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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21/03/20 13:52:32
Name 아난
Subject [일반] 서양철학은 나르시시즘인가? (수정됨)
1
'서양철학은 나르시시즘이다'라는 김상봉 선생의 주장에 대한 비판입니다. 2005년 1월 28일에 <오 마이 뉴스>의

'서양철학은 나르시시즘인가' 진검승부 벌인다
오는 29일 '나르시스의 꿈을 넘어서…' 토론회 열려... 김상봉, 장은주 교수 참여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234261

라는 기사에 댓글로 달았던 글입니다. 김상봉 선생의 글을 하나 하나 인용하고 논평하는 형식으로 되어 있는데, 그 글의 출처가 어딘지를 적어 놓지를 않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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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철학은 나르시시즘인가? - 김상봉 선생의 소박한 논리

서양철학은 지독한 나르시시즘일 뿐이다. 그 증거는 부시의 취임사에도 분명하다. 그들이 이야기하는 자유란 오직 침략자의 자유일 뿐 이라크인의 자유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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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동양철학은 나르시시즘이 아닌가? 아니면 나르시시즘이기는 하지만 '지독'하지는 않은가? 부시같은 권력자지만 그 말은 절대로 부시같지는 않은, 즉 동양철학의 비나르시시즘적 성격의 증거들 가운데 하나가 될 수 있는, 동양의 누군가의 취임사에 준하는 것을 들어보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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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겔의 경우도 오직 독일만을 가장 자유로운 사회로 규정했으며 아시아에 대한 멸시와 경멸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런 그의 사상에서 일부 그럴듯한 부분을 뽑아내서 이리 해석하고 저리 해석한다고 해서 서양철학의 나르시시즘이 벗어나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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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겔은 유럽의 다른 사회들도 독일보다 못하다고 생각했다. 물론 아시아는 더 못하다고 생각했다. 문제는 그런 생각의 근거들 가운데 합리적인 부분이 있느냐 여부이지 그 생각 자체를 무조건 질타하는 것은 철학적이지 않다. 아무리 극복되어야 할 근대라도 하나의 전체로서는 하나의 전체로서의 전근대보다는 낫고 근대적 가치체계들을, 설사 우발적으로라도, [먼저] 산출한 것은 서양이다. 심지어 헤겔철학에는 근대의 부정적 지점들을 극복하려는 노력까지 있다. 실패했더라도 배울 점이 많은 실패였다. 동양에도 그들 나름대로 근대화의 기획을 실현할 수 있는 잠재력이 있었는지 여부는 아직 논쟁중이다.

헤겔철학은 모든 차이와 대립과 모순이 동일성으로 복귀하는 성격을 지닌다. 그러나 그것은 전체적 윤곽일 뿐이다. 세부들과 그 세부들의 연결선들에는 '체계'를 보증해주지 않는 균열들과 소질들이 있다. 그것들을 들어내고 써먹는 것은, 그래서 타자가 동일자로 환원되지 않는 철학의 시도에 자원으로 삼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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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이나 사상을 순수한 관념의 축조물로만 본다면 그것은 지독한 오류이다. 서양철학의 나르시시즘은 외부문명에게 점령된 적이 없는 정치적, 군사적 독립성에서 성립된 것이다. 나르시스트라면 절대 빠지지 않던 전통 중국사회가 그 환상에서 깨어나게 된것은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작이 아니라 아편전쟁 당시 영국의 함포소리와 증기선의 속도 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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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철학은 지독한 나르시시즘이다'라는 명제는 그렇지 않은 철학의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서만 제기될 수 있고 논쟁의 성격도 실제로 그렇다. 그렇다면 '지독한 나르시시즘이 아닌' 동양철학은 어디 있는가? 전통 중국철학이 그런 철학이라면, 서양에서는 철학의 나르시시즘화를 낳은 '외부문명에 점령당한 적 없음'이라는 조건이 왜 중국에서는 나르시시즘이 아닌 철학을 낳았는가? 전통적인 중국철학도 나르시시즘적이라면, '아편전쟁 이후'의 중국철학이 나르시시즘적이 아닌 철학인가? 그 이후 100여년간 중국 사상의 전개나 발전에 20세기 서구철학의 역동적인 자기반성에 값할 만한 것이 있었나?

타문명의 침입에 의해 한족의 문화적 헤게모니가 도전받은 적이 단 한번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노장사상이나 중국화된 불교철학이 나르시시즘적이지 않다면, 적어도 유교는 나르시시즘적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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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그리스가 페르시아에 점령당했다면 이슬람군대가 카룰루스의 군대를 격파했다면 바투의 군대가 유럽을 정복했다면 오스만 투르크의 군대가 비엔나를 점령했다면, 서양인들은 나르시시즘의 환상에서 벗어났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군사적, 문화적 열세에 놓여서도 완전히 정복되 않았고 도리어 그들을 위협하는 외부세계-이슬람, 몽골 등을 야만인, 자유를 모르는 노예무리로 격하했다. 근대에 들어서는 압도적인 과학 기술력으로 오히려 세계를 그들의 노예로 만들었다. 그들은 그들을 굴복시킨 압도적인 무력과 문화에 노출된 적이 없다. 따라서 그들은 자신의 매력에 자신이 매혹되는 나르시시즘에서 절대로 벗어날 수가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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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시아인들과 이슬람인들과 몽골인들에게 위협받고 공격받았을 당시 서양인들이 그들에 대해 가지고 있던 의식은 이질감과 두려움이었다. 그들이 자기들의 문화 속에서 더 단단히 뭉쳤다면, 그리고 자기들을 위협하는 세력을 자기들보다 못한 문화를 가진 것으로 보았다면, 그것은 그 상황에서 당연한 것이었다. 그런것도 나르시시즘의 환상이라고 비난해야 하는 것인가? 근대에 들어서야 생기기 시작한 오리엔탈리즘, 혹은 유럽중심주의를 근대 이전의 서구에까지 뒤집어 씌워서는 안된다.

확실히 서구는 압도적인 '외부'의 무력과 문화에 노출된 적이 없다. 대신 '자신'의 무력과 문화의 압도적인 모순과 파괴력에 노출된 적은 있다. 피칠갑을 한 프랑스 혁명, 두 차례에 걸친 대전으로 인한 자기들끼리의 대량학살, 그리고 무엇보다도 홀로코스트. 이런 진절머리나는 경험들이 '외부'문명에 항복한 경험보다 철학이 나르시시즘을 벗어나는데 덜 이로운가? 20세기 내내, 서구중심주의에서 벗어나는데 가장 열중하고 있는 철학, 근대성 비판에 가장 열중하고 있는 철학이 서구가 아닌 다른 곳의 철학이었던가? 우리 사상에서 기원한 문제는 우리 사상으로 해결하겠다는 하이데거의 철학이 서구중심적인가? 아도르노나 데리다나 레비나스의 언어보다 타자를 더 치밀하게 고민하는 철학이 동양에 있나? 서구는 20세기 내내 자신 안에서 자신의 끔찍한 타자를 만났고 그 자신 안의 타자를 통해 자신 밖의 타자를 대면하는 법도 배우려고 노력 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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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정치적이고 역사적인 문제를 몇몇 철학자들의 언설 속에서 이리저리 견강부회해서 나르시시즘이 아니라고 우겨되는 것은 완전히 번지수를 잘 못 찾은 것이다. 과거 중국에 이슬람교, 조로아스터교 같은 종교들이 전래되고 일시 번성했지만 중국문명에 본질적인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 마찬가지로 요즘 서양에 불교, 힌두교, 한의학 같은 일부 동양문화가 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해서 그들 문명이 달라진다고 생각해서는 않된다. 우리 조상들이 유교문명을 버린 것은 일본의 총칼 앞에서 무력함을 느꼈기 때문이다. 서양인들이 나르시시즘을 버리고 진정 서양문명에 대한 근본적인 반성을 하게 되는 시점은 그들 문명을 압도적으로 능가하는 문명이 등장했을 때 뿐이다. 마치 우리가 사서삼경을 버리고 한복을 벗고 상투를 잘랐던 것처럼. 그런면에서 우리나 일본의 경제발전은 새로운 문명의 위협이란 인식을 심어주기 보다는 그들에게 그들 문명의 위대함을 재확인 시켜주는 계기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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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지수를 잘못 찾은 것은, 아니 아예 번지수가 없는 것은 '외부문명에 점령당한 적 없는 문명의 철학은 나르시시즘적이다'라는 속류 유물론적 논리다. 인도에서 발원한 불교가 중국으로 넘어온 후의 모습보다 창조적인 문화융합의 예가 세계 어디에 있나? 아니면 중국불교는 중국문명의 핵심 외부 있거나 철저히 중국화된 불교인것인가? 유교만이 중국문명을 대표하는가?

이제 문명이 자신의 외부에서 다른 문명을 만날 일은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다른 문명을 업신여기는 나르시시즘적 문명도 이미 없다. 왜냐하면 문명은 벌써 하나가 되어 있기 때문이다. 서구에서 발원한 자본주의의 전지구화가 이룩된 현재, 전지구의 문명이 자본주의를 토대로 해서 이질성보다는 동일성을 훨씬 더 많이 갖게 된 현재, 서구인들이 그들 문명을 압도적으로 능가하는 문명의 '등장'을 경험할 일따위는 없다. 자본주의 문명에 대항하는 이슬람문명같은 것이 있는가? 이슬람근본주의에 희망이 있는가? 그 근본주의 '정신'문화의 물질적 토대로서 자본주의 '물질'문명의 대안이 될 수 있는 새로운 물질문명의 맹아라도 어디 있는가?

나는 자본주의문명보다 우월한 문명을 원한다. 그러나 그 문명은 자본주의문명 '외부'에서 등장해서 자본주의문명에 의해 '만나지는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문명의 '내부'에서 자본주의문명의 '자기반성'에서 기획되기 '시작'하는 것이다. 근대적인 것이나 서구적인 것을 자본주의적인 것으로 환원하는게 못마땅해도 사정이 변할 것은 없다. 뭐라고 부르든 지구는 '하나의 문명'을 갖고 있으며 이제는 그 문명에서 서구의 헤게모니가 계속 되리라는 보장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 하나의 문명보다 우월한 문명을 만들어내는 기획에 나르시시즘적이지 않은 철학이 나름의 리더쉽을 발휘해야 한다면, 그 철학이 갖추어야할 제1순위의 필요조건은 그 하나의 문명 자체이거나 적어도 그 문명의 핵심적 실체들 가운데 하나인 자본주의를 '지양'는 사유인데, 나는 이 사유면에서 동양철학이 특권적 지위를 지니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고전적 동양철학이 같은 시기의 서양철학보다 '덜' 나르시시즘적일 수도 있다. 그 대신 고전적 동양철학은 가장 나르시시즘적인 현실로서의 자본주의 세계에 대한 '구체적' 고민이 각인되어 있지 않다. 게다가 20세기 중반 이후의 서양철학은 분명 탈나르시시즘화의 길로 접어든 것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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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동양 사상의 우월성이라는 신화

동양과 서양이 차이보다는 동일성을 더 많이 갖고 있고 해결해야 할 문제의 근원이 그 동일성에 있다면 동양사상의 우월성을 주장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습니다. 동양과 서양을 막론하고 당면하고 있는 문제는 자본주의의 개선이나 극복입니다. 그 개선이나 극복의 방향을 사유하는데 노장사상이나 불교사상이나 홍익인간 사상이 암시를 줄수는 있겠으나 자본주의 자체를 사유하고 자본주의 자체에서 가능한 탈출구를 밝히는데는 자본주의를 먼저 경험하고 먼저 사유한 전통에 더 기댈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혹은 하이데거처럼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습니다:

나는 현대의 기술적 세계가 유래한 바로 그 곳으로부터만 하나의 방향전환이 예비 될 수 있으며 선(禪)불교나 다른 동양적 세계 경험을 받아들임으로써 발생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유럽적 유산과 그것의 새로운 전유(專有)가 줄 수 있는 도움을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사유는 동일한 유래와 동일한 운명을 지닌 사유에 의해서만 변화될 수 있다.
(http://my.netian.com/~holzweg/spiegel/spiegel.htm)

하이데거의 이 말은 원래 마지막 두줄이 핵심이지만 변화되어야 할 사유에 있어 동양과 서양 사이에 별 차이가 없다면, 즉 동양과 서양 양자 모두 현대의 기술적 세계 또는 자본주의 세계에 살고 있다면 서구적 사유에, 그 세계가 만들어지는데 일조하고 그 세계를 반성해온 사유에 더 관심이 가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동양의 식자들, 특히 한국의 식자들이 동양의 고전문화와 사유전통에 무지하다는 것은 개탄할 만한 현실이기는 합니다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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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3/20 14:03
수정 아이콘
흠..저는 동양철학 성리학 전공하고.. 연구자가 저의 또다른 직업입니다만.. 이런 광범위한 담론 자체에 전혀 관심이 없거든요. 알면 알수록 뭉뚱거릴 수 없단건 지식의 고유한 성격일텐데 서양 동양 이라는 묶을 수없는 범주를 왜 설정하고 싸그리 얘기하는지 모르겠습니다.. 비교철학만해도 항상 해당전공자들한테 깨지는건데 저런 큰 얘기는..아찔합니다. 저런 담론은..솔직히 원전도 제대로 안읽어본 그러면서 "그래서 답은 뭔데?"와 같은 생각이나 하는 초입자들이나 저런 얘기하는거 아닌가요.?
21/03/20 14:32
수정 아이콘
서양철학을 판 유럽은 수학과 과학을 발전시키고 문명을 꽃피웠는데 동양철학을 발전시킨 한,중은 그런 나라들에게 수탈당했죠... 우월성을 굳이 따져야 한다면 서양첧학이 우위라고 봅니다. 쟤네 학문은 파면 쌀이 나오고 기술이 나오니까요.
Respublica
21/03/20 14:35
수정 아이콘
양갈래 범주화만큼 단순하고 오류많은 분류가 없는 것 같습니다.
그것은 차치하고, 어느정도는 자기중심적/사회중심적인 차이는 있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21/03/20 14:46
수정 아이콘
링크하신 글이 15년전 글인데 이미 좀 상한 떡밥이 아닌가 생각이 되고... 그리고 링크글에서의 나르시시즘은 서로주체에 대비되는 홀로주체적인 의미의 나르시시즘을 이야기하는 반면에 그에 답변하는 이 글은 나르시시즘이란 단어를 단순 자아도취로 해석해서 동문서답이 되어 논점일탈적인 면이 없지 않군요.
21/03/20 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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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됨) 저는 나르시시즘의 의미를 정의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일일이 인용한 김상봉 선생의 글에서 운운된 나르시시즘의 의미가 아주 명료해서 그 의미를 그대로 전제했으니까요. 그 글에서 나르시시즘의 의미는 다음 두 구절에서 명백하게 추론될 수 있습니다. 즉 나르시시즘은 '자기 중심적인/자기 본위적인 사고, 자신의 매력에 자신이 매혹되어 있어 타자를 무시하는 상태'입니다. 그런데 나르시시즘을 이런 의미로 쓰는 것은 김상봉 선생의 독특한 어법이 아니라 나르시시즘의 일반적 의미에 일치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소위 '홀로주체'라는 표현으로 김상봉 선생이 제가 논하지 않은 다른 글에서 의미한 것은 나르시시즘의 이런 일반적 의미와 별다른 것이 아닙니다. 따라서 남의 글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동문서답식 댓글을 단 것은 제가 아니라 에소테레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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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철학은 지독한 나르시시즘일 뿐이다. 그 증거는 부시의 취임사에도 분명하다. 그들이 이야기하는 자유란 오직 침략자의 자유일 뿐 이라크인의 자유가 아니다.

그들은 그들을 굴복시킨 압도적인 무력과 문화에 노출된 적이 없다. 따라서 그들은 자신의 매력에 자신이 매혹되는 나르시시즘에서 절대로 벗어날 수가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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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3/20 15:47
수정 아이콘
(수정됨) 죄송스러운 말씀을 드리게 되겠습니다만 글 포맷이 불명확하여 쓰신 글에서 인용을 한 부분이 어디인지 알 수가 없군요. == 로 문단을 나눠서 인용하는 건 제가 본적이 없네요. 인덴트 대신 ==로 쓴다고 해도 이런 포맷에 문외한 이에게는 이게 무슨 의미인지 불명확하지 않습니까. 스탠다드하게 따옴표를 쓰셨으면 좀 더 명료하지 않았겠나 생각해 봅니다.

김상봉 교수님의 2002년 책이 상식적으로 고전도 아닌데 이런 식으로 포맷을 해두시고 독자가 어떤 부분은 책에서 인용한 부분이고 어떤 부분은 코멘터리임을 알아차릴 것으로 예상하셨으면 오산이십니다. 제멋대로 글을 쓰셔놓고서는 한 부분은 인용이고 다른 부분은 인용한 부분에 대한 코멘터리였다고 하시는 건 너무 자기중심적으로 글을 쓰신게 아닌가 합니다. 여하튼 글을 잘못 읽게 된 일이니 이 위에 제가 단 댓글은 그 내용에 있어서 애초에 잘못된 것이 되었군요.
metaljet
21/03/20 15:03
수정 아이콘
고전철학이라면 몰라도 중세이후는 깊이와 양에서 그저 비교불가 수준아닌가요... 결과적으로 우리는 서양에서 유래한 과학기술과 윤리법률경제사회 시스템을 받아들이게 되었잖아요. 예전에 후쓰 선생이 했던 말처럼 자꾸 동도서기니 물질문명VS정신문명이니 하면서 억지로 1:1로 비벼볼려는것 자체가 오히려 동아시아 특유의 지나친 나르시시즘 아닌가 생각합니다.
아우어케이팝_Chris
21/03/20 15:11
수정 아이콘
(수정됨) 나르시즘이 왜 나쁜가요? '서양철학적인 기준에서' 나쁘기 때문에 나쁜 겁니다. 왜 이슬람, 동양철학을 무시하는 게 나쁜가요? 서구의 기준에서 그런 오만은 나쁜 것이기 때문에 나쁜 겁니다. 적어도 저 분이 서구문명을 비판하는 기준인 세속적 문화 상대주의가 이슬람 신학이나 중화사상에 기초하진 않았다는 건 확실합니다. 애초에 서양에 대한 비판조차 서구철학의 기준이 근거라는 거지요.

이런 내용이 궁금하신 분은 '도미니언'이란 책을 보시면 좋습니다. 교회사에 대한 이야기지만 종교 포교적인 내용은 아닙니다. 저자도 교회 다니는 사람 아니고요. 서구의 사고방식이 '얼마나 세상에 깊이 뿌리박혀 있는지'를 보기에 좋은 책입니다.
https://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16658755

진짜 성공적인 도그마는, 그거에 빠진 사람은 '존재하는 줄도 모르는' 법입니다. 물고기는 물이 뭔지 모르듯 말이죠.
21/03/20 16:53
수정 아이콘
김삼봉이 누군지는 모르겠으나 쌀이나 축내고있는 서생이겠네요

저런부류는 아무 가치가 없죠
21/03/20 17:16
수정 아이콘
[ 자본주의 자체를 사유하고 ... 가능한 탈출구를 밝히는데는 자본주의를 먼저 경험하고 먼저 사유한 전통에 더 기댈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정신병은 정신병을 처절하게 경험하고 그것에 대해 고뇌한 정신병자 집단의 사유에서 해결책을 기대할 수밖에 없다.
--자본주의 문제의 해결은 그 정점에서 가장 치열하게 자본주의의 논리를 실천하고 있는 재벌에게서 나올 수밖에 없다.
설마 이런 주장에도 동의하시는 건 아니리라 믿습니다.

저런 식의 동양, 서양 논의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의 개선이나 극복]이 중요한 것이라고 하셨는데 김상봉 선생이 <기업은 누구의 것인가?>라는 책을 쓸 정도로 한국의 철학자 가운데 어느 누구보다 자본주의의 문제에 깊이 천작한 철학자이고 서양 철학의 나르시시즘 비판이 자본주의 비판과 깊이 연결된 논의라는 맥락을 전혀 모르시는 것 같네요. 그리고 김상봉은 동양사상의 우월성을 주장하는 사람이 아니며 윗글도 동양사상의 우월성을 주장하는 글이 아닙니다. 논의 자체를 완전히 오해하섰습니다.

만년에 도가사상과 선불교에 관심을 보였다고는 하지만 동양에 대해 19세기 초의 헤겔만큼의 관심도 보이지 않았던 하이데거를 동서양 문제의 권위로 받아들이는 것도 그렇지만 [사유는 동일한 유래와 동일한 운명을 지닌 사유에 의해서만 변화될 수 있다]는 하이데거의 말 역시 서양철학의 나르시시즘을 드러내는 것처럼 들리네요. 그리고 그 역시 서양철학을 존재를 망각한 역사라고 총체적으로 비판했었죠. 무엇보다 글쓴이 본인의 나르시시즘이 잘 드러난 글 같습니다.
21/03/20 1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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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를 먼저 경험하고 먼저 사유한 사람들을 정신병자 집단이나 자본가들에 유비할 수는 없습니다. 저는 문맥상 자본주의를 먼저 경험하고 먼저 사유한 사람들로 자본주의의 부정성을 지적으로 고민한 사상 전통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헤겔을 언급하고 있지만 루소까지 거슬러 올라가고 사회주의 사상가들로 이어지는 전통입니다.

저는 지금 김상봉 선생의 자본주의 이해가 잘못되었다고 비판하는 것이 아니고 그의 서양철학 이해가 일면적이라고 비판하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서양철학의 흐름에는 자본주의의 발전에 상응하고 그 발전을 정당화하는 이데올로기적인 면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이데올로기적인 면을 구체적으로 지적하는 것과 서양철학 전체를 뭉뚱그려 나르시시즘이라고 주장하고 그 나르시시즘을 자본주의의 부정성과 연결시키는 것 사이에는 지적 충실성 면에서 큰 차이가 있습니다.

저는 김상봉 선생이 동양철학의 우월성을 주장하는지 여부에 대해 별로 아는 바가 없습니다. 다만 서양철학이 나르시시즘이라는 김상봉 선생의 주장은 나르시시즘적이지 않은 다른 철학의 존재를 전제할 때만 의미있습니다. 관련하여 김상봉 선생은 "나르시스트라면 절대 빠지지 않던 전통 중국사회가 그 환상에서 깨어나게 된것은" 운운하면서 마치 중국 식자들은 나르시시즘에서 벗어난 것처럼 얘기하고 있습니다.

서양철학을 뭉뚱그려 비판하는 관점은 흔히 동양철학의 우월성에 대한 주장으로 이어집니다. 그래서, 그리고 글 1에서 거론한 하이데거의 관점을 소개하기 위해서, 글 2가 글 1에 이어진 것일 뿐 저는 글 2에서 김상봉 선생의 주장을 전혀 거론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하이데거의 권위에 의존하지 않았습니다. 하이데거의 그 주장이 맞다고 생각하고 글 1에서 그 주장을 짧게 거론했기 때문에 마침 조금 더 자세한 인용이 들어 있는 써둔 글을 덧 붙인 것입니다. 글 1에서도 저는 제 생각을 먼저 피력했고 마침 그 생각에 일치하는 하이데거의 주장을 짧게 거론한 것입니다.

하이데거는 서양철학의 역사를 존재망각의 역사라고 파악하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유럽적 유산과 그것의 새로운 전유(專有)가 줄 수 있는 도움"이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 유산으로 하이데거는 존재망각이 시작되기 전에 행해졌던 근원적인 사유의 전통을 의미합니다. 즉 하이데거는 김상봉 선생처럼 서양철학의 역사 전체를 하나로 뭉뚱그려 단죄하지는 않았습니다.
소독용 에탄올
21/03/20 19:25
수정 아이콘
현재시점에서 동서양 구분이 의미가 있긴 한가 모르겠습니다. 심지어 학술영역에서 철학사를 해도 의미있기 어려운 범주라고 생각됩니다. 서양철학 일반이나 동양철학 일반에 대해서 하는 평가나 비교가 가능한가, 의미가 있는가 모두에 부정적이고요.....

자본주의 극복에서 외부니 내부니 찾기엔 현 시점에 학술영역에 자본주의 외부가 '있느냐'가 문제가 될겁니다. 자본주의 이전에 살았던 사람들이 해왔던 철학을 현재 시점의 학자가 연구하거나 활용한다고 해서 해당하는 철학이 자본주의 외부에서 온거라고 보기는 어렵지 않을까 합니다.

자본주의를 더 먼저 고민했던 이들이라고 해서 뭔가 더 나은 결과물이 나오고 하는걸 기대할 수 있는가도 문젭니다. 현시점의 자본주의는 그 사람들이 했던 비판들을 이미 일부분 반영하고 있을테니까요. 더욱이 자본주의 일반의 논리가 적용된다고 해도 자본주의라는 현상이 동네동네마다 동일하지도, 동일할 필요도 없기 때문에 이른시점에 했던 고찰과 비판이 지역에 가지는 유용성이나 의미도 천차만별일겁니다.

이런입장을 가지고, 이런방향의 생각을 하는 이유가 제가 철학자가 아니라서 일 공산이 높긴 합니다만.....
21/03/20 20:33
수정 아이콘
(수정됨) 서양은 유럽계 나라들을 말합니다. 동양으로 저는 비서양 전체가 아니라 동아시아와 인도를 의미합니다. 그래서 동양철학하면 일단은 인도, 중국, 한반도, 일본의 철학을 말합니다. 그중에서도 서양 문물이 수입되지 않았던 시기의 철학을 주로 의미합니다. 서양철학은 물론 유럽계 사회들의, 소크라테스 전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의 철학을 말합니다. 현시점에서 서양과 비서양은 글로벌 자본주의로 통일되어 있고 서양에서 기원한 여러 정치적/윤리적 규범들이 적어도 공식적으로는 비서양 사회들에서도 수용되어 있기 때문에 동양과 서양을 서로 다른 문명/문화라는 의미에서 칼같은 구분하는 것은 말도 안 됩니다. 그러나 그 두 지역 사이에 전혀 문화적 차이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약간은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철학에 관한 한, 앞에서 이미 말씀드렸듯이, 서양철학과 동양철학의 구분은 충분히 의미가 있습니다. 동양철학은 [과거] 동아시아/인도의 철학입니다. 그 과거는 동양과 서양이 지금과는 달리 어느 정도 단절되어 있던 시기, 지금처럼 교류하지 않던 시기, 서로 다른 문화권이라고 할 정도의 차이가 있었던 시기입니다. 그래서 서양철학과 동양철학도 충분히 다릅니다. 심지어는 같은 서양철학도 유럽대륙 철학과 영미철학 사이에 아직까지도 완전히 사라지지 않은 골이 있는 판에 과거 동아시아의 철학으로서의 동양철학을 서양철학과 구별할 수 없다는 생각은 말이 안 됩니다.

먼저 고민한 그쪽 사람들이 나중에 고민한 다른 쪽 사람들보다 머리가 나쁜 것이 아니고 먼저 고민하게 된 것은 고민 거리를 먼저 경험했기 때문이고 고민이 자기비판적으로 누적되어 왔다면 당연히 나중에 고민을 시작한 사람보다 그 고민의 질/내용이 깊고 높을 수밖에 없습니다.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자본주의에 대한 지식들/고민들 대부분은 자본주의가 먼저 자리잡고 발전한 곳에서 생산된 것이고 우리는 아직 그런 지식들/고민들을 수입하고 제대로 이해하기에도 바쁩니다. 과학기술 분야도 그렇지만 인문사회 분야 연구 수준은 훨씬 더 서양이 다른 지역들을 앞서 있습니다. 자본주의 문명에 대한 비판과 대안적 문명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는 것으로 명성이 높은 중국,일본,인도의 식자를 단 한명이라도 알고 계신가요? 아예 없지는 않지만 그 극소수의 식자들도 서구에서 생산된 지식과 고민의 연장선상에서 비판적 학문 활동을 한 사람들입니다.

현시점의 자본주의가 일정하게 이전의 비판을 수용한 자본주의라고 해도 여전히 자본주의 고유의 구조적 문제는 문명의 생태학적 기초를 위협할 정도로 확대재생되고 있습니다. 그 확대재생산은 그 수용이 근본적이지 않다는 사실을 부각시킬 뿐만 아니라 과거의 근본적 비판을 위기의 심화라는 조건에 걸맞게 발전시킬 의무를 비판적 식자들에게 부과합니다. 그런데 그 비판적 식자들의 대다수는 여전히 서양의 활동가들과 학자들입니다. 그리고 아직까지는 그럴수밖에 없습니다. 언젠가는 서양에서 자본주의가 먼저 발달했다는 사실이 서양의 비판적 학문활동의 질과 내용을 비서양의 그것보다 더 깊고 높게 하는 효과가 바닥날 수도 있겠지만 제가 보기엔 아직 멀었습니다.

현재 자본주의는 글로벌화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지역적인 차이보다는 자본주의적 생산관계라는 공통성/동일성이 중요합니다. 자본의 본성이 어느 지역의 자본이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자본주의가 발전하게 된 경로와 조건이 지역마다 다르니 그 차이에 대한 제 각각의 연구가 필요한 것이지만 자본주의 경제들의 공통적 문제에 대한 지식과 대안에 대한 고민은 보편적인 타당성을 갖는 것입니다. 그래서 한국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비판적 담론에서도 서구 자본주의 사회들에 대한 비판적 담론에서만큼이나 마르크스가 여전히 중요한 것이고 마르크스를 계속 붙들고 늘어지는 학자들의 저작들이 계속 수입되는 것입니다.
위대함과 환상사이
21/03/20 19:34
수정 아이콘
(수정됨) 잘 모르는 분야에 숟가락을 얹고서 한 마디한다는 게 부담스럽기는 합니다만, 반드시 전문적 지식이 있는 사람만이 이 주제에 관해 이야기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나름 논의의 활성화를 위한다는 명분 혹은 핑계를 대면서 댓글을 답니다.

1. 우선 글을 보고 처음들었던 생각은 김상봉선생은 서양철학을 전공했겠구나라는 것이었습니다. 지식인, 특히 해당분야의 전문가가 그 분야에 대해 도발적인 주장을 할 때는 보통 자기가 잘 알고, 정통하다고 생각하는 분야이기 때문에 이러쿵 저러쿵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자기도 잘 모르는 분야에 대해 나름 지식인이라는 인물이 자신의 이름을 내걸고 이 사안과 같은 지극히 도발적인 주장을 하기란 지적 자살행위겠죠. (그 이후 제기되는 반론과 역공 앞에 스스로 대응할 능력이 없을 테니까요.) 그런 점에서 김상봉씨는 서양철학을 전공했기 때문에 이런 주장을 할 수 있었지 않았을까라는 생각부터 들었습니다.(뭐. 당연한 이야기겠지만요.)

2. 그런 의미에서 아난님이 김상봉씨의 주장에 반론을 펼치면서 동양철학을 끌어온 건 그리 의미있어 보이지는 않습니다. 왜냐면 김상봉씨도 동양철학을 그리 잘 알지 못할 거 같고, 스스로도 자신이 동양철학을 잘 안다고 생각하지 않을 것 같으며, 김상봉씨도 동양철학이 나르시시즘인지 아닌지 잘 모른다고 스스로 생각할 것으며, 무엇보다 김상봉씨의 주장은 '서양철학'이 나르시시즘이라는 거지. 동양철학이 나르시시즘이 아니다란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아난님께서 동양철학에 대해 길게 비판을 하셨고, 설사 동양철학이 나르시시즘이란 걸 입증하셨다고 하더라도 김상봉씨의 주장은 전혀 논박되지 않은 게 될 겁니다.

3. 여기서 뇌피셜을 던지자면 - 요즘 자꾸 개인적으로 뇌피셜을 많이 던지는 것 같은데, 특히 아난님의 게시물에서 이런 경향을 보이고 있는데, 개인적으로 아난님께는 그지같은 뇌피셜로 게시물의 질과 격을 떨어뜨려서 죄송하다는 말씀을 미리 드립니다. - 김상봉선생이 '서양철학은 나르시시즘이다.'라고 이야기한 건 의도적인 도발이 아닐까? 라고 생각해 봅니다. '서양철학은 나르시시즘이다'라고 이야기하려면 서양철학의 범위에 무엇이 포함되는지를 확정할 수 있어야 하고, 그에 포함된 개개의 서양철학과 그 철학자의 사상에 대해 그 중심내용과 특성을 속속들이 알아야 하며, 시간적으로는 고대 그리스 철학부터 현대의 포스트모더니즘까지 포함하는 것인데, 이게 현실적으로 개별 철학자 수준에서 가능한 일이 아니라고 보이기 때문입니다. 김상봉씨는 서양철학이 아니라 서양철학의 주된 전통과 흐름이라는 수식어로 자신의 도발적 주장이 적용되는 범위를 충분히 제한할 수도 있었고(물론 그렇다고 해도 그가 커버해야 할 범위가 유의미하게 줄어드는지는 매우 의심스럽습니다만), 그럼으로써 자신의 주장을 유지하기 위해 들이는 품과 노고를 조금은 줄일 수도 있었을 것인데, 굳이 서양철학이라는 광범위한 주어를 사용했다는 게 매우 의도적인 걸로 보입니다.

4. 때문에 논쟁에서 김상봉씨가 이기는 건 형식적으로 보면 불가능한 걸로 보입니다. 형식적으로 보면 반대측에서는 서양철학 중 어느 하나라도 나르시시즘이 아닌 걸로 논증하면 게임은 끝나거든요. 김상봉씨는 그 모든 서양철학이 나르시시즘임을 입증해야하는 책임을 지는 반면, 반대측에서는 그런 부담없이 서양철학 중 한 가지만이라도 나르시시즘이 아님을 입증하면 자신이 타당함을 증명하는 거니까요. 근데 실제 논쟁이 그렇게 흘러가지는 않았을 거 같습니다. 원래 철학 자체가 고도의 추상성을 전제한 학문인데다가, 그 철학이 나르시시즘인지 아닌지 누구나 동의할만한 입증방법이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거의 형이상학적인 논쟁처럼 흘러 갔을 거 같아요.

5. 그럼에도 저는 김상봉씨의 문제제기가 의미는 있다고 생각합니다.(저는 서양철학에 대해서 거의 알지 못합니다만.) 왜냐하면 서양철학 혹은 서양사상에서 비주류적 관점의 대표적 인물이랄 수 있는 맑스에게서도 서양중심적 사고가 매우 짙게 베어나온다는 점에서 이는 주류건 비주류건 서양철학의 고질병일 가능성이 있으며, 설사 그렇지 않더라도 서양철학에서 자기중심성, 우리 입장에서 보면 유럽 혹은 서구중심성,에 대한 자기반성 혹은 우리의 반성은 보다 보다 균형잡힌 주체성과 합리적인 사고를 위해서 의미있는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사실 영국이 힌두스탄에서 사회 혁명을 일으킨 것은 오로지 야비한 이익 때문이었으며, 자신들의 이익을 강제하는 방식도 어리석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사실은 문제가 아니다. 문제는 인류가 아시아의 사회 상태 속에서 근본적인 혁명없이 자기 운명을 성취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만약 그럴 수 없다면 영국의 죄악이 그 무엇이든 간에 영국은 그 혁명을 일으키는 데서 무의식적인 역사의 도구였다. 따라서 한 고대 세계가 몰락하는 장면이 우리들의 인간적인 감정에서 볼 때 아무리 쓰라린 것이라고 해도, 역사의 관점에서 우리는 괴테와 더불어 다음과 같이 외칠 권리가 있는 것이다.

이 고통은 우리를 괴롭혀야만 한다.
그것이 우리의 기쁨을 크게 하니까.
미리아데(Myriade)의 영혼들을 구원한 것은
티무르의 지배가 아니었든가?

'인도에서의 영국의 지배'에 나오는 맑스의 악명높은 구절을 인용해봤는데, 여기서 맑스의 시각은 거의 식민지 정체성론(타율성론의 관점도 보이죠.)을 주장하는 일제의 시각에서 그리 멀리 벗어나 있는 걸로 보이지 않습니다.(여담이지만, 과거 맑스주의자였다는 이영훈, 안병직 같은 인물들이 쉽게(?) 식민지 근대화론자로 변신한 데에는 나름 이론적 일관성이 있어보이기도 합니다. 오해를 피하기 위해서 덧붙인다면, 맑스의 사상과 맑스주의가 일관되게 위의 인용문의 시각을 견지했다고 보지는 않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서양철학의 나르시시즘을 반성하고 의심하는 일은(물론 김상봉씨처럼 서양철학은 나르시시즘이라고 단정하자는 건 아니고) 꽤나 가치있는 일일 수 있다고 봅니다. 부족한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21/03/20 20:54
수정 아이콘
저는 동양철학을 길게든 짧게든 비판한 적이 없습니다. 동양철학이 자본주의에 대한 고민을 담고 있는 철학이 아니고 그래서 고민을 담고 있는 철학보다 동시대성이랄까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것입니다. 자본주의가 발생하기 전에 나온 서양철학에 대해서도 동일한 지적을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이 지적은 자본주의가 발생한 후에 등장한 가장 평범한 철학자도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같은 철학자보다 위대한 철학자라는 황당한 함축은 전혀 갖고 있지 않습니다.

저는 유렵 사상가들이 서구중심주의에 젖어 있지 않았다고 주장한 적이 없습니다. 심지어는 전혀 나르시시즘적이지 않았다고도 주장한 적이 없습니다. 제가 주장한 것은 나르시시즘이라는 하나의 술어를 하나의 전체로서의 서양철학 곳곳에 동일한 타당성으로 적용할 수 없다는 것, 서구에서 서구중심주의/나르시시즘에 대한 자기비판이 지난 세기 이래 줄기차게 있어왔다는 것, 그 자기비판을 따라잡을 만한 고민/지식이 비서구, 특히 동양(인도, 동아시아)에서 생산된 적이 없다고 주장했을 뿐입니다.
위대함과 환상사이
21/03/20 22:14
수정 아이콘

1. 우선 누추한(?) 댓글에도 일일이 성실하게 답변해 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씀을 먼저 드리고 싶습니다.

2. 다만, 아난님께서 올리신 링크를 살펴보는 것만으로는 아난님이 가지신 애초의 문제의식을 이해하기가 쉽지 않았다는 변명을 해봅니다. 다시 말해서 김상봉씨에 대한 아난님의 구체적인 반박이, 링크해 주신 기사만 봐서는, 김상봉씨의 어떤 주장에 대응하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게 되어있다는 겁니다. 비판의 대상이 된, 김상봉씨의 주장이 무엇인지 알 수가 없는 반면, 그에 대한 아난님의 반박은 길게 서술되어 있으니, 글을 읽는 사람으로서는 아난님의 주장의 맥락과 의도를 파악하기 어려웠다는 점을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마찬가지로 김상봉씨의 주장이 무슨 맥락에서 나오는 건지 이해할 수도 없구요.) 실례되는 말씀인지 모르겠으나, 글을 읽는 사람에 대한 배려가 조금 부족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더구나 주제도 생소하고 어려운데요.

3. 아난님의 문제의식은 제 나름대로 이렇게 이해됩니다. 철학이란 것도 결국 당대의 사회와 현실에 대한 문제제기와 그에 대한 깊은 숙고에서 나온 답변이고 그런 맥락 속에서 나온 철학이야말로 그 시대에 가치를 가지는 것 아니냐라는 말로 이해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드는 의문은 김상봉씨가 아난님의 그런 주장에 대해서 동의하지 않는가?라는 겁니다. 물론 아난님께서는 김상봉씨가 그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생각하셨으니 일일이 반박을 하셨겠지만, 아난님의 글을 읽는 저로서는 그런 아난님의 판단이 타당한 것인지에 대한 판단 근거가 부족하다는 겁니다. 김상봉씨의 주장을 알 수가 없으니 말이죠.
21/03/20 22:55
수정 아이콘
(수정됨) 김상봉씨에 대한 아난님의 구체적인 반박이, 링크해 주신 기사만 봐서는, 김상봉씨의 어떤 주장에 대응하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게 되어있다는 겁니다. 비판의 대상이 된, 김상봉씨의 주장이 무엇인지 알 수가 없는 반면, ... 아난님의 글을 읽는 저로서는 그런 아난님의 판단이 타당한 것인지에 대한 판단 근거가 부족하다는 겁니다. 김상봉씨의 주장을 알 수가 없으니 말이죠.
--

이게 무슨 말인가요? 링크한 기사는 김상봉 선생에 대한 제 비판과 직접적 관련이 없습니다. 그 기사는 저 외에도 '서양철학은 나르시시즘이다'라는 김상봉 선생의 주장에 딴지를 건 이가 있고 김상봉 선생과 그 식자 사이에 토론회가 있었음을 알려 드리기 위해, 더 나아가서는 그 테제가 저같은 무명의 인문학도의 의아심을 넘어서 공식적-학술적 선에서 논쟁적인 것임을 알려드리기 위해 링크건 것입니다. 제가 비판한 김상봉 선생의 주장은 일일이 인용되어 있습니다. 혹시 위의 다른 분처럼 제 글 전체를 그 테제에 대한 비판으로 읽으셨나요? 그렇지 않습니다. 제 글의 형식은 김상봉 선생의 글을 나누어 인용하고 인용 하나 하나에 대해 논평을 하는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김상봉 선생의 글과 제 논평은 내용상으로만이 아니라 형식적으로 구별됩니다. 제 논평은 아래 위로 == 표시를 했으니까요.

당대의 사회와 현실에 대한 문제제기와 그에 대한 깊은 숙고에서 나온 철학이 그렇지 않은 철학보다 더 동시대성과 현실성을 갖는다는 것이 제 글의 요지인 것 맞습니다. 제 생각으로는 '서양철학은 나르시시즘이다'라는 김상봉 선생의 주장은 그 요지와 반대됩니다. 어떤 서양철학은 우리 모두의 가장 포괄적이고 일차적인 사회현실인 자본주의라는 것에 대해 더 먼저/더 오래/더 깊이 고민함의 산물이고 그 더 먼저/더 오래/더 깊이 고민함 및 자본주의의 발전과 관련된 서양의 특수한 역사적 경험들 (사회혁명들, 세계대전들, 홀로코스트, 식민지 해방운동과의 조우 등등) 의해 가능해진 자기반성을 통해 자신의 나르시시즘적 요소에 대한 자기비판도 꾸준히 이루어져 있다는 실질적인 이유로 - 즉 아직 과학기술경제면에서 다른 지역을 압도하는 서양의 철학이라는 이유만으로가 아니라 - 헤게모니를 쥔 철학인데, '서양철학은 나르시시즘이다'라는 김상봉 선생의 주장에는 그런 지점들에 대한 인정이 전혀 없기 때문입니다.

60년대 이래 과거의 서양철학에 일정하게 나르시시즘적인 요소가 있다는 것은 인문학도들의 상식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요소가 모든 서양철학자들에게 동일한 정도로 있는 것도 아니고 그 요소를 빼고 나머지만으로 더 보편타당성 있는 철학으로 재구성하는 작업이 불가능한 것도 아니며 그 요소가 언제나 해당 철학의 본질적 구성요소인 것도 아닙니다(곁가지 인 경우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상식을 상식이 되게한 서양 인문학 전반의 자기반성의 일환으로 현대 서양철학, 특히 유럽대륙 철학은 비유럽을 포함한 타자와의 관계를 핵심적 주제로 삼게 되기도 했습니다. 영미철학은 그보다는 덜 하지만, 철학을 제외한 영미 인문학에서의 나르시시즘/유럽중심주의에 대한 비판은 극심할 정도입니다.
위대함과 환상사이
21/03/20 23:16
수정 아이콘
제가 착각했네요. 인용과 논평의 구조인 걸 몰랐어요. 글을 자세히 읽지 않고 댓글을 달아서 죄송합니다. 다만 가독성이 너무 떨어지게 올리셨어요. 누구의 주장인지 표시라도 해주셨으면 좋았을텐데요. 지금도 다시 글을 읽는데 어디가 누구의 주장이고 그에 대한 논평인지 너무 헷갈리네요.

이유야 어쨌든 큰 착각으로 번거롭게 해드려서 죄송합니다.
In The Long Run
21/03/20 19:46
수정 아이콘
2005년 이야기로 쉐복...덜덜
antidote
21/03/21 10:14
수정 아이콘
서양 철학이라는 말은 틀린 말이고 '철학'이 있고 번외로 동양철학이 있겠죠. 역사적인 맥락에서 서양을 언급하기 위한게 아니라 철학 자체를 논하기 위한 것이라면 서양 철학이라는 단어는 서양의학 만큼이나 무의미하게 들립니다.
21/03/21 10:41
수정 아이콘
(수정됨) 그렇지 않습니다. 철학을 지역별로 나누어 말하는 것은 유의미합니다. 심지어는 지구촌 시대인데도 서양철학 자체도 영미철학과 유렵대륙 철학으로 지역별로 구별합니다. 심지어는 유럽대륙 철학 자체도 중심이 되는 지역/대학/나라들을 기준으로 구별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영향을 주고 받아도 프랑스 철학과 독일 철학은 서로 다른 특색을 가져왔죠. 물리학 같은 자연과학을 프랑스 물리학과 독일 물리학으로 구별하는 것이 넌센스인 반면 인문학은 그런 구별이 유의미하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자연과학과 인문학의 차이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철학이 있고 번외로 동양철학이 있다는 말은 동양철학은 철학다운 철학이 아니라는 주장으로 읽힙니다. 의학이 있고 번외로 한의학이 있다는 말이 한의학은 의학다운 의학이 아니라는 주장으로 읽히는 것처럼 말입니다. 이 역시 잘못된 생각입니다. 동양철학은 서양철학만큼이나 철학입니다. 다만 일반적으로 기본 텍스트들이 동양(인도와 동아시아)의 과거에 출현했던 철학을 가리킨다는 점에서 서양철학과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그 외 주제나 방법론이나 논지면에서도 차이가 있죠.

물론 지역을 가리키는 한정사는 서로 다른 특색을 함축하는 용도로만 있는 것이니 한국의 어떤 철학자가 미국의 철학자들과 같은 주제를 같은 방법론으로 연구하고 미국 철학자들과 교류한다면 그 한국 철학자는 서양철학을 하는 것입니다.
antidote
21/03/21 15:15
수정 아이콘
철학이라는 단어는 philosophy를 일본인들이 번역한 것입니다. 일본인들이 만들기 전에는 원래 있지도 않던 말입니다.
인도는 모르겠으나 ​원래 한자문화권에는 추상적인 개념으로나마 있었을지는 몰라도 그걸 정의하는 단어조차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근본적으로는 원시적인 형태로나 존재하는 것이었고요.
현대인이 인식하는 모든 학문의 어머니라는 개념으로서의 철학은 서양에서 배태되어 동양인이 그에 대해 전달받기 전에 이미 수많은 여러 학문을 분화시켰고 그러한 의미로서의 철학은 서양 철학 그 자체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일반적으로 말하는 철학은 서양 철학을 말하는 것이지, 동양 철학은 서양 철학이 아니었던 것을 가리키는 번외에 가까운 개념이라고 봐야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적인 맥락에서의 서양철학과 같은 용례는 이상하지 않은 표현이라고 생각합니다만 철학 그 자체를 서양 철학이라고 지칭하는 것은 오개념이라고밖에 생각이 되지 않습니다.
Ph.D라는 단어가 대변하듯 학술적 맥락의 인류 사유라는 의미의 철학은 서양철학 그 자체이고 동양 철학이 여기에 낄 자리가 별로 없습니다.
21/03/21 15:31
수정 아이콘
김상봉 선생의 논의는 언급해주신 것처럼 많은 점에서 허술하다고 생각됩니다. 서양철학을 연구했다면 독일관념론의 칸트, 헤겔과 마르크스 이후의 변증법이 가진 내재적 비판이 계몽주의(김상봉 선생의 표현으로는 나르시시즘)에 대한 스스로의 비판이자 동시에 지양인 것을 충분히 알고 있었을테지만, 아마도 선생이 간과 했거나 의식적으로 망각했다고 생각됩니다. 그럼에도 동의할 수 있는 구석을 찾아보자면, 유럽의 계몽주의의 합리성이 묵살하고 파괴해 온 것들의 비합리성에 대한 성토는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동의하지 못하는 이유는 충분히 비판적이지 못한 것입니다. 그 비판의 대상(서양철학의 나르시시즘)이 모호하고, 방법(서양-동양의 대립)에서도 문제적인 것으로 보입니다. 방법론적으로 보자면 서양을 비판하기 위해 외부의 '동양'을 끌여들여 '서양'에 맞서 세운다는 점은 충분히 (내재) 비판적인 방법이지 못한 것입니다. 더군다나 이런 비판들은 '반동'적이고 '복고'적이기 마련인데, 그들이 말하는 '동양'은 오늘날 후기 자본주의 사회처럼 더 이상 '외부'가 없어 보이는 세계에서 과거의 '동양'이란 허상을 소환하기 때문입니다. 주변에서 간혹 동양철학을 통해 오늘날의 기후위기나 생태문제의 해법을 찾으려는 사람들을 접하는데, 김상봉 선생에게서도 비슷한 관점이 보여 댓글을 남기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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