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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23/08/13 21:53:03
Name 김유라
Subject [일반] [노스포] <콘크리트 유토피아> 후기, 기본기는 출중했으나 부족한 각본 (수정됨)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딱 포스트 아포칼립스물의 기본기를 충실하게 해낸 영화, 하지만 그 이상은 전혀 없는 영화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1. 이 영화의 장점은 무엇인가?]
우선 이 영화의 잘한 점은 그동안 한국 영화의 고질적 문제였던 불필요한 부분들을 전부 드러낸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신파 없습니다. 놀랍게도 그것만으로도 이미 이 영화는 절반 이상의 성공을 해놓은 것입니다. 그래서 쓸모없이 감정이 낭비되는 부분도 없고, 관객이 공업적인 최루를 맞을 일도 없습니다. 그리고 디스토피아 세계를 출중하게 보여줍니다. 개인적으로 <폴아웃 3> 에서 '리벳 시티'를 처음으로 들어갔을 때의 그 황량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조금 더 다듬었으면 훌륭했을 것 같지만, 이건 말그대로 개인적인 아쉬움이고 충분히 잘만들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두 말 할 필요가 없는 이병헌의 연기이죠. 제목에서 지적한 '부족한 각본' 은 이병헌의 연기력이 상당 부분 채워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2. 이 영화의 단점은 무엇인가?]
그런데 결국 이 영화가 더 좋은 호평을 받기 위해서는 각본이 뒤따라줬어야 했는데, 그 각본은 냉정하게 이야기해서 못 만든 편입니다. 기본기가 좋다는 말은 다르게 이야기하면 나오는 패턴이 가변적이지 못하고 굉장히 뻔하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이미 이 영화는 누가 착하고 누가 나쁜지, 결론과 답을 정해놓고 영화를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충격적인 반전이나, 무언가 생각해볼만한 요소는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이미 "얘는 착하고, 얘는 나쁘다" 라는 이분법적인 사고방식으로 극중인물들을 완벽하게 갈라놓았습니다.

[3. 왜 단점은 부각되는가?]
디스토피아라는 세계관 속에서 선악을 갈등하는 인물이 없습니다. A팀은 무조건 좋은 사람-B팀은 무조건 나쁜 사람입니다. 그런데 아시다시피 디스토피아/포스트 아포칼립스 세계에는 기본적으로 그런 좋고 나쁨 사이에는, 단순히 '좋고 나쁘다' 라고 설명할 수 없는 현실과 이상의 괴리란게 존재합니다.

공존과 상생을 추구한다? 식량은 조상님이 나눠주는게 아니고, 치안은 상주신이 지켜주는게 아닙니다. 당연히 미친 놈 하나 섞여들어오면 집단이 붕괴되고 공멸의 단계로 이어지죠. 철저한 이기주의로 우리 집단만의 생존을 추구한다? 사람이 짐승처럼 살아남는 것을 존중해야할까요? 게다가 그런 과격한 고립주의는 갈등을 초래하고 비극이 비극을 낳는 악순환으로 이어집니다. 즉, 이 문제에는 절대로 정답이 없습니다. 그래서 포스트 아포칼립스물은 할 수 있는 이야기가 많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대해 감독은 "자, 이제부터 내가 하는 말이 다 맞아." 라는 다소 실망스러운 말을 던집니다. 그 실망스러운 멘트의 결과는 '비이성적인 전개' 로 이어집니다. 나쁜 사람은 계속 나쁜 짓만 하는 것처럼 묘사가 되거든요. 그렇기에 보시다보면 "대체 왜?" 라는 의문에 가까운 궁금증이 많이 쌓이게 되죠.



스포일러를 하게 되면 할 이야기가 굉장히 늘어나지만, 나머지는 관객 분들을 위한 재미로 남겨두고 싶습니다.
혹시나 감독판이 있어서 조금 더 세부적인 각본 설명이 가능하다면, 수작의 반열에 충분히 오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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쿼터파운더치즈
23/08/13 22:03
수정 아이콘
저도 방금 막 보고 왔는데
초중반까지는 진짜 잘만들었다 재밌다 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중후반부에 확 깼습니다

길게 적었다가 본문은 노스포인데 제 댓글이 스포가 될수도 있을거 같아 지웠네요
한가인
23/08/13 22:05
수정 아이콘
초중반까지는 너무 좋았는데 후반에 갸우뚱 하는 장면의 연속에 아쉬운 작품이 되었습니다. 박보영 캐릭터때문에 답답해 죽는줄
만찐두빵
23/08/13 22:38
수정 아이콘
2번은 그닥 공감이 안가네요. 악인과 선인이 이분법적으로 구분된 영화라는 느낌은 없었는데요.
김유라
23/08/13 22:55
수정 아이콘
스포를 못하니 디테일한 설명이 어렵네요.

선악보다는 감독의 가치관이 강요된다는 느낌이라고 봐야겠네요.
만찐두빵
23/08/13 22:58
수정 아이콘
아마 캐릭터의 결말을 받아들이는거에 따라 감상이 나뉠순 있겠네요. 아마 저랑은 반대 방향으로 받아들이신듯
Sensatez
23/08/14 01:02
수정 아이콘
어제 영화 봤지만 감독이 본인의 가치관을 강요한다는 느낌은 전혀 못 받았는데...
어느 부분에서 그런 느낌을 받으셨는지 여쭤도 될까요? 스포 때문에 좀 그러시다면 쪽지로도 감사하겠습니다.
김유라
23/08/14 09:02
수정 아이콘
너무 내용이 길어져서 글을 추가로 하나 더 작성드렸습니다.
빼사스
23/08/13 22:45
수정 아이콘
설정에 구멍이 많고 극을 끌고 가기 위해 억지로 몰아가긴 하지만 그런 걸 안 따지면 재밌긴 하더라고요
23/08/13 22:47
수정 아이콘
2번 공감은 못하겠네요

뭐 도덕점 관점에서 보자면 선인과 악인으로 볼수있겠지만 그게 정답이라고 묘사한거는 아니거든요.
Asterios
23/08/13 22:59
수정 아이콘
2번은 "이 사람은 옳고 이 사람은 잘못됐다"가 조금 더 정확한 표현이 아닌가 싶네요.
23/08/14 01:21
수정 아이콘
이게 딱 그지점에 있는 영화인것 같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

분명히 괜찮은 영환데, 어딘가 단점도 명확한거죠

전자를 보는 사람들은 이러이러한 부분이 괜찮으니 아쉬워도 결론은 괜찮다는 평

후자를 주목하는 사람은 그 반대죠

저는 전자인데, 한국사회만이 가진 아파트에 대한 집단 심리를 잘 그려낸 부분이 좋았습니다

전세계에 보편적인건 아니고, 딱 한국인만 느낄 포인트가 영화내내 가득했죠

그게 이 영화의 가장 핵심이구요
퀘이샤
23/08/14 01:48
수정 아이콘
관객의 판단에 맡기는 부분이 많더군요
다만 후반을 좀 더 짜임새,,, (안 쉽겠죠,,, 그게 되면 걸작이 되겠지만,,,)
충분히 볼만한 영화다 싶었습니다
왕립해군
23/08/14 02:29
수정 아이콘
이분법적이가보다눈 쉽게 타자화한다는게 가까운거같아요..

디스토피아 상황에서야 쉽게 나타나는 현상이지만 아파트라는 소재로 인해서 이런 타자화 현상이 그런 상황에서만 생기는게 아니라 쭉 내재되어 왔단걸 보여주죠..

타자화된 대상을 인식하는 과정에서 이분법적으로 보이이는것도 어느정도 맞는 말이죠.
23/08/14 06:53
수정 아이콘
서로 반대 방향으로 묘사된 인물들의 결말을 생각해보면 당연히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주제의식이 뚜렷한것 아닌지
23/08/14 07:48
수정 아이콘
후반 결말부가 전체적인 흐름에서 이질적이긴 했는데 이게 감독이 원한 건지 흥행을 위한 고육책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루시우
23/08/14 07:55
수정 아이콘
이 영화를 볼때 종교적 해석을 빼놓으면 반만 본거 같아요.
관련 리뷰들도 보시길 추천드립니다.
김유라
23/08/14 09:02
수정 아이콘
오호... 그런게 또 있었군요. 감사합니다.
김유라
23/08/14 09:02
수정 아이콘
오호... 그런게 또 있었군요. 감사합니다.
기사조련가
23/08/14 10:32
수정 아이콘
저는 포스트 아포칼립스물 소설 많이 봤더니 이병헌이 너무 아쉽긴 하더라구요 더 잔혹하고 카리스마있게 권력 틀어쥐고 내부 숙청하고 완벽한 부하들을 조직했어야 하는데 너무 쉽게 권력이 나가버려요. 그 옆집 고딩도 못오게 하거나 빠르게 처리했어야 하는데 말이죠.
창은 고대 이래로 최고의 무기고 남자들 만이라도 전원 창 들고 버텼으면 황궁 아파트 지켰을꺼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더 잔인하게 하면 일 못하는 노인들이랑 부상자는 방출하고요
LowTemplar
23/08/14 15:53
수정 아이콘
그러면 그냥 평범한 서바이벌물이었겠죠. 이 영화는 그런 얘기를 그리려고 한 게 아닐겁니다.
그럴 거였으면 이병헌 캐릭터의 약점을 주지 않았겠죠. (이 약점은 사실 처음부터 암시됩니다.)
기사조련가
23/08/14 23:39
수정 아이콘
사실 재대로 된 아포칼립스 서바이버물은 국내에서 없었으니 그랬으면 어땠을까 하는 작은 마음이요 크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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