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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4/10/04 13:35:34
Name 눈시BBv3
Subject 임진왜란 해전사 - 5. 성군을 속인 것이 되었네


간단요약
저번 편에서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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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를 편안히 하고 종묘사직을 안정시키는 일에 충성과 능력을 다하여 죽으나 사나 그렇게 하리라."

1593년, 계사년 일기 뒤에 나오는 그의 각오입니다. 그 외에 여러가지가 있는데... 완역본을 사서 봅시다 ^_^) 결론은 나라를 위해 적을 무찌르겠다는 각오들이죠. 하지만 1594년 갑오년에 보면 조금 달라집니다. 그 동안 일어난 일들을 살펴보면 참... 보는 입장에서도 짜증나는 일의 연속이죠.

강화회담을 통해 일본군은 서울에서 철수했고, 조명연합군에게는 추격금지령이 내려집니다. 수군에게도 마찬가지였죠. 하지만 선조는 따로 4월 중순에 싸우라는 명령을 내렸고, 이순신은 5월 초에 받아 이억기와 합류해 경상도로 출진합니다. 이후 명의 경략 송응창이 금지령을 해제하면서 본격적으로 출동하죠. 이 때부터 전라수군은 한산도를 전진기지로 이용하기 시작합니다. 거제도의 서쪽에 자리잡고 견내량을 틀어막는다는 계획이 본격적으로 나온 것이죠. 이 때 충청수군도 계속 지원오게 해 달라고 두 번 요청해서 충청수군도 합류하게 됩니다.

하지만 성과는 없었습니다. 아니 견내량을 넘어 출동할 수가 없었죠. 6월 말이 되면서 7~800여척의 적이 부산에서 웅천으로, 다시 거제도 북쪽으로 진격해 옵니다. 차마 견내량 안으로 들어오진 못 했지만, 이순신 역시 나가지 않습니다. 대신 견내량을 넘어오거나 육지에서 도발해오는 적을 상대해주는 정도였죠.

선조가 이순신에게서 등을 돌리기 시작했다면 아마 이 부분부터일 겁니다. 적이 부산에서 거제도 등으로 계속 오고 있는데 견내량만 틀어막고 있었으니까요. 일단 원균의 '흉측한 말'이 이때부터 줄기차게 나옵니다. 이 시기 견내량 북쪽에선 적이 계속 나오고 있었고, 육지에선 진주성이 함락됩니다. 원균이 아주 좋은 기회를 잡은 거죠. 뭐라고 했겠습니까. 나가자고 닥달하면서 안 간다 하면 니놈은 겁쟁이다고 했겠죠.

대체 원균이 어떤 짓들을 한 건지, 이순신은 어떻게 욕 한 건지 궁금하시면... 난중일기를 봅시다 ^ -^)
http://www.yes24.com/24/goods/1812307?scode=032&OzSrank=1
이왕이면 완역본으로 봅시다 ^ -^)

그렇게 윤 11월, 선조가 휴식 명령을 내립니다. 참으로 오랜오랜 출동이었습니다. 눈에 보이는 소득은 없었지만요. 일본군이 경상도에 밀집된 상황, 조선 수군을 상대하기 위해 수백척을 일시에 동원할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거제도 북쪽부터 동쪽은 모두 일본군의 것이 돼 있는 상황에서 함부로 배를 몰고 갈 수 없었죠. 거기다 출동한 사이 좌수영 소속 고을에서 헛소문이 퍼져서 백성들이 불태우고 달아나는 일까지 벌어집니다. 군량문제가 더 심각해진거죠. 한편 이순신이 주장하는 수륙협공은 더 어려웠습니다. 정유재란 때 울산성 전투와 사로병진 작전을 생각하면 말이죠. -_-a 에휴. 해가 흘렀는데도 일본군은 돌아가지 않았고, 조선인들은 다 어떤 식으로든 애가 타고 있었을 겁니다.

이런 상황에서 일본군이 그 대군을 이끌고도 조선 수군이 무서워서 견내량 남쪽으로 가지 못 한다는 것에 신경쓰는 조선인들이 얼마나 됐겠습니까. 오히려 수군이 견내량 북쪽으로 못 가는 것만 욕 하고 있었죠. 아 수군 내에서도 그런 사람이 한 명 있군요.

이 해 8월에 삼도수군통제사를 임명받습니다. (이순신에게 도착한 건 10월 1일이었죠) 그 때까지 품계는 이순신이 더 높았지만 원칙적으로 수사들은 동등한 입장이었죠. 이로써 이순신은 원균과 이억기, 충청 수사에게 상관으로서 명령을 내릴 수 있게 됐습니다. 하지만 원균은 상관이고 뭐고 하는 놈이었으니... 한편으로 경상도의 바다에 접한 고을을 가지고 수륙군 사이에 갈등이 있자 도원수(권율)에게 수군도 지휘하게 하면서 수륙군간의 우열을 명확히 가릅니다. 이는 나중에 도원수 권율이 통제사 원균의 곤장을 치는 일로 이어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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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4년, 이순신은 설을 고향에서 보냅니다. 더 있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죠. 어머니도 그걸 알고 '잘 가거라. 부디 나라의 치욕을 크게 씻어야 한다'고 타일렀고, 아쉬운 심정을 드러내지 않았다 합니다. 그 어미에 그 자식이죠. 그렇게 1월 중순, 이순신은 한산도로 다시 나아갑니다. 오자마자 소비포 권관 이영남에게서 경상우수군이 굶어 죽어간다는 이야기와 원균이 눈독들인 여자들이랑 다 했다(...)는 이야기도 듣게 되죠.

2월이 되면서 적에 대한 첩보가 들어옵니다. 3월 3일부터 출동을 개시하죠. 조방장 어영담에게는 각 수군에서 뽑은 30척을 주어 원균과 함께 진격하게 했고, 본대도 진해까지 진격합니다. 어영담과 원균-_-은 진해 부근에서 도합 8척을 깨뜨렸고, 당항포에서 적선 21척을 불태우고 왔구요. 2차 당항포 해전입니다. 그 외에 두 척을 더 깨뜨린 모양이구요. 하지만 3월 6일 퇴각하게 됩니다. 명군 2명과 일본군 8명이 담종인이 보낸 금토패문을 들고 왔거든요. 적을 치지 말라는 거였습니다. 이거 참 뭐 하는 짓인지. 그 고생과 스트레스 때문인지 전염병이 옮은건지 3월 23일까지 병으로 고생합니다. 그리고 원균은 이 해전에서 깨뜨린 31척을 모두 경상우수군의 활약으로 둔갑시키구요 -_-

그 후로도 머리 아플 일의 연속이었습니다. 저번 편에서 쓴 전염병으로 큰 피해가 났고, 어영담까지 병사합니다. 충청 수군은 오지 않았고, 원균은 여전히 난리치고 있었죠. 수군에게 휴가를 달라는 장계를 보냈지만 나라에서는 세자가 전주에 와서 과거를 치르니 수군에서도 인재를 보내라는 명이나 내립니다 (...) 이 때 이순신은 수군만은 수영에서 따로 치게 해 달라고 요청하죠. 그런 가운데서 여름이 왔고, 또 다시 큰 피해를 입게 됩니다. 의원을 보내달라는 요청이 참 서글픕니다.

+) 나중에 선조는 저 과거 보는 문제 가지고 '세자가 여러번 불렀는데 오지 않았다'면서 이순신을 욕하는 이유로 삼습니다요 ㅡ.ㅡ

강화회담이 진행되면서 명군은 점차 철수하고 있었습니다. 윤두수는 이 참에 조선군이 단독으로 적을 공격하자고 주장하죠. 나름대로 뜻은 장했습니다만, 당시 조선군의 상황은 그게 못 됐죠. 윤두수 자신도 이렇게 말합니다.

"이기면 하늘이 도와준 것이고 이기지 못해도 종묘 사직에 오히려 할 말이 있을 것입니다."

비변사에서는 작전을 취소하자고 요청했고 선조가 받아들이지만 이미 작전은 시작되고 있었고, 비변사에서도 이렇게 된 김에 한 판 해보자고 태도를 바꿉니다. 선조는 '우리가 점마들 이길 가능성이 있긴 하겠나. 뭐 하늘에 걸고 함 해 보자." 뭐 이런 뜨뜻미지근한 태도를 보입니다. 하지만... 9월에 내린 비밀 유지를 보면 선조의 진심을 알 수 있죠.

"수군과 육군의 여러 장수들이 팔짱만 끼고 서로 바라보면서 한가지라도 계책을 세워 적을 치려고 하지 않는다."

9월 3일, 이 유지를 받은 이순신은 '절대로 그럴 리가 없다'면서 일기에 억울함을 구구절절이 적고 있습니다. 열심히 하고 있지만 적이 험한 소굴에 웅거해서 할 수 없어서 그럴 뿐이라고요. 여기에 지피지기면 백전불태라는 유명한 말도 덧붙이면서요.

선조는 참 똑똑한 인간입니다. 이기기 힘들다는 걸 모를 리가 없었죠. 그럼에도 싸우기 바랐을 겁니다. 자기한테 충성한다는 걸 보여달라는 거죠.

이순신에게만 이게 갔을 것 같진 않습니다. 윤두수가 단독으로 공격하자는 것도 이런 선조의 마음을 알아서 그랬겠죠. 네, 자고로 신하된 자는 어심을 읽어야 하는 거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윤두수의 장기말은 원균이었습니다.

9월 26일, 육지에서 병력이 거제도로 건너옵니다. 곽재우와 김덕령이었죠. 이들이 이끄는 병력은 8백여명, 그 외 별초군 천수백여명을 박종남과 김경로가 지휘했고, 기타 350명 정도가 지원옵니다. 이순신은 50여척을 이끌고 이들을 맞죠.

문제는 장수들에게 제대로 된 명령이 없었다는 겁니다. 이순신은 왜 이들이 왔는지 몰랐고 곽재우와 김덕령 역시 적 성을 친다는 것 정도만 알고 있었고, 스스로도 자신 없어 했습니다. 병력도 적었고, 상대는 험한 성에 틀어박혀 있었죠. 그것도 백년간의 전국시대의 노하우가 집약된 왜성에서요.

+) 난중잡록에는 곽재우와 김덕령의 대화가 나와 있는데, 곽재우의 결론은 '김덕령의 용맹을 시험하려는 것이다'였습니다. 때문에 괜히 공격하면 안 된다는 결론을 내리고 퇴각을 세 차례 건의했지만 거부당합니다.

신이 난 건 원균이었습니다. 가장 먼저 올라온 보고가 10월 8일 원균의 장계였죠. 수군 40여명을 곽재우에게 합류시켰고, 배 두 척을 태워버렸다고 합니다. 그 외에 이광악이 숨어있던 적 한 명을 생포해왔다는 정도죠.

+) 이 때 장계의 마지막이 이상합니다. 이순신에게 한산도로 돌아가라고 했답니다. 상관한테 명령을 한 겁니다. 자기가 온전히 공을 가지고 싶었나 봅니다. 전투가 끝난 후에도 자기가 직접 장계를 올리겠다 하고 이순신이 허락한 걸 보면 애초에 말이 돼 있었나 봅니다. 원균이 주도한 작전이고, 원균 뒤에는 윤두수가 있었으니까요.

선조는 고백 후 답장을 기다리는 남자처럼 안 될 거야 안 될 거야 하면서도 보고를 기다립니다. 하지만 결과는 실망스러웠죠. 적은 성문을 굳게 걸고 나오지 않았고, 기껏해야 작은 배로 기습, 판옥선 한 척에 불을 지르는 정도였습니다. 10월 6일에는 적이 '명과 화친하고 있으나 서로 싸울 일이 없다'는 패문을 꽂아놨구요. 이런 상황이 되자 곽재우와 김덕령은 철수했고, 수군 역시 이틀간 더 있다가 돌아옵니다.

이렇게 별 소득 없이 끝난 장문포 전투는 11월 말에 다시 점화됩니다. 경상도 관찰사 홍이상의 장계 때문이었죠. 홍이상 소속 포수들이 지원갔다와서 말했는데 이상한 점이 드러난 겁니다. 사도 소속 판옥선 한 척이 한 번 불 탔다가 다시 공격받아서 아예 타버렸고 병사도 전멸했으며 사후선 3척이 실종됐다는 거였죠. 또한 수군 1백여명이 상륙했다가 적 50여명이 돌격해와서 도망쳤는데 사상자가 많았구요. 여기다 이광악이 잡았다는 적은 애초에 항복하기로 했던 적이라는 거였습니다.

홍이상 쪽의 거짓으로 보기엔 또 하나가 더 있다는 게 문제죠. 당시 왜성을 지키던 시마즈 가문의 기록 '정한록'에는 후쿠시마 마사노리가 병력을 보내서 판옥선 한 척을 불태웠다고 돼 있거든요.

이걸 주도한 게 원균이니까 원균이 하는 짓이 다 그렇지라고 치부할 수 있겠지만... 이게 정말 권율과 이순신도 알고 있었다면 확실히 피해 축소로 말 맞춘 것일수도 있죠. (난중일기엔 불 붙은 거 껐다까지만 나옵니다) 일단 불 탄 판옥선은 전라좌수영 소속이니 불 탄 게 맞다면 이순신이 모를 순 없거든요. 한편으론 홍이상 쪽의 피해 과장과 정한록의 전공 과장이 우연히 맞아떨어진 것일수도 있겠구요. 제 결론은 아래에서 다루겠습니다.

이 일로 전투를 주도한 삼도 체찰사 윤두수가 파직당하고 사간원에서는 권율과 이순신에게도 벌을 줘야 한다고 일주일 가까이 주장했지만 선조는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이 때 선조는 '자기가 따로 들은 것과도 맞아떨어진다'면서 장수들이 서로 합심해서 자신을 속이고 있다고 말했죠. 뭔가 의미심장합니다.

그리고 이런 탄핵이 진행되던 11월 12일, 이순신과 원균의 불화에 대한 논의가 처음으로 기록돼 있습니다. 그 다음엔 28일에 논의가 있었는데 이 때 선조는 이렇게 답합니다.

"나의 생각에는 이순신은 대장으로서 하는 짓이 잘못된 것 같으니, 그중 한 사람을 체직시키지 않을 수 없다. 혹 이순신을 체차할 경우는 원균으로 통제사를 삼을 수 있거니와, 혹 원균을 체차할 경우는 다른 사람을 차출해야 할 것이니, 참작해서 시행하라."

또한 원균의 체직 논의가 본격적으로 나오자 12월 1일 이렇게 말 합니다.

"군율을 범했다고 말한다면 유독 이순신만은 군율을 범하지 않은 사람인가. 나의 생각에는 이순신의 죄가 원균보다 더 심하다고 여겨진다. 원균을 병사로 삼아서는 안 된다는 그 주장을 나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참작해서 시행하라"

+) 이게 장문포 전투 탄핵 중에 나온 얘기이니 홍이상이 말한 사건들이 원균의 죄로 결론이 난 듯 합니다. 다시 말해서 선조는 그걸 이순신까지 끌어올리며 원균을 옹호하고 있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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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어디서든 급진과 온건, 강경과 신중의 대립은 일어납니다. 성격이 다른만큼 대립이 심해질 때도 있죠. 아무래도 이기는 쪽은 목소리 큰 놈이죠. 특히 침략받은 상황에서는요. 바라보는 이들 역시 마찬가지였나 봅니다.

1594년 11월, 이순신과 원균의 대립은 극에 달해 있었습니다. 원균을 자를 수 없다면 자기가 그만두겠다는 수준까지 간 것이죠. 하지만 조정에서 보는 눈은 싸늘했습니다.

이순신에 대한 여론이 그리 나쁜 건 아니었습니다. 문제는 원균에 대한 여론이 너무도 좋았고, 둘의 대립을 그저 전공다툼으로 봤다는 것이죠.

비변사에서는 지속적으로 원균을 바꿔야 된다고 주장했습니다. 원균 편이었던 김응남도 처음엔 그저 둘을 달래자고 했다가 곧 '부득이' 원균을 바꿔야겠다고 태도를 바꾸죠. 하지만 선조는 위와 같은 말을 하면서 반대합니다. 대신들의 태도도 이런 선조의 태도에 따라갔죠. 이순신과 원균이 공이 같은데 상이 달라서 원균이 불만을 품었다, 둘 다 명장인데 화목하지 않으니 어쩔 수 없이 바꿔야 된다는 식으로 말입니다.

비변사에서 원균을 지속적으로 지목한 걸 보면 선조는 몰라도 신하들 사이에서는 원균의 문제로 결론이 난 것으로 보입니다. 선조가 고집부리고 있는 것이죠.

하지만 꼭 선조 때문만은 아닐 겁니다.

수군이 연전연승했습니다. 그 주인공은 이순신이었죠. 그래서 품계도 제일 높게 주고 통제사도 시켜줬습니다. 그런데 너무나도 소극적인 모습만 보여주고 있죠. 반면 원균은 계속해서 싸우자고 싸우자고 하고 있습니다. 이런 걸 보면 원균은 임진년 초반에 실수는 했을지 몰라도 싸우려는 모습이 가상하고, 이순신은 능력은 있을지 몰라도 겁쟁이인 모양입니다.

어라 그렇다면 임진년 초반의 승전은 어떻게 된 걸까요? 아하 정운이 협박해서 겨우 나온 거라 합니다. 그리고 원균이 울고불고 빌어서 겨우 왔고, 배는 비록 적어도 수급을 잔뜩 보내는 걸 보면 정말 열심히 싸우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순신은 뭐 해서 수급을 못 챙겼네 뭐 해서 나갈 수가 없네 이러고나 있습니다.

당파싸움에 의한 갈등, 선조의 생각에 맞춰주는 것도 생각은 해야겠지만 결국 원균이 강경파라는 게 컸을 겁니다. 선조에게도 이게 가장 컸겠죠. 이렇게 마음이 돌아선 이상 이순신이 원균을 욕하는 건 그저 이순신의 모함이고, 둘의 전공다툼이 될 뿐이구요.

대표적으로 볼 만한 부분이 있습니다.

"이순신이 당초 원균을 모함하면서 말하기를 ‘원균은 조정을 속였다. 열두 살짜리 아이를 멋대로 군공(軍功)에 올렸다.’라고 했는데, 원균은 말하기를 ‘나의 자식은 나이가 이미 18세로 활쏘고 말타는 재주가 있다.’고 했습니다. 두 사람이 서로 대질했는데, 원균은 바르고 이순신의 이야기는 군색하였습니다"

1597년 정유년 초, 한창 이순신 파직이 결정되기 직전의 일입니다. 이덕형은 마치 자기가 본 것처럼 말하고 있죠. 참고로 위 일은 이순신이 잘못 알았다 하더라도 문제입니다. 상피제도라 해서 가족끼리는 저렇게 못 하거든요. 때문에 이순신의 아들과 조카도 수군에 있을 때 아무런 상도 벼슬도 못 받았습니다. 아무튼, 다음 내용을 보시죠.

"이순신의 사람됨을 신이 직접 확인해 본 적이 없었고 한 차례 서신을 통한 적 밖에 없었으므로 그가 어떠한 인물인지 알지 못했습니다. 전일에 원균이 그의 처사가 옳지 못하다고 한 말만 듣고, 그는 재간(才幹)은 있어도 진실성과 용감성은 남보다 못할 것이라고 여겼습니다."

노량해전이 끝난 후, 이덕형의 보고입니다. 결국 위의 말은 들은 얘기일 뿐, 혹은 선조의 말에 맞춰준 것일 뿐이라는 거죠.

자기 PR이 중요한 건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진가 봅니다. 그리고 목소리 큰 놈이 이기는 것도 마찬가지구요.

임진년부터 정유년까지, 이순신에 대한 평가는 의외로 높지 않습니다. 왜 부산포로 가지 않냐는 건 선조만의 생각이 아니었죠. 가령 쇄미록을 지은 오희문 같은 경우도 부산포로 가지 않는 건 겁쟁이라서 그랬다고 적습니다. 난중잡록을 자주 인용합니다만, 여기서도 주관적으로 이순신을 칭찬하는 건 딱히 보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어영담이 끌고 갔고, 원균의 배는 적지만 돌격을 잘 했고, 유인을 할 때 방답첨사 이순신을 버리고 갈 뻔 했고 이런 것들이 보이죠. 이게 웬만한 양반들의 생각이었을 겁니다. 수군이 그렇게 강한데, 힘들더라도 피해가 좀 있더라도 가봐야 되는 거 아니겠습니까? 거기다 임금이 명령하면 그대로 따라야지 뭐 하는 짓이었을까요?

겁쟁이라서 그런 겁니다. 여기서 좀 더 발전시킬 수 있죠. 처음부터 이순신이 잘났던 게 아니라 원균과 정운이 협박해서 온 것이었고, 정운이 죽으니까 겁쟁이로 돌아갔습니다. 원균 혼자 고군분투하고 있는데 이순신보다 아래라서 제 뜻을 못 펴고 있죠. 아니 거기다가 솔직히 우리 수군이 좀 셉니까? 판옥선은 크고 화포는 강합니다. 이러니까 이긴 거지 이순신이 잘난 게 아니라는 거죠.

류성룡마저 이순신을 포기했을 때, 이순신을 계속 옹호했던 건 이원익과 이정형 정도였습니다. 특히 이원익은 한산도에 가서 수군의 상황과 둔전을 경영하는 걸 보고 큰 깨달음을 얻었다 하고, 선조가 계속 원균을 밀어붙여도 반대했죠. 그리고 이순신이 파직당했을 땐 정탁이 나섰구요.

군사들과 백성들에 대해서는 저번 편에서 얘기했습니다. 싸우려는 자는 수급을 얻기 좋은 육군을 선호했고, 싸우기 싫은 자는 수군을 피했습니다. 수군에 가면 몇 달 동안 섬에서 지내야 했고, 도망가기도 힘든데다 섬에 모여있으니 병에 걸리기도 쉬웠습니다. 여기에 물에 빠져 죽으면 시체도 못 건졌구요. 그리고 그렇게 강하면서 왜 부산포로 가서 전쟁을 끝내려 하지 않느냐는 불만은 백성들에게도 마찬가지였겠죠.

이 모든 게 바뀐 것이 칠천량 해전 이후입니다. 선조는 자기 잘못이라면서 빌었고, 양반들은 자기 재산을 털어서 수군을 지원했으며, 백성들은 배를 타고 수군을 쫓아다녔습니다.

원균이 정말 맹장이기라도 했다면? 또 모를 일입니다. 네 피해를 감수하고서라도 적과 싸우는 장수 역시 중요하죠. 그랬다면 원균옹호론대로 '조선의 창 원균, 조선의 방패 이순신' 뭐 이런 식이 됐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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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4년 일기의 뒷부분에는 여러가지가 적혀 있습니다. 특이한 점은 삼국지연의의 내용이 인용돼 있다는 것이죠. (운명을) 피하기 어렵다는 부분인데 제갈량이 죽기 직전 유선에게 올린 유표에 있는 내용입니다. 죽음이 다가오는 상황, 자신의 충정을 다하겠다는 것이죠.

+) 그 외의 인용된 부분에 대해서는 노승석 교수님의 완역본을 봅시다. 오늘 글은 왠지 홍보글 같군요.

그 외에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는 손자병법의 유명한 말이 옮겨져 있습니다. '이는 만고 불변의 정론이다'면서요.

그리고 뒤로 가보면 시가 한 편 있죠. 쓸쓸히 바라보며(蕭望)입니다. 몇 부분만 발췌해보죠.

비바람 몰아치는 밤 맘이 초조하여 잠 못 이룰 적에 긴 한숨 거듭 짓노라니 눈물만이 자꾸 흐르네
배를 부린 몇 해의 계책은 다만 성군을 속인 것이 되었네 (중략) 배를 몰던 몇 해의 계책은 이제 성군을 속인 것이 되었네
중원회복한 제갈량이 그립고 적 몰아낸 곽자의 사모하네

제갈량은 너무나도 유명하고, 곽자의는 안사의 난 등에서 당나라를 구한 영웅입니다. 둘 다 시호는 충무구요.

임진년부터 바쁘게 싸워 왔습니다. 하지만 사방에서 고난이 닥쳐오죠. 그의 몸부터도 그리 성하지 않았습니다. 사천 해전에서 당한 상처는 계속 짓물러서 갑옷을 입을 수 없는 정도였지만, 그러고도 계속 작전을 짜고 한산도 대첩 등 승전을 계속 거뒀죠.
그렇게 싸웠건만 적을 몰아낼 수 없었습니다. 그것만으로도 고통인데 위에서는 그걸 알아주지 않았구요. 몇 년째 바다에서 싸우면서 최선을 다해왔건만, 왕은 그것을 알아주지 않았습니다. 어디 왕만이겠습니까. 너무나도 많은 것이 그를 짓누르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그의 결론은 하나였죠. 그 자신에게는 너무도 슬픈 일이지만, 조선에게는 유일한 희망이었던 결론입니다,

1595년 2월 27일, 원균과의 갈등은 이순신의 승리로 끝이 납니다. 원균은 충청병사로 가고 배설이 대신 했죠. 이후 정유년이 올 때까지, 일기의 분위기는 꽤나 바뀝니다. 여전히 힘들었을텐데도 그런 걸 보면 원균이 얼마나 크게 속을 뒤집어놨는지 알 법합니다.

+) 여기서 결국 왕과 신하들도 이순신의 우위를 인정했다는 거겠습니다만, 수사보다 높은 병사로 보낸 것부터가 원균을 얼마나 대접해줬는지 알 수 있죠.

배설도 원균과 달리 경상우수영을 제법 잘 이끈 모양이고, 전염병으로 인한 피해도 슬슬 끝이 나 갔습니다. 원균이 가면서 이순신 주변은 자신의 사람으로 채워지게 됐구요. 휴전 때문에 적을 쳐부수진 못 하지만, 언제라도 적을 쳐부술 수 있게 준비를 해 나갔습니다. 때가 된다면 언제든지 치고 나가 적을 깨뜨려 나라의 치욕을 씻을 수 있게 말입니다.

견내량 북쪽으로 쉬이 나가진 못 했지만 이건 일본군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이 상태로 질질 끌어봤자 전쟁에서 이길 수 없었습니다. 철수하든가 다시 치고 나가야했죠. 하지만 치고 나가려면 수군을 깨야 했습니다. 수군이 무서워서 거제도 서쪽으로 가지 못 하는 상황이었으니까요. 버티기만 해도 조선이 이깁니다. 수군 덕분에 말이죠.

+) 뭐 일본에서는 어쨌든 부산과 대마도간 보급로는 지켰으니 일본군은 전략적 목표를 달성한거다고들 합니다. 뭐 그러려니...

헌데 철수하겠다면 모를까 히데요시는 재침공을 명령합니다. 이거 큰일 났네요. 96년쯤 가면 일본군도 2만명 정도를 남기고 철수한 상황이었습니다. 일단 조선 수군이 있으니 바다를 건너는 것부터가 무섭습니다. 조선 수군이 있는데 북쪽으로 치고 나가는 것도 불가능이구요.

이순신도, 그가 이끌던 조선 수군도, 조정에서도 마찬가지 생각이었을 겁니다. 일단 수군이 있으니 바다는 든든합니다. 바다로 보급이 불가능한 이상 적이 깊숙히 올 수는 없거든요.

하지만, 조선에는 아직 원균이 있었습니다.

조선 수군이 아무리 강하더라도, (진짜) 미천한 원균이 죽지 않았으니 감히 왜군을 업수이 여기지 못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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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우...

다음편은 수군 장수들이라든가 거북선이라든가 이런저런 얘기 좀 하고... 정유년으로 넘어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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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 ne sais quoi
14/10/04 13:44
수정 아이콘
하지만, 조선에는 아직 원균이 있었습니다.
우웩 ㅜ.ㅜ
눈시BBv3
14/10/04 14:08
수정 아이콘
진짜 머리 아파하면서 썼는데 더 머리 아플 일이 다가오고 있죠 ㅠ_ㅠ...
Mesut Özil 11
14/10/04 13:47
수정 아이콘
삼국지 얘기를 하면 손제리를 까야하고 임진왜란 얘기를 하면 선제리와 (병)원균을 까야 하는게 진리아닌가요?
눈시BBv3
14/10/04 1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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깔수밖에 없는 것이 진리죠 ㅠ_ㅠ)b
14/10/04 1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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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이 글을 읽으니 선조가 왜 저런 정신나간 행각을 했는지 조금은 이해가 됩니다. 제가선조여도 저런 개짓을 할 가능성이있다는게 안타깝네요
펠릭스
14/10/04 1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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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사회에서 우리가 내리는 숱한 결론들도 저와 다르지 않다는것이 참 재미있습니다.

뭐랄까 뻔히 보이는 것 조차도 현실로 닥치기 전에는 실감하지 못하고 삽을 퍼 댈때가 많죠.

위정자들 뿐 아니라 평범한 우리들조차.
바스테트
14/10/04 2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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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선조까진....그래도 어떻게든 이해해줄 수 있습니다.....좀 (아주 매우 울트라 슈퍼 초 많이) 빡치긴 하지만 어쩔 수 없다고 어떻게든 쉴드 쳐줄 수 있어요
하지만 원균은 결단코 쉴드쳐줄 수가 없네요(..) 갑자기 예전에 서점에서 본 책 제목이 생각나네요 역사속에 묻힌 진정한 명장 충무공의 왜곡으로 잊혀진 명장 충정공 원균 이라는 타이틀을 갖고 있던 책이었는데 후......
nicdbatt
14/10/04 2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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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과 욕심에 대한 집착 + 성공에대한 맹신 이라면 그다지 이해 못할 것도 아닌 것 같습니다.
이 글을 읽어보니 자기확신이 대단한 사람이었을 듯 하네요.
14/10/04 2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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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말해서 원균이요???
임마 이자식은 진짜 나쁜놈입니다.
칠천량에서 꼴아박은거요?
아 뭐 그래요 좋아요
원래 원균이 병X이라서 꼴아 박았다고 그렇다 칩시다.
세계 전투사 중에 어디 원균 혼자만 꼴아박은것도 아니고
비교대상이 세계 올스타에 뽑아도 3손가락에 들고 승률로 따지면 역대 세계 랭킹 넘버1였잖아요?
근데요 중요한거는요 이놈이 피해주는게 그 시대 살았던 같은 사람들이 아닌
근 400년이 지난 지 후손들에게도 아직까지도 피해를 주고있단 말이죠
상식적으로 생각해보세요
원균후손들도 어떻게든 실드 쳐보면서 얼마나 욕을 했겠습니까?

"아오 원균 이 XX새끼 내가 니후손으로 태어난것 때문에 너를 실드쳐야하다니 아오 정말!!!"

얼마나 열받겠습니까? 원균 후손 그 자신들도 말도안되는거 뻔히 아는데
일단 실드쳐주는거죠 조상이니까요.
그러니 우리는 살다가 원균 실드쳐주는 사람을 만나면 화내거나 반박하는게 아닌

"그래 내 니맘 안다 불쌍한놈 니가 원균 핏줄로 태어난게 잘못이지 누굴 탓하겠니"

라며 측은한 마음을 가지고 위로해 주도록 합시다.
뒹굴뒹굴
14/10/06 16:51
수정 아이콘
계속 읽어도 답답한 내용이네요;;

가슴아픈건 현대에도 비슷한일이 비일비재 한다는거죠.
능력있는 사람이 자기 PR을 아무리해도 근거 없이 자신감있고 시끄러운 사람에게 PR에 관해서는 밀리는게 보통입니다.
근거없이 다 할수 있다고 하니 근거가 있어야 할수 있다는 사람이 이길수가 없거든요.

이미 능력 차이는 안드로메다 저편인데도 불구하고
홍보빨로 원균따위가 이순신이랑 비슷한 평가를 받을수도 있었는데 보통 사람들이야 뭐 ..

암튼 칠천량까지 계속 답답하겠네요 흐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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