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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2005/07/07 01:10:05 |
Name |
히로요 |
Subject |
[유머] 부활 논문...(디시 드겔 영소사 누님 글펌) |
부활>은 TV드라마에서는 보기 드물게 정교한 복수극이다. '복수'는 참으로 달콤한 유혹이나
그것을 실행에 옮기는 이는 거의 없다. 대신 수많은 문학작품들과 영화에서 '복수'가 중요한
주제로 다루어졌다. 특히 나처럼 소심해 억한 감정도 안으로만 차곡차곡 쌓아두고 사는
족속들에게는 통쾌한 복수극이 아주 후련한 대리만족이 된다.
<몬테크리스토 백작><굿바이 미스터블랙> 같은 복수의 고전들은 내 어린 날, 동경의 대상이었다.
그러니 복수 3부작을 만들어 주는 박찬욱 감독을 좋아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지금껏 TV에서는 제대로 된 복수극을 만날 수가 없었다.
<그린로즈>. 한 남자의 복수가 어쩌구저쩌구하는 광고를 하길래 보았다. 초반에는 그런대로 잘
나갔다. 중국에 가서 걸인이나 다름없는 생활을 할 때까지도 괜찮았다. 문제는 고수가 무슨 대인인가
뭔가를 구해줘서 갑자기 신분상승을 하는 부분서부터 불거진다.
복수는 치밀해야 한다. 상대를 거꾸러뜨려 한발작도 못 빠져나가게 올가미를 씌워야 하는데 이건
완전히 거저 얻게 된 기회 아닌가. 그 이후의 진행상황은 더 가관이었다. 복수를 하러 돌아온건지
뭐하러 온건지 알 수가 없다.
허구헌날 모여앉아 누가 범인이냐 아웅다웅하기만 할뿐 제대로 복수를 해 보지도 못한다. 복수를
하려는 찰나 한진희가 깨어나서 용서해주랜다. 결국 시청자들은 복수의 통쾌한 과정을 지켜본게
아니라 도대체 언제쯤 복수를 할까 기다리는 마음으로 보다가 그것마저 배신당한 거라고 볼 수 있다.
게다가 중간중간 멜로 분위기에서는 도무지 몰입할 수 없는 신파조의 대사가 넘쳐났다.
시청자는 이미 알고 있는 범인을 가지고 등장인물들이 거의 마지막회가 다 될때까지도 모르고
있으니 이게 어찌 복수극이라 할 수 있는가? 또한 마지막에 복수의 대상을 용서할만한 이유가 그럴
듯하다면 동의를 할 수 있겠지만 그것마저도 설득력 있게 다가오지 못했다.
고의로 재판에서 진 변호사가 잡혀가 절에서 사는 장면이나 성동일이 잡혀 있는 도중에 도박판에
끼어달라고 떼를 쓰는 장면은 그나마 몇 번 안되게 행해지는 복수마저 코미디로 만들어버렸다. 또한
줄줄이 달린 패거리들도 잘못된 설정이다. 착한 쪽의 지원군이 너무 많으니 악한 쪽이 보기 좋게 당하
리라는게 뻔해진다. 아무리 악한 쪽에서 음모를 꾸며도 든든한 지원군이 있으니 그야말로 막강하다.
균형이 깨져버린, 또는 선한 자가 쉽게 이기는 게임은 재미가 없다.
고수의 연기를 빼면 그저 그런 드라마였다. 아마도 통쾌한 '복수'에 대한 배신이 가장 이 드라마를
실망스럽게 만들었을 것이다.
이제 <부활>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가겠다. <부활>은 초반부 <그린로즈>만큼 시청자를 끌어들이
지는 않는다. 서하은이라는 털털하고 사람좋은 경찰과 깐깐하고 차가운 유신혁이라
는 건설회사 부사장을 교차해 보여주며 두 사람의 인연을 조금씩 풀어낸다.
20년만에 만난 쌍둥이 동생이 자신 앞에서 살해당한 현실에서 서하은이 택한 복수는 동생과 하나가
되는 것이다. 그는 동생인 유신혁으로 살아가며 복수를 시작한다. 여기서부터 <그린로즈>와의 차별
점이 확연해진다. 그는 고수처럼 망설이지도 않고, 누가 범인인지 몰라 갈팡질팡 하지도 않는다.
재빨리 복수의 대상을 알아내고 그들을 향해 성큼성큼 다가간다. 또한 여러명의 막강 패거리를 거느
렸던 고수와 달리 엄태웅(하은, 신혁 부르기가 애매해 그냥 배우 이름으로)은 철저하게 혼자다.
치밀하게 복수를 향해 나아갈수록 외로울 수 밖에 없는 남자 주인공에게 시청자들은 더 강한 매혹을
느끼고 더 깊이 몰입하게 된다.
악당의 수준도 상당하다. 사실 <그린로즈>의 이종혁은 도무지 악당이라고 부르기에 안스러울만큼
감정적이고 주도면밀하지 못하며 조직적이지도 못했다. <부활>의 악당은 단순히 '악당'이라고 부
르기 힘들만큼 다층적이고 조직적이다. 고수는 이종혁이라는 악당 하나를 거꾸러뜨리면 됐지만 엄
태웅은 겹겹이 둘러싼 조직을 하나하나 해체해 본질적인 '악'을 향해 다가가야 한다. 도와주는 이라
고는 흥신소 천사장 뿐이다.
그 '악'의 규모도 만만치가 않은데다가 관계까지 얽혀 있다.
배후에 존재하는 건설회사 사장과 차기 대권주자인 야당 원내총무는 아버지와 절친한 친구 사이
였다. 건설회사 사장의 아들과는 라이벌로 계속 얽히며 야당 원내총무의 딸과는 약혼한 사이.
엄태웅은 그 관계에 숨막혀 하지 않고 그것을 이용한다. 비열한 아버지와 달리 정의감과 사명감
넘치는 기자인 소이현을 통해 진실에 접근해가게 만드는 것.
그러나 이 둘이 끝이 아니다. 가장 근원적인 '악'의 존재는 이정길. 그 역시 아버지의 친구로
아버지가 죽은 후 엄태웅의 엄마와 재혼을 한 가정적이고 한결같은 인물로 비춰진다. 그러나
그는 다른 인물들과는 비교가 되지도 않는 가장 악하며 교활한 존재이다. 다른 인물들은 엄태웅의
변화를 그리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이는 사이, 그는 서은하를 이용해 그가 서하은인지 유신혁인지
알아볼 계획까지 철두철미하게 세워놓았다.
자, 생각을 해 보자. 다른 두 인물은 자신들의 비리 때문에 교통사고를 가장해 친구를 죽였다. 그
두 사람은 대의를 위해 어쩔 수 없었다는 핑계로 끊임없이 자신들을 정당화한다. 그렇게 자신들을
합리화 시킨다는 것은 결국 자신들이 한 행위가 얼마나 큰 잘못인지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정길은
순전히 자신이 사랑하는 여자를 빼앗아 오기 위해 친구를 죽음으로 몰아간다. 그 후 결국 재혼에
성공을 했고 딸까지 두지만 신혁을 부사장 자리에 앉혀 애지중지한다. 그러나 하은이 등장을 하자
그의 죽음에도 개입을 한다. 자신의 친구와 그의 아들까지 죽여놓고서 애처가에 좋은 아버지같은
자상한 표정을 짓고 있는 그는 그야말로 소름끼치는 악역 중의 악역이다.
엄태웅은 아직까지 그의 본모습은 모르고 있다. 그가 악을 헤치고 지나가 결국 그와 맞닥뜨리게 되었
을때, 그의 복수는 흔들릴 것이다. 어머니의 남편이고 여동생의 아버지인 사람에게 복수를 한다는
것. 시청자들은 그의 갈등에 깊이 공감하며 드라마 상에서 보기 드문 악역(사실 토지의 조준구 같은
악역은 이에 비하면 악역도 아니다 -_-;;)인 이정길에게 치를 떨 것이다.
애거사 크리스티 추리소설 중 걸작이라고 생각하는 작품이 <커튼>이다. 앨큘 포와르의 마지막편인
이 작품에는 교묘하고 능수능란한 화술로 타인이 살인을 저지르도록 교사하는... 그러나 직접적인
화법이 아니기에 도저히 살인교사죄를 적용할 수 없는 범인이 나온다. 이정길을 볼 때마다 그 범인이
생각난다.
나와 8%라는 부활 팬들은 외롭게 걸음을 내디딘 엄태웅과 같은 편이 되어 그의 복수에 환호성을
지르고 축배를 들 것이다.
그가 험난한 복수를 끝내는 그날을 즐겁게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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