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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7/10/08 02:49:36
Name 미스터H
Link #1 본인
Subject 어떤 목사님에 대한 소회. (스압) (수정됨)
본문은 유머 게시판에 올렸던 글을 바탕으로 합니다.

학창시절 가요를 거의 듣지 않고 지냈습니다. 대단한 이유가 있던건 아니고 집에서 TV를 잘 못봤어요...
어릴적 개척 교회서 신앙생활을 하느라 집에 붙어있을 시간도 별로 없었고요.
정말 유명한 히트곡도 멜로디나 기억하지 잘 못불러서 동년배 회식자리나 모임에서 갑자기 분위기 싸해지고...가 한두번이 아니었습니다.

그렇다고 음악을 듣지 않은건 아니에요.

교회서 이런저런 이유로 어긋나기 시작하면서 찾아들은 음악이 있습니다.

록.

사탄의 음악이라 하죠.

서태지와 아이들 교실이데아에서 피가 모자라 백마스킹이 있다고, 이런 사단의 음악을 들을수 있나 하며 용돈으로 모은 앨범을 부수고 태우고 하던 것 부터 락커들이 하나님을 믿지 않고 마약과 문란한 성관계 그리고 자살로 얼마나 불행한 삶을 살았는지, 그러니까 그런 음악 듣지 말고 찬양이나 찾아들으라는 이야길 들을때마다 저는 록 음악을 찾아들었습니다.

그렇다고 제가 무슨 순혈 메탈 그런걸 들은건 아니고... 90년대 후반부터 불어닥친 뉴메탈의 향연에 그냥 빨려들어간거지만요.

콘의 조나단 데이비스가 한을 절규하며 노래하는것도 좋았고 프레드가 림프비즈킷에서 한바탕 난장판 벌이는것도 좋았습니다.
머드바인의 채드 그레이가 구토 하듯 쥐어짜는건 자장가였고 데프톤즈의 치노가 가장 터프한 음색일때 귓가에 몰아치는 폭풍은 생명수였어요.

슬립낫의 코리 테일러는 천국을 이 세상에서 만난 기분이었습니다.

- 나는 음악에 감사하고 있다. 음악이 아니었다면 살인자가 되었을테니까.

이게 슬립낫 멤버인 #5 크레이그 존스의 발언이었는데, 그냥 밴드 이미지에 맞게 가공한 약간 과한 립서비스에 불과했지만 당시 학교서든 집에서든 교회서든 있을곳을 찾지 못하던 저는 비슷하게 말 할수 있습니다.

- 나는 음악에 감사하고 있다. 음악이 아니었다면 죽었을테니까.

잡설이 길었는데 외국 밴드만 찾아서 들은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국내 보컬들은 왠지 약하게 들렸어요.  김경호의 쩌렁쩌렁한 고음과 샤우팅도 박완규의 끝도 모르는 고음도 김종서의 선율도요.

심지어 가사까지 제 속을 긁어주지 못했죠.

그런 상황에서 우연히 알게 되어 팬이 되었던 것이 닥터코어 911이었습니다.


NBA매니아의 라이오라님이 적어주셨던 부분을 인용하자면, 

라디오 방송등에서 DJ 들이 종종 했던 말이

"신청곡으로 닥터코어 911 의 음악을 신청해주시는 분들이 정말 많은데, 이 밴드의 가사는 방송 불가이기 때문에 틀어드리지 못해 아쉽다."

였습니다.

아직 정식 데뷔를 하기도 전 이미 인디씬의 HOT 소리를 듣는 밴드였고, 1집은 상당히 수위가 있었고 직설적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게 제 귀에 꽂혀서 헤어나지 못하게 했죠. 





세기말과 비관과 세기 초의 낙관이 섞였다고 해야 할까요.

터뜨릴때 터뜨리고 그렇다고 자포자기 하지 말고 저리 앞으로 꺼지라는 식의 재기발랄한 구성과 메시지도 좋았지만 전 그 중에서도 문이경민의 보컬이 너무나 좋았습니다.

클린 보컬과 그로울링을 하는거야 누구든 할수는 있을겁니다. 하지만 그걸 잘 하긴 정말로 어렵죠.

스키조의 허재훈이나 레이니썬 정차식등 이쪽 계열에서 좋은 보컬을 들려주신 분들이 많지만 절정기의 문이경민은 앞서 말씀드린 해외 유수의 보컬들과도 견줄수 있는 그루브함과 파워를 갖췄다고 생각합니다.

이제는 볼수 없는 경인방송의 영상중에서 제일 아쉬운게 폭발적인 무대 매너로 한시도 쉬지 않고 무대를 달리며 웃는 얼굴로 이걸 완창하던 문이경민을 볼수 없다는 거에요.



이박사 수준의 반짝이 자켓 걸치고 뛰던거에서 카타르시스까지 느껴졌었죠...

하지만 그렇게 제 귀에 오르가즘을 선사하던 닥터코어 911은 정규 1집 발매후 얼마 버티지 못하고 사라졌습니다.

기타리스트 답십리안(지금 서태지 밴드의 TOP)은 서태지 밴드로, 랩퍼 지루는 퍼필, 베이스 쇼기는 가수 자두쪽으로 갔고 문이경민은 자기 밴드 디스코트럭을 또 결성해서 활동했죠.

나쁘지 않았지만 디스코트럭이 워낙 다양한 음악이 결합한 크로스오버적 예술(...)이라 그렇게 좋아하진 못했고요.






그렇게 기억속으로 사라지나 했던 문이경민의 보컬이었는데... 

제가 막 군대를 제대했을 무렵인 07년에, 같이 이쪽 음악을 좋아하던 대학 동기가 숨넘어가는 목소리로 제게 알려주었습니다.

합쳤다고요.

전 서로 깨진 뒤로 말도 안하고 살던 동아리 선배 커플이 재결합이라도 했냐, 그 축하로 오늘도 술먹어야 되냐고 물어봤는데 동기는 제 머리를 후려치고 들뜬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닥터코어가 재결합했다고 말입니다.








그 전만큼 공격적이지도 않고 그 전처럼 악동같지도 않았지만 08년 2집을 낸 닥터코어는 역시나 닥터코어 다운 음악으로 저를 즐겁게 했습니다. 

청소년기와 20대 전반을 함께한 교회를 떠나고 다른 곳에서 신앙생활을 하면서 더 이상 저도 그저 속앓이만 하던 아웃사이더도 아니었으나 문이경민의 보컬은 기억 그대로였고 여전히 힘이 넘치고 그루브 했어요.

또 그것만이 아니라 음악을 하며 한결 더 성숙한 그들의 음악은 절규하지 않는데도 그 전마냥 속을 또 긁어내더라구요.






이때만 이런 음악을 한것도 아니지만요.





그리고...

다시 닥터코어는 활동을 접었습니다.

문이경민은 소식을 들을수 없었고, 2012년에 두산 응원가로 목소리를 들을수 있었지만 그것뿐이었죠.

저도 학교를 졸업하고, 취직을 하고, 그렇게 어느 순간 록을 듣지 않게 되었습니다.

불나방스타쏘세지클럽의 알앤비에서 절절히 이야기하는것처럼 설리에게 빠지진 않았지만 수지한테 빠져서 배드걸 굿걸 다른 남자 말고 너 소리나 하고 있었으니까요. 

그 때 느꼈던 고민을 하기엔 전 이미 너무 나이를 먹었고, 그리워 하면서도 잊어 갔던것 같습니다.

그러다 어제 잠깐 다시 들으려 검색하다가...

갑자기 제가 뭘 잘못 찾은 줄 알았어요.



두근거려서 갈빗대가 부서질 것 같았습니다.

유게에도 적었지만 세숫대야로 뛰어들어가 세수를 세번쯤 하고 정신을 차리기 위해 핫식스도 한캔 먹고 난 뒤에야 제가 기억하는 얼굴 그대로라는걸 확인했습니다.

12년 이후 신학대로 가셔서 목회자의 길을 걷기로 하시고, 현재 졸업 후 결혼까지 하시고 음악 목사로 안수를 받으셨더라구요.

제가 기억하던 시크하고 매력 넘치던 최고의 보컬이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 교회라는 곳에서 사역을 하고 있다니까, 교회에서 어긋나면서 방황할때 끈이 되었던 가수가 찬송을 부르고 있으니까 묘한 기분이었는데...

그런데 또 곰곰히 생각해보니 제가 판단할 일도 아니고, 또 목사로서 그리고 음악인으로서 잘 지내고 있으신게 기뻐하고 감사해야 할 일 이죠. 
안산에 몇장의 앨범을 가지고 한번 찾아뵐까 해요.

음악을 해 주셔서 감사하다고요.


ps. 


그냥 생각난 김에 글을 쓴거라 중구난방인데, 이 글을 쓴 이유가 있습니다.

신학의 길을 걷게 되신 후 조용한 찬송만 하고 계시는 영상만 발견해서 범이 풀을 뜯는 꼴이라 한탄했는데, 찾다 보니 전 닥코 베이시스트 쇼기와 작업하신 작업물이 있더라구요.

https://soundcloud.com/kyung-min-abel-moony/tiger-at-rock

https://soundcloud.com/kyung-min-abel-moony/light-the-fire

CCM이라도 너무 좋아서 같이 듣자고 쓴겁니다. 크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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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택
17/10/08 02:55
수정 아이콘
음악하는 사람들이 재야에서 실력 키우기에 교회만한 곳이 없어서, 교회 다니다가 뮤지션이 된 경우는 봤어도,
반대 경우는 생전 처음 보네요. 덜덜덜덜 (게다가 락인데 ;;;)

이제는 심장이 맘껏 뽐삥하는 10,20대가 아닌지라, 헤비한 음악도 안 받고,
교회다니지만 CCM의 방향성이 그닥 맘에 들지 않아, CCM을 듣지 않지만, 한번 잘 들어보겠습니다.
(라고 했는데, 이 CCM은 대체 ;;; Creed 처음 들었을 때보다 더 충격... 덜덜)

정보 감사합니다. 덜덜
미스터H
17/10/08 03:01
수정 아이콘
들어주시기까지 하셨으니 제가 더 감사하죠. 크크. 그나저나 사운드 클라우드가 iframe을 embed로 바꿔도 이상하게 게시물에 써지지 않네요. 피지알만 이런걸까요?
17/10/08 10:29
수정 아이콘
영알못인데 ccm맞나요 크크
록키의 아이즈오브타이거같은데이거
미스터H
17/10/08 12:48
수정 아이콘
(수정됨) 저도 영알못인데 맞습니다 흐. 리프라던가 가사라던가 아무래도 거기서 영향 받은것도 맞는거 같구요 그래도 이양반이 풀만 뜯었어도 내면의 야성을 보여준게 너무 좋아서요 크...

(13:11 수정) 좀 더 찾아보니 이거 리메이크 맞네요 크크크크크크크 다른것 보다도 영화 전설의 주먹에서 OST로 한번 쓰인거 같아요. 팬으로서 이걸 몰랐던게 부끄럽습니다. 흑흑...
운동화12
17/10/08 03:04
수정 아이콘
좋은글 감사합니다 반전 덜덜
미스터H
17/10/08 03:10
수정 아이콘
읽어주셔서 제가 감사합니다. 저도 어제 상당히 놀랬어요. 흐...
17/10/08 03:14
수정 아이콘
나이가 나를 먹어가네 플레이리스트에 아직도 있긴한데 이제 그 노래 듣는게 점점 무서워지네요 흑흑
미스터H
17/10/08 03:18
수정 아이콘
같이 우시죠... 흑흑...
17/10/08 09:38
수정 아이콘
유게에서도 유심히 읽었습니다. 닥터코어911 좋아하던 사람들이라면 정도는 달라도 조금씩은 충격이지 않을까 합니다. 저 또한 비정산조 시절부터 열심히 듣고 재결성 이야기에 기뻐하던 사람인지라 아주 묘한 기분이네요. 개인적으로는 범이 행복하다면 풀을 뜯어도 해피엔딩이라 생각합니다. 멤버 각자 어느 길을 가든 좋은 일 있길 바랍니다.
미스터H
17/10/08 12:50
수정 아이콘
말씀 감사드립니다. 범이 행복하다면 누가 뭐라해도 해피엔딩이겠죠. 저도 다들 좋은일만 있었으면 해요. 그게 더 기쁠테니까요.
17/10/08 10:20
수정 아이콘
오... 영화한편 본 것같은 글이네요..
잘 읽었습니다. 주말 아침 꿀잼
미스터H
17/10/08 12:50
수정 아이콘
즐겁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나저나 사운드 클라우드 공유가 왜 안되나 했더니 로그인한 사클 유저한테만 공유가 되는가봐요(TT)...
Faker Senpai
17/10/10 12:37
수정 아이콘
엄청난 반전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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