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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21/04/02 01:07:09
Name aDayInTheLife
Link #1 https://blog.naver.com/supremee13/222295618003
Subject <자산어보> 후기 - 두 세계가 충돌하는 방식

<자산어보>는 두 세상이 어떻게 충돌하는지에 대한 영화입니다. 유배를 온 정약전은 창대를 만나게 되고 두 사람은 일종의 거래로써 서로의 지식을 나누기로 결정합니다. 아무래도 가장 눈에 띄는 것은 흑백 화면이겠죠. 이준익 감독의 전작이었던 <동주>처럼 흑백으로 찍은 영화이긴 한데, 아무래도 방향성은 좀 다르게 느껴집니다. 전작의 흑백이 어두운 세계와 등불의 이미지가 강했다면 <자산어보>의 흑백은 자연풍광에 더해서 약간의 수묵화 같은 느낌이라고 해야할까요.


영화의 주된 이야기는 두 캐릭터가 만나고 서로의 가치관으로 인해 길이 갈라지는 이야기입니다. 시작부터 정씨 3형제의 길이 각기 갈리게 되고, 정약전이 정약용과 다른 길을 걷게 되고 결국 창대와 정약전의 길도 달라지게 되는 것이 이야기의 큰 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쩌면 이야기의 시작에서부터 넌지시 암시를 던져준 것일 수도 있겠네요.


이야기의 변주라고 한다면 보통 양반 쪽이 외면적인 것, 혹은 기성의 질서를 중시하는 쪽으로, 반대로 백성 측이 개혁가적 이미지를 가져가는 경우가 많은데 여기서는 그 반대로 양반 쪽인 정약전이 새로운 질서를, 반대로 창대가 기존 질서에 편입되기를 원하는 캐릭터로 그려집니다.


영화에서 정약전의 사상은 꽤 급진적입니다. 어떤 측면에서는 영화적 허구가 과한건 아닐까 걱정될 정도로요. 어떤 측면에서는 지나치게 현대적으로 묘사된 건 아닐까 싶은 걱정도 살짝은 들 정도로 급진적으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이 부분이 조금 아쉬웠어요. 두 철학이 맞붙어 충돌하고 두 세계가 뒤집히는 이야기에서 관객은 한쪽 편으로 강제로 쏠리게 되는 느낌이 들거든요. 또한 그러다보니 이상주의적인 창대의 이야기가 이미 중반부를 넘어가면서부터 힘을 좀 많이 잃게 됩니다.


둘째로 아쉬운 점은, 영화 상에서 가질 수 있는 철학적인 탐구가 충분히 이뤄지고 있느냐에 있을 것 같아요. 스펙타클한 재미나 화려함보다 단단한 이야기를 가지고 있는 영화라고 할 수 있는데, 두 세계관이 충돌하는 장면에서 어떤 장면들은 술에 물탄듯, 물에 술탄듯, 약간은 밍밍한 분위기를 유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과연 이 영화가 제시하고 있는 물음에 비해서 그 물음을 충분히 탐구하고 있느냐에 대해 의문이 들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나쁘지 않았습니다. 무난했다는 평가가 더 적합했을 수도 있겠지만요. 굳이 몇몇 개그 장면을 넣었어야 했을까 싶은 의문도 들긴 하고, 약간은 관습적인 마무리 방식이 조금은 아쉬움이 남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난하고, 오히려 꽤 좋았다는 이야기를 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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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상황입니다
21/04/02 01:38
수정 아이콘
(수정됨) 저는 아직 보지 않았지만 리뷰 써주신 걸 읽어보니 시구루이 작가가 했던 말이 떠오르네요.
"봉건사회의 완성형은, 소수의 사디스트와 다수의 마조히스트로 구성된 것이다"

저는 현대적으로 인물을 짜맞추든 어쨌든 그런 왜곡을 나쁘게 보지 않습니다.
그래도 정극을 추구할 것 같으면 당대의 규범과 그 윤리관에서 비롯되는 딜레마를 표현하는 게 더 미학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근데 정약전이 실제로 얼마나 급진적이었는지 잘 모르겠네요.
aDayInTheLife
21/04/02 01:46
수정 아이콘
뭐 제가 실제로 정약전의 사상을 자세히 모르기 때문에 그런 감상을 남겼을 수도 있다는 점을 이해해 주셨으면 합니다. 다만 말씀하신 딜레마가 아주 나쁘거나 별로로 묘사되진 않은것 같긴 해요.
21/04/02 01:49
수정 아이콘
오늘 보고왔는데 나쁘진 않았지만 한 영화에 너무 많은 것들을 담으려고 하지 않았나라는 생각이 들어 조금 아쉽긴 했습니다.
aDayInTheLife
21/04/02 02:00
수정 아이콘
비워낸 부분에 비해 그리려던게 너무 크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영화는 미니멀리즘인데 너무 장대해진 주제의식을 좀 느껴서... 저도 그 부분은 아쉬웠네요.
어긋남이없으리라
21/04/02 13:17
수정 아이콘
정약용은 유배를 간 상황에서도 자기 자식들에게만큼은 한양을 벗어나지 말라고 했는데 영화 속에서는 반대로 묘사해서 정말 별로였습니다.
aDayInTheLife
21/04/02 13:59
수정 아이콘
아 영화와는 반대였군요. 몰랐네요.
닉네임을바꾸다
21/04/02 17:12
수정 아이콘
과연 괜히 관습헌법으로 수도가 서울인게 아니군요?
21/04/03 00:22
수정 아이콘
오늘 보고 왔습니다. 한 번 보고 마는 영화와 나중에 언제라도 다시 보고 싶어질 영화 중 고르라면 후자라고 생각합니다.
제 멋대로 해석일 수도 있지만, 요즘 시기와 맞물려서 생각할 거리도 던져주고... 영상미도 좋았네요.
다만 뭐랄까, 날 것의 느낌보다는 계산되고 잘 조합된 작품이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보면서 감정이입이 확 되게 만들지도 않았고, 적절하게 제3자 입장에서 지켜보는 느낌으로 볼 수 있었습니다(의도한 바라고 생각합니다).
바다가 참 자주 나오는데, 거친 파도같은 영화가 아니라, 잔잔한 호수같은 영화였네요.
aDayInTheLife
21/04/03 07:01
수정 아이콘
어느 순간부터 이준익 감독 영화는 관찰에 중점을 두는거 같아요. 과하지 않게 거리두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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