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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23/02/01 00:00:32
Name 꿀행성
Subject 웹소설의 신
# 1

웹소설의 신으로 검색을 해보니까 책이 한권 나오네요.
의학 웹소설, 그리고 유튜브 채널로 나름 유명한 전문의 작가의 작법서입니다.
저랑은 딱히 관계가 없는 책입니다.

# 2

예전에 직장 선배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세상에는 현실적인 드림카가 있고, 비현실적인 드림카가 있다.
저에게 있어 비현실적인 드림카는 아우디의 R8이고, 현실적인 드림카는 르노의 SM XX 이었습니다.
당시 저는 구매한지 10년이 넘은 준준형 차량을 몰고 있었습니다.
어떻게 해서든 월급을 쪼개 할부금을 낼수있을까 궁리했지만, 그래도 카푸어는 안되지 하며 단념했습니다.
그리고 얼마안가, 웹소설 시장에 발을 디디게 됩니다.

# 3

직장생활을 하면서 웹소설을 병행한지 삼 년 정도가 되었을때,
저는 그동안 받았던 인세를 모두 털어 BMW 선수금을 내었고, 나머지 잔액을 2년간 분할납부 했습니다.
여전히 학자금 대출은 남아있었고, 생활은 빠듯했지만 인세로 받은 금액 만큼은 온전히 저만을 위해 사용하고 싶었습니다.
매달 월급의 40%를 어머니께 생활비로 드렸고, 그 시간이 10년, 액수로는 1억 5천이 넘었던 시기였습니다.
아버지가 작고하셨던 이십대 초반 이후로 제 월급을 전부 사용해본적이 없었고, 그로인한 반발심(?)이 작용했던것 같습니다.

# 4

특정한 대상을 신으로 모실수 있다면 저는 '웹소설'이란 신을 모실겁니다.
평범한 직장이었던 제가 조금이나마 특별해진것 같았고, 월급을 모두 소진하고도 돈이 남는 기적을 보았습니다.
그렇게 학자금 대출과 마이너스 통장을 갚고, 삼십대 중후반이 되어서야 순자산 플러스를 기록했으며, 일년전 출판사의 무리한 지원 덕분에 내집장만도 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처럼 회사를 다니면서 하루에 오천 오백자만 꾸준히 쓸 수 있다면 인생에 큰 부침은 없을것 같다.
오 년간 해온 일이었기에 문제될것이 없어 보였습니다.

# 5

눈치가 빠른 분들이라면 '일년전'의 의미를 잘 아실겁니다.
집값이 상당히 빠지기 시작합니다.
언젠가 주변 지인에게 농담조로 말한적이 있습니다.
투자에 있어 마이너스의 손인 내가 집을 샀다.
이제 곧 집값은 떨어질 것이고 나는 무주택자들의 영웅이 되어 순교할 것이다.
사람은 역시 입을 조심해야 합니다.
신혼집 목적으로 아파트를 구입하자 마자 전쟁이 터지고 물가가 치솟더니 소설속 파워 인플레처럼 금리가 치솟습니다.

# 6

그래도 그것까지는 괜찮았습니다.
1주택 영끌러들이 앵무새처럼 반복하는 말.
실거주 한채는 집값이 오르건 말건 상관 없다는 생각으로 정신승리하면 되니까요.
나름대로 '처음 집을 살 때부터 한달 나가는 원리금을 기준으로 샀기에 존버하면 된다'는 졸렬한 핑계를 곱씹었습니다.
부동산은 장기적으로는 언제나 우상향했으니, 악으로 깡으로 존버하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회사에서 권고사직을 당하기 전까지는요.

# 7

아니, 14년을 공백없이 직장생활만 했는데 그 끝이 권고사직이라니.
심지어 저는 '인세'라는 사업소득이 있기 때문에 실업급여도 나오지 않는답니다.
그러면 나는 고용보험료를 왜 납부하고 있었던건지 이해는 거지 않지만, 그건 일단 지워버렸습니다.
당장 삼월에 상견례를 해야 하는 판국에, 글을 쓴다고는 하나 반백수 신세가 되었습니다.
왜 하필.
14년간 별 문제 없었다가 결혼을 준비하는 이 때에 무직자 신세가 된 걸까요.
이 신묘한 타이밍에 화도 나고 헛웃음도 났지만, 어쩌겠습니까 방법을 찾아야지.

# 8

자세한 이야기는 할 수 없지만 저는 집을 산 댓가로 본래 인세의 50%를 출판사에 반환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반환 기간은 앞으로 4년 정도를 보고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죽었다 깨어나도 결혼하고 나서 인세만으로 살 수 없다는 겁니다.
자연스럽게 직장을 다시 구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합니다.

# 9

저는 14년간 5회 이상의 이직을 경험했고, 종종 이직을 연애에 비교하곤 했습니다.
이직이 안될때에는 별의 별 방법을 써도 안되고, 이직이 될 때에는 별거 안했는데 슉슉 진행됩니다.
이런 표현은 비약이겠지만, 거대한 자연의 섭리? 혹은 거스를수 없는 순리는 아닌지 생각합니다.
그 순리가 제게 말하고 있습니다.
응 지금은 안되는 시즌이야.

# 10

요즘 경기가 좋은 시장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제가 몸담았던 업계도 찬바람이 휭휭 붑니다.
그동안 이직하며 점프뛴 연봉을 도로 뱉어내야 하는 상황이지만, 그래도 뽑아만 준다면 감사할것 같습니다.
나이 서른 아홉에 반백수 상태로 결혼을 준비해야 하는 기분.
삐에로처럼 '응, 파혼하면 그만이야' 라고 던질수도 없는 상황입니다.
좋은 사람이거든요.

# 11

대박이란걸 친 적이 없는 그저그런 작가이지만, 그래도 배를 조금 내밀어 볼수있는게 몇 개 있습니다.
단 한번도 연재 중단을 한적이 없다는 점.
매년 적어도 한 질 이상의 소설을 완성했다는 점.
제 소설을 원작으로 한 웹툰이 네이버와 카카오에 연재되고 있다는 점.
하지만 가장 내세워볼만한게 있다면, 그건 장르의 다양성 이었습니다.
처음 유료 연재를 할 때 현판 스포츠물로 시작해 야구, 축구, 엔터테인먼트, 그리고 헌터물까지.
대박을 못친 것에 대한 보상심리일까요?
저는 언제부터인가 장르의 다양성에 집착하기 시작합니다.

# 12

글은 언제나 쓰기 싫지만, 가끔 존X게 쓰기 싫을 때가 있습니다.
웹소설의 신이 어쩌고 해놓고 불경하기 짝이 없습니다.
여러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저는 다음과 같은 결론에 도달합니다.

'내가 읽을때 제일 재밌어하는걸 안쓰니까 그렇지.'

왜 안쓰냐구요?
여러가지 장르를 완결지어온 저로서도 감히 도전하기 힘든 분야였거든요.
그 장르는 바로 '무협'이었습니다.

# 13

여차저차 플랫폼 심사를 뚫고 '무협' 장르로 연재를 시작했습니다.
웹소설을 읽으시느 분들은 아시겠지만, 이벤트를 시작하는 시점에 모든 흥망성쇠가 결정됩니다.
글을 쓰는 지금으로부터 몇 분이 지나면 유료화가 되고, 며칠이 있으면 이벤트가 시작되겠네요.
저에게는 무협이라는 장르로 연재를 시작하게 된 것에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성적이 괜찮다면 앞으로 계속 무협만 쓰고 싶거든요.

# 14

웹소설에 신이 있다면, 그 신은 이번에도 저를 도와줄까요?
생각치도 못한 잭팟이 터져서 직장을 굳이 안다녀도 될 상황을 만들어줄수도 있고,
반대로 처참히 실패한 뒤 언제나처럼 사람인과 잡코리아를 뒤적거리게 될수도 있습니다.
유료화로 진행되는 오늘 밤, 저는 기도를 하고 자볼까 합니다.

# 15

이제와 고백하건데,  # 1 에 쓴 '웹소설의 신'은 저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언급한 전문의작가와 저는 고등학교 동창 사이고, 20년이 넘도록 친한 친구로 지내고 있습니다.
처음 웹소설을 시작해보라고 제안한 친구가 바로 저 놈이기도 하구요.
앞서 말씀드렸던 것처럼 저는 웹소설을 신으로 모십니다.
그럼 저 놈은 신의 대리인 같은 걸까요?
재네 아빠, 목사님인데.


끝.


(혹시나 광고글로 보일수 있으니 본문과 댓글에 작품명은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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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말론
23/02/01 00:04
수정 아이콘
웹소설 조금 본다 싶으면 알만한 분이 #1, #15의 그 분이시겠군요
어찌됐건 여태 쌓아온 내공이 이번 무협에서 만개하셔서 물적으로 심적으로 편안해지시길 바랍니다
manbolot
23/02/01 00:05
수정 아이콘
검은머리 의사는 잘보고 있다고 친구분께..
최근 시리즈건 카카페간 무협이 많아서 어떤거 이실지 감이 안잡하네요
김꼬마곰돌고양
23/02/01 00:17
수정 아이콘
잘되면 저희회사랑 게임화 해요.. 킅..
23/02/01 00:24
수정 아이콘
잘되면 저희 회사에서 번역하시죠 흣
23/02/01 00:38
수정 아이콘
인생사 새옹지마, 유료화 건승을 기원합니다
인센스
23/02/01 00:45
수정 아이콘
선인세 거액으로 땡기고 인세 절반만 차감하는 계약인가요? 괜찮네요... 어디 출판사인지 궁금해지네요 크크
kartagra
23/02/01 02:34
수정 아이콘
jc 쪽이신가보군요. 구구절절 공감가는 말뿐이네요. 특히 유료화 들어가기 전 그 미묘하고도 피말리는 기분은 참... 말로 설명하기가 힘들죠. 잘 되길 저도 빌어봅니다.
23/02/01 03:56
수정 아이콘
글 쓰는게 쉽지 않으실텐데 일단 대단하다고 먼저 말씀드리고 싶네요 글을 써볼려다가 접었는데 사실상 글쓰는데 재미도 그렇고 빈약한 능력으론 답이없더군요 그렇게 노력한만큼 언젠간 돌아오실겁니다 인생에 한번쯤은 대박 터지는게 인간 아니겠읍니까 잘되길 바라겠습니다.
진산월(陳山月)
23/02/01 05:31
수정 아이콘
당연히 무협소설에 관심이 많습니다. 찾아서 읽고 있는데 아직은 아쉬운 부분이 많아 보입니다. 더 읽어 보겠습니다.
펠마리온
23/02/01 05:54
수정 아이콘
무협 좋아합니다. 유료화까지 무사안착 후 대박 기원합니다. 하루에 정해진 분량을 업로드 한다는 것에 작가분들에게 무한 감사드리고 있습니다.
23/02/01 08:57
수정 아이콘
무협 장르 좋아하는데 건승하시길...
及時雨
23/02/01 09:50
수정 아이콘
힝 부럽다 저는 종이책 작가라 작년 하반기 인세 13만원 나왔서요
23/02/01 10:26
수정 아이콘
화이팅입니다 작가님. 벼랑끝에서 실존을 마주친 순간 진짜 걸작이 탄생하리라 믿습니다.
그리움 그 뒤
23/02/01 12:13
수정 아이콘
제가 오랜 무협팬이고 무협소설에 주로 투덜대는 댓글을 많이 쓰는 투덜이스머프입니다.
혹시나 제가 꿀행성님 소설에도 악플(욕은 안씁니다. 주로 개연성이나 설정에 대한 아쉬운 부분이나 그런 종류의 댓글들입니다.)...을 쓸지도 모르겠는데
잘 이해해주십쇼~
보통 그래도 계속 보면서 애정이 있는 경우에 주로 댓글을 씁니다.
정말 까기 위해서 쓰는 댓글도 간~~혹 있긴 하지만요....
확실한건 고민하고 쓰는 소설과 그렇지 않은 소설은 표가 납니다.
여튼 건승하시고 대박나시기 바랍니다.
고오스
23/02/01 15:37
수정 아이콘
직장 다니면서 성실하게 연재하는게 정말 어려운 일인데 그걸 수년동안 지속하셨군요

정말 대단합니다 :)

이정도로 성실하신 분이라면 뭘 하시든 잘 될 껍니다
23/02/01 15:41
수정 아이콘
무협 매우 좋아하는데 연재하시는 작품이 무엇인지 궁금하네요. 시리즈 플랫폼이면 찍먹해 보고 싶습니다.
23/02/01 21:50
수정 아이콘
무협!
건승하세요!
23/02/01 23:06
수정 아이콘
무협 너무 좋아합니다. 잘되실겁니다. 이 또한 지나가리
23/02/02 10:15
수정 아이콘
저도 무협 팬인데 힌트 좀 주십시오..
이 글 보고 검머의 시작했는데
글 읽으면서 소름 돋는거 오랜만이네요.
소름 돋는 이유가 일반적이지 않은게 재밌구요 크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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