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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8/04/15 20:33:50
Name VrynsProgidy
Subject 삶이란 순간이 아닌 연속된 흐름속에 있는것임을 알다 (수정됨)


처음 내가 그 흐름을 느낀 것은 약 10년 전, 고등학교 3학년때였다. 당시 대입 전략을 고1때부터 내신을 아예 포기하고 수능 우선선발에 올인하기로 한 나는, 여름방학 즈음부터 원인모를 큰 불안감에 사로잡혀 있었다. 아무래도 당락 자체를 수능이라는 시험 한번에 결정짓게 된 부담감도 영향이 없지는 않았을테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오래전 신중한 고민끝에 내린 내 선택이었기에 설득력이 충분하지 않고, 성적에 의한 불안감이라기에는, 내 모의고사 성적은 원하는 대학 원하는 학과에 우선선발로 붙을만큼 계속 좋은편이었으니, 역시나 핵심이라고 보긴 어려울것이다.

그리고 8월 말, 이 불안감이 자연스레 해소될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님을 느낀 나는 고민끝에 부모님과 선생님께 작년 말에 났던 교통사고 후유증이었던 신경계 질환을 핑계로 병원에 좀 다녀오겠다고 말씀 드리고 하루 학교를 쉬겠다고 말씀드렸다. 선생님께서는 당연히 난감해 하셨지만 내 확고한 태도를 보고 승락해주셨으며, 부모님도 역시 병원까지 태워다줄까하는 제안은 하셨지만 특별히 내 요구를 거절하진 않으셨다.

명분은 외상이었지만, 실제로 내가 해결해야 하는 문제는 내상이었기에, 나는 그 날 하루의 목표를 온전히 나 스스로의 정신을 최대한 깊이, 최대한 선명하게 들여다보는것으로 정했고, 전날 세운 계획에 따라 나는 아침 6시에 일어나 집 앞을 산책하는것으로 간신히 얻은 자유로운 하루를 시작했다.

갓 떠오른 해는 따숩다 못해 약간은 덥게 느껴질만큼 나를 비췄고, 아침의 선선한 바람이 그 조금의 더움을 기분좋게 식혀주었다. 어찌보면 등교하는 매일 아침과, 혹은 어쩌다 일찍 일어난 주말 아침과 전혀 다를게 없는 아침이었지만, 세상의 모든 경험은 경험 하는 사람의 마음가짐에 따라 달리 느껴지는 법이고, 그날 아침의 풍경은 더 중요한것에 대한 생각으로 인해 조금의 자리도 내주지 않았던 어제까지의 매일과는 달리, 뇌리에 선명히 남아 10년이 지난 지금도 아직도 그 흔적이 지워지지 않고 쓸쓸히 남아있다.

간단한 스트레칭을 하고 들어가 가볍게 밥을 퍼서 아침을 먹었다. 밥을 먹는 도중 동생과 부모님이 일어나서 그들의 일상을 준비한다. 일찍 일어난만큼 먼저 나갈 채비를 갖춘 나지만, 이상하게 가족들의 아침을 좀 더 지켜보고 싶은 욕구가 생겨 소파에 앉는다. 이쁘게 고데기질을 하는 동생과, 어느새 푸근한 아주머니에서 나이들었지만 카리스마 있는 커리어 우먼이 되어가는 어머니를 보며, 나는 평소와 다른 무언가를 느끼지만, 여전히 그 무언가가 무엇인지는 알지 못한채, 그들의 뒤를 따라 거리로 나선다.

집에서 나오자마자 곧장 버스를 타고 병원에 가서 간단한 검사를 마친다. 이른 아침이라 그런지 꽤 큰 중형 종합병원임에도 조금은 한산했다. 간단한 검사를 받고, 왠일로 몇개월만에 왔냐며 놀라는 선생님께 수능을 앞두고 조금 불안해서 왔다고 말씀드리자 그때 워낙 시달렸으니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좋게 얘기해주셨다. 일정을 마치고 학교에 제출할 서류를 챙기고 병원 밖으로 나서니, 아직도 채 열시가 되지 않았다.

부모님과 여자친구에게 검사 결과 별 이상이 없다는 문자 메시지를 날리고, 나는 어제 생각했던 계획에 따라 내가 다녔던 초등학교로 향한다.   계획은 이러하다. 나는 이 동네에서 초, 중, 고 시절을 보냈다. 저니맨처럼 이곳 저곳 이사를 다니긴 했지만, 본진은 언제나 이 동네였다. 따라서 나는 내 안의 불안감이 어떤것임을 알기 위해서, 나 스스로를 돌아보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그래서 오늘 내 얼마 안되는 19년 삶의 흔적을 따라 걸으며 최대한 머리속의 생각을 정리하기로 했다.

버스를 몇번 갈아타고 그때 살던 동네에 내려, 당시의 등교길을 따라 학교를 향해 걸어본다. 그때는 참 길게도 느껴졌던 길인데 축지법이라도 배운양 성큼성큼 걷다보니 어느새 금방 목적지에 도착한다. 운동장에는 체육 수업중인 아이들과 선생님이 보이고, 학교 옆 등산로에는 할아버지 할머니 아저씨 아주머니들 몇몇분이 산책을 하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아침에 가족들을 보며 느낀 느낌이 다시 마음속에 차오른다. 이 느낌은 무엇일까? 그때와 지금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고민해보지만 쉽게 답이 나오지 않아 다시 걸음을 옮긴다.

초등학교를 지나
이사다녔던 집들
중학교. 잠깐 다닌 학원
매일 놀러가던 캔모아, 노래방, PC방, 오락실이 있던 건물
여자친구와 처음 데이트를 했던 백화점을 가는 버스
선생학습을 위해 학교도 쉬면서 나갔던 대형학원
매일 아침 친구들과 함께 들러 허기를 때우던 주먹밥집
내가 가고 싶은 대학교앞

그렇게 과거, 현재, 미래의 내가 있던 장소를 거치면서, 나는 문득 내가 이런 비슷한 고민을 이전에도 했던 기억이 있음을 깨닫고. 마지막으로 그때의 내가 있었던 장소로 향했다. 장소는 여의도 대공원, 중학교 졸업전 학교 야외 수업으로 들렀던 곳이다. 그리고 정말 생각치도 못한 여의도 한복판에서, 평소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한, 점심시간에 삼삼오오 모여 와이셔츠를 입고 식사를 하러 돌아다니는 직장인들을 보며, 나는 마침내 오늘 아침부터 내가 사람들을 보며 느꼈던 그 느낌이 무엇인지 깨닫게 된다.


당시 내가 본 것, 느낀것은 평소에는 보이지 않던, 하나의 커다란 흐름이었다. 그제와 어제, 어제와 오늘, 오늘에서 내일로 이어지는, 다양한 사람들이 각자의 삶을 살며, 나와 남, 혹은 나와 과거의 나, 혹은 나와 세상이 상호간에 영향을 주고 받으며, 물줄기처럼 어딘가에서 어딘가로 멈추지않고 끊임없이 이어져가는, 커다란 세상의 흐름을 느낀것이다.

학교 생활이라는 흐름속에, 중학생인 내 동생은 아침에 고데기를 하고, 교복을 입고 등교를 해서, 공부를 하고, 친구들과 수다도 떨고, 수업을 듣고, 하교를 해서 개인 시간을 보내다 잠이 든다. 잠이 들었으니 일어난것이고, 등교를 했으니 하교를 한다.

오늘 내가 본 모든 사람들도 다 그 흐름속에 있었다. 초등학생, 학교 선생님, 가게 주인, 직장인, 대학생, 모두들 마찬가지다 얼핏 생각하기에는 짐짓 비슷하고 지루한 풍경이라 같은 자리에서 맴도는것처럼 느껴질 수는 있어도, 그들은 분명히 흐름에 따라 제자리가 아닌 다른곳으로 움직이고 있는것이다. 3년의 중학 생활이 끝나면 고등학생이 되고, 고등학교 생활이 끝나면 대학생, 혹은 사회인이 되는것처럼, 분명히 그 흐름은 사람들을, 나를, 우리를 어딘가로 인도하고 있음이 분명했다.

평소에 이 흐름에 대해 내가 느끼지 못한것은, 여태까지 철저히 흐름속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수백 km/h 로 달리는 기차 속에서 사람들이 기차의 빠른 속도를 느끼지 못하는것처럼, 나는 흐름속에 있었기에, 이를 객관적으로 바라 보고, 느끼고, 알 수 없었다. 그리고 오늘, 스스로 일부러 땅에 발을 딛고 서서, 물의 흐름을 거슬러 멈추어 주위를 찬찬히 바라보고 나서야 마침에 그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여의도 공원에 앉아 생각을 정리한다. 나의 불안감이 어디에서 온 것인지 이제 나는 알 수 있었다 짧게 생각하면 고등학교 3학년 1년, 더 길게 생각하면 고등학교 3년, 더 길게 생각하면 학창 시절 12년, 아니 내 인생 19년동안 흘러온 유아기, 유년기, 청소년기를 거쳐, 미성년자의 마지막해, 이 흐름 끝에 나는 어디로 도착할것인가?  그것이 불안한것이었다.

내가 지금 몸을 맡긴 물줄기는, 나를 내가 원하던, 가고 싶은 곳으로 인도할것인가? 그 확신이 없다는것이 불안감을 낳았다. 아니 사실 확신이 없는 정도였다면 깨닫지 못했을 수도 있다. 당시 내 내면 깊숙한 곳에서는 이미 알고 있었던것이다. 지금의 나는 분명히, 분명히 원하는 곳으로 가는 올바른 흐름속에 있지 않다는 것을, 그저 관성에 의해, 더 좋은 선택을 눈 앞에 두고도, 그저 흐름에 끌려다니고 있었을뿐임을.

그 어느때보다도 맑은 정신으로 집으로 돌아온 나는, 바로 다음 날 학교에 야자를 그만두겠다고 이야기 했다. 선생님께서는 학교 교칙등을 들어 반대하셨지만, (엄청나게 보수적인 학교였으니, 당연한 수순이었다) 나는 '선생님이 곤란하시면 부모님을 모시고 직접 학교측과 이야기하겠다,' '내 향후 인생이 걸린 선택인데 학교에서 내 인생 책임져줄 수 있냐' 는 협박에 가까운 수단까지 동원해서 어떻게든 야자를 때려치고, 부모님께 말씀드려 학원을 등록했다. 고3이 되고도 틈이 나면 친구들과 재밌게 하던 야구게임 계정도 미련없이 지웠으며, 4개월 후 나는 원하는 학교 원하는 과의 우선선발컷을 찢고 합격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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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경험 이후, 현재까지의 10년 동안 꾸준히, 몇개월에 한번씩 몇번이고 일부로 흐름에 저항해, 내 발로 땅을 딛고 멈추어서서 주위를 돌아보며, 삶이라는 물줄기가 흘러가는것을 바라보는 습관이 생겼는데, 이러한 재충전을 주위 많은 사람들에게 두가지 이유로 적극적으로 권하고 싶다.

첫째로, 간혹 충동, 오해, 오판에 의해 잘못 된 흐름으로 들어선 나로 하여금, 원류로 다시 돌아갈 수 있게 만든다. 내 주위에서 공부나, 다이어트에 실패하는 사람들을 보면 대부분 잘못된 흐름에 발을 걸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았다.

오늘 못 참고 먹은 한끼, 한주 달성하지 못한 공부 목표는 단지 한끼, 한주에 그치는것이 아니라, 앞으로의 계획 전체의 흐름을 좋지 않은것으로 이끌고, 사람들을 실패로 인도한다. 그러나 발을 멈추어 내가 잘못된 흐름에 휩쓸렸다는것을 알면, 조금이라도 일찍 다시 돌이킬 수 있다.

둘째로, 비극과 실패, 아픔에서 좀 더 의연해 질 수 있다. 영원할 것 같은 이별의 고통도, 실패의 아픔도, 내 삶이라는 흐름의 일부임을 알면, 그것들을 순간속에 영원히 남는것이 아니라는것을 알면 극복에 아주 큰 도움이 된다.

물론 Life goes on 이라는 말로 인해 머리로는 누구나 잘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그것을 실제로 체감하는기 위해서는 결국 발을 딛고 멈추어야 한다. 실패를 먼저 떠내려가게 냅두고, 스스로는 멈추어 주위를 둘러보면 큰 실패로 인해 초토화된 내 삶의 강줄기에도, 재밌어보이고, 넓고 푸른 바다가 기다릴것 같은 물줄기가 여전히 너무나도 많이 남아있다는걸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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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파
18/04/15 20:57
수정 아이콘
좋은 글 감사합니다. 오랜만에 글 읽으면서 제대로 생각해봤네요.
18/04/15 21:03
수정 아이콘
저번에 운영진이 쓴 페미니즘 토론글에서 선생님의 쓴 댓글을 보았는데 그 명석함에 감동하여 저도 최근 인용하고 있습니다.(왠지 저는 벌점을 먹었지만)
매우 훌륭한글 잘 읽었습니다.
공도리도리
18/04/15 21:12
수정 아이콘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정보와 경험과 인생 이야기가 담긴 좋은 단편수필 읽은 것 같네요
조말론
18/04/15 21:16
수정 아이콘
이런 아이디어를 수천년간 심화시키고 완성을 추구하는 것이 있지요 불교라고 추천드립니다 학문적으로나 종교적으로나 삶의 방식으로 충전시켜드릴듯
VrynsProgidy
18/04/15 21:30
수정 아이콘
스님의 말씀을 들으니 본문의 사례나 너무 속물적인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군요...
18/04/15 22:08
수정 아이콘
비슷한 이유로 잊혀지지 않는 풍경이 다시 생각납니다. 좋네요.
정신건강의학
18/04/16 00:03
수정 아이콘
(수정됨) 글초에는 성적에 의한 불안감은 아니라고 하셨는데 결국 돌아보고 난 후에는 쓸데없는 야자를 끊고 학원을 등록한걸로 보건데, 우선선발로 합격하기에는 결국 지금의 노력이 충분치 않았다 라고 생각하신 건가요?

즉, 관성에 의해 흐름에 휩쓸려서는 현재 본인의 상태가 어떤지 정확히 알기 어려우니 잠시 멈춰서서 status를 확인해보자 라는 뜻으로 받아들여도 될까요? 마이크로 컨트롤로 방향을 이리저리 바꾸어 가다가는 애초에 목표했던 곳에서 벗어나도 알아채기 어렵다. 잠시 게임을 멈추고 M을 눌러 맵을 켜고 방향을 설정하자. 라고 이해하면 맞을까요?
VrynsProgidy
18/04/16 00:13
수정 아이콘
(수정됨) 네, 글 앞부분에서 서두에서 말한 내용은

1. 정시중에서도 수능우선선발을 노린것에 대한 불안감
2. 현재의 성적으로 인한 불안감

이 두가지로는 당시 느낀 불안감이 설명이 되지 않는다는 뜻이었습니다. 왜냐면 모의고사 성적은 그대로만 나오면 막말로 원하는 아무과나 골라서 쓰면 붙는 수준이었고, 저는 정시 위주 입시에 대한 선택을 당시에도 합리적이라고 생각했고 특별히 후회한적 없거든요.

다만 노력이 충분치 않았다 라기보다는, 그냥 어느정도 관성에 의해, 이게 아니라는걸 의식하지 못하고 행하고 있었던 잘못된 것들을 바로 잡은거죠. 야자를 한다고 공부를 덜한것은 아니고, 야구게임 같은 경우도 철저하게 쉬기로 한 날에만 했기 때문에 그것들이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았지만, 그 생각 자체가 무언가에 휩쓸려가는 흐름속에서 타성과 관성에 의해 만들어진거고, 멈추어 아예 제로베이스에서 객관적으로 생각해보니 게임은 아예 안하는것이 맞았고, 공부도 적어도 고3 여름 그 시점에서는 학교의 스케줄에 휘둘리는게 아니라 내가 생각하는 100%의 납득이 가는 스케줄에 따라 공부를 해야 할 때였다고 느낀거고, 그래서 그렇게 했고, 불안감이 사라졌습니다.

참고로 야자를 관두고 학원에 등록한 뒤 평일 공부 시간은 야자할때보다 오히려 더 줄었습니다. 즉 노력 = 공부라고 생각하면 오히려 노력은 덜 하게 된거죠. 중요한것은 생각해보면 학교에서 학생 모두에게 일괄적으로 시키는 공부방법이 나한테 100% 맞는 방법일리가 없는데, 내 향후 인생의 청사진과 여태까지의 노력의 결과물이 달린 수능을 앞두고도 그냥 시키는대로 하고 있는것이 사실 말이 안되는건데, 그냥 그렇게 해온 흐름속에 있었기 때문에 그게 문제라는데 사고가 도달을 못한거고, 그걸 불안감과 이질감덕에 깨닫고 고쳤다고 하면 될까요.

다만 본문에서 하고자 하는 얘기가 그냥 단순히 멈춰서 숨고르기를 하자는 얘기는 아닙니다. 그것은 제가 깨달음은 얻은 동기와 깨달음으로 인해 얻은 당장의 이득일뿐이고, 중요한것은 그 깨달음 자체라고 생각해요. 게임으로 비유해주셨는데, 롤로 치면 넥서스가 생겨나고, 챔피언이 다섯이 나오죠. 500원을 가지고 템을 사서 라인에 가면 1분 15초에 미니언이 나오고, 정글몹이 리젠되고, 몇번의 일반 미니언 웨이브 다음에 대포 미니언이 나오고, 정해진 시간 드래곤 전령, 바론이 리젠되고, 6레벨이 되면 챔프들이 궁극기를 찍고... 타워를 깨고, 한타를 하고 돈을 벌어 템을 사고 강해져서 한쪽의 넥서스가 깨지고 게임이 끝날때까지

단순히 게임 플레이가 순간순간 단편적으로 이루어지는게 아니라, 단순히 모르가나 Q 날아오면 무빙으로 피하고 무빙으로 못 피하면 플을 써서 피하는 단순한 순발력 싸움이 아니라 위에서 말한 게임의 전체적인 흐름에 의해 이뤄지는것임을 깨닫는게 중요하다는 얘기입니다.

그걸 깨달아야만 잠시 멈춰 생각했을때 내 플레이가 무슨 문제가 있는지 아닌지 알 수 있지 그냥 M키 누르고 맵을 살펴본다고 해서 흐름을 이해하지 못했는데 안 보이던게 보일리는 사실 만무하다고 생각합니다.

바론 젠이 1분 남았는데 리스폰 타임이 30초도 안되는 상대 서포터 끊으려고 원딜로 점멸 힐을 다 쓰고 나서 바론 한타때 브루저에 물려 진다음에 '난 잘했는데 우리팀이 브루저한테서 날 못 떼주네' 하고 생각하는게 바로 흐름을 이해하지 못한 대표적인 플레이가 되겠네요...
정신건강의학
18/04/16 00:27
수정 아이콘
좀 더 확실하게 이해되었습니다. :) 감사합니다. 타성에 이끌려서도 목표를 이룰 수 있으나 좀 더 완벽한 방법으로 좀 더 확실하게 목표에 도달하는 길을 선택하신 거로군요.
인생의 목표에 있어서 대학입시보다 어려운 과제에 도전할 때에도 고등학교 시절 익히신 그 자세가 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추가로 질문드리고 싶은 것은 저는 고등학교 당시 브린스님과 어떻게 보면 반대로 행동을 했는데 그것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시나 궁금합니다. 즉 저는 제가 원하는 과에 이정도면 합격하겠다 수준이 된 순간 모든 야자를 끊고 집에서 놀았습니다. 불안함 때문에 타성에 젖어서 공부하기 보다는 이정도면 충분하니 실력 유지만 하면서 놀겠다라는 마음가짐을 가지고 그걸 실행했었는데 결과는 다르지만 이것도 비슷한 사고 회로에 의한 행동이라 볼 수 있을가요?
VrynsProgidy
18/04/16 01:04
수정 아이콘
(수정됨) 저는 원하는 분야의 공부에 보통보다 흥미를 많이 느끼는 타입이지만, 대신 말초적인 즐거움 역시 보통보다 상당히 크게 탐하는 쾌락 역치가 낮은 타입의 인간이라서, 집에서 노는게 공부하는것보다 훨씬 더 좋습니다.

즉 제가 안 놀고 공부를 하고 있다면, 공부로 인해 얻을 수 있는 미래가치가 지금 공부안하고 놀아서 얻을 수 있는 즐거움의 증가분과 비교했을때 더 중요하다는 판단을 스스로 내렸다는뜻이겠죠.

당시의 정신건강의학님도 저와 마찬가지로 노는게 더 좋은 사람이라면, 시키는 대로 야자해서 공부해서 얻어갈 수 있는 가치 (입시 과정에서 더 좋은 결과를 낼 수 있는 확률이 오르는 것이 되겠죠.) 와 당장 집에서 놀때의 얻을 수 있는 즐거움의 가치를 천칭에 달았을때, 후자가 더 무거우니 때려치고 집에서 놀게 되신것일테고, 그 선택은 기본적으로는 적어도 정신건강의학님 스스로에게는 올바른것일겁니다. 천칭이 고장났거나, 아니면 애초부터 평형이 어긋나 있었거나, 너무 놀고 싶어서 천칭이 어디로 기울었는지를 아예 외면했거나 ( 의외로 상당히 많은 가치 비교 실패 문제가 이 케이스에 속합니다. ) 지금 비교해야 할 가치가 아닌 불순물이 천칭에 슬쩍 매달려 있는게 아니라면요.

본문에서 말한 삶이 흐름임을 인식하는것은, 이러한 '의사 결정의 천칭'의 평형을 맞추고 불순물을 덜어내는 과정에 도움이 되는 요소 중 하나라고 생각하는데, 그때 내린 결정이 정말로 노이즈가 끼지 않은 판단에 의한것이었는지는 사실 제가 얘기할 부분은 아닌거 같아요. 정신건강의학님이 그렇게 생각하신다면 그런거고, 아쉬운 부분이 있다고 생각하시면 뭔가 잘못된것이 있던거겠죠. 스스로가 훨씬 더 잘 알고 계실거라고 생각합니다.
18/04/16 00:12
수정 아이콘
타성을 극복하고 자율을 택하셨는 데, 20대 이전 임에도 불구하고 대단하시네요
켈로그김
18/04/16 00:33
수정 아이콘
동감합니다..
자기자신을 풀와이드샷으로 돌아보지 못한다는건 미니맵 안보고 라인전하는거(..)

한가지 이유를 굳이 더 추가하자면,
흔히 '도전' 이라고 하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할 때의 본능적인 거부감과 고독감을 다스리는 데도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관성' 이라고 하는 강한 힘을 때로는 긍정적으로 이용하기도 하고, 때로는 저항하기도 하는데
때로는 현재의 내가 가진 용기만으로는 역부족일 때가 있습니다.
VrynsProgidy
18/04/16 06:28
수정 아이콘
예, 실패에 조금 더 의연해질 수 있는것과 더불어 말씀하신대로 무언가 도전하는데에도 확실히 도움이 되는것 같아요. 저는 한번 망했지만 ㅠㅠ
22raptor
18/04/16 01:08
수정 아이콘
저는 회사에서 문제해결 할 때 본문과 비슷한 방법을 자주 씁니다. 한쪽으로 답을 찾아가다가 답이 잘 안나올 때 맞다고 가정했던 전제조건들을 다시 거슬러 돌아오면서 부정해보다보면 어느새 출발점으로 돌아올 때도 있고 중간 어딘가에서 전체 흐름을 다시 조망하다보면 많은 경우 결국 해법이 찾아지더군요.
18/04/16 01:27
수정 아이콘
저는 항상 그럴 때면 생각지 않던 새로운 국면으로 삶을 진행시킬 때더군요. 이유를 생각해 보면 우리 자신의 흐름이 모든 면에서 만족스러울 수가 없는데 문득 그 흐름을 느끼는 순간 그 방향을 틀어버리겠다는 강한 생각이 솟아버리는 것 같습니다. 삶을 공격적으로 만들고자 할 때 이런 조망이 좋은 것 같습니다. 그 선택의 결과는 차치하고서 말이죠.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VrynsProgidy
18/04/16 06:27
수정 아이콘
말씀대로 저런 생각이 자연스럽게 든다면 말씀하신대로 삶의 전환국면을 은연중에 느껴서 그랬을 확률이 높죠. 스케일은 작지만 저도 그랬구요. 다만 저는 저 이후엔 그런 일이 없어도 몇개월에 한번 정도는 휴가를 내고 제가 가장 편안하게 느끼는 장소에서 의도적으로 흐름을 느끼면서 명상을 하곤 합니다. 제겐 확실히 도움이 되더라구요.
18/04/16 10:25
수정 아이콘
이센스의 '독'이 생각나는 글이네요. 잘 읽었습니다. 가끔은 이렇게 멈추고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18/04/16 10:57
수정 아이콘
악동뮤지션의 노래가 잘 어울릴것 같네요
트와이스정연
18/04/16 11:40
수정 아이콘
철학적으로 흥미로운 질문이 있습니다.
잠을 자기 전과 나와 자고 깬 나와의 연속성을 어떻게 증명할 것인가.
가령 신이나 악마가 와서 착각하게 만든 것일 수도 있죠... 잠이라는 의식 끊김이 있으면 엄밀하게 삶은 연속적이지 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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