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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2007/11/25 23:52:03 |
Name |
이재열 |
Subject |
[유머] 희미한 옛수능의 그림자 |
희미한 옛수능의 그림자
수능을 보던 날 세밑
우리는 오후 다섯 시에 만나
반갑게 악수를 나누고
차가운 독서실 옥상에 둘러앉아
하얀 입김 뿜으며
열띤 토론을 벌였다.
어리석게도 우리는 서연고서성한을
듣보잡과는 전혀 관계없는 서연고서성한을
갈 수 있으리라 믿었던 것이다.
결론 없는 모임을 끝낸 밤
독서실 옥상에서 맥주를 마시며
수능과 수시모집과 논술 문제 때문에
우리는 때묻지 않은 고민을 했고
아무도 귀기울이지 않는 노래를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노래를
저마다 목청껏 불렀다.
돈을 받지 않고 부르는 노래는
겨울밤 하늘로 올라가
별똥별이 되어 떨어졌다.
그로부터 일주일 수능이 끝난 후
우리는 모두 막장 되어
등급이 두려운 7차희생양이 되어
사복을 입고 다시 모였다.
술값을 만 원씩 추렴하고
최저등급의 안부를 나누고
원점이 얼마인가 서로 물었다.
치솟는 등급컷을 걱정하며
무겁게 교육현실을 개탄하고
익숙하게 목소리를 낮추어
떠도는 대학 빵구설을 주고 받았다.
모두가 살기 위해 살고 있었다.
아무도 이젠 서연고서성한을 외치지 않았다.
적잖은 술과 안주를 남긴 채
우리는 달라진 폰번호를 적고 헤어졌다.
몇이서는 점공까페를 눈팅하러 갔고
몇이서는 서든어택을 하러 갔고
몇이서는 허전하게 불광동 길을 걸었다.
돌돌 말은 고대수시 달력을 소중히 옆에 끼고
오랜 방황 끝에 되돌아온 곳
우리의 옛 닥공이 피 흘린 곳에
낯선 독서실들 수상하게 들어섰고
우리는 여전히 제자리에 서서
아직도 남아 있는 성적표의 잔해를 흔들며
서로의 고개를 떨구게 했다.
부끄럽지 않은가
부끄럽지 않은가
4등급의 속삭임 귓전으로 흘리며
우리는 짐짓 태연한 척 수능후의 운전면허를 얘기했고
또 한 발짝 깊숙이 재수학원으로 발을 옮겼다.
출처:오르비
참고로 원문은 희미한 옛 사랑의 그림자라는 현대시를 패러디한것입니다. 크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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