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백합니다.
어머니, 저는 당신을 배려하지 않습니다.
어머니, 제가 새벽에 일어나 밥을 앉히는 것은 자식을 위해 아침식사를 준비해주는 당신의 주름진 손이 안쓰러워서가 아닙니다.
어머니, 제가 당신께서 음식을 사오는 것을 극구 말리는 것은 오랜만의 귀성객이 발병한 것을 조섭시키려 먼 길을 떠나는 뒷모습이 처연해서가 아닙니다.
어머니, 제가 고향집의 짧은 체류 중 외식을 고집하는 것은 그간 홀로 자식을 기다리셨을 당신의 모습이 아른거려서가 아닙니다.
어머니, 저는 효성스런 자식이 아닙니다. 저는 당신을 배려하지 않습니다.
어머니, 제가 취반하거나, 당신의 고생을 말리거나, 매식을 바라는 것은 당신을 잘 섬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제 자신을 위해서입니다.
어머니, 저는 콩이 너무나도 싫습니다.
그 썩을 놈의 까만 쥐똥은 허구헌날 쌀통의 쌀벌레 같이, 식빵 속의 건포도 같이, 김밥 속의 돌멩이 같이, 제가 어렸을 적부터 저를 지독히도 괴롭혀와 저에게 심각한 외상성신경증을 일으켰습니다.
제가 늘 쌀밥의 완전무결한 풍미를 콩알이 망가뜨리는지에 대해 당신께 주론할 때, 당신은 항상 '건강에 좋다'는 진위가 의심되고 섭식의 기본을 망각한 발언으로 우리의 담론을 가로막았습니다. 설사 아무리 그 콩알 한 알이 저의 근육을 성장시키고 정신을 신장시킬 수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먹을 수가 없다면 그 모든 이로움이 무슨 소용입니까? 사람이 사람다운 쾌락을 향유하기 위하여 필요한 것은 욕구 중 수면이 으뜸이요, 미뢰의 기분 좋은 만족이 버금입니다. 그 중 하나를 거세시키고자 하시니 제가 어찌 고향에서의 생활을 즐거워하겠습니까?
어머니, 제가 새벽에 일어나 밥을 앉히는 것은 아름다운 백미의 협주곡에 콩이라는 불협화음의 삽입을 막기 위함이며, 당신의 배달을 사양하는 것은 녹두죽의 구매를 막기 위함이며, 외식을 주장하는 것은 식당에서는 저주 받을 콩밥을 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어머니, 저는 콩이 너무 싫습니다. 제발, 대체 그깟 콩 따위가 무엇이길래 그걸 제가 왜 항상 먹어야합니까? 지금 당장 본죽 메뉴를 훑어보아도 야채죽, 낙지죽, 전복죽, 흑임자죽, 수많은 죽이 폭포처럼 흘러넘쳐 어디에도 없는 신의 힘까지 훔칠 지경인데 왜 굳이 저의 몸조리를 위한 세 끼의 죽이 녹두죽, 녹두죽, 그리고 녹두죽이어야 합니까? 이는 피보호자의 의사를 무시한 지극히 비이성적이고 비논리적인 행위이며 당장 중단되어야 합니다. 만일 당신이 콩밥의 배식을 순순히 멈추지 않는다면, 제가 휴가 때마다 해외로 도망가는 패륜사태는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이는 제 마지막 경고이니 반드시 수용되어야 합니다. And I also, 엄마 좋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