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 자유 주제로 사용할 수 있는 게시판입니다.
- 토론 게시판의 용도를 겸합니다.
Date 2021/05/02 21:45:22
Name The Normal One
Subject [일반] 존버는 승리한다. (수정됨)
재미로 써 본 픽션입니다.
문체가 반말인건 부디 양해 바랍니다.

____

존버는 승리한다.
비트가 5천만원대로 떨어졌다. 나는 코인충이다. 거래소들의 평가액을 대충 훑어보았다.
대충 천만원 정도가 깨진거 같다. 하지만 걱정마라. 평가액은 평가액일 뿐이다.
기계적으로 매수 주문을 걸어놓는다. 하지만 쫄린다. 현재가 보다 조금 더 밑에 걸어놓는다. 난 키워서 먹는 편이다.

몇몇 주문은 체결되고 몇몇 주문은 무시당한다. 반등이다. 나의 포트폴리오 중 일부 코인은 엊그제 매도 했던 가격까지 올라왔다.
그렇다고 그 가격에 팔 순 없다. 난 이미 그 가격에 팔았던 적이 때문이다. 나의 매수 매도 규칙에 따라 최근 매도 가격의 윗 가격에 계단식 매도를 걸어놓는다.
이제 앱을 종료한다. 내가 본다고 오를것도 아니며, 내가 본다고 내려갈것도 아니다. 나는 괜찮다. 나의 평가액은 이미 +500% 이상이다. 존버는 승리한다.

지인의 청첩장 모임에 나왔다. 결혼을 결정한 이유에 대해 질문했다. 한달 뒤 남편이 될 지인은 본인이 생각하는 가정의 형태와 와이프가 될 사람의 배려, 본인의 노력 등을 이야기한다.
사실 마음에 크게 와닿지는 않았다. 그러나 서로를 위한 그들의 노력들이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몇년을 만났냐고 물어보았다. 4년이라 하였다. 존버는 승리한다.

모임에 흡연자들이 대다수라면 조금은 심심하다. 평소라면 따라나가 노가리라도 까겠지만 오늘은 비가온다. 국물이나 떠먹으며 술이나 깨야겠다.
인스타그램을 켰다. 새로운 사진이 떴다는 작은 알림이 보인다. 익숙한 얼굴과 낯설은 얼굴이 섞여있다. 그녀에게 새로운 남자가 생겼다.

잠시 뇌에 퍼즈가 걸린듯한 느낌이 들었다. 격렬한 우울감이 찾아온다. 그래도 다행이다. 지금 4인 테이블엔 나 혼자 뿐이다.

나는 그녀를 존버하고 있다. 어쩌면 그녀는 나의 포트폴리오 중 유일한 파란색일지도 모르겠다.
그녀를 정리하지 못하는건, 절대로 손절은 하지 않는다는 나의 투자 성향 때문일까, 아니면 그녀라는 종목에 대한 믿음일까.
마음이 매우 흔들린다. 집에  도착해도 여전하다. 맥주를 연거푸 마셨지만 기분이 몽롱해지는 것과 동시에 마음에 벽돌이 쌓이는 듯한 느낌이 든다.
머리속에 말들이 가득하다. 카톡 메세지 창에서 쉬프트 엔터를 치려다 실수로 엔터만 치게 되면 전송이 되어버린다. 역시 할 말은 별도의 메모장에서 정리하는게 안전하다.

감정에 휩쓸린 나의 편지는 꽤나 절절하다. 그런데 아마 내가 읽기에만 절절할 것이다.
이미 우리는 헤어졌고, 꽤나 많은 시간이 흘렀고, 그녀에겐 새로운 남자가 생겼다. 난 왜 그 누구에게도 의미없는 나의 마음을 배설하고 있는가.

문득 투자에 대한 생각이 들었다. 어떤 종목이든 내가 산 가격보다 내려갔을 때 판다는 것은, 단순히 손절에 이은 또다른 매수에 대한 도전일 수도 있겠지만 나의 일시적인 잘못된 투자를 인정하는 의미 또한 가지고 있다.  
우리는 헤어지고 나서도 마치 친구처럼 만나왔다. 그러나 적어도 나는 그녀를 친구라고 생각한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 나는 반등을 기다리는 매수자였다.
판단은 서질 않고 미래는 보이지 않는다. 그녀라는 종목은 다른 종목으로 갈아 탈 수도 없고 물을 탈 수도 없다.
다만 그녀에게 새로운 남자가 생긴 지금이 나에겐 지하실처럼 느껴진다. 물론 지하실 밑 멘틀이 있을 수도 있다.  
이제 나는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존버할것인가. 손절할것인가.
작별을 고하는 것은 쉽다. 그러나 운명을 느낄 여자를 만나는 것은 어렵다.

존버는 승리한다. 그런데 승리는 어디서부터이며, 얼마나 버텨야 존버라고 할 수 있는 것인가.
나의 존버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하지만 걱정마라.
화승 갈끄니까아.

---
감사합니다.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퀀텀리프
21/05/03 01:29
수정 아이콘
무플 방지 위원회입니다.
The Normal One
21/05/03 05:02
수정 아이콘
흐흐 감사합니다
다리기
21/05/03 01:50
수정 아이콘
보통 승리할 때까지 버티기 때문에 존버는 승률이 높은 편이지만 승리할 수 없는 종목에서 존버는 파멸 뿐입니다.
종목을 잘 골라야겠죠. 존버를 하기 전에 더 고민해서 잘 선택하시길..
The Normal One
21/05/03 05:03
수정 아이콘
존버의 승리 공식에 대한 견해가 저랑 일치하시네요.
사실 인간관계에서 승리 패배가 애초에 존재하나 싶긴 합니다. 뭐.. 픽션이니 어떤 시각에선 이런 대화도 의미가 없을 순 있겠네요.
여수낮바다
21/05/03 02:08
수정 아이콘
주식은 여러 주가 있고 코인은 퍼센트로 쪼개서도 사고 팔수 있는데,
“그 여자”라는 존재는 그 규칙이 전혀 적용되지 않네요

하지만 존버건 아니건 좋은 결말이 되시길 빕니다
The Normal One
21/05/03 05:04
수정 아이콘
"다른 여자"로 분산할 수는 있습니다...? 크크
좋은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삭제됨
21/05/03 03:12
수정 아이콘
그 분 결혼하시면 상장폐지 아닌가요;
The Normal One
21/05/03 05:10
수정 아이콘
말씀하신 부분도 꽤나 흥미롭게 이야기 해볼 만 하다고 생각합니다.
결혼한 상황을 투자 쪽으로 돌려 생각해보았을 때, 삭제됨님처럼 상폐로 볼 수도 있겠지만 누군가는 저점으로 볼 수도 있을테니까요.
근데 가끔 상폐도 맞고 뭐 그런거 아니겠습니까(?)
21/05/03 08:42
수정 아이콘
존버는 곧 승리한다면서 몰래 판 동생 생각나네요 1주일만 참았어도 5억이었다고 아이디까지 저걸로 바꾸더니 같은 실수를 또 반복하는거 보고
그 기회가 여러번 와도 계속 반복될듯
The Normal One
21/05/03 09:09
수정 아이콘
저도 매도하는게 가장 어렵더라구요. 허허..
21/05/03 09:00
수정 아이콘
18년 경험 해보셨는지...
The Normal One
21/05/03 09:10
수정 아이콘
아앗.. 픽션입니다 픽션..
물론 경험도 해봤습니다.
21/05/03 09:35
수정 아이콘
그렇다면 킹정입니다 크
나이로비
21/05/03 10:19
수정 아이콘
리플 소유자 : 음..
The Normal One
21/05/03 12:14
수정 아이콘
화성 갈끄니까아.... ㅜㅜ
이쥴레이
21/05/03 10:36
수정 아이콘
연애쪽은 제가 젊었을때랑 비슷한 생각이라 그때가 생각나네요.
존버는 승리 합니다. 저는 13년 존버해서 결혼했습니다.

상한가 쳐서 매수인지, 매도인지... 그날이 언제가는 오겠죠.
The Normal One
21/05/03 12:15
수정 아이콘
존버로 수익을 냈을 때 주위에서 수익을 낼 자격이 있다는 말들을 하는데 딱 어울리시는거 같습니다.
대박났네
21/05/03 13:26
수정 아이콘
얼마전에 도지코인 떨어졌을때 생전 처음 코인에 돈을 넣어봤는데 일주일새 두배가 됐더군요
시드머니가 형편없어서 저한텐 큰 의미가 없지만 진짜 돈이 복사된다는걸 경험했습니다
21/05/03 14:33
수정 아이콘
존버는 승리합니다
21/05/03 14:57
수정 아이콘
화승 갈끄니까 ~~~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101266 [일반] 원인 불명의 고양이 신경·근육병증 다수 발생...동물보호자 관심 및 주의 필요 [62] Pikachu12016 24/04/12 12016 3
101265 [일반] [강스포] 눈물을 마시는 새 고이(考異) - 암각문을 고친 여행자는 누구인가 (2) [11] meson3526 24/04/11 3526 4
101264 [일반] [강스포] 눈물을 마시는 새 고이(考異) - 암각문을 고친 여행자는 누구인가 (1) [4] meson5560 24/04/11 5560 3
101263 [일반] 이제는 한반도 통일을 아예 포기해버린듯한 북한 [108] 보리야밥먹자15884 24/04/11 15884 4
101262 [일반] 창작과 시샘.(잡담) [4] aDayInTheLife3836 24/04/10 3836 1
101261 [일반] 읽을 신문과 기사를 정하는 기준 [10] 오후2시4070 24/04/10 4070 8
101260 [일반] 자동차 전용도로에 승객 내려준 택시기사 징역형 [46] VictoryFood7940 24/04/10 7940 5
101258 [일반] 시흥의 열두 딸들 - 아낌없이 주는 시흥의 역사 (7) [5] 계층방정3226 24/04/10 3226 7
101256 [일반] [약스포] 기생수: 더 그레이 감상평 [21] Reignwolf3245 24/04/10 3245 2
101255 [일반] 저희 취미는 연기(더빙)입니다. [7] Neuromancer3033 24/04/10 3033 11
101254 [일반] 알리익스프레스발 CPU 대란. 여러분은 무사하십니까 [58] SAS Tony Parker 9617 24/04/10 9617 3
101253 [일반] [뻘소리] 언어에 대한 느낌? [40] 사람되고싶다4387 24/04/09 4387 13
101252 [일반] 삼성 갤럭시 One UI 음성인식 ( Speech to text ) 을 이용한 글쓰기 [44] 겨울삼각형5376 24/04/09 5376 5
101250 [일반] 일식이 진행중입니다.(종료) [11] Dowhatyoucan't7012 24/04/09 7012 0
101249 [일반] 동방프로젝트 오케스트라 콘서트가 한국에서 열립니다 [20] Regentag5126 24/04/08 5126 0
101248 [일반] 뉴욕타임스 2.25. 일자 기사 번역(화성탐사 모의 실험) [4] 오후2시3958 24/04/08 3958 5
101247 [일반] 루머: 갤럭시 Z 폴드 FE, 갤럭시 Z 플립 FE 스냅드래곤 7s Gen 2 탑재 [42] SAS Tony Parker 8817 24/04/08 8817 1
101246 [일반] 인류의 미래를 여는 PGR러! [30] 隱患7646 24/04/07 7646 3
101244 [일반] [강스포] 눈물을 마시는 새 고이(考異) - 나늬의 의미 [4] meson5254 24/04/07 5254 1
101243 [일반] 2000년대 이전의 도서관에 관한 이야기 [54] Story7303 24/04/07 7303 16
101241 [일반] [스포]기생수 더 그레이 간단 후기 [31] Thirsha10154 24/04/06 10154 2
101240 [일반] 웹소설 추천 - 배드 본 블러드 (1부 완결) [10] 냉면냉면5417 24/04/06 5417 4
101239 [일반] 로컬 룰이란게 무섭구나... [116] 공기청정기11720 24/04/06 11720 3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1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