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 자유 주제로 사용할 수 있는 게시판입니다.
- 토론 게시판의 용도를 겸합니다.
Date 2021/01/13 12:20:04
Name 회색사과
File #1 911.jpg (93.1 KB), Download : 55
Subject [자동차 이야기] 내가 꿈꾸던 노년에 대하여 (수정됨)


내가 어릴 적 살던 아파트에는 늘 같은 자리에 주차된 커버에 덮힌 자동차가 한 대 있었다.

그리고 토요일 아침 10시면, 어김없이 런닝 셔츠에 반바지 차림을 한 백발의 할아버지 한 분이 나타나 그 차를 닦으셨다.


그 차는 잘 모르는 초등학교 저학년 어린이가 봐도 너무나 멋지고, 그 할아버지는 너무나 평범했기 때문에

어린이는 당연히 "저 차를 운전하는 멋진 어른이 있고, 저 할아버지는 그 집 집사일거야!" 라고 생각했다.
또 "나중에 어른이 되면 나도 훌륭한 어른이 되서 저런 멋진 차를 타야지!" 라고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화창한 일요일 아침, 어린이의 세계가 무너지는 일이 발생했다.

image


내가 집사라고 생각했던 최불암 같은 그 할아버지가

머리에 포마드를 발라 넘기고, 몸에 딱 맞는 수트와 선그라스를 낀 채  
피크닉 박스를 든 원피스 드레스에 챙이 넓은 여왕님 같은 할머니를 에스코트하고 계셨다.

두 분은 911을 타고 어디론가 가버리셨다.
자연흡기 엔진의 수평대향 엔진의 소리가 어린이의 귀에 울렸다.


어린이는 충격에 빠졌다.

"우리 할아버지는 맨날 할머니께 잔소리나 듣는 사람인데 저 할아버지는 어째서 멋진가?!"

"스포츠 카는 훌륭한 어른(젊은 어른)만 타는게 아녔나?!"

많은 생각을 한 어린이는 "나도 저렇게 늙어야겠다" 는 결론을 내렸다.



그 어린이는 이제 30대 중반을 달리는 아저씨가 되었다.

그리고 나이를 먹어갈 수록 어린 시절 다짐했던 꿈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새삼 깨닫고 있다.

[사회적 은퇴가 훌쩍 넘은 시점]에  
911을 구매하고 운용할 수 있으며, 와이프에게 드라이브 가게 피크닉 준비해봐 라고 하면 와이프가 차려입고 따라나서줄 만큼의
[경제력][가정에서의 존재감][부부간의 친밀도] 가 모두 유지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것인가 허들의 높이가 조금씩 보이기 시작한다.


내 아버지는 내 할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어머니께 구받받는 천덕꾸러기가 되셨고,
40년 가까이 근무하셨음에도 여전히 경제적으로 자유롭지 못하다.


부모님 댁에 사는 동안 우리 집 식단은 아버지가 아닌 나에게 맞춰져 있었고,
내 아버지가 911을 산다고 하면 어머니로부터 제정신이냐는 소리를 들을 것이며..
내 아버지가 어머니께 소풍가게 원피스 입고 나와보라 하면 무슨 주책이냐는 소리를 들으실 것이다.


어떻게 늙어야 그 할아버지 처럼 늙을 수 있을까?
전기차와 자율주행이 유행하기 전에 911을 사서 30년 묵혀야 할까?

오늘도 고민이 많다.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회색사과
21/01/13 12:23
수정 아이콘
이미지 링크를 어카는 건지 모르겠네요 ㅠㅠ ingur 에 올렸는데..
양지원
21/01/13 12:26
수정 아이콘
오늘의 911 가격이 가장 저점이라는 마음가짐으로...!
회색사과
21/01/13 12:35
수정 아이콘
상대적으로 보면 911 가격은 계속 내려가고 있지 않나요 크크
저게 94년 이야기고 차량 구매년도는 더 이전이라고 생각하면... 그 시절 911은 지금 911보다 훨씬 비쌌을걸요...

30년 전부터 그렝쟈는 3천만원대였던 것 처럼요. (지금은 3천만원대로는 깡통밖에 못사기는 합니다만)
21/01/13 12:34
수정 아이콘
(수정됨) 저도 철없던 시절에 나 어른되면 포르쉐 타보겠다고 결심했었고, 어언 십수년이 지난 지금은 집값 모은다고 차? 차는 무슨.. 이러고 있네요.
집만 사고 욕심부려서 은퇴전에 마칸 정도는 꿈꿔도 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크크.
그말싫
21/01/13 12:35
수정 아이콘
[저렇게 늙어야지]의 롤모델이 되는 사람은 젋었을 땐 더 하면 더 했지 항상 쭉 쩌는 삶을 살아온 경우가 대부분...
회색사과
21/01/13 12:37
수정 아이콘
그러게요 크크

근데 좀 궁금하기는 합니다.
그 할배는 그 정도 경제력이 있었는데 왜 아파트 사셨는지 ...

저렴한 아파트는 아니지만, 그 시절에 어르신들은 보통 주택사는 경우가 많던 시절이라서요 흐흐
야루가팡팡
21/01/13 13:04
수정 아이콘
그랜 토리노 다시 보고싶어지는 글이네요
21/01/13 13:14
수정 아이콘
911
죽기전에 한번은 렌트해서라도 타 보고 싶은 차 입니다
더 비싸고 좋은차인 람보,페라리,멕라렌있지만
911 이라는 숫자가 주는 뭔지 모를 울림이 개인적으로 더 크다고 생각합니다.
뭔가 낭만이라고 해야하나,
좋은 글 추천 드립니다.
회색사과
21/01/13 14:36
수정 아이콘
슈퍼카들과 다른 매력이 확실히 있죠 크크

람보나 페라리는 갖고 싶은 마음이 그닥 안드는데 (그 차 줄거면 돈으로줘 할 것 같아요)
911은 꼭 한 번 가져보고 싶습니다.
만사여의
21/01/14 09:22
수정 아이콘
제 차는 아니고 친구차 잠시 운전해봤는데 꼭 경험해 보시길 추천 드려요.
포르쉐 바이러스 라는 말이 괜히 나온게 아니다 싶을 정도..
요슈아
21/01/13 13:34
수정 아이콘
전 나이먹고 할리 데이비슨 하나 둥둥거리면서 천천히 다니고 싶다- 라는 꿈이 아직도 있습니다만

그러기엔 한국에서 오토바이 타기란 너무 위험한 일인지라.
회색사과
21/01/13 14:36
수정 아이콘
그것도 멋있죠.

나이먹고 청바지에 가죽재킷 입고 반쯤 누워서 두가당 두가당

오토바이로 투어할 수 있는 나라에서는 꼭 해보고 싶은 것 중 하나입니다 흐흐
도들도들
21/01/13 13:36
수정 아이콘
저는 아반떼 타도 되니까 포마드를 발라 넘길 백발만 풍성하게 남겨주세요!
회색사과
21/01/13 17:37
수정 아이콘
저도 사실 걱정되기는 합니다
포마드 바른 결과가 바코드면 어쩌죠..
인간흑인대머리남캐
21/01/13 14:18
수정 아이콘
포마드 발라 넘길 수 있는 머리가 부럽네여
답이머얌
21/01/13 14:20
수정 아이콘
아무나 다 그렇게 살 수 없는 희소성이 있으니 더욱 멋져보이겠죠.

요즘은 부모세대보다 더 못살게 될 최초의 세대란 얘기도 나오는데, 할아버지나 아버지 모습만큼만 살아도 선방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나는너의환희
21/01/13 14:30
수정 아이콘
노년 되면 가상현실에서 클래식 911 몰면서 20세기 배경 띄워놓고 여행 다니고 싶습니다
회색사과
21/01/13 14:33
수정 아이콘
하기사 VR이 발달하겠죠 크크
Zakk WyldE
21/01/13 14:46
수정 아이콘
이젠 자연흡기 대배기량 고성능 차량은 보기 힘들거에요... ㅠ

63amg도 4기통란 말이 있던데...
회색사과
21/01/13 14:55
수정 아이콘
공랭식 / 자연흡기가 진짜 911이지 싶긴 합니다만...

어쩔 수 없죠..
-안군-
21/01/13 15:04
수정 아이콘
사이버펑크 2077에도 다른 차들은 다 가상의 브랜드, 가상의 차량인데, 실존차량은 포르쉐 911만 딱 있죠.
911은 남자를 불타게 하는 뭔가가 있긴 한가봅니다.
단비아빠
21/01/13 15:06
수정 아이콘
PPL 아닐까요..??
-안군-
21/01/13 15:06
수정 아이콘
뭐 그럴 가능성이 농후하지만, 굳이 911만...
거룩한황제
21/01/13 15:22
수정 아이콘
911도 911이지만
로드스터 차량들 (BMW z3나 벤츠 SLK등등) 타고 다니시는 것도 멋지더군요.
회색사과
21/01/13 15:25
수정 아이콘
맞아요!!!

중년에 fun car 로 저렴이 일제 로드스터라도 타볼까 고민중입니다 흐흐
세인트루이스
21/01/13 17:03
수정 아이콘
미국이나 유럽에서 신기했던게 오픈형 스포츠카 타고 다니는 사람들 대다수가 백발 할아버지라는 점입니다.

오픈형 스포츠카 렌트해서 2번 타봤는데 2번 모두 이거 너무 시끄럽고 머리 아프고 (직사광선에 두피가 익는...) 차체가 낮아서 앞이 잘 안보이고 트렁크에 뭐 들어가는게 없는데도 한번 더 빌려 타보고 싶던 크크크
alphaline
21/01/13 22:57
수정 아이콘
아직 아이 생각이 없는 30대 중후반 부부인데
이번에 여유가 좀 생겨서
911은 못 사고 718 카이맨 GTS 4.0 곧 인수 예정입니다
아마 GT버전 제외하면 마지막 포르쉐 자연흡기 6기통이 될 가능성이 높은 모델이죠
둘다 월급쟁이인데 좀 무리가 아닌가 싶더라도
자연흡기 엔진은 커녕 신규 내연기관 개발이 중단되는 과도기의 끝자락을 한번 잡아 보고 싶었습니다
회색사과
21/01/13 23:32
수정 아이콘
크으 요새는 카이만이 오히려 911의 아이덴티티를 더 잘 갖고 있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던 차였는데 부럽네요 흐흐

즐거운 운전하셔요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101207 [고질라X콩] 간단 후기 [25] 꾸꾸영4472 24/03/31 4472 2
101206 [팝송] 제이슨 데룰로 새 앨범 "Nu King" [4] 김치찌개3107 24/03/31 3107 0
101205 우유+분유의 역사. 아니, 국사? [14] 아케르나르4008 24/03/30 4008 12
101204 1분기 애니메이션 후기 - 아쉽지만 분발했다 [20] Kaestro4107 24/03/30 4107 2
101203 시흥의 열두 딸들 - 아낌없이 주는 시흥의 역사 (6) [3] 계층방정4091 24/03/30 4091 7
101202 [스포] 미생 시즌2 - 작가가 작품을 때려 치우고 싶을 때 생기는 일 [25] bifrost8316 24/03/30 8316 8
101201 정글 속 x와 단둘이.avi [17] 만렙법사4426 24/03/30 4426 17
101200 삼체 살인사건의 전말 [13] SNOW_FFFF11402 24/03/29 11402 3
101199 갤럭시 S23 울트라 One UI 6.1 업데이트 후기 [33] 지구돌기7833 24/03/29 7833 3
101198 전세계 주식시장 고점신호가 이제 뜬거같습니다(feat.매그니피션트7) [65] 보리야밥먹자14588 24/03/29 14588 1
101197 8만전자 복귀 [42] Croove8483 24/03/29 8483 0
101196 웹소설 추천 : 천재흑마법사 (완결. 오늘!) [34] 맛있는사이다5473 24/03/28 5473 0
101195 도둑질한 아이 사진 게시한 무인점포 점주 벌금형 [144] VictoryFood9312 24/03/28 9312 10
101194 시리즈 웹툰 "겜바바" 소개 [49] 겨울삼각형6332 24/03/28 6332 3
101193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 - 마침표와 물음표 사이.(노스포) [4] aDayInTheLife4209 24/03/28 4209 3
101192 고질라 x 콩 후기(노스포) [23] OcularImplants5724 24/03/28 5724 3
101191 미디어물의 PC주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81] 프뤼륑뤼륑9558 24/03/27 9558 4
101190 버스 매니아도 고개를 저을 대륙횡단 버스노선 [60] Dresden11872 24/03/27 11872 3
101188 미국 볼티모어 다리 붕괴 [17] Leeka11143 24/03/26 11143 0
101187 Farewell Queen of the Sky! 아시아나항공 보잉 747-400(HL7428) OZ712 탑승 썰 [4] 쓸때없이힘만듬4566 24/03/26 4566 5
101186 [스포없음] 넷플릭스 신작 삼체(Three Body Problem)를 보았습니다. [52] 록타이트9531 24/03/26 9531 10
101185 시흥의 열두 딸들 - 아낌없이 주는 시흥의 역사 (5) [3] 계층방정6358 24/03/26 6358 8
101184 [웹소설] '탐관오리가 상태창을 숨김' 추천 [56] 사람되고싶다7619 24/03/26 7619 20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1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