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 자유 주제로 사용할 수 있는 게시판입니다.
- 토론 게시판의 용도를 겸합니다.
Date 2021/09/30 07:33:58
Name 오만가지
Subject 누군가의 죽음을 선고하는 일
'교수님, 코로나 병동인데요, DNR 환자이기는 한데 OO대 O번 OOO 환자 Rounding 때 Vital이 안잡혀서 연락드립니다'



수도 없이 누웠던 당직 침대이지만, 10년만의 병동 당직 콜은 낯설고 침대는 불편하다.

선잠을 깨운 콜은 굉장히 곤혹스러웠다.



그 전화를 받고도, 인간의 죽음에 안타까워하거나 그를 추모하는 생각에 앞서, 생소한 격리병동 출입과 10년만의 사망선언 과정에 대한 일련의 현실적인 고민이 먼저 들었기 때문이리라.

주섬 주섬 산발이 된 머리를 대충 매만지고 올라간 코로나 병동은, 내가 생각했던 그 어떤 막연한 두려운 공간이 아니라, 다른 일반 병동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어지러우면서도 잘 정돈된 보호 장구들과, 굳게 닫힌 격리 병실 복도 철문만이 다를 뿐.

6인실 병실 창가쪽 끝에서 고인이 되신 그분을, 새벽 4시임에도 같은 병실 환자들은 모두 잠에서 깨어 허망함과 두려움이 섞인 눈으로 쳐다보고 있었고, 그를 향해 걸어가는 내 발걸음이 평소와 다르게 이질적이고 비현실적으로 느껴진다. 수도 없이 했던 사망 선언이, 10년만에 해보는 그 선고가, 무덤덤하게 내뱉는 나의 목소리가 낯설게 느껴지는 것은 무엇때문일까.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



안녕하세요. 자유게시판에 글은 처음 써봅니다. 저희 병원에서 전공의 로딩 과부하로 교수들이 돌아가면서 코로나 병동의 야간/주말 당직 콜을 받아주고 있는데, 새벽에 잠도 깨고, 오늘 느꼈던 감정을 어딘가 토해야만 할 것 같아서 짧게 적어봅니다. 코로나 환자를 일선에서 담당하고 계시는 전국의 수많은 의사 선생님들, 간호사분들을 응원합니다.

DNR : Do Not Resuscitation, 사전의사 결정서
Rounding : 간호사의 병동 환자 체크 시간
Vital : Vital sign, 활력징후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AaronJudge99
21/09/30 07:52
수정 아이콘
아이고......
iPhoneXX
21/09/30 08:03
수정 아이콘
고생이 많으시네요. 정말 의료진 분들 정신적 고통이 어마어마하실듯..
오만가지
21/09/30 09:44
수정 아이콘
같은 병으로 같은 병실에 계신 분들이 같은 병으로 죽어가는 분을 보고 있었다 보니 예전과는 뭔가 다른 느낌이었던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21/09/30 08:27
수정 아이콘
아...
21/09/30 08:39
수정 아이콘
고생이 많으시네요.. 힘내시길 바랍니다. 근데 사전의사 결정서라는게 무엇인가요?
오만가지
21/09/30 08:49
수정 아이콘
어떤 병으로 소생 가능성이 없는 환자에게, 미리 보호자에게 심정지시 심폐소생술을 시행하지 않기로 약속하는 동의서입니다. 주로 말기 암환자나 만성질환자에게 받아놓지요. 무의미한 심폐소생술이 환자에게 득이 되지 않을 것으로 판단되는 경우에 받습니다.
21/09/30 08:55
수정 아이콘
아 그렇군요.. 답변 감사드립니다.
21/09/30 08:39
수정 아이콘
고생 많으십니다. 고맙습니다.
오만가지
21/09/30 09:41
수정 아이콘
저는 고생 축에도 못낍니다. 코로나 전담병원에서의 특히 분과 불문 내과 선생님들이 고생이 엄청나시지요.
21/09/30 08:45
수정 아이콘
6인실 병실 창가쪽 끝에서 고인이 되신 그분을, 새벽 4시임에도 같은 병실 환자들은 모두 잠에서 깨어 허망함과 두려움이 섞인 눈으로 쳐다보고 있었고,
> 아, 막 그 그림이 그려지는데 참 뭐라고 해야될지 모르겠네요....
오만가지
21/09/30 09:40
수정 아이콘
예. 다들 어떤 감정이셨을지, 먹먹합니다.
2021반드시합격
21/09/30 08:53
수정 아이콘
기나긴 대재앙 가운데서도
병원을 지켜주시는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를 표합니다.

간호사 사촌동생 밥 한끼 먹이려고
2년 만에 만났는데
애가 몸도 마음도 심하게 지쳐 있는 게 정말 보기 안쓰럽더라고요. ㅜㅜ
오만가지
21/09/30 09:40
수정 아이콘
의사도 의사지만, 간호사 분들 고충이 이만저만 아니지요.
21/09/30 09:12
수정 아이콘
고맙습니다.
오만가지
21/09/30 09:40
수정 아이콘
감사드립니다.
두 별을 위해서
21/09/30 09:17
수정 아이콘
결코 가벼울수 없는 사람의 삶이 느껴지네요
수고가 많습니다.
오만가지
21/09/30 09:39
수정 아이콘
응원 감사드립니다.
김연아
21/09/30 09:34
수정 아이콘
"DNR"은 "심폐소생술금지동의"가 더 좋은 번역이라고 생각합니다.

고생하셨습니다.
오만가지
21/09/30 09:39
수정 아이콘
네, 동의합니다. 요즘은 POLST (Physician Orders for Life-Sustaining Treatment, 연명의료계획서 또는 사전의료의향서)로 대체되어 사용되는 추세이긴 한데, 예전부터 사용되던 DNR이라는 단어가 좀 더 직관적이고 입에 달라붙어 계속 쓰이고 있는 것 같습니다.
김연아
21/09/30 09:44
수정 아이콘
필드에 나와보면 DNR과 POLST는 혼용되기도/뚜렷이 구분되기도 하는데, 점점 POLST 쪽으로 가는 중이죠.
법적인 보호 장치도 POLST 쪽이 확실하고...
근데 DNR은 말씀대로 일단 발음부터가 입에 잘 붙어요.
오만가지
21/09/30 09:49
수정 아이콘
사실 전공의들이 잘 알텐데, 저는 잘 모릅니다. 요즘은 애들이 폴스트 폴스트 하더라고요. ^^;
김연아
21/09/30 11:04
수정 아이콘
비슷하긴 한데, DNR이 간단한 절차로 의료진 설명에 보호자 동의 하에 결정되는 거라면,

연명의료계결정제도는 윤리위원회의 심의 등 절차를 거쳐, 심폐소생술을 비롯한 연명치료의 중단을 결정하는 거라고 보시면 됩니다.

급박한 상황에서 하기는 어렵죠.
아기상어
21/09/30 09:45
수정 아이콘
의료진 분들 늘 감사합니다.
오만가지
21/09/30 09:54
수정 아이콘
감사드립니다.
덴드로븀
21/09/30 09:51
수정 아이콘
항상 감사합니다. 여기엔 좀더 많이 토하셔도 됩니다 흐흐흐
오만가지
21/09/30 09:54
수정 아이콘
감사합니다. 좀 더 자세히 묘사했었는데 너무 적나라한 것 같아서 다 지웠습니다.
덴드로븀
21/09/30 09:57
수정 아이콘
누군가를 특정할 수 있는 내용들만 잘 덜어내면 이동네는 그 자세한 묘사에 더 열광(?) 할겁니다.
오만가지
21/09/30 10:04
수정 아이콘
다음에 기회가 있다면 참고하겠습니다 ^^;;
내년엔아마독수리
21/09/30 10:29
수정 아이콘
중학교 때 눈수술 때문에 6인실에 입원했는데, 수술 전 검사받고 오니 옆자리 할아버지가 그 사이에 중환자실로 옮겨가셨더군요. 수술날 아침에 그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 듣고 기분이 묘했던 기억이 납니다.
及時雨
21/09/30 11:29
수정 아이콘
명복을 빕니다.
21/09/30 11:33
수정 아이콘
작성자 밎 모든 의료진 여러분의 노고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무엇보다 건강 잘 챙기시기를 바라겠습니다.
Cafe_Seokguram
21/09/30 12:00
수정 아이콘
정말 수고 많으십니다. 감사합니다. 글 올려주셔서요.

제목에 '코로나 병동에서'라근 문구를 넣어주시면 더 많은 분들이 읽고 의료진에게 감사함을 가지면서, 코로나 감염 예방에 경각심을 가질 것 같습니다.

[일반] [코로나 병동에서] 누군가의 죽음을 선고하는 일
21/09/30 12:51
수정 아이콘
소화기 주니어로 일하고 있습니다
멀리서나마 응원하겠습니다..!
RookieKid
21/09/30 14:39
수정 아이콘
슬기로운 의사생활과 낭만닥터 김사부를 재밌게 봤더니 DNR Rounding Vital 이 제 귀에도 쏙 들어오네요. 헤헤
선생님 덕분에 오늘도 무사히 일하고 있습니다. 다시 한 번 감사드려요. 화이팅입니다.
얼씨구3
21/09/30 15:01
수정 아이콘
응원합니다!
방구차야
21/09/30 19:40
수정 아이콘
짧은 글임에도 당시의 분위기가 와닿습니다. 얼마전 6인실 병동에서 기억도 있고 섬찟하게 밝은 병원의 모습도 그려집니다. 흰가운 하늘색 유니폼 목소리와 뒷모습이 기억나네요. 항상 감사드립니다.
21/09/30 20:27
수정 아이콘
글 감사합니다.
그 수고에도 감사합니다.
어쩌다 이렇게 된지는 모르겠지만 의료진들의 헌신이 있어서 이 정도 버티고 있다는 것 하나는 알고 있습니다.
세이밥누님
21/09/30 21:59
수정 아이콘
짧은 글임에도 상당히 무겁네요 ㅠ.ㅠ
몸조리 잘 하시고 화이팅입니다!
오만가지
21/10/01 07:55
수정 아이콘
일일이 답을 못드려 죄송합니다. 다들 감사드립니다.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100948 아시아의 모 반도국, 드라마 수출 세계 3위 달성! [18] 사람되고싶다7619 24/02/19 7619 11
100947 복지부가 의대 2천명 증원의 근거를 제시했는데, 근거가 없습니다? [197] 여수낮바다11524 24/02/19 11524 0
100946 R&D 예산 삭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106] HolyH2O5032 24/02/19 5032 0
100945 [웹소설] 당문전 추천 [57] 데갠3981 24/02/19 3981 3
100944 정부 "공공의대·지역의사제 국회 심의과정 지원할 것" [44] 사브리자나7142 24/02/19 7142 0
100943 이재명 "의대 정원 확대는 정치쇼…비상대책기구 만들어 의협과 논의" [117] 홍철10293 24/02/19 10293 0
100942 내분이 가속화 되고 있는 개혁신당 오늘의 근황 [70] 매번같은7705 24/02/19 7705 0
100941 일본과 미국에서의 일반의약품 및 원격진료 경험담 [33] 경계인4743 24/02/19 4743 8
100939 수도권 의대교수도 동네 병원으로 이직 러쉬 - 23년 11월 기사 [93] 바람돌돌이10006 24/02/18 10006 0
100938 의사의 신규 계약 거부를 처벌하는 게 말이 되는 것인가? [98] kien9021 24/02/18 9021 0
100937 대리처방과 오더거르기에 대한 글 [138] 헤이즐넛커피9803 24/02/18 9803 1
100936 외계인2부 를 보고 (부제 최감독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22] PENTAX4713 24/02/18 4713 7
100935 의사들이 숨기는 거 [248] Pikachu13337 24/02/18 13337 0
100934 기술적 특이점은 오지 않는다. 절대로. [34] brpfebjfi10294 24/02/18 10294 9
100933 일본은 한국보다 10년 빠르다. 의사증원마저도. [321] 스토리북15859 24/02/18 15859 0
100931 이승만 띄워주기의 피로함에 대해서. [163] 테르툴리아누스10513 24/02/17 10513 0
100930 국민의힘 대전·세종·경남·경북 단수공천 대상자 발표 [60] 자급률7712 24/02/17 7712 0
100929 최근에 읽은 책 정리(라이트노벨, 비문학 편) [16] Kaestro2765 24/02/17 2765 1
100928 일본의 스포츠 노래들(축구편) [8] 라쇼2451 24/02/17 2451 1
100926 대한민국 제조업에는 수재들이 필요합니다 [73] 라울리스타9084 24/02/17 9084 33
100924 시흥의 열두 딸들 - 아낌없이 주는 시흥의 역사 (3) [7] 계층방정6992 24/02/17 6992 9
100923 정말 이상한 전공의 사직 [115] 헤이즐넛커피14393 24/02/17 14393 0
100922 러시아 정치인 알렉세이 나발니 옥중 사망, 향년 47세 [31] 된장까스7680 24/02/16 7680 3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1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