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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0/03/10 16:15:31
Name 루크레티아
Subject 히가시노 게이고 - 방황하는 칼날(미성년자 처벌의 수위는? 스포 有)
최근 일어난 여중생 성폭행, 살해 사건으로 인해서 온 나라가 떠들썩합니다. 비록 범인은 잡히긴 했지만 이미 살해당한 여중생의 유족과 난데없이 살인자의 가족이 되어버린 용의자의 가족들은 이미 씻을 수 없는 고통을 받았으며, 앞으로도 받을 것입니다. 이 사건 때문에 현재 성범죄에 관한 법률을 개정하여 처벌을 더욱 강화하자는 움직임이 사회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으며 아마 강화가 될 것 같습니다. 사실 우리나라의 성범죄에 대한 처벌은 너무나도 관대하기 때문이죠.

그런데 이렇게 성범죄로 인해서 떠들썩한 상황에서 이미 잊혀진 사건이 있으니 같은 사건이지만 피의자의 신분이 다른 부천 여중생 성폭행, 살해 사건입니다. 같은 성폭행, 살해라는 공식을 답습하고 있지만, 이 사건은 외부적인 협박이나 가해자, 유가족 사이의 갈등은 차처하고서라도 집단으로 윤간을 한 이후에 과실치사를 했다는 점에서 현재 이슈가 되고 있는 사건에 비교하더라도 그 죄질이 전혀 뒤떨어진다고 볼 수 없는 중죄입니다. 하지만 이 부천 사건의 용의자인 청소년들은 미성년자라는 이유만으로 각각 5년 이하의 징역형을 언도 받았으며 이는 후에 교정당국에서 감면을 할 여지도 있습니다. 반면에 지금 벌어진 부산 사건의 용의자는 언론의 집중포화를 받으며 닥치고 무기징역으로 갔습니다.

이번 사건을 보면서 문득 든 생각이 바로 이 부천 사건과 과거 밀양 사건의 가해자들이 과연 올바른 처벌을 받은 것인가에 대한 생각이었습니다. 지금 현재 어찌 본다면 과할 정도로 사건에 열광(?)하는 언론, 경찰, 국민들을 보면서 그들이 과연 밀양, 부천 사건에도 이렇게까지 신경을 썼었는지에 대한 생각도 들고 있습니다. 물론 국민들이야 비슷하겠지만 언론과 경찰들은 가해자들이 모두 가진자의 입장이었기에 반응이 영 딴판이겠지만 말이죠.

청소년을 포함하는 모든 미성년자들은 조금 심하게 말하자면 아직 인간으로서 완성이 덜 된 존재들입니다.(물론 어디에든 예외는 존재하죠.) 그들은 주변의 모든 것에 성인에 비해서 영향을 더 많이 받으며 이성적인 판단을 내리는 일 역시도 성인에 비해서는 떨어집니다. 그렇기에 청소년이 저지른 범죄에 대해서는 주로 교정, 교육, 훈방의 조치들이 취해지고 있습니다. 아직 모르는 '아이'들이 저지른 일이니 성인이 만든 법이 이 아이들을 보호해주어야만 한다는 취지인 것이지요. 긍정적인 면에서 본다면 참으로 올바른 이야기이지만, 세상이 그리 긍정적이지만은 않듯이 이러한 보호를 방패삼아 온갖 악행을 저지르고 다니는 미성년자들도 상당합니다.

이러한 방패를 이용해서 악행을 저지르는 미성년자들에 대한 처벌을 어떻게 해야만 하는가? 우리보다 다방면에서 선지적(?)인 면을 가지고 있는 일본에서는 이러한 보호 제도인 '소년법'의 효용성을 두고 논란이 일어난 적이 있으며 지금부터 소개할 책 역시도 이러한 논란을 주제로 하여 쓴 책입니다. 바로 히가시노 게이고의 '방황하는 칼날'입니다.

책의 대략적인 내용은 이렇습니다. 어머니를 여의고 아버지와 단 둘이 살아가는 여중생 소녀 에마는 어느 날 밤에 친구와 함께 마을 축제의 불꽃놀이를 보고 돌아오던 중에 친구와 헤어지고 홀로 밤길을 걷다가 3인조 고교 중퇴생들에게 납치를 당하게 됩니다. 그 중퇴생은 바로 가이지, 아쓰야, 마코토 3인조입니다. 이 3인조는 고교를 중퇴한 이후 온갖 불량한 짓을 저지르다가 성폭행의 유혹에 빠지게 되고 여학생들을 납치하여 성폭행한 후에 그 장면을 녹화해둠으로써 신고를 미연에 방지하는 치밀한 수법의 범죄를 계속하여 저지릅니다. 소심한 성격의 마코토는 성폭행은 차마 가담하지 못하고 납치에만 가담을 하지만 가이지와 아쓰야는 이런 마코토를 바보취급 하면서 계속해서 범죄를 저질렀습니다. 그러다가 에마를 납치하고 처음으로 각성제를 사용한 가이지와 아쓰야는 약물로 제정신이 아닌 에마를 온갖 끔찍한 방법으로 성폭행을 하다가 약물 조절 미숙으로 죽음에 이르게 합니다. 놀란 두 사람은 서둘러 마코토를 불러서 함께 사체를 유기한 후에 각자 비밀을 지키기로 하고 잠적하게 됩니다.
한 편, 인생의 유일한 보물인 외동딸이 하루 아침에 시체로 발견된 후에 하루 하루를 뜬 눈으로 지새우던 에마의 아버지 나가미네는 무능한 경찰의 수사력에 한탄을 하다가 우연히 익명의 제보를 받게 됩니다. 그것은 아쓰야의 맨션 주소였습니다. 반신반의 했지만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빈 아쓰야의 맨션에 들이닥친 나가미네는 축제일에 입었던 딸의 옷가지와 차마 말로 다 할 수 없는 끔찍한 광경이 찍힌 딸의 성폭행 테잎을 보고 비탄에 빠지게 됩니다. 그러다가 우연히 아쓰야와 마주친 나가미네는 아쓰야를 참혹하게 살해한 후에 범인에게 자신의 복수를 알리고 또 한 명의 용의자를 찾아서 사라지게 됩니다.


'용의자 X의 헌신'으로 이미 우리나라에서도 최고 인기 작가 반열에 오른 히가시노 게이고는 서평을 하는 이들에게 불친절한 작가라는 소리도 종종 듣곤 합니다. 복잡한 문제를 던져놓고는 항상 마지막에서 자신은 쏙 발을 빼기 때문입니다. 시원한 결말 보다는 언제나 깊은 여운을 남기면서 자신의 생각을 잘 드러내질 않기에 독자들의 애간장을 태우죠. 하지만 이 소설에서는 예외적으로 작가의 목소리가 생각보다 깊이 담겨있습니다. 그 목소리는 물론 독자들이 직접 찾아내야 하지만 말이죠.

일본의 소년법이나 우리나라의 미성년자에 대한 법률이나 맥락과 그 적용은 비슷합니다. 소설의 가이지와 아쓰야도 소년법의 적용을 받는다면 상당히 가벼운 형을 살게 될 것 입니다. 하지만 과연 그것이 옳은 상황일까요? 판단은 각자의 몫이겠지요.

P.S. 위의 소설 내용은 검색 엔진의 책 소개 부분입니다. 즉 책 소개 부분에도 올라와 있는 내용인 만큼 책을 읽으시는데에 중대한 스포일러는 아니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이 글을 읽으시더라도 무리없이 책을 읽으실 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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핸드레이크
10/03/10 16:39
수정 아이콘
저도 이 책봤는데..
참 보면서 씁쓸하더군요...분위기가 말이죠 ⓑ
10/03/10 16:43
수정 아이콘
게이고 책은 거의 씁씁하죠..개인적으로 화차가 끝내줬던거 같습니다.
신용카드 쓰지말자...
10/03/10 16:44
수정 아이콘
청소년 보호법은 발달 과정에 있는 청소년들이 그 발달 특성상 저지를 수 있는 문제로 인해 과도한 처벌을 받지 않기 위해 만들어놓은 것인데..
제가 간간히 비행청소년 관련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느낀 바로는.. 소수의 청소년들이 오히려 그 보호법을 악용하려 한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그 소수는 잠깐의 실수로 보호관찰소에 오는 학생들에게 그 악용하는 방법을 전파하고 있고요..

보호관찰소에서는 학생들을 선도한다고 비행청소년들을 모아놓고 교육하지만.. 대부분이 딴생각이나 하고 있고..
그 교육의 쉬는 시간에는 새롭게 비행청소년의 무리가 형성, 확장되는 것을 보고 있으니..
진짜 뭘 어떻게 해야할지.. 한숨만 나옵니다..

학교부적응(비행청소년도 학교부적응 학생에 포함) 학생들을 다시 학교에 적응시킴으로서
국가가 치안, 경제 부분에서 소모하지 않아도 될 예산이 많다는 것은 윗분들도 어느 정도 알고는 계실겁니다..
그렇기에 Wee센터도 생기고 상담인턴교사들도 선발하는 것이겠죠..
하지만 많이 부족한 게 사실이고요.. 아직 더 많은 인력과 비용이 필요할텐데.. 잘 될지 걱정됩니다..

순간의 비행으로 인생에 큰 상처를 남기지 않기 위해 실시하는 청소년보호법이라지만..
오히려 그 보호법으로 인해 더 많은 학생들이 상처를 입어서는 안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영원불멸헬륨
10/03/10 17:00
수정 아이콘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일본 작가군요. 재작년 기말 시험기간에 어찌나 이 작가의 책이 재미있던지.. 시험치고 다음날 시험치기 전에 이 작가의 책을 보는 식으로 전집을 독파했고, 평점은 전학기 대비 1점이 떨어지고 말았던... 하하;
주관적인 생각으로 게이고의 심리 묘사는 단연 최고라고 생각합니다. 마치 자신의 수많은 소설속 주인공, 혹은 주요 인물이 되어 본듯한 심리, 행동묘사는.. 숱한 표현으로 책을 손에서 떼지 못하게 만들죠. 그리고 트릭, 추리영역또한 무시할 수 없는 부분이죠(붉은 손가락을 보며 참 가슴아프면서도 섬뜩한 것을 느꼈습니다).

이 책 속(일본)에서의 미성년자 성범죄에 대한 처벌은.. 솜방망이가 아니었다고 기억합니다만, 그것으로 모자라 자신이 처벌을 한 후, 자신이 다시 처벌을 받겠다고 하는 피해자 아버지의 심리가 다른 작품에 비해 뛰어났다고 생각합니다. 요즘 우리나라에서 많이 일어나고 이슈가 되는 미성년 성범죄의 피해자 부모의 마음이 다 이렇다면... 상상도 하기 싫어지는군요..
맨발낭자
10/03/10 17:01
수정 아이콘
한참 히가시노 책에 빠져있을때 읽었는데..
저 저역시 보면서 참 씁쓸했죠~
Hon님// 이 말씀하신 화차는 미미여사님꺼 말씀하시는건가요? 미미여사님 책은 이상하게 전 안읽혀서 ㅠ.ㅠ
김선태
10/03/10 17:28
수정 아이콘
저런 눈빛이 정말 소년의 눈빛인가 할때가 가끔 있습니다. 14세미만(한국으로 따지자면 초등학교 6학년 아니 만으로 하면 중학교1학년)
솜방망이를 휘두른다는 것은 솜이 지만 방망이지요 ..소년법이건 형법이건 적용을 받는 건 마찬가지인것 같습니다.
전 범죄원인판단은 항상 "선"이라는 것이 현재 갖추어야하는 것이 아니라 필요할때 사용하는 것으로 치부되는 것이라고 생각...줄임
10/03/10 18:12
수정 아이콘
본호라이즌님// 네 미미여사님 맞습니다. 일본 작가들이 이런 분야 책을 쓰면 더 씁쓸하게 느껴지는 듯 합니다.
10/03/10 19:36
수정 아이콘
방황하는 칼날..마지막 장면이 기억이 많이 남네요.
히가시노 게이고라는 이름만으로도 책을 집고 읽을수 있는게 축복이라고
생각되던 시절도 있었는데.

근데 전 왜이렇게 백야행에 손이 안갈까요..
이걸 보면 왠지 히가시노 게이고가 끝나는 기분? 같은게 느껴져서
백야행을 아직도 못보고 있네요.


그리고 전 상당히 친절한 작가라고 생각이 드네요.
어떻게 하면 이런 문제를 이렇게 눈에 쏙쏙 들어오게 추리(아닌것도 있지만)의 형식으로
풀어 나갈수 있을까. 하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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