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석 국민의 힘 당대표를 중심으로 치열한 권력투쟁이 벌어지고 있다. 세부적인 내용은 뉴스를 통해서도 익히 보도된 만큼 굳이 덧붙이지는 않겠다. 이 글에서 하고 싶은 이야기는 그러한 투쟁의 밑바닥에 깔린 훨씬 근본적인 문제다.

결론부터 말해 작금의 권력투쟁은 보수진영 내부에서의 세대교체를 둘러싼 힘싸움에 가깝다고 본다. 이준석이나 윤석열 개인보다는 이들을 둘러싼 시대적인 환경이 이 싸움에 훨씬 더 중요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렇다면 그 세대교체란, 그리고 힘싸움이란 무엇인가?

이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현재 한국 보수진영의 내부 구성에 대해 이해할 필요가 있다. 기본적으로 보수진영은 장, 노년층을 중심으로 한 ‘반공 블록’과 청년층을 중심으로 한 ‘청년 블록’의 느슨한 연합에 기초해 있다. 물론 두 블록은 자유민주주의, 자유시장경제의 전통적 우파적 가치에 우호적이긴 하나 개별적인 아젠다에 대한 우선순위의 설정이 완전히 다르다는 점에서 상당히 이질적인 집단이다.

굳이 비유하자면 1950년대 이른바 ‘보수대연합’으로 경제 우선주의를 제창하는 자유당계 정치인들과 민족주의를 중시하는 민주당계 정치인들이 결성한 일본 자유민주당과 같은 형국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이들 역시 냉전체제에서 자유진영과 함께 한다는 총론에서는 뜻이 같았지만 구체적인 정책 목표에 대해서는 상당한 이견이 있었고, 이것이 일본의 현재 파벌정치의 근간을 이루고 있다.

하지만 일본의 자민당은 내부의 치열한 권력다툼에도 불구하고 지금처럼 양 진영이 동서로 찢어져서 멸망전을 벌이는 단계로는 가지 않았는데, 왜 우리나라의 보수진영에서는 이렇게 치열한 내전이 벌어지고 있는가?

이것은 세대교체의 문제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 파벌 내부가 차례차례 세대교체 되면서 각 파벌간 긴장관계를 유지하는 일본 보수진영과 달리 한국의 보수진영은 세대 간 연속성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반공 블록으로부터 청년 블록으로의 급격한 세대교체가 이뤄지고 있다. 이것이 기본적으로 이 싸움을 폭력적으로 만들고 있다.

사실 지금 벌어지는 치열한 난타전에도 불구하고 이 싸움의 결말은 정해져 있다. 앞으로 1-20년 내에 우리나라의 보수진영은 8-90년대 남성들을 중심으로 한 청년블록으로 세대교체가 될 것이고, 그 이념적 성향 역시 반공 원툴의 현재에서 훨씬 복잡하면서 어떤 면에서는 더 공격적인 형태로 변화할 것이다. 이것은 정해진 미래이고 현 대통령과 중진 의원들이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벗어날 수가 없는 운명이다. 뭐 이들이 불로불사의 사이보그 기술이라고 개발한다면 모를까.

물론 이렇게 말하면 너가 무슨 점쟁이도 아니고 미래의 일을 어떻게 아느냐, 그렇게 된다는 보장이 있느냐, 지금 보기에는 이준석이 개 찌발리고 있는 것 같은데 등등의 이야기가 나올 것이다. 맞다. 내가 틀릴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단순히 직감으로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위와 같은 예측에는 이유가 있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현재 장, 노년층을 중심으로 한 전통 보수, ‘반공 블록’은 세대교체를 막아낼 만한 힘이 없다. 이는 그들이 후계자를 양성하는 데 실패했기 때문이다.

애초에 우리나라의 보수진영은 정말 ‘보수’하고 있는가? “한국엔 보수도 진보도 없어!”라는 통속적인 인상비평을 하려는 것이 아니고, 정말로 국제적인 기준에서 한국의 보수진영은 보수라고 할 수 있는지가 우선 의문이다.

애초에 보수란 혹은 보수주의란 무엇인가? 이것은 일종의 인식론이고 철학이다. 인간의 이성은 불완전하기 때문에 급진적인 개혁을 하기보다는 오랜 역사를 통해 유효성이 입증된 전통을 지키고 문제가 있으면 조금씩 바꿔 나가자는 것이 현대 보수주의의 근간을 이루는 사상이다.

그런데 한국 보수진영에 이러한 형태의 인식론 내지는 철학이라는 것이 존재하는가? 한국 보수진영의 수준이 낮다는 비난을 하려는 것이 아니라 이들이 가진 사상적인 토대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자칭 타칭 보수라고 하는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자신들이 ‘반공’이라고 말할 것이다. 그런데 비교정치적으로 반공은 보수의 본질적인 요소라고 보기 어렵다. 물론 이것은 한국 보수의 특수성으로 이해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다면 굳이 반공주의자를 보수주의자로 부를 필요가 있을까? 라는 물음이 남는다.

기본적으로 한국의 보수 이념은 냉전시기에 형성된 공산진영에 대한 대결의식과 마찬가지로 냉전 말기에 세계적으로 보급된 이른바 ‘신자유주의(물론 이 표현은 대단히 조악한 개념정의이긴 하다)’ 이념의 물리적인 융합으로 이뤄져 있다. 지난 30여년간 “빨갱이 놈들을 때려잡고, 세금을 내리고 규제를 없애 기업하기 편한 나라를 만들자.”라는 주장에서 한국의 보수진영이 벗어난 적은 없었다.

사실 보수라는 이념은 굉장히 생명력이 질긴 사상이다. 세계에 대한 인식론을 기초로 하고 있기 때문에 세대가 바뀐다고 해도 옷만 바꿔입으면 된다는 장점이 있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대중정당 중 하나가 영국 보수당이라는 점은 이러한 점을 보여준다.

그런데 반공을 핵심으로 삼고 있는 한국의 전통 보수는 이와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냉전시대 공산진영이 당장 국가의 존망을 위협하고 있던 시기에는 반공이라는 것이 굉장히 중요한 호소력을 가졌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은 시대가 변했고 정치권이 포용해야 할 목소리에는 공산주의에 대한 대결 이외에도 많은 것들이 있다.

하지만 반공을 핵심으로 삼은 이상 이러한 다변화되는 요구에 응답하기란 쉽지가 않다. 가령 한국 남성의 작은 성기를 상징한다는 ‘그 손모양’이 들어간 공공기관의 포스터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지에 대해 반공은, 그리고 ‘자유시장경제’는 어떠한 대답을 할 수 있는가?

사실 보수진영이 시대에 맞춰 변화하고, 후계자를 양성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요즘은 좀 잠잠한가 모르겠는데 10여년 전만 해도 뉴라이트니, 청년보수니 하며 젊은 보수를 키워야 한다는 목소리가 컸고 실제로도 그러한 노력이 많이 있었다.

하지만 그러한 시도들은 반공과 자유시장경제라는 그들의 전통적 가치를 젊은층에게 세뇌(?)시켜이념전사를 양성하려는 시도에 다름아니었고, 시대에 맞게 정치적인 컨텐츠를 업데이트하려는 시도는 아니었다.

결과 그러한 시도들은 대중과 괴리된 ‘청년 정치인’을 극소수 양성하는 데 그쳤고, 대다수의 청년층은 보수화되기는 했지만 전통 보수가 생각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결집하기 시작했다. 그것이 바로 지난 몇 년간에 걸쳐 치열하게 진행되는 ‘남녀갈등’과 반페미니즘 청년 남성세대의 등장이다. 정치경제적 거대담론보다는 남녀갈등과 같은 사회문화적인 갈등에 더 큰 관심을 가진 청년들이 좌파에는 속하지 못하고 보수진영으로 대거 밀려온 것이다.

아마도 전통적인 보수진영이 남녀갈등에 대해 가지는 생각은 작가 유시민의 “파도가 들이닥치고 있는데 해변에서 한가롭게 조개나 줍고 있다.”는 수준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대한민국을 잡아먹으려는 극악무도한 공산당들에 맞서 목숨을 건 투쟁을 해도 시간이 없을 마당에 고작 ‘남녀갈등’이라고?”라는 것이 솔직한 감상이 아니었을까.

물론 현실에서 치고박고 싸우는 정치인들이야 선거에서 이겨 자리를 보전하기 위해 그러고들 있는 거겠지만 그들이 그렇게 편을 갈라 태그팀 매치를 벌일 수 있는 것은 유권자들이 그 매치의 표를 사주기 때문이다. 즉, 보수진영 유권자들 스스로가 세대에 걸쳐 분열되어 있기 때문에 정치인들도 그러한 분열을 이용하여 싸울 수 있는 것이다.

애초에 세대 간 확장성이 없는 ‘반공’이라는 기치를 중심으로 한 전통 보수층은 자신들이 보기에는 황당한 이유(남녀갈등)로 전쟁을 벌이고 있는 젊은 세대에게 ‘성스런 투쟁의 불꽃’을 넘겨주지 않으면 안 될 상황에 왔고, 이는 어떻게든 기존에 토치를 가지고 있는 자들이 어떻게든 그 불꽃을 넘겨주지 않으려는 태도로 갈 수밖에는 없는 구조인 것이다. 반면 동시에 물려받으려는 입장에서도 왜 나이를 드실 만큼 드신 양반들이 무덤까지 갖고 가지고 가려느냐, 는 불만을 가질 수밖에 없는 것이기도 하다.

만약에 보수진영 내부에 장, 노년층과 청년층 사이에 공통되는 이념적인 기반이 존재하고, 그러한 기반을 중심으로 우리가 지켜야 할 공통의 가치라는 것이 존재했다면 지금보다는 세대교체의 과정이 훨씬 순조로웠을 것이다. (물론 그럼에도 개별 정치인들의 권력투쟁은 존재했을 것이지만.) 하지만 완전히 이질적인 집단이 권력을 공유하다가 어느 한 쪽으로 그것이 넘어가려고 하는 과정이 평화로울 것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1960년대 미국의 민주당은 보수적인 남부 민주당원들과 도시지역의 진보적인 민주당원들로 분열된 빅텐트 정당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공화당이 이른바 남부전략이라는 것을 내걸고 남부 농촌지역의 보수적인 민주당원들을 빼오기 시작하면서 지금의 민주당, 보수당 양당구도가 형성되었다. 이는 상호 이질적인 유권자 집단들이 한 정당 안에 공존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분열되기는 또 얼마나 쉬운지를 보여주는 하나의 사례이다.

결국 지금의 보수진영의 핵심을 이루는 반공 블록의 정치인 및 유권자 집단은 결국에는 청년 보수 블록과의 싸움에서 패배할 것이다. 반공이라는 확장성이 떨어지는 가치를 후대에 전달하는 것이 실패한 순간 그들이 생물학적으로 퇴장하면서 그들의 정치적 주의주장 역시 버려지는 것은 필연이기 때문이다. 물론 평균수명이 늘어나면서 이들은 생각보다 오래 버틸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영원히’를 의미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결국 정치라는 것도 돈, 사람, 그리고 표를 대는 사람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은데 지금의 보수진영의 후원자들이 다 은퇴하고, 남녀갈등과 사회문화적 갈등에 관심이 많은 청년 보수들이 사회 기득권으로 진입한다면 싸움의 룰은 지금과 달라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메갈리아 손모양을 지우기를 요구하는 유권자들과 후원자들에 대해 “아 지금은 공산당 때려잡느라 바빠서 그런거 못해요.”라고 말할 정치인이 있을까?

그렇기 때문에 사실 지금 대통령을 중심으로 한 전통적 보수 지지층이 어떻게 행동하는지는 사실 큰 의미는 없다. 여기서 이들이 전술적으로 아무리 승리를 거둔다고 해도 그들 자신이 노쇠하고 은퇴하는 것은 막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반대로 이준석이라는 개별 정치인이 어떠한 악수를 두는지도 사실 큰 의미는 없다. 이준석의 정치적 성패와는 무관하게 청년 블록으로의 세대교체는 이뤄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아마도 지금 벌어지는 보수진영 내부의 세대교체는 향후 10년 내에 급격한 패러다임 시프트의 형태로 이루어질 것이라고 예측한다. 지금의 장, 노년층 보수 지지층의 일선에서의 은퇴가 거의 마무리될 때까지 전통적인 반공 블록의 정치인들이 버티다가, 어느 순간에 청년 블록의 받는 정치인들로 단절적이고 급격한 변화가 이뤄질 것이다. 물론 무슨 게임처럼 0 아니면 100의 변화는 아닐 것이고 중간중간 전통적인 보수 정치인들이 시대에 맞게 변신을 한다거나, 청년층인데도 반공에 몰두한다거나 등등의 예외들은 많겠지만 전체적으로는 그런 구도에서 벗어나지는 않을 것이다.


* 이 글은 예전에 내가 모 사이트에 올린 보수진영의 미래에 대한 예측(https://redtea.kr/free/11490)의 연장선상에 있는 글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