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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21/06/27 00:40:30
Name Farce
Subject 편파 중계 지역사: 남인도 시점에서 보는 인도사 (수정됨)
야구 같은 스포츠를 챙겨보시는 분들이라면, '편파 중계'라는 표현을 들어보신 적이 있으실 것입니다.

국제전이나 아무도 모르는 구단 사이의 경기를 어쩌다가 처음 보는 것도 아니고,
어차피 응원하는 팀은 정해져 있을 것이니,
한 쪽 편을 노골적으로 들어서 재미라도 챙겨보자는 생각에서 나온 방식입니다.

저는 이 '편파 중계'라는 표현이 스포츠 뿐만이 아니라, 일상의 다른 요소에서도 재미있게 쓰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목에서 보고 오셨듯이, 이번 글의 주제는 '역사'입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이런걸 일상 주제라고 가져오는 사람입니다.
오늘도 Farce의 글을 클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 제가 가져온 이야기는 인도의 역사입니다.
아시다시피, 인도라는 나라는 정말 큽니다.
크기만 클 뿐만이 아니라, 다양한 인종과 종교의 사람들을 포괄하고 있으며, 기나긴 역사를 자랑하지요.
그러니 제가 어설프게 마치 인도의 역사를 잘 아는 마냥, '이것이 인도의 포괄적인 역사입니다~'라는 글을 감히 쓴다면
하나도 이치에 맞지 않으며, 오히려 수박 곁핥기 식으로 이런 저런 항목을 인터넷에서 대충 짜집기한 내용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오늘 하고 싶은 이야기는 그보다는 깊은 이야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다행히도 제가 미국에서 교환학생을 할 때, 룸메이트가 타밀 사람이었다는 자랑 아닌 자랑을 하고 싶습니다.
그 친구는 정말 재미있는 친구였고, 따라서 들으면서도 웃으면서 빠져들 수 있는 이야기를 많이 했습니다.
한번 그 이야기를 뒤늦게나마 정리해보고 싶습니다.

저는 감히 인도의 모든 역사를 서술하겠다고 말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제 룸메이트의 한 쪽의 시선만이라도 잘 담아서 한번 여러분을 이야기에 푸욱 빠지게 하고 싶습니다.

앞서서 인도가 넓은 영토를 가진 다민족국가라는 뻔한 이야기를 했으니,
한번 그 이야기로 시작을 해볼까요?

이 글의 제목이 굳이 '[남]인도 시점의 이야기'인 이유는,
앞으로 [북인도]/[남인도]를 나눠서 이야기가 계속해서 나올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이 두 집단이 어떤 종류의 사람들인지를 짚어봐야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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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인의 집단을 가장 크게 나누자면, 북인도의 '인도아리아인'과 남인도의 '드라비다인'으로 나뉩니다.]
(이 지도에서는 세번째 집단이라고 할 수 있는 중국-버마계 소수민족들도 표시가 되었습니다만,
제가 아는 정보가 없어서 이 글에서는 함부로 다루지 않을 예정입니다.)

그렇습니다. 오늘의 편파중계는 순전히 드라비다인 친구의 입장에서 들은,
인도아리아인 친구들을 공격하는(?) 이야기가 될 예정입니다!

거대한 인종적인 담론은 아니고요 (그쪽 농담을 계속 던질거긴 합니다 크크).
그나마 가장 잘사는 드라비다인 지역의 '타밀인' 친구가,
인도 정치의 주도권을 쥐고 있는 '힌디인' 정치인들을 공격하는 이야기라고 말씀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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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아, 벌써 왜 누가 누구에게 왜 불만이 있는지 감이 오시지 않으시는지요?]
인도의 수도는 델리입니다, 그리고 델리는 힌디인들의 땅 한복판에 있습니다. 크크크크
타밀인들은 잘 못 들어보셨겠지만, 중심도시의 이름이 '첸나이'인데요, 나름 인도에서 잘 사는 도시 중 하나입니다.

인도가 크게 두 개의 집단으로 나뉜다니, 두 집단 사이의 사이가 마냥 좋지는 않을거라는 팝콘각이 벌써 느껴지시지 않으십니까?
그런 궁시렁을 모아서 한번 모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드라비다인은 인도 아대륙의 '원주민'들입니다. (와아, 편파중계 시작!)
그리고 이 원주민이라는 어휘에서 벌써부터 촉이 빠르신 분들은 감이 왔겠지만,
이들은 인도아리아인들에 의해서 쫓겨나게 됩니다 크크크크크크!

먼저 와있었다고 밝혀졌는데, 지금은 남부 일부 지역에만 남아있다면 당연히 밀려난거죠!
우리가 옛날에 교과서에서 많이 배웠던 속칭 '세계 4대 문명'을 기억하시는 분도 계실 것입니다.

이집트는 나일강, 중국은 황하강, 중동은 메소포타미아강, 그리고 인도는? 인더스 강이지요.

지금 인더스는 확고한 북인도인들의 중심지입니다만, 인도아리아인들도 과학적으로 인정하는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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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더스 계곡 문명은 '아마도(?)' 드라비다인들의 문명으로 추정됩니다.]

드라비다인들이 대단해서가 아니라, 아직 인도아리아인들이 오기전에 꽃피던 문명이거든요. 크크
그리고 별로 놀랍지도 않게(?) 인도아리아인들이 이주해오자 인더스 계곡 문명의 유물이 끊깁니다.

타밀인 친구의 말에 따르자면, 야만인들이 침공해왔으니 별 수 있겠냐고 했고요 크크크.
힌디인 친구의 말에 따르자면, 아니 그냥 현지인들이 섞이면서 현지 문명으로 바뀐거지, 북인도인 다 죽었냐! 그러더라고요 크크.

이어서 타밀인 친구는 "아니 근데 인더스 문명의 유산과 형태를 가장 잘 간직한게, 타밀인들이라니까?" 라고 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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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그래."] 라고 흘렸습니다 흐흐지송! 미안~ 어디서 들어본 논리라~

자 이런 역사에서 보셨듯이, 인도아리아인/북인도인과 드라비다인/남인도인은 많은 차이를 가지고 있습니다.
애초에 다른 민족집단이기에, 문화와 그에 따른 사고방식은 당연히 다르고,
언어도 전혀 통하지 않으며 (영어가 공용어인 이유가 있습니다),
당연히, 외모조차도 차이가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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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되게 인종론적인 자료여서 조심히 써야합니다만, 그래도 시각적으로 딱 보여드릴 만한게 없어서 이걸 사용해보겠습니다]

히틀러가 좋아할 것 같은 '아리아인'이라는 어휘에서 이미 감을 잡은 분도 계시겠지만,
북인도인들은 엄밀히는 유럽인과 같은 계통을 공유합니다.
하지만 유라시아가 워낙 크다보니, 저기 멀리 서쪽에 사는 유럽인보다는, 중동인들과 혈연관계가 가깝습니다.
그래서 피부도 '상대적'으로 구릿빛으로 밝고, 이목구비도 흔히 말하는 '서구적'인 외모를 띕니다.

남인도인들은 반면, '상대적'으로 피부가 검고, 좀더 이목구비가 덜 날카롭고 둥급니다.
원래 인도 남부의 원주민은 오히려 말레이 계통에 가깝지 않았나 추정됩니다만 지금은 전부 드라비다인들에게 동화되어서,
극동에 사는 우리 입장에서 보기에 '동양인스러운' 외모를 가진 남인도인이 보이기도 합니다.

라고... 말하고 싶습니다만  현실적으로는 지역 차이도 크고, 저렇게 전형적으로 생긴 사람도 악의적으로 모아놓지 않으면 잘 없습니다.
이들이 얼마나 통혼을 오래 하면서 살았는데요~
그래도 확실히 다른 집단이라 같이 지내면서 자세히 보다보면 대충 누가 어디쪽이구나 감이 오게 되더군요.
물론 저는 인도인들을 그렇게 주변에서 다양하게 접하지는 못하였으니 근거 없는 자신감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흐흐.

아무튼 간에, 인도의 남쪽으로 밀려난 드라비다족들은 다양한 해상제국을 만들면서,
'인도양'의 패권을 잡고, 동남아시아의 문화에 전반적인 영향을 미쳤습니다.

타밀인들의 '촐라 제국' 같은 경우에는, 우리나라로 치자면 '신라'정도 포지션의 고대제국인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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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타밀인들이 주모를 외치게 만들고 국뽕을 상기시켜주는 대제국이었다고 전해집니다.]
하지만 모든 남인도의 드라비다 왕국들을 끝끝내 고구려처럼 통일하지는 못하였으며,

옆동네 칸나다인들은 (드라비다족의 서쪽일파, 동쪽에 사는 타밀인을 까는 것에서 삶의 낙을 찾는 특성이 있다고 친구가 전함)
'촐라 그거 자료도 똑바로 없는 고대제국인데 그걸 뭘 믿고 그려냐 크크크크크크크'
'우리 마이소르 왕국이 근대까지 버텼는데 이게 더 쩔죠?'라고 평생을 까게 되는 오점(?)을 남겼습니다.

다만 촐라 제국에게도 변명거리가 있긴 했습니다.
남인도인들이 대륙 제국이 아니라 해양 제국을 세워야했던 이유는,
북인도와 남인도 사이에는 '데칸 고원'이라고 불리는 지역이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나중에 근대에 와서야 인도 내륙 지방이 개척되고 식민도시도 세워집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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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근대의 데칸 고원은 딱, 한국의 역사에서 '만주'에 해당하는 땅이었습니다.]

제가 촐라 제국의 시대에 타임머신을 타고 가서, 그들에게 데칸 고원을 정복하자고 건의한다면
똑똑한 촐라 사람들은 이렇게 말했을 겁니다. "어이 젊은이, 데칸은 사람이 사는 곳이 아니야."
"비는 별로 오지도 않지, 작물이 자라기에는 쓸 때 없이 시원하지, 땅은 척박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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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떼 끌고 다니는 야만족이 비참하게 살고 있는데, 왜 우리 문명인들이 거기 가서 고생해? 무역선이나 하나 더 만들지."]

고대 그리스인이나 카르타고인들, 중세의 베네치아인들이 그랬듯이 인구가 적고 부유한 무역제국이 올바른 선택이었던 것이지요.
그래서 나중에 북인도사람들이 '감자와 옥수수, 먹어봤니? 아 너희 집엔 이런거 없지!?' 하면서 데칸을 넘어 쳐들어오자,
중과부적으로 복속이 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아 물론, 감자를 받아들이고 내륙을 식민화하면서 권토중래를 노리게 되지요~

근데 잠시 강자에게 꿇을 수야 있겠습니다만, 이상하게도 북인도인들은 '최신 종교' 이슬람을 받아들였답니다.
남인도 사람들에게는 이해가 되지 않았지요. 아니 원래 인도 사람이라면 힌두교 믿는거 아닌가요?
어쩌면 저 사람들은 진짜 인도인이 아닐 수도 있겠네요?

이 문제는 북인도인들의 '무굴 제국'이 붕괴하면서 더 커지게 됩니다.
델리를 중심으로 하는 이슬람화된 북인도에 대항하는 데칸 고원의 힌두교 영주들이 '마라타 동맹'을 결성해 반란을 일으킨 것이지요.

어쩌다가 이런 일이 일어났냐고요?
어떤 무굴의 정복군주 술탄이 열심히 힘내서 최신기술을 동원해 데칸을 정복해 영토를 두배로 늘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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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죽자 오래 지나지 않아 그 땅은 그대로 반기를 들었답니다.]

그래서 두 세력이 열심히 인도의 운명을 두고 싸운 끝에 누가 이겼냐고요?

둘 사이를 오가면서 땅을 빼먹던, 지구 반대편 외계인 영국인들이 이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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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영국인들은 최초로 통합된 이 땅을 '인도'라고 부르기로 했어요.]

하지만 북인도인들의 무굴 제국은 어떤 면에서는 최후의 승자이기도 했지요.
인구도 많고 오랜 역사를 가진 중심지니까 '영국령 인도 제국'에서도 북인도가 중심지로 쓰이기 시작했거든요.

하지만 섬나라 제국주의자들은 엄청난 짓을 저지르고 맙니다.
'어쩌다보니 너희 인도를 독립시켜주긴 할건데, 한 뭉터기로 그대로 독립시키면 죽어라 내부에서 종교별로 싸울 것이 뻔하니,
우리가 너희를 미리 3개로 갈라서 독립시켜주마~' 라고 선언한 것이지요.

듣고보니 맞는 말 같기도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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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리가요.]

영토를 잘라서 독립 시킨다는데, 분명한 종교 경계선이 있는 게 아니라 짜맞춰진 경계선에 따라서 난민들이 이동해야했습니다.
'이동'이라니 말이 쉽지, 토착민들의 삶을 완전히 뒤흔들고 박살내고 뿌리를 뽑아내는 폭력이었지요.
그리고 나서도 '정리'가 안 되어서 무력으로 서로 탄압하고, 전쟁하고, 추가 '교환'을 하기도 하였지요.

북인도인들이 이슬람 지배자들의 지배를 오래 받았지만, 사실 그 지역의 모든 민초가 독실한 무슬림이 되었다는 뜻도 아니었지요.
심지어 지배자의 종교를 함부로 믿어서 특권을 나눠가지려는 하층민만큼, 술탄과 신하들에게 꼴보기 싫은 존재도 없었을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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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이슬람교도 지역을 나눈 '파키스탄'의 공용어, '우르두어'와 북인도에서 많이 쓰이는 '힌디어'는 큰 차이가 나지 않습니다.
같은 문화권이었다는 것이지요. 이제는 분단이 장기화되다보니 조금씩 분화되고는 있습니다만,
얼마나 영국의 분단이 인위적이었는지 알려주는 한가지 요소이기도 합니다.

자 잠시 북인도 이야기를 길게 했는데요.
이 이야기를 남인도인의 입장에서 듣고 있었다고 생각을 해봅시다.

아니 이게 도대체 무슨 일입니까 도대체~~~~
평생 이슬람의 영향도 만나보지 못하고, 힌두교의 꽃을 지킨 건 남쪽의 드라비다인들인데, 지금 인도아리아인들끼리 뭐하는거야~

제 친구는 모든 인도인들이 중요하게 여기는 '바라트'라는 표현이, 지금 위기에 처했다고 말했습니다.
'바라트'는 인도 사람들의 다양한 말로, '인도' 그 자체를 의미합니다. 
인도/인디아와 바라트의 관계는, 코리아와 대한민국의 관계와 같습니다.
그 나라의 사람들이 스스로 자신의 나라를 부르는 말입니다.

바라트라는 단어는 힌두교의 경전이 쓰여진 옛 언어인 산스크리트어에서 온 예스러운 표현이자 
어느 한 언어를 강조하지 않는중립적인 표현입니다.
힌두교라는 제한된 배경에서만 통용될 것 같은 말이지만, 다수가 믿는 거대 종교의 옛 말에서 온 표현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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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트'라는 가치는 모든 인도의 언어와 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 포괄할 수 있는 멋진 단어라고 친구는 주장했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친구는 울분을 담은 목소리로 이어서 말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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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2014년 나렌드라 모디가 당선되었지".]

자, 동시대 정치인의 이름이 나온 김에 다시 한번 강조 드려야할 필요성을 느낍니다만,
이 글은 타밀인 친구의 시점에서 본 인도사를 다루는 것이 목적이기에,
다르게 말하자면 그야말로 정치적으로 편향된 글 그 자체입니다.
다만 저도 무작정 그 친구의 말을 옮겨서 적는 것은 아니고,
나름대로 그가 저에게 인도 정치에 대해서 흥미를 (비록 편향된 것일지라도) 느끼게 만들어줬기에
이후로도 저는 나름대로 이런저런 내용을 조사해두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이것이 주업인 것도 아니고, 많고 많은 인터넷 취미 중에 하나인 것이며,
또한 한쪽 입장을 들은 것에서 시작된 관점이기에 한계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만일 그걸 지적해주신다면 더 넓은 시야를 가질 기회로 삼을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아무튼 간에 친구가 나렌드라 모디 총리에 대해서 말한 내용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그는 바라트의 가치를 파괴하고 있습니다. 특정 민족의 힌두교도의 나라가 아니라, 다양한 사람들의 연합인 바라트를,
그는 힌두교 우선주의, 힌디 민족주의를 통해서 해체하고자 하려는 위험한 사람이라고 평가했습니다.

모디의 당선은 트럼프의 당선과 유사성이 많습니다.
이 정치인들은 정교한 원칙이나 정치적인 신념을 가지고 있기 보다는, 즉흥적인 결정과 언사로 지지자들을 현혹시킵니다.
따라서 이들이 별 생각 없는 포퓰리스트 정치인처럼 느껴지지만, 이들이 당선된 원인은 그야말로 '시대정신'이라고 불러도 될 정도로,
여태까지 쌓이던 사회모순에 대한 사이다적 해결이 되어주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트럼프가 흑인 대통령 버락 오바마 이후에 당선되었듯이,
모디의 당선은 최초의 시크교/ 그러니까 비 힌두교인 총리 만모한 싱의 후임자입니다.

만모한 싱은 인도의 경제를 발전시키는 것에 실패했으며, 적어도 경제대통령으로서의 이미지를 만드는 것에 실패했습니다.
힌두교도 유권자들이 보기에 그는 이교도 개혁주의자, 정치적 올바름의 추종자에 불과했습니다.
그는 힌두교도의 기득권을 붕괴시키기 위해, 카스트를 약화시키고 해체하는 정책을 밀어붙였으며,
불가촉천민에게 소수자 특례를 제공해 '역차별' 을 통한 이교도의 학위사냥을 도왔습니다.
그리고 그의 소속정당인 INS 그러니까 '인도 국민 회의'는 인도 독립운동가 가문의 적폐적인 정치세습으로 얼룩졌으며,
자신을 포함해 당수 라훌 간디, 그 여동생 프리얀카 간디,
그리고 옛 라지브 간디 총리의 아내이자 라훌과 프리얀카의 어머니인 소니아 간디가
만모한 싱의 집권기에 그를 후견해주고 지지해주면서 온갖 요직을 챙기고 측근에게 분배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여기 등장하는 정치인 가문, '간디 가문'은 비폭력불복종으로 유명한 마하트마 간디의 가문이 아니라,
그의 독립운동가 동료, 자와할랄 네루 쪽 가문에서 이어집니다.)

어쩌면 이건 만모한 싱 전 총리에게 너무나도 가혹한 평가이며 공정하지 않은 평가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모디와 그의 지지자들은 인도가 새로운 총리가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극우-힌두중심주의를 강조하던 '인도 인민당 (BJP)'의 나렌드라 모디에게 총리 자리를 맡겨주었습니다.

인도 인민당은 RSS ('국민의용단'이라고 많이 번역합니다)라는 단체와 깊은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BJP와 RSS 사이의 연관성은 지금 인도 국내정치에서도 엄청 뜨거운 이슈이고, 복잡한 문제이며,
음모론과 억측에 의해서 부풀려진 것이 많은 주제이기도 합니다.

최대한 간략하게 적어보자면, RSS는 표면적으로는 '시민단체'이며, '자발적인 애국자들'에 의해서 유지되고 있습니다.
이들은 '힌두교도 자경단'의 연합단체이며, 파키스탄/방글라데시/중국인들이 인도의 국경을 침공하거나,
자생하거나 파키스탄 및 중동 국가들의 사주를 받은, 이슬람교 테러리스트 집단들이 국내에 테러를 벌였을 때,
의연하게 일어나서, 지역민들을 돕고, 국경을 수호했으며, 질서를 유지한 애국자들의 집단이라고 주장합니다.

어음... 네, 그쪽 말만 받아적었습니다만 대충 어떤 집단인지는 감이 오실거라고 믿습니다.
서구권 언론을 포함한 국제사회는 이들을 점잖게는 '준군사조직', 좀더 노골적으로는 '정치깡패'라고 분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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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모디는 RSS 지부에 참가해서 공을 치하하는 연설을 하거나, RSS 간부들을 본받으라고 발언을 흘리고는 합니다.]
RSS의 지도자들 역시 자신이 얼마나 나렌드라 모디와 친분이 있는지 과시하며, 지지를 공개적으로 표명하기도 하고요.

모디는 파키스탄과 인접한 구자라트 주 출신이며, 이곳은 그 특성상 RSS 비롯한 극우 힌두교 무장단체의 활동이 강합니다.
즉 제 친구를 포함한 남인도 사람들이 보기에는 이들의 준동은, 북인도 중심의 역사적 수정주의 및 패권주의에 불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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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에, RSS는 타밀인들이 사는 타밀나두 주에서 가두행진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이 이야기를 하면서, 친구는 '사히브(Sahib)'라는 개념에 대한 재밌는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사히브'는 본래 아랍말로, 힌디어를 통해서 인도 대륙에도 보급된 표현입니다.
뜻은 '선생님'으로 직업이 교사인 사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정중하게 상대방을 부르는 그런 의미의 선생님입니다.
그리고 영국인들이 인도를 지배하던 시절에는 백인들에게 '나으리'라는 의미로 쓰이던 경칭이었습니다.

"타밀나두가 독립할 필요는 없어, 나에게는 '바라트'만 있으면 돼. 근데 지금 바라트가 맘에 안 든다면...
사히브를 찾아 나서야지, 사히브는 떠난적이 없으니까."

제 룸메이트는 인도 남부 타밀나두 주의 첸나이라는 도시에서 출생했지만,
실질적으로 자라난 곳은 두바이였습니다. 어머니께서 거기에 자리를 잡으셨거든요.
그래서 이 친구는 타밀어 뿐만이 아니라 아랍어로도 장난을 쳤고, 농담을 하며,
이슬람 명절만 되면 어떻게 알아내서 즐기고 쉬었지요.

'(2020년 당시, 인도와 중국이 국경에서 대치 할 때), 지금 바라트의 꼴이 말이 아니야.
중국은 똑똑한 중국인들을 가지고 자신들의 나라를 꾸밀 수 있었지, 나에겐 되게 맘에 안 들지만.
하지만 인도를 봐봐, 똑똑한 사람은 사히브를 찾아나서, 수학 문제를 좀 잘 풀면 영국 대학교에 추천서를 써주지,
나는 어떻게든 잘 해보겠다고 지금 너랑 캘리포니아에 와서 인도계 미국인이 되려고 노력하고 있고,

지금 바라트에 남은 사람이 누군 것 같아? 자신의 사히브를 찾지 못한 사람들이야,
그 사람들이 남아서 RSS에 가입하고, 인도인 부자는 인도 빈민가든 도시든 가게 하나 열지 않으니까,
할짓 없다고 RSS에 가입하고 그러는거야. 난 그래서 왜 모디가 뽑혔는지 알 것 같아. 아 말하다보니 화나네."

비록 그가 직접 이쪽 이야기를 꺼낸 적은 없지만, 사실 저는 그를 만나기 전부터 '타밀족'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본적이 있습니다.

[바로 스리랑카 내전에서 싱할라족과 타밀족이 서로 끔찍한 전쟁을 벌였다는 사실을 왜인지 저는 알고 있었습니다.]
고대 촐라 시절에서부터 타밀족은 스리랑카 섬의 북부로 이주하였고,
영국의 인도 지배 때, 서로 갈등을 심화시키기 위해 영국인들은 일부러 보다 소수인 타밀족을 우대했습니다.
그리고 스리랑카가 힌두교 중심의 인도로부터, 불교국가로서 독립을 하자 힌두교를 믿는 타밀족은 '반군'이 되었고요.

어쩌면 그의 말이 맞았습니다. 사히브는 결코 인도를 떠난적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사히브도 아닌 자들이 바라트를 새롭게 자신들의 땅으로 만들려고 하고 있었지요.

한국이 처한 현실과는 매우 다른 일련의 역사였기에 저는 이 남인도 시점의 인도사를 어떻게 이해할지를 고민 해보았습니다.
저는 함부로 쉽게 말할 수가 없겠더라고요.
그런데 친구는 이게 되게 쉬운 일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었어요.

남쪽 좋다. 북쪽 나쁘다.
뭐야, 우리 친구네.  

"헤이 김정은 (그는 저를 가끔 김정은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러면 저는 가끔 그를 모디라고 불렀지요.)
노스 코리아 이스 더 베스트 코리아, 오케이?"
"헤이 셧업 모디, 유어 노스 인디아 이스 더 베스트 바라트!"
라고 우리 둘은 술을 좀 마셨다 싶으면, 시험을 망쳤다 싶으면, 포트나이트에서 연패를 한다 싶으면 농담을 했습니다.

"북쪽은 도움이 안돼요. 도움이."

자 이제 몇몇 재미있는 표현을 같이 공유하면서 이야기를 끝내고자 합니다.
타밀어로 '안녕'은 '워나껌'입니다.
욕설은 찰진 걸로 두개 배웠고 지금도 가끔 제가 써먹는데, 피지알의 심의규정을 위해 생략하겠습니다 크크크크크.
포트나이트를 같은 플스4를 돌아가면서 한 방에서 하다보니, 방향을 뜻하는 타밀어를 외우게 되었습니다.
포나는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건축이 있고 비행을 시켜주는 요소도 많은 배틀로얄이라서 공중에서 쏘면서 내려오는게 중요합니다.
그래서 '위'는 '말레'고, '밑'은 '킬르', '뒤'는 '삐날'입니다.
'응'은 '아마-'입니다. 그리고 친구놈은 한국말로 '아마'는 영어의 'Maybe' 그러니까 '아마도'라고 알려주니까 자지러졌었습니다.
'아니'는 '일라'인데, 제가 자꾸 까먹어서 방금도 구글에서 검색해서 적었습니다.

고마워는 '난드리'고
친구는 '난반'입니다. 술 마시고 '친구야~ 니가 정말 좋다~' 하면서 주접 떨 때 맨날 친 멘트입니다.
가끔씩 더 개소리를 하고 싶으면, '하비비'라고 하는데요. 이건 타밀어가 아니라 아랍어로 '자기야'입니다.
물론 그렇고 그런 사이여서 이딴 단어를 쓰는게 아니라, 맘에 안 들 때 시비걸 때 쓰는 표현입니다. 아랍어에서도 그렇게 쓴다더군요.

"나 내일 일찍 오전에 시험쳐야 해서 빨리 자야하는데, 너도 이제 그만 불꺼주면 안 돼?"
"그건 안 되지, 하비비! 나도 시험 기간이라고. 그래도 도서관에는 가줄게."

"하비비, 나는 시험 치는 사이사이에 눈을 붙이려고 잠깐 기숙사에 왔는데, 너는 포트나이트를 하고 있어? 헤드셋이라도 켜줘!"
"아 여기 너무 덥다고! 너가 올줄 몰랐지, 하비비! 그리고 나 시험 망쳐서 이거 안 하면 울고 싶어져서 끄진 못하겠음 크크흑흑"

그러고보니 제가 배운 아랍어 표현은 전부 비꼬는 말이었네요. 도대체 아랍인들은 어떻게 대화를 하는 것인가...
'나아암'이라는 말이 있는데, 이게 원래 뜻은 '응'입니다. 근데 실제 용도는 사람 말을 씹는 용도로 쓰더라고요 크크크.

"이제 내가 플스할 차례 아님?"
"나아암." (그리고 계속 한다.)

'슈-하다'의 경우에도, 분명 제가 배운 뜻은 '이게 뭐야?'라는 뜻인데, 역시나 같은 용도로 쓰였습니다.
본래 용도대로라면 물건의 용도를 물어봐야할텐데, '아 왜?' 하면서 꼬장거리는 용도가 되더라고요 크크.
스페인어로도 비슷하게 '께 떼 빠싸'라는 말을 배워서 같이 써먹었는데, 둘다 알고보니 엄청 시비조의 단어더라고요 다들 웃어넘겼지만.

"아 내일 오후에 방 비워줄 수 있어? 여자사람친구 하나 불러서 같이 놀게."
"슈-하다, 아니 이런 방에 왜 여자를 불러, 나 이제 밀린 유튜브 볼려고 했는데, 도서관 가야겠네."

그리고 마지막으로 기억나는 아랍어가 '얄라얄라'가 있습니다.
"빨리빨리!" 미국인들만 빼고는 대부분 알아들어서 되게 애용한 표현입니다 크크크.

자 마지막으로 타밀어에서 배우기 되게 쉬운 단어들이 몇 개 있습니다.

'나'는 '나안'이고, '너'는 '니이'고, '아빠'는 '아빠', '엄마'는 '암마'입니다 크크크.
다만 제가 똑바로 문장을 배우진 못해서 이 단어들을 잘 써먹진 못했습니다.
저는 영문학을 더 배우겠다고 미국에 간거였고,
생활 스페인어를 실전에서 배우느리라 이미 바빠서 타밀어까지는 제대로 배우지 못했습니다 흑.

tm-20
변명을 더 해보자면, 타밀 문자는 어어으으윽, 정말 끔직합니다. 별로 직관적이지도 않고요, 묵음도 많고, 생긴것도 익숙하지 않고...

그런데 친구놈은 제가 궁시렁궁시렁거리니까,

tm-19
["타밀어는 고대 인도에서 쓰이던 언어의 원형을 가장 잘 보존하고 있기 때문에 배우긴 힘들지만 아름답다." 고 하더라고요?]

뭣이 고대의 언어? 아까 말씀드린 단어들도 왠지 한국어랑 비슷하긴 하죠?
이 매력적인 요소 덕분인지, 자꾸 유튜브에서 '타밀어는 사실 한국어랑 같은 계통의 언어다'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전공자로서 말씀드리자면, 세상에서 가장 의미없는 게 '몇몇 단어가 똑같은거 입니다.'
유럽언어들이 서로 '사투리' 관계라는 걸 증명하는게,
이들의 단어를 묶어버리면 원형이 되는 언어에서 일정하게 사투리 발음이 한칸씩 움직였다를 보여줄 수 있습니다.

예시를 들자면, 영어의 역사에서 '그림의 법칙'이라는 것이 있는데요.

tm-22
[원시인도유럽어가 게르만어로 진화하면서 특정 발음이 특정 발음으로 바뀐걸 '법칙'으로 정리한 것입니다.]

이게 무슨 뜻이냐고요? 발음이 뭐가 뭘로 바뀌었다는걸 찾아서 전부 되돌리면 다시 예전 언어의 원형이 보인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건 아무 두 언어랑 하는게 아닙니다. 원시인도유럽어는 게르만어 이전에 쓰이던 언어로서,
지역별로 방언들이 찢어지면서 소멸했는데,
게르만어로 바뀔 때는 다른 방언 (예를 들어, 로마 라틴말)과는 다른 방식으로 규칙적으로 바뀌었습니다.
다른 방언들은 숫자 열 개와 관련된 단어가 'D-'로 시작하는데, 게르만 계통말만 'T-'로 바뀌었습니다.
아 그러면 고대말로는 열 개는 D-로 시작하겠네요? 라는 식으로 원형을 추측하고,
그런식으로 다시 라틴어는 어떤 식으로 규칙적으로 본래의 원시언어에서 바뀌었는지를 껴맞추고,
이런 식으로 언어학이라는 것이 체계적으로 진행됩니다.

뭔가 모르는 고대언어들이 무더기로 지나가서 죄송합니다, 크흠!
한 줄 요약을 해보자면,
언어학이란 한 언어가 한 언어로 옮겨 갈때 그 기준을 명확하게 잡고 발음을 규칙적으로 되돌려보는 작업을 해볼 수 있어야합니다.

근데 타밀어랑 한국어를 비교할때는, 현대 타밀어랑 현대 한국어를 그냥 주먹구구로 비교합니다.
아까 타밀어로 '안녕'이 '워나껌'이라고 말씀드렸죠?
어떤 인터넷 사람은 워나껌은 '안녕'과 가까우니 연관있는 말이라고 주장합니다.
다른 인터넷 도표에서는 워나껌은 '반가움'과 발음이 유사한 말이니 대단하다고 합니다.
또 어떤 영상에서는 '왔음'이랑 비슷해서 신기하다네요?

아니 뭐 어쩌자는거죠!?
한쪽이 한쪽에게 영향을 준겁니까? 어디가 먼저죠? 음가가 뭐에서 뭐로 어떻게 바뀐 것이지요?

이 과정이 이상하다는 것을 보여드리기 위해, 한가지 예시를 더 들어보겠습니다.
한국말에서 '너'를 존댓말로 바꾸면 '당신'이라는 단어가 됩니다. 타밀말에서는 '니이'가 '닝갈'이 됩니다.
타밀어에서는 복수형이 되거든요. '-갈'이 복수란 뜻입니다. 예를 들어, 여성은 '뺑', 여성들 하면 '뺑갈'이 됩니다.

그러면 막 '닝갈'은 '니들'이나 '너희'에서 온 단어라면서,
한국어 발음을 막 고치다보면 막 이케이케 이렇게 된다~ 규칙적으로 증명해보시려는 분도 계셨습니다.
근데 '니들'이나 '너희'가 한국어에서 경칭이던가요? 아니 애초에 복수형으로 경칭을 만들던가? 한국문법을 초월했네요?

네 그렇습니다. 타밀어의 문법은 전혀 한국어랑 관련이 없습니다.

라고 친구에게 1년 동안 말했지만, 사실 그 친구는 "그래도 비슷한 이유가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크윽, 이쪽 분야를 공부한다는 사람이 말로 상대방을 설득하지 못하다니 너무나도 슬픕니다.
뭐 적어도, 한국과 인도의 협력이 중요하다는 깨달음을 얻었다고하니(?), 나쁜 점만 있는건 아닌것 같습니다.
 
아무튼 간에 제 타밀 친구는 지금도 정말 제가 아끼는 외국인 친구입니다. 지금도 대화하는게 재밌어요.
이제 저는 미국을 떠나있고, 그는 계속 미국에 남았기에 슬슬 공통의 주제도 떨어져가서 조금씩 소원해지고 있습니다만,
이 글을 마무리 지은 김에 한번 또 전화라도 걸어보려고 합니다.

여러분은 혹시 어떤 사람에게서 편파적인 지역사를 들어보시고 흥미를 느껴보신적이 있으신가요?
그렇다면 그 이야기에 대해서 지금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너무 좁은 관점의 이야기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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닉네임을바꾸다
21/06/27 00:50
수정 아이콘
BC.260여년쯤에 데칸 고원을 넘어 인도아대륙을 통일직전까지 갔다는 아소카가 얼마나 대단한 인간이였냐 싶...
21/06/27 01:35
수정 아이콘
로마와 한나라처럼 오히려 지나치게 고대여서 문명과 문화의 힘 만으로, 거대한 땅덩어리를 교화시킬 수 있었던 것이었을까요? 그러고보니 하나의 '바라트'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마우리아 제국에 대한 이야기를 빼먹었다니 너무나도 부끄럽습니다.

고대의 제국들은 어쩌면 현대국가보다 더 대단한 면모를 가지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닉네임을바꾸다
21/06/27 01:41
수정 아이콘
사실 군대로 주변국들 다 뚜까패다가 뜬금 회의감에 불교귀의했다던데 크크
21/06/27 16:49
수정 아이콘
곰곰히 생각해보니 되게 '인도적인' 결말인것 같기도 하네요 크크크크
서류조당
21/06/27 01:12
수정 아이콘
인도가 워낙 넓은데다 남인도는 워낙 나중에 합병되어서 남인도 각 지방정부들은 폭넓은 자치를 인정받고
딱히 영국 통치라고 할만한 게 없었다는 얘기도 있던데 실제로는 어떤지 궁금하네요.
21/06/27 02:21
수정 아이콘
제가 조사한 내용과는 꽤나 차이가 있는 서술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남인도에는 하이데라바드, 마이소르, 트라방코르 등등 토후들의 '번왕국 (영어 명칭: Princely States)'이 많이 존재하였지만, 이것이 직접 지배를 받았던 지역보다 더 폭넓은 자치가 허용되었거나 영국인들의 지배가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말하기는 힘듭니다.

이 중 가장 크고 중요한 하이데라바드와 마이소르의 경우에는, 한쪽은 동등한 동맹으로, 한쪽은 처절한 전쟁 끝에 괴뢰국으로 번왕국 지위를 받았습니다. 만일 이들의 '자치'가, 현지 토후 지도자에게 통치권이 위임되었으며, 영국이 그들의 땅에서 별도로 징발하거나 징수하는 자원이 없었다는 것을 의미하신다면 '자치'가 보장된 것이 맞습니다만 큰 문제가 하나 있었습니다. 두 토후국 모두 피지배층과는 이질적인 '이슬람교도 군주'에 의해서 지배되었기에, 지역민들에게는 자치가 보장되기는 커녕, 전근대적인 외세의 지배가 지속된 모양새였습니다. 번왕국들은 영국에게서 인정받은 제한된 숫자의 군대로 현지인들을 총칼로 억누르면서 자신들의 왕정과 부를 유지시켰고, 비록 '명령'을 내릴 수는 없었지만, '통감(Resident)'이라고 불리는 영국인 관리가 번왕국의 통치에 '조언'을 하면 알아서 군주들이 상납금을 올리거나, 병력을 지원하고는 했습니다.

어떻게보면 이들은 영국인들의 용병대였던 것이지요. 흥미롭게도, 다른 번왕국들은 인도와 파키스탄에 크게 저항하지 못하고 귀부하는데, 오직 하이데라바드만이 독립국이라는 선택지를 만지작거리다가 무력으로 인도군에 의해 병합되었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지역 군주가 이슬람을 믿었기에, 그리고 많은 '자치'를 여태까지 허락 받았기에 (영국놈들은 그걸 다 취소하고 본국으로 튀어버렸고, 새로 독립한 인도 정부와 중재해달라는 제안에도 들은채 만채했습니다. 역시 대영제국!) 인도의 일개 지방으로 흡수되라는 것에 거부감을 느꼈기 때문이었죠.

이걸 보면 참으로 기묘한 '자치'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다양한 의미와 층위를 담게 되는 복잡한 이야기지요~
깃털달린뱀
21/06/27 02:11
수정 아이콘
인도사도 정말 재밌죠. 땅덩이 크기도 그렇고 사실 유럽사처럼 (아니, 혹은 그 이상으로) 끝내주게 다양하고 복잡한 대륙의 역사이지만, 역시 유럽에 밀렸고 또 현대에 한 국가로 통합 돼서 인지도가 영 시망이죠 흐흐. 유럽으로 치면 [아일랜드 켈트나 헝가리 마자르나 러시아 슬라브나 다 거기서 거기인 놈들 아님?] 정도가 인도사의 인식이니.

남인도에서의 '바라트' 개념이 참 신기하네요. 사실 전 드라비다족도 당연한듯이(?) 힌두교를 믿는 것에서도 좀 오묘한 감정이 느껴지거든요. '맨날 투닥이고 싸우던 애들 종교를 받아들이고 그걸 내재화 했다고?!' 하는. 뭐랄까, 이슬람하고 그렇게 치고 박던 이란이 결국엔 명실상부한 이슬람 국가가 된 걸 보는 기분? 물론 둘 다 종교와는 별개로 정체성은 전혀 다른 것도 재밌죠.

뭐 사실 여기에 미묘한 감정을 품는 다는 것 자체가 외부인의 편협한 시선 같지만요. 현대까지 살아남은 종교란 결국 니 거 내 거를 넘어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었기에 생존한 것이니까요. 그러니까 당연히 '바라트'도 다양한 민족을 아우르는 자연스러운 개념이 될 수 있는 것이고요. 단일 민족(이라는 인식이 팽배한) 단일 언어 단일 문화권에 나고 자란 사람으로썬 썩 받아들이기 어려운 관념이긴 합니다 흐흐. 물론 이렇게 인식이 전혀 다르니까 알아가는 게 재밌는 거 아니겠어요?

(영)문학 쪽 전공이신 줄 알았는데 언어학에도 닿아계시군요. 이 쪽도 흥미는 꽤 많은데 비전공자에겐 벽이 너무 높은지라. 같은 언어 계통끼리 신화가 공유되는 게 참 재밌어요. 토르와 제우스와 인드라가 사실 동일한 신격에서 분리된 것이라고! 같은.

뭔가 댓글이 장황하게 파편화 됐는데 결론은 재밌는 글 잘 읽었습니다! 입니다. 다음 글의 주제도 어느 방향으로 튈지 심히 기대가 되네요 흐흐.
21/06/27 12:15
수정 아이콘
(수정됨) 그 친구가 중동에서 자라서 그런지, 무슬림들에게 꽤 호의적이었습니다. 다만 인도인답게 흔히 그렇듯이 파키스탄에 대해서는 테러지원국, 테러범들이 지배하는 국가, 파탄국가, 인도 문명의 부산물 등등 꽤나 강한 표현을 쓰면서 부정적으로 보더군요. (다만 제가 이 말을 들었던게 2019년 당시, 인도-파키스탄 국경 분쟁 때여서 평상시보다 격앙된 분위기였긴 했습니다. 특히 카레 가루를 풀어놓은 라면을 끓여먹으면서, 술이 꽤 들어간 그런 상황이었습니다.)

편파 중계를 거두자면, 드라비다인들도 인도 성립 이후 지금 정립된 정체성에서 '원조 힌두교 맛집'을 주장하는 것이지, 남인도 역시 데칸 고원에서 발흥한 다양한 이슬람계 왕조에게 지배를 받았었고, 그렇기에 인도아리안족과의 고대시대 원한을 청산하고(?), 이들이 퍼트린 힌두교 정체성을 받아들이면서 자신들의 정체성을 강화할 수 있었다고 봅니다. 친구가 모디 총리에 대해서 꿍얼거리듯이, '북인도 거기는 힌두교도 정체성을 주장하면서 나의 다원주의적인 바라트를 뺏어가기엔 족보가 좀 짧은 곳 아니냐?'라는 말을 제가 재밌어 하는 이유 중 하나는, 북인도 사람에게 물어본다면 그건 무슨 역사적 근본도 없는 본진 바꾸기 수준의 궤변이냐고 할게 뻔하거든요 크크크크크크.

말씀해주신것처럼, 죽어라 페르시아-조로아스터교 정체성을 가지다가, 중동 유일의 이슬람 신정독재 국가가 되어버린 이란도 그렇고, 우리나라의 국내정치에서도 간혹 보이는 패턴이지만, 이 스스로 정체성과 역사적 정통성을 발굴해서 써먹는게, 가만히 앞뒤를 찬찬히 살펴보면 공수교대가 이루어지고, 둘이 자리를 바꾸고, 기존에 했던 말을 뒤집는 경우도 많죠. 어쩌면 인간이란 그게 본능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크크크크.

하지만 또 말씀하셨듯이, 이거야 구경꾼의 훈수에 불과한 것이고, 오히려 본인들에게는 또 얼마나 중요한 것이겠습니까. 정치적 입장, 경제적 기반, 문화적 주도권, 종교적 구성 등등에 따라서 살아있는 생물은 움직이고 변하고 새로 자리를 잡고 그러는 것이겠지요. 살아있는 사람을 욕하고 비웃는 것에 급급하다보면 세상에 남는 것은 박물관의 시체 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 이야기를 피지알에 적을 수 있어서 너무 좋았습니다. 어떤 살아있는 타밀인의 시각을 제가 그래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게 된 것 같아서요.

이 '바라트'에 대한 다양한 시각이 저를 곤혹스럽게 만들어주면서도, 정신적으로 깨달음을 주더군요. '대한민국'이란 무엇일까요. 서로 이걸 다르게 해석하고, 다르게 원하는 집단들이 존재하지 않던가요? '아메리카'는 어떻고, '프랑스', '중국' 등등 모든 나라의 사람들이 다들 고민하는 그런 지점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힌디인들에게 '바라트'는 파키스탄과 투쟁하면서 피와 불로 빚어지는 명확한 정체성의 국가일텐데, 힌디인 같은 정치적 우세가 없는 타밀인 친구는 당연히 '바라트'에 다원주의적이고, 다민족적인 이상향을 투사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 보이더라고요. 그런데 서있는 입장에 따라서, '국가'/'국체'가 달라진다면, 과연 그게 옳은 건지, 아니 옳음에 대한 판단이야 힘드니 멈추더라도 과연 그 국가가 유지될 수 있는 건지 참 궁금해지더라고요. 그리고 그 질문은 한국에게도 유효할 것이고요.

기억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제 주전공은 문학 쪽이 맞습니다. 언어학은 딱 학부생따리 기억을 더듬으면서 떠뜸떠뜸 적어봤습니다. '아리아인'이라는 말이 나치와 네오나치들 때문에 거의 금기시 되지만, '인도유럽어족'이라는 거대한 집단, 그러니까 어휘와 문법과 신화를 공유하는 집단은 확실히 흥미로운 주제이기는 한 것 같습니다. 근대 초 영국학자들이 그리스인들이 얼마나 인도에 영향을 미쳤으면, 똑같이 번개신을 숭상하나 했더니 자세히 파볼수록 오히려 조상이 동일한 집단으로 보인다는 것에 놀라고 그랬던게 이해가 갑니다.

또한 밑 덧글에 좀 더 자세히 적은, '사히브'에 대한 개념 (한국인들이 흔히 생각하는 '외세'와는 도저히 양립불가능한 개념이죠 크크)과도 연관지어서, 이들이 어떻게 서구세계의 일원으로 포섭이 되었는지, 그리고 그것 때문에 '중국인들에게 국경에서 시비나 당하고 있으며', '사히브와 연결되지 못한 사람들은 안티-사히브 모디를 지지할 수 밖에 없는지' 푸념을 하면서 자신의 세계관을 만들던 그 타밀 친구의 관점에 또 새삼스럽게 감탄을 하게 됩니다.

저번 글은 '크루세이더 킹즈'였습니다. 이번 글은 '아무도 안 하는 라자들'이었습니다 (유명한 크킹 농담입니다. 검색해보세요, 저는 처음 듣고 진짜 엄청 웃었습니다 크크크), 다음 글은 저도 도저히 어디로 제 생각이 튈지 모르겠습니다~ 크크. 재밌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깃털달린뱀
21/06/27 13:59
수정 아이콘
마침 제가 크킹 연재 정주행 중인 걸 어떻게 아시고 흐흐흐흐.

역시 정체성이란 게 참 재밌어요. 단일한 한족 중심의 중국도 사실 보면 '저 돈밖에 모르는 남만 오랑캐 놈들 쯧쯧(한화한 유목민 피가 진하게 섞임) vs 저 몽골 오랑캐놈들 쯧쯧. 우리야말로 진정한 중화를 보존했지(한화한 남쪽 원주민 혈통 진함)' 하면서 싸워대는 판이니까요 흐흐. 웃긴건 둘 다 자기네가 전통 중화라고 생각하는 것 크크.
힌두교도 아리안계 종교라지만 원주민이었던 드라비다계 영향도 치고 박으면서 진하게 받았으니 더 쉽게 받아들일 수 있지 않았나 합니다. 개인 단위로 보면 족보도 사서 조상 위조하는데 문화나 종교야 뭐 흐흐.

새벽에 잠결에 봤을 때는 바라트가 더 신기했는데 지금 다시 읽으니 사히브가 진짜 재밌는 개념 같아요. 제가 고민하던 것들이 한 단어로 응축 된 개념. 이미 형성된 기득권에 올라 타는 것이 개개인 단위에선 굉장히 합리적인 선택인데, 이게 집단으로 보면 자기네 잠재력을 상대방에게 들이 받치는 거 아닌가 하는 고민을 많이 했거든요. 기술력과 시장은 있으나 그걸 전부 미국 IT 기업의 성장력으로 갖다 바친 유럽이나, 누적 이민자 수만 보면 독일어가 공용어가 되는 게 맞지 않나 싶은 미국, 남았다면 인도를 발전시킬 수도 있었던 수많은 인재들이 미국으로 가서 결국 미국을 튼튼하게 만들고 인도는 여전히 저발전 된 상황 같은 그런 상황이요. 전 이걸 개인 대 집단 간의 딜레마라 봤는데 저게 아예 국가 전체 단위에서 긍정하는 곳이 있을 거라곤 상상도 못했습니다. 더 좋은 대우를 받는 미국을 버리고 기꺼이 조국의 발전을 위해 돌아가는 동아시아식 사고방식으론 놀랍기만 합니다. 미국 아시안 중 인도계가 유독 약진하는 이유도 이런 이유가 아닌지 싶고.

사실 되짚어보면 애초에 '인도'라는 정체성이 상대적으로 약하기 때문에 저런 게 아닐까 싶습니다. 대충 경상도 정체성을 가진 제가 '어차피 경상도 밖에서 살거면 서울이나 LA나 파리나 다 똑같은 거 아님?'이라 생각하는 걸 느끼는 게 아닌가 싶은. 서로 전혀 다른 정체성을 가진 집단이 영국에 의해 묶인 상황에서 이미 형성된 기득권, 즉 영국의 통치에 올라탄 쪽이 성공하다보니 이렇게 된 게 아닐까 싶어요. 영국 식민지 동아시아 연방에서 한국이 영국이랑 손잡고 일본 중국 뒤통수 후리며 꿀 달달히 빠는 그런 모습이 아닐지. '뭐? 외세랑 손잡고 나라를 망치는 거 아니냐고? 너희도 똑같은 외센데?' 현대 민족주의 입장에서 외세랑 손 잡고 고구려 땅 잃어버렸다고 매도 당하는 신라 보는 기분 들기도 하고 그러네요. 어쩌면 모디는 이러한 느슨한 연합체적 인도를 버리고 중국의 중화민족과 같이 단일한 정체성을 심어주기 위한 것일지도 모릅니다? 흐흐.
21/06/27 14:11
수정 아이콘
와! 댓글 추천드립니다. 제가 막연하게 생각하면서 글로 횡설수설 했던 내용들을 엑기스만 담아서 댓글 하나로 적어주셨네요!

제가 타밀인 친구와의 대화에서 흥미를 느끼고, 따라서 글로 적고 싶었던 이유가 결국은 이렇게 한국과 차이가 난다는 점에 제가 주목했던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참 신기하네요. 인도에 대해서 열심히 떠든 이유가, 결국 한국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였다니, 역시 저도 제 바라트... 흠흠 아니 '대한민국'을 너무 좋아해서 탈입니다. 그 생각만 하는군요 크크크크
두부빵
21/06/27 03:41
수정 아이콘
재밌어요. 인도를 하나로 묶어서 보기엔 참 크고 방대한 지역이죠. 한국이 인도시장에 진출할 때 꽤 유용한 정보, 아니 이미 그런 상황을 이해해서 들어간 거 아닌가 싶네요.첸나이쪽 지역은 앞으로 자주 언급될 꺼 같아요.
21/06/27 12:26
수정 아이콘
말씀하신게 백번 옳습니다. '인도시장'이라고 하나로 퉁치기에는 다양한 민족들과 지역이 서로 경쟁하는 곳을 묶어버린 느낌이 커서, 어떻게든 공산당이 하나로 묶어서 '하나의 중국 시장'으로 우기려는 중국시장과는 또 다른 면모가 있지요.

제가 생각하기에도 남인도 쪽은 인도 전통의 대처법에 따라(?), 패권을 쥐고 있는 지역에게 흡수되지 않기 위해 경제력을 키울 것이기에, 중요성은 계속 증가할 것이라고 봅니다.

하지만 별도로 아쉽게도(?), 한국 기업이나 한국인에 대해서 호감도가 더 높은건 제 좁은 체감으로는 남인도인들이 아니라 북인도인들이었습니다. 한국기업이 많이 진출하고 광고하는 곳이 북인도인것 같더라고요. 오히려 그 타밀 친구도, 쓸 때 없이 '언어적 음모론'으로 농담이나 했지, 막상 첸나이에서 한국인이나 한국기업을 인상 깊게 발견하거나 하진 않았다네요. 오히려 두바이에서 '아 한국기업들이 은근 많고, 물건 많이 쓰는구나' 하는 식으로 깨달았다고 합니다.

어쩌면 어설프게 '한국어랑 타밀어는 비슷해요'라고 선전물이나 만들 돈으로, 공장이나 하나 더 세워줘야 하는거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구밀복검
21/06/27 04:06
수정 아이콘
https://youtu.be/3FBF0WYhp4A
https://youtu.be/Se0Xp-FVnhk
드라비다계 타밀어 모국어 화자로서 한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프랑스인 유튜버 생각나네요. 12개 국어인가 한댔나...
21/06/27 12:34
수정 아이콘
와 재밌는 영상 추천 감사합니다!

저도 같이 지내는 일년 동안 느껴 본것이, 남인도 사람들은 진짜 다양한 언어를 구사 가능한 경우가 많더라고요. 오히려 제가 만나본 북인도인들의 경우에는 힌디어와 영어만 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말이지요. (제 추측으로는 문화적인 요인보다는, 정치적으로 주도권을 가진 것이 원인 같긴 합니다. 인도라는 체제 내부의 미국인 같은 느낌이요 크크)

그리고 달변가들도 되게 많던데, 이분도 말주변이 정말 뛰어나네요. 타밀인들은 정말 주목할 가치가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aDayInTheLife
21/06/27 07:55
수정 아이콘
재밌게 읽었습니다. 역사의 재미라는게 화자마다 관점이 달라지는 부분이 아닐까 싶기도 하네요.
21/06/27 12:56
수정 아이콘
그래서 제가 생각하기엔, 인터넷에서 남용되는 "팩트"만큼 가벼운 표현이 없는 것 같기도 합니다 크크크크. 사건의 선후관계가 명명백백해도 그걸 바라보는 관점이 여러 개가 존재할 수 있다면, 그 선후관계의 명료함은 정말 의미가 없지 않을까요~

간만에 편파적인 글을 밝히고 써볼 수 있어서 재밌었습니다. 북인도인들이 보기에는 어쩌면 이보다 끔찍한 글이 없을지도 모릅니다. 당장 모디 총리가 힌디 사람과는 구별되는 구자라트 사람인데, 이 글의 논리로만 보면 둘이 완전히 한 몸이지요.

역사를 바르게 이해하려면 '백지상태'가 좋은지, '한가지 입장을 가져두는 것'이 중요한지, 이게 역사학과 역사교육론에서도 큰 논점이 되고 있다고 교양수업 시간에 들은 기억이 납니다. 저도 어쩌면 같은 질문을 던지고, 스스로 후자를 선택해두는게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속 편한 소리를 해보자면, 이렇게 편파 중계를 할 수 있으면서도, 한쪽 주장의 한계를 인정하고, 편견에 매몰되지 않는 Farce로 살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게 가능한지는 모르겠지만요. 핫하~!
21/06/27 08:06
수정 아이콘
인도사에 관해서는 몇몇 키워드를 제외하면 전혀 아는 바가 없었는데 이렇게 입문의 계기를 만들어주시네요.감사합니다.
21/06/27 12:59
수정 아이콘
와아, 인도 역사에 관심을 가질 수 있는 기회가 되어주셨다니 감사합니다! 이 친구의 일방적인 주장이 합당하기나 한지, 나중에 Dresden 님께 여쭈어봐야겠어요. 저도 이 글을 적어본다고 더 조사해보고, 또 그 와중에 '인도 역사에 대해서 더 잘 알았으면 더 좋은 글이 나왔을텐데'라는 아쉬움을 많이 느꼈습니다.

비록 전문적으로 배우는 사람들처럼 전문가가 될 순 없겠지만, 흥미를 가지고 사실을 전하고 싶어진다면 깊이가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을거라 믿으며, 스스로도 더 노력해보고 싶습니다~
파다완
21/06/27 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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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게 잘봤습니다. 사히브란 말은 뭔가 복잡하군요, 선생님? 목적? 인생의 교훈?
21/06/27 1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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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이해한 그 친구의 '사히브'는 외세/상전/제국주의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서양인들의 지배는 끝났지만, 서양인과 영합하고 어울리면서 영어잘하고 그쪽 교육기관 학위를 가지고 있는 인도인/중동인이 계속해서 '선진세계/문명세계'에 편입되어서 승승장구하고, 그런 연줄을 못잡고 인도에 남은 사람들은 안티-사히브라고 할 수 있는 모디를 지지해주는 기반이 되어주고 있으니까요.

인도와 한국의 역사가 워낙 다르기 때문이겠지만, 이 '사히브' 개념을 들으면서 되게 놀랍더라고요. 영국인들도 인도에 끔찍한 짓을 모아두자면 엄청나게 많이 했지만, 제 타밀인 친구에게 북인도 사람들은 '사히브'가 되지도 못해서 더 복종하기 힘든 존재들이라는 식으로 논리를 전개하니까 너무 놀랐습니다. 이들은 문명세계로의 연줄을 제공해주지도 못하며, 다원주의적인 '바라트'를 수호해주지도 않고, 자신들의 정체성을 중심으로 하여 인도의 정체성을 재창조하려고 하고 있다고, 그 친구는 프레임을 잡는 것이었습니다. 타밀인들은 백인 사히브, 무슬림 사히브, 다른 드라비다 사히브들 밑에서 어떻게든 미래를 기약하면서 과거를 보냈듯이 더 넓은 세상에 나아가서 기회를 잡으면 그만인데, '모디 사히브'는 사히브로 인정을 해줄 수도 없다. 그런 논리가 돋보이더군요.
이븐할둔
21/06/27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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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됨) 크크 사실 국가로서의 인도는 대영제국이 만들고 떠난거죠. 그 이전엔 문화 인종 종교별로 짜개져있었고요. 거의 인도의 시작은 "동북아 연방"급이 아닌가합니다. 제가 만난 인도인도 인도는 Eu랑 비교하라고 하더라구요.
말씀해주신 의식이 그런걸 반영하는걸지도요.
21/06/27 1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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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가 원하는 '바라트'는 '인도 아대륙 연방'에 가까운 것인가 보군요 크크크. 그렇게 정리하니 더 이해가 가는 것 같습니다.

피지알에서 중국과 비교되어서 많이 소환되는 인도인데, 이런 측면에서는 완전히 다르군요. 앞으로 어떻게 발전해 나아갈지 참 기대가 됩니다.
파다완
21/06/27 1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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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디 선생은 선생도 아녀. 딴 선생들은 꼽기는 했어도 뭔가 배운게 있었는데 쯧쯧. 이런건가요 크크

사히브라는 말은 뭔가 복잡한게 아니라 엄청 복잡한거 같습니다. 뭔가 현재 세상의(그니까 서양의) 대세라고도 생각되고 그럼 안티-사히브는 세계의 대세를 인도는 전부다 따라야하냐라고 반발하는거 같기도 하고....
21/06/27 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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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크크 그렇죠. 아.. '안티-사히브'는 제가 댓글을 달다보니 만든 단어입니다. 실제로 친구가 쓰거나 한 단어는 아니에요~ 그런데 진짜 이 사히브라는 개념이 참 한국인에게 생각거리를 많이 주는 것 같아요.

북인도인들이 지배해? 괜찮아, 타밀인은 그러면 그 체제에서 먹고 살아줄게.
무슬림들이 지배해? 괜찮아, 그래도 우리는 그 세상에서 자리를 찾을 수 있어.
영국인들이 왔어? 괜찮아, 얘네랑 말 잘하면 잘먹고 잘 살 수 있을 것 같아.

근데 모디 아조씨 뭐하세요? 네? 한 종교로 뭉친 힌두교도들의 나라가 인도라고요?
아니 나도 같은 힌두교도인데 문화적 차별받는데, 그런 말씀하시면 나보고 죽으라는거에요?
아니 이거 영국인보다 악질이네~!

가 되는거죠 크크크크. 최초로 삶의 위기를 주다니 큰 선생이시긴 한가봅니다.

그리고 단일민족으로 정체성을 규정하고, 하나되어 열심히 으쌰으쌰해서 성공한 대한민국 사람의 입장에서는, 모디 총리의 입장이 아주 이해가 안 가진 않는다는 게 가장 무서운 문제인거 같습니다~
metaljet
21/06/27 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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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아침에 시간가는줄도 모르고 너무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한가지 궁금한건 제가 알기론 파키스탄 지역의 분리 독립은 20세기 초까지 그 연원이 올라가는 무슬림들의 아주아주 강력한 비원이 있었기에 결국 실현된 것으로 알고 있는데 (물론 신생 인도 입장에서는 참 쓰라린 비극이었지만) 과연 영국 입장에선 서로 죽여대는 것을 막기 위해 별다른 뾰족한 방법이 뭐 있었을까 싶기도 해요. 어쩌면 영국을 원망하며 분열을 통탄해 하는 인도인들의 입장(아마도 여기에 반영되었을)은 우리가 남북분단의 책임을 일본에게도 상당부분 돌리는 것과도 비슷한 정서가 아닐까 하는데 파키스탄인들의 입장은 어떤지도 좀 궁금합니다.
이븐할둔
21/06/27 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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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키스탄 건국의 아버지인 무함마드 알리 잔나는 "인도"와는 별도의 무슬림 독립국가론을 주장했지요. 영국은 어차피 떠나는 마당에 니들하고싶은대로 하라고 냅둔거고요. 파키스탄의 국가 정체성(무슬림 독립국가)에 동의하는 파키스탄 시민권자들은 인도에 흡수되는걸 극렬히 반대할겁니다.
21/06/27 1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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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됨) '남북분단의 책임을 일본에게도 상당부분 돌리는' 크흠, 터부시되어서 제가 꺼내지 못하는 주제를 날카롭게 꺼내와주셨군요.

네, 한국이 분단된 원인에 대해서도 제대로 알아보려면, 다양한 사건, 관점, 시발점 등등을 긴 논문 하나로 담아야 하듯이, 인도-파키스탄 분리독립 역시 마찬가지인 주제라서 제가 경솔하게 다룬 측면도 있다고 봅니다. 일단 한가지 밝히고 시작해야할 부분은, 제가 인도인들 하고는 그 타밀인 친구 덕분에 많이 어울렸습니다만, 파키스탄인은 딱 한 명하고만 대화를 해봤습니다. 그리고 그 친구는 별로 정치에 관심이 없더군요. 따라서 궁금해하시는 파키스탄인의 입장의 이야기는 전달되기 힘들 것 같습니다.

다만 제가 인도인들 사이에서 알음알음 들은 파키스탄에 대한 이미지를 짜집어서 한번 답변을 시도해보자면요. 본문의 중심 이야기가 '인도인의 정체성의 주도권을 가져가려는 북인도인에 대한 남인도인의 반발'인 것을 생각해보자면, 한국 속담에서도 '소꼬리보다는 닭의 머리가 나은 것'이고, 따라서 파키스탄인이 될 인도-무슬림들의 분리독립은 당연한 일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모디 총리 이야기를 하면서, '인도-파키스탄의 계속된 분쟁은 인도의 극우화와 힌두교 근본주의를 낳았다'라고 해석할 수도 있지만, 다르게 보면 '통일(?) 인도'에서 모디 총리 같은 지배자 밑에 파키스탄인들이 놓였을 수도 있으니까요. (그리고 아시다시피 지금 이 시점에서 인도에서 살고 있는 무슬림도 2억이 넘습니다.)

하지만 예견된 비극은 역시나, '국경선'에 맞춰서 사람들이 종교에 나눠서 살고 있기는 불가능 했다는 것이며, 따라서 '정체성'은 '기존에 선 안에서 어떤 사람들이 살았던가'에 호소하기 보다는, 오히려 기나긴 시간동안 피바람이 분 뒤에야 뒤늦게 만들어질 수 밖에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모디가 대표하는 시대정신이 그것일 수도 있고요.

파키스탄 입장에서는 영국의 욕을 안 할 수가 없는 것이, 식민지 시절 때,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 두 지역에 나눠 살던 파슈툰 사람들을 반토막 내서 분리독립 운동에 훼방을 놓았습니다. 그래서 파키스탄이 지금도 아프가니스탄을 악명 높은 '탈레반'을 통해서, 파슈툰 민족이 지배하는 국가로 만들려고 하고있고 (거기에 파키스탄 자체도 파슈툰 민족의 발언권이 너무 강한 것 아니냐고 볼멘 소리가 나오고 있습니다), 또 탈레반은 파키스탄 정부와 시민사회 전반에 존재하는 탈레반 동조자들의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탈레반'이 그냥 근현대사가 생지옥이었던 아프간의 현실로 인해 만들어진 '극단주의자'들로 멈추는게 아니라, 미국의 아프간 침공으로 '미국에 대항하는 이슬람 전사'가 되면서 모든 것이 정말 미친듯이 꼬여버린 것도 없잖아 있거든요. (물론 이건 파키스탄 입장의 편파 해석이고, 실제 문제는 정말 정말 정말 더 복잡합니다. 아니 파키스탄 사람도 인도계 인종으로 규정한다면, 파슈툰인도 쉽게쉽게 말해서 '인도쪽 사람'인데 갑자기 이슬람 극단주의와 중동 문제의 중심점이 되다니요? 세상은 요지경입니다.)

아마 마지막 영국 총독도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결국은 '아몰랑!'을 외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홍콩에서도 그랬듯이요. 그리고 아마 이 사람들도 '아니 그래도 이걸 다 영국 탓으로 미래인들이 돌리면 억울하긴 할거야'라고 생각했을 겁니다. 어느 정도는 맞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원래 '책임'은 마지막에 도장 찍은 사람이 지는거죠. 아니면 도장을 왜 찍는데요~
metaljet
21/06/27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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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체성에 맞춰서 국경이 생기는게 아니라 사실은 그 반대라는 말씀에 깊은 울림이 있는것 같네요. 어쨌든 분명 영국이 도장 찍기는 했지만 다른 누가 찍었어도 결과는 크게 다르진 않았을거라고 보구요... 특히 듀랜드 라인 쪽은 인구나 영토 측면에서 아프가니스탄이 거의 강탈당하시피 절대적으로 손해본것이라 그걸 다 물려받은 지금의 파키스탄이야 영국에 뭐라할 건덕지는 별로 없죠. 아 꼬우면 파슈투니스탄 독립시키던가~
21/06/27 1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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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루치스탄이나 신드 사람이 보기에는 이미 파키스탄이 파슈투니스탄이 되가고 있으니 그건 안될 말씀이지요~. 그걸 쪼갤거면 여기까지 오지 않았을겁니다 흐흐흐. 밑 덧글에 달았던 '그냥 식민정부가 간판만 바꾼거 아니냐'가 파면 팔 수록 승리하는 정말 혼란스러운 동네입니다 으아악.
이븐할둔
21/06/27 1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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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21/06/27 1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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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피지알 자게를 좋아하는 이유는, 정말 마이너하고 이상한 주제를 가져와도 좋게 봐주시는 분이 계신다는 놀라운 이유 때문입니다. 앞으로도 계속 찾아뵈겠습니다!
21/06/27 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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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Sacred Games 라는 넷플릭스 드라마를 보고 음.. 북인도는 힌두-무슬림 반목이 엄청나구만... 하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또 역사적인 이유에서 연유한 남인도/북인도 간의 반목도 있네요. 불과 몇십년 전만 해도 시크교와의 문제도 있었고...겉보기와 다르게 생각보다 조각화가 되어 있는 나라라고 느껴집니다. 잘 배워가게 되네요. 고맙습니다.
21/06/27 1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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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정부도 하나의 '사히브'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대한민국 정부가 '조선 총독부에서 간판만 바꾼거 아니야?'라고 주장한다면 사람들에게 돌을 맞겠지만, 인도에서는 '이거 그냥 인도 총독부가 간판 바꾼거 아냐?'라는 소리가 간간히 들리니까요.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이질적이고 다양한 사람들이 굳이 하나의 지붕 아래에서 '그래도 살던대로 같이 살아봐야지'라고 하겠냐는 것이지요, 확실히 한국인에게는 너무나도 연상하기 힘든 관계인것 같습니다.

esotere님께서는 외국에서 사시니, 이런 흔한 'postcolonialism'적인 결과물에 더 익숙하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어음, 그러니까, 한국말로는 뭐라 옮길지 몰라서 영어로 적어봤습니다만, 식민지 시대 이후, 별로 바뀌지 못하고 흘러가고 있는 수 많은 세계의 다른 국가들이요. 아프리카의 경우에도 '근데 왜 우리가 이 나라를 유지해야함? 기득권이 승계되어서 그런거 아님?'이라는 말이 심심찮게 나오죠. 한국은 서구 제국주의에 편입되지 못해서, 또 특이한 역사를 하나 그려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 국뽕은 그거대로 챙기고, 또 세계의 나머지 지역에서 일어나는 이 보편적인 현상(?)에 대해 좀 익숙해질 필요가 있다고도 생각합니다.

오, 한국 넷플릭스에도 '신성한 게임'이라고 자막을 달아서 서비스하는군요. 한번 챙겨봐야겠습니다. 사실 저도 인도 영화나 문화산업은 잘 모릅니다. 타밀 친구에게도 '춤추는 무뚜'라고 한마디했다가 혼났습니다 크크크크. 춤추는 마살라 영화 말고 좀 영화같은 최신 영화도 보면서 자신의 친구라고 우기라고 꼬집더라고요 크크크크.

그래도 제 친구는 '바라트'에 대한 애착은 꽤나 커보였습니다. 애국심이 넘친다기 보다는 뭐랄까요... 그... 이미 오래 존속하여서, 이제 갈갈이 찢어진다는 선택지는 바람직하게 존재하지도 않고, 현실성도 없으며, 나쁜 점도 있지만 '아 이렇게 나쁘게 흘러가면 안되는데, 더 잘 될 수가 있는데'라고 아쉬워하고 신경 쓰게 되는 그런 '조국'으로서의 'Bharat'요. (그러고보니 발리우드에서 한국영화 '국제시장'을 리메이크했던 영화도 제목이 'Bharat'였는데 힌디어 영화였지요. 힌디인들이 바라트를 뺏어간다고 주장하던 타밀인 친구가 그 영화를 봤다면 뭐라고 생각했을지 궁금해지네요)

바라트가 익숙한 세대들이 앞으로 만들어 갈 바라트가 나중에 국제사회에서 어떤 모습으로 등장할지, 저는 기대가 됩니다.
브리니
21/06/27 1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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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히브 .인생의 방향 목적 처세 관점 롤모델 같은게 혼합된 느낌이네요. 나의 사히브에 관해 고민하는 요즘 이라 더재밌었는지도. 뜬금없지만 네이버 웹툰 율리 라고 있는데 그게 생각나고요. 인도 북부 배경 같은 느낌의 가상의 역사웹툰이라 흐흐
21/06/27 1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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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K-웹툰! 이제 북인도까지 진출하는 것인가요! 정말 흥미로워 보이는 웹툰이네요! 기억해두겠습니다!

저는 브리니님의 댓글을 보면서, 사히브를 흔히 말하는 '만력제'와 겹쳐보기 시작했습니다. 한국사에서 사대부들의 '사대주의'는 기존까지 비웃음의 대상이었다가, 이제는 재평가를 받고 있잖아요. 하나의 세계관, 하나의 국제질서, 하나의 선진문명세계였다고요. '명나라 사히브' 앞에서 조선의 관료/지배층/양반들은 나름대로 선택을 하고 교류하기로 선택한 것이 아니었을까요?

요즘 국제질서 또한 대한민국에게 '미국 사히브'와 '중국 사히브'라는 두 개의 사히브 중에서 하나를 택하라고 압박하고 있는 것일까요? 이야, 세상의 모든 진리가 만류귀종이라더니, 어쩌면 타밀인들은 그걸 더 빠르게 이해하고 이름을 붙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더 사소한 단위에서도 가능하겠지요. 한국말에도 '라인을 잘 타야한다', '줄을 잘 서야한다'라는 표현이 있지 않습니까? 이게 과연 우연일까요!? (대충 소련여자가 감탄하는 짤)
AaronJudge99
21/06/27 13:08
수정 아이콘
와 진짜 신선하네요! 학교에서 인도사를 어느 정도 배우긴 하지만(세계사 시간에)
그 인도사라는게...마우리아 왕조 쿠샨 왕조 굽타 왕조 델리술탄왕조... 다 북인도쪽이죠 따지고보면 크크
남인도쪽은 진짜 잘 몰랐는데...흐흐흐 글 감사합니다 잘 읽었어요 진짜로
21/06/27 1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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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됨) 제가 그래서 지역사를 좋아합니다. 이방인으로서 개괄적으로 큰 흐름을 보려면 당연히 왕들과 지배자, 주도권을 가진 민족을 중심으로 보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건 정말 파렴치한 '편파 중계'이기도 하지요. 매번 세계의 역사를 자기 중심으로 짠다고 욕을 먹는 유럽조차, 남프랑스 지역사, 남스페인 지역사, 남이탈리아 지역사는 무시당하기 일수입니다. (어 근데 왜 매번 남쪽이죠? 역시 그 친구의 말이 맞았습니다. 북쪽은 도움이 안 돼요!)

소수 민족은 특이한 종교, 독특한 신화를 보존하고 유지시켜서 아껴줘야하는 것이 아닙니다. 저는 그런 표현을 보면, 빨리 기록본을 만들어서 박물관에 집어넣고 살아있는 사람은 죽든말든~ 하는 그런 무심함이 느껴진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는, 그냥 상대적으로 '후달리는' (속어지만, 이 표현이 정말 적절하다고 생각합니다 크크) 지역의 사람들이, 자연스럽게도 '중앙'의 사람들과는 다른 관점에서 입장을 가질 수 밖에 없고, 발언을 할 수 밖에 없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도 서울에만 사람이 사는게 아니듯이요. 그냥 이야기만 들어도 '재미있지' 않습니까? 어디가서 누가 해주는 말이 아니잖아요. 흔하게 듣는 이야기는 반대편의 이야기고요. 사람이란 도자기가 되었든, 역사가 되었든, '희귀한 것'에는 흥미를 느끼게 되어있다고 생각합니다. 아 그러면 지역사는 절대로 못 놔주죠 얼마나 재밌을텐데요~
여수낮바다
21/06/27 14:19
수정 아이콘
넘넘 잘 봤고, 빨리 후속편 부탁드립니다

인도역사에 대한 입문자용 책은 혹시 뭐가 좋을까요?
21/06/27 14:43
수정 아이콘
(수정됨) 잘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후속편은 또 뜬금없는 주제로 찾아뵈겠습니다 크크~

인도에 대해서 책을 읽어보시고 싶으시다면...

'인도 상식사전'이라고 최근에 나온 책이 있는데요. 도서관에서 빌리시거나, 최신본이라서 비치되지 않다면 신청하셔서 빌리시는 걸 추천합니다. 기나긴 역사 이야기를 하지 않으면서도, 시중에 있는 책 중에서 '현대 인도'를 다루는 책으로는 진짜 제가 높게 평가합니다. 인도의 최근 현안과 그런 문제가 발생한 근현대의 이유를 일목조연하게 정리해주고 있습니다. 다만, 제 입장에서는, 아무래도 이 책이 '인도 가서 비즈니스 하는 법'을 상정해서 쓴 책이다보니, 책 전반에 흐르는 '인도인의 관념, 행동양식, 같이 일하는 법 꿀팁' 등등의 경우에는 좀 일반화되기도 힘든 내용이 아닌가, 하면서 회의적으로 보긴 했습니다. 아무래도 저는 역사/문화 덕후여서 좀 지나치게 '실용적'으로 가볍게 관점을 잡고 적은 것 같다고 삐딱하게 보게되더라고요. 책 자체는 두껍습니다만, 자세히 읽으실 종류의 책은 아니고, 슉슉 페이지를 넘기면서 읽기 좋은 책입니다. 다만 이런 전개를 더 좋아하시는 독자분들도 계실거라 생각합니다.

인도 역사서의 경우에는 "처음 읽는 인도사"라는 책이, 학생을 목표로 적힌 책이라 그림도 많아서 추천드립니다. 그래도 처음부터 끝까지 역사를 훑는 통사책이라서 좀 두께가 있긴합니다. 그래도 상대적으로 최신책이라 학설이나 관점도 미신적이지 않고 좋습니다.
여수낮바다
21/06/27 16:26
수정 아이콘
아싸 감사합니다 흐흐 하난 빌려보고 하난 소장해 봐야겠네요
그럼 후속편에서 또 감사의 인사를 드릴 날을 기대하겠습니다
에이치블루
21/06/27 22:21
수정 아이콘
어우 이렇게 재밌게 글을 쓰시다니 꼭 후학양성에 정진하시길 기원합니다. 정말 신나게 잘 읽었습니다.
21/06/28 15:26
수정 아이콘
감사합니다. 이건 어디까지나 취미생활이고 본업이 잘 풀렸으면 좋겠습니다만 요즘 코로나 시국이라 노는 시간만 가득해서 취미만 예뻐지고 아트의 경지에 이르고 있네요 흑흑흑...

그래도 나중에 멋진 글을 내서 찾아뵐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저도 한번 인세라는걸 받아보고 싶어지네요!
벨로린
21/06/28 10:11
수정 아이콘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인도 관련 책들은 읽은지 까마득해서 잘 기억이 안 나고, 최근에 '나는 스리랑카주의자입니다'를 읽었기에 싱할라족 편파 관점으로 이해하고 있는 제게 다른 관점이라 흥미로웠습니다. (그 저자는 싱할라족들과 많이 친하고, 싱할라족 친구와 같이 북쪽으로 여행 갔다가 테러가 발생해서 바로 남쪽으로 내려온다거나 하는 일화들이 있엇습니다. 읽기 전에는 스리랑카가 내전에 준하는 상태라는 것도 몰랐었죠.) 확실히 한국의 단일민족, 단일언어 체제가 세계로 치면 독특하다는 생각을 매 번 합니다.
21/06/28 15:39
수정 아이콘
와 제목도 멋진 책을 추천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러면 저도 이 편파중계를 해독하기 위해서 그 책을 읽어둬야겠습니다 :D !

싱할라 사람들 입장에서 얼마나 타밀 사람들이 나쁘다고 적었을지 지래짐작이 간다는 점에서, 역사는 참 무서운 주제인것 같습니다. 그 분들도 딱히 악의적으로 적고 싶지 않아도 살아온 경험 속에서 그런 결론에 도달할테니까요.

저도 이야기를 만들면서 계속 끌고 온 방향이지만,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정말 한국은 특이하고도 특이한 나라가 아닌가 싶습니다. 말씀하신 것이 정말 옳습니다. 어쩌면 한국 사람들은 한국을 이해하기 위해서라도 인도를 알아야할 필요가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정말 멋진 나라 같습니다 인도~. 저도 여행을 직접 다녀오고 제 견문으로 보충하여 이 글을 나중에 리마스터(?) 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목표가 하나 생겼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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