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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2/12/03 13:01:53
Name 눈시BBbr
Subject 휴전과 고지전 - 4. 필살기 없는 혈전
51년 중반부터 후반까지 계속된 휴전협상은 공산군에게 최고의 기회였습니다. 특히 여름에 한 달, 겨울에 한 달씩 일시 정전한 게 컸죠. 폭격을 피해 밤에만 진지공사를 했던 것이 낮에 마음껏 할 수 있게 됐으니까요. UN군은 하계, 추계 공세를 통해 전선을 밀어올렸지만 갈수록 더 큰 방어에 부닥칩니다. 공산군은 전방을 모두 요새화하고 있었으니까요.

각 진지는 마지노선을 능가할 정도의 견고했고, 고지의 후사면을 통해 땅굴과 참호를 파 병력을 수용, UN군의 화력을 버티게 됩니다. 교통호는 거미줄처럼 만들어졌고, 그 폭은 20~30km에 달했죠. 각종 야포, 전차까지 은폐 가능했으며 전방에는 몇 줄의 철조망과 지뢰지대가 만들어집니다. 지하에는 많은 병력을 수용할 수 있는 각종 시설들도 만들어집니다. 강당까지 있었다는군요 -_-; 국군 5사단이 맡은 가칠봉의 경우 1개 소대가 한번에 식사할 수 있는 공간까지 있었다고 합니다. 그 안에 있던 물자 역시 적지 않아서 3개월도 버틸 수 있었다는 기록을 남기고 있습니다.

거기다 게릴라전을 오래 경험하며 산에 익숙해진 그들의 경험 역시 무시할 수 없습니다. 51~52년의 그 추운 겨울, 방한복과 난방기구, 보급품 등 환경면에서는 UN군과 국군이 좋았습니다. 하지만 동상으로 인한 피해는 아군이 더 컸다는군요. 미 전사에서는 적이 추위를 더 잘 버틴 이유로 "선천적인 순응성과 정신력, 엄격한 규율"을 꼽고 있습니다.

공산군보단 덜 했지만, 이런 강력한 우주방어는 아군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이렇게 서로의 주 방어선에 우주방어가 펼쳐지면서 전투는 주로 정찰과 주방어선 방어를 위한 전초기지 확보로 축소됩니다. 소모전이 계속됐지만, 전선 전체가 소강상태에 빠짐에 따라 피해는 오히려 줄어갔죠. 공산군에게는 아직 준비가 필요했고, UN군에게는 더 이상 무리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작은 전초기지 하나하나에 한 쪽이 대규모로 공격해 올 경우 반대편 역시 대규모로 맞서야 했고, 이렇게 작은 고지를 두고 너무나도 큰 피해가 일어나게 됩니다. 이것이 "고지전"의 전형이었죠.

51년 12월 28일, 국군 1사단은 임진강 북쪽 두메리고지에서 적의 공격을 받습니다. 다음해 8일까지 계속된 전투에서 적 1611명을 사살했지만 129명이 전사했고 585명이 부상당합니다. 이 고지의 경우 임진강 북쪽의 적을 견제하는 역할이 컸던만큼 그 중요성에 비해 피해가 너무 컸죠. 적도 많이 잡았긴 합니다만 -_-a 이 전투로 두메리 고지를 상실, 임지강 남쪽으로 물러선 후 다시 전초기지 구축을 준비합니다.

한편 백석산 일대에서는 12월 25일부터 중공군의 공격이 시작, 국군 7사단이 이에 맞섰죠. 28일까지 계속된 공격에서 고지의 주인이 몇 번이나 바뀌어가며 겨우 이깁니다. 날도 참 좋아서 이 고지를 크리스마스 고지라 불렀죠. 172명의 적을 사살하고 전사 22, 부상 109명의 피해를 입습니다.

이 두 전투가 51년 12~52년 1월간에 볼 수 있는 전투들입니다. 나머지는 다 소강상태였고, 이 두 고지 역시 그 후엔 총성이 멈췄죠.

한편 밴플리트는 2월 2일 빅 스틱(Big Stick) 작전을 건의합니다. 4월 5일자로 미 1군단이 총공격을 개시하고 해병대는 원산에 상륙, 전선을 예성강까지 끌어올린다는 거였죠. 이거면 개성은 물론 옹진-연백 평야까지 갈 수 있었겠습니다만 역시 거부됩니다.

대신 밴플리트는 침묵(Clam Up) 작전을 건의, 받아들여집니다. 그 동안의 정찰전을 넘어서 적을 유인하는 계획이었죠. 마치 철수한 것처럼 고지를 비우고 다가온 적을 섬멸하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건 적의 의도를 알 수 있게 포로 획득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었죠.

크리스마스 고지의 7사단은 2월 11일, 이 작전에 맞춰 고지를 비워놓고 적을 유인, 승리를 거둡니다. 적 40명을 사살하면서 전사 9명, 부상 9명의 피해를 입는데 작전목표인 포로 획득에는 실패합니다.

+) 이런 작전 과정에서 중공군은 부상 등으로 포로가 된 이들을 공격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으며 (확실하지 않다는 얘깁니다) 한 병사는 포로에게 자기 철모와 방탄복을 입혀 살려서 돌아와 공을 인정받습니다.

이 외에 볼 수 있는 작전은 평강 남쪽에 배치돼 있던 네덜란드 대대, 김화에 배치돼 있던 콜롬비아 대대입니다. 여기서는 딱히 적의 저항이 없었던 모양입니다.

+) 중요할 땐 UN군과도 계속 맞섰지만 공산군의 목표는 언제나 국군이었습니다. 특히 이 때 한국 정부가 휴전을 반대하면서 그 기세를 꺾는다고 더 국군을 노렸죠.

밴플리트는 이어 4월 1일을 염두에 두고 촙 스틱(Chop Stick) 6, 16작전을 건의합니다. 전자는 금성-평강을 장악해 철의 삼각지대를 완전히 장악한다는 것이고 16은 동해안에서 남강 하구까지 진격한다는 것이었죠. 리지웨이는 후자만 승인합니다. 하지만 곧 이마저도 취소했죠.

이 때 UN은 "일괄타결안"을 제시할 때였습니다. 4월 28일의 본회담에서 그 동안 쟁점이 됐던 것에 대해 마지막으로 UN의 입장을 통보하고 이를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확전까지 각오하는 것이었죠. UN은 한 발 물러나고 공산군은 두 발 물러나게 하는 계획이었습니다.

- 비행장 건설 또는 복구 문제(즉 군사력 증강 문제)는 UN이 양보
- 중립국 감시위원회 문제, 소련은 절대 안 된다 (UN, 공산에서 각기 2개국씩 뽑자)
- 공산군이 통보한 포로 만이천명과 UN측이 확보한 포로 7만명 (반공포로 제외) 교환 -> 1:1은 포기할테니 니들도 억지부리지 마라

이를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더 이상의 휴전 없이 핵무기 사용까지 고려하는 확전까지 생각하고 있던 때였습니다. 맥아더가 주장했던 중국 본토 봉쇄, 공격 등이 포함돼 있는 것이었죠. 그리고 공산군은 이를 거부합니다. 10월 8일까지 수정안까지 제시했던 UN은 결국 포기, 회담의 무기한 휴회를 선언합니다. 공산군이 받지 않으면 더 이상의 타협은 없다는 것이죠.

여기서 두 가지 변수가 생깁니다.


경비병이 압수한 싸(-_-)제 무기들

첫째는 포로수용소의 폭동, 허구헌날 폭동이 일어나고 친공, 반공 포로들이 싸우면서 그 때마다 수용소장이 갈립니다. 별들의 무덤이었죠. 친공 포로들은 외부의 지령을 받고 움직이고 있었고, 5월 6일에는 포로수용소장 도드가 인질이 되는 사태가 벌어졌죠.

자세한 건 다음 편에 쓰겠습니다만, 이 때 포로들을 달래고 도드를 구출하기 위해 각서를 쓰게 되는데 이게 곧바로 판문점으로 전달됩니다. -_-; 대단해요. 공산군은 이걸 가지고 UN군이 포로를 학대한다고 주장했고, 이를 구실로 합의를 거부했죠.

다음은 미국인들의 요구였습니다.


"이 전쟁을 끝내러 왔다."

특히 2차대전의 영웅 아이젠하워의 등장이었죠. 그는 '제가 한국에 가겠습니다'라는 구호로 한국전쟁을 끝내는 걸 주요 공약으로 내세웠고, 미국 내에서 휴전에 대한 요구는 더 커집니다. 실제로 그는 당선자 신분으로 52년 12월에 한국에 오기도 했죠. 맥아더식 확전까지 주장한 국방성은 물론 제한적인 확전을 생각한 국무성도 미국 국민들의 요구를 거스를 순 없었습니다. 아이젠하워도 이 모든 계획을 폐기하죠.


한편 5월 12일부로 UN군 사령관도 바뀝니다. 리지웨이는 NATO 사령관이 됐고, 그 뒤를 이어 마크 클라크가 사령관이 됐죠. 2차대전 때 이탈리아 전선에서 활약했고 리지웨이 아니었으면 진작 왔었을지도 모를 이였습니다. 결정적으로 그에게는 외교 능력이 있었습니다. 그가 맡은 임무는 전쟁을 끝내는 거였죠.

뭐 협상 자체에는 딱히 힘을 쓸 위치가 아니어서 그의 주 임무는 이승만 달래기였습니다만 (...)

이래저래 말 했습니다만, 공산군이 계속 타협을 거부하고 미 국내에서는 휴전을 계속 요구하는 상황, 미국이 갈 길은 시간이 계속 걸리더라도 확전을 막고 휴전으로 가는 길밖에 없었습니다.

  6월 10일, 밴플리트는 신임 사령관에게 또 공세를 건의합니다. 위의 젓가락 6 작전-_-;과 비슷한, 철의 삼각지대 장악 작전이었죠. 이 역시 거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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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년 봄 역시 소강상태였습니다. 다만 휴전이 계쏙 진행되면서 부대 재배치가 이루어졌죠. 가령 펀치볼에 있던 해병대는 서부로 옵니다.

이 때 양측이 조금씩 다른 모습을 보입니다. 중공군의 경우 포격이 더 강해지고 정확해져 갔죠. 그 동안 소련에서 지원받고 자기들도 열심히 훈련한 결과였습니다. 반면 국군과 UN군은 침묵 작전부터 시작된 매복 공격을 주로 하게 됩니다. 낮이든 밤이든 몰려오던 적들이 여기에 타격 받고 물러나는 식이었죠.

국군 해병대가 오자마자 겪은 사천강 전투 역시 이런 식으로 진행됐습니다. 적의 포격으로 밀려갔지만 매복 공격 및 예비대 투입으로 반격, 5일까지 적에게 큰 피해를 주고 오히려 적 전초기지를 점령해 버립니다.

... 해병대 _-)b; 한편 연천 북쪽에 있는 아스날 고지에서도 필리핀대대가 연대규모의 공격을 받았고, 물리쳤죠.

한편 금성천에 있던 6사단도 적의 공격을 맞아 15시간을 버티며 막아냈고, (100여명 사살, 아군 24명 전사 74명 부상) 3사단 역시 침묵 작전으로 나름의 성과를 냅니다.

이렇게 어느 정도의 전투는 있었지만 쌍방의 피해는 갈수록 줄어가고 있었습니다. 방어가 강화되고, 소규모 전초기지 쟁탈전 정도였으니까요.  겨울부터 봄까지 매달 피해는 2천 5백명 정도, 적은 수는 아닙니다만 동상 등의 비전투손실까지 포함하면 이제까지 어느 때보다 조용할 때였죠.

따지고보면 1차대전 때의 진지전 수준이었습니다. 총공격하면 큰 피해 입을 걸 아니까 피해는 줄어가고, 대신 병사들의 스트레스는 꽤나 심해져 갔죠. 미군의 경우 로테이션을 만들어 전방의 병사를 후방과 교대하게 됩니다. 미군은 이제 슬슬 발 뺄 때였어요. 피해가 조금이라도 나면 본국에서 반전 움직임은 더 커져 갔고, 어찌됐든 끝날 것 같은 타이밍이니까 더 피해를 줄이려 했죠. 거기다 국군 증강 사업도 슬슬 결실이 날 때라서 국군에 많은 부분이 가게 됩니다. 국군의 환경 같은 건 궁금해 할 필요 없죠? =_=a 하지만 전쟁의 당사자인 국군으로서는 더 이상 물러날 수 없는 상황이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보급 환경이 나아지면서 옛날보단 나아졌구요.

대신 해공군 작전은 그 어느 때보다 강력하게 추진됐죠. 일선 병사들의 피해를 최대한 줄이면서 적에게 최대한 타격을 입히는 것은 이것밖에 없었으니까요. 승호리 철교 폭파 작전 역시 이 때 진행됐죠. 여기에 수풍발전소까지 파괴에 성공하기도 합니다. 북한 전 지역이 2주일간 전기가 끊겼고 만주 역시 23% 정도의 전력 손실을 입었죠.

어차피 동서해의 섬과 바다는 모두 UN군과 국군이 차지하고 있었고 적은 방공과 대상륙에 많은 병력을 투입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여름을 거쳐 회담이 무기한 휴회된 52년 가을, 전선은 다시 뜨겁게 타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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밴플리트의 젓가락 계획은 또 물건너가고 또 제한적인 감제고지 점령 작전을 시작합니다. 작전명 카운터, 연천-철원 방면을 맡은 미 45사단에게 맡겨진 작전이었죠.

이 작전으로 화살머리, 티본(T-Bone), 폭찹, 불모 고지 등 11개 고지를 장악하게 됩니다. 이 중 가장 유명한 것은 White Horse, 백마고지였죠.

여기에 중공군은 그 어느 때보다 강력하게 맞섭니다. 그리고 국군과 UN군 또한 물러나지 않았죠. 목표는 어느 쪽이든 방어를 강화하지 못 했던 전초고지들이었습니다. 양쪽 다 작은 고지 하나하나를 차지하기 위해 병력을 투입하는 걸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휴전회담은 무기한 휴회, 가장 큰 쟁점이 걸린만큼 그 어느 때보다 자신의 힘을 보여줘야 할 때였습니다. 그렇다고 상대를 완전히 압박할 정도의 강력한 공세는 하면 안 됐습니다.

흔히 말하는, 작은 고지 하나를 위해 수많은 피가 뿌려지는 고지전은 이 때 절정에 다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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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백마고지가 나왔군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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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추통
12/12/03 13:13
수정 아이콘
스탈린이 살아있는 동안 점차 치킨런이 되가는 거 같네요. 참...노인네들이 전쟁을 일으키면 그 전쟁에서 죽는 건 젊은이들 뿐이다라는 말을 어디서 봤는데....참...
아 그리고 한방 맞았으니 되돌려드려야 하는게 원칙일거 같군요...흐흐흐흐.....
12/12/03 13:33
수정 아이콘
기다리던 백마고지 전투군요. 상승백마! 기대해야 겠네요. 어여 써주세요.
wish buRn
12/12/03 16:33
수정 아이콘
북한군측 피해는 어떻게 집계했나 궁금하군요.
전사피해만 있고,부상자피해는 없어서요..
보통 전사자보다 부상자가 몇배인걸 감안하면 북한군&중공군의 피해는 어마어마하다는건데..
과장된 집계였을까요?
눈시BBbr
12/12/03 18:49
수정 아이콘
보통 전사:부상자 비율이 1:3~4는 되는데 이 때는 포병, 공군 + 고지전이라는 환경 덕분에 1:10도 충분히 가능한 상황이죠. 그 이상도 얼마든지 볼 수 있구요.
이런 점들로 사살이 백일 경우 최소 천, 천일 경우 최소 만으로 잡습니다. 이번 편 들면서 사살 위주로 다뤘는데, 사실 적의 피해 추정은 거의 그 정도로 봐요 '-') 다시 말 해 중공군은 대규모 고지전 한 번에 일만 이상씩 피해를 입은 걸로 보는 거죠. 각 전투마다 다르긴 합니다만
이 때문에 사단 단위부터 군 단위까지의 교체가 계속됩니다. 문제는 그러고도 적이 너무 많았다는 것 -_-; 한반도가 작아서 한꺼번에 투입하진 못 했지만, UN에 비해 쌩쌩한 병력을 계속 투입할 수 있었죠.

문제는 땅굴 등으로 피해서 공군+포병의 피해를 얼마나 받았느냐의 문제가 있습니다. 추정일 뿐 확신할 수 없으니까요. 공중 정찰로는 한계가 있고, 포로를 잡는 걸 중시한 이유 중 하나도 이겁니다. 전선이 왔다갔다 하는 상황에서는 "이 정도 진격하고 적이 이 정도로 약화됐으니 이 정도 피해를 준 게 맞겠지"할 수 있는데 이 때는 잘 해도 몇 km였으니까요.

어쨌든 땅굴 같은 경우 국군도 충분히 이용합니다. 적의 포격 때 땅굴로 피해 피해를 최소화 했거든요. (중공군 최종공세 때는 이걸 역이용해서 아군의 피해가 더 컸습니다만) 이 때문에 적의 피해 역시 제대로 추정하기 힘듭니다. 서로 머리를 맞대고 연구하면 되겠지만, 지금 와서는 너무 늦은 감도 있구요; 적들부터 지들 피해를 제대로 추산 못 해요 -_-; 얼마나 죽든 이기면 되지의 최고봉이 중공군이라서;
결론을 내리자면... 당시 환경을 생각하면 적의 피해가 어마어마하다고 추정할 수 있지만, 역시 당시 환경으로 인해 확신은 어렵습니다 '-'
드라고나
12/12/03 19:32
수정 아이콘
중공군이 만들어낸 저런 대규모 지하진지에 대해 미군이나 한국군은 전쟁 끝날 때 까지도 실체를 제대로 파악 못 했죠.
서린언니
12/12/04 00:45
수정 아이콘
포로수용소 하니까 이학구 총좌가 생각나네요.
공산포로의 수장이었지만 정작 자신은 남한에 남길 바랬는데...
딘 장군과 교환되는 바람에.... 나중에 북한에서 권총자살했다고 전해지는데 ...
눈시BBbr
12/12/04 09:27
수정 아이콘
허어 그런 일도 있었나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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