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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3/11/29 15:50:09
Name 글곰
Subject 연재게시판 이동 기념, 기이한 우리 무속신화 이야기
  안녕하세요. 올 여름부터 [奇談 - 기이한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글을 열심히 써서 올리고 있는 글곰입니다. 나름 많은 분들이 봐 주셔서 그야말로 굽실굽실, 항상 감사해하고 있습니다. 최근에 운영자께 연재게시판 사용신청을 하여 앞으로 기담은 자유게시판이 아닌 연재게시판에 올라올 예정입니다. 지금은 일단 첫 번째 이야기만 연재 게시판으로 넘어왔지만, 나머지 글도 다 옮겨주기로 하셨으니 그쪽으로 다 넘어오고 나면 새로운 이야기를 써서 올릴 예정입니다. 감사합니다. 끝.





  이렇게 끝내면 글자 수 부족으로 생애 최초의 벌점을 얻어맞겠죠. 오늘은 우리의 고유 신화인 무속신화에 대해 잠깐 이야기해 볼까 합니다. 기담 자체가 우리 무속신화에서 많은 부분을 따 왔거든요.
  
  그리스 로마 신화는 워낙 유명해서 일반 교양에 가깝습니다. 북유럽 신화쯤은 게임 오덕(...)인 피지알러들도 잘 알고 계실 겁니다. 주신 오딘, 천둥신 토르, 빗나가지 않는 창 궁니르, 세계수 위그드라실, 얼어붙은 땅 니플헤임, 용맹한 여전사인 동시에 발할라에서 용사들의 시중을 들어 주는 발퀴레 등 북유럽 신화의 요소들이 게임에 워낙 자주 등장하니까요. 좀 더 오덕의 경지가 높은 분들은 이자나기와 이자나미로 대표되는 일본 신화도 알고 계실 겁니다. 하지만 한국 신화는 대부분 잘 모르실 겁니다. 저도 국문과 3학년 때 무속신화 관련 전공수업을 듣지 않았더라면 지금까지 모르고 살았을 것 같네요.

  신화란 신의 이야기이며, 그렇기 때문에 고대 종교와 떼놓아 생각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고대 종교는 천 년이 훨씬 넘는 기간 동안 싯다르타와 공자, 그리고 예수에게 연달아 삼단 콤보를 맞고 대부분이 소실되어 지금은 흔적 정도만 간신히 살아남아 있는 상태입니다. 그래도 다행히 숨이 끊어지지 않고 있는 건 주로 우리의 전통적인 종교라 할 수 있는 무속신앙을 통해 주로 무가(巫歌) 형태로 입에서 입으로 전해 내려온 덕분입니다.

  전문적인 이야기로 넘어가면 너무 복잡해질 터이니 간략하게 주요 신화에만 초점을 맞추어 말씀드리겠습니다.


(1) 바리데기

  우선 바리데기 이야기는 당금애기 이야기와 함께 더불어 우리 무속신화의 양대 산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비교적 전국에서 고르게 발견되지요. 바리데기 공주는 오구대왕과 길대부인 사이에서 태어난 딸입니다. 문제는 일곱째 딸이란 거지요. 위로 오빠 없이 언니만 여섯입니다. 하도 딸만 낳자 마침내 빡돌아버린 오구대왕은 일곱째 딸인 바리데기가 태어나자마자 상자에 넣어 강물에 떠내려 보냅니다. 아무튼 이렇게 버려진 바리데기를 평범한 모 부부가 발견해서 키우게 되는데요. 바리데기가 열다섯 살이 되었을 때 오구대왕이 갑자기 병에 걸립니다. 점쟁이가 서천 서역국에서 약을 찾아와야 한다고 하죠. 딸내미 여섯에게 차례로 부탁했지만 여섯이 죄다 거절합니다. 그리고 마침내 오구대왕은 뻔뻔하게도 버린 딸 바리데기에게 그 약을 찾아다줄 것을 부탁합니다. 이거야 원 후레자식이 아니라 후레부모인 셈입니다. 그러나 마음씨 착한 바리데기는 응낙한 후 약을 찾아 여행을 떠납니다. 그리고 오만가지 고생을 다 하고 나서 웬 산적같은 놈과 9년을 함께 살며 집안을 다 해 주고 아들까지 셋이나 낳아준 후에야 겨우 약을 받아 돌아옵니다. 하지만 골골대면서도 10년 가까이 버티고 있던 오구대왕은 결국 숨이 떨어지고, 바리데기가 돌아왔을 때는 상여가 문 밖으로 나가고 있는 상황이었죠. 하지만 바리데기는 서천에서 얻어온 약꽃들을 사용해 오구대왕을 다시 살려냅니다. 이후 바리데기는 잘 먹고 잘 살다가 죽어서는 신이 됩니다. 죽은 이의 영혼을 저 세상으로 인도하는 신인데 오구신이라고도 합니다.

  무당, 특히 강신무(신내림을 받은 무당)가 아닌 남도 지역의 세습무(무당직을 부모로부터 이어받는 무당)들은 죽은 자의 넋을 위로하는 진혼굿을 할 때 바리데기 무가(巫歌)를 구송합니다. 구송이란 마치 뮤지컬처럼 이야기+노래의 개념이라고 생각하시면 편할 것 같습니다. 아무튼 이 바리데기 이야기를 [오구굿](오귀굿, 진오구굿, 진오귀굿, 지노귀굿)이라고 하며 그 노래 자체를 [오구풀이]라고 합니다. 바리데기 공주가 죽은 이를 저승으로 인도하는 신이기에, 바리데기 공주의 노래를 통해 죽은 이가 한을 풀고 저 세상으로 떠나도록 하는 것이지요. 이쯤 되었으면 기담에 등장하는 여주인공의 이름을 어디서 따 온 것인지는 다들 아시겠지요?

  
(2) 당금애기

  당금애기는 바리데기와 정반대로 생명과 탄생을 관장하는 신입니다. 신이 되면서 다른 이름이 생겼는데 삼신이라 합니다. 즉 삼신할머니가 바로 당금애기입니다.

  당금애기는 부잣집의 고명딸이었는데, 혹여나 딸에게 탈이 날까 걱정한 아버지는 당금애기를 엄청나게 큰 집 한가운데에 거의 숨겨놓다시피 하였습니다. 그러나 어느 날 웬 스님이 찾아오자 겹겹이 쌓인 담장이 문이 죄다 척척척! 하고 열려 버리죠. 스님은 집 안까지 걸어가 시주를 부탁합니다. 마음 착한 당금애기는 쌀을 내주라고 하인에게 말하는데 웬걸, 이놈의 스님이 사실 뗑중이었는지 당금애기가 직접 주지 않으면 안 받는다고 뗑깡을 부립니다. 그래서 직접 바랑에다 쌀을 부어주죠. 그런데 이번에는 이놈의 바랑에 구멍이 뚫렸네요? 아무리 쌀을 부어줘도 쌀이 죄다 흘러내리자 스님은 돌아가지 않고 이윽고 밤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스님은 당금애기를 덮칩니다(......) 아무래도 스님이 아니라 강간범인 모양이죠. 그런데 그 바람에 당금애기는 임신을 해 버립니다.

  임신 사실을 눈치 챈 부모는 매정하게도 딸내미를 내쫓아 버립니다. 당금애기는 밖에서 혼자 애를 낳았죠. 무려 아들 세쌍둥이였습니다. 이 세쌍둥이는 자라서 어머니에게 우리는 왜 아버지가 없느냐고 따지고, 당금애기가 어쩔 수 없이 그 눈물 없이는 들을 수 없는 막장스토리를 이야기해 주자 셋이서 직접 아버지를 찾아가기로 합니다. 그리고 갖가지 고생 끝에 아버지를 찾아가죠. 알고 보니 그 성범죄자 아버지는 세존, 즉 석가모니입니다! 싯다르타 씨 왜 그랬어요? 예? 아무튼 성범죄자는 뒤늦게 뉘우쳤는지 세 아들을 받아들여 제석신으로 임명하고 당금애기는 삼신이 되도록 합니다.

  이 이야기를 구송하는 무가가 바로 [제석본풀이]입니다. 당금애기는 생명의 신이니만큼 주로 축원굿이나 별신굿에서 행운과 풍요를 기원할 때 이 무가를 부릅니다.


(3) 저승 삼차사

  저승 삼차사는 무가보다는 민간전설에 그 흔적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죽은 사람의 영혼을 저승으로 데려오는 게 이들의 직업이지요. 셋이서 한 세트입니다. 각각 강림차사, 이승차사, 저승차사라고 부르는데 신화에 따라서 이들이 차례대로 찾아오기도 하고 한꺼번에 찾아오기도 합니다. 이중에 대장은 저승차사입니다. 그리고 이들에게는 이름도 있습니다. 가장 서열이 낮은 강림차사의 이름은 이도령입니다. 이승차사는 이덕춘. 저승차사는 해원맥이라고 합니다. 아마 네이버에 연재된 웹툰 ‘신과 함께’를 보신 분들은 이 이름들이 익숙하실 겁니다. 이 셋 말고도 삼차사는 많은 팀이 있다는 이야기도 있는데, 하기야 단 셋이서 모든 영혼을 거두려면 힘들겠지요.

  저승차사란 이름답게 엄청나게 무서운 존재들입니다만, 또 의외로 이들은 맹한 구석이 있습니다. 우선 밥과 옷, 신발을 아주 좋아합니다. 그런데 밥을 얻어먹거나 옷을 얻어입고 나면 그 사람을 해치지 못하게 됩니다. 이를 이용해서 죽을 운명인 사람이 길가에 밥상을 차려놓아 삼차사가 먹도록 유인한 후 자길 살려달라고 하기도 합니다. 당황한 삼차사는 동명이인을 잡아가는 어처구니없는 일을 벌이죠. 물론 염라대왕에게 들켜서 작살나게 혼납니다. 또 평소 덕을 많이 쌓은 사람을 데려가려다가 그 집의 신들(성주신, 조왕신, 측신 등...)에게 혼쭐나고 줄행랑치기도 하는 등 영 허당들입니다.

  기담의 주인공 이름은 저승차사 해원맥에게서 따 왔습니다. 죽은 이의 영을 저 세상으로 인도한다는 점에서 해원맥과 하는 일이 같으며, 이는 오구신 바리데기의 맡은 바 임무와도 일맥상통합니다.



  아직 할 이야기는 많은데 글이 엄청나게 길어지네요. 일단은 이쯤 접어두도록 하겠습니다. 혹여 우리의 신화에 대해 더 많이 알고자 하는 분은 서정오의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우리 신화]를 추천해 드립니다. 비전문가용이라 소설 읽듯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광고. 앞으로 올라올 [奇談 - 기이한 이야기]도 많이들 봐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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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11/29 16:01
수정 아이콘
매번 잘 보고 있습니다.
자유게시판이랑 유머게시판만 들락거렸는데
이젠 연재게시판도 수시로 확인해야겠네요.
글 감사합니다.
아이유
13/11/29 17:10
수정 아이콘
싯다르타씨 그렇게 안 봤는데...
Je ne sais quoi
13/11/29 17:18
수정 아이콘
앞으론 연재 게시판 가야겠군요. 잘 읽을께요~
카레맛동산
13/11/29 22:13
수정 아이콘
연재글도 매번 재밌게 보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재밌는 글 많이 써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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