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 자유 주제로 사용할 수 있는 게시판입니다.
- 토론 게시판의 용도를 겸합니다.
Date 2021/09/14 16:23:50
Name 쉬군
File #1 1631601994221.jpg (216.1 KB), Download : 52
Subject 물 반컵


식탁에 물이 반만 차있는 컵이 있다.

혹자는 "물이 반밖에 남지않았네." 라며 아쉬워하고

혹자는 "물이 반이나 남아있네!" 라며 감사해 한다.


저번주 주말에는 아이를 데리고 쇼핑몰과 야외 카페를 다녀왔다.

쇼핑몰에서는 자꾸 내 손을 뿌리치고 공룡모형이 있는 곳으로 하염없이 뛰어가서 우리 부부의 진을 빼놓는다.

가벼운 물놀이가되는 야외카페를 갔더니 발에 물이 들어가서 찝찝하다며 미끄러운 대리석에서 계속 신발을 벗고 있겠노라고 떼를 쓴다.

그리고 집중해서 노는데 옆에 다른 친구가 지나가면서 방해를 한다며 그 친구를 밀어 넘어뜨릴뻔 해서 그러면 안되노라고 타일렀다.

하지만 우리 부부의 마음을 아는지 아이는 그저 자기가 하고싶은 것만 묵묵히 하면서 고집만 부려 더욱 지치게 만든다.


근 2년만에 41개월된 아이의 발달장애 검사를 다시 받고 왔다.

결과는 또래 아이들보다 행동발달이 1년반정도 느리다는것.

언어는 아예 말을 못하고 않으니 하위 0.2%라는 수치가 찍혀있다.

이렇게 노력을 하는데도 부족하다 싶어서 얼마나 더 노력해야 좋아지는걸까 하는 답답함이 밀려온다.


--------------------------------------------------------

식탁에 물이 반만 차있는 컵이 있다.

혹자는 "물이 반밖에 남지않았네." 라며 아쉬워하고

혹자는 "물이 반이나 남아있네!" 라며 감사해 한다.



쇼핑몰에서는 자꾸 내 손을 뿌리치고 공룡모형이 있는 곳으로 뛰어가는 아이는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확실히 구분하고 그것에서 즐거움과 행복함을 배운다.

발에 물이 들어가서 찝찝하다며 신발을 벗겠다고 떼를 쓰는 아이는 자신의 의견을 표현할 줄 안다는 의미이다.

노는데 방해를 하는 친구를 밀어 내는 건 다른 아이들과의 상호작용을 하고 자신의 기분을 표현할 줄 아는 아이라는 것이다. 물론 미는 행동은 위험하다는건 천천히 가르쳐야 겠지만.

하고 싶은 것, 지금의 기분을 표현 할 줄 안다는 것은 사회 구성원으로 중요한 부분이다. 이 얼마나 다행일까.



다른아이보다 느리고 아직 말을 못하지만 그래도 2년 전의 검사 결과를 보고 있으니 정말 놀랄만큼 많이 자라고 발전했다.

그리고 다른아이들보다 발달이 느릴 뿐 신체적, 정신적인 문제가 있는 건 아니라는 의사선생님의 진단도 받았다.

그렇다면 뭐가 문제일까.

결국 마음먹기 나름이라는 거지.

나만, 아내만 지치지 않으면 아이는 점점 자랄테니까.

아이가 느린만큼 우리 부부도 조금 천천히 아이 옆을 지키며 함께 걸어가면 되는 것을.



우리 부부가 앉아있는데 아이가 달려오더니 방긋 웃으며 안긴다.

그 사랑스러운 모습에 우리 부부도 기운을 차리고 다시 노력하자고 마음을 다 잡는다.

물이 반만 담긴 컵이라는건 아직 반이나 더 채울 수 있다는 말이다.

우리 부부가 힘겨워서 컵을 깨뜨리지 않는 한, 아이는 천천히 이 컵을 가득 채울 것이고.

그때가 오면 잘했다고 칭찬하며 으스러지도록 안아줘야지.

아프다며 놔달라고 아빠를 밀어낼 그날의 넌 지금보다 얼마나 더 사랑스러울까.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닉네임을바꾸다
21/09/14 16:25
수정 아이콘
언젠가는 자라서 사춘기도 오고...다 그럴겁니다
공항아저씨
21/09/14 16:29
수정 아이콘
오랜만에 본 사랑이 느껴지는 글이네요. 행복하세요.
유료도로당
21/09/14 16:29
수정 아이콘
좋아하는 유명인의 발달장애 아이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마음이 아팠는데 (마린블루스 정철연작가님, 주호민작가님 등), 나이를 먹고 주변 지인들 하나둘씩 애를 낳다보니까 지인 중에도 있더라고요..

부모입장에서 얼마나 힘들고 억장이 무너질까 싶어서 마음이 아프지만, 글쓴분 아이도 남들보다 조금 느릴뿐 반드시 잘 자랄거라고 믿고 싶습니다. 힘내시길..
及時雨
21/09/14 16:34
수정 아이콘
험한 길이라도 곧바로 나아가다보면 조금 늦어도 결승점에 도달할 것입니다.
끝까지 기운 내시길 응원합니다.
린 슈바르처
21/09/14 16:38
수정 아이콘
저희 둘째도 이제 만 4살되었는데 말이 참 느려서 마음이 좀 답답하지만, 글쓴님의 걱정에 비할 바는 못될 거 같습니다.

당연히 그러시겠지만 언어발달은 책 읽어주는게 중요하다고 해서 저희도 많이 신경쓰고 있네요

힘내시고, 파이팅하세요!!
수타군
21/09/14 16:55
수정 아이콘
두 아이를 키우고 있는 입장에서 눈물이 나는 글 입니다.
저도 아이들 행동 하나 하나에 의미를 부여하고 걱정을 하는데
아이들의 행동은 본인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의 행동을 하고
그 행동은 계산되어 있지 않는 순수함, 세상에 대한 호기심, 자기를 돌봐주는 사람에 대한 맹목적인 사랑인데
너무 어른의 시각으로 생각을 하고 있지 않나 반성하고 있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쉬군님 가정에 좋은 일만 가득 하시길 바랍니다.
21/09/14 16:57
수정 아이콘
물이 반 차있는 그대로 보아주세요
웁챠아
21/09/14 17:30
수정 아이콘
우리 모두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카시므
21/09/14 17:30
수정 아이콘
저희 애가 지금 만5세(65개월)인데
만3세(36개월) 좀 넘었을 때 병원에서 또래보다 18개월 정도 발달이 늦다는 결과를 받았습니다.
언어가 특히 많이 늦었고, 이해력도 낮았습니다.
쌍둥이라 다른 한 아이랑 비교하니, 더 암담하게 느껴졌습니다.
다른 것보다,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호흡 문제로 신생아집중치료실(중환자실)에 입원했었고 그 뒤로도 자잘한 문제가 있었던 지라
혹시나 아이가 자폐나 지능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닐까 싶어 걱정이 되었습니다.

시간이 흘러 어제 다시 병원에 방문하였습니다.
다행히 또래 대비 발음은 많이 부족하고 표현도 서투르지만 나름대로 종알종알 말하는 아이가 되었습니다.
말은 아직 더딘데 신기하게도 한글은 스스로 깨치기 시작했습니다. 한글의 힘은 위대하네요.
검진 결과도 다행히, 발음은 많이 노력해야겠지만 이해력이나 어휘력 등은 또래 대비 나쁘지 않다고 나왔네요.
특히 이제 자폐나 지능 문제로 걱정할 필요는 없는 것 같아 다행입니다.

아이의 발달이 느리면 부모 입장에서 많은 생각이 듭니다.
아이에 선천적인 문제가 있는 건 아닌지, 우리의 교육 방법이 잘못되지는 않았는지 등등 많은 생각이 들더군요.
의사선생님께서 신체적, 정신적 문제는 없다고 말씀하셨으면, 아마 시간이 많은 부분을 해결해줄 거라 생각합니다.
그 때까지 부모가 지치지 않고 무리하지 않게 최선을 다하는게 저희에게는 중요했던 것 같습니다.
부모가 무리하니 결국 그 피로와 스트레스가 아이에게 전가되더라구요.

너무 낙관해서 아이의 현실을 회피하며 병원에 갈 시기를 놓치면 안 되겠지만,
본문의 말씀대로 물이 반이나 차 있다고 생각하고 긍정적으로 시기를 보내시면 어느새 힘든 시기가 지나가있을거라 생각합니다.

항상 좋은 일만 있으시길 바랍니다.
21/09/14 18:23
수정 아이콘
좋은 부모를 두어 아이가 행복할 거 같습니다. 힘내세요.
타츠야
21/09/14 19:52
수정 아이콘
힘내세요. 육아가 힘들지만 좋은 결과 있기를 기도합니다.
21/09/14 20:53
수정 아이콘
제 첫째 아들도 만 5세가 되도록 말도 늦고 더듬어서 언어클리닉도 다녀보고 했는데... 지금은 특목고 입학을 앞두고 있습니다. 대기만성이라고 좀만 더 사랑과 믿음(특히 이게 중요합니다. 물반컵이나처럼 긍정적인 면에 집중하세요)으로 기다리시다보면 건강하게 자라리라 생각합니다.
21/09/14 20:55
수정 아이콘
내 마음만 조금하지 않으면 아이의 시간은 그 시간대로 잘 흘러 언제 이런 고민을 했을까 하실 거에요.
그와 별개로 반질반질 똑자른 커트머리와 반짝거리는 눈빛이 너무너무 귀엽네요.
다리기
21/09/14 21:17
수정 아이콘
54일된 아들 돌보고 있어요.
존경합니다.
21/09/14 21:53
수정 아이콘
흔한 말로 아빠가 되는 건 나도 처음이라 서투른 점이 많아 아이에게 미안할 때가 있어요. 그래도 어쩔수 없죠. 할수 있는 최선을 다하면 아이도 알아줄거 믿어요. 글쓴이 님도 화이팅 하시죠!
아연아빠
21/09/15 02:18
수정 아이콘
날이 갈수록 점점 온갖 어그로꾼들이 난무해서 눈살을 찌푸리게 하다가도 간혹 자게에 이런글이 올라오기 때문에 피지알을 20년째 들락거리고 있습니다. 행복하세요.
지니팅커벨여행
21/09/15 08:09
수정 아이콘
아이들은 항상 귀엽고 예쁘죠.
근데 커 갈수록 귀여움이 사라져서 아쉽습니다.
물론 애들이 커서 커피도, 맥주도 같이 마시고 자전거 여행을 같이 할 날을 기다리기도 합니다만...
김리프
21/09/15 12:34
수정 아이콘
우리 아이도 많이 느렸는데요. 지금은 언제그랬냐는 듯 쑥쑥 크고 있습니다.
너가 많이 느렸노라 하고 그냥 말할 수 있는 날이 올거니 조금만 더 기다려주세요.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100868 전 평범한 의사입니다. [43] Grundia10255 24/02/08 10255 73
100867 대통령님께서 여사님 디올백 사건은 정치 공작이 맞다고 하십니다. [134] youcu15186 24/02/07 15186 0
100866 의대 증원 그 이후 [37] lexial6391 24/02/07 6391 0
100865 레드벨벳의 '칠 킬' 커버 댄스를 촬영해 보았습니다. :) [10] 메존일각3095 24/02/07 3095 4
100864 집에 SBS 세상에 이런일이 팀 촬영 온 썰+잡다한 근황 [19] SAS Tony Parker 8185 24/02/07 8185 11
100863 의사 인력 확대 방안 [87] 경계인11794 24/02/07 11794 1
100862 의대 증원에 관한 생각입니다. [326] 푸끆이17375 24/02/06 17375 0
100861 원자단위까지 접근했다는 반도체 발전방향 [54] 어강됴리9851 24/02/06 9851 4
100860 [역사] 물질은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을까? / 화학의 역사① [26] Fig.14022 24/02/06 4022 12
100859 내년도 의대 입학정원 2천명 늘린다 [499] 시린비22326 24/02/06 22326 0
100858 김관진·김기춘·최재원·구본상... 정부, 설 특별사면 [54] 시린비8753 24/02/06 8753 0
100857 찰스 3세 국왕, 암 발견으로 공식 일정 중단 [57] 닭강정10593 24/02/06 10593 0
100856 구축 다세대 주택이 터진 사례 [74] 네?!11599 24/02/05 11599 6
100855 '최은순 가석방' 추진? -> 법무부 검토한적 없다 반박 [96] 시린비12599 24/02/05 12599 0
100854 강남 20대 유명 DJ 만취녀... 벤츠로 오토바이 들이받아 라이더 사망 [115] 프로구214280 24/02/05 14280 7
100852 역대 그래미 어워드 헤비메탈 퍼포먼스 부문 수상곡들 모음(스압주의) [26] 요하네즈4990 24/02/05 4990 6
100851 민주당은 선거제 전당원투표한다더니 결국 연동형 유지하고 위성정당 만들기로 했네요 [115] 홍철12554 24/02/05 12554 0
100850 우리집 미국놈 자폐맨 이야기 [44] Qrebirth10892 24/02/05 10892 171
100849 전세사기가 터지는 무자본 갭투자의 유형 중 하나 [34] 네?!8349 24/02/05 8349 10
100848 자폐스펙트럼 아이는 왜 바지를 내릴까 [332] 프로구217895 24/02/04 17895 48
100847 사람은 과연 베이즈 정리에 따라 살아가는가 [12] 계층방정5435 24/02/04 5435 5
100846 마리 앙투아네트 발언 김경율 결국 불출마 선언 [53] 빼사스8957 24/02/04 8957 0
100845 민주 탈당파 뭉쳐 '새로운미래' 창당…이낙연·김종민 공동대표 [39] Davi4ever10169 24/02/04 10169 0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1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