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 자유 주제로 사용할 수 있는 게시판입니다.
- 토론 게시판의 용도를 겸합니다.
Date 2021/06/19 01:22:14
Name 헤이즐넛커피
Subject [14] 학교 최하위 서열 찐따의, 생존을 위한 pgr21 입문 후기 (수정됨)
2013년, 난 pgr21이라는 사이트에 처음으로 접속하였다.
보통 게임 정보를 찾다가 이 사이트를 알게 되는 게 대다수일 것이다.
나의 경우는 그와 매우 달랐다.
사회성이 극도로 부족한 학생이 생존하기 위해 커뮤니티를 시작하게 되었다.


초등학생의 나는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하며 타인의 감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으로 기억의 말단에 남아있다.

공부라도 못했으면 그나마 나았을텐데, 공부만 잘하고 사회성은 없으니 말 그대로 '재수없는 새끼'였다.
흔히 "선생님, 오늘 숙제 검사 안했는데요?"라는 놈이 나였다.
왕따도 당해봤고 여러 명에게 밟혀도 봤다.

중학생때도 마찬가지였다. 오로지 공부만 하며 살았다.
체육시간에 하라는 축구는 안하고 벤치에 앉아서 책보며 공부했다. 책이 없으면 머리 속의 내용을 복습했다.

수학여행 때도 숙소 방구석에서 두꺼운 물리학 교양서적을 읽었다.
인싸 담임 선생님이 수학여행때는 그만 좀 공부하라는 의미로 내 책을 찢어버리고 반 분위기를 띄워서 내가 아이들과 섞일 수 있도록 도와주셨다.
그런 깊은 의미를 알리가 없는 중학생의 나는 울었다.

인생을 갈아넣은 덕에 성적은 좋았다. 전교 2등을 하면 조롱당할 정도로 거의 모든 시험에서 1등을 했다.

하지만 그럴수록 혼자가 되었다. 급식을 혼밥하는 것에 대해 문제의식이 들지 않을 정도로 혼자였다.
너무 힘들어서 죽고는 싶지만, 자살을 하면 누군가 비웃을까 무서워 실행하지는 못했다.
누군가 우연히 트럭으로 나를 치여죽였으면 하는 생각을 했다.


고등학생이 되었다. 더 이상 그렇게 살기 싫엇다.
'일진 입장에서 나를 패버리고 싶지만 공부를 잘해서 선생님이 보호해주니 어쩔 수 없이 못 건드는' 내 인생이 싫었다.

찐따들은 알 것이다. 과거의 나를 모두들 모르는 곳에서 다시 시작하고 싶은 마음.
그런 찐따에게 고등학교 입학은 기회였다.

하지만 찐따는 괜히 찐따가 아니다.
입학하자마자, 일진에게 맞는 애에게 맞고 살았다.
다행히 걔가 나를 때리는 것을 마음에 안 들어한 일진 한 명이 그 친구를 조져버려서 샌드백 역할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샌드백에서 탈출했더라도 '중간만 가야지'하는 나의 계획은 무너졌고, 이미 학급의 최하층 인간이 되버렸다.

인싸나 평범한 사람들에겐 마음에 맞는 친구와 놀고, 안 맞는 친구는 적당히 데면데면하게 지내는 것이 학교생활이다.
그 사람들은 계급을 굳이 따지지 않는다. 해봤자 일진, 평민, 왕따 이정도 세 계급을 알 뿐이다.

밑바닥일수록 계급이 세분화되어있다.
찐따는 혼자 살 수 없다. 마음에 맞던 안 맞던 모여 무리를 만들어야한다.
찐따무리끼리도 급이 있으며, 무리 안에서도 급이 나뉜다. 찐따무리의 리더가 있고, 그 안에서의 찐따가 또 있다.

이 글을 읽다보면 '친구끼리 친하면 그만이지 뭐 저렇게 급을 나누고 사냐'라는 생각이 들 수 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하지만 찐따로 살면 이렇게 될 수 밖에 없는 것 같다.

나의 찐따무리는 찐따무리들 중에서도 가장 밑바닥이었는데, 나는 그 안에서도 하층민이었다.
각자의 학창시절을 기억해보면, 쉬는 시간마다 다른 반에 오는 찐따가 있었을 것이다.
반에 친구가 없어 다른 반까지 가야하는 지경이면 어느 정도로 심각한 찐따인지 감이 올 것이다.

나의 찐따무리 리더는 스타2를 좋아했다. 그 친구가 핸드폰으로 pgr21을 하는 것을 보았다.
무리 안에서 더이상 무시받지 않으려면 리더와 친해져야했다.
그때부터 pgr21에 접속하고 GSL을 보기 시작한 것 같다.

그러다보니 찐따 리더와 말이 통하기 시작했고, 무리 안에서 내 위치가 올라가며 발언권을 얻게 되었다.
몇 개월 후엔 내가 찐따무리의 리더가 되었다.
2학년 중반즈음엔 우연히 착한 친구 한 명이 나를 다른 일반인 무리로 데려가줘서 찐따무리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사실 고등학생 시절 이후의 인생이 더 다이내믹하고 글로 쓸 거리가 많다.
대학생활동안 내 인생이 엄청나게 바뀌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과거의 내가 꿈꾸던 평범한 사회성을 가진 인간의 삶을 살고 있다.
가끔 인생이 힘들지만, 암흑같던 과거를 떠올리면 현재에 너무 감사하다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이 내용은 나중에 시간이 되면 풀도록하고, pgr21이라는 주제에 맞도록 조금만 글을 더 적고 글을 마치겠다.


pgr21은 게임커뮤니티로 많은 추억이 있다.
스타2 팬 입장으로 이정훈의 해병 컨트롤, 정종현과 박현우의 역대급 결승전, 로열로더 넥라 (주작범) 이승현 등 기억이 있다.

더지니어스 팬 입장으로는 시청자를 짜릿하게 하는 홍진호, 데스매치만 이기는 임요환, 전설적인 시즌2 6화, 밸런스 파괴범 장동민 등 기억이 있다.

LOL T1 팬 입장으로는 압도적 강함을 보여준 15/16skt, 원딜이 번아웃 와버린 17skt, 트할과 잼구의 암흑기 18skt, 슈퍼팀이지만 슈퍼팀이 되지 못한 19skt, 광고만 찍다가 용두사미 해버린 20 T1 등 기억이 있다.


하지만 나에겐 그보다 더 큰 의미가 있는 인터넷 사이트이다.
그 때 찐따무리 리더가 pgr21을 하는 것을 몰랐다면 내 인생이 또 어떻게 바뀌었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고맙다, pgr21.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21/06/19 01:52
수정 아이콘
고생하셨습니다. 앞으로는 행복하세요
괴롭혔던 놈들은 누구보다 비참하게 살길 기원합니다.
21/06/19 03:26
수정 아이콘
앞으로는 꽃길 걸을일만 남았습니다.
저도 한 때 찐따력으론 안밀리던 사람이기에, 찐따 선배로써 화이팅 외쳐드립니다. 그리고 반갑습니다.
분란유도자
21/06/19 07:34
수정 아이콘
공부잘하면 찐따아닙니다. 전 공부못하고 못생기고 사회성떨어지는데 존버탔죠
존버는 뭐다?
승리!
후마니무스
21/06/19 08:18
수정 아이콘
찐따가 아니었네여 전교1~2등이면요

멋집니다.
신류진
21/06/19 09:40
수정 아이콘
전교 1~2등하셨으면 뭐 스카이 이상 가셨을텐데 충분히 성공한 인생이십니다 고생많으셨습니다.
Daybreak
21/06/19 09:52
수정 아이콘
인간관계가 본인에겐 인생최대의 난관처럼 느껴지셨을듯 한데 극복하셨다니 정말 축하드립니다. 그때의 기억을 잊지마시고 주변사람들에게 따뜻한 사람이되시길 바래요.
21/06/19 10:02
수정 아이콘
찐따 무리 중에서 중간쯤 되던 입장에서 공부 잘하는데 나보다 바닥이면 친해질려고 해봤을거 같은데 사회성이 진짜 부족하셨나보네요
저도 사회성이 부족하다고 생각했는데 중학교때도 고등학교때도 평민중에 착한애들 때문에 찐따끼리 놀진 않았던거 같네요.
21/06/19 10:19
수정 아이콘
여러 사람 만나본 결과, 공부 잘 해도 사회성으로 20대까지는 고통받는 분들 보긴 했는데.. 점점 나아지는 것이 사회성이죠. 지금은 평범한 사회성을 획득하셨다니 다행이네요.
반면에 공부 재능은 평생 갈 뿐만 아니라, 인생의 단계마다 발판을 놓아주고 자신이 속하는 그룹을 자동으로 바꿔놓죠. 아마 학창시절 주변 분들은 현타 쎄게 올 겁니다..

고생 많으셨고, 꽃길만 남으셨기를.
바이바이배드맨
21/06/19 10:39
수정 아이콘
정말 잘 극복하고 그 어려운 시간을 잘 버텨내서 제가 다 고맙네요. 정말 고생하셨습니다.
달달합니다
21/06/19 11:17
수정 아이콘
그 자칭 찐따무리에서 pgr21하던분 찐따인증(?),, 눈물 크크
신동엽
21/06/19 11:20
수정 아이콘
전교 1~2등은 찐따가 아닙니다 흐흐
놀라운 본능
21/06/19 11:25
수정 아이콘
공부잘하면 있어보여서 조용히 공부만 하면 잘 안때리는데
일진이랑 치고 받을 정도면 인싸 기질이 있는듯 합니다
왕따를 시키는 사람이 전적으로 잘못한 것이라는것은 동의하지만..
당하는 입장에서는 자신도 돌아보는것이 필요할 듯 합니다.(잘못이 있다고 확신하는건 아닙이다)
마니에르
21/06/19 11:26
수정 아이콘
11플 13추천... 조용히 올라가는 추천수.
힘든 시간 잘 버티셨고 앞으로 꽃길만 걷길 바랍니다~
노하와이
21/06/19 11:39
수정 아이콘
저도 나름 공부 잘 했다고 생각했는데 반에서 2~3등 하는 정도로는 딱히 선생들의 보호 같은 게 없더군요. 전 주위 사람들에게 전혀 관심도 없었고 다가가려는 노력도 하지 않았으니 제 편을 들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지요. 대학교에서도 졸업이 다가올 때까지 아는 사람 하나 없으니.. 흑흑
피잘모모
21/06/19 13:04
수정 아이콘
내가 무릎을 꿇었던 건 추진력을 얻기 위함이었다!
욱상이
21/06/19 14:39
수정 아이콘
오히려 직설적인 표현들이 나와서 진심이 느껴졌습니다..! 이제는 행복이 가득한 날들을 사시길 바랍니다...
데브레첸
21/06/20 02:06
수정 아이콘
비슷한 처지에 있던 사람으로서 동병상련입니다.
저는 선생님과 달리 pgr21로 초대해준 친구가 없어서 대학교 올라와서까지 찐따였네요.
노력은 하고 있습니다만 여전히 갈 길이 멉니다. 저도 선생님처럼 됐으면 하네요.
21/06/20 10:47
수정 아이콘
수고 많으셨습니다. 열심히 살려고 노력한 만큼 좋은 일만 있기를 바랍니다.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101118 에스파 '드라마' 커버 댄스를 촬영했습니다. :) [10] 메존일각2473 24/03/09 2473 6
101117 책 소개 : 빨대사회 [14] 맥스훼인3092 24/03/09 3092 6
101114 드래곤볼의 시대를 살다 [10] 빵pro점쟁이2846 24/03/09 2846 22
101113 <패스트 라이브즈> - 교차하는 삶의 궤적, 우리의 '패스트 라이브즈' [16] aDayInTheLife2334 24/03/09 2334 4
101112 밤양갱, 지독하게 이기적인 이별, 그래서 그 맛은 봤을까? [36] 네?!5529 24/03/09 5529 9
101111 정부, 다음주부터 20개 병원에 군의관·공보의 파견 [152] 시린비9515 24/03/08 9515 0
101109 요 며칠간 쏟아진 국힘 의원들의 망언 퍼레이드 및 기타 등.. [121] 아롱이다롱이9161 24/03/08 9161 0
101108 역사교과서 손대나... 검정결과 발표, 총선 뒤로 돌연 연기 [23] 매번같은5422 24/03/08 5422 0
101107 개혁신당 이스포츠 토토 추진 공약 [26] 종말메이커4536 24/03/08 4536 0
101106 이코노미스트 glass ceiling index 부동의 꼴찌는? [53] 휵스5153 24/03/08 5153 2
101105 토리야마 아키라에게 후배들이 보내는 추도사 [22] 及時雨6800 24/03/08 6800 14
101103 드래곤볼, 닥터 슬럼프 작가 토리야마 아키라 별세 [201] 及時雨9661 24/03/08 9661 9
101102 [정정] 박성재 법무장관 "이종섭, 공적 업무 감안해 출금 해제 논의" [125] 철판닭갈비7773 24/03/08 7773 0
101100 비트코인 - 집단적 공익과 개인적 이익이 충돌한다면? [13] lexial3070 24/03/08 3070 2
101099 의협차원에서 블랙리스트를 만들어라고 지시한 내부 폭로 글이 올라왔습니다 [52] 체크카드9686 24/03/08 9686 0
101098 [내일은 금요일] 사과는 사과나무에서 떨어진다.(자작글) [5] 판을흔들어라1576 24/03/07 1576 3
101097 유튜브 알고리즘은 과연 나의 성향만 대변하는 것일까? [43] 깐부3116 24/03/07 3116 2
101096 의사 이야기 [34] 공기청정기6252 24/03/07 6252 4
101095 시흥의 열두 딸들 - 아낌없이 주는 시흥의 역사 (4) [8] 계층방정4197 24/03/07 4197 9
101094 대한민국 공공분야의 만악의 근원 - 민원 [167] VictoryFood10213 24/03/07 10213 0
101093 [중앙일보 사설] 기사제목 : 기어이 의사의 굴복을 원한다면.txt [381] 궤변13232 24/03/07 13232 0
101092 의대증원 대신 한국도 미국처럼 의료일원화 해야하지 않을까요? [11] 홍철5101 24/03/07 5101 0
101091 정우택 의원에 돈봉투 건넨 카페 사장 “안 돌려줘… 외압 있었다” 진실공방 [20] 사브리자나4853 24/03/07 4853 0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1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