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 자유 주제로 사용할 수 있는 게시판입니다.
- 토론 게시판의 용도를 겸합니다.
Date 2018/10/17 08:24:13
Name asdqwea
File #1 평양_폭동.jpg (89.8 KB), Download : 50
Subject 일제시대 조선인들이 중국인들을 대상으로 일으킨 대폭동 (수정됨)


https://namu.wiki/w/%EC%9D%BC%EC%A0%9C%EA%B0%95%EC%A0%90%EA%B8%B0%20%ED%99%94%EA%B5%90%EB%B0%B0%EC%B2%99%ED%8F%AD%EB%8F%99



역사카페 회원이 카페에 한번 올리기도 했고 나무위키에도 올린 이사건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입니다



내용 자체는 상당히 퀄리티 있고 참고문헌이나 출처등도 다 정확히 밝히고 있으니 읽어볼만한 글이네요

그리고 이글은 제가 네이버 역사카페에도 한번 올린글입니다



간단히 요약하자면 당시 여러가지 요인들로 인해 조선인들의 반중국인 감정은 점점 커져갔는데(동남아에서 화교들과 현지인들이 겪는 분쟁과 비슷한 상황을 당시 조선이 겪습니다)



이 사건은 크게 1927년에 화교 대상으로 벌어진 폭동(이땐 인명피해는 크진 않았습니다)



그리고 만보산 오보 사건이라는 여러 언론에서 낸 조선인 수백명이 중국인에게 살해당했다는식의 오보가 계기가 되어



1931년 화교를 대상으로한 폭동이 일어났고



평양 화교 학살 사건이 터지게됩니다



이사건으로 당시 조선에 살던 중국인 130명 정도가 살해됩니다


1931년 7월. 한반도에서 조선인들이 폭동을 일으키고 테러를 벌였다. 그 대상은 화교와 중국인 계절 노동자들이었다. 이걸 1931년 배화폭동(화교배척폭동, 배화사건, 화교배척사건, 반중국인 폭동)이라 한다. 많은 화교들이 폭행과 강간을 당했고 학살당하며 화교 임산부들은 배가 갈라져 죽어 있거나 유방이 잘린 경우도 많고 납작하게 찌부러진 시체 또한 많았다고 한다. 그리고 가장 무시무시한 곳이 평양이었다. 평양의 조선인들은 화교를 학살하기 시작했다. 어린이, 늙은이, 아기와 아기를 안은 애엄마까지 가리지않았다. 평양 군중들에게 걸리면 어떤 화교던지 학살을 당했다.

『7월 5일 밤. 그 밤은 진실로 무서운 밤이었었다. 역사로서 자랑삼는 평양에 기록이 있은 이래로 이런 참극은 처음이라 할 것이다. 미의 도, 평양은 완전히 피에 물들었었다. 하기는 우리가 인류사를 뒤져서 문야의 별이 없이 피다른 민족의 학살극을 얼마든지 집어낼 수가 있다. 그러나 유아와 부녀의 박살 시체가 시중에 산재한 일이 있었든가! 나는 그날 밤 발 밑에 질적어리는 피와 횡재한 시체를 뛰어 넘으며 민족의식의 오용을 곡하든 그 기억을 되푸리하여(내, 비록 늙어 망녕이 들려도 이 기억은 분명하리라!) 검열관의 가위를 될 수 있는 데까지 피하면서 거두절미의 회고록을 독자 앞에 공개한다.』
-오기영, 평양폭동사건회고







결국 오기영이 말한대로 "전율할 살인극"이 일어나고 말았다.

(7월3일 이후 평양)



「유방이 양쪽으로 잘려나가고, 임산부도 참혹하게 살육당했으며 심지어 땅바닥에 엎어져 우는 화교 또한 밟혀 피 떡이 되었다」



-「朝鮮避難華僑之一封血淚書」(1931. 7), 萬寶山事件及朝鮮排華慘案, 中國國民黨中央宣傳執行委員會, 南京, 1931, 56쪽, 손승회, 1913년 일제강점기의 배화폭동과 화교, 중국근현대사연구 41, 2009.3, 154쪽에서 재인용


이런 살육이 일어난 곳은 한, 두곳이 아니다. 평양에서 수없이 벌어졌다.

죽은 어린애를 죽은 줄도 모르고 힘껏 붓안은 채 경찰서로 도망해 와서 비로소 내자의 시체되엇슴을 발견하는 모성...젖 빠는 어린애를 껴안은 채 부축되어 서로 와서 땅 바닥에 뉘이자 숨이 넘는 모성. 시내는 완전히 XXX상태다.
곳곳에서 살인은 공공연히 XX의 XXX에(!) 감행되엇다.
군중은 완전히 잔인한 통쾌에 취해버렷다. 3, 4명 내지 6, 7명식 피흐르는 곤봉을 든 장정을 앞세우고 2, 3백명식 무리를 지어 피에 주린 이리떼처럼 마자 죽을 사람을 찾아서 헤맨다.

「여기 잇다!」한 마듸의 웨침이 떠러지면 발견된 중국인은 10분이 못 지나서 살려달라고 두 손을 합장한 채 시체가 되어버린다.
-늙은이의 시체의 안면에 구더버린 공포의 빛! 고사리같은 두 주먹을 엡브장스럽게 쥐인채 두 눈을 말둥말뭉 뜨고 땅바닥에 엎어저 잇든 영아의 시체!

날이 밝앗다. 간밤의 무참은 숨김 없이 드러낫다. 길 우에는 부서진 상품과 가구가 산적하야 보행좇아 곤란하고 전선에는 찌저진 포목류가 걸려서 새벽 바람에 건들거리고 잇다. 폐허다! 문허진 로마성인들 여기서 더하엿으랴. 곳곳에서 중국인 시체는 발견되엇다. 서성리 조성암(중국인)의 집에서는 일시에 10개의 시체를 발견하엿다. 피살된 자, 적어도 백을 넘으리라는 나의 예상은 드러맞고야 말앗다.
아침부터 경관은 무장을 하엿다. 중대가 출동하고 인근에서 응원경관대가 오고-그런 중에서도 백주에 다시 재습 삼습-XX의 XX로 피난 장소에 가든 중국인이 중도에서도 타살되고 목숨이 귀하야 8, 9명이 한 곳에 숨엇다가 몰사를 하는 등. 재습, 삼습에서 공책 한 권이라도 그대로 내버려진 놈이 잇으면 마자 찢어버렷다. 잉크병 한 개라도 거저 내버리기 아까웟는지 쓰레기통에다 맛장구를 처서 죄 없는 쓰레기통이 붉고, 푸른 땀을 흘리고 섯다

-오기영, 평양폭동사건회고, 재만동포문제 특집, 동광 제25호, 1931.9.4(한국사데이터베이스 - 국사편찬위원회)

두껍게 싸힌 포목들아대서 중국인의 시체(뒤에 소생하엿다 한다) 하나가 발견되여, 구루마에 실리워 경찰서로 갓다.
이 관앞 상관가를 떠나서 나는 중국인 료리점가를 가보려 대동문 거리로 빼처서 나왓다.
대동문 아페서 강안통으로 우 춘관아페까지 가보매, 우 춘관도 모도 문이 부서저 나가고, 텅 뷔인 집에는 전등만 밝아잇지 인귀척은 업스며 그 조금 아페는 중국노동자의 시체(인력거꾼인듯)하나이 지키는 사람도 업시 구경꾼도 업시 행길에 누워잇섯서, 나를 소스러치게 하엿다.
몃 집 더 올라가서, 장춘관 건너편에 구경꾼 4, 5인이 들러서 잇기에 갓가히 가보며 중국인 시체둘이 덧두기어 잇섯다. 홍승루도 모도 문이 부서지고 그 집 아페도 시체가 잇섯다(고 귀억된다)

대동자동차부 앞에는 허리가 기억자로 뒤로 부러진 중국인이 아직 채 죽지는 안코 단말마의 신음을 발하고 잇고, 그 겻헤 다른 중국인 시체가 하나 잇고, 순사가 이 시체를 차고로 끌어 드리라는등 실타는등 다투고 잇섯다. 그러나 여기는 폭행군이 벌서 다녀간 뒤라, 비교적 조용하엿다.
료정가를 다 보고, 다시 아까의 관앞으로 돌아가 보려고 신창리 네거리까지 가매, 저편 보이는 관아페서는, 산악이 무너지는듯한 수만명의 함성이 울리기 시작하엿다. 그래서 그리로 띄여 갈 때에, 관앞에서 흐느적거리는 사람의 물껼이 이리로 밀려오기 시작하엿다. 그와 동시에, 기마순사의 모양이 비로소 여기저기서 번드기엇다. 군중은 긔마경관에게 몰리워서, 이리로 밀려 오는 것이엇다.
오늘밤의 돌발사건에 대하여, 인제야 경찰당국의 방침이 작정되여, 무장경관으로 하여금 이 군중을 해산시키는 것이엇다.

금만 흥분된 일이 잇서도 잠을 못이루는 나는, 이날 밤 가족들은 모도 피곤하여 잘 때도, 잠을 들지를 못하엿다가 새벽 다섯시쯤 후보가 궁금하여 다시 집을 빠저 나왓다.
백일하에 폭로된 참경!
범수머리에서부터 관앞까지 경관과 소방대로 철통같이 에워싸고, 통행을 금지한 이 평양의 간선도로는 무릅까지 빠질만치 각색의 비단포목으로 무치엇고, 전차 전등, 전화, 전동력의 각 전선에 역시 각색의 비단이 느리워 잇서서, 그것은 마치 때아닌 만함식이엇다. 거기를 여기저기 무장한 경관이 지키고 잇고, 소방수들은 도로에 덥힌 필육을 것노라고 야단들 하엿다. 구경꾼들이 벌서 경관망의 박게는 백 둘러서 잇다. 잠시간 이것을 구경꾼들 뒤에서 보다가, 나는 구경꾼들 틈을 헤치고, 그 아페 잇는 경관망까지 헤치고, 폭풍우 지난 현장에 발을 드려놓앗다. 경관은 나를 신문기자나 검사국원으로라도 보앗는지 아모말 업시 통과시켜 주엇다.

거기 들어선 나는 어마어마한 경관들의 시선을 등에 받으면서, 어젯밤, 그야말로 근본적으로 파괴당한 중국인상점들을 집마다 들여다보면서, 세계 개벽이래 인류가 아직 듯도 보도 못한 「비단보도」의 길을 더듬엇다.
삿젼골 압흘 지나다가, 나는 삿전골 어떤 집 아페 서 잇는 무장경관의 표정이 심상치 안흔 것을 보고, 거리를 버서나서 그 골목으로 들어갓다. 그러고 서슴지 안코 경관이 지키고 잇는 집 대문으로 쑥 들어섯다. 들어서매 나의 지인인 몃 몃 신문긔자도 벌서 그 집에 들어와 잇섯다.

그 집 툇마루에 중국녀인의 시체가 하나 업드려 잇섯다. 광에 중국인들이 업드려 잇섯다. 역시 시체인줄 알고 가까히 가보매, 약간 호흡이 잇는 것이 아직 체 죽지는 안헛스며, (지금까지도 이 점은 알아보지 못하엿지만) 그 체격으로 보아서 17, 8세의 소년인 듯 시펏다. 그러고 그겻헤는-나는 그것이 영아시인지 혹은 셀로이드인형인지를 지금도 모른다. 만약 그것이 영아라면 생후 3, 4개월 박게는 안되엿슬 것이다. 그것이 분홍빛이 도는 점으로 보아서는 혹은 인형인 듯 싶기도 하지만, 벍어벗은 그 물체의 국부(그것은 게집에엇다)까지 똑똑이 조각된 점으로 보아서는 인형으로 볼 수가 업섯다. 나는 잠시 허리를 굽으리고 그것을 굽어보앗다. 무엇인지 정체를 밝혀보려는 호기심으로, 손까락으로 만저보고도 시펏지만, 만약 그것이 영아시이면, 이 후에 손가락에 감할 불쾌한 추억 때문에 만저 보지도 못하고 그냥 굽어보고만 잇섯다.
「쉬야. 쉬야」

문득 뒤에서 들리는, 겁먹은 이 소리. 돌아보니 웬 조선노인이- 아니 조선옷을 입은 중국노인이 빈사의 소년들을 부르는 것이엇다. 이 노인의 얼굴에 나타난 표정(그것은 소설가인 나에게 잇서서는 무엇에 비길 수 없는 커다란 수획이엇다) 그의 얼굴에 나타난 표정은 경악도 아니엇다. 비애도 아니엇다. 겁먹은 얼굴도 아니엇다. 그것은 단지 무표정한 얼굴이엇다. 그의 입이 들먹거리지 않고 그의 입에서 음성만 나오지 안흐면 그것은 명공이 깍가노흔 한 개의 사인상이랄 수박게 업는 무표정한 긔게적 얼굴이엇다. 나는, 잠시 그 노인의 얼굴을 보노라고 다른 데 주의치 못하다가, 노인의 아페서 무엇이 음적거리는 것이 걸핏 보이므로 그리로 눈을 떠러트럿다.

거기는 너덧살쯤 난 중국 어린애가 하나 잇섯다. 노인의 다리를 두 팔로 잔뜩 부둥켜 안고 잇는 그 어린애의 한편 귀와 그 근처의 가죽은 찢어저 느러지고, 그 편쪽 눈도 업서젓스며 입도 찌저진 정시치 못할 참혹한 형상이엇다. 어린애는 울지도 안코 아버지인지 한아버지 인지의 다리를 부둥켜 안코 몸만 와들와들 떨고잇섯다.
나는 창황히 그 집을 뒤로 하엿다. 더 볼 용긔가 업섯다.

-김동인, 류서광풍에 춤추는 대동강의 악몽, - 삼년전조중인사변의 회고, 개벽 신간 제2호, 1934.12.1(한국사데이터베이스 - 국사편찬위원회)


끔찍하네요...

이 사건이 일본의 사주로 일어났다는 설도 있는데 역사학계에선 가설중 하나로 보고 있고 그런 주장에 대한 반박과 비판도 많다네요

https://cafe.naver.com/booheong/145460

그러나 이 주장은 현재 학계에서 비판을 받고있다.

예로 일본군부가 직접 개입했다는 가설에 반박이 있다. 예로 이사하라 간지를 중심으로 관동군 참모부군에서는 '만몽영유계획' 골격을 이미 1931년 6월에 갖춘상태였다. 그렇기 때문에 만보산 충돌 음모 → 만주사변 이라는 음모가설은 인과관계에 대한 정합성이 부족한 비약이란 지적이다.
(손승회, 근대 한중관계사의 새로운 시각 모색- 萬寶山事件 연구에 대한 적용 가능성을 중심으로, 역사학보 202, 2009.6, 401)

그 밖의 사건의 원인을 음모론으로 보는 것에도 비판이나 반대의견들이 있다.

화교배격사건의 원인을 일단 한국인의 화교배척감정에서 찾아야 한다고 생각한다.…민족성 문제는 한중 사이를 이간질 시키려는 일본이 만들어 놓은것이고,이는 과거 개화파 지식인들이 만들어온 중국인 멸시관의 연장선에 불과하다. 이 민족성 문제가 화교배격사건에 간접적인 영향을 끼쳤을 수 있겠으나,직접적인 관련은 없기 때문
석사학위논문, 김희용, 日帝强占期韓國人의 華僑排斥, 2009, 3쪽

이러한 일본의 책동설은 당시에도 제기되었다. 물론 당대 사람들의 인식은 그 자체로 연구 대상이지만 그것이 다 사실에 들어맞는 건 아니다 사건 하나하나가 일본의 대륙 정책과 무관한 것은 아니지만 각각이 각본처럼 연결된 것인지는 의문이다 최근에는 책동설의 근거가 부족하고 만보산 사건에서 만주사변 에 이르는 연쇄의 인과관계가 확실하지 않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 정병욱, 신설리 패, 중국인 숙소에 불을 지르다 - 1931년 반중국인 폭동에 대한 재해석, 역사비평 , 2012.11, 340

일본의 책임은 확인될 수 있겠지만 그렇다고 일본의 ‘사주’ 혹은 ‘음모’를 사건의 주된 요인으로 파악할 수 있을까? 더 나아가 일본인이 조선인과 중국인을 이간질하여 항일연대를 파괴하기 위해 만보산사건을 조작했다고 하거나, 오보를 양산하고 식민지조선인을 사주하여 눈엣가시인 화교를 축출하려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의도된 행동으로서 배화폭동을 야기했다고 할 수 있을까? 설사 그렇다고 더라도 1931년 조선에서 벌어진 전대미문의 화교학살 폭동에 대해 한국인이 마땅히 지녀야할 역사적 책임감과 그에 따른 엄중한 반성의 당위성까지 사라질 수는 없을 것이다.
(손승회, 1913년 일제강점기의 배화폭동과 화교, 중국근현대사연구 41, 2009.3, 163)

오히려 지구사로 따지면 이것은 다른 곳에서 일어나는 사태였다. 딱히 '제국의 인위적인 음모'라고 생각해야 이해할 수 있는 사건이 아니다.

1927년의 배화폭동을 계기로 인적 교류에 대한 규제가 점차 강화되면서, 특히 중국노동자에 대한 단속문제가 한중관계의 새로운 쟁점으로 떠올랐다. 이미 일본에서는 조선에 한 발 앞서, 중국인 노동자와 일본인 노동자와의 경쟁, 관동대지진 때의 중국인 학살이 발생했다. 이 과정은 넒은 의미에서 19세기 말 미국의 중국인 노동자학살과 1903년의 중국인 노동자 입국금지령의 전개와 흡사하다. 즉, 공업화 정도에 따라 해외노동력이 유입될, 그리고 그를 흡수할 수요가 발생하기까지의 시간이 틀리기 때문에, 시차를 두면서 유사한 현상이 반복되었던 것이다. 그 시기가 미국의 경우 19세기 중․후반 이었다면, 일본은 제1차 대전 호황기의 1910년대로 볼 수 있다. 외국노동자가 자국사회에 충격을 줄만한 규모로 유입되면, 이 인력을 필요로 하는 자본의 논리와는 별도로 사회갈등 이 발생하게 된다. 조선의 경우 그 시기는 1930년대였지만 이미 1920년대부터 단초가 나타나고 있었다
강진아, 조선총독부의 화교 노동자 입국 관리와 중국 언론, 중국근현대사연구 59, 2013.9, 112

이런 사건은 이미 관동대지진 때도 일어났고, 그 이전에 미국에서 일어났으며 한국도 유사한 현상이 반복된 것이라는 이야기다.

오히려 음모론으로만 보는 것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있다. 김준현은 『‘만보산 사태’를 획책한 배후로 일본을 지목한 상태에서는, 다른 갈등주체들의 능동성을 소거해버릴 위험성도 내재해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김준현, 한국의 문학/지식 장에서 ‘만보산 사건’이 기억되어 온 몇 가지 방식, 한국문학연구 51, 2016.8, 57)



설령 일본의 사주가 주요원인이였다고 해도 당시 반중국인 감정이 없었으면 저런 규모의 폭동은 일어나기 힘들었겠죠

당시 조선인과 중국인의 갈등이 얼마나 심했는지 알려주는 역사적 사건인듯 싶네요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18/10/17 08:28
수정 아이콘
우와 이런 일이 있었던 것은 전혀 몰랐네요. 요즘 부쩍 활동 많이 하시는 asdqwea 님 글 잘 보고 있습니다.
18/10/17 08:30
수정 아이콘
저도 이 사건을 전혀 몰랐고 처음 접했을때 매우 충격이였네요
고통은없나
18/10/17 08:32
수정 아이콘
어 제법 알려진 사건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아닌가 보네요.
월급루팡의꿈
18/10/17 08:43
수정 아이콘
와 몰랐네요... 민족주의적인 내로남불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꼭 기억해야하는 사건이 아닌가 싶네요.
루트에리노
18/10/17 08:52
수정 아이콘
민족의 본성이라는건 없고 인류의 본성이라는 것만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안에도 일제나 나치같은 짐승들이 똑같이 있을 수 있다는 거죠. 요즘 "사실에 근거함"을 이유로 인종차별을 정당화 하는 분들이 많은데, 우리도 얼마든지 괴물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상기했으면 좋겠네요.

저 폭도들 역시 자신들은 사실에 근거해서 정당하게 행동한다고 생각했겠죠. 나치가 그랬고, 일제가 그랬듯이요.
10년째도피중
18/10/17 10:08
수정 아이콘
좋은 표현이십니다. 첫 줄 메모....
18/10/17 11:16
수정 아이콘
저들의 정신적 후예가 모사이트들 회원들이죠
18/10/17 08:59
수정 아이콘
선동만 된다면 누구보다 잔인한 일을 할 수 있는게 인간이죠
저절로 관동 대지진 이후의 조선인 학살이 생각나는 씁쓸한 이야기입니다
랜슬롯
18/10/17 09:00
수정 아이콘
이런일이 있었군요... 저도 윗분 말처럼 관동 대지진 이후 조선인 학살 사건이 기억났네요... 허어...
18/10/17 09:08
수정 아이콘
사업 잘 되라고 무당한테 수천만원도 갖다 바치고 사주 안 맞는다고 자식이 사랑하는 사람하고 결혼도 못하게 하고 종교적인 힘으로 병을 이겨내겠다고 기본적인 내과 치료도 안 받는 사람들이 2018년 현재도 널렸는데 '그래도 우리 민족이 쟤네 민족보다 아무튼 더 낫다' 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게 이상한건 아니죠. 물론 앞의 예시에 든 사람들과 달리 자기들 주장에 합리적인 근거가 있다고 생각 하는게 보기 추해서 그렇지. 사람 다 똑같습니다.
여왕의심복
18/10/17 09:12
수정 아이콘
좋은 글 감사합니다!
김티모
18/10/17 09:14
수정 아이콘
선우휘씨의 소설 노다지 1부 중반쯤에 이 사건에 대한 언급이 나오죠. 함경도 시골에도 이 사건 여파가 몰아쳐서 읍내 중국인이 경영하는 만두집이 털리고 포목점이 털리고... 마지막에는 주인공 집에서 일하던 중국인 일꾼까지 해꼬지를 하러 오는데 주인공 아버지가 일꾼들 다 숨겨버리고 일꾼들이 사는 움막은 너무 가난해서 부술 것도 없으니 다들 그냥 돌아갔다는 정도로 언급됩니다. 그리고 80년대에 방영했던 드라마에는 이 부분이 잘려서 안 나오더군요.
홍승식
18/10/17 09:14
수정 아이콘
저도 본문글을 보고 관동대지진이 먼저 생각나는건 어쩔 수 없이 교육의 결과일까요?
Lainworks
18/10/17 09:26
수정 아이콘
관련글에 '조선인의 생산성이 떨어져 중국인을 선호했다' 라는 부분이 흥미롭네요. 국가체제와 의무교육이 정말 중요하긴 중요함(.......
foreign worker
18/10/17 09:30
수정 아이콘
약자가 강자의 압박과 수탈에 분노하더라도 결국 분노가 향하는 대상은 자신보다 더한 약자일 뿐이니....
일베나 워마드도 그렇고, 결코 변하지 않는 사실이죠. 만만해야 팰 수 있으니.
metaljet
18/10/17 09:41
수정 아이콘
실제로 피만 안볼 뿐이지 유언비어 선동과 광기어린 집단 린치는 지금도 인터넷에서는 허다하게 벌어지는 일이죠..
PGR은 그나마 덜하긴 한데 어느 커뮤니티를 가든 다수가 곧 정의다! 라고 믿는 사람들 천지인걸요.
영원한초보
18/10/17 09:42
수정 아이콘
저번에 쓰신 자유의지 글과 연결 시켜 이야기 할 수 있겠네요.
모리건 앤슬랜드
18/10/17 09:43
수정 아이콘
관련 문서들을 보면 평양뿐만 아니라 폭동의 양상을 보면 전국 방방곳곳 화교들이 없었던곳이 없어보이네요...동남아등지의 화교 영향력을 생각해보면...
하심군
18/10/17 10:02
수정 아이콘
우리 세대는 딱히 그런거 없었는데 전 세대나 전전세대에선 동양의 유태인 취급을 하는 것 같더라고요.
카바라스
18/10/17 14:44
수정 아이콘
한국처럼 화교 조진 나라가 많지 않아서 그래요 박정희가 마지막으로 숨통을 끊었고. 물론 이거에 대해선 사람마다 평가가 다르겠습니다만(오히려 업적시하는경우도 많지요) 동남아처럼 경제권을 가지고 있었다면 화교에 대한 인식은 지금과 많이 달랐을겁니다.
醉翁之意不在酒
18/10/17 09:49
수정 아이콘
근 몇해 사이에 한중일 모두 민족주의가 대폭 늘어난 느낌을 받고있어서 불안합니다. 축구짤 보러 에펨코리아 자주 가는데 진짜 한심할 정도로 일본 특히 중국한테 입에 담지 못할 욕을 하고있고 사이트만 달랐지 그 유저들이 그 유저들이라는게 피지알에서도 어는정도 그껴질 정도니
독수리가아니라닭
18/10/17 09:59
수정 아이콘
It 정보 보러 클리앙 자주 들어갔었는데 거기도 요새 짱x 쪽xx 다 나오더군요. 맛이 간 것 같아서 발길 끊었습니다.
18/10/17 10:03
수정 아이콘
최근 들어 혐일,혐중 감정이 너무 심해진것 같긴 합니다 요즘 어느 사이트를 가든 일본 중국 까는 글이 베스트로 너무 많이 올라오고 착짱 죽짱같은 드립이 공공연하게 쓰이고 있으니까요
18/10/17 10:07
수정 아이콘
굳이 혐일 혐중이 심해졌다기보단 그냥 전반적인 혐오 정서 자체가 증폭되었다고 봐야할 것 같네요. 심지어 정치적 올바름을 추구해야 되는 단체들마저 올바름을 추구하는것보다 올바르지 못한것을 혐오하는게 훨씬 잘 먹히고 무엇보다 더 재밌고 더 만족감을 준다는걸 알아버렸으니
18/10/17 11:17
수정 아이콘
(수정됨) 회사에서 제 주위에서 누군가 그런말을 쓰면 쓰지말라고 하는 편인데... 그런말을 하면 뒤에서 꼰대라고 까고 있을듯 합니다.
사성청아
18/10/18 15:42
수정 아이콘
한중일 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인 추세인 것 같습니다
민족/종교에 기반한 혹은 혐오/극우세력(보수가 아닙니다)이 득세하고 있죠
프로피씨아
18/10/17 10:02
수정 아이콘
(수정됨) 이 당시 죽거나 다친 화교 수가 얼마 지나지 않아 일본에서 벌어진 관동대학살에서 죽은 조선인 수와 비슷합니다. 그렇게 보면 어마어마한 대사건이죠. 하지만 한국의 국사교육에서는 만보산 오보 정도까지만 다루고 정작 평양 화교 학살사건은 가르치지 않습니다. 관심이 있어서 찾아보거나 근대사를 전공해야 알 수 있는 내용이죠. 국민의 한 90프로는 이거 들어본적도 없을 겁니다. 가르치질 않고 배우질 않으니까요.

마치 일본에서 관동대학살을 쉬쉬하면서 어물쩡 넘어가는 것과 비슷한 태도입니다. 어느 나라든지 자기네 치부는 감추고 덮고 싶은 것이겠죠...
독수리가아니라닭
18/10/17 10:05
수정 아이콘
99퍼센트 봅이다.
아니, 아는 사람이 만 명 단위도 안 될걸요
랜슬롯
18/10/17 10:40
수정 아이콘
그렇게 많이 죽었나요? 와 일본 역사 의식 없다고 맨날 욕했던 제가 다 부끄럽네요 -_-; 이런 사건을 모르고 있었을 줄이야...
프로피씨아
18/10/17 10:58
수정 아이콘
https://namu.wiki/w/1931년 평양화교 학살

이 문서의 31번 인용문을 보면 머리가 띵해집니다.

저도 이 사건을 알고부터는 일본 역사교육 비판을 삼가게 되었네요. 입장이 반대였다면 우린 안 그랬을거야라는 자기기만을 더는 할 수 없어서요...
영원한초보
18/10/17 22:08
수정 아이콘
그렇게 서로 비판안하면 누가 비판하나요?
18/10/18 10:59
수정 아이콘
그렇게 서로 비판을 삼가면 더욱 묻히게 되겠지요.
이런 건은 어쩔 수 없이 당한 쪽에서 공론화하고 비판하는 수 밖에 없다고 봅니다.
생각안나
18/10/17 13:01
수정 아이콘
(수정됨) 그래서 저는 우리나라에서 이야기되는 역사의식이라는 표현의 본질은 민족의식이라 봅니다. 역사의식의 부재니 뭐니 떠들고들 있지만 사실 그 표현의 배후는 민족의식의 부재를 뜻하는 거죠.
페스티
18/10/17 10:48
수정 아이콘
늘 경계하고 반성해야 합니다..
마우스질럿
18/10/17 15:34
수정 아이콘
관동대학살
일본인 요시노 사쿠조는 그의 저서 『압박과 학살』에서 2534명으로,
김승학은 『한국독립운동사』에 피해자가 6066명이라고 적었지만,
그에 비해 당시 일본정부의 추산은 233명이었다.

평양지역 사망자수는
도부청(道府廳)조사결과는 95명인데 - 일본경찰의 조사
중국측 조사를 따르면 109명이다.
평양중화상회의 9월 13일 피해조사 보고서를 따르면 사망자수는 남자 106명, 여자 7명, 어린이 8명 등 총 121명이다.
중화민국외교부 조회에서는 1931 8월 22일까지 파악된 사망자의 총수는 121명으로 확인하고 있다.
국제연합조사위원회 위원으로 참여하였던 顧維鈞의 보고서를 따르면 평양지역 사망자는 133명이다

학살자 수가 비슷하다고 말하기에는 관동대지진하고 비교대상은 아닌듯 싶습니다
프로피씨아
18/10/17 16:54
수정 아이콘
제가 혼동했습니다. 한국대사관에 남아 있던 피살자 명부에 있는 사망자 수가 195명입니다.
마우스질럿
18/10/17 17:03
수정 아이콘
아 그리고 관동대지진은 1923년 9월 1일이고
저 사건은 1931년에 벌어진 사건이니까
-----
당시 죽거나 다친 화교 수가 얼마 지나지 않아 일본에서 벌어진 관동대학살에서 죽은 조선인 수와 비슷합니다.
-----
이 부분은 잘못 인식하고 계신듯 합니다.

그리고 제가 비교 대상이 아니라고 느끼는건

관동대지진의 경우
일본 내무성이 각 경찰서에 하달한 내용 중에
"재난을 틈타 이득을 취하려는 무리들이 있다. 조선인들이 방화와 폭탄에 의한 테러, 강도 등을 획책하고 있으니 주의하라"라는거를
일본 신문들이 인용하면서
조선인들이 방화 폭동을 일으켜서 이렇게 됬다! 로 사건이 확대된겁니다.

반면 평양의 경우 조선일보가 밑도 끝도 없이 오보를 내는 바람에 사건이 벌어진것이고요
이 사건으로 사법처리 받은 기자가 7명인데 그중에 5명이 조선일보기자였습니다.

국가의 개입과 민간신문의 어처구니 없는 오보 와의 차이인거죠
프로피씨아
18/10/17 17:43
수정 아이콘
평양학살에서도 윗선의 개입은 아니나 일선에서 조선인 경관들은 방관했습니다.

엄밀히 말하면 일제시대에 일어난 사건이므로 조선총독부의 잘못이지 대한민국 정부에는 책임이 없는데, 그럼에도 굳이 안 가르칠 이유는 또 뭐겠습니까? 결국 가해자가 조선인들이라 꺼림칙한거죠.

말씀하신대로 관동대학살이 더 심각한 규모였지만 백명 죽인건 괜찮고 만명 죽인건 안괜찮은건 아니니까요.
마우스질럿
18/10/17 18:08
수정 아이콘
(수정됨) 헌병 70명 인근 소방대원 200여명까지 다 끌어 모아서 치안유지하려다가 실패하고
성난 군중들의 집단광기로 일본인 순사까지 부상당했던게 이 사건이고요

조선인경관들...이 아니고 정확하게 말하면 순사보조입니다.
실권없는 시다바리가 경관인척 행세 못하는게 당연하죠

관동 대지진이든 평양화교 학살이든 집단광기 라는 면에서는 같습니다.

다만, 제가 거부감이 드는것은 저위에 31번 언급하시면서 3.1운동하고 비교하시며
우리가 피해자때는 피해자인척하고 우리가 가해자인부분은 드러내지 않는다! 라고 하시는 인식이 황당해서입니다..

3.1 운동은 고종승하 - 종교지도자들의 집회 계획 - 만세 운동까지 처음부터 비폭력 저항운동이었던거고
주권을 회복하고자 하는 움직임이었습니다. 우리 헌법의 근간이고요 임시정부수립의 기폭제 부분입니다.

관동대지진의 경우는 해당 사건이후 언론에서 철저하게 세이코 띄워주기로 일본인 찬양몰이를 했었고요
- 세이코의 경우 점포상 수준에서 이때의 고객감동으로 언론의 대대적 조명아래 메이저로 올라섭니다. -
평양화교학살 사건은 이후 관련자들 사법처리 되고 있습니다.

이게 왜 평양화교학살 사건하고 비교가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1980년 광주에서 죽거나 다친 사람의 수하고 난징대학살로 죽은사람의 수가 같다 면서 두사건을 같이 놓으면 동의하십니까?
광주는 민간인 주장을 취사선택하고 난징은 일본의 주장을 취사선택 해 가면서요
프로피씨아
18/10/17 18:54
수정 아이콘
(수정됨) 네 님이 이겼습니다 살펴가십쇼

관동대지진 얘기를 꺼내지 말 걸 그랬군요 변할게 없는데 괜한 꼬투리만 크크
18/10/18 11:03
수정 아이콘
이야... 잘못된 정보를 바로 잡아주는데, 재반론도 아니고 오히려 비꼬기라니...
마우스질럿
18/10/17 19:33
수정 아이콘
//프로피씨아
상대방 글을 읽을 가치도 없어 하시는듯 하니 여기다 적어 두겠습니다.
프로피씨아 님이 적으신글입니다
-----
당시 죽거나 다친 화교 수가 얼마 지나지 않아 일본에서 벌어진 관동대학살에서 죽은 조선인 수와 비슷합니다.
-----
[죽거나 다친] 화교수가 얼마 지나지 않아 일본에서 벌어진 관동대학살에서 [죽은] 조선인 수와 비슷합니다.
죽거나 다친을 죽은 사람 수하고 비교 해 가면서 두 사건을 나란히 놓으시는데
죽거나 다친은 중국쪽 주장을 취사선택하시고
죽은 은 일본쪽 주장을 선택하시면 숫자가 비슷합니다.

거기다가 [31년 벌어진 사건이후 벌어진] 관동대지진이라고 혼동해서 말씀하시면서
니가 이겼다 라면서 상대방을 말꼬리나 물고 늘어지는 사람 취급하시는데
본인이 적확하게 사실관계를 말씀하셔야죠 역사적 사실인데 ...

31번 인용문을 보면서 느끼셨다는 감정은 도데체 뭔지 1도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왜 만세운동이 집단광기입니까?
18/10/17 19:43
수정 아이콘
굳이 논쟁하실 가치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욱일기도 여러 민족들이 많이 써 왔으니 반대할 근거가 없다는 스탠스를 취하시고는, 거기에 그럼 하켄크로이츠의 역사적 전통은 뭐냐고 반박했더니 아무말 없이 도망치시고 나중에 저 밑의 댓글에 요즘 사람들 감정에 휘둘려서 논리가 없다 이런 주장의 글을 쓰시는 분이라..
그냥 말 길게 섞으시면 피곤해지십니다.
glasody79
18/10/17 10:06
수정 아이콘
좋은글이네요.
약간의 역사학 기본소양이 있다면 저 내용만으로 소논문 하나는 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역사학의 기본훈련이 되어 있지 않은 일반인에게 저런 사료의 나열은 혼란을 줄 수 있고, 사료의 나열만으로 역사를 완성하고 다 안다고 착각하게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인터넷 게시판 용으로는 조금 가볍게 쓰는 것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오호츠크해
18/10/17 10:07
수정 아이콘
동남아쪽에 화교 세력이 많아서 화교를 억제한다던데, 말레이시아인가 인도네시아인가... 우리나라도 화교를 억제하지 않았으면 비슷했을꺼 같네요.
냉면과열무
18/10/17 10:34
수정 아이콘
저도 처음 알았습니다.
능숙한문제해결사
18/10/17 10:36
수정 아이콘
와 정말 저도 처음들은...
재즈드러머
18/10/17 10:47
수정 아이콘
불과 100년도 안되었는데
인류의 야만성과 잔혹성이 끔찍하네요.
그 유전자들이 어디가지 않았을테니 제도적으로 또 교육으로 인해 두번다시 이러한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경계해야할 것입니다.
민족을 떠나 호모 사피엔스 전체에게 이러한 잔혹한 dna는 각인되 있는듯 싶네요.
18/10/17 10:50
수정 아이콘
제가 이 사건을 첨 알게된 계기는 말레이시아 화교 학살입니다. 당시 경제력을 장악한 화교를 말레이시아인들이 학살한 사건입니다.
근래(1998)에 일어난 사건이라 충격을 받았는데 이런 일이 이미 우리 역사에도 존재했다는 것을 알고 경악했지요.
백의 민족, 평화를 사랑하는 민족, 침략을 받았지 한 적이 없는 민족은 개나 줘라 입니다.
인간은 다 똑같습니다. 문명화 됐던 미개하던 선진국이던 후진국이던 자기와 다름을 인정 못하고 틀림으로 받아들여서 결국 폭력이 발생합니다.
다만 이런일일 발생하고 안하고는 사회 제도적으로 예방할 수 있는 치안력의 유무, 정부의 의지 유무 차이라 봅니다.
이민자들의 모국의 국력도 중요하죠. 아무리 혐중 정서가 강해져도 감히 정부의 묵인아래 우리나라에서 이런 일이 다시 발생하긴 어렵다고 봅니다.
순자 당신이 옳았어
세츠나
18/10/17 10:59
수정 아이콘
대체역사소설에서 봤습니다. 그러고보면 대체역사물의 조류도 무조건적인 국뽕만이 아니라 다양화되고 있는 듯...
윤정애기와3년차
18/10/17 11:02
수정 아이콘
저도 근현대사 만점이었음에도 이런 사건은 들어본 적도 없네요. 만보산 사건은 겉핧기로라도 들어봤는데.. 이전 청산리 전투에 관한 것도 그렇고 학교 졸업한 뒤로는 내가 공부한 역사과목이라는게 완전한 사실보다는 한국이라는 나라가 만들어낸 프로퍼갠더를 학습한 게 아닌가 가끔 느낍니다
랑랑이
18/10/17 11:02
수정 아이콘
오늘 첨 알았네요
수능근현대사 공부하고 역사책 읽고 한국사능력시험 보면 뭐 합니까 안나와있는데..
18/10/17 11:08
수정 아이콘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일겁니다. 오늘날 심지어 가방끈 길다는 대학원에서조차도 중국인 유학생들에 대한 근거없는 반감을 가진 사람들을 봤는데, 당시면 오죽했을까요.
추억이란단어
18/10/17 11:16
수정 아이콘
서로에게 부끄러운 역사를 감추려는건 일본이든 중국이든 한국이든 똑같네요.
중국에서 저 역사에 대해 교과서에 집어넣고 제대로 알려달라고 한다면 과연 한국에선 어찌할려나요..
영원한초보
18/10/17 22:14
수정 아이콘
과연 한국에선 어찌할려나요가 아니라 흑역사도 가르쳐야
반복을 막을 수 있죠. 그리고 그럴 수 있게 여론이 만들어져야 하고요.
정지연
18/10/17 11:17
수정 아이콘
만화판 데빌맨의 광기가 만화적 과장만은 아니었군요.. 이런거 보면 인간이 얼마나 잔인한지 새삼 느끼게 돼요..
초짜장
18/10/17 11:25
수정 아이콘
이런건 왜 교과서에 안들어간답니까..
허구언날 승려들 시대순 배열이나 내용도 모르는 서적들 순서나 묻고있고 쯧
국사편찬위 존재가치가 없네요
아케이드
18/10/17 11:31
수정 아이콘
자국의 허물을 가르치는 건 자학사관이다. by 일본 문부성
신불해
18/10/17 11:43
수정 아이콘
한사군 같은것만 다뤄도 선동열이 불려나와 야알못에게 야구지식으로 조리돌림 다루는 판국인데 그 이상 하면야....
초짜장
18/10/17 12:05
수정 아이콘
부끄러운걸 감추는게 더 부끄러운 일이란걸 왜 모르는 걸까요
18/10/17 13:25
수정 아이콘
역사에 임팩트가 없는 사건이니 없는 것이겠죠. 평화로운 현실에서 저 정도면 큰 사건이지만, 전쟁이 밥먹듯이 벌어지던 당시를 보면 저건 사건 급에도 못 들어갈테고요. 과거든 현실이든 전쟁이 벌어지면 저 정도 민간인 피해는 언급될 수준도 아니겠지만, 그 수많은 전쟁에서 민간인 피해에 대해선 역사책에서 말해주진 않듯이요.
초짜장
18/10/17 14:46
수정 아이콘
역사는 과거와 현재와의 "대화"라는 말을 교과서 첫머리에 배우듯, 임팩트는 역사가들이 양념치기에 따라 달라지게 마련이죠.
따지고보면 놋그릇 공출같은 그 당시 상황상 별것도 아닌 것까지 시시콜콜 다 언급하는것과 비교하면 차이가 큽니다.
그래서 이 "대화"의 방향이 잘못되었다는 말을 하고 싶은거죠
18/10/17 16:07
수정 아이콘
인간의 존엄성이 지금처럼 높았던 때가 아닙니다. 당시 기준에서 보면 놋그릇 공출이 오히려 더 큰일이었을 수도 있죠. 말씀 드렸듯이 전쟁한번 일어나기만 해도 살인과 강간은 당연히 따라오던 시대였습니다. 그런 식이면 외세가 얼마나 침략을 했으며 또 얼마나 많은 전쟁을 경험하였으며, 그 동안 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살인을 당했는지 전부 언급해야 겠네요.
초짜장
18/10/17 16:15
수정 아이콘
역사가 과거의 현재와의 대화라는 문구를 언급한 것은 결국 현재 시점에서 과거를 재단하는 사람에게 달려있다는 말입니다.
가짜뉴스를 믿고 백단위의 죄없는 자들을 학살한 사건이 전쟁이면 으레 따라오는 살인 강간보다 훨씬 더 빈번하게 일어난 각종 물자공출보다 임팩트가 낮다고는 생각되지 않습니다.
심지어 1931년이면 문화통치가 끝난지 얼마 안된 시점입니다.
유소필위
18/10/17 11:30
수정 아이콘
이걸 모르는 사람들이 많았나 보군요;; 전 꽤 유명한 사건이라고 생각했는데.
아케이드
18/10/17 11:32
수정 아이콘
알려주는 데가 없으니 유명하긴 어렵겠죠.
돼지샤브샤브
18/10/17 11:45
수정 아이콘
교육과정에서 단 한 번도 나오지 않으니 알 리가 없죠. 저도 처음 봤습니다.
같은 이치로 일본 아이들도 뭘 배운 게 없으니 2차대전때 미국이랑 같은 편이었던 줄 알고 옆나라에 어떻게 했는지는 모르고 그런 건가봅니다. "그래도 어떻게 그렇게 모르지?" 라고 생각했는데 이런 거네요.
도뿔이
18/10/17 11:40
수정 아이콘
좀 알아보니 이게 가짜 뉴스의 위험성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같은데 자주 언급되긴 힘들겠죠?
18/10/17 11:41
수정 아이콘
"올바른 역사", "역사를 바로세우다" 이 두 문장 ebs다큐나 온갖 역사 관련 영상에서 참 많이 나오는데 정말로 올바른 역사를 가르치고 싶으면 한국사의 명만 보여주는것이 아니라 어두운 부분도 적나라하게 보여줘야한다고생각합니다.
18/10/17 11:41
수정 아이콘
지금도 뭐.. 중국인 짱x라고 비하하는 인간들이 일본 혐한 기사 앞에선 언제 그랬냐는듯이 진보주의자로 돌변하죠.
18/10/17 11:56
수정 아이콘
한국도 선택적 올바른 역사배우기는 피할수가 없네요
18/10/17 11:58
수정 아이콘
좋은 글 감사합니다. 꼭 기억해야 할 역사네요.
18/10/17 12:05
수정 아이콘
처음 보는 사건임니다
Liberalist
18/10/17 12:15
수정 아이콘
대학 수업 때 저걸 처음 접하고 엄청 충격 먹었던게 아직도 기억에 남습니다.
여기에 한나 아렌트의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읽은 것까지 끼얹어서 제 세계관이 엄청 바뀌었죠.

민족이고 나발이고를 떠나서 인간은 언제든지, 얼마든지 악마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될 것 같습니다.
ageofempires
18/10/17 12:19
수정 아이콘
이래서 당시 중국인들이 한국인들을 일본인 싫어하듯이 싫어했죠.

그러다 이봉창이랑 윤봉길이 의거 일으켜서 한국을 바라보던 시각을 달리한 거구요.

그리고 이걸 몰랐던 사람들이 많은게 다름아닌 역사교과서에서 안가르쳤기 때문이죠. 옆나라 역사교과서가 자국의 잔학한 사건을 기록안한다고 난리치면서 본인들의 잔학함은 똑같이 감추고 있었죠.
18/10/17 12:25
수정 아이콘
근데 저 당시부터 화교가 있었군요. 조선인이 독립운동이나 먹고 살려고 상하이나 만주에 갔던걸로 아는데
크라우도
18/10/17 12:32
수정 아이콘
와 저도 처음 알았네요...
일본인들도 자국이 저지른 학살에 대해 알게 되면 이런 기분일까요.
라이언 덕후
18/10/17 13:03
수정 아이콘
부끄러운거 숨기면 없는 일이 되나...
18/10/17 13:27
수정 아이콘
몰랐던 사실인데... 지금이라도 알게되서 다행으로 생각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스웨트
18/10/17 13:35
수정 아이콘
와.. 저도 처음알았습니다 우리나라도 자국역사의 치부를 안가르치는건 일본과 마찬가지였다니..
담배피는씨
18/10/17 13:39
수정 아이콘
처음 알았네요.. 잘 보았습니다...
프리더
18/10/17 14:25
수정 아이콘
저도 만보산 사건을 '해방전후사의 재인식'보고 처음 알았습니다. 고교시절에는 안 배웠죠. 한능검이나 공무원 수험국사로 가도 일제의 이간책 정도로 다루죠.
10년째도피중
18/10/17 14:32
수정 아이콘
부끄러운 일이지만 나름 역사를 가공하여 전하는 일을 하고 있음에도 이 사건을 알게 된 것이 몇 년 안됩니다. 그만큼 알리지 않은 이야기라는 것이겠지요. 최근에야 여성운동 덕에 알려지긴 했지만 한국군에서 이루어진 양공주 관리라든가...

이 사이트 정도니 그나마 이런 반응이지 다른 사이트들에서 반응은 꽤 다를거라 생각합니다.
누가 잘했냐 못했냐보다 무엇을 잘못했느냐가 훨씬 더 중요한 일이 아닌가요? "XX에게 면죄부를 주자는 말이냐?" 같은 이야기는 정말 피곤하기만 합니다.
18/10/17 14:34
수정 아이콘
현상도 중요하지만, 그럼에도 인간을 인간답게 만들어주는 건 당위가 아닐까 싶습니다.
고란고란
18/10/17 14:42
수정 아이콘
작년엔가 이 내용을 나무위키에서 처음 접했었죠. 아마 이 이야기 말고도 역사에 묻힌 부끄러운 일들이 많을 거란 생각이 듭니다.
18/10/17 14:44
수정 아이콘
역사에 관심이 있다 생각했는데 저도 처음 알았네요. 나름 문명시대라고 여겨지는 현대에도 이슬람 사람 한 번을 만나본 적 없으면서도 이슬람에 대해 무서울만큼의 적개심과 편견을 가진 사람이 상당수인데... 저 당시는 오죽할까요. 인간의 잔인성은 아무리 경계해도 부족함이 없다 생각합니다.
young026
18/10/17 21:07
수정 아이콘
제가 이 사건에 대한 얘기를 처음 본 건 국민학교 시절 계몽사문고의 조풍연씨 동화군요. 화교 행상인 얘기이고 마지막에 잠깐 언급된 정도지만. 이 얘기에서 나왔던 '아가위사탕'이 뭘까 했는데.^^;
처음과마지막
18/10/17 21:14
수정 아이콘
인간들은 잔인성을 항상 숨기고 있죠
육이오만 해도 같은 민족끼리 서로 전쟁하고 학살했잖아요 전쟁이 그래서 무서운거죠 인간의 잔인성의 민낯이들어나는게 전쟁터죠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101185 시흥의 열두 딸들 - 아낌없이 주는 시흥의 역사 (5) [3] 계층방정3175 24/03/26 3175 8
101175 [스포있음] 천만 돌파 기념 천만관객에 안들어가는 파묘 관객의 후기 [17] Dončić5980 24/03/24 5980 7
101108 역사교과서 손대나... 검정결과 발표, 총선 뒤로 돌연 연기 [23] 매번같은5437 24/03/08 5437 0
101095 시흥의 열두 딸들 - 아낌없이 주는 시흥의 역사 (4) [8] 계층방정4209 24/03/07 4209 9
101070 세계 각국의 의사 파업 현황과 한국의 의료 현실 [183] 티라노9596 24/03/04 9596 0
101031 해방후 적정 의사 수 논쟁 [10] 경계인5347 24/02/26 5347 0
100974 독립기념관 이사에 낙성대경제연구소장 임명 [43] 빼사스5080 24/02/21 5080 0
100928 일본의 스포츠 노래들(축구편) [8] 라쇼2104 24/02/17 2104 1
100905 고려거란전쟁 중간 리뷰 [24] 드러나다6207 24/02/15 6207 13
100895 시흥의 열두 딸들 - 아낌없이 주는 시흥의 역사 (2) [3] 계층방정4247 24/02/14 4247 6
100887 시흥의 열두 딸들 - 아낌없이 주는 시흥의 역사 (1) [49] 계층방정9259 24/02/12 9259 2
100674 1시간 삭제되는 코리안 나르코스 이야기 [31] 어강됴리9665 24/01/09 9665 4
100473 와인도 이렇게 열심히 사는데 / 와인의 역사 [25] Fig.17631 23/12/14 7631 18
100377 나 스스로 명백한 잘못을 행한다고 판단할 알고리즘이 있을까? [21] 칭찬합시다.5671 23/12/01 5671 6
100374 추구할 가치, 여유를 잃은 사회. 그리고 저출산 [75] 사람되고싶다9333 23/12/01 9333 0
100263 [역사] 덴푸라의 시작은 로마?! / 튀김의 역사 [19] Fig.16864 23/11/15 6864 27
100155 갈등이 있어서는 안 되는 나라 - 대한민국 [40] 계층방정11662 23/10/28 11662 0
100110 [단독] 육사, 홍범도·김좌진실 등 ‘독립전쟁 영웅실’ 철거 돌입 [166] Crochen15361 23/10/21 15361 0
100091 [역사] 어묵과 오뎅은 다른 음식! / 오뎅의 역사 [30] Fig.16685 23/10/19 6685 19
100085 가자지구의 병원 공습, 최소 500명 사망 [93] 두개의 나선12477 23/10/18 12477 2
99969 윤석열과 일본관계, 그리고 미중전쟁시 일본군의 한반도진출 [72] 방구차야9703 23/10/05 9703 0
99961 [단독] 육사, '홍범도실' 등 교내 독립전쟁 영웅실도 철거 결정 [196] Crochen12323 23/10/05 12323 0
99949 헌재, '남성에게만 병역 의무 부과하는 병역법은 합헌' [413] Schna18025 23/10/03 18025 0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1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