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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21/01/05 19:03:15
Name aurelius
Subject [역사] 일본 외교관 하야시 다다스, 영일동맹의 주역
300px-Tadasu_Hayashi_c1902.jpg
하야시 다다스(1850~1913) 

일본 외교관으로, 1900년부터 영일동맹을 추진하고 1902년 체결까지 성사시킨 주역입니다. 그 공로로 그는 백작이 되었으며, 일본외교의 영웅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한국과는 악연이 있는 인물로, 을사조약 후 1907년 정미7늑약을 강요한 당사자입니다. 하지만 이 사실조차 잘 알려져 있지 않죠. 아무튼 간에 이 인물을 소개하는 이유는 그가 특이한 이력의 소유자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본래 메이지 유신을 주도한 사츠마나 쵸슈 출신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막부 측 인사였었죠. 그는 어려서 개항도시 중 하나였던 요코하마로 이주하였고, 미국인이 설립한 기독교 어학원에서 영어를 배웠습니다. 존왕양이파들에 의한 서양인 암살이 횡행하던 시절, 서양인의 학교에 들어가 그들의 언어를 배우는 것은 상당한 용기가 필요한 일인데, 그의 부모가 상당히 개방적이고 멀리 보는 사람들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1866년, 그가 16세 되던 해 그의 인생을 바꿀 기회가 찾아옵니다.  

도쿠가와 막부의 유럽 국비유학생 프로그램에 선발된 것입니다. 총 인원수는 14명. 
그들은 영국에서 수학하였고, 하야시 다다스의 경우 영국 런던 킹스 칼리지에서 2년간 수학하였습니다. 
사실 도쿠가와 막부는 이전에도 유학생을 파견한 적 있습니다. 

막부는 2년 전,1864년에도 유럽에 유학생을 파견하였고 그 중에는 에노모토 다케아키도 있었습니다.  

하야시 다다스가 귀국했을 때 일본의 정국은 혼란 그 자체였습니다. 
혁명이 발생했기 때문이죠. 정확히 말하면 내란이었습니다.  

메이지 유신을 주도한 삿쵸동맹과 막부 사이에 전쟁이 일어났고, 결국 막부는 패배하고 항복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쟁을 계속 이어가려고 했던 친막부파 세력이 있었고, 홋카이도로 후퇴한 에노모토 다케아키도 그 중 하나였습니다.
에노모토는 소위 에조 공화국이라 불린 정부를 수립하여 일본 역사상 최초이자 마지막(?) 공화국을 만들었습니다. 

(에조 공화국에 대해서는 나무위키 참조: https://namu.wiki/w/%EC%97%90%EC%A1%B0%20%EA%B3%B5%ED%99%94%EA%B5%AD)

그리고 귀국한 하야시는 영국 유학의 인연 때문인지 신정부에 합류하지 않고 오히려 에노모토를 따라 하코다테에서 메이지 정부를 상대로 싸웠습니다. 하지만 에조 공화국은 결국 패배하였고, 에노모토와 그는 반란군으로 간주되어 체포 되었습니다.

그러나 유럽 유학 경험이 있는 인물은 몹시 귀한 인재였기에 하야시는 1년만에 곧 석방되었고, 에노모토는 4년만에 석방되었습니다.
그리고 메이지 정부는 막부 충성파 출신인 이들을 다시 등용하여 활용했는데, 하야시의 경우 훗날 청일전쟁을 주도하게 될 무쓰 무네미쓰와의 친분으로 외무성에 입성하였고, 이와쿠라 사절단에 합류하여 1872년 다시 유럽길에 오르게 됩니다. 

한편 이와쿠라 사절단과 함께 여행하던 중 당시 정부의 실세들의 총애를 받고 있었던 이토 히로부미와 친해지게 되었고, 이는 그의 관직생활에 중요한 전환점이 됩니다. 이토 히로부미는 귀국 후 공부경(오늘날로 치면 교육부 장관)이 되었고, 하야시는 같은 기관 소속으로 공부대학교 설립을 책임졌습니다.  

하야시의 영어 실력은 상당했던 모양입니다. 
그는 서양저서를 직접 여럿 번역하였는데 그 목록은 아래와 같습니다. 

존 스튜어드 밀, "정치경제론"
피터 테이트, "자연철학론"
제레미 벤담, "형법총론"
마키아벨리, "로마사논고"

또 1881년에는 스스로 경험하고 읽은 바를 엮어 "유럽정치사"라는 제목의 책을 저술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1882년 궁내성 장관 자격으로 다루히토 친왕과 함께 러시아 황제 알렉산드르 3세 대관식에도 참석하여 황족의 안내를 맡기도 했습니다. 이를 보면 외국의 일과 관련된 것이라면 정부가 줄곧 그를 신뢰한 것처럼 보입니다. 한때 적이었던 인물을, 출신과 무관하게 능력으로 바로 기용하고 계속 승진시킨 정부의 태도 또한 인상적인 부분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하야시 다다스는 계속 출세가도를 달립니다. 1891년에는 외무차관이 되었고, 청일전쟁 직후 주청일본대사로 부임했습니다. 그리고 청일전쟁 전후처리와 삼국간섭에 대한 대응을 맡았는데, 일본인들이 외교천재라고 숭배하는 무쓰 무네미쓰와 함께 외교의 최전선에서 열강들과 협상하게 됩니다. 무쓰와는 옛날부터 오랜 인연이 있어 이 두 인물은 서로 같이 일하는데 대단히 편안한 관계였을 것으로 짐작됩니다. 여담이지만 참고로 오늘날에도 일본 외교부 건물에는 무쓰 무네미쓰의 동상이 있다고 합니다.  

청일전쟁 직후 그는 친하게 지내던 (하야시 다다스의 장녀가 후쿠자와 유키치 차남과 결혼했습니다) 후쿠자와 유키치가 발행하던 시사신보에 칼럼을 썼는데, 일본인들로 하여금 국제정치의 냉혹한 현실을 자각하고, 경거망동하지 말라고 훈계하는 글이었습니다. 당시 러시아/프랑스/독일의 삼국간섭으로 인해 일본은 획득한 영토를 다시 토해내야했고, 이에 분개한 민중은 폭동을 일으킬 기세였기 때문에 이를 진정시킬 필요가 있었던 것이죠. 

그런데 그 칼럼의 재미있는 부분은 일본은 고립된 상태로 생존할 수 없고 동맹국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는 점입니다 그러면서 후보로 러시아, 프랑스, 그리고 영국을 지목했는데, 일본과 이해관계를 공유할 수 있는 나라는 영국이라고 말했습니다. 영국은 "기존의 권익을 유지하고 타국의 침략을 억제하려고 하는 국가"이기 때문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요즘 국제정치학계 표현으로는 "현상유지(Status Quo)" 세력이라는 뜻이죠. 반대로 러시아는 현상타파 국가이며, 프랑스는 멀고 극동지역에 상대적으로 무관심한 나라라고 지적했습니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현상유지란 중국에서의 현상유지를 의미하며, 조선은 다른 문제였습니다. 

1900년, 하야시 다다스는 주영국일본공사로 파견되었습니다. 

그곳에서 그는 영국의 랜스타운 경과 조선과 중국 그리고 만주 문제를 논의하면서, 러시아라는 공동의 위협에 대처해야 하는 것에 인식을 같이 했습니다. 큰 틀 안에서 인식을 공유하여도, 실제 동맹을 체결하는 일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동맹의 조건은 어떠해야 하며, 상호 어떤 의무를 져야하는지, 상대방 국내여론을 어떻게 설득할 것인지, 그리고 동맹이 체결됨으로써 서로 얻게 되는 이익은 무엇인지 규정하는 게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랜스타운 경은 "조선에서의 일본의 특수한 이익과 중국에서 영국의 특수한 이익은 등가교환이 아니다"라고 지적했습니다. 조선이 일본에게 사활적 이익인데 반해, 중국 내 영국의 권익은 사활적 이익이 아니라고 말한 것이죠. 랜스타운경은 사실 인도에서의 영국의 특수한 권익을 일본이 보장하는 형식을 원했습니다. 

한편 이토 히로부미는 하야시 다다스가 영국에서 동맹을 위한 협상을 벌이고 있는 것을 뻔히 알고 있으면서도 러시아에서 별도의 협상을 추진했습니다. 심지어 그는 러시아에 가기 직전 영국을 경유하면서 하야시 다다스에게 동맹교섭을 위험에 빠뜨리거나 혹은 일본이 영국을 상대로 이중플레이를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 않게 각별히 주의하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이는 하야시 다다스를 안심시키기 위해 한 말일 뿐, 실제로 그는 러시아와 최고위급 교섭을 벌이고 있었고, 조선에서의 일본의 권익을 보장받기 위해 러시아와 일종의 합의를 이룩하고자 했습니다. 하야시는 이를 알게 된 후 대단히 격노했다고 전해집니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오히려 이토가 러시아에서 협상을 추진했기 때문에 영일동맹이 성사된 것일 수도 있습니다. 러시아와 일본이 합의에 이르기 전에 일본을 확실히 영국편으로 묶어둘 필요가 있다는 계산이 섰을 수도 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1902년 1월 30일 영일동맹이 체결되었습니다. 

그리고 1904년 러일전쟁에서 일본은 영국과 미국의 간접적 지원으로 승리하였고, 일본은 이로써 강대국의 반열에 오를 수 있었습니다.
한편 이 전쟁의 승리로 말미암아 주영일본공사관은 주영일본대사관으로 승격하였고, 하야시 다다스는 최초로 특명전권대사직에 올랐습니다.


그리고 하야시 다다스는 다음과 같은 말을 남긴 적이 있습니다. 

"러일전쟁이 그렇게도 다행스럽게 끝났고, 제2차 영일동맹조약이 체결된 지금 (1905년)에 와서, 일본의 어느 누구도 이 영일동맹이 잘못된 것이라고 꿈도 꾸지 못할 것이다. 영일동맹은 일본의 확고한 정책이며 일본 외교 정책의 기초이다. 이 동맹은 그것을 요구하는 양국의 공통된 이익, 즉 양국의 전통적 관계에 의해 지탱된 요구 때문에 체결되었다. 따라서 이 동맹은 가장 견고한 기초 위에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우리는 이 양국을 연결하는 유대 관계를 떼어놓으려는 시도하는 모든 노력과 악의에 찬 모든 술수를 모름지기 좌절시켜야 한다."

그리고 불과 몇십년 후 양국은 전쟁을 하는 관계에 돌입하게 되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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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더보이
21/03/31 15:22
수정 아이콘
잘 읽었습니다.
재미는 있어 보이는데 문과 출신이 아니라 어려운 면도 있네요.
혹시 일본근대사 관련 교양서로 추천해주실 만한 책이 있나요?
aurelius
21/03/31 18:27
수정 아이콘
먼저 김시덕 선생의 [일본인이야기] 시리즈를 추천해드립니다. 입문용으로는 아주 훌륭한 거 같아요. 그리고 근대사 영역으로 한정하자면 성희엽 선생의 [조용한 혁명: 메이지 유신과 일본의 건국]을 추천합니다. 아울러 청일전쟁이나 러일전쟁을 등을 다룬 책은 대부분 추천해드립니다.
에이치블루
21/03/31 21:46
수정 아이콘
아우렐리우스님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저는 에노모토에 대해서는 서현섭 영사의 [일본은 있다] 에서 처음 알게 되었어요.
제목이 거시기한 것 같지만 매우 차분하고 재밌고 유익한 책입니다.
원더보이
21/04/01 10:10
수정 아이콘
추천 감사합니다. ㅎㅎ
시나브로
21/03/31 15:28
수정 아이콘
1월 5일 저녁밤으로부터 온 글이란 말입니까.

'국제정치의 냉혹한 현실을 자각하고, 경거망동하지 말라고 훈계' 등 글 하나에서 많이 배워 갑니다 항상 감사합니다.
aurelius
21/03/31 18:28
수정 아이콘
감사합니다 :)
나가노 메이
21/03/31 17:17
수정 아이콘
써주신것만 보면...전향이라는 점에서는 하야시 쪽이 훨씬 더 극적인거 같은데...
아베 코보는 왜 하야시가 아니라 에노모토를 제재로 소설을 썼는지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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