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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21/08/22 15:49:31
Name 심장소리
Subject [일반] 수양제의 고구려 원정과 나폴레옹의 러시아 원정, 그 유사성에 관하여 (수정됨)
유게에 수나라의 고구려 원정에 관한 글이 올라온 것을 보고, pgr 회원분들과 공유해보고 싶은 생각이 있어서 글을 하나 써봅니다.

당시 고구려는 수나라의 4차례에 걸친 한반도 침공을 막아내고 승리했고, 이는 한국사의 가장 빛나는 페이지 중 하나로 흔히들 거론되곤 합니다. 특히 수 양제의 113만 대군을 동원한 2차 침공이 가장 유명하죠. 동양의 역사에 통 관심이 없는 양덕들조차도 종종 언급할 정도니까요.

정말 아쉽게도 고구려와 수나라의 전쟁의 디테일한 부분에 대해서 우리는 잘 모릅니다. 아마 앞으로도 진실이 어땠는지 아는 것은 어려울 겁니다. 당시 상황에 대한 충분한 기록이 남아있지 않기 때문이죠. 한국사에서 수나라의 침공에 대해 가장 자세하게 다루고 있는 삼국사기조차도 침략자인 중국인들의 기록을 참고해서 쓰여졌을 정도니까요.

저는 나폴레옹의 러시아 원정과 수나라의 고구려 원정 사이에 적잖은 공통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당시 지구상에서 가장 강력한 군사력을 지니고 있던 패권국이 이웃의 다른 강대국을 침공했고, 결국 패전했으며 그로 인해 몰락했죠. 어쩌면 두 사건 사이의 유사점이 우리가 알지 못하는 고구려-수 전쟁의 내막을 추측하는데 도움이 될 지도 모릅니다.

물론, 두 전쟁 사이에는 1000년이 넘는 시간의 간극과, 유라시아 서쪽과 동쪽이라는 지리적 격차가 존재합니다. 당연히 차이점 역시 상당하고, 때문에 이 글 역시 재미로만 읽으시는게 좋다는 말씀을 미리 드립니다.

- 공통점 1 : 당시 지구상에서 가장 강력한 군사력을 지니고 있던 제국이 자국의 패권에 도전하는 이웃의 다른 강대국을 침공했고, 결국 패전했으며 그로 인해 몰락했다.

러시아와 고구려 모두 당시 지역패권국이 주도하는 질서에서 차석을 차지하는 군사력을 가지고 있는 국가였죠. 프랑스의 황제 나폴레옹은 아일라우 전투에서 사실상 패전에 가까운 쓴맛을 본 기억으로 인해 러시아가 만만치 않은 상대라는 걸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으며, 수나라의 양제 역시 수 문제의 1차 침공 실패로 인해 고구려가 군사적으로 굴복시키기 어려운 상대라는 걸 아주 잘 알고 있었습니다.

당시 유럽대륙을 사실상 석권했던 나폴레옹의 프랑스 제국과 마찬가지로 수나라도 중국대륙을 석권한 상태기도 했죠. 양 쪽 모두 당시 지구상에서 가장 강력한 군사력을 지니고 있는 국가라고 봐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쪽 모두 공세종말점에 막혀 패퇴하는 과정에서 막대한 병력 손실을 입었으며, 이것이 곧 몰락으로 이어졌습니다.

프랑스와 중국 모두 너무도 강력한 국가들이었기 때문에, 이후 레짐체인지가 되었을 뿐 국체 자체가 손상되지는 않았다는 점 또한 똑같습니다.

- 공통점 2 : 수비측은 병력의 열세에도 불구하고 청야전술로 먼 곳에 원정을 온 침략자들의 막대한 병력 숫자를 오히려 약점으로 바꿔버렸으며, 이로 인해 승리했다.

승리한 수비 측에서 잘 언급하지 않는 사실이기도 합니다만, 여기에는 러시아와 고구려 모두 프랑스를 비롯한 서유럽과 중국에 비해 가난한 지역이었다는 것도 크게 한 몫 했습니다.

현지보급에 크게 의지할 수 없었던 프랑스의 그랑다르메는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같은 서유럽과는 달리 도로도 제대로 정비되어 있지 않으며, 집집마다 털어도 비축되어 있는 식량이 거의 없는 러시아의 가난한 현지 사정에 경악을 금치 못했습니다.

마찬가지로 동양에서 가장 부유한 지역이었던 중국에서의 전투에 익숙했던 수나라의 병력도 인구밀도가 낮고 대군이 질서정연하게 기동할 정비된 도로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 고구려 땅에서 엄청난 보급난을 겪어야 했습니다.

- 공통점 3 : 대군을 동원한 원정군은 단기 결전을 노렸으나, 이에 실패하고 결국 수도를 눈 앞에 두고 후퇴해야 했다.

나폴레옹은 언제나 그랬듯이 대군을 통한 단 한 번의 결정적인 회전과 그로 인한 승리를 추구했지만, 자꾸 자꾸 뒷걸음질 치는 러시아군을 쫓다가 결국 장기전의 수렁에 빠져 불타버린 모스크바에서 첫 눈이 내리는 걸 지켜봐야 했으며, 러시아의 수도였던 상트페테르부르크로 진군하는 대신 스몰렌스크로의 후퇴길에 올라야 했습니다.

수 양제 역시 어마어마한 대군을 동원했으나 고구려의 요동방어라인에 막혀 막대한 시간을 지체할 수 밖에 없었고, 마지막 승부수로 동원한 평양 침공 별동대 또한 평양성을 코 앞에 두고 짐을 싸야 했죠.

- 공통점 4 : 지나치게 대군을 동원하여 국경선을 넘기 전부터 병력이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60만명에 달하는 프랑스의 러시아 원정군은 러시아 국경을 넘기도 전에 이미 엄청난 보급난을 겪으며 소모되기 시작했고, 리투아니아까지 겨우 당도한 시점에서 이미 10만 명이 넘는 병력이 총 한 번 쏴보지 못하고 싸늘한 주검으로 변했습니다.

113만명에 달했다고 전해지는 수나라의 2차 고구려 원정군 역시 요하를 넘기도 전에 엄청난 식량난으로 신음했고, 당시 중국에는 '요동에 끌려가면 어차피 죽는다'라며 산으로 도망치는 남자들이 속출했었죠.

실제로 양 측 다 동원했다고 알려진 병력의 숫자가 과장되었다는 의견이 많습니다만, 어찌되었건 두 제국 모두 '이전에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대군을 동원했다는 것 자체는 확실해 보입니다.

- 공통점 5 : 의외로 회전에서는 대부분 침략자들이 승리했다.

역시 패전에 가려져서 잘 언급되지 않는 부분입니다.

나폴레옹의 그랑다르메는 첫 대규모 전투인 스몰렌스크 전투에서도, 이미 주력 병력의 상당수가 보급난으로 녹아내려서 병력의 우세를 상당 부분 잃어버렸던 보로디노 전투에서도 러시아 군을 패퇴시켰습니다. 심지어 보로디노 전투에서 나폴레옹이 조금 더 과감하게 근위대를 투입했다면 러시아 원정은 프랑스의 승리로 끝났을 것이라고 말하는 역사가들도 있죠. 계속 되는 승리에 처음에는 엄청난 비전투 손실을 걱정하던 뮈라를 비롯한 나폴레옹 휘하 지휘관들 역시 '전쟁은 사실상 우리의 승리로 끝났다'라고 생각할 정도였습니다.

마찬가지로 수나라 역시 요하를 건너는 과정에서 벌어진 첫 대규모 전투에서 고구려의 주력군을 압도적인 병력으로 패퇴시켰으며, 이후 주력군이 반신불수가 된 고구려는 수성위주의 전략을 강요받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역시 보급난으로 이미 상당수의 병력이 손상되었던 평양 침공 과정에서도 고구려와 일곱 번이나 전투를 벌여서 모두 이겼습니다. 승리가 계속 되자 처음에는 배후에 고구려 군을 남겨놓고 수도를 공격하는 것에 반대하던 우문술 같은 지휘관들 역시 이대로만 가도 승리할 수 있다고 여기게 됐죠.

두 제국 모두 개별 전투에서는 병력의 우세를 최대한 살리며 대체로 압도하는 모습을 보였으나, 종국에는 패배하여 짐을 싸서 돌아갈 수 밖에 없었고, 후퇴하는 도중 대부분의 병력을 상실했다는 것도 공통점입니다.

- 공통점 6 : 협공을 약속한 동맹국들은 사실상 태업으로 일관했으며, 내심 제국의 패배를 바랬다.

가장 강력한 패권 국가는, 모두의 두려움을 사는 동시에 질투와 경계의 대상도 되기 마련입니다. 프랑스의 강요로 끌려온 프로이센과 오스트리아의 군대는 전투를 노골적으로 회피하며 전쟁을 관망했습니다. 그나마 전투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제후국은 폴란드의 독립을 바랬으며, 사실상 나폴레옹의 괴뢰국에 가까웠던 바르샤바 공국 군대 뿐이었습니다. 외젠의 이탈리아 군대는 사실 동맹국이라고 부르기에는 쑥스러울 정도로 프랑스의 일부에 가까웠고요.

마찬가지로 수나라가 이미 복속시켰다고 생각한 돌궐을 비롯한 세력들도 고구려 원정 참여에 매우 소극적인 태도로 일관했고, 배후에서 협공해 제 2전선을 열어주겠다고 약속했던 백제 역시 입을 싹 닦으며 수나라의 뒷통수를 쳤습니다.

당시 서양과 동양 모두 1등이 2등을 무너뜨리는 걸 보는 걸 원하지 않아서였죠.      

- 공통점 7 : 승전국의 국가적 자긍심에 큰 영향을 주었다.

러시아는 나폴레옹의 러시아 원정을 아예 '조국전쟁'이라는 영광스러운 이름으로 부르며, 이후 히틀러의 독일이 러시아를 침공했을때 '또 다른 조국전쟁이 시작되었으며, 우리는 승리할 것이다'라며 이 승리를 서구의 침략에 꺾이지 않는 러시아의 상징으로 삼았습니다.

한국 역시 중국 황제가 친정한 군대를 물리친 걸 대대로 자랑스러워 했으며, 이후 고려가 거란 등 외세의 침략을 받았을때도,
'우리는 중국 황제의 침략도 막아냈던 나라다'라며 항복하지 않고 대군을 결집시켜 전쟁을 벌일 정도로 이를 국가적 자긍심의 한 요소로 삼았습니다.
조선 역시 명나라 사신 앞에서 '살수에서 백만 군사가 고깃밥이 되었더랬지'하는 시를 뼈있는 농담으로 읇을 정도였죠.

- 공통점 8 : 승전국의 군사적 역량이 과대평가된 계기가 되었다.

두 전쟁 모두 전력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수비자가 수비의 이점을 가장 현명하게 이용하여 강자의 침략을 막아낸 사례라고 할 수 있지만, 너무도 강렬했던 패전의 기억은 그 사실을 상당부분 희석시켰습니다.

러시아는 이 승리로 인해 '유럽 대륙 질서의 수호자', '건드려서는 안 되는 동방의 강국' 이미지를 얻었고, 이후 크림전쟁에서 후진적인 러시아 군의 실상이 드러나기 전까지 유럽국가들이 러시아를 터무니없이 과대평가하게 된 계기가 됩니다.

마찬가지로 이후 중국에 들어선 왕조는 한반도 국가의 국력을 지나치게 과대 평가하게 되죠. 중국의 정복자 쿠빌라이 칸이(공교롭게도 정치적 상황이 고려에 무척 유리하게 돌아간 까닭도 있지만) 몽골제국 내에서 고려왕조의 지분을 지나치게 많이 보장하는가 하면,

임진왜란때 일본의 침략에 속절없이 밀리며 원군을 요청한 조선에 명나라가 '아니 고려는 우리도 옛날에 괜히 처들어갔다가 물먹은 곳인데 왜놈들 좀 몰려왔다고 수도가 점령당하는게 말이 되냐? 너네 히데요시랑 손잡고 중국 침략하려고 그러는 거지? 바른대로 말해라'라고 의심섞인 반응을 보이기도 합니다.

- 차이점 : 물론 상황이 같지 않으니 차이점 또한 많습니다. 수나라와 고구려 사이의 국력 차이는 프랑스와 러시아의 그것 보다도 훨씬 컸고, 때문에 전쟁이 일어나기 전까지만 해도 명목상으로는 대등한 동맹국이었던 러시아에 비해, 고구려는 승전이 확전된 그 순간까지도 외교적으로는 황제국에 대한 예의를 갖췄습니다.

프랑스는 이베리아 원정과 러시아 원정이 모두 수포로 돌아가자 곧바로 수세에 몰려서 결국 외세에 의해 국토가 점령 당했지만, 동양에서 지나치리만큼 압도적인 국력을 갖고 있던 중국은 1,2차 원정의 실패 이후로도 두 차례나 더 고구려를 침공했고, 외세가 아닌 반란군의 손에 레짐체인지가 일어났습니다.  

나폴레옹의 러시아 원정은 화기의 시대이니만큼 러시아는 수성전을 무기로 삼지는 못했지만(사실 드리사를 거점으로 수성전을 준비하려고 했으나,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은 러시아의 차르 알렉산드르는 야전으로 프랑스를 막아내는 것으로 전략을 바꿉니다) 고구려는 냉병기 시대이니만큼 요동성을 비롯한 강력한 요새의 이점을 충분히 살릴 수 있었습니다. 이는 고구려가 프랑스-러시아의 국력차보다 훨씬 큰 체급의상대를 맞아 승전할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합니다.

당시 중국은 육해군을 동시에 동원하여 한반도를 침략했지만, 프랑스는 바다에서 영국을 이기지 못했던 까닭에 보급과 침략루트를 육로로 한정지을 수 밖에 없었다는 것도 차이점입니다. 실제로 수나라의 수군 총지휘관 내호아가 독자적으로 평양성을 공격했다가 고구려의 왕제 고건무의 영웅적인 활약에 패배하고 물러나기도 했죠.

- 두 전쟁의 공통점에 기반한 추측 : 고구려의 청야전술은 의도된 것이 아니었을 가능성이 높다

사실 제가 이 글을 쓰게 된 이유이기도 합니다.

러시아 원정 역시 처음에는 러시아의 집요한 청야전술에 프랑스의 그랑다르메가 무릎을 꿇은 전쟁으로 알려졌고, 지금까지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적어도 대중적인 인식은 그렇죠.

그러나 관련 연구가 진행되면 진행될수록, 러시아의 청야전술이 의도된 것이라기보다는, 너무도 많고 강력한 원정군에 끝도 없이 밀려났고, 전쟁이 길어지다보니 결국 원정군이 먼저 굶주리기 시작한 것에 가깝다는 것이 드러나고 있죠.

실제로 러시아의 황제였던 알렉산드르는 러시아 군이 거점을 내주고 후퇴할때마다 총사령관인 드 톨리를 크게 질책했고, 스몰렌스크가 불타자 결국 인내심의 한계를 드러내고 총사령관을 평소 혐오하면서도 경계하던 쿠투조프로 교체합니다.

크투조프 역시 보로디노에서 패배하고 모스크바를 내주자 알렉산드르는 노발대발하지만, 그 시점에서 러시아에 남은 실질적인 야전군은 모두 크투조프의 휘하에 있었기 때문에 더 이상 그를 자를 방법이 없었을 뿐, 러시아의 수뇌부의 대전략은 처음부터 '내줄 건 내줘가며 시간을 끌어서 나폴레옹을 몰아낸다'와는 한참 거리가 있었습니다.

크투조프가 오늘날 러시아를 대표하는 명장 중 하나로 무척 널리 알려지긴 했습니다만, 러시아 원정을 깊게 고찰하면 할수록 '그가 특별히 장기전을 의도했다기 보다는 그냥 게으르고, 단지 나폴레옹과 정면으로 싸워서 이길 자신이 없었을 뿐이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의 의견이 어쩐지 더 설득력 있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마찬가지로 고구려가 펼쳤다는 청야전술이라는 것의 실상도 어쩌면 비슷했을지도 모릅니다. 고구려의 중앙집권도와 지방 장악력 역시 당시 러시아 제국보다 더 떨어지면 떨어졌지 낫다고 보긴 어렵고, 이런 전근대적인 행정구조를 가지고 있는 국가의 왕조가 과연 '왕족이 다스리는 수도를 지키기 위해, 귀족들의 근거지인 지방을 고의로 적에게 내준다' 라는 전략을 사용할 수 있었을지에 대해서는 큰 의문점이 남습니다.  

고구려 역시 전쟁 초반 중국군이 요하를 건너려고 할 때부터 이미 대군을 동원해서 이를 야전에서 저지하려고 시도했고, 이에 실패해서 일만명이 넘는 금쪽 같은 병력을 상실합니다. 중국에 비해 동원할 수 있는 인력이 한정되어 있는 고구려 입장에서는 정말 뼈아픈 손실이었죠.

이후 평양으로 30만에 달하는 대군이 육박하는 과정에서도 고구려는 7차례에 걸쳐 이를 저지하려고 시도하지만, 모두 패배합니다. 물론 이 전투들은 수나라 별동대의 진군속도를 늦추기 위한 전략으로 알려졌고, 실제로도 그러했을 것입니다만, 정말 수도를 코 앞에 두고 '일부러' 전투에서 패배하는 위험천만한 전략을 고구려 수뇌부가 채택했을지는 크게 의심스럽습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후퇴는 전진보다 훨씬 전술적으로 까다로우며, '일부러 적을 유인하기 위해서' 패배하는 척 하다가 정말로 전군이 사기를 잃고 와해되는 경우 역시 전사에서 많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그보다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수도인 평양까지 적이 오지 못하도록 맞서 싸우며 시간을 끌어라'라고 지시했을 거라는 게 더 합리적으로 보입니다.

어쩌면 기록이 지금까지 전해져 내려오지 못했을 뿐, 영양왕도 쉴 새 없이 지휘관들을 독려하며 '용감히 맞서 싸워서 중국군을 막아라'라고 주문하고, 을지문덕 역시 '총사령관이라는 작자가 평양 코 앞까지 적이 오도록 방치하면 어떡하냐'라는 질책 속에서 도박을 하는 심정으로 단신으로 시간을 벌고 적을 염탐하기 위해 수나라 진영을 찾아갔을지도 모릅니다.

저는 아마도 고구려가 처음부터 청야전술을 의도했다기보다는, 최대한 열심히 강대한 적에 맞서 싸우다보니 결과적으로 중국을 이기는 대박을 쳐버렸을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들의 생각은 어떠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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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레멘티아
21/08/22 15:58
수정 아이콘
청야전술은 애초에 불리한 쪽에서 쓰는 필살기 같은 전략입니다. 민간 물자까지 태우는 전략이다보니,
이겨도 휴유증이 엄청 크거든요.
그러니, 이긴 뒤엔 대외적인 홍보라도 크게 하는거고요.

상세한건 나무 위키를...
https://namu.wiki/w/%EC%B2%AD%EC%95%BC%20%EC%A0%84%EC%88%A0
심장소리
21/08/22 16:13
수정 아이콘
저는 실제로 고구려가 민간 물자까지 다 소각시키는 청야전술을 필살기로 사용했을지에 대해서도 회의적으로 생각합니다.

첫째로 그런 대대적인 행정 명령을 필요로 하는 전술을 계속 사용할 정도로 전쟁의 기간이 길지도 않았고,

둘째로 몽골의 침략에 맞서 최후의 발악으로 산성별감과 같은 행정직을 두고 정말로 평야를 포기하고 산과 섬으로 사람과 물자를 옮기는 의도된 청야전술을 사용했던 고려시대에 비해 고구려-수 전쟁에서는 그러한 기록이 나타나지 않으며,(후대의 당나라의 기록만 봐도 고구려는 가난한 땅이다, 진창길때문에 군대의 기동이 고생이라는 말은 많이 나와도 고구려가 비겁하게 불을 지르고 달아났다는 식의 기록은 보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고구려 백성들에 대한 선전이 잘 먹히지 않아서 걱정이라는 기록은 수나라 시절부터 나오고)

마지막으로 지방 거점만 겨우 통제하는 것에 그쳤던 고구려가 그런 전술을 사용할 정도로 지방 통제력이 강했는지에 대해 의구심이 남기 때문입니다.

이미 의도적으로 청야전술을 사용한 것과 거리가 멀다고 밝혀진 러시아 원정조차도 나폴레옹이 '비겁하게 모스크바에 불을 지르고 떠나냐, 이건 신사들의 전쟁 방식이 아니다'라고 항의하고 러시아 측에서 '무슨 소리냐, 그건 그냥 사고에 불과하다, 우리 측이 고의로 그런 것이 아니다' 라고 갑론을박을 펼쳤다는 기록이 있는데,

기록이 별로 남아있지 않는 까닭도 크겠습니다만, 고구려-수 전쟁에 있어서는 그런 종류의 사건에 관한 기록이 전혀 관측되지 않습니다.
Hudson.15
21/08/22 16:24
수정 아이콘
(수정됨) 고구려 군의 움직임을 보면 요동성에서 수나라 본대가 묶였을 시점부터 목표는 단기결전으로 적의 공격능력 분쇄하는 것 아니었을까요? 다만 그 대상은 수나라 별동대가 아니라 내호아의 수군이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평양성으로 드랍이 가능한 루트만 박살내면 적은 공세를 유지할 방법이 없었을 테니까요. 을지문덕의 지연책은 별동대와 수군의 합류를 저지하기 위한 의도적인 전술이었을 겁니다.

그래서 전 실제로 내호아가 상륙 했을 시점에서 고구려 본영이 멸망을 직감했을 가능성도 높다고 봅니다. 내호아는 고구려 대군과의 결전에서 승리를 거두면서 평양 근교에 상륙하는데 성공했으니까요. 다만 공명심 때문에 내호아가 아군의 합류를 기다리지 않고 평양성으로 공격에 들어갔고, 그 결과 패퇴하면서 기껏 만들어 놓은 보급 루트를 다시 빼앗겨버렸죠. 그 시점에서 수나라의 승리 가능성은 0% 수렴합니다. 살수대첩도 뒷처리에 가까운 전투죠
심장소리
21/08/22 16:31
수정 아이콘
저도 비슷하게 생각합니다. 내호아의 수군이 상륙했을때가 정말 절체절명의 순간이었고, 실제로 내호아 휘하 부대의 단독 공격만으로도 평양 외성이 함락될 정도로 위기이기도 했죠.
됍늅이
21/08/22 16:51
수정 아이콘
살수대첩도 대단한 전투지만 사실 패잔병 학살 대작전에 가깝고.. 500명으로 평양성 문 열어주고 4만명 격퇴해서 전쟁의 향방을 꺾어버린 거니 고건무의 평양성 전투가 사실 한국사 육군 대전 중에 거의 원탑급이 아닌가 싶습니다. 귀주대첩도 사실 승기를 거의 다 잡은 상태에서의 전투였고, 행주대첩도 객관적인 규모가 아주 큰 전투는 아니었다고 보면 말이죠.
굳이 하나 더 넣으면 연개소문의 사수대첩도 있겠지만 이미 한반도의 큰 줄기의 역사가 좀 정해진 상태였다 보니 묻히는 감도 있고..
심장소리
21/08/22 16:56
수정 아이콘
육군판 명량대첩이라고 봐도 크게 무리는 아니죠. 그런 전쟁 영웅이 오히려 중국에 사대하면서까지 전쟁을 피하려고 하는 평화주의자 왕이 되었다는 것도 시사하는 점이 큰 것 같습니다.

전쟁을 겪어본 사람일수록 전쟁을 두려워하고, 정작 전쟁을 겪어보지 못한 사람일수록 전쟁을 가볍게 생각하는 것 또한 동서고금을 가리지 않죠.
21/08/22 16:18
수정 아이콘
연개소문→을지문덕
심장소리
21/08/22 16:20
수정 아이콘
지적 감사드립니다. 긴 글을 쓰다보니 햇갈렸네요.
깃털달린뱀
21/08/22 16:44
수정 아이콘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요즘들어 전투보다는 이런 대전략적인 측면이 너무 재밌습니다. 전략 목표 설정! 병력 배분! 장수 통제! 거점확보! 보급! 파면 팔수록 옛날 사람이라고 멍청하긴커녕 오히려 제한된 상황에서 현대인 못지 않게, 혹은 뛰어넘는 수읽기로 판을 짜고 행동하는 게 가슴 뛰는 무언가가 있습니다.
혹시 이런 주제로 읽을만한 책이 있으면 추천 부탁드려도괜찮을까요?
심장소리
21/08/22 16:49
수정 아이콘
재밌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비전공자들도 재밌게 읽을 수 있을 만한 책은 동양사에 대해서는 케임브리지 중국사를, 전쟁사는 Warfare in the Classical World를 추천합니다
깃털달린뱀
21/08/22 17:40
수정 아이콘
흐흐 뒷 책이 끌리는데 다행히 번역본이 있군요. '서양 고대 전쟁사 박물관'
내일 바로 가서 빌려봐야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심장소리
21/08/22 18:09
수정 아이콘
(수정됨) 번역본이 있는 줄은 몰랐네요. 왠지 번역서의 제목이 훨씬 재밌어 보이는 느낌입니다 흐흐
제목만큼이나 내용도 재밌는 책입니다. 일단 대부분의 역사책과 달리 그림과 병력 포진도를 비롯한 시각자료가 무척 많이 실려있어요.
메디락스
21/08/22 16:54
수정 아이콘
을지문덕이 적진에 홀로 갔다는건 야사 아니었나요?
심장소리
21/08/22 16:58
수정 아이콘
중국 정사에 기록된 사건입니다. 실제로 을지문덕을 사로잡는 걸 비겁한 짓이라고 반대한 유사룡은 이후 분노한 수양제의 손에 목이 잘립니다.
시나브로
21/08/22 16:55
수정 아이콘
좋은 글 감사합니다. 역사 얘기는 언제나 유익하고 의미 있고 관심 가죠.
BERSERK_KHAN
21/08/22 17:03
수정 아이콘
모처럼 좋은 글 읽었네요. 감사합니다!
심장소리
21/08/22 17:12
수정 아이콘
(수정됨) 주제와 동떨어진 부분이라 본문에서는 쓰지 않았는데...

최초로 세워진 조선을 이후 세워진 조선과 구분하여 고조선이라고 부른 것처럼 우리는 먼저 세워진 '고려'를 '고구려'라고 부르고 있죠.

저는 고구려도 그냥 고려라고 칭하는게 여러가지 측면에서 훨씬 나았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고구려는 수나라가 침략하기 훨씬 이전인 장수왕 시절부터 이미 국명 자체가 그냥 '고려'였고, 수나라와 당나라의 사서에서도 '고려'라고 나오죠. 이후 다른 '고려', 그 고려를 이은 조선이 세워졌을때도 주변 국가들은 모두 우리를 여전히 '고려'라고 불렀고요. 사실 지금까지도 동서양 모두 우리를 '고려(korea)'라고 부르고 있죠.

아마 먼저 세워졌던 고려의 원래 국명이 고구려였기도 하고, 굳이 뒤에 세워진 고려랑 구분한다고 '고고려'라고 부르거나, 뒤에 세워진 고려를 '후고려'라고 부르기보다는, 그냥 먼저 있었던 고려를 더 고대의 국명이었던 고구려라고 부르기로 우리 사학계의 합의가 모아진 것이겠지요.

하지만 차라리 고씨왕조, 왕씨왕조 고려로 구분하는 쪽이 훨씬 나았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것만으로도 중국의 동북공정이 꽤 껄끄러워졌을 수도 있으니까요. 특히 이런 문제에서 사소한 단어의 차이가 가지는 힘은 생각보다 크죠.
깃털달린뱀
21/08/22 17:43
수정 아이콘
고거슨 이씨 조선 일제 비하설이 남아 있는 한 힘든 일이 아닐까 합니다.
별개로 저도 고구려 고려는 이름을 좀 더 강하게 연관시키는 게 낫다고 생각합니다. 몽골에서 '아니 너희 옛날엔 수나라도 이기고 그러더만 요샌 왜이럼?' 할 때 현대인이 느끼는 벙찜 문제도 그렇고요.
심장소리
21/08/22 18:11
수정 아이콘
말씀하신대로 이미 힘든 일이 되버리긴 했죠. 이런 문제는 첫 단추를 잘 꿰는게 중요하기도 하고... 개인적으로 안타까워요.
물론 그때 당시만 해도 중국이 설마 고구려까지 자기네 역사라고 우기는 날이 올 거라고는 누구도 생각을 못했겠지요.
조커82
21/08/22 19:02
수정 아이콘
마지막 문단은 이조라는 용어가 일제의 비하식 용례로 굳어진 이상 쉽지 않을듯 합니다.
그리고, 용어라는게 한번에 정해진게 아니라 꽤 오랫동안 역사성을 지니고 있는거라서.. 인위적으로 바꾸기 어렵다.라는 문제도 있습니다.
실제로 고등학교 동아시아사 교육과정에서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을 각각 [임진전쟁] [정유전쟁]으로 바꿨다가 한국사와 용어 통일도 안되고, 학생들 혼란만 키워서 현 2015 교육과정에서 다시 왜란으로 원위치 되었던 사례도 있으니까요.
사실 왜란이라는 용어 자체가 당시 전쟁의 의미를 축소해석하려고 애쓰는 느낌이 없는건 아닙니다만(당시 조선 지식인이 세계적으로 전쟁을 이해하지 못했을수도 있습니다), 이미 오랜 세월 왜란, 호란으로 굳어버린 이상 인위적으로 용어를 바꾸기 어렵다는 것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어 소개드립니다.
파프리카
21/08/22 18:44
수정 아이콘
좋은 글 감사합니다. 글을 읽고 나니 드는 생각입니다만 수나라 별동대가 식량을 군인들에게 무리하게 짊어지고 가도록 한 것이 현지에서 물자를 조달(약탈)할 시간도 고려하지 않은 속도전을 생각한건 아닐까 싶기도 하네요. 청야전술보다는 수 양제의 조바심이 더 중요한 패인은 아니었을까 생각도 듭니다.
심장소리
21/08/23 09:46
수정 아이콘
말씀하신대로 수양제 입장에서도 무척 초조했을 거라고 봅니다. 실제로 3-4차 침략때도 고구려를 몰아붙이다가 국내 반란 때문에 회군해야 했으니까요. 멀리 원정을 나온 군주 입장에서는 오래 자리를 비우면 항상 뒷통수가 간지럽기 마련이죠.
2021반드시합격
21/08/22 19:30
수정 아이콘
오늘 나무위키로 을지문덕 봤었는데 크크크
글 잘 읽었습니다.
abc초콜릿
21/08/23 11:48
수정 아이콘
러시아 원정에서 러시아군은 청야전술이고 나발이고 그냥 뭘 해볼 시간도 없었습니다. 전쟁과 평화에서도 상황이 "어제는 OO가 함락 됐다더니 오늘은 OO가 함락됐다고? 뭐 이리 빨라?"라는 식으로 언급되는데 보로디노까지 제대로 된 전투 한번 없었던 것이 러시아군이 병력을 모아서 뭣 좀 해버리면 프랑스군이 벌써 와버려서 일단 물러나고, 그걸 프랑스군이 또 쫓아가고, 이걸 반복한 상황이었죠.

보로디노에서 결국 프랑스군이 이기고 모스크바를 점령했을 때 나폴레옹이 시간을 끌지 말고 상트페테르부르크로 달려 갔으면 전쟁이 끝났을 것을 모스크바에서 시간을 너무 끈 게 패인이었죠
심장소리
21/08/23 14:15
수정 아이콘
말씀하신대로 러시아군은 청야전술 같은 걸 계획할 시간도 의지도 없었죠. 뭘 좀 해보려고 하면 번개처럼 들이치는 나폴레옹의 그랑다르메 때문에..

그리고 나폴레옹이 모스크바를 점령했을때는 이미 9월 중순경이었습니다. 그대로 지체하지 않고 상트페테르부르크로 달려간다고 해도 두 달 가량은 걸릴텐데, 그렇게 되면 이미 겨울입니다. 러시아의 벌판에서 겨울을 맞는다는 건 모두가 알다시피 파멸을 의미합니다.(실제로 나폴레옹의 군대는 후퇴하는 길에 그렇게 되었지요)

아마 나폴레옹도 상트페테르부르크로 달려가고 싶었겠지만, 현실적으로 그것은 불가능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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