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 자유 주제로 사용할 수 있는 게시판입니다.
- 토론 게시판의 용도를 겸합니다.
Date 2022/08/10 17:16:36
Name 노익장
Subject "엄마는 그런 거 못보겠어"
내가 어렸을 때부터 어머니는 유독 잔인하거나 슬픈 영화를 싫어하셨다. 비극적인 영화도 좋아하시지 않았다. 코미디나 로맨스 영화는 좋아하셨지. 조금 피가 튀기거나 하는 영화를 보려면 손사래를 치셨다.

"엄마는 그런 거 못보겠어"

철없을 때 나는 비극적이고 잔혹한 영화가 깊이 있는 영화라 생각했다. 나치 독일의 악행을 다룬 쉰들러 리스트나 피아니스트를 보며 '이게 영화지'라고 되내었다. 대부 시리즈를 좋아했고 서부극도 즐겨봤다. 코미디는 얕고 로맨스는 유치하다고 여겼다. 정작 얕고 유치한 건 나 자신이면서도.

어린 나에게 비극은 남의 일이고 화면 속의 이야기일뿐이었다. 부모님은 건강하시고 큰 사고를 겪은 적도 없었다. 누군가에게 심하게 학대당하거나 괄시받아 본 적도 없다. 학교폭력도 남의 일이었다. 초등학생 때 길가다 중학생 형들한테 천원을 뺏긴 게 기억하는 폭력의 전부이니.

커가면서 비극은 나와 무관한 이야기나 우화 속의 교훈담이 아니게 되었다. 화면 밖의 내 곁에도 비극은 가득했다. 학교의 선배는 만스무살을 겨우 넘겨 암으로 죽었고 친구의 아버지가 산업재해로 돌아가셨다. 가까운 친척을 병으로 잃었다. 제일 먼저 결혼해 모두가 축하해 준 동기는 신혼에 배우자를 잃었다. 아이는 아버지의 얼굴을 몰랐다.

잠시 봉사활동으로 가르치던 어린 탈북자 아이는 돌보아 줄 어른이 없어 늘 새벽에 학교에 갔다. 내가 봉사했던 방학 동안에만 그 아이가 살던 임대아파트 단지에서 2명이 자살했다.

어느덧 나에게 비극적인 영화는 트리거가 됐다. 영화에서의 비극적인 장면이 나올 땐 집중이 깨지고 주변의 비극들이 오버랩됐다. 비극적 이야기는 실존하는 얼굴을 가지고 나에게 다가왔다. 그 얼굴들은 익숙했다.

나는 이제 뉴스도 영화도 슬픈 건 못보겠다. 피가 나오는 것도 질색하게 됐다. 그냥 웃기고 시원하고 사랑스러운 영화만 찾아보게 된다. 친구가 보자는 영화가 꺼림직하면 웃으며 말한다.

"야 이젠 이런 영화 못보겠다. 웃긴 영화없냐?"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22/08/10 17:19
수정 아이콘
아이를 키우기 시작하면서부터 아동학대나 죽음에 대한 뉴스를 못보겠더라고요.
저도 그냥 웃기고 사랑스러운 이야기 위주로 봅니다. 슬픈 이야기들이 갈수록 리얼하게 다가와요..
OvertheTop
22/08/10 17:21
수정 아이콘
공감합니다. 전 신문기사도 스킵합니다. 도저히 못보겠더라구요.
22/08/10 17:21
수정 아이콘
나이먹으면서 슬픈거는 정말 보기 힘들긴 하네요. 어지간하면 꺼리게 되요.
톨기스
22/08/10 17:22
수정 아이콘
저도 그래서 이 글 아래 반지하 일가족 기사나 강남역 실종 기사들을 제대로 못봅니다. 잠깐 보고 휙 지나가요.
Cazellnu
22/08/10 17:23
수정 아이콘
1,20대에 링같은거 잘 만 봤는데 저도 이제 조금만 이상해도 못보겠더군요.
아린어린이
22/08/10 17:23
수정 아이콘
결이 비슷할수도 아니면, 좀 다를수도 있는 이야기인데 그래서 저는 예능을 더 좋아합니다.
간혹 영화 홍보차 예능에 나와서 (물론 그냥 제느낌이겠지만) 예능인 보다는 영화배우가 더 위인듯한 모습을 보이는 경우가 있는데,
정말 이해 안갑니다.
저 개인적으로 아주 힘든 시기에 그래도 한주에 한번씩 크게 웃게 해준게 런닝맨이었는데요.
저에겐 기생충이고 오징어 게임이고 간에 그냥 이광수가 최고의 배우입니다.
그냥 평범할땐 즐겁고 말았는데... 힘들었을때 이런 웃음이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정말 깊게 느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광수 런닝맨 컴백좀....
노익장
22/08/10 17:27
수정 아이콘
저도 중고등학생 때 안봤던 무한도전의 종방 가까이 되서야 챙겨봤습니다. 나이 드니깐 마냥 웃긴게 좋더라구요
22/08/10 17:26
수정 아이콘
요즘 유튜브 코미디 재밌더라고요
숏박스랑 피식대학이랑 메타코미디클럽 되게 좋아합니다
SigurRos
22/08/10 17:30
수정 아이콘
저도 안봅니다. 드라마든 영화든 19금붙은건 99%확률로 안보고 영화는 마블영화만 주로 봐요.
22/08/10 17:45
수정 아이콘
전 예전부터 심각한 다큐멘터리도 호러 스플래터무비도 잔인한 영화도 즐겨보긴 했는데, 또 작성자분과는 반대로 로맨스영화나 코미디영화도 좋아했습니다. 지금도 크게 변하진 않아서 그냥 두루두루 잘 보는 편이네요.

전 잔인한 장면이나 과격한 연출도 그게 서사에 필요한 묘사라면 충분히 납득하는 편이라 이 점에서 약간 입장이 다른지도 모르겠습니다.
창조신
22/08/10 17:46
수정 아이콘
나이 들다보니 비극에 현실적으로 공감하게 되다보니 소설이건 영화건 뉴스건 못보겠어요
예술적인 비극보다는 뻔한 해피엔딩이 더 좋아요.
22/08/10 17:47
수정 아이콘
동감합니다. 너무 펑펑 터지는 것, 너무 템포가 빠른 것, 너무 심각한 것, 다 싫고, 살짝 유머가 곁들여진 가볍고 잔잔한 얘기들이 좋네요.
유브 갓 메일 최애영화입니다.
메타몽
22/08/10 17:50
수정 아이콘
저도 비극을 좋아했는데 어느순간부터 비극보다는 밝고 즐거운게 좋습니다

잘만든 비극 영화를 여전히 보지만 이왕이면 다홍치마라고 밝고 즐거운게 더 좋습니다

그래서 창작작품들도 뻔하지만 밝은 내용이 더 많은거 같네요
AaronJudge99
22/08/10 17:51
수정 아이콘
(수정됨) 앗……

저는 영화에서 전쟁이나 그런거까진 보겠는데 현실적인 비극은 좀 힘들더라구요
소설은 피폐류는 손도 못대겠고…
몰입하면서 읽다 보니까 내 마음이 다 아픈 느낌?

저는 비극은 아닌데 쾅쾅 터지고 템포 빠른 영화가 좋긴 하던데..확실히 아버지는 별로 안좋아하시는거같긴 했어요
아버지 표현으로는 [죽이고 살리고] [정신 사나운] 영화는 꺼려지게 된다시던 크크

그런 아버지마저도 영화관에서 재밌게 보시게 한 탑건 매버릭…
새우튀김
22/08/10 17:58
수정 아이콘
전 여전히 좋아하는데 퇴근하고 밥먹으면서는 유달리 시트콤을 찾게됩니다... 요즘 더 보이즈 시즌 3 재밌게 보고 있는데 그건 유독 저녁먹으면서 못보겠더라구요
-안군-
22/08/10 18:04
수정 아이콘
얼마전에 썸타던 여성분이랑 영화보러 갔는데, 액션영화 좋아한다길래 수스쿼 2를 봤거든요.
근데 그분이 이거 너무 잔인하다고, 왜 이런걸 골랐냐면서 혼났어요.
문제는 제가 그 영화 보는 내내 잔인한 장면에서 낄낄대면서 웃고 있었다는거;;; 그리고 깨졌죠. ㅠㅠ
제가 공감능력이 부족했나 봅니다. ㅠㅠ
22/08/10 18:27
수정 아이콘
전 티비에서 어려운 아이들 돕자며 나오는 광고가 너무 힘들더라구요. 특히 요새 화상 입어서 아이가 울고 엄마가 치료하느라 힘들어하는 내용은 나오자마자 돌려요. 쓸데없이 공감능력이 높은건지 내 새끼가 그랬다면 하는 생각이 들어서 견딜 수가 없어요.
22/08/10 19:19
수정 아이콘
나이드니 저도 슬슬 그렇더라구요. 슬픈 소식이나 기사에 최대한 감정없이 넘겨내는 것에 익숙해지고 있어요.
얼마전 꼬꼬무에서 재조명 됐었던 씨랜드참사도 못봤어요.
22/08/10 22:47
수정 아이콘
슬프고 우울해도 의미가 있는 영화면 보겠는데.. 잔인한건 못보겠어요. 잔인한거 보는게 정신건강에 안좋다고도 하고요.
쿠퍼티노외노자
22/08/11 01:20
수정 아이콘
언제부턴가, 우울하고/슬프고/무서운 영화나 드라마보다는 웃고 즐거운걸 보려고 합니다.
안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잠자리에 들면, 편히 잘수가 없더라구요.
그 보단, 재밌고 즐거운 감정으로 하루를 끝내는게 더 좋아요.
멋진신세계
22/08/11 07:59
수정 아이콘
예전엔 소설도 우울하지만 계속 곱씹을 수 있는 것들을 좋아했는데 갈수록 그런 책을 못 읽겠더라구요..
에베레스트
22/08/11 09:04
수정 아이콘
저도 그렇네요. 나이가 들면서 잔잔하고 가벼운 것들이 좋습니다.
요 몇년간 재밌게 본 드라마들이 멜로가 체질, 그해 우리는, 슬의생, 호텔 델루나같은 것들이었네요.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100793 컴퓨존 b760m 박격포 DDR5 특가 풀렸습니다(17만) [46] SAS Tony Parker 6154 24/01/29 6154 3
100792 갤럭시 S24 울라리 간단 사용기 [78] 파르셀9023 24/01/29 9023 9
100791 오늘 개혁신당에서 여성 신규 공무원 병역 의무화 공약을 발표했습니다. [252] 쀼레기14270 24/01/29 14270 0
100790 두 개의 파업: 생명 파업, 출산 파업 [74] 조선제일검10464 24/01/28 10464 10
100789 유승민 "당을 지키겠다…공천 신청은 하지 않아" [121] Davi4ever13949 24/01/28 13949 0
100788 [팝송] 그린 데이 새 앨범 "Saviors" [12] 김치찌개3419 24/01/28 3419 2
100787 [음악이야기]아마피아노 장르를 아시나요? 저의 첫 아마피아노 DJ 셋 공유드립니다~! [5] 세바준3351 24/01/27 3351 0
100786 초등교사노조 서울 집회…“늘봄학교, 지자체가 맡아야” [144] 칭찬합시다.11705 24/01/27 11705 0
100785 대구 이슬람사원 앞 돼지머리 둔 주민 ‘무혐의’ [176] lexicon10727 24/01/27 10727 12
100784 FT "남녀 가치관차이, 갈등심화는 범세계적 경향" [128] 숨고르기11729 24/01/27 11729 0
100783 서울 도봉구 방학동 아파트 화재사건 분석이 나왔습니다 [34] Leeka9198 24/01/27 9198 3
100782 월 6만2천원에 대중교통 무제한 이용 '기후동행카드' 드디어 나왔습니다 [53] 프로구29311 24/01/27 9311 0
100781 파리엔 처음이신가요? [22] 아찌빠5981 24/01/27 5981 23
100780 [에세이] 이 길이 당신과 나를 더 가깝게 해주기를 [1] 시드마이어2951 24/01/26 2951 5
100779 유럽연합의 규제에 맞춘, 애플의 서드파티 스토어 허용 + NFC 개방 발표 [30] Leeka6943 24/01/26 6943 3
100778 비권 92학번은 동년배 운동권에 미안함을 느껴야할까? [167] 칭찬합시다.9869 24/01/26 9869 0
100777 꼭두각시의 주인 [12] 머스테인4151 24/01/26 4151 2
100775 지방노동위원회 채용내정 부당해고 사건 패소 후기 [50] 억울하면강해져라8727 24/01/26 8727 46
100774 도대체 왜 손흥민은 박지성보다 국대에서 부진하게 느껴질까? [170] 개념은?14152 24/01/26 14152 9
100772 배현진, 서울 길거리에서 피습 [169] 김유라21563 24/01/25 21563 0
100771 영남지역 교수가 경북일보에 이준석의 천하삼분을 응원하는 칼럼을 기고했네요. [471] 홍철9567 24/01/25 9567 0
100770 5분기만에 SK하이닉스가 흑자 전환했습니다. [13] DMGRQ6605 24/01/25 6605 2
100769 잊혀진 다이어트 - 32kg의 다이어트에 성공하고 난 후기 [23] 랜슬롯6061 24/01/25 6061 16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1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