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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21/05/07 04:06:31
Name SimpleCollege
Subject [일반] 양윤세 대담록, <고도성장 시대를 열다> (수정됨)
1960, 70년대 한국 경제외교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았던 인물 중 하나인 양윤세 씨와 당시 대한민국역사박물관 학예연구실장이었던 주익종 씨 간의 대담록입니다. 기본적으로 한국 현대사 격랑의 시기를 살며 고학생에서 미군 통역사, 미국 유학생, 경제 관료로 이어지는 파란만장한 인생을 산 분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인터뷰어의 준비 수준이 대단히 높아서 훌륭한 증언록이 탄생한 것 같네요. 관련 내용을 상세히 조사하고서 질문을 한 덕에, 이런 류의 책에서 흔히 발생하기 쉬운 자화자찬이나 기억상의 오류 등이 비교대조를 통해 많이 교정되고, 또 단순한 기억 나열을 떠나 맥락과 의의가 중간중간에 잘 정리되어 있습니다. 1960년대 중후반 한미 정부간 경제외교가 한국 경제발전에 질적, 양적으로 기여한 바가 참 크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됩니다. 그 밖에 종합제철소 건설 사업에 관한 사실과 신화, 1970년대 한국의 관광 개발에 관한 비화, 1979~1980년 석유 파동 시 석유 확보 과정의 난맥상이 잘 드러나 있습니다. 특히 종합제철소 건설에 관한 건 개발연대 시기를 다룬 통설이나 다른 회고록의 내용과는 상당히 달라서 주목해볼 만 합니다. 그 밖에 읽으면서 스크랩해두고 싶은 부분을 아래에 정리해보았습니다.

pp. 157-158
* 양: 장 부총리 취임 후 처음으로 유솜과 기획원이 업무 협의를 할 때의 일입니다. 회의 날짜가 잡혔는데 장 부총리는 인사하고 적당히 하는 자리 정도로만 알고 아무 준비를 안 해요. 그래서 내가 장 부총리에게 통계숫자도 좀 숙지하고 한미 간 현안 내용도 파악하라고 여러 번, 아마 열 번은 말씀드렸어요. (...) 장기영 씨는 "아, 만날게요. 좀 기다리라고 하세요" 하고는 그만이에요. (...)
여하튼 그렇게 장 부총리 취임 후 유솜과 기획원 간 첫 회의가 열렸는데, 장 부총리가 업무 파악이 안 되어서 아무 소리도 못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킬렌 처장이 책상을 주먹으로 탕~ 치면서 항의를 하더라고요. (...) "이 회의를 위해서 내 직원들이 지난 2주일 동안 휴일도 없이 일하면서 통계자료와 설명서를 만들었는데, 당신 여기 와서 이렇게 하나"고 해요. (...)
그 일을 겪고 나서는 장 부총리가 확 달라졌어요. 숫자를 정확히 파악하고 또 그걸 적절하게 활용하는 겁니다. 나중에 한일경제각료간담회 할 때인데, 그가 이렇게 이야기를 해요. "요즘 내 머리 속에는 몇 가지 숫자가 뱅뱅 돌고 있습니다. 첫쨰는 10이라는 숫자입니다. 우리 경제성장률이 최근 2~3년간 10% 밑으로 떨어진 일이 없습니다. 앞으로도 10%를 넘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5라는 숫자가 있습니다. 우리나라 직접세 수입이 5배 이상 올라갑니다. 또 3이라는 숫자가 있습니다. ..." 이렇게 연설을 하니까 일본 사람들이 입을 딱 벌려요. 구체적인 숫자로 한국 경제 현안을 분명히 설명하니까 그냥 설득이 되는 거예요.

p. 198-200
* 주: 이상 1960년대 전반의 한미 간 논의 과정을 보면, 한국 측이 5개년 계획을 빨리 추진하는 데만 골몰한 반면, 미국은 한국의 5개년 계획에는 관심이 없고, 그에 앞서 재정안정화, 시장 자유화 등에만 관심을 둔 것 같은데요.
* 양: 그렇습니다. 우리의 1차 5개년 계획이 희망을 나열한 것이지, 그게 자료나 이론면에서 근거를 갖고 수립한 게 아니었거든요. 1차 5개년 계획을 하겠다는 열의도 좋고 또 일단 그 일에 착수했다는 게 중요하지만, 그 내용에서는 아주 미숙했죠. 미국은 그 무렵부터 무상원조를 중단할 준비를 했던 것이고요.
* 주: 한미경제협력위원회 등을 통해 미국 측의 경제안정화 정책이 한국 정부의 경제정책을 긍정적으로 규율한 점을 인정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1954-1967년간 유솜에서 차장보로 근무한 빈센트 브라운은 미국이 제창한 이 경제안정화 프로그램의 규율이 없었더라면 경제기획원이 과도한 정부 보조금이나 소비 지출에 대한 국내 압력에 굴복했을 것이라고 증언한 바가 있습니다. 이 경제안정화의 기초 위에서 수출 진흥이나 중화학 투자가 성과를 거둘 수 있었던 게 아닌가 합니다만, 어떻게 보십니까.
* 양: 다 맞는 이야기에요. 재정안정계획이라고 한미 간에 협약을 맺고, 거기에 따라 모든 경제정책을 운용했지요. 거기서 합의된 테두리 내에서 움직였어요. 그 쪽이 우리보다 더 현대화된 연구를 하고 아는 사람도 많고 이렇게 되니까, 그쪽에서 나온 아이디어를 합의하면 지켜야 하니까 그쪽 영향을 상당한 부분 다 받았다고 봐야죠. 그걸 받는 데 있어서 우리가 상당히 저항하거나 반대한 거는 별로 없었어요. 이론적으로 다 앞뒤가 맞는 거니까 합의하면 합의대로 준수해 나가면 되었어요.
* 주: 미국은 한국의 경제개발을 위한 적극적인 조치는 취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최소한 한국 정부가 경제를 혼란시키거나 경제발전에 저해가 되지 않는 행동을 하지 않게끔 규율했습니다. 그전에는 한국 정부가 대출을 늘려서라도 투자사업을 추진한 결과로 통화량도 늘고 인플레도 심해지고 경제안정이 깨지고 했는데, 미국 정부는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게끔 강력하게 규율한 게 아닌가 하는 겁니다.
* 양: 결과적으론 그렇게 된 거죠. 그런데 미국 정부의 최우선 관심사는 원조 자금의 효과적인 사용이었어요. 미국 입장에서는 우리가 원조 자금을 받아서 낭비를 하거나 허투루 쓰면 안되잖아요? 원조 자금의 효과적인 활용에 위배된다 해서 제동을 걸었던 것이죠. 자기네들이 원조 줄 때 지켜야 하는 국내법에 의해서라도 이거는 이렇게 해야 한다는 논의를 편 것인데, 현실적으로는 그 사람들의 지식이 앞서 있었고, 모든 사고하는 방식, 문제를 접근하는 방식이 현대화되어 있었으니까, 우리가 그걸 존중하고 따라간 것이죠.

pp. 221-222
* 주: 석유화학산업은 1967년부터 시작되는 제2차 5개년 계획의 핵심 프로젝트인데, 이미 거의 2년 전인 1965년 5월에 그 계획이 세워졌다는 게 주목할 만합니다. 수출입국으로 막 방향을 잡았을 때인데 중화학공업 건설을 병행하려 한 것입니다. 그만큼 당시 정부가 큰 포부를 갖고 앞을 내다보고 있었다는 이야기가 되는데요.
* 양: 그런 면도 있었겠지만, 처음에는 큰 포부에 비해 구체적인 실행계획이 없었는데 차차 실행계획을 세우느라 시간이 걸렸던 겁니다. 우리는 그냥 석유화학공업을 갖추어야겠다는 의욕만 있는 거고, 미국 측에서는 자기네 기준에 따라서 데이터를 통해 확인이 되어야 지원을 할 수 있다는 거였어요. 그 실행계획을 세우느라 시간이 걸렸던 겁니다. 우리는 그냥 석유화학공업을 갖추어야겠다는 의욕만 있는 거고, 미국 측에서는 자기네 기준에 따라서 데이터를 통해 확인이 되어야 지원을 할 수 있다는 거였어요. 그 실행계획을 세우는 데서 하나한 지도를 받은 거고, 거기서 유솜의 역할이 컸습니다.
사실 우리 측이 반성해야 될 게 있었어요. 영어로는 프로스펙터스(사업설명서)라고 하는데, 어떤 사업을 하겠다고 하면 거기에 관한 아웃라인이 정확하게 딱 나와서 미국 측에 미리 제출해야 하거든요. 그런데 그걸 제대로 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어요. 제대로 그런 걸 못한 거예요. 미국 원조당국자들이 와서 그거까지 도와주었어요. 미국은 원조를 주면서도 원조 받을 사업에 관한 서류를 만들어 주거나 만드는 걸 도와준 거예요. 우리는 보통 사업을 할 때, "우리가 이렇게 열심히 하려고 하는데 도와주면 그만이지, 뭘 이렇게 따져?" 이런 식이거든요.
* 주: 미국 입장에서는 원조를 주겠는데, 한국 쪽에 그 프로젝트의 탄탄한 계획서가 있어야 한다는 거죠.
* 양: 미국 정부에서 의회 승인을 받아야 되니까 허술하게 올라가면 안 되거든요. 그러니까 제대로 된 게 올라가야 되는데 이게 한국에서는 습관이 안 되어 있었어요.
* 주: 그때까지는 실력이 안 되는 거죠.
* 양: 실력도 안 되고 습관도 안되니까 우리는 미국에 대해서 "자꾸만 저놈들 귀찮은 소리밖에 안 한다" 이런 식으로 본 거예요.
* 주: 네, 큰 포부라기보다는 좀 허황된 꿈이라는 측면을 봐야겠네요. 허황된 꿈을 구체적인 실행계획으로 바꾸는 데 몇 년 씩 걸린 것이라 보아야 하겠습니다.

pp. 233-235
* 주: (...) 제 2차 한월경제각료회담을 갖습니다. 이떄 대월 경제협력의 방침이 바뀌는 것 같습니다. 물품 수출과 인력 수출 위주에서 건설, 하역, 수송 등 각종 용역을 맡는 것으로요. 이런 방침 전환은 누구에게서 나왔나요? (...)
* 양: 그때 내가 그렇게 판단했어요. 용역과 건설 두 분야에서 기업을 보내기로 했죠. 사람만 보내서는 안 되겠고, 한국 기업을 보내야겠다고 한 겁니다.
* 주: 인력 수출로는 안 되겠다고 판단하신 건 어떤 이유 때문이었나요?
* 양: 한국 기업이 진출하면 인력 수출보다 더 큰 것을 얻을 수 있다는 걸 안 거죠.
* 주: 그건 월남 현지에서 보시고 판단한 건가요?
* 주: 가서 보기도 했지만, 내가 6.25전쟁 때 미군부대 공병대에서 통역으로 일한 경험에서 그런 판단을 한 거예요. 내가 일하던 비행장 공병대에 컨트랙터(contractor)라는 게 있어요. (...) 알아보니까 그 사람들이 용역계약을 맺어서 한국 사람들을 노무자로 고용해서 일을 시키고 중간에서 돈 버는 거예요. (...) 우리도 월남에 단순히 사람만, 노무자만 보내지 말고, 뭉치 돈 벌어야겠다고 생각해서, 한국 기업을 보내기로 판단한 겁니다.
(...)
* 주: 그런데 미군 용역을 크게 하던 한진 같은 민간에서는 정부보다 먼저 월남에서 대규모 용역수주의 기회를 본 것 아닌가요. 정부가 건설 및 용역 수주 위주 정책을 쓰니까 그걸 보고 월남 진출을 시도한 것은 아니지요.
* 양: 그렇죠. 민간이 먼저 움직였어요. 민간은 빠르게 움직이죠. 한국의 군남 관계 시스템이 제대로 되어 있었어요. (...) 하역 등 서비스 관계 조합장이 한진의 조중훈 씨였어요. 주한 미군 장성 중에도 월남으로 발령받아 간 사람이 꽤 있었어요. 그러니까 조중훈 씨 입장에서는 월남 쪽에 인맥이 생긴 거죠. 그래서 그가 월남에 사업 기회가 있을 걸로 보고 교섭했습니다. 나는 정부 차원에서 교섭한 것이고, 실제 비즈니스 건별로 교섭을 한 것은 조중훈 씨였지요.

pp. 259-261
* 주: (...) 월남 파병이 갖는 의의로서 지금껏 그다지 주목받지 못한 측면을 말씀해 주신다면요?
* 양: 우리나라 경제 발전의 계기가 된 거 중의하나는 1965년 박 대통령의 방미, 즉 우리 대통령이 처음으로 국민으로서 미국에 초청받아 간 것입니다. 거기서 우리 근로자와 기업이 월남에 진출하는 계기가 마련되었습니다. 이것이 해외 진출의 시효이고, 기초가 된 거죠. 그리고 거기서 중동으로 또 나간 거고요. 이런 식으로 대외 관계가 발전한 겁니다.
그런데 특히 중요하다고 내가 생각하는 건, 월남 파병으로 하층 사람들에게 일자리가 생기고 돈이 밑으로 흘러간 것입니다. 요즘 복지 문제로 말들이 많죠? 그런데 밑의 사람들의 일자리가 생겨나 그 사람들이 취업하면, 그 임금이 그 개인 집들로 곧바로 흘러들어갑니다. 그러니까 월남에서 송금한 금액을 은행에서 노무자네 집으로 직접 주게 되어 있어요. 그러면 정부가 복지를 특별히 안 하더라도 자동적으로 가난한 사람들에게 돈이 흘러들어가는 거예요. 거기서 아주 크게 이득을 봤던 거예요.
(...) 그 다음에 업체로서는 국제적으로 나가서 일할 수 있는 기술적인 기초, 이것이 완전히 잡힌 거죠.
* 주: (...) 미 대사관의 정무 서기관 오도너휴(O'donohue)는 월남에서 필리핀이 이익을 볼 것으로 생각했으나 의외로 한국이 기회를 잡았고, 한국 기업이 월남 진출을 통해 국제경쟁을 할 수 있게 되었다고 증언한 바 있습니다. 이것도 대단히 중요한 측면인 것 같습니다.
* 양: 그 중요한 원인은 우리나라 기업이 미8군에서 일한 경험에 있습니다. 월남에 간 기업은 대부분 미8군에서 일한 경험이 있고, 미8군과 연결되어 있었어요. (...) 미국이 시키는 일을 해 본 경험이 있는 기업이 그 경험을 바탕으로 월남에서 일거리를 따냈습니다. 이런 면에서 우리나라 기업을 훈련시킨 것도 미국, 미군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

pp. 315-320
* 주: 그런데 전자부품회사들의 진출과 관련해서 찬반 양론이 있지 않았나요.
* 양: 난 그게 잘된 일이라고 찬성했어요. 하지만 그 계통의 전문가들 중에는 비판하는 사람들이 있었어요. 왜 남 좋게 부품산업만 하느냐. 전체적인 걸 개발해야 되지 않느냐는 거예요. (...) 그런 사람들 입장에서 보면 좀 더 크게 했으면 좋겠지만, 그래서는 일이 되질 않죠. 그떄 그런 사람들은 내가 하는 일에 일종의 방해가 되거든요. 그래서 내가 그때는 그런 사람들을 많이 공격했어요.
* 주: 박 대통령에게 전자공업에 관해 많이 자문을 한 김완희 박사라고 있었잖아요. 부품회사 위주로 전자공업이 출발하는 거에 대해서 비판한 이가 그분이었나요.
* 양: 네. 그 양반이 상공부에서 연구용역을 맡겼던 컬럼비아대 교수인데, 난 그때 그 양반을 아주 싫어했어요.
* 주: 오원철 수석 책에 의하면, 상공부에서도 끔찍이 싫어했던데요. 하하.
* 양: 그때 싫어한 이유가 뭐냐면, 그 양반이 주로 주장하는 게 왜 부품만 하느냐 이거예요. 종합을 해야 된다, 종합적인 걸 해야 된다고 해요. 그런데 그 말은 지금 기어 다니지도 못하는 애에게 뛰라고 하는 거예요. 나는 전문가라는 사람이 하나도 도움이 안된다고 생각했어요. (...) 나중에 한국도 전자공업이 많이 발전되고 나서 결과적으로 뒤를 돌아다보면 그런 주장을 해 준 사람이 많이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때는 내가 하는 일에 너무 비판적인 얘길 하니까 싫어했지만, 긴 장래를 두고 보았을 때는 그 사람도 공이 꽤 있다고 인정합니다.
* 주: 이 미국계 전자회사의 한국 진출로 한국 전자부품공업이 출발했습니다만, 당시에는 이 외국계 전자부품 공장의 저임금이 문제가 되지 않았나요?
* 양: 전자부품 공장 중에서 노동운동이 시작된 곳이 있었죠. 모토롤라 같은 데서 아주 곤란을 겪었고, 경찰 동원해서 데모를 막기도 했었죠. 하지만 정부 내부에서는 저임금 문제를 크게 취급하지 않았어요. 가급적이면 노동쟁의 못하게 했죠. 왜냐? 인력이 남아돌아가는 상황이었고, 그 사람들이 지금 기준으로는 기술 같지도 않은 것이지만 당시로서는 대단한 기술을 배웠던 겁니다. 그래서 정부는 저임금을 문제 삼지 않고 오히려 노동쟁의를 진압하고 무마하려 했지, 노동자 임금을 올리라고 하지는 않았죠.
* 주: 이 미국계 전자회사의 한국 진출이 갖는 의의를 더 지적하시면요?
* 양: 이 무렵에 한국 경제에서 월남에 간 남자 노동력 못지않게 중요한 역할을 한 게 전자부품 공장의 아가씨들입니다. 시골 아가씨들, 초등학교나 겨우 나온 이 아가씨들이, 남은 길은 식모로 가는 길밖에 없는 아가씨들이 이 직접투자 공장에 와서 기계를 다루는 거예요. 그것도 아주 첨단 기술입니다.
식모 노릇이나 하던 애들이 기계가 뭔 줄 알고 전자가 뭔 줄 알기 시작한 거예요. 얘네들이 식모라는 소릴 듣기 싫으니까 월급이 적더라도 여길 오는 거예요. 와서 세 아이, 네 아이가 한꺼번에 조그만 방 하나 얻어서 편교대로 와서 자고 일하고 이랬던 거예요. 걔네들이 정말 열심히 일했어요. 장기영 씨가 대통령에게 가서 자랑했죠. 그래서 박 대통령이 한 번은 근처에 있는 이 외국계 전자회사들을 시찰하러 나왔어요. 안내는 내가 맡고요. 그렇게 몇 군데를 갔는데 대통령이 들어와도 눈 하나 깜빡 안 하고 일에 집중해요. 이렇게 앉은 애들이 그대로 자기 할 일만 하는 거예요.
그래서 그 기술 축적이 되었죠. 또 역시 이 아이들이 그대로 식모 노릇이나 하면 그때 돈을 받아봤자 얼마를 받겠어요. 그때 돈을 거의 못 받거든요. 밥이나 먹을 정도면 그만인데, 어린 여공들이 조금이라도 돈을 받으면 그 돈이 전부 자기 집으로 가는 겁니다. 가장 빈곤한 사회 밑바닥 층으로 그 돈이 자동적으로 흘러들어간 거예요. 이 힘이 무지하게 큰 겁니다.
* 주: (...) 가난한 농촌 출신의 소녀가 도시에서 식모 노릇을 하면 입에 풀칠이야 하겠지만, 빈곤의 악순환에서 벗어나기 힘들 텐데요. 그 소녀가 외국계 전자부품 공장에 취직해서 적은 금액이나마 벌면 그게 가난한 자기 집으로 흘러들어가 다른 형제가 학교를 다닐 수 있을 테고요, 또 소녀 자신도 더 이상 더부살이가 아니라 사회의 당당한 일원이 될 수 있을 것이고요.
* 양: 그래서 투자진흥관실을 만들어서 업무 볼 적에 나는 최우선 점을 일자리 창출에 두었어요. 그게 제일이에요. 그래서 일자리가 많이 생기는 투자를 적극적으로 유치하려 했어요. 그 다음 고려 사항이 시장 확보가 되느냐, 생산 제품을 쉽게 팔 수 있느냐는 거였어요. 이렇게 생산된 전자부품은 100% 수출이거든요. 다 자기 본사로 갖고 가요. 이 100% 수출이 사장 확보죠. 자본 확보는 그 다음이에요. 외자도입이라 하면 자본이 으뜸인 줄 아는데, 그게 아니라 일자리, 시장, 기술, 그 다음에 자본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일본 청구권 자금을 종합제철소로 전용할 적에도 이런 걸 질문한 적이 있어요. 청구권 자금이 얼마만큼 한국에 기여를 했느냐? 난, 그 자금 기여도는 얼마 없다 이거예요. 그게 없었어도 문제가 별로 없었다는 겁니다. 그러나 그걸 터놓음으로 해서 일어나는, 여러 통로가 개방이 되었다는 게 중요하다는 거죠.
(...) 그걸로 인해서 교역이 확대되고 다양한 경제 관계가 만들어졌다는 게 중요하다는 겁니다.
* 주: 크게 보면, 한일 국교 정상화 후 일본에서 자본재랑 부품을 들여 와서 우리나라에서 조립 가공한 다음 그 제품을 미국으로 수출하는 국제분업 관계가 만들어진 거 아닙니까?
* 양: 그게 중요하지요. 통로가 열렸다는 게 중요한 거죠. (...)

pp. 205-206
* 주: 1965년 봄에 한일회담 타결이 임박하니까 (...) 대학생들과 야당은 격렬하게 반대하고, 정부는 밀어붙이는 극한적인 대립의 상황이었는데요, 이 대립을 당시 어떻게 보셨나요?
* 양: 서로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런 생각은 있었어요. (...) 그러나 냉철하게 생각해 보면 한일 관계는 좋아야 된다, 국교는 정상화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지요.
내가 미국 대학원 시절에 '석탄과 철강 공동체'라는 주제로 논문을 하나 썼어요. (...) 여태까지 적대시에 적대를 하던 나라들이 전쟁이 끝나자마자 서로 냉철하게 볼 수 있는 그 사고방식이 부럽다, 일본과 한국도 이런 냉철한 관계로 시작하면 좋겠다, 그런 식으로 논문을 쓴 게 있었어요. (...)
* 주: (...) 한일경제관계가 진전이 되면 우리나라가 일본에게 경제적으로 예속될 거라는 우려도 컸습니다. (...) 당시 양 과장님도 우리가 일본에 예속될 수 있다고 생각하셨나요?
* 양: 예속이라는 생각은 하지도 않았어요. 우리가 경제개발을 하는 과정에서 누구에게 예속된다는 생각은 해 본 적이 없어요. 부유해지면 우리 힘도 생기면 우리가 지킬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지, 경제개발을 하는데 미국이나 일본에 예속된다고 생각한 적은 없어요.

pp. 305-307
* 주: 정상회담 후에 12개 항의 공동성명이 발표되었는데요. 거기에 미국이 한국의 2차 5개년 계획을 지원한다, 양국 간 교역 증진과 미국의 대한 민간 투자 증진을 위해 가까운 시일 내에 교섭사절단을 교환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이 부분도 당시 양 국장님이 교섭하셨을 텐데요.
* 양: 그 전부터 미국 측에서 직접투자를 늘려야 한다는 이야기를 계속 했어요. 한국 사람들이 그걸 좀 삐딱하게 생각해서 '아 저 사람들 원조 안 주려고 자꾸 저 딴소리한다' 이런 식으로 받아들이기도 했지만, 이제는 무상원조, 지원원조를 축소시키고, 아니 빨리 종식을 시키고 모든 건 차관이나 기업 자체의 이익을 창출시켜서 그걸 하고 그 다음에 민간 투자를 해야 이게 진짜다, 민간 왕래를 확대하자, 이게 그 사람들의 기본 정책이었어요. 그걸 존슨 대통령이 나서서 진두지휘를 해 준 셈이죠.
* 주: 우리 측도, 양 국장님도 그런 방침에 동의하신 거죠?
* 양: 물론이죠. 좋다고 했죠. 나도 교육을, 고등교육을 미국에서 받았으니까 자유시장경제에 대한 믿음이 강했죠.
* 주: 우리나라에는 그때 직접투자를 꺼리는 분위기도 강하지 않았습니까. 다국적 기업에 대한 비판이 나올 때 아닌가요.
* 양: 좋은 예를 들자면 외국 사람이 와서 집을 산다든가 땅을 사면 외국인에게 팔아먹는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았죠. 그러니까 직접투자와 관련해서는 신문에서도 아주 부정적인 기사가 나와요. 예를 들면, 투자가 잘 되어서 이윤이 나면 과실송금 해야 할 것 아니에요? 그런데 과실송금에 관한 기사를 읽어 보면 배가 아파 죽겠다는 식으로 써 있어요.
* 주: 네, 그런 분위기가 있었죠.
* 양: 그럼요. 지금도 있잖아요. 외국인 투자자가 과실을 가져간다고 해도 한국에도 이익이 떨어지는 것인데, 이걸 생각 못하는 거죠. (...) 나머지 (...) 이익이 한국에 남는 것이고, 또 직접투자의 결과로 고용 증대가 되었다는 건 정말 중요한 것이거든요. 그리고 기술 습득을 한 것도 있고요. 이런 눈에 보이는 소득, 안 보이는 소득이 얼마나 많은데, 눈에 보이는 그 이익 얼마가 외국에 나갔다는 데 대해 배 아파하고... 아무튼 기사를 읽으면 그게 되게 배가 아파서 쓴 것인데, 그런 분위기는 참 잘못된 것이었어요.

pp. 504-505
* 주: (...) 그런데 1970년대의 기획원에서는 1960년대의 양 과장, 국장님만큼 경제외교에서 두각을 나타낸 분은 없는 것이지요. 1970년대의 경제개발사에서는 중화학공업화를 추진한 김정렴, 오원철 씨만 보일 뿐, 기획원에서는 눈에 띄는 분이 없는 것 같습니다.
* 양: 1960년대에 난 백지 상태에서 경제외교를 했어요. 백지에 그림을 그리면 뚜렷이 보이잖아요. 내가 움직인 대로 대외경제 관계의 틀이 잡혔고, 내 활동의 성과가 뚜렷했어요. 하지만 내 후임자들은 이미 틀이 잡힌 상태에서 활동하는 것이니 오히려 개인의 성과는 잘 부각되지 않죠.
그리고 남덕우 씨가 부총리 할 때, 이제 경제도 상당히 성장했으니 우리 돈으로 하지 굳이 외국인 끌어들여서 같이 할 필요 없다고 주장했어요. 그래서 외국인에게 혜택 주던 것도 덜 주는 식으로 외자도입법을 개정했어요.
* 주: 외국인 직접투자를 환영하지 않는 분위기로 바뀌었나요.
* 양: 말하자면 민족주의 사상, 태도가 세력을 얻은 것이죠. 우리 돈 있으니 우리끼리 하자는 거였죠. 중동 관계로 돈이 들어오기 시작하니 투자여력도 생긴 영향도 있고요.

pp. 295-297
* 양: 로스토우(...)가 처음 한국에 왔을 때, 내가 공항에서 그를 영접해서 같이 차를 타고 서울 시내로 들어오는데, 한국에 치킨 레불루션이 일어났냐고 물어요.
* 주: 무슨 레볼루션이요?
* 양: 치킨 레볼루션. 닭 사료를 바꾸는 거예요. 그때까지 우리나라에서는 수십 명의 업자들이 드럼통에 온갖 음식물 찌꺼기 등을 넣어서 사료를 만들었어요. 구식이죠. 이제 새 사료를 만들어서 닭에게 주면 닭 성장기간도 짧아지고 크기도 더 커지는 거예요. 그러면 닭고기 값도 싸져서 소비가 늘고 국민 영양상태가 획기적으로 개선되는 겁니다. 이것을 치킨 레불루션이라 하는데, 이게 본래 남미에서 일어났어요. 그의 이론에서는 경제발전 초기 단계에서 '이륙'하자마자 일어나는 일로 보는 건데, 이게 한국에서도 일어났는지 질문한 거예요. 한국에서는 아직 안 일어났다고 대답하니, 그 양반이 상당히 아쉬워하더라고요.
그런데 랄스톤 푸리나(Ralston Purina)라는 미국의 사료회사가 (...) 사료공장에 대한 합작투자를 제의한 일이 있었어요. 이걸 알고 드럼통 닭 사료를 만드는 업자들 수십 명이 내 방에 달려왔습니다.
* 주: 항의하려고요?
* 양: 그때만 해도 정부가 무서워 항의는 못하고 탄원을 하는 거죠. 합작투자 허용해 주면 자기들은 죽는다 이거예요. 그러니 나는 사료공장을 하기는 해야 할 것 같은데 용기가 안 납디다. 결정을 못하고 머뭇거리고 있었어요.
그러던 중 (...) 랄스톤 푸리나 사에서 연락이 왔어요. (자기들 농장이 세인트루이스에 있는데 귀국 길에 들러서 농장 시찰을 해 다오 하는 거예요. (...) 양계에서 사료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겠더라고요. 그 자리에서 사료공장 승인한다고 결심을 했어요.
(...) 대통령계서 미국 출장이 어떠냐고 물어서 이것저것 보고를 했죠. 거기에 더해서 랄스톤 푸리나 농장에 간 일도 말씀드렸어요. 사료공장 합작 투자 승인 건이 있다고 했죠. 그랬더니 대통령께서 "그거 해"라고 하시더라고요.
내가 업무 복귀해서 합작투자 승인을 했어요. 대신, 기존 사료업자들을 대리점으로 구제해 달라고 부탁했지요. 푸리나 측도 그렇게 하겠대요. 승인을 하고 나니 사료업자들이 데모 형태로 바뀌어서 "우린 죽습니다" 하고 항의를 하는 거예요. 그때만 해도 내가 젊었을 때라서 "당신들이 죽어야 우리나라 양계산업이 제대로 된다"고 말했어요. 요즘 같으면 아마 맞아죽었을 거예요.
그래서 랄스톤 푸리나와 심상준 씨가 합작한 한국 랄스톤 푸리나(주)가 생겼고, 그 다음에 다른 미국 회사와 박 모씨가 합작해서 성환인가에 사료공장을 또 지었고, (...) 성사된 회사가 두 개예요.
(...) 여하튼 그 다음부터 닭을 몇 만 마리씩 기르는 대단위 양계산업이 생겨나고 더불어서 병아리 감별사라는 직업이 생긴 겁니다. 가격도 싸져서 닭고기가 대중 육류가 되었죠. 치킨 레볼루션이 바로 닭 모이에서 일어난 거예요.
* 주: '혁명'이라는 말이 붙을 정도니 그 의의가 상당하다고 하겠습니다.
* 양: 그렇습니다. 국민 모두가 닭을 먹을 수 있게 된 것이죠. 영양상으로 중요한 단백질 공급원이 되었지요. 식생활상으로 예전에 닭 한 마리를 백숙으로 끓여서 온 식구가 다 먹었잖아요. 지금은 프라이드 치킨 한 마리를 혼자서 아무 때나 다 먹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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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kiraYuki
21/05/07 07:45
수정 아이콘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전문 읽어보고 싶은 흥미가 생기네요. 책 소개 감사합니다.
21/05/07 08:57
수정 아이콘
역시 치킨입니다
Respublica
21/05/07 10:52
수정 아이콘
고도성장기의 역동적인 면모가 글에서 느껴지니 굉장히 흥미롭네요.
임전즉퇴
21/05/07 13:15
수정 아이콘
일하고 돈 버는 것을 복지라 부름은 논리가 모호하지만 취지는 잘 이해합니다. 산업 차원의 일을 하게 되는 것은 산업사회로 가기 위한 교육기회 같은 것이죠. 식모보다는 공장근로자가 되기로 하신 분들이 그 시대 대한민국의 모습일 것입니다. 고등교육은 선택조차 할 수 없었고 저임금에 각종 위험도 겪어야 했던 희생을 후세대로서 함께 기억해봅니다.
SimpleCollege
21/05/07 21:42
수정 아이콘
요새 페미니즘 얘기가 많은데, 저런 여공들과 같은 사례를 발굴하는 게 woman's empowerment를 위해서는 유익하리라 봅니다. 또, 여기에 미처 적진 않았는데, 월남 정세가 불안한데 노동자 파견에 문제는 없었느냐고 하는 질문에 위험한 거 알아도 가난하니 어쩔 수 없다, 우리가 아니면 다른 나라 노동자가 갔을 거다 라고 대답하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Daniel Plainview
21/05/07 13:37
수정 아이콘
잘 읽었습니다. 흥미롭네요.
Ms.Hudson
21/05/07 22:19
수정 아이콘
외국 자본을 받든 국내 기업이 독과점이 되든, 그래서 저임금 상태가 계속되더라도 대규모 고용창출이 일어날 수 있었던 시대의 자신감 자부심이 느껴지네요.
SimpleCollege
21/05/11 02:52
수정 아이콘
신선한 정보와 시각을 보여주는 책이라고 생각했는데, 낡은 레코드판 돌아가는 듯한 반응이 주로 나오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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