유로 재협상에 응했고, 대신 자신들에게 엄청난 꿀을 꽁으로 준 숭후는 사형을 취소해달라는 조건을 내걸었습니다. 이렇게 펼쳐진 새 조약을 이리 조약, 혹은 페테르부르크 조약 이라고도 부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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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 조약의 결과로 청나라는 호르고스 강을 경계로 이리 동반부는 간신히 되찾아 올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리바디아 조약을 아예 없는 일로 할수는 없었기 때문에 이리 서반부는 러시아에 내줘야 했기 때문에 영원히 상실하게 되었습니다. 원래대로라면 이리 지역 자체를 그냥 돌려 받을 일이었다는 걸 생각하면 청나라 입장에선 뼈아픈 일이었습니다. 심지어, 이리 동반부를 돌려 받는 대가로 러시아군 주둔 비용 900만 루블을 배상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이게 현재까지도 중국의 서북방 경계 입니다. 즉 지금도 영토적으로 거대한 부분을 차지하며 중국이 쥐고 있는 위구르 지역이지만, 원래는 이것보다도 더 컸습니다. 그리고 특별한 분쟁이 없는 한 딱히 상실할 계기가 있던 것도 아니었고, 오히려 여러모로 굉장히 난장판이던 시대에 뜻밖의 군사적 대성공으로 계속 유지할 수 있었던 땅입니다. 그런데 어처구니 없는 협상 하나로 되려 전쟁 배상금 무는듯한 상황이 되어버렸던 겁니다.






그렇게 말도 안되는 사건을 저지른 숭후는 외국 공사들의 개입으로 목숨만은 겨우 살아났지만 당연히 죽을때까지 비판의 대상이 되었으며 죽는날까지 재기용 되지 않았습니다. 나라 팔아먹는 미친놈 취급 받으며 오욕의 세월을 겪다 죽었고 죽고 나서도 가루가 되도록 까였습니다.




그런데 최근에 이르러 새로 자료가 발굴되고 조사도 해보니, "알고보니 숭후는 그렇게까지 어리석은 관료도 아니었고 양무파의 일원으로 많은 경험을 쌓았던 노련했던 인물." 이라는 새 의견이 나왔고, 그럼 그런 숭후가 왜 그렇게 말도 안되는 조약을 서둘러 체결했는가 하면, "베이징의 어떤 높으신 고위 관리 중 한 명이 러시아의 조건을 얼른 서둘러서 다 수용하고 일을 수습해라." 라는 명령을 내렸기 떄문이라는 주장이 나왔습니다. 그 사람이 누군지는 이제와선 알 수 없지만 말입니다.





교과서에도 나온 그 유명한 양무 운동으로 청나라는 꽤나 성과를 거두었고, 야쿱 벡 정벌과 신강를 방어한 일은 그 성과를 보여준 일 중에 하나였습니다. 그런데 교과서를 기억하는 분들이라면 생각나시겠지만, 교과서에서 말하는 양무 운동은 "기술만 받아들였는데 본질적인 부분에서 바뀐게 없었기 때문에 결국 실패했다." 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단순히 '양무운동 자체가 뻘짓이었다. 그냥 망했다' 고 보는건 너무 비약이고, 분명히 성과를 내긴 냈습니다. 문제는 양무운동이 잘못된 정책이었다는게 아니라, "그렇게 힘을 키웠더니 그걸로 헛짓을 하는 지배층" 에 있었다고 보는게 좋을 겁니다.




보다 더 근원적인 부분에서 문제. 낙후된 체제와 여전히 어두껌껌한 외교, 부패한 조직 등등.... 사실 완전히 망해가는것처럼 보이던 시점에서 조차도 청나라는 역시 체급은 무시할 수 없어서 나름 의외의 힘 약간 정도는 여전히 품고 있는 상태였지만, 그 힘을 휘두르는 본체가 맛이 가 있으니 기껏 보여준 깜짝 놀랄 힘으로도 별 성과를 거두지 못하는, 오히려 뒷걸음질 치는 사건이 아주 많았습니다. 




이 이리조약과 더불어 이런 면모 - '다 망해가는 줄 알았던 청나라가 보여준 의외의 저력, 그리고 그 저력도 무색하게 만들어버리는 지배층의 헛짓, 그런 상태가 유지되는 낙후된 체제'- 보여주는 가장 대표적인 사건이 바로 청불전쟁 입니다. 원래는 그런 면모를 다루려고 본 글과 청불전쟁을 같이 쓰려고 했었는데, 쓰다보니 좀 길어져서 그 이야기는 나중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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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2/11 01:48
수정 아이콘
제목만 보고 청불전쟁인줄 알았습니다.
뒹굴뒹굴
19/02/11 09:52
수정 아이콘
제목만 보고 청불전쟁인줄 알았습니다. +1
19/02/11 02:06
수정 아이콘
재밌네요~
설탕가루인형형
19/02/11 06:36
수정 아이콘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제이홉
19/02/11 07:21
수정 아이콘
오늘도 배워갑니다. 늘 좋은 글 감사합니다.
반다비07
19/02/11 08:02
수정 아이콘
잘 읽었습니다
19/02/11 08:15
수정 아이콘
정말 막장 외교관 하나가 나라를 팔아먹을수도 있군요. 이완용도 울고가겠네
19/02/11 08:22
수정 아이콘
사실 저런 상황에서 나라 자체가 넘어가지 않은게 중국의 저력이죠
단순히 덩치가 커서라고 할 수도 있지만
창조신
19/02/11 08:26
수정 아이콘
신불해님 글 너무 재밌습니다. 그런데 이홍당이건 좌종당이건 둘다 처음 들어보네요 ㅜㅜ
파핀폐인
19/02/11 08:59
수정 아이콘
양질의 글 항상 감사합니다. 중국사를 좋아해서 그런지 엄청 재밌게 읽었네요.
metaljet
19/02/11 09:08
수정 아이콘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아무리 동아병부니 뭐니 해도 유목민 군대 정도는 쉽게 발라버릴 역량은 있었던 것이로군요.
그 광활한 대청제국의 영토가 오늘날까지 거의 그대로 온존한 것이 그저 운빨은 아니었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하야로비
19/02/11 10:04
수정 아이콘
청나라의 마지막 저력을 보여준 좌종당의 무덤은 홍위병이 깔끔하게 폭발시켰고 고인의 유해는 부관참시했으니 안심하라구!
내가뭐랬
19/02/11 10:15
수정 아이콘
다이나믹 중국!
로즈 티코
19/02/11 10:21
수정 아이콘
이홍장과 비스마르크
저격수
19/02/11 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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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잘 읽고 있습니다. 언제 책 안내시나요 크크 요새 추세로 보면 분명히 제의도 들어오셨을 듯한데
패트와매트
19/02/11 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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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종당계덮밥과는 관련 없다는 그 좌종당씨...
좌종당
19/02/11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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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하야로비
19/02/11 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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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등장 후덜덜
19/02/11 1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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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등장
안유진
19/02/11 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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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마다 굉장히 재밌게 보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19/02/11 1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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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이야기에서 조금 후가 배경이군요. 재미있게 봤습니다.
19/02/11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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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홍장만큼 평가가 극단적인 인물도 없을것 같아요
'서구세력에게 너무 저 자세로 행동해서 많은 이권을 서구세력에게 넘겼다'
'그나마 이홍장의 외교력 때문에 중국이 서구세력에 식민지화 되는걸 막았다'
청황실의 현실 감각 없는 막장행태를 보면 후자의 평가로 선택하지만
저 때랑 청불 전쟁때보면 전자의 평가에 손들어주고 싶네요
물론 청불전쟁은 사이나뻤던 서구열강들까지 똘똘뭉쳐 청을 압박했었던걸 감안하면 어느정도 이해는가기는합니다
표절작곡가
19/02/11 16:26
수정 아이콘
이런 글은 추천하라고 배웠습니다~~~
Jedi Woon
19/02/11 16:41
수정 아이콘
요즘 굽시니스트의 만화도 재미있게 보고 있는데, 이부분도 나오겠군요.
그나저나 연재속도를 보면 이부분은 올 상반기안에 나올 수 있을지 걱정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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