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 자유 주제로 사용할 수 있는 게시판입니다.
- 토론 게시판의 용도를 겸합니다.
Date 2021/12/30 03:08:13
Name 원시제
Subject 검사의 선서에 대해

검사가 등장하는 드라마를 보면 종종 등장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최초로 임용되는 검사가 선서를 하는 장면이지요.
한손에는 선언문을 들고, 다른 한손을 들어 뭔가 멋진 말을 읊조리며
검사가 된 주인공, 또는 등장인물이 의지를 불태우는 모습은 꽤 익숙하실겁니다.

이 장면은 2008년 이전의 드라마에서는 찾아볼 수 없습니다.
검사의 선서는 2008년 10월부터 생겼거든요.

2008년 10월 이후, 실제로 검사는 취임시 다음과 같은 선서를 합니다.


- 검사 선서

나는 이 순간 국가와 국민의 부름을 받고
영광스러운 대한민국 검사의 직에 나섭니다.

공익의 대표자로서
정의와 인권을 바로 세우고
범죄로부터 내 이웃과 공동체를 지키라는
막중한 사명을 부여받은 것입니다.

나는
불의의 어둠을 걷어내는 용기 있는 검사,
힘없고 소외된 사람들을 돌보는 따뜻한 검사,
오로지 진실만을 따라가는 공평한 검사,
스스로에게 더 엄격한 바른 검사로서,

처음부터 끝까지 혼신의 힘을 다해
국민을 섬기고 국가에 봉사할 것을
나의 명예를 걸고 굳게 다짐합니다.


이 선서의 내용은 재미있게도
[법으로 규정]되어 있습니다. 정확하게는 대통령령으로.

[검사 선서에 관한 규정] 이라는 이 대통령령은
아이러니하게도 지금은 수감생활중인 이명박씨가 대통령이던 시절,
이명박씨의 제안으로 도입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초임검사들은 단순히 선서문을 읽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검사 선서에 관한 규정]에 따라 선서문 2부에 서명날인하고
1부는 개인별 인사기록으로 분류하여 국가에서 보관하고,
1부는 본인이 소지합니다.

사실상 저 선서가 어떠한 강제력도 없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선서문에 서명날인하고 나라와 개인이 보관한다는 점을 저는
'너의 선서를 국가가 기억할테니, 너 역시 기억해라.' 라는 취지로 이해했습니다.
대한민국 공무원 시스템에서 이루어지는 일 치고는 나름 멋지죠.


이 글을 정치탭으로 쓴 이유,
그리고 오늘 이 글을 쓴 이유는
아마도 굳이 제가 언급하지 않아도 글을 읽는 분들은 다 아실겁니다.

[공익의 대표자]
[불의의 어둠을 걷어내는 용기 있는 검사]
[힘없고 소외된 사람들을 돌보는 따뜻한 검사]
[오로지 진실만을 따라가는 공평한 검사]
[스스로에게 더 엄격한 바른 검사]

검사 선서의 저 내용들은 국가가, 국민들이 바라는 이상적인 검사의 모습일테고,
검사 스스로도 바라는 이상적인 검사의 모습일겁니다.
그리고 '이상적인' 모습이다보니, 실존하기 어려운 모습이겠죠.
아니 이제는 국가나 국민들, 그리고 검사들이 기대조차 하지 않는 모습이 되어버린건 아닐까 싶습니다.

나름 법조인 입장에서 저는 오늘 좀 많이 벙쪘습니다.
네, 수사 과정에서 피의자가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도 있겠죠.
그리고 경력이 오래되고, 많은 피의자를 수사해 본 검사들은 그런 장면을 때때로 보아서
어느 정도 덤덤해졌을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래도 그게 아무렇지 않게 입밖으로 나와도 되는 말인가.
그게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입밖으로 나올 정도로 아무렇지 않아도 되는 말인가.
곰곰히 생각해봤고,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아니라는 결론에 도달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공익의 대표자]
대한민국에서 검사를 [공익의 대표자] 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있을까요.
그리고 그 사람들이 많지 않을거라는 사실을 검사들은 알고 있을까요.
알고 있다면 부끄러워할까요.

2008년 이전에 검사가 되셨으니 검사 선서를 하지 않으셨을
한때는 대한민국 검사들의 톱이었던 분의 발언.
그리고 그게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취지의 몇몇 댓글들을 보면서

세상이 많이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는, 언젠가는 검사가 [공익의 대표자] 라는 생각을 가지고
세상을 살아갈 수 있게 될까요.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Chandler
21/12/30 03:17
수정 아이콘
(수정됨) 최근 행보에서는 호불호 갈리겠지만 임은정 검사의 간첩조작재심사건 무죄구형사건이 생각나네요.

공익의 대표자라는 개념을 조금만 이해한다면 조작사건에 대한 재심에서 무죄구형은 칭찬받아 마땅한 엄청난 일도 아니였고, 기본중에 기본이라 생각이 됩니다. 그런데 무죄구형 했다는것 자체로 당시 엄청난 파격이였고 임은정 검사는 조직에서 몇년간 왕따를 당하고, 일각에선 용기있는 검사라는 칭찬도 많이 받았습니다. 검찰의 조직논리라는게 이성과 합리를 잃은지 오래고 국민들 조차도 그것을 너무나 당연하게 받아드리고 포기해왔던거 아닌가 그런생각이 듭니다.
규범의권력
21/12/30 03:54
수정 아이콘
저 선서의 내용 자체는 지나치게 이상적이긴 합니다. 세상의 누가 공익의 대표자가 될 수 있을까요. 공권력의 사유화를 막는 방법은 상호 견제뿐이죠. 그런 의미에서 검사들이 지금까지 지나치게 강한 권한을 휘둘러왔던 건 기소독점주의와 검사동일체의 결합에 기인했던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나마 지금은 공수처가 있어서 낫긴 하지만 그래도 부족하죠. 개인적으론 공수처를 분리시키기보단 아예 대검찰청을 둘로 쪼개버리던가 했어야 했다고 봅니다.
금적신
21/12/30 05:19
수정 아이콘
이명박 재임시 만들었군요
스칼렛
21/12/30 08:05
수정 아이콘
도둑이 제 발 저린다…
21/12/30 07:34
수정 아이콘
웹툰 송곳의 아래 대사를 좋아합니다.
[그래도 되니까]

검사는 그래도 되죠.
평가와 보상이라는 측면에서
(판사와 함께)
조직에 충성하기만 하면
심판받지 않는 권력 그 자체니까요.

[그래도 되지 않게 하기 위한]
제도적인 평가, 보상, 심판 외
선서 같은 건 다 한때의
말장난일 뿐이라 봅니다.

국회도 청와대도 국민의 심판을 받는 게
당연한데
검사는 대체 어떻게 심판해야 할까요.
공수처 헛발질들 보면서 한숨만 나옵니다.
21/12/30 07:35
수정 아이콘
지금까지 윤석열 망언들 웃고즐겼었습니다. 사석에서야 그런말들 쉽게들 하니까 아직 미숙해서 그런가보다했어요. 그런데 자살 얘기는 모골이 송연해지더군요
AaronJudge99
21/12/30 07:39
수정 아이콘
머리가 띵했습니다....아니 저래도 되나...[아니 진짜 저래도 돼?]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강동원
21/12/30 07:46
수정 아이콘
비밀의 숲을 처음 볼 때는 후반부 반전을 주도하는 인물의 행보에 눈길이 갔다면 (스포일 수 있어서..)
몇 번 다시 보다보니 주인공 황시목이라는 인물을 볼 수 밖에 없더군요.
본문의 이상적 검사의 모습, 대중이 바라는 검사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준다랄까...
포도씨
21/12/30 08:03
수정 아이콘
우리나라에 황시목, 이창준은 없다고 단언해도 틀리지 않은 말이 될것같은 현실이 서글프네요.
아니, 처음 검사가 될 때에는 가슴에 애국심과 공명심을 담고 시작하던 이도 누르고 비웃고 가르쳐 결국은 자신들처럼 타락시키고야 마는 이 썩고 고인 거대한 조직을 대체 어찌해야하는지 막막합니다.
어둠의그림자
21/12/30 08:47
수정 아이콘
검사의 힘은 기소하는것이 아니라 기소하지 않는것에 있다던 황시목 또한 중범죄자인 서동재를 기소하지 않는 이렇고 저런 검사중 하나일 뿐이죠.
하아아아암
21/12/30 08:47
수정 아이콘
검사는 이상적일 수도 있는데, 지금 검찰은 그럴수조차 없죠.
Cafe_Seokguram
21/12/30 08:54
수정 아이콘
의사의 히포크라테스 선서 같은 거겠죠.
불굴의토스
21/12/30 09:25
수정 아이콘
검사출신 정치인목록 보면 정상이 거의없는..
덴드로븀
21/12/30 09:58
수정 아이콘
[수사과정에서의 자살은 수사하는 사람들이 좀 쎄게 추궁하고 증거수집도 막 열심히 하고 이러니까 아 이게 지금 진행되는거 말고도 또 내가 무슨 뭐 걸릴게있나 하는 불안감에 초조하고 이러다가 그런 극단적인 선택도 하는 것]

[제가 이런 사람하고 국민여러분 보는데서 뭐 토론을 해야되겠습니까? 하~ 참~ 어이가~ 없습니다아~ 정말 같잖습니다~]

[제가 볼때는 대선도 필요없고, 이제 곱게 정권 내놓고 물러가는게 이게 정답]

어제 국민의힘 경북 선거대책위원회 출범식에서 [검사 출신]윤석열[대선 후보]의 발언들을 모아봤습니다.

검사 출신이면 검사로 지내다보면 다 저렇게 되는걸까요?

어떻게 저런 인식을 저렇게 당당하게 말할수가 있는건지...
트럼프
21/12/30 10:55
수정 아이콘
어떤 집단들이 앞에 붙이는 수식어에서 보통 그들의 결여된 부분을 드러내는 경우가 많죠.
21/12/30 11:30
수정 아이콘
양심을 안파는 4대 팔이 크크크
선인장
21/12/30 10:58
수정 아이콘
저 이상적인 선서를 온전히 지키지는 못하더라도,
한줌 정치검사들 외에 평범한 다수의 검사들은 그래도,
자기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세상을 좀 더 밝게 만들고자 노력한다 믿고 싶습니다.

다만 그 노력의 방식과 방향이 뒤틀리는 것을 막기 위한 시스템이 꼭 필요하겠죠..
검사가 조직에만 충성한다면 처벌받지 않는 지금 같은 시스템으로는 불가능할거 같습니다.
21/12/30 13:17
수정 아이콘
어 이 말을 검사내전에서 본거같애(...)
선인장
21/12/30 13:37
수정 아이콘
음..? 저 검사내전 안봤는데..비슷한 얘기가 있나보네요;;
cruithne
21/12/30 10:59
수정 아이콘
이재명이 대통령이 된 미래가 무서웠는데, 이제는 윤석렬이 대통령이 된 미래가 더 무섭습니다. 진심으로.
21/12/30 11:00
수정 아이콘
여러분 이거 다~
우스타
21/12/30 11:13
수정 아이콘
갑자기 쌈바가 생각나네요
이찌미찌
21/12/30 11:10
수정 아이콘
[.........아 이게 지금 진행되는거 말고도 또 내가 무슨 뭐 걸릴게있나 하는 불안감에 초조하고 이러다가 그런 극단적인 선택도 하는 것]

별건수사를 말하는 거겠죠.
압수수색을 하면 많은 걸 알수 있으니까요.
요즘은 스마트폰이라 핸드폰만 포랜식하면....
정회원
21/12/30 12:22
수정 아이콘
(수정됨) 김기춘부터 출신들 보면 다 똑같죠. 평생 검사외에 누군가로부터 "너 틀렸다. 잘못 생각하고 있다." 이런말 자체를 들어본적이 없을거에요.
라이언 덕후
21/12/30 12:50
수정 아이콘
홍준표씨도 검찰개혁 한다고 해야 하는데 뭐.......
우와왕
21/12/30 13:22
수정 아이콘
‘정의로운 검사’
공작의 명언 하나가 생각나네요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101058 환승연애 시즌2 과몰입 후에 적는 리뷰 [29] 하우스8343 24/03/01 8343 4
101057 22대 총선 변경 선거구 분석 - 광역시편 - [24] DownTeamisDown8358 24/03/01 8358 0
101056 우리는 악당들을 처벌할 수 있어야 한다 [42] 칭찬합시다.10982 24/02/29 10982 49
101055 한국 기술 수준, 처음으로 중국에 추월 [160] 크레토스14864 24/02/29 14864 0
101054 <듄: 파트 2> - 지금 할 수 있는 가장 영화적 경험.(노스포) [76] aDayInTheLife7163 24/02/29 7163 14
101053 댓글을 정성스럽게 달면 안되네요. [36] 카랑카10708 24/02/28 10708 3
101052 비트코인 전고점 돌파 [97] Endless Rain7668 24/02/28 7668 1
101051 강남 20대 유명 DJ 만취 음주운전 치사사고 보완수사 결과 [19] Croove9491 24/02/28 9491 0
101050 출산율 0.7 일때 나타나는 대한민국 인구구조의 변화.. ( feat. 통계청 ) [93] 마르키아르11249 24/02/28 11249 0
101049 친문이 반발하는 것을 보니 임종석 컷오프는 아주 잘한 것 같습니다. [231] 홍철16679 24/02/28 16679 0
101048 똥으로 세계에 기억될 영화 '오키쿠와 세계' (스포 없음) [6] 트럭4427 24/02/28 4427 5
101047 서이초 교사 순직 인정 [16] lexicon7283 24/02/28 7283 14
101046 일본 주가지수가 1989년 버블 시절 전고점을 돌파했네요. [17] 홍철5505 24/02/28 5505 0
101045 [듄 파트2 감상] 왕좌의 게임과 반지의 제왕 사이. (약스포) [11] 빼사스3647 24/02/27 3647 2
101043 여당이 고발하고 경찰이 수사하고 방심위가 차단한 ‘윤 대통령 풍자 영상’ [47] 베라히11175 24/02/27 11175 0
101042 [2/28 수정] 비트코인이 전고점을 뚫었습니다!!!! [116] 카즈하11412 24/02/27 11412 1
101041 한동훈 "민주당, RE100 아느냐고만 이야기해…모르면 어떤가" [102] 빼사스10940 24/02/27 10940 0
101040 Pa간호사 시범사업과 의료사고처리특례법 [14] 맥스훼인4499 24/02/27 4499 0
101039 (뻘글) 유대인과 한국인과 지능과 미래인류의 희망 [41] 여수낮바다4315 24/02/27 4315 4
101038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해결책은... 무려 표창장 수여!? [34] 사람되고싶다6682 24/02/27 6682 0
101037 뉴욕타임스 1.16. 일자 기사 번역(미국의 교통사고 문제) [4] 오후2시3850 24/02/26 3850 5
101036 아이돌 덕질 시작부터 월드투어 관람까지 - 1편 [4] 하카세2480 24/02/26 2480 5
101035 대통령실 "4월 총선 이후 여가부 폐지를 예정대로 추진" [133] 주말12501 24/02/26 12501 0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1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