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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21/03/16 21:17:38
Name 올라이크
Subject [일반] The Magnificent Seven
  안녕하세요.

  영화 얘기입니다. 다른 비유가 아니라... 우리나라 제목으로는 황야의 7인이고, 원제는 'The Magnificent Seven'입니다. 의역을 곁들이면 '위대한 7인' 정도 되겠네요. 이 영화는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1954년작 '7인의 사무라이'를 리메이크한 작품입니다. 원작과 리메이크작이 워낙 명작이라 그런지, 리메이크작의 리메이크작도 2016년에 만들어집니다. 세 작품의 기본적인 스토리는 유사합니다만, 다른 문화양상을 가진 두 국가 혹은 시대의 차이로 인해 세부적으로는 다른 점이 꽤 됩니다.

  원작 7인의 사무라이도 대단한 작품입니다만, 서부극 빠돌이인 제게 리메이크작 TM7은 인생영화 중 하나입니다. 뻔한 스토리나 플롯? 다 필요없습니다. 주연들의 폭풍간지만 즐기기에도 벅찬 영화이죠. 애당초 영화를 보고 깊게 파고들며 분석할 능력도 시간도 의도도 없는 사람인데다가, 라스트 제다이 이후로는 언필칭 평론을 한다는 인간들에 대한 염증도 심해진 와중에 남들이 뭐라 하든 저는 제가 좋은 영화면 그냥 좋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정말 좋아하는 영화입니다. 탈모인들의 희망인 율 브리너 형님은 외모로 한 번, 목소리로 한 번, 연기로 한 번, 그리고 그냥 포스로 한 번... 관객을 여러번 살해합니다. 지금에 와서야 어마어마한 라인업인 주인공 7인입니다만, 당시 이미 스타였던 율 브리너를 제외하고 스티브 맥퀸, 찰스 브론슨, 이름은 생소해도 얼굴보면 다들 아실 명품악역 제임스 코번 등도 아직은 신인이었을 때랍니다. 그들이 악당들에게 약탈당하는 벽촌을 위해 싸우고 희생하는 이야기는 어릴때나 지금이나 가슴을 뛰게 합니다.

  아마 리리메이크작인 2016년의 '매그니피센트 7'을 기억하시는 분이 더 많을 듯 합니다. 스타들이 즐비한 캐스팅에 요새는 1년에 하나 정도 나오는 서부극, 그리고 무엇보다 이병헌이 출연한 헐리우드 영화라는 점에서 유명하죠. 원작의 기라성같은 스타 선배들한테 비비려고 했는지 여기도 캐스팅이 만만찮습니다. 율 브리너와 같이 극을 이끌어가는 역으로 덴젤 워싱턴이 그와 함께 싸우는 동료로 빈센트 도노프리오, 에단 호크, 스타로드 크리스 프랫, 거기에 뵨사마도 한 자리를 차지합니다. 원작과 리메이크작에서 일곱명 캐릭터에 부여되었던 속성이나 설정은 조금씩 바뀌어 새로운 캐릭터들에게 부여되었고, 그것이 원작, 리메이크작을 본 관객에게는 소소한 재미를 더해줍니다.

  지금에 와서 돌이켜보면, 리리메이크작 TM7은 PC의 영향도 배어있지 않은가 합니다. 일단 7인의 리더 격인 인물로 흑인인 덴젤 워싱턴이 분한 '샘 치즘'이 세워졌습니다. 남북전쟁이 끝난지 얼마 되지 않는다는 당시의 시대상으로 볼 때, '정식 영장 집행관(Duly sworn warrant officer)'을 비롯한 법적 지위를 읊어대는 그의 존재가 놀랍죠. 북군 소속의 군인으로 참전했다는 설정도 있습니다만, 놀랍게도 정식 북군에는 흑인 장교가 없었다고 하니 아마 부사관이나 병이었나봅니다. 그때문에 맨 처음 등장하는 장면에서 마을의 카우보이들에게 적대감이 서린 눈길을 받습니다. 그리고 7인의 주인공 중에는 이병헌이 분한 '빌리 락스'가 있습니다. 이병헌이 출연한 다른 영화에도 그의 국적이 중국이나 일본으로 나오는 일이 드뭅니다만, 이 영화에서도 확실히 어디 출신인지 나오지는 않습니다. 치즘이 꾸며대는 얘기로 상하이를 운운합니다만, 그건 걍 되는대로 나온 말이니... 시대상을 생각하면 중국인일 확률이 높고, 대다수 해외 관객들도 그렇게 생각하겠지요. 어쨌든 오리지널 동아시아인이 한 명 7인에 합류합니다. 그리고 알래스카 원주민 출신 배우 마틴 센스마이어가 분한 '붉은 수확'은 코만치족 인디언입니다. 마누엘 가르시아 룰포가 분한 '바스케즈'는 멕시코인인데, 사실 인디언과 멕시칸은 서부극에 너~무 자주 출연하는 분들이긴 합니다. 물론 이렇게 각광받는 주연의 자리는 흔치 않겠죠. 여하간 7인의 주인공 전부가 백인이었던 리메이크작(찰스 브론슨이 분한 오라일리는 히스패닉 혼혈로 보입니다만)에 비해서 무려 세 명이 유색인종으로 채워지는 변화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또 한 명의 중요한 배역인 에마 컬렌은 여성으로 바뀌어 헤일리 베넷에게 돌아갔습니다. 리메이크작에서는 악당의 횡포에 참다 못해 떨치고 일어서서 도움을 청하기 위해 밖으로 나선 것이 세 명의 남자 농부인데, 리리메이크작에서는 남편을 잃은 여성이 마을에 용기(balls...라고 나오죠...)있는 남자가 없다며 나선 것이죠. 7인과 메인빌런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중요 배역입니다. 헤일리 베넷은 아마 '그 여자 작사 그 남자 작곡'의 오메가섹시가수 '코라 콜먼'역으로 기억하실 분들이 많을 겁니다. 다만, 저는 그 사람이 그 사람인지 처음에는 못알아봤습니다. 화장기 없고 초췌한 차림에 대부분 어두운 표정으로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당시의 허름한 의상으로도 감출 수 없는 몸매(...)때문에 뉘신지 찾아보았다가 그 분이 그 분이신 것을 알고 납득했습니다. 이것까지 PC적이라 하면 너무 나간 것일 수도 있습니다만, 7인중 생존하는 3인이 샘 치즘, 붉은 수확, 바스케즈로 미국 백인 멤버(패러데이, 혼, 로비쇼)는 모두 사망합니다. 유색인종 중에는 이병헌의 빌리 락스만 장렬하게.,.. (왜?!)  사족이겠습니다만, 이 정도만 되어도 저는 보면서 전혀 불편함을 느끼지 않을 정도의 PC였습니다. 정말 그랬을 수도 있는 일이기에 너무 우겨넣기로 보이지 않거든요. 고증따위 무시하고 그저 흑인 넣고 동양인 넣고 여성 넣고하는 저질과는 비교가 안될 듯 합니다. 무능한 작자들 쯧쯧...

  원작보다 리메이크작을 더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는 저 유명한 테마음악때문입니다. 아마 영화를 못보셨어도 어디서 들어보셨을 수도 있습니다. 앨머 번스테인이 작업한 이 테마곡은 가장 유명하고 사랑받는 서부영화 테마 중 하나이고, 그래서인지 리리메이크작에서도 그대로 쓰였습니다.




  그저 음악만 들어도 '아 서부영화구나...' 알 수 있으면서, 신나기도 하고, 위대한 7인의 모험을 나타내는 장중함과 그들의 즐겁고 위트있는 모습을 드러내주기도 합니다. 가장 좋아하는 영화음악 탑10을 꼽으라면 꼭 말할 겁니다.

  50년대부터 2010년대까지 손이 닿는 서부영화는 어지간하면 다 들여다봅니다만, 너무 스파게티 웨스턴이라든가 너무 이상한 방향인 것들은 또 적성에 안맞더군요. 헤이트풀 세븐이 아슬아슬한 경계인듯 하고... 넷플릭스의 카우보이의 노래도 그렇습니다. 레데리1과 2가 제 인생 최고의 게임 1, 2위인 것도 그렇고 한국영화 중에는 놈놈놈이 탑3인 것도 그렇고 서부영화와 그 시대배경의 콘텐츠가 너무 좋습니다. 뻔하고, 즐겁거든요. 시간이 날 때면 황야의 7인 3편을 정주행하곤 하는데 오늘도 그 날이 온 김에 한 번 끄적여보았습니다.

  서부 황야의 먼지바람이 서울까지 온 듯 하네요. 어려운 시기에 건강 조심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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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3/16 21:38
수정 아이콘
글쓴이분이 친구나 지인들에게 신나게 설명해주시는 모습을 상상하며 잘 읽었습니다 ^^
그냥 리메이크인줄 알았는데 원작이 따로 있었군요~
원작도 찾아보고 싶네요~

참고로 저 어렸을때 토요명화(?)
여기서 나왔던 ‘지옥의 7인’은 별개의 영화겠죠? 크크
올라이크
21/03/16 22:15
수정 아이콘
지옥의 7인이면 아마 진 해크먼 주연의 월남전 직후 시대 배경 영화였던 걸로 기억합니다. 진 해크먼이 메인빌런으로 출연하는 서부영화도 있습니다. 퀵 앤 데드라고... 주인공이 무려 샤론 스톤입니다. 러셀 크로의 젊은 모습과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어리고 꽃다운 모습도 볼 수 있습니다. ^^
-안군-
21/03/16 21:44
수정 아이콘
저희 어머니가 서부영화 광팬이시라 케이블에서 서부영화를 같이 몇번 봤는데, 확실히 옛날엔 PC따위는 없는 상남자의 시대(...)였다는게 느껴지는 장르가 서부영화인듯 합니다.
흑인은 노예취급 받는게 당연하고, 인디안은 이유없이 역마차를 습격하다가 주인공 일행에게 학살당하는게 당연한 악당들이며, 여성은 그냥 남성들의 악세서리 취급 받는게 걍 공식이더라고요. 지금 생각해보면 진짜 시대가 크게 변하긴 했어요.
올라이크
21/03/16 22:21
수정 아이콘
그렇죠, 그렇죠. 태동기의 서부영화는 정말 그런 식이었습니다. 백인은 정의의 사도고 흑인, 인디언, 멕시칸은 보통 악당이고... 여성은 약자이며 희생자인 경우가 많았죠. 물론 아직 잔재가 남은 기사도로 인해 보호받아 마땅한 자의 포지션을 가져가기도 합니다.

하지만 모든 영화가 그런 것은 아니고, 조금 시대가 지나면서 바뀌는 모습이 두드러지기도 했죠. 제가 본문에 말한 TM7의 도입부에서 크리스(율 브리너)와 빈(스티브 맥퀸)이 처음 등장하여 세 농부가 목격하는 장면이 어쩌면 그런 맥락에 있어요. 인디언의 시체를 지나가던 상인이 싣고와서 장례비를 지불하고 장례를 요구하는데, 백인만이 묻혀야 할 공동묘지라며 장례를 거부하는 주민들이 있습니다. 이들에 대항해서 크리스와 빈이 운구마차를 몰고 그들을 제압하며 묘지에 진입하죠. 주민들 대부분은 박수를 치며 환호합니다. 인종차별에 대한 의식이 일단은 올바른 방향을 향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그 이후의 시대에는 '늑대와 춤을'로 대표되는 수정주의 서부극들의 시대도 오지요. 이 작품도 정말 명작입니다.
Janzisuka
21/03/16 22:41
수정 아이콘
구러사와 아키라 감독님 하니깐..
대학 초년때 수십번 보면서 감동받고 노트에 끄적이던 라쇼몽 생각나네요 처음 격는 기분이라 아직도 생생해요
세인트루이스
21/03/17 02:21
수정 아이콘
PC충이 싫다, 블랙팬써 띄워주기 싫다, 왜 디즈니 인어공주가 흑인이 됐냐, 동양인들 차별하는 흑인들의 BLM이 싫다해도 아직은 서구 주류사회에서 지극히 소수자인 동양인들에겐 이러한 PC운동/다양성 중시운동이 큰 도움이 된다고 봅니다.

말씀해주신대로, 이러한 영향이 없었다면 미국 서부영화에 동양인이 나올일도 없었고, 마블에 마동석씨가 캐스팅될 일도 없었고, 기생충이 영화제를 휩쓸 일도 없었고, 미나리가 제작될 일도 없었고, 존조가 카우보이비밥 주인공이 될 일도 없었다고 봅니다.

그나저나 1954년 전후 회복과정에 있던 일본에서 7인의 사무라이 같은 대작이 나온건 정말... 놀랍습니다.
라방백
21/03/17 11:07
수정 아이콘
제목보고 역시 TM7은 음악이지 라고 생각했는데 과연 내용이 있네요.
21/03/18 09:31
수정 아이콘
이글보고 이영화가 너무 보고싶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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