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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22/01/07 17:12:31
Name 그럴수도있어
Subject 영원한 가객 고 김광석 26주기
1996년 1월 이등병이었던 저는 아침 점호준비를 위해서 허리를 펼 새도 없이 신발을 정리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내무실 복도 끝에 있는 TV에서 ‘김광석 사망’이라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순간 아침 점호준비를 위해서 바쁘게 움직이던 주변에 정적이 흐르고 저는 TV를 바라본 채 가만히 서있었습니다.

1월 6일 어제는 김광석이 떠난지 26주기가 되는 날입니다.
작년 말부터 PGR의 첫글은 김광석을 추억하는 글로 써야지 하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요즘 정치가 너무 꿀잼이라 악플다는 재미에 깜빡했습니다.

제가 김광석을 처음 본 것은 TV에서 기타 치고 하모니카 부르는 모습이었습니다. 사실 감흥도 별로 없었습니다. 그런데 옆에 있던 형이 ‘너는 서태지나 알지 저런 가수는 모르지?’라는 말에 자존심이 상했는지 바로 김광석 앨범을 사러갔습니다.

제가 처음 산 김광석 앨범은 93년에 발매된 ‘다시부르기1’이었습니다. 아는 것보다 더 많이 아는 척하고 싶던 고딩은 옴니버스 앨범을 선택했습니다. 이등병의 편지, 사랑했지만, 거리에서, 흐린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 광야에서 등등 이미 유명해진 노래가 많았습니다. 와 이 노래를 이 가수가 불렀구나. 그제서야 알았습니다. 당시 X세대 감성으로 남들은 다 아는 노래보다 “‘그날들’이나 ‘사랑이라는 이유로’가 내 최애곡이다” 라고 떠들고 다녔죠.

그리고 1994년 김광석의 네번째 앨범을 접하면서 김광석에 정말 폭~ 빠졌습니다. 일어나, 너무깊게 생각하지마, 바람이 불어오는 곳,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서른 즈음에, 자유롭게.. 하나 같이 너무 좋았습니다.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이 클래식이라는 영화에 나오면서 아는체 하는게 하나 줄어버려서 안타까워하기도 했습니다.

나이가 먹고 스스로 잘했다고 생각하는 몇 가지 중에 하나가 김광석의 콘서트를 직접 본 것입니다.
“저는 95년 대학로 민들레영토 맞은편의 LIVE소극장에서 김광석 콘서트를 봤습니다.(자랑)”
어두운 지하로 들어서자 촘촘하게 배치된 계단식 의자에 저보다 훨씬 나이 많은(그래 봤자 지금 제 나이 보다 훨 어리겠죠;) 직장인들이 촘촘하게 앉아 있었습니다. 무대는 드럼만으로도 꽉찰 만큼 너무 작았습니다. 그런데 그 작은 무대 주변에 또 낚시 의자가 촘촘하게 놓여져 있었고, 거기에도 관객이 앉아 있었습니다. 김광석이 노래부를 때나 농담할 때 얼굴이 맞부딪친다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때 김광석이 노래부르던 모습과 말하던 모습은 뿌연 안개처럼 희미합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함께 있던 관객들의 표정은 아직도 생생합니다. 아기처럼 해맑은 표정이었습니다. 김광석의 한마디 한마디에 터질 듯이 웃고 또 침울해하기도하고, 무대가 끝나고 돌아갈 때의 아쉬움과 행복함 온전히 전해졌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김광석을 생각하면 아련하면서도 따뜻함을 느낌니다. 그리고 김광석의 얼굴은 떠오르지 않지만 그때 관객들의 얼굴이 떠오릅니다.

저는 아이유나 이은미의 리메이크 곡을 참 좋아합니다. 그런데 김광석 노래를 리메이크 하면 그 느낌이 안납니다. 가끔 오디션에서 김광석 노래로 유명세를 타는 경우도 있었지만 김광석의 맛이 아니라 조금 씁쓸한 생각도 듭니다.

한때는 김광석을 알리기 위해서 앨범도 많이 선물하고 했는데, 20년이 더 지난 지금은 오히려 너무 알려져 있어서 나만의 추억을 뺐긴 것 같아서 조금 속상하기도 합니다. 그래도 따뜻한 느낌을 공유할 수 있는 사람들이 많아져서 참 다행입니다. 보고싶습니다. 58세의 김광석은 어떻게 변했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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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nzisuka
22/01/07 17:17
수정 아이콘
어릴때 집에서 햇살 받으며 김광석씨 노래 들을때 참 좋았는데...어느세...26...년이나
피잘모모
22/01/07 17:26
수정 아이콘
너무 일찍 돌아가셨어요…

옛날 유튜브 알고리즘으로 라이브하시는 영상 보고 빠져들었는데, 호소력 짙은 목소리가 인상적이었어요

콘서트를 직접 가신 적이 있다니 정말 부럽습니다 저도 그 시대에 살았으면 갔었을텐데
raindraw
22/01/07 17:27
수정 아이콘
부럽네요. 제 많은 인생 후회 중 하나가 광석형님 콘서트를 못 본 것입니다.
광석형님이야 늘상 콘서트를 여니 언제건 한 번 보러가면 되겠지 생각하고 한 번도 안갔습니다.
VinHaDaddy
22/01/07 17:50
수정 아이콘
알쓸신잡 시즌 1에서

정재승 : 저 김광석 콘서트 가본 적 있어요.
유희열 : 저 김광석 콘서트에서 반주했어요.
모두 : 오오오오~~

출연진 모두가 유희열을 선망의 눈빛으로 쳐다봤었죠.
그런 명사들에게도 김광석이 어떤 의미였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럴수도있어
22/01/07 18:00
수정 아이콘
윤도현: "광석이형이 저 무대 많이 올려줬어요." 하는 얘기듣고 제가 뿌듯해지더리구요 크크
와하하
22/01/07 18:01
수정 아이콘
잘 모르던 시기에 막 일병달고 휴가 나온 날 송내역에서
스포츠 신문을 보고나서야 김광석 씨가 돌아가셨다는 걸 알았네요.
군 생활을 마치고 복학을 하고 나니 김광석씨의 노래를 훨씬 쉽게 접할 수 있었어요.
각종 방송, 라디오, 학교 노래 동아리등등...
좀 더 일찍 알아서 그 감성을 좀 더 일찍 느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네요.
저도 "사랑이라는 이유로"를 제일 좋아합니다.
及時雨
22/01/07 18:03
수정 아이콘
바람이 불어오는 곳 참 멋진 노래라고 생각해요.
다른 노래들도 참 주옥 같지만 날 좋은 날 혼자 산책할 때 들으면 그만한 노래가 없더라고요.
22/01/07 18:08
수정 아이콘
몇몇 '김광석 노래만 트는' 술집이 있었고 또 학생들이 그런 델 즐겼죠. 직관 부럽습니다.
22/01/07 18:24
수정 아이콘
대학 1학년 동기 엠티 때 온 형 한 명이 기타치면서 김광석 노래부르는데 어렴풋이 알던 노래가 너무 좋아서 이후 이것 저것 찾아 듣던 기억나네요.

자극적지 않게 들리는데 곱씹어보면 감정을 강하게 자극하는 느낌이 좋았는데 역시나 군대 가기 직전에 절정이였죠. 크크
김하성MLB20홈런
22/01/07 18:28
수정 아이콘
이번에 TV조선 오디션 우승자인 박창근씨 목소리가 김광석을 꽤나 닮았다고 개인적으로 느끼는데 한번 보시면 재밌을거 같아요 흐흐

저도 김광석 시대(?)를 직접 겪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는 나이인데 참 대단한 가수라고 생각합니다. 30여년이 지난 지금에도 울림을 줄 수 있는 노래....
그럴수도있어
22/01/07 18:35
수정 아이콘
오늘 당장 찾아봐야겠네요. 감사합니다~
22/01/07 20:31
수정 아이콘
박창근님 너무 좋습니다!
우공이산(愚公移山)
22/01/07 18:34
수정 아이콘
힙합 격언 중 하나가 좋은 훅 앞에 장사없다가 있습니다. 노래도 비슷합니다. 좋은 음색이면 끝입니다.시대를 초월하는 목소리의 힘이 대단해요.
22/01/07 18:41
수정 아이콘
오늘도 김광석님 노래를 들었는데 이런 게시글을 보게 되네요.. 진짜 너무나 안타깝게 빨리 떠나신 분이죠..
백년후 당신에게
22/01/07 21:31
수정 아이콘
연말에 아부지 어머니랑 이야기하는데 가수나 음악 이야기가 나올게 없었는데 김광석님 이야기가 나오더라구요. 예순이 다되니까 김광석 음악을 이해 할 수 있었다고.. 정말 좋은 가객이였다고 생각합니다.
22/01/08 13:05
수정 아이콘
(수정됨) 김광석 노래가 참 신기한게 저의 베스트가 계속 바뀌더라구요. 사랑했지만 -> 불행아 -> 서른즈음에 -> 내사람이여 -> 너무아픈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이런 식으로 제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서요. 물론 그렇다고 전에 좋아했던 노래가 싫어지는 건 아니구요.

스테디셀러란 이런 것이다의 정석입니다.

그러고 보니 저도 군대에서 김광석의 사망소식을 들었네요. 글쓴분과 비슷한 시절 군생활했네요. 94~96년.. 김일성, 성수대교, 삼풍백화점, 김광석, 동해잠수함.... 참 파란만장하네요.
그럴수도있어
22/01/08 15:32
수정 아이콘
정말 그런것 같아요. 그리고 잠시 잊고 살지만 또 찾게되고~
22/01/08 15:55
수정 아이콘
오늘 하루 종일 마음의 이야기 듣고 있습니다
RapidSilver
22/01/08 22:07
수정 아이콘
전 변해가네가 최애곡인데 인생의 변곡점에 설때마다 정말 하염없이 들었습니다.
천혜향
22/01/15 07:50
수정 아이콘
라이브들은적도없지만 노래가 너무 끌리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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