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학교, 교사를 생각하니 그네들도 했던 시위가 떠올라서요. 저는 시위의 개념과 그네들의 입장에 무지합니다. 그러나 뉴스에서 접하거나 또는 아주 가끔 시위하는 개개인 또는 단체들을 만나기도 하고,
또는, 20대 초에 집회 참석할 기회가 있어 참석해 보았었습니다. 혹시라도 저도 보태고 싶었거든요.
그러나 제가 느낀 건 실망스러웠습니다. 집회라고 하는 거 없었거든요. 수 많은 인파 속 뒤쪽에 머물렀기에 앞에서 무슨 연설을 하는지... 들리기는 하여도 아마 소곤소곤 또는 웅성웅성 하지 않았었나 싶네요. 집중을 할 수 없는 상황이었고, 아스팔트 위에 저도 앉기 위해 그냥 앉기는 싫었고, 깔 수 있는 걸 깔고 앉았지만 불편한 자세가 힘들었네요. 양반다리를 잘 못하고 다리에 쥐나기 일쑤인 신체이기에 다리를 쭉 피고 싶었으나 여건도 되지도 않고. 기억은 나지 않지만 느낌이 단지 머릿수 채우기 였던 것 같은 느낌.
그리고 가수들을 볼 수 있었다는 거..제 주관적인 생각으로는 놀러갔나? 싶었죠.
또 가수들은 그 시위현장이지만 자기의 노래를 알릴 기회로 활용하는 것 같은 느낌..
도시락도 제공되는 거로 배도 채우고, 당시 기억에 밥을 수급받는 것도 선배들이 챙겨줬지만, 뭔가 복잡했던 기억..;
사람이 얼만데 그 수 많은 도시락을...그건 다 어디서, 어떻게 조달하는지..
그 이후로 기회와 여건에 따라 뉴스로만 시청하였습니다. 또는 아주 가끔 우연히 목격하기도 하고, 최근에도 무슨 시위인지는 모르겠으나 보도에서 몇 몇의 사람들이 피켓들고 시위를 하시더군요. 저는 당황스런 상황에 그저 조용히 도로가로 피해서 길을 걸었네요.
제가 뉴스나 직간접적으로 시위들을 바라보면서 생각한 것은,
자기가 속한 영역의 입지, 입장을 주장하고 권리를 내세우는 현대사회'라고 생각해 봅니다.
제가 알고 있는 종류라고 해야 하는지는 모르겠으나, 들어본 것들을 나열해 보면
집회, 시위 또는 데모, 노조, 정치인들의 농성, 1인시위, 성소수자 및 각 단체를 간접적으로 많이 접한 것 같습니다.
[개념]
- 시위(示威), 또는 데모는 사람들이 공동의 목적을 가지고 공공연하게
위력 또는 기세를 보여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주는 행위이다. 시위 운동이라고도 한다.
- 시위는 대중에게 호소하기 위해 유동 인구가 많은 곳에서 진행되는 경우가 많다.
- "시위"란 여러 사람이 공동의 목적을 가지고 도로, 광장, 공원 등 일반인이 자유로이 통행할 수 있는 장소를 행진하거나 위력(威力) 또는 기세(氣勢)를 보여, 불특정한 여러 사람의 의견에 영향을 주거나 제압(制壓)을 가하는 행위를 말한다.
토크빌이나 퍼트남 등이 민주주의 원동력으로 인정하는 시민연대활동은 기본적으로 구성원들간의
자발적인 1대 1 직접대면 관례를 바탕으로 조직되고 운영되며 따라서 민주적이면서 대체로 지역화된 것들이다.
반면에 전국적 시민운동단체들은 주로 특정 사회운동가들에 의해서 조직되고 주도된다. 이런 점에서
엄밀히 말하면 최근 급부상하고 있는 전국적 시민운동단체들은
참된 풀뿌리(grass roots)를 바탕으로 한 시민운동단체라고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전국적 시민 운동 단체들의 회원들은 대부분 회비나 내고 잘 해야 일년에
한두 번 총회에 출석하여 도장을 찍는 정도의 형식적 참여만 할 뿐이다. 많은 경우 각 회원들은
단체의 지도부와 연결되어 있을 뿐 회원들 사이의 직접적 교류는 거의 없다. 회원들 중에는
어떤 상징이나 대의명분을 보고 가입하는 회원들도 많다. 예컨대, 여성해방이라는 대의명분이
많은 여성들을 시민단체로 끌어들인다. 어떤 회원들은 단순히 대의명분을 표방하는 단체에 소속되어
있다는 것만으로 자랑스러워하고 만족해한다.
이와 같이 대부분의 전국적 시민운동단체들이 정치적 대의명분이나 상징을 중심으로
조직되어 있다보니 자연 회원들 사이의 관계가 지극히 느슨할 수밖에 없으며,
수직적 관계만 있고 수평적 관께는 별로 없다. 수직적 관계에 있어서도 밑바닥 회원과 지도부 사이의의 거리는 멀다.
일상의 중요한 의사결정은 사실상 단체를 직접 책임지고
꾸려나가는 소수에게 집중되어 있다. 시민운동단체들 역시 짧은 시간에 많은 결정을 내려야 하는 일종의 조직이기 때문에
조직운영의 효율을 소홀히 할 수 없고 그러다 보면 특히 전국적 시민단체들은 어느 정도의 비민주성과 관료화를 피하기 어렵다.
우리나라 시민운동단체들도 이런 식의 비판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는 자성론이 제기되고 있다.
어떤 학자는 이런 시민단체들을 "약한 하부구조에 근거한 시민단쳬"라고 표현하여, 토크빌이나 퍼트남이 강조하는 시민단체,
즉 구성원들간의 자발적인 1대 1 직접대면 관계를 바탕으로 조직되고 운영되는
민주적 시민단체를 "강한 하부구조에 근거한 시민단체"와 구별하였다. 물론, 비록 약한 하부구조에 근거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전국적 시민운동단체들은 소외계층의 이익을
대변하고 엘리트집단에게 압력을 가한다는 점에서 효과적 시민저항의 수단이 되어 주며, 또한 구성원들의 관심사나 활동계획에 관련된 사회적 이슈를 제게하고 토론을 유도함으로써 공공영역을 형성하는 데에 기여한다.
[Ⅱ. 시위의 시대적 배경]
시위 문화는 하나의 역사적인 산통이며, 이에 대해 심층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당시의 시대적인 상황들에 대한 고찰이 선행되어야 한다.
1980년에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지속적으로 진행된 시위 문화의 흐름은 한국 사회의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인 여러 상화들과 맞물려 있다.
그것은 여러 조건들에 의해 발생되는 종속 변수인 동시에, 제반 조건들에 영향을 미침으로써 변화를 유발하는 적극적인 독립 변수로 가능하기도 한다. -[시위의 시대적 배경, 시위의 변화, 시위의 양상과 사회적 지지, 시위와 조선시대 학생시위, 시위와 온라인시위, 시위와 사이버시위, 시위와 중국 배외시위 분석] -출처 | https://www.reportworld.co.kr/social/s1205296
: 단지 [NEWS | 폐교 막게 초등교사가 중학생 가르쳐야] 하나의 기사를 보고, 최근에 PGR에서 입장도 다르고, 논란이 있었던 것 같아 관심을 더 가지게 되었습니다.
제가 교사라 기억나는 사회적 이슈는 교대생들의 시위였나.. 이때 아마도 전, 사회 전반적으로 어디에서든 변화를 겪고 있는 시대이고, 앞으로 '변화' 할텐데, 거시적인 시야를 갖지 못한 채 당장의 실정에 대해 '불합리를 주장하는 불합리함'이라고 생각해 본 것 같습니다. 이 정도로만 생각을 했을 뿐 더 생각하지 않았었는데요.
그리고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자기가 속한 영역의 입지, 입장을 주장하고 권리를 내세우는 현대사회'이 것만 생각하게 되네요.
그래서 뭐든 자기 입장을 내세우지만, 상대적으로도 생각해 볼 수 있기 때문에, 모두에게 이롭길 바라는 마음도 가지고 있습니다.
지금 NEWS | 신문기사를 보며 생각을 떠올리게 되는데요.
* 역시 기회와 연건이 된다면, 교사는 아니지만 각 자신의 지혜와 지식을 나눔하고픈 사람은 많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런 생각은 현재 교사를 되기 위한 여러 프로세스를 거치며, 그때마다 나름의 고민을 했을 교사를 희망하거나 성취하신 분들은 * 생각을 해보신 적 있는지 혹은 있을까 궁금해지네요.
제가 생각하는 교사 역시 '케바케의 범주'에 속한다고 생각하기에 비롯된 저의 * 생각이에요.
역시 저는 잘 모르겠지만, 아마도 예전에는 단지 안정적이고, 전망 좋은 직업군으로 교사가 되는 걸 선택 했을지도 모르고,
그러나 지금도 여전히 전망성이 있는지 의문이 듭니다. 또 PGR에서 그네들도 나름의 고충을 겪고 있다는 걸 접하다 보니, 더욱 긍금증을 지니게 되네요.
그러나 이런 불확실성과 고충에도 불구하고 교사를 희망하여 지원하는 사람은 얼마나 있을지도 궁금하네요.
제가 생각하기에는 자질과 재능보다는 전망성과 보다 나은 우월의식을 가질 수 있는 직업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지만,
앞으로는 모든 직업군에서 안정성과 전망성을 찾기 힘들어지겠지만,
그럼에도 그네들이 하고자 하는 직업에 지원한다면 이야말로 안정성과 전망성, 곧 자본에 움직이지 않는 직업군의 사람 또는 보다 나은 인물을 만날 수 있을 기회가 일반인들에게는 많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이 상황을 만나기 까지 얼마의 시간이 경과되어야 (현실 가능성이 있는지는 모르겠으나)현실로 이뤄질지는 불투명한 것이고,
그럼에도 오늘날 현실 적으로도 안정성과 전망성에 관계없이 보다 나은 우월의식을 갖출 수 있는 직업군을 선택합니다.
또는 학교에 보내지 않고, 홈스쿨링이 하나 둘 나타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생계유지를 위해 소득활동으로 아이들을 보살필 여건이 안되기에 또는 보다 나은 시스템을 이미 갖추고 있는 학교에 보내는 데에 편리함을 가져다 줄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학교'만이 답이 아닌 것 같다고 말하는 바입니다.
그건 앞에서도 말한 바 있듯이 교사가 아니어도, 교사는 못 됐지만 휼륭한 인품과 지성 그리고 지혜를 가지고 있는 분들은 사회 곳곳에 존재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21세기에 세상 이례적인 발전을 이루고 있는 기술과 과학 발달로 문명의 혜택을 활용/이용하여, 온라인 시스템이 자리 잡는다면 이롭겠다고 생각합니다.
굳이 학교에 가지 않아도, 학교라는 시스템이 없어도 일명 '동네학교'로 동네 단위로든지 크고 작은 소수 또는 다수가 모여 습득할 수 있는 문화시스템도 좋을 것 같습니다.
뭐든 양면성이 존재하기에 장단점이 있어 어떤 문제가 발생하겠지만, 학교라는 시스템 보다 편리하고 올바른 가르침을 주고 받을 수만 있다면 좋을 것 같다고 생각을 해봅니다.
그리고 전학이라는 것도 복잡하고, 학교 폭력도 종종 이슈가 되고 점점 심각해지는 것도 같습니다. 그래서 제가 생각하는 동네학교는 원한다면 언제든 자기가 속한 동'과 지역'이 아니라도 원하는 곳에서 교육 받을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춘 곳입니다.
곧 (인구데드크로스 | https://pgr21.com/freedom/90870 를 말하며) 선진복지국가에서의 ['모든 아이는 우리의 아이']라는 구호 처럼, 한 명 한 명의 미래의 주역이 될 미성년자에게 모두가 관심을 가지고 가르치는 '동네학교' 시스템이 되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또 동네마다의 차이가 존재하겠고 그러기에 서로의 시스템을 공유하고 WIN-WIN 현상이 되도록 서로 나눔/도모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출처 | 내용이 제가 궁금한 바를 딱! 말해주고 있어서 볼 수 있는 거의 전부(08:40수정. 전부 인 줄 알았는데 또 있었네요;)를 가져왔습니다. 시위가 트렌드가 된 듯한.. 이 보다 더 좋은 것은 없을까? 저는 아직도 공개적인 '토론/토의'의 장이 활성화 되었으면, 어떨까? 생각해보고, 그게 일주일이 되든 한달이 되는 합리적인 방안을 도출하는 데에 고민을 다 함께 해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각 영역의 전문가들로 구성된 패널이고, 전화로 온라인으로 문자로 일반인들이 참여할 수 있으면 좋겠다 생각합니다.
*일기 | 이글을 써보기 위해, 검색을 해봤는데 헐..; 알아야 할 게 많네요..다 알지 못하는 것이기에.. 바쁘당, 마음만;
언제 공부하나? 그리고 언제 습득한 걸 활용할 수 있을지.. 어떻게 공부해야 할지..어떻게 쓰임을 할지.. 이런 생각이 떠오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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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쎄요. 장밋빛 희망을 갖기보다는
앞으로 저출산으로 무너질 모든 나라의 시스템의 전주곡이라고 보는게 맞지 싶습니다.
모든 분야의 수요가 망가지고 밥그릇 싸움은 더 치열해질 것이며 지방의 모든 인프라가 파탄나고 일부만 살아남겠죠.
서울 집중화는 더 심해질 것이고 안보위기는 더 극대화될 겁니다.
마치 기정사실이라도 된 듯 하지만..예측 할 수 없다고 생각이 들어요.
저도 antidote 님 처럼 생각을 해봤던 것 같은데, 아직도 막연함을 가지고 있나봐요.
그래서 희망을 가져보나. 그런데 막연히 낙관적으로 생각하면 안 될 것이고
현실적낙관주의자가 되는 것이 나을 것 같네요, 현실을 직시하고 그래도 희망을 잃지 않는 것, 결국은 이런 사람들에 의해 바꾸어지는 것이 아닌가 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